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당신에게 박물관이란?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매일 밤 모두가 떠나고 잠든 사이 전시물들이 살아나 움직이는 자연사박물관’의 야간 경비원으로 취직한 주인공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그린 이 영화는, 알고 보면 장난감이 살아 있다는 <토이스토리>의 상상, 옷장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나니아 연대기>나 벽장 속 괴물 이야기인 <몬스터 주식회사>의 상상처럼 어린 시절 한 번쯤은 해보던 상상과 궤를 같이한다. 이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연사박물관의 화석과 전시물들이 밤마다 되살아나다니! 로마 시대를 재현한 디오라마 속 병사들이 영토 확장을 하겠다며 그 옆의 미국 철도 건설 현장 디오라마로 침입해서 싸우고, 네안데르탈인들은 박물관 안에서 불을 피우겠다며 사고치고, 모아이 석상은 가뜩이나 정신없는 주인공에게 껌을 달라고 자꾸 보채고, 그 와중에 아프리카관의 원숭이는 틈만 나면 주인공의 주머니 속 열쇠를 훔쳐댄다. 필자가 느낀 이 영화의 압권은 뼈다귀를 던져달라며 강아지처럼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T-rex였다. 이 영화는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을 배경으로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물들뿐만 아니라 박물관 뒤편의 수장고와 사무공간에 이르기까지 자연사박물관의 곳곳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자연사박물관은 어떤 공간인가?

 

수집, 전시의 공간에서 교육, 향유의 공간으로

 

박물관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박물관은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 소터Ptolemy Soter, 367-282 B.C.가 만든 뮤제이온 알레산드리아Mouseion of Alexandria로 알려져 있다. 이 당시의 박물관은 수집품들을 소장‧전시하는 것보다는 저명한 학자들과 함께 거주하며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자 학술원의 기능을 주목적으로 하는 고급교육기관이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의 박물관은 유럽의 교회를 중심으로 성물을 수집‧보존하던 것, 귀족이나 부호들이 개인 소장이나 감상 목적으로 각종 수집품을 모으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소장품들은 일반 대중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런 소장품들이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했으며, 1683년 영국 옥스퍼드에 지어진 애쉬몰린 박물관Ashmolean Museum이 근대 박물관의 개념을 가진 세계 최초의 공공박물관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풍부한 수집품을 갖춘 박물관은 국가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프랑스를 필두로 독일, 미국 등 많은 나라가 앞다투어 세계 각지에서 모은 수집품과 자국의 과학기술 성과품을 박물관을 통해 전시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박물관은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 1946년 설립된 국제박물관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ICOM는 정관을 통해 박물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ICOM의 설립 이후 변천된 정관을 통해 박물관의 정의를 살펴보면, 1946년 ‘대중에게 모든 수집품을 공개하는 상설 전시 장소’로 시작하여 1956년에는 ‘수집품의 보존과 연구’의 개념이 포함되고 1961년부터는 ‘교육과 향유’의 개념이 포함되기 시작되었다. ICOM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여 박물관의 정의를 개정하고 있다(2019년에 새로운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박물관의 정의를 개정, 발표하기 위한 연구 중에 있다고 한다). 이처럼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고 관람하는 곳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곳, 전시와 강연,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양 교육 기관의 역할, 더 나아가 각종 행사 개최를 통해 지역, 취향, 관심사 등을 기반으로 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다시 자연사박물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연사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연의 역사,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 예측에 이르기까지의 지구와 생명의 역사와 그 현상을 다루는 곳이다. 빅뱅부터 지구와 생명이 탄생하기까지의 우주와 지구의 역사,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공룡 등의 화석을 통해 보는 생명의 탄생과 진화, 지진과 화산 등 지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 광물과 암석 등 지구의 다양한 물질들, 그리고 인류와 더불어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들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역사와 현상을 시‧공간적으로 다룬다. 세계의 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그 나라의 자연 유산을 체계적으로 연구‧관리하고 시민들의 교육과 문화 향유를 위한 장소로서 자연사박물관들을 가지고 있다.

 

기대가 경험을 바꾼다

자연사박물관과 관련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관람객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형식 과학교육informal science education 또는 학교밖 교육science education of out-of-school이라고 불리는 분야의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행동과 대화를 녹화하여 분석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최근에는 관람객들이 가장 먼저 시선을 두는 곳, 가장 오래 시선을 두는 곳 등을 알아보기 위해 시표추적eye-tracking 장치와 같은 기술을 동원하기도 한다. 연구 주제로는 관람객이 박물관에 혼자 방문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방문할 때 관람 경험이 풍부해진다거나, 관람객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스스로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지)와 박물관에서 어떤 경험을 기대하는지가 경험과 학습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특히 전시물이 제공하는 텍스트, 이미지, 모형, 그리고 활동 형태 등이 학습을 위한 매개자이자 어포던스affordance의 역할을 할 수 있음 등이 있다.

어포던스는 생태심리학자인 제임스 깁슨James J. Gibson이 제안한 개념이다. 깁슨은 자연환경과 동물(또는 세상과 사람) 사이에서 행위를 일어나게 만드는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어포던스의 개념을 창안하였다. 깁슨은 어포던스를 ‘좋든 나쁘든 자연환경이 동물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지심리학자인 돈 노먼Donald A. Norman은 디자인, 특히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분야에 초점을 두어 ‘어떤 물건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를 명백하게 만드는 특성’이라고 어포던스를 정의하고 깁슨의 개념과 구분하기 위해 지각된 어포던스perceived affordance라고 부르고 있다(노먼의 저서 디자인과 인간심리에서는 ‘행동유도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문고리의 모양을 보고 손잡이를 돌리거나 당길지를 결정하게 하는, 전화기의 버튼을 보면 자연스럽게 누르게 만드는, 사용자가 사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제공받는 단서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물에 이 어포던스 개념을 도입해 보면 ‘전시물이 관람객들의 학습 또는 이해를 유도하는 특성’의 의미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물의 어포던스를 고려하여 관람객의 반응을 철저하게 예측하고 시뮬레이션하여 어떤 방법으로 연출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전시물의 기획, 설치 의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면 연출, 그에 맞는 설명 패널 내용 구성 및 단순 서술 형태가 아닌 관람객의 생각을 일깨울 수 있는 질문의 형태로 구성하는 것, 커뮤니케이터의 활용 및 음성안내장치의 도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어포던스의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보다 좋은 전시물을 설계하는 데 있어 특히 중요하다.

필자가 국내의 한 자연사박물관 관람객 연구를 진행하면서 관찰했던 몇 가지 사례를 보자. 한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박치기 공룡이라고 불리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 두 마리가 서로 박치기를 하려는 장면으로 연출된 전시물을 보며 왜 같은 종족인 공룡들이 싸우는지를 질문한다. 아이의 엄마도 함께 궁금해하며 그에 대한 설명을 찾지만 해당 전시물의 패널에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만 담겨 있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이 전시물의 장면 연출은 공룡의 생태를 설명하기 위한 어포던스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으나 패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관람객의 주의는 제대로 끌었으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 둘이 스테고사우루스 골격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특별한 연출 없이 스테고사우루스 골격 화석이 돋보이게 전시되어 있는 이 전시물 앞에서 가만히 전시물과 패널을 살펴보던 한 아이가 독백을 하듯 말을 시작한다. “스테고사우루스인데. 이게 1억 5천 6백만 년 전부터 1억 4천 5백만 년에 있었던 거래. 일단 저 등판에 있는 게 희안하고.. 저 꼬리 가시를 지금 어떻게 하는지.. 근데 머리가 상당히 작네. 꼬리가 그렇고…” 이 아이는 마치 자신이 과학자라도 된 듯 스테고사우루스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매의 눈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관찰하며 찾아냈다. 다른 아이는 이 아이의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어했으나 패널에는 역시 일반적인 설명만 담겨 있어 아이들 사이에 의미 있는 대화로 이루어지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까?

관람객들에게 적절한 어포던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시물을 위해서는 과학 연구와 과학 개념의 성립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화석, 광물과 암석, 생물 등의 전시물들을 수집, 연구하는 일과 같은 과학자 본연의 일에 더해 수집한 전시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분류하여 전시할 것인지, 어떤 과학적 지식 또는 의미를 부각시킬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지 등에 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또한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관람객에 대한 이해와, 관람객이 전시물을 어떤 방식으로 접하고 이해하게 되는지 그 사고 및 학습 과정, 즉 교육에 대한 이해 또한 필수적이다. 그리고 과학과 교육에 대한 이해에 더해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매력적으로 느껴 다가가고 관람하는 동안 쉽고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를 만들고 효과적인 매체를 선택하기 위한 기획자(또는 작가)와 디자이너도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과 예산 집행 등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행정가도 필요하다. 이처럼 자연사박물관은 과학자, 교육자, 전시 기획자와 작가, 디자이너, 행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역사가 오래된 해외의 자연사박물관들은 이러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박물관 소속 직원으로 상주하면서 전시를 기획, 설치하고, 관람객의 반응을 각자의 분야별 관점에 따라 다각적으로 살피며, 그렇게 얻어낸 정보들을 다시 새로운 전시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다.

 

어느 자연사박물관을 가볼까?

과거의 자연사박물관은 과학자들이 전시품들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쇼케이스라고 하는 유리상자에 언제 어디에서 누가 수집했는지 정도의 정보를 담은 라벨을 붙여서 전시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이후 교육에 대한 요구들이 생기면서 설명 패널이 등장하고, 다양한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영상, 모형, 로봇, 검색장치 등 다양한 매체들이 활용되고 있다. 현재는 다양한 매체를 넘어 경험을 중시하여 핸즈온hands-on, 마인즈온minds-on, 브레인즈온brains-on이라는 용어들을 생성해가며 관람객들의 호기심과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필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려고 하는데, 1881년에 건립된 가장 대표적인 자연사박물관 중 하나인 영국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을 가장 좋아한다. 이 박물관은 건축물도 아름답고 보유하고 있는 수집품들도 압도적이고 공룡관의 전시가 교과서적으로 매우 좋지만, 특히 다른 박물관들과의 차이는 자연사박물관 전시 발전의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쇼케이스 전시부터 첨단 매체들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춘 전시까지, 그리고 박물관에서 제공한 지질학자 복장과 탐험 도구를 갖추고 박물관을 누비는 꼬마 손님들, 세계 최초로 공룡 화석을 발견한 매리 애닝의 복장을 하고 화석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사들 만날 수 있다.

 

 

영국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가량 거리에 있는 옥스퍼드의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지금은 멸종해서 없어진 도도새의 골격화석을 볼 수 있다.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은 고생물관, 해부학관, 지질학관 등 여러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고생물학관은 프랑스의 유명 영화감독이 공간을 연출했다고 한다. 3개 층의 전시 공간을 하늘, 땅, 바다의 개념으로 구성하여, 입구에 들어서면 아프리카 코끼리로 시작하는 포유류의 행렬이 시선을 압도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은 장식이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디자인 속에 각각의 화석 전시물들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임신한 어룡 이크티오사우르스 화석과 같이 고생물학에서 중요한 발견을 하게 한 화석들로 가득 찬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언젠가 유럽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자연사박물관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각 자연사박물관마다 과학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김기상
국립어린이과학관 전시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