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and Metaphor

 

전문가의 난처함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전문가란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해당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된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자는 당연히 전문가의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전문가가 하는 말을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전문가의 정의에서 찾을 수 있다. 특정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하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 있기에,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낯설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배경 지식과 축적된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 왜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엉뚱한 질문을 하는지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과 의사소통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난처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어려운 개념을 도대체 어떻게 쉽게 설명하지?”라든지 “이렇게까지 쉽게 설명했는데 왜 못 알아듣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전문가의 난처함’이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그 분야를 넘어선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분야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종종 “왜 저 분야 사람들은 이 문제에 그렇게 집착하지?”라든가, “아니 그 개념을 왜 저런 상황에 적용하지?” 등의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 과학자들은 대개 말이 통하는 동료 전문가와 함께 연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만날 기회는 드물기에 이런 당혹스러움을 경험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리고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저쪽 분야에서는 그런 식으로 하나 보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에게 과학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학자들은 이런 난처함을 종종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은유나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차원 시공간이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는’ 일반상대성 이론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차원을 낮춘 유비를 사용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이차원 천 가운데에 놓인 무거운 공 주위에서 운동하는 작은 공을 설정하는 식이다. 무거운 공이 천을 잡아당겨 천이 아래로 처지게 되면(공간이 휘어지는 것에 대응), 그 근처를 지나던 공은 ‘마치(as if)’ 무거운 공이 자신을 잡아당기는(중력에 대응) 것처럼 무거운 공 가까이로 진행 방향이 휘게 된다. 이렇게 일반인도 비교적 쉽게 시각화할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여, 뉴턴 역학에서는 ‘끌어당기는’ 실체로 상정된 힘을 무거운 질량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진’ 상태에 의해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물론 시공간이 정말로 천이라거나, 4차원 시공간에 더해 질량을 가진 물체가 천을 끌어당겨 내려가는 아래 방향에 대응하는 추가적 차원이 존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과학적 은유는 은유의 속성상 은유의 모든 측면이 실제 물리 현상에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물리학자들은 과학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리된 공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자주 강조한다. 은유를 통한 설명은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과학 이론에 대해 ‘대강의 이해’를 얻기 위해 임시방편적으로 사용하는 불가피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은유의 생산성

이처럼 은유는 일반적으로 엄밀한 과학 내용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입되는 언어적 도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과학 연구 과정에서 은유가 차지하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은유가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매우 생산적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 자체에서 은유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지언어학자 레이코프는 우리가 정치적으로 복잡한 사안에 대해 생각할 때 부모의 자녀교육 방식에 은유하여 그 사안에 대한 판단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레이코프 연구의 출발점은 왜 동일한 사실에 직면하고서도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는 전혀 다른 평가나 결론에 도달하는지에 관해 특정 정당 지지자의 지적 능력을 폄하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명해 보자는 것이다. 레이코프의 분석은 미국인들이 ‘보살피는 부모nurturant parents’ 모형과 ‘엄격한 아버지strict father’ 모형 중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복지 정책의 정당성이나 동성애 결혼과 같은 복잡한 사안에 대해 간단하게 가치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처럼 정교한 이론 체계를 차근차근 적용하여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미국인에게 훨씬 친숙한 ‘가족’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의 체계에 은유하여 판단이 이루어진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특정 정치적 사안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보다는 사안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태도가 ‘보살피는 부모’에 가까운지 아니면 ‘엄격한 아버지’에 가까운지만 판단하는 것이 인지적으로 휠씬 쉬운 ‘어림계산heuristics’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이렇게 어림계산으로 도달한 결론이 정말로 맞는지 치밀하게 다시 점검해 보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합리화에 능하기에 일단 어림계산을 통해 특정 결론에 도달하고 나면, 그 결론에 유리한 근거를 불리한 근거보다 더욱 쉽게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확증 편향이 은유에서 시작한 판단을 확고한 정치적 신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레이코프의 분석은 미국인의 정치적 판단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 과정은 은유나 어림계산에 의존하여 빠르게 판단하는 시스템-1과 치밀하게 관련 내용을 합리적으로 따져보고 판단하는 시스템-2를 혼용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시스템-2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하기에, 인지적 노력이 덜 들고 직관적인 시스템-1에 의한 판단이 먼저 내려지게 된다. 시스템-1에 의한 판단이 항상 오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스템-1은 복잡한 인지과정을 우회해서 많은 경우 올바른 판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인지 과정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1의 인지과정에서 은유나 비유는 레이코프의 연구에서처럼 종종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과학자는 합리적이고 치밀한 사고를 하는 사람의 전형이 아닌가? 그러므로 과학자에게 은유에 기반한 빠른 사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과학철학에서 논의되는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의 구별을 활용해 볼 수 있다. 물론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동료 평가를 통해 입증하고 다른 과학자를 설득하여 학계의 정설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2의 사고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도 연구의 최종 결과를 연구 초기에 완벽하게 제시할 수는 없다. 과학자도 사람인 이상 처음에 연구의 방향성을 잡고 이론을 전개해 나갈 영감을 얻는 과정에서는 시스템-1의 사고, 특히 기존 이론적 틀이 제공하는 은유의 활용이 매우 생산적이다. 이 점은 여러 과학사의 사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어떤 경우에 이 ‘은유의 생산적 활용’은 방법론의 수준으로 규범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뉴턴역학은 몇 가지 자연법칙만으로 우주 전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기에 뉴턴 이후 과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뉴턴역학의 체계적 설명 방식에 고무된 과학자들은 인체의 생리적 현상이나 화학 작용 등 원래 뉴턴 역학의 적용 범위가 아니었던 분야까지 뉴턴적 은유를 적용했다. 뉴턴적 은유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는 오직 그 ‘효과’만이 간접적으로 관측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힘이 존재하고 그 힘은 수학적 방식으로 탐구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은유는 18세기가 되면 체계화된 방법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이 방법론에 따라 이루어진 연구를 ‘뉴턴주의 과학’이라 부르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방법론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당시 과학자에게 뉴턴의 보편중력 법칙은 중력 현상을 넘어 다른 자연 현상을 유사한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연구 방식에 힘을 실어 준 중요한 은유였다는 사실이다.

 

뉴턴역학만큼 후속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저명한 유전학자 르완틴의 ‘삼중 나선triple helix’ 개념 역시 생산적 은유의 좋은 사례이다. 르완틴은 유전자에만 집중된 기존 분자생물학 연구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환경’으로 통칭되는 비유전적 요인이 생명체의 발생과 진화 과정에 끼치는 영향을 탐색하는 연구의 중요성 강조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주장을 DNA 이중나선이 아닌 ‘삼중나선’이라는 은유로 제시한 것이다. (당연히 우리 몸의 유전자가 삼중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나선’ 개념은 유전적 요인과 비유전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하는 생물학 연구가 이중나선에 해당되는 유전자의 영향에 환경의 영향을 단순히 ‘더하는’ 방식으로 수행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구조적으로 서로 꼬여있는 ‘나선’ 은유는 이 둘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제대로 탐색해야 한다는 점을 함축한다. 덕분에 ‘삼중 나선’ 은유는 후생유전학epigenetics의 등장에 상당한 지적 자극을 주었다.

이에 더해 과학적 은유의 역할을 ‘발견의 맥락’에만 국한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에 따르면 성숙된 과학은 과학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주제와 그 주제를 연구하는 연구방법론을 제시하는 패러다임에 따라 연구가 수행된다. 예를 들어 뉴턴 과학은 뉴턴의 운동 법칙과 보편중력의 법칙을 활용하여 천체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통합적으로 설명한다. 원칙적으로 이 설명 방식은 두 개 이상의 물체에 적용될 수 있지만 세 개 이상의 물체의 중력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섭동 혹은 건드림perturbation과 같은 다양한 근사 방법이 동원된다. 뉴턴 역학 패러다임은 이밖에도 성공적으로 풀린 문제의 집합, 즉 모범사례exemplar의 집합을 제공하는데,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 모범사례를 열심히 공부해서 패러다임의 연구 방법론을 익히게 된다. 실제로 뉴턴 역학을 한참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세상의 모든 현상을 균형 상태에서 살짝 벗어난 조화진동자harmonic oscillator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신념을 갖고 꾸준히 패러다임의 모범사례를 확장하여 더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활동을 쿤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칭했다.

 

그러므로 쿤의 과학관에 따르면 과학자에게 모범사례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문제들 사이의 유사점을 찾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이는 많은 경우 모범사례의 여러 구성 요소를 ‘은유적’ 혹은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원래는 물체에 작용하는 여러 힘(역학적 힘과 마찰력 등)에 따른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미분방정식을 전기 현상에 적용하여 전하에 작용하는 여러 힘(전자기력과 저항에 의한 비보존력 등)에 따른 전하의 운동을 기술하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일에 성공하면 그전까지는 전혀 다른 현상으로 파악되던 역학 현상과 전자기 현상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보존력과 비보존력이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방식 등)에 주목할 수 있고, 과학이론의 중요한 역할인 자연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과학적 은유를 생산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현상을 묶어내는 과정은 과학적 창의성이 발휘되는 중요한 지점인 동시에 과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주요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은유의 위험한 확장

은유는 정의상 은유하는 대상과 은유되는 대상 사이에 완전한 동일성이 아니라 부분적 동일성, 혹은 과학의 경우에는 ‘구조적 유사성’만이 성립한다. 전기 저항을 전자 인간이 지나가는 통로에 놓인 암석으로 묘사한다고 해서 전자가 사람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전자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저항이 작용하는 방식이 마치 인간이 길을 갈 때 장애물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두 부분은 ‘마치as if’와 ‘구조적 유사성structural similarity’이다. 앞서 쿤의 모범사례에 대한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자들은 현재 자신들이 풀고 있는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익숙한 모범사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게 변형시켜서 모범사례에 대한 해법을 다시 적용하는 방식으로 정상과학 활동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런 은유는 특히 해당 분야 전문가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오해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가 어렸을 때 읽었던 과학 만화에서 촉매를 설명하면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높은 에너지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이 고개를 쉽게 넘을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촉매라는 식으로 설명한 내용이 있었다. 고개를 넘기 어려워하는 반응물 원자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밀어주는 촉매의 의인화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나중에 화학 반응에 대해 제대로 배우면서 대부분의 촉매는 반응 원자에게 에너지를 주어 높은 ‘고개’를 넘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위해 넘어야 하는 ‘고개’ 자체를 낮추어서 반응이 쉽게 일어나게 해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촉매 반응을 재미있게 설명하는 은유가 실은 촉매 반응의 핵심적 메커니즘에 대한 오해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과학적 은유가 사회적 파급력을 가질 때 단순한 오해를 넘어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과학은 일반인들에게 믿을만한 지식의 대명사로 인식되기에, 전문가 과학자가 특정 은유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은 채 확신에 차서 관련 과학 내용을 설명하다 보면, 일반인들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방식으로 이를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 개념이다. 흔히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가 자기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후대에 전달하는 운반체vehicle에 해당하는 인간을 이기적으로 이용한다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지구상에서 이루어진 생명 진화과정의 주역은 통상적으로 강조되는 유기체organism가 아니라 복제를 통해 영원히 불멸하는 유전자이며, 인간과 같은 유기체는 그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 활용되는 수동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 유전자가 ‘이기적’이니 그 유전자에 의해 조종되는 운반체 인간이 이기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는 식의 생각도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서 자주 등장한다.

도킨스는 1976년 초판을 나온 『이기적 유전자』 책에 대해 자신이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불멸의 유전자immortal gene’였지만 출판사가 좀 더 섹시한 제목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제안해서 그대로 따랐다고 고백한다. 유전자의 불멸성이 자신이 강조하고자 했던 책의 전체 주제를 더 잘 요약하기는 하지만, 유전자가 은유적인 의미에서 ‘이기적’이라는 점 역시 유전자의 본성을 이해하기 데 중요한 특징이었기에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도킨스는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아무도 핵산 덩어리에 불과한 유전자가 진정으로 사람이 이기적인 방식과 정확히 동일하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두꺼운 『이기적 유전자』 책 전체에서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은유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문장은 딱 한번 등장한다. 즉,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이 유전자가 인간처럼 의식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유전자 풀에서 궁극적으로 살아남는 유전자는 ‘마치’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자신의 복제 유전자의 숫자를 늘리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이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의미라는 점을 분명하게 진술한 문장이 그 두꺼운 책에서 딱 하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도킨스의 ‘원래 의도(?)’가 어떻든 도킨스 주장을 유전자가 일상적인 의미에서 이기적이라고 읽는 독자를 비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기적’ 유전자 개념은 경제학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개념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유전자와 경제적 인간 모두 좁게 정의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행동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거나(유전자의 경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경제적 인간의 경우). 이런 상황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실제로 진화생물학의 여러 모형들은 미시경제학의 여러 모형과 ‘구조적 유사성’이 있거나 내쉬 균형이나 파레토 최적 상태처럼 어떤 경우에는 아예 개념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기에 경제적 행위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좁게 정의된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은 유전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므로, 이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합리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기적 유전자’ 개념은 도킨스의 원래 의도와 무관하게1 진화생물학의 게임 이론적 접근과 신고전주의 경제학 모형의 유사성, 그리고 ‘이기적’ 행동이 합리적이라는 일반적인 직관 등과 맞물려 이기적이고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는 과학적 권위가 사회적 편견의 확산에 도움을 준 분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드물게 발생하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 최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연구하는 국내 과학자들은 ‘편집editing’이라는 단어가 제멋대로 짜깁기한다는 부정적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전자 편집은 최근 등장한 크리스퍼 기술처럼 올바른 유전자로 ‘교정’해주는 좋은 기술에 대한 번역어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이 편집 대신 선택한 단어가 ‘가위’이다. 가위로 ‘나쁜’ 유전자 혹은 ‘잘못된’ 유전자를 싹둑 잘라내고 그 자리에 ‘좋은’ 유전자 혹은 ‘올바른’ 유전자를 교체해 넣는다는 은유를 자신들이 연구하는 첨단 유전자 편집 기술에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전자 가위’ 기술이라는 개념은 과학자들이 전략적으로 특정 은유를 부각시킨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기존의 1세대, 2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에 비해 비용이나 정확도 측면에서 획기적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유전자 편집을 위해 요구되는 숙련도의 수준을 상당히 낮추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연구팀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난 효과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가가 많아지면서 기술적 진보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반면, 인간 복제나 유전자 ‘맞춤 아기’처럼 윤리적으로 논란이 될 여지가 있는 연구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어렵게 하는 부작용도 있다.

 

중요한 점은 아무리 유전자 편집 기술이 최근 급속하게 발전했다고 해도 그것이 100% 안전하거나, 편집 과정에서의 오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도구인 ‘가위’를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현재 유전자 편집 기술 수준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만들 수밖에 없고 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역풍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관련 연구의 윤리적, 사회적 쟁점에 대해 충분한 대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연구 성과에만 매달리다 보면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로 필자가 보기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유전자 편집gene editing’이라는 공식 용어를 놔두고 구태여 유전자 ‘가위’를 번역어로 고집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선택은 과학적 은유를 사회적 위험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잘못 사용한 사례라고 판단된다.2

은유는 그 속성상 원래 성립하던 은유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언어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죽은 은유’를 사용하지 않고 약간의 언어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은유나 비유를 사용하려고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에서 은유는 매우 중요한 인식론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역할에는 일상 언어와 마찬가지로 은유의 적절한 확장을 창의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이나 대중매체 종사자들이 단기간의 선정적 효과를 위해 과학적 은유를 오용하거나 기존 사회적 편견과의 관련성을 애써 무시하고 위험할 수 있는 은유를 무리하게 활용하려 한다면 그 은유는 예상치 못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1. 이상욱 2017a, 「논쟁적인 현대 과학고전,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1』, 제6판, 서울: 한양대학교출판부.

  2. 이상욱 2017b, 「유전자 편집? 가위? 수사학적 전략의 유혹」, 『과학과 기술』 2017년 5월호(Vol. 576), pp. 51-54.

  3. Dawkins, Richard 2016, The Selfish Gene: 40th Anniversary Edition (4th Revised E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4. Hesse, Mary B. 1966, Models and Analogies in Science, Notre Dame, IL: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5. Kahneman, Daniel 2013, Thinking, Fast and Slow, New York: Farrar Straus & Giroux.

  6. Kuhn, Thomas 2012,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50th Anniversary Edition (4th Edition), Chicago, I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7. Lakoff, George 2016, Moral Politics: How Liberals and Conservatives Think, Chicago, IL: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 Lewontin, Richard 2002, The Triple Helix: Gene, Organism, and Environmen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이상욱
HORIZON 편집위원,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