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량의 정의

필자가 질량 측정에 대한 원고를 부탁받았을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부끄럽지만 ‘과연 내가 측정하고자 하는 “질량”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측정이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측정하고자 하는 대상이 가지는 어떠한 성질의 양 혹은 크기를, 기준이 되는 것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혹은 절대적인 크기를 비교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질량 재정의에 맞춘 정확한 질량 측정법을 연구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개발하고 있는 정밀 측정 기술을 이용하여 양을 비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연구를 해왔다고 자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질량’이라는 물리량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되어 왔을까? 일반적으로(‘일반적’이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모든 일반 물리책과 고전역학 책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유사하게 표현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간단하고 자주 사용되는 ‘질량’ 정의는 크게 두 가지이며 그 중 한 가지는 ‘물질의 양 quantity of matter’[1] 이고 다른 한가지는 관성과 연결 지어서 정의한 ‘질량은 물체의 움직임에 변화를 가할 때 이에 저항하는 것, 혹은 이에 대한 측정량’[2] 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의들은 질량이라는 물리량에 대해 어떠한 방법을 통해 측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해당 정의에 대해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록상으로는 13세기 신학자인 Aegidius Romanus가 ‘무게 weight’와 ‘부피volume’ 이외에 세 번째 물질에 대한 측정을 제안했으며, 이는 ‘the quantitas materiae’ 혹은 ‘quantity of matter’라는 정의였다. 그리고 17세기까지 mass 라는 단어는 앞서 이야기한 quantitas materiae 를 의미했으며 inertial mass 관성 질량 의 개념을 제시한 것은 Kepler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Kepler는 물체의 질량 mass of matter 를 사물이 겪는 중력과 연결시켰다.[3]

한편, 질량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한 연구자는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이 있다. 우리가 사물의 운동을 배우는 고전역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뉴턴은 프린키피아 Philosoph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The Principia :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rinciples 에서는 1장의 서두에 질량 quantity of matter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무게 weight 와 질량을 연결하는 문장이 나온다.

절대적인 Absolute 질량 측정을 연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해당 문장에 따라 질량 단위를 정의하면 일반적으로(현재 물리 교과서의 정의 및 밀도 단위의 측정법을 따르면) 밀도는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인 관계로, 밀도를 통해 질량을 구하게 되는 경우 밀도를 구하기 위해 질량이 필요하고 다시 질량을 구하기 위해 다시 밀도를 필요로 하는, 이른바 순환논증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뉴턴의 프린키피아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질량을 밀도와 부피를 이용하여 (밀도와 부피의 곱)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고 이야기함과 동시에, 이러한 질량은 무게로부터 측정할 수 있으며, 진자를 이용한 매우 정확한 실험 등을 통해 무게와 질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질량과 무게가 서로 비례함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음을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아직 질량이라는 물리량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았으며 뉴턴 역시 프린키피아에서 질량 그 자체에 대한 정의를 하기보다는 상대적인 비율에 대해 보다 집중하고 있어서 아직 뉴턴이 생존해있던 시기까지는 질량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으나 질량이라는 물리량에 대한 물리적인 의미와 측정 법에 대한 고민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 뉴턴이 저술한 프린키피아 – 첫 번째 페이지(좌측)과 질량에 대해 정의를 해놓은 페이지(우측). 정의에 대한 첫 번째 페이지에 라틴어로 질량은 밀도와 부피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서술되어 있다. (출처 : 미국 의회 도서관)


이와 유사하게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것으로, 당시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형태로 만유인력에 대한 식을 표현하고 있음 알 수 있다. (식의 형태가 아닌 본문의 글로 표현되어 있다.)

이 표현을 그대로 적는다면 중력에 의한 힘은
과 같이 쓰이게 되며, 지구 중력장에서 지구에 의해 물체가 받는 중력가속도는
의 형태로 표시가 된다. 즉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저술하면서 고려했던 질량과 중력, 만유인력에 대한 기술을 그대로 적으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만유인력 상수가 포함된 식과는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프린키피아에서 당시 힘의 크기에 대한 논의에서 절대적인 힘의 크기를 확인하고 수식으로 표현하는 대신, 힘의 상대적인 크기의 비교에 보다 집중했던 것에 따른 표현 차이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당시 질량에 관한 논의에서도 질량을 정의하거나 표기하는 것이 현대의 그것과 다른 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현대에서 정의하듯이 관성력 혹은 힘과 연결된 물리량으로의 질량은 언제부터 사용된 것일까? 1800년데 마하Ernst Mach, 우리가 음속을 표기할 때 사용되는 ‘마하’의 그 Mach이다 는 물질량이라는 정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려 했다. 마하는 우선 mAmB 라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덩어리body 를 가정하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한다고(인력이든 혹은 척력이든) 가정하였다. 그리고 뉴턴의 제2법칙에 의해 상호 반대되는 힘을 가하게 될 때 둘이 접하고 있는 직선상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영향을 가하게 되며, 둘의 질량비에 따른 가속도 비를 표시하였다.


위의 식에서 음수 부호는 두 물체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둘 중 하나의 질량을 단위 질량(해당 질량을 mB 라고 하자)인 1 kg에 해당한다고 하면 물체 A에 해당하는 가속도는 다음과 같게 된다.


마하는 이로서 두 개 물체의 가속도를 측정함으로서 물체의 질량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관점을 작용론적인 정의 operational definition of mass 라고도 한다.) 이러한 정의를 통하 마하는 실제 측정하기 어려운 관성에서부터 질량을 정의하는 어려움을 피하고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물체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러한 정의에서 순간적인 가속도라는 것은 실제 물리적으로 정확하게 측정 가능한 물리량이 아니고 순전히 수학적인 관점에서 이상적으로 가정된 측정이다. 따라서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측정의 관점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정의이며 지구상의 실험실에서 주변의 영향이 없이 어떻게 정확히 측정을 할지에 대한 고려 또한 되어 있지 않다.

그럼 kilogram이라는 질량의 단위는 어떻게 위와 같은 질량의 정의와 연결이 될 수 있었을까? 1873년 James Clark Maxwell이 쓴 ‘A Treaties on Electricity and Magnetism’ [5]을 보면 아직까지도 kilogram 이라는 질량 단위는 위와 같은 질량의 정의와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 James Clarke Maxwell이 저술한 A Treaties on Electricity and Magnetism의 표지와 본문. 우리가 익숙한 식이 없고 대부분이 기하학적인 방법을 통해 서술한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달리 Maxwell이 1800년대에 저술한 책에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공식이 보인다.

 

Maxwell의 책을 보면 질량의 단위로서 영국의 표준 질량 단위로는 당시 재무부 Exchequer Chamber 에 보관되어 있던 avoirdupois pound를 언급하며, 아울러 파운드의 7000분의 1 단위인 grain 또한 명기하고 있고 당시 프랑스에서 1 킬로그램에 기반을 한 그램 gram 또한 언급하고 있어 Maxwell 이 책을 쓴 당시까지만 해도 kilogram이라는 단위와 질량이라는 정의와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Maxwell의 책에서 킬로그램 뿐만 아니라 다른 질량 혹은 무게의 단위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물리학자들 또한 실제 측정 가능한 단위와 물리학의 정의를 어떻게 연결하고 수식으로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ilogram이라는 단위가 뉴턴의 중력과 처음으로 연관되는 것은 kilogram이라는 단위가 나오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인 1873년위의 Maxwell이 책을 쓴 해와 동일하지만 Maxwell이 2월에 책을 발간했으므로 그보다 나중에 발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Cornu와 Baille가 작성한 논문[6]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용한 식은
으로 여기서 gravitational constant 가 처음 등장위의 식에서 하며 이를 통해 kilogram이 뉴턴의 만유인력과 연결된다. 참고로 만유인력 상수를 f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는 1894년까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894년 Boys가 쓴 논문[7]에서 G의 형태로 바뀌어 사용되게 된다.( 하지만 만유인력 상수를 f 로 표기하는 것은 그 이후로도 상당기간 지속되어 Max Planck는 1928년에 발간한 논문에서도 만유인력 상수를 f 로 사용하고 있었다.[8]) 뉴턴이 Principia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언급한 이후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만유인력의 식이 정립되어 kilogram단위와 연결되기 까지는 약 20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참고로 미터와 킬로그램을 길이와 질량의 단위로 사용하기로 시작한 미터협약 metre convention 은 처음으로 중력상수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과 킬로그램이 연결된 1873년에서 2년이 지난 1875 년에 체결되었다.)

2. 질량 단위 정의의 역사

앞서 질량의 정의에서는 질량의 의미에 대해 학자들이 고민한 내용이었지만 이번에는 질량의 정의보다는 질량이라는 물리량을 측정함에 필요한 단위가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에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보통 kilogram이라는 단위를 무게의 단위로 자주 사용한다. (이는 일상 생활에서 질량이라는 말 보다는 무게라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다)질량 측정을 연구하는 연구자 입장에서는 kilogram이라는 질량의 기본단위가 무게의 단위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다소 억울함(?)이 있을 수 있지만 질량과 힘(무게 = 지구가 당기는 중력)을 공식적으로 구분하게 된 것 또한 1901년의 CGPM The General Conference on Weights and Measures 의 결정으로, 우리의 생각보다 늦게 결정된 일이라는 점에서 두 물리량의 분리가 일반인들에게 용이하지는 않을 거라는 위안을 가지기도 한다. 참고로 1901년의 CGPM에서는 힘의 단위가 질량, 길이, 시간에 의해 유도되는 물리량이라고 정의를 했으며, 1960년의 제 11차 CGPM에서는 newton을 힘에 대한 기본 단위로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 SI 도입하고, 1 newton은 1 킬로그램의 질량을 1 m/s2 으로 가속하는데 필요한 힘으로 정의하며, kg·m·s-2를 해당 단위의 표현식으로 정의했다.

1791년 3월 30일 프랑스왕 루이 16세는 칙령을 통해 새로운 길이의 단위는 자연적으로 변하지 않는 측정 단위에 기반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결국 새로운 미터는 북극에서 적도를 연결하는 자오선의 천만분의 1 길이로 정의되었고 이러한 자오선은 파리 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으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미터 단위와 함께, 킬로그램 단위kilogram 단위도 정의되었으며, 증류된 물이 녹는 점 온도에서 1 리터에 해당하는 단위로 정의하고 이를 1 그라브 grave 로 명명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1 킬로그램은 백금 재질의 원통형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kilogram of the archives, 혹은 the KA 라고 명명되었고 1799년 프랑스 국립 보관소에 전달되어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다. 그러나,1791년의 결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1795년 기준이 되는 물의 조건이 물의 녹는점에서 물이 대기압에서 가장 높은 밀도를 가지는 섭씨 4도로 변경되기도 하였다. 1799년 12월 공식적으로 KA가 인정받은 이후로 새로운 질량의 단위(당시에는 질량과 무게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관계로 ‘weight’ 즉 무게로 쓰였다.)인 kilogram은 KA의 질량 혹은 이와 동등한 질량이라고 정의되었다. 한편 이와 같은 정의에도 불구하고, KA에 관한 마지막 보고서에서는 kilogram질량 단위는 KA의 질량m(KA)로 표기 이 일 세제곱 센티미터의 물(대기압 및 섭씨 4도)의 질량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명기하여 KA가 분실 혹은 망실된 경우에도 이러한 관계를 이용하여 다시 복원될 수 있음을 명기하였다. 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kg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rho\)max (w)는 대기압에서 증류된 물의 최대 밀도가 된다.

하지만 18세기가 끝나기 전, 위의 킬로그램과 물의 관계를 통해 연결되던 kilogram의 정의는 물의 밀도와 상관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즉 단순히 kilogram of the archives의 질량이라고 단순화되어 정의된다. 이로서 kilogram 이라는 단위는 the KA의 질량으로 정의되게 되고 자연적으로 다른 물체의 질량은 이러한 the KA 의 질량과 비교를 통해서 결정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질량의 측정을 위해 질량 비교기가 주로 사용되게 되며, 질량의 측정에서 거의 유사한 두 인공물 artefact 질량의 비교는 질량 비교기 mass comparator 의 측정 정밀도를 능가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Fontin에 의해 제작된 최고 수준의 1kg 저울의 경우 약 2 mg의 측정 정밀도를 보유했다고 한다.

그림 3.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도 미터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그림으로 손꼽히는 (a)자유를 이끄는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년 Eugene DeLacroix작, 루브르 박물관 소장. (b)바스티유 감옥 습격과 드 로네이의 체포(Arrest of Launay), Jean Baptiste Lallemand 작, 프랑스혁명박물관소장. 미터법 제정을 위한 위원회의 대표적인 위원들 – (c) 수학자이자 군인인 Jean Charles de Borda, (d)이탈리아인이었으나 후에 프랑스로 귀화한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Joseph-Louis Lagrange, (e)천문학자와 수학자인 Pierre-Simon Laplace, (f)수학자이자 공학자인 Gaspard Monge. Lagrange와 Laplace는 공학과 물리학에서 반드시 들어봤을 Lagrangian과 Laplace equation의 바로 그 Lagrange와 Laplace가 맞다.

 

1870년대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국가들이 길이와 질량 표준을 제정하고 최신 기술을 이용하여 이들을 유지하기 위한 연구소를 세우게 되었으며, 1800년대 중반 국제적인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각 나라에서 사용하는 길이와 질량 단위를 통일시키고 측정의 정밀도를 높일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1875년 5월 20일 주 프랑스 주재 대사들로 이루어진 17개국 대표가 파리에서 미터 협약을 체결하였고 해당 협약이 국제적으로 공통된 단위를 사용하고 이 미터 협약 metre convention 이 국가간 비교를 시작하는 시발점이다. 미터협약에서 결의한 바와 같이 각 회원 국가가 사용할 미터 원기와 킬로그램 원기를 제작하며 국가 원기를 비교 검증할 수 있는 국제 원기를 제작하기로 하였고 프랑스 파리에 국제 도량형국 BIPM, Bureau International des Poids et Mesures, International Bureau of Weights and Measures 을 세워 국제 원기를 관리하고 개별 회원국가가 보유할 원기 혹은 측정 단위를 국제 원기와 비교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각 분야 전문가로 이루어진 국제 도량형 위원회 CIPM, Comite International des Poids et Measures, International Committee for Weights and Measures 를 두어 국제도량형국의 업무를 관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회원국 대표로 구성되는 국제도량형총회 CGPM, Conference Generale des Poids et Measures, General Conference on Weights and Measures 가 국제도량형위원회를 관리하는 계층구조를 만들어 국제도량형국, 국제도량형위원회, 국제도량형총회 등 미터 협약에서 만든 조직이 현재도 국제 단위계의 유지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미터협약을 체결한 5월 20일을 세계 측정의 날로 지정하여 그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

그럼 미터협약에서는 단순히 킬로그램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이를 비교하는 것을 결정한 것일까? 실제로는 해당 미터협약 전에 다음과 질량과 관련하여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기울어졌으며 당시 중요한 두 개의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1. 새로운 킬로그램은 세제곱 센티미터의 물에 의한 질량으로 정의되어야 하는가? 혹은 KA와 동일한 질량을 가진 인공물로 제작되는 것이 좋은가?

2. IPK Internation Prototype of Kilogram 의 경우 어떠한 재질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19세기까지 백금으로 제작된 KA의 질량은 1 세제곱 센티미터의 물과 106승 분의 300 정도 차이가 난다는 측정 결과가 보고되었으며 결국 1872년 IPK를 새로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이러한 IPK 조차도 측정 불확도 내에서 KA와 동일한 질량을 가지도록 재정의되었으며 이는 질량 단위의 연속성을 위한 조치였다. 만일 KA와 IPK 간의 질량 차이가 큰 경우 두 개의 질량 표준간 서로의 측정값이 연속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해당 문제를 고려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제 1875년 미터 협약에서 결의한 대로 미터와 킬로그램의 기준으로 사용할 인공물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순수한 백금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질량이 변한다는 사실과, 순수한 백금은 생각보다 변형이 크다는 사실이 알려져 새로운 원기를 백금 90%와 이리듐 10% 합금으로 제작하였으며, 지름과 높이가 모두 39 mm 인 원기둥 형태로 제작하였다. K1, K2, K3 총 3개의 원기를 당시 제작하였으며 새로 제작한 원기의 질량을 기록원 킬로그램 원기(1799년에 제작한 백금 원기)와 1880년에 파리 천문대 Paris observatory 에서 비교하였다. 측정 결과 기록원 킬로그램과 질량이 동일한 K3원기를 킬로그램의 기준으로 삼기로 하고 국제도량형국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1889년 열린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K3원기를 킬로그램의 기준으로 삼기로 하고 국제킬로그램 원기로 명명한 것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백금-이리듐 기반 킬로그램 원기의 시작이다. 즉 다음과 같이 질량이 정의되게 된다.

1880년 당시 기록원 킬로그램은 처음 제작된 지 이미 80여 년이 지나 질량이 변했으나 기록원 킬로그램과 질량이 같도록 국제킬로그램원기를 만들고 이 시점을 기준으로 섭씨 4도씨의 물 1리터의 질량이 1 킬로그램이라는 정의를 버리고 금속으로 만든 인공물을 킬로그램의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새로운 원칙을 정한 셈이다.

국제 킬로그램 원기를 만든 이후 각 나라에서 배포해서 국가별로 사용할 원기와 국제도량형국에서 국제킬로그램원기와 비교하는데 사용할 원기를 40개 추가로 만들었다. 이 중 30개가 1889년 1차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각 회원국에 배정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894년 갑오년에 40개 원기 중 하나인 39번 원기를 국가킬로그램원기로 도입하였다. 특이하게도 당시 우리나라는 미터 협약에 가입한 회원국은 아니었으며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보관되다가 1947년 해방 이후 다시 회수하였으며, 6.25 전쟁 등의 역사적인 사건을 겪기도 했고 지금은 충북 음성의 국가기술표준원 계량박물관에 미터 원기와 함께 전시중이다.

그림 4. (a) 가장 처음 백금으로 만들어진 미터 원기와 킬로그램 원기Kilogram of the Archives, Musée des Arts et Métiers 소장. (b) 프랑스 파리 근교 BIPM에 보관중이 IPK 원기(가운데)와 그 복제본 7 sisters들 (C) 한국의 킬로그램 원기들. 한국은 39번 이후 총 3개의 원기를 더 구매했으며 그 중 72번이 대한민국 표준 킬로그램 원기 역할을 하고 있다.

 

킬로그램원기의 경우 1880년 이후 지금까지 거의 동일한 공정을 이용하여 회원국에서 사용하는 원기와 국제도량형국에서 사용하는 원기를 제작하고 있으며, 국제 킬로그램원기는 6개의 공식 복제본official copies 과 함께 국제 도량형국 금고에 보관되어 있고 이들 총 7개를 일컬어 7 sisters 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위에서 언급한 39번, 72번(1989년 배정), 84번(2003년 배정), 111번(2017년 배정) 등 총 4개의 원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백금과 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원기는 1년에 대략 1 마이크로그램의 질량이 증가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불확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표준으로 지정된 72번 원기를 5년마다 국제도량형국에 직접 운반하여 국제 도량형국이 보유하고 있는 비교용 원기working standards 를 이용하여 교정을 받고 우리나라 질량단위가 국제 킬로그램 원기로부터 소급되도록 유지한다.

초기에는 국제미터원기를 금고에 함께 보관하였으나, 진공에서 빛의 속력을 상수로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미터를 재정의한 이후 금고에는 킬로그램 원기만을 보관한다. 그리고 관례적으로 매년 국제도량형국에서 열리는 국제도량형위원회를 마친 후 위원들이 국제킬로그램원기를 보관하고 있는 금고에 가서 원기가 이상 없이 보관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관례이다.

앞서 국제 통상을 위해 동일한 킬로그램을 사용하는지 비교를 한다고 언급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터협약에 가입한 회원국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원기를 주기적으로 상호 비교해야 한다. 첫 번째 검증 Periodic Verification 은 1899년에서 1911년 사이에 이루어졌으나 이 때는 국제 킬로그램원기를 기준으로 하는 대신 국제도량형국과 회원국이 보유한 원기끼리 서로 비교하였다. 두 번째 검증은 1939년 시작 후 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46년에 다시 시작되어 1953년에 마쳤다. 국제 비교가 진행된 해의 역사적인 배경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검증 모두 정치적인 이유(대한제국 및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로 참여하지 못했다. 세 번째 검증은 1988년에 시작되어 1992년에 마쳤으며 우리나라가 보유한 39번과 72번 원기는 이 검증에 참여하여 국제도량형국 공식 복제본과 비교하였고 해당 검증과정에서 세척 후 질량이 줄어드는 정도, 세척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량이 다시 증가하는 경향에 대한 데이터도 확보했다.

그림 5. 각국의 킬로그램 원기와 국제 질량 표준 원기 IPK 간의 질량 변화 추이. K21부터 K40의 원기에 대해 추적하였으며 추가적으로 IPK의 복제본인 K32와 K8(41)에 대해서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기들 간의 질량 차이가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9]

 

세 번째 검증은 국제킬로그램원기를 제작한지 약 110여 년 만에 이루어졌으며 세 번째 검증을 마쳤을 때 국제도량형국 원기의 질량 및 국가원기의 질량이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과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략 100년에 50 마이크로그램 커져 인공물을 이용한 킬로그램 정의가 불안정함을 알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키블저울과 실리콘 구를 이용한 질량 측정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므로 물리상수를 이용하여 킬로그램을 재정의하자는 제안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측정의 정밀도가 킬로그램 원기를 이용한 실현 정밀도보다 좋지 않았으므로 물리상수를 이용한 질량 재정의를 위해서는 측정 정밀도를 높이는 연구가 필요했다.

위의 그림에서는 국제도량형국 금고에 보관되어있는 공식복제본들과 각 국가들의 국가 원기 National Prototype 이 시간에 따라서 질량이 변하는 정도를 나타나있다. K1은 1870년대 중반에 국제킬로그램원기와 함께 제작한 3개 원기 중 하나이다. 7, 8(41), 32 3개는 1880년대에 제작한 40개 원기 중에서 공식복제본으로 배정된 것이다. 1889년 처음 측정한 결과에 비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제킬로그램원기IPK 의 질량과의 차이가 커짐을 알 수 있다.(1 kilogram은 IPK의 질량이라고 정의되었으므로, 실제 IPK 질량 또한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모든 질량은 IPK의 질량 변화는 0인 것을 가정하고 비교하게 된다. ) 43, 47번은 이후에 제작되어 1946년에 국제킬로그램원기와 처음 비교하였다. 공식복제본 6개는 국제킬로그램원기와 같은 금고에 있으며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국제킬로그램원기와 비슷한 질량변화가 예측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량차이가 커져서 국제킬로그램원기가 안정적인 기준이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결과는 새로운 질량 표준의 필요성을 더욱 더 강조하게 되었으며 당시 연구중인 키블저울과 실리콘 구를 통해, 절대적인 물리량을 기준으로 하는 질량 표준의 확립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된다.

참고문헌

[1] Digby Swift, Physics for GCSE (Basil Blackwell Ltd., Oxford, 1988), p. 8. Neville Warren, Excel HSC Physics (Pascal Press, Glebe NSW, 2001), p. 328.

[2] Raymond A. Serway and Robert J. Beichner, Physic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 (Saunders College Pub., Philadelphia, PA, 2000), p. 116. Paul A. Tipler, Physic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 (Worth Publishers, New York, 1991), p. 81. Hugh D. Young and Roger A. Freedman, University Physics (Addison-Wesley, Reading, MA, 1996), p. 101. Douglas C. Giancoli, Physic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 (Prentice Hall, Upper Saddle River, NJ, 2000), p. 82. David Halliday, Robert Resnick, and Jearl Walker, Fundamentals of Physics (Wiley, New York, 1997), p. 83. 

[3] Kepler에 대한 내용은 , “Inertia or opposition to motion is a characteristic of matter; it is stronger, the greater the quantity of matter in a given volume.” Max Jammer, Concepts of Mass in Classical and Modern Physics (Dover Publications Inc., Mineola, NY, 1997), p. 56. 로 알려져 있다. 

[4] Isaac Newton, The Principia translated by I. Bernard Cohen and Anne Whitma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99), p. 403 

[5] C. Maxwell, A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 Macmillan and Co., Oxford, UK, 1873 

[6] Cornu, A. and Baille, J.B. (1873) Comptes Rendus de l’Académie des Sciences Paris, 76, 954-955 

[7] Boys, C.V. (1894) The Newtonian Constant of Gravitation, Nature, 50, 571. 

[8] Planck, M. (1928) Einführung in die allgemeine Mechanik. Verlag von Hirtzel, Leipzig. 

[9] G. Girard(1994). The Third Periodic Verification of National Prototypes of the Kilogram(1988-1992), Metrologia. 31(4) : 317-336

조성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양자질량측정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