김명호

우리는 보는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알고 배운다. 눈을 감을 때와 뜰 때를 비교해보면 우리가 시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가 다른 감각에 의한 것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이미 시각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난 후, 눈을 감고 청각, 후각, 촉각 등으로만 정보를 습득하고자 한다면 그 정보의 양이 얼마나 부분적이고 근거리적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구약성경의 창세기편에 “let there be light”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하는데, 고대인들도 빛이 중요한 세상의 부분이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빛은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 전자기파의 매우 좁은 부분이다. [그림1] 우리는 빛이 다양한 색을 띨 수 있음을 알고, 인지하며, 이 연속적인 빛의 스펙트럼을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일곱 색이 띄엄띄엄 모인 것처럼 구분하여 부른다.

 

그러면 우리는 넓디넓은 전자기파의 스펙트럼 중 왜 하필 좁디좁은 가시광선 영역만 볼 수 있을까? 적외선까지 볼 수 있다면 깜깜한 어둠 속에 숨어있는 동물이나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태고에 물속에서 살면서 진화했던 생명체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물속에서 탄생한 생명은 빛이 더 밝은 수면으로 감으로써, 풍부한 산소로 호흡할 수 있고 거기에 모인 다른 생명체를 먹이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즉 빛이 신호 또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 셈이다. 따라서 광합성을 하는 식물성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빛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 빛을 인지하는 광수용체를 보유한다는 것은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절대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세 개의 원자로 구성된 물 분자(H2O)는 다른 분자들이 그러하듯, 전자기파를 파장에 따라 선택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바닥상태에서 강하게 속박된 전자가 높은 준위로 오르려면 많은 경우 큰 에너지의 광자, 즉 보통 자외선 영역의 광자를 흡수해야하므로, 원자는 단파장 영역(< 200 nm)에서 강한 흡광대를 형성한다. 그런 이유로 태양광의 자외선 상당부분이 물을 비롯한 대기 중의 다양한 분자(산소, 질소, 오존 등)를 이루는 원자들에 의해 흡수되어 사라진다.

 

한편, 상당히 단순한 구조를 지닌 물 분자도 다양한 에너지 흡수 모드를 가지는데, 진동, 회전, 혹은 회전진동libration 운동과 관련된 에너지 흡수 모드를 통해 다양한 적외선 파장대의 전자기파를 흡수할 수 있다. 정말 공교롭고 기묘하게도 물 분자는 자외선과 적외선 영역의 파장대에서 흡광이 무지무지하게 강력하다. 즉, ~ 170 nm의 자외선에서는 1 μm 두께의 물을 통과할 때, 십조 개의 광자가 들어올 때, 겨우 1 개 정도만 흡수를 피해 통과할 정도이고 ~ 3 μm의 적외선에서는 같은 두께의 물을 통과할 때, 10개의 광자가 오면 3 개 정도만 통과할 수 있게 된다.1 1 μm가 머리카락의 수십 분의 일 정도로 얇다는 것을 상기하면 흡수도가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반면 물의 흡광스펙트럼에는 자외선, 적외선 파장대 사이에 빛의 흡수가 일어나지 않는 아주 투명한 파장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초록빛에 해당하는 500 nm 파장의 영역에서는 빛이 1 mm 두께의 물을 통과할 때 99.998%의 광자가 살아남으며 실질적으로 빛의 흡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물속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가 접하게 되는 광자/전자기파들은 이 투명한 파장대에 속하며, 적외선이나 자외선처럼 다른 종류의 전자기파에 대해서는 본 적이 아예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물속 생명체들은 400 nm – 700 nm 파장대의 전자기파를 인식할 수 있는 광수용체가 발현하도록 진화해왔다. 400 nm – 700 nm 영역의 인간이 ‘볼 수 있는visible’ 전자기파를 가시광선visible light이라고 부르고 그 중 긴 파장 쪽을 빨강red이라고 불러왔으니 그 바깥이라는 뜻으로 적외선infrared, 짧은 파장 쪽을 보라violet라고 불러왔으니 그 바깥이라는 뜻으로 자외선ultraviolet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시광선이라는 좁은 영역의 빛만 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니 그 다음으로 생명체가 어떻게 색을 인식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는 미술 시간에 빛은 빨강, 초록, 파랑의 삼원색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세 가지 빛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색을 모두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배웠다. 이는 광학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얘기다. 색은 각각 다른 파장을 갖는데, 세 파장의 빛을 더한다고 다른 파장의 빛이 될 수는 없다.

 

세 가지 파장의 빛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빛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빛을 보는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빛을 파장별로 구별해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민감한 파장으로 구별할 수 있는 세 종류의 광수용체(opsin 단백질, 빨강(OPN1LW), 초록(OPN1MW), 파랑(OPN1SW))가 있어 이들을 자극하는 정도의 비율에 따라 색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간상의 점의 좌표를 3차원 벡터의 세 좌표로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약 천만 개의 다른 색을 구별할 수 있다고도 하니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우수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2

한편 우리가 지닌 시각 체계의 작동 방식으로 인해 우리의 인식에 착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발표 때 사용하는 프로젝터는 노란색을 표현할 때, 진짜 노란색 파장의 빛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빨간색과 초록색을 동시에 비춰서 우리로 하여금 노란색을 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연결단자의 접촉 불량 때문에 가끔 색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세 가지 색깔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의 시각이 발달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삼원색 중 하나의 색이라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색이 치우치게 인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단일한 색으로 알고 있는 것 중에는 가시광선 스펙트럼 상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파장으로 규정할 수 없는 색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갈색은 독립된 두 색을 혼합하여 만들 수 있는 복합색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도 인간처럼 세 가지 색을 기본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상당히 놀랍게도 양서류, 파충류, 조류 다수가 네 가지 색을 기본으로 세상을 인식한다고 한다.3

공룡이 세상을 호령하던 시대에 파충류는 세상의 주인이었다. 만약에 지금처럼 파충류가 변온동물로 햇볕을 좋아했다면 그들이 활동하는 때는 하루 중 낮이었을 것이고 그들의 눈앞에는 밝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빛이 풍부한 세상에서는 색을 민감하게 구별하는 것이 생존에 대단히 유리했을 것이다. 현재 공룡의 후예로 생각되는 조류도 파충류들처럼 네 가지 색을 기본으로 색을 인지한다고 한다. 공룡이 호령하던 시기에 공룡의 기세에 눌려 음지에서, 어둔 밤에 주로 활동하던 생명체들이 있었다. 우리의 먼 조상으로 볼 수 있는 소형 포유류이다. 소형포유류는 빛이 약한 세계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각보다, 예민한 청각과 후각이 더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인간의 친구라 하는 개가 명민한 후각과 청각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지만 영장류가 아닌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두 가지 색을 기본색으로 하여 사물을 본다고 한다. 지금 지구를 지배하는 포유류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초라하고 왜소했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렬한 빛이 지구의 생명과 생태계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광합성의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엽록소의 색깔에 의해 대체로 연두, 초록색을 띤다. 식물 입장에서 새와 곤충의 도움으로 수분하여 열매를 맺고, 씨를 퍼뜨리려면 꽃과 열매가 새와 곤충들의 눈에 잘 띄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울창하고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꽃과 열매를 잘 보이게 하려면 초록과 보색 관계인 붉은 계통의 색이 가장 유리하다. 이것이 대부분 꽃과 열매가 붉은색 또는 노란색인 것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가 될 것이다.

꽃과 과일을 좋아하는 것은 새만이 아니었다. 나무를 잘 타고, 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임관층canopy에서 생활하고, 달콤한 과일을 좋아하는 유인원들에게는 색을 구별하는 일이 다시 중요해졌다. 이들은 염색체 중복에 이어 발생한 돌연변이에 의해 세 가지 색을 기본으로 색을 인지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빛 인식 체계가 이렇게 완성된 것이다. 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크게 발전한 유인원은 시각 정보를 훨씬 잘 활용하여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것이고 이 형질이 인류에게 이어져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는 위치에 도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새는 네 가지 색을 기본색으로 인식하고 곤충들도 네 가지 색을 기본색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여기에 약간의 예외와 변이가 있다. 비슷하게 꽃을 쫓는 곤충인 벌과 나비가 다르다고 한다. 즉, 벌은 세 가지 색을 기본으로 인식하나 나비는 무려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어떤 새들도 다섯 가지 색을 기본색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기본 광수용체의 수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이것은 전적으로 유전적 특징에 의해 결정이 된다.

인간의 시각을 담당하는 기관인 눈은 안구 뒤쪽에 빛에 민감한 망막을 가진다. 망막은 빛을 감지하는 세포인 기둥세포rod cell와 원뿔세포cone cell를 가지고 있으며, 옵신opsin이라 불리는 단백질들이 다량으로 발현되어 있다. 입사하는 빛은, 옵신 구조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레티날retinal(비타민 A (레티놀) 유도체)의 광이성질화photo-isomerization를 유발한다. 레티날의 광이성질화는 옵신 단백질에 구조 변화를 유발하고, 이 변화에서 비롯된 신호가 시신경을 통해 두뇌로 전달된다.

기둥세포에 존재하는 옵신 단백질인 로돕신rhodopsin ~ rod (cell) opsin은 인간염색체 3번에 코딩되어 있다. 로돕신은 가장 기본이 되는 옵신으로 빛에 대한 감도가 좋으나 (한 종류라서) 색에 대한 구별은 가능하지 않다. 원뿔세포에 있는 옵신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적화된 파장에 따라 세 종류가 있다. 파란색 빛을 감지하는 유전자 OPN1SW는 인간염색체 7번에 코딩되어 있지만 다른 두 종류 OPN1LW, OPN1MW는 성염색체인 X 염색체에 코딩되어 있다. 이런 점이 인간의 시각, 특히 시각의 남녀 차이에 큰 의미를 갖는다.

남성은 X 염색체를 한 개, 여성은 두 개 가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성의 경우, 만약 빨강, 초록을 감지하는 옵신 중 하나가 돌연변이로 고장이 난다면 여벌이 없으므로 돌연변이의 피해를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즉, 빨강, 초록을 구별 못하는 적록 색각이상이 되는 것이다. 만약 둘 다 고장이 나면 파랑에 대한 옵신만 남게 되어 일반 색각 이상이 된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여성은 X 염색체가 두 개라서 하나의 X 염색체 위에 있는 옵신이 기능을 잃어도 다른 X 염색체 상의 옵신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별 문제가 없다. 만약 돌연변이가 일어났지만 그 기능을 완전히 앗아가지 않고 최적 파장이 살짝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의 변화로 광학 특성이 약간씩 바뀌는 것은 가능하다. Roger Y. Tsien 교수는 해파리에서 나온 녹색 형광단백질 GFP의 아미노산 서열을 조금씩 바꿔서 다양한 색을 내는 형광단백질을 만든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럼 이 여성은 기존의 3 가지 옵신 외에도 새로운 색을 감지하는 네 번째 종류의 옵신을 가지게 되어 새와 같이 네 가지 색을 기본색으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네 가지 기본색 색각을 지닌 사람은 1억 가지 색을 구분한다고 한다. 여성 중에 신비할 정도로 날카로운 색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데 옵신 단백질의 돌연변이에서 그 생물학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색 감각에 관한 이야기는 광학, 화학, 생물학, 유전학, 생태학, 진화론이 함께 버무려져 있어 대단히 흥미롭다. 우리가 항상 당연한 듯 여겨왔던 색과 색의 감각이 물질의 절묘한 특성에서 비롯되었고, 생물학이 깊이 개입하며, 장구한 세월을 통해 빚어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어떻게 세상이 보이는지 알려줄 수 없는 동물들의 색각에 대한 기발한 실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동물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색의 감각에 대한 연구가 생명이 세상을 보는 방식 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해의 틀을 바꾸어 나가는 것 같아, 앞으로의 연구가 더욱 기대된다.

홍석철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