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브라운Patrick O. Brown은 스탠포드 대학교의 탁월한 생화학 교수였다. 그의 나이 50대 중반이던 2009년, 자신에게 주어진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 동안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 ‘환경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환경 문제의 핵심은 쇠고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육식 문화에 있다고 판단했고, 그에 대한 과학적 대응 방법으로 진짜 같은 가짜 쇠고기 만들기에 착안했다.
몇 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창업한 회사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는 2019년, 자체 생산한 가짜 고기를 햄버거 전문점 버거킹에 납품하는 계약을 맺을 정도로 성장했다. 임파서블 푸드가 생산하는 고기는 진짜 쇠고기가 아니다. 구운 쇠고기의 독특한 맛의 비결은 고기 속 피가 불에 탈 때 나는 맛이란 점에 착상한 뒤 피의 중요 성분인 힘heme을 추출할 수 있는 식물을 찾아 대량 배양했던 게 사업 성공의 핵심이었다. 한국에는 아직 팻 브라운의 가짜 쇠고기가 상륙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믿자면 그 맛과 식감이 진짜 햄버거 고기와 거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유전자 족보를 따져보자면 전혀 다른 쇠고기지만, 인간의 혀와 입으로 감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사실상 동일한 ‘진짜 같은 가짜’ 쇠고기가 나타난 것이다.
에드윈 홀Edwin Hall, 1855-1938은 1876년 개교한 존스 홉킨스 대학의 물리학과 대학원에 1877년 입학했는데,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인 1879년 말 그의 이름을 딴 홀 효과Hall effect를 발견했다.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 속에는 전자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입자가 있고, 이 입자는 다른 모든 입자처럼 힘을 주면 움직인다. 홀이 과학계에 등장하기 전, 이미 건전지를 금속 선에 연결하면 전자를 밀어주는 어떤 힘이 작용해서 전선을 따라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었다. 그 당시 물리학자들은 이 힘의 근원을 전기장electric field이라고 불렀다.
홀이 발견한 것은 전자를 움직이게 하는 제2의 힘이었다. 이번엔 자석이 만들어내는 자기장magnetic field이 힘의 근원이었다. 전기장은 전자를 직선으로 가속하고 자기장은 전자에게 원운동을 하게 만든다. 만약 전자에게 전기장과 자기장을 동시에 부여하면, 즉 건전지와 자석을 동시에 동원하면 전자는 직선 궤도와 원궤도를 합친 모양, 결국 야구에서 투수가 던진 커브공처럼 휘는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최초의 발견자 홀의 이름을 따서 홀 효과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이루어진 발견이었다.
그림2 홀 효과 / wikipedia
입자의 세계에도 팻 브라운의 가짜 고기 같은 존재가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의 기본 입자에 속하는 그런 입자가 아니라 고체 덩어리 속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진짜 같은 가짜’ 입자들을 말한다. 양자역학의 발견에 힘입어, 지난 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고체 덩어리의 작은 떨림을 이론적으로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떨림을 ‘양자화’시켜 마치 입자처럼 취급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냈다. 전자는 전하를 띠고 있기에 전기장을 가하면 직선 운동을, 자기장을 가하면 원운동을 하는 입자다.
포논은 원자의 떨림을 양자화한 대상이다. 원자는 똑같은 개수의 양성자와 전자가 뭉쳐서 만들어졌고, 양성자와 전자는 정확히 크기가 같지만 부호가 정반대인 전하를 갖고 있다. 원자가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보니 그 원자의 떨림인 포논 역시 전하를 갖고 있을 리 없다. 포논은 전기장을 걸어도 가속할 수 없고, 자기장을 걸어도 회전할 수 없어야 상식적으로 옳다. 이미 19세기에 발견 과정이 마무리된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 중 하나인 전자기 원리에 따르면 자기장이란 ‘건드림’에 대해 원운동이란 형태로 ‘응답’하는 입자는 오직 전하를 띤 입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물질과학의 발전으로 좀 더 정교한 물성의 측정과 신물질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이런 자연법칙의 정설에 어긋나는 현상이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선두 주자는 포논이었다. 자기장을 걸어 주니 포논이 홀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의 물질은 터비움Tb 원자, 가돌리늄Gd 원자, 산소 원자를 3:5:12로 조합한 Tb3Gd5O12란 절연체 물질이다. 마치 수표의 고유번호 같은 이름을 가진 이 물질이 실생활에서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주의 발생 과정과 특성을 몰라도 우리 실생활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Tb3Gd5O12란 소우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일상 생활은 평화롭게 잘 흘러갈 것이다. 그 대신 보화가 감춰진 밭에서 농사만 짓던 농부처럼 전자기학의 위대한 원리를 살짝 우회한 흥미진진한 현상을 평생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물성 물리학자들은 Tb3Gd5O12 이후로도 전하가 없지만 자기장에 반응할 수 있는 입자를 품은 물질을 하나씩 발견했고, 바야흐로 ‘전자 없는 전자기학’의 시대가 열렸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에는 고체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자유 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물질은 양 끝에 전극을 달아도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전극을 달아주는 대신 물질의 한쪽 끝을 다른 쪽 끝에 비해 살짝 뜨겁게 만들어주면 어떨까?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사각형 모양으로 물질 조각을 만들어 x-방향으로 온도 차이를 주면 x-방향으로 열이 흘러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물질에 강력한 자석을 갖다 댔더니 자석이 만드는 자기장 방향인 z-방향과 온도 차이를 준 x-방향에 모두 수직인 방향, 즉 y-방향으로 열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이 물질이 만약 금속이었다면, 전류를 전달하는 전자가 자기장으로 인해 휘는 힘을 받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런데 자유전자가 없는 Tb3Gd5O12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절연체에서 열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는 포논이다. 포논이 자기장으로부터 힘을 받아 휘기 시작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포논 홀 효과라고 부른다. 140여 년 전 홀이 발견했던 효과는 다섯 세대를 지나서 뜻밖의 모습으로 이렇게 재탄생했다.
사뭇 충격적인 발견이었지만 당시 학계는 이 현상에 썩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필자가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처음 소식을 접한 것은 2009년 10월 무렵 중국 상하이의 어느 학회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회 연사로 초청받은 일본의 나가오사Naoto Nagaosa 교수는 채 출판도 안 된 새로운 연구 결과를 짤막하게 소개했다. 마그논의 홀 효과magnon Hall effect에 대한 이론이었다. 이번엔 포논 대신 마그논이란 가짜 입자가 전하도 없는데 홀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지금도 그때 필자가 느꼈던 기분을 기억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마그논은 고체 중에서도 자석 부류의 고체 속에 사는 가짜 입자다. 마그논은 전자가 지닌 초소형 자석(스핀)의 떨림이다. 허공에 매달아 놓은 바늘에 바람을 불어주면 바늘 끝의 방향이 이리저리 흔들리듯, 전자의 스핀이란 바늘 역시 고체 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요동 때문에 이런저런 흔들림을 겪는다. 이런 흔들림을 ‘입자화’시킨 게 마그논이다. 마그논에게는 전하가 없다.
그렇지만 나가오사 교수의 새 이론에 따르면 마그논이란 가짜 입자가 사는 자석에 자기장을 걸어주면 마그논이 휘는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제시한 수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사뭇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필자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의 이론 논문이 출판된 2010년, 일본의 탁월한 실험 물리학자 도쿠라 교수 연구실에서는 그의 이론이 맞았음을 검증하는 실험 결과를 최고의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다. 전자 없는 전자기학의 위치는 한층 더 공고해졌다.
19세기 물리학을 대표하는 업적을 물리학자들이 투표로 결정한다면 ‘전자기 법칙 완성’이 압도적인 표를 얻을 것이다. 전자기 법칙의 주춧돌 중 하나가 바로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 중 오직 전하를 가진 입자만이 전기장, 자기장에 반응하고 운동한다”이다. 온 우주에 적용되는 헌법이라고 할 전자기 원리의 권위가 고체라고 해서 미치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전하가 없는 포논과 마그논은 자기장을 걸어주면 휘는 운동을 한다. 전자기학의 기본 원리가 깨진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고체 속에만 사는, 전하도 없는 가짜 입자인 포논과 마그논은 진짜 자기장과는 직접 교류하지 않는다. 이론 물리학자들이 그 이유를 잘 생각해 보니 고체 속에는 가짜 입자만 사는 게 아니었다. ‘가짜 자기장’도 살았다! 마치 진짜 전하가 진짜 자기장의 힘을 받아 원운동을 하듯 가짜 입자는 가짜 자기장과 교류하고 휘는 힘을 받는다. 가짜의 세계에도 진짜 세계와 매우 비슷한 원리가 존재한다. 19세기에 완성된 전자기학의 헌장에는 가짜 입자가 가짜 자기장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 고체 속 세계는 우주 공간을 시늉내는 일종의 가상 공간이다. 현실의 인간은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 없지만 매트릭스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고체 속에 존재하는 가짜 자기장의 정체는 지난 10여 년 간 차츰 명확해졌다. 사실 그 최초의 깨달음은 ‘진짜’ 입자인 전자가 느끼는 ‘가짜’ 자기장 효과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고체 덩이는 우리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물체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입자다. 미시적 세계의 거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파동 함수라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파동 함수는 입자의 거동을 일련의 복소수complex number로 표현한다. 입자가 거쳐 갈 수 있는 모든 위치마다 이 복소수 값을 하나씩 지정해주면 그 입자에 대한 양자역학적 묘사가 완성된다. 복소수는 실수와 허수가 한 쌍으로 모여 만들어진다. 가령 1이란 실수와 +i란 허수를 모으면 1+i란 복소수가 만들어진다. 고체 속에는 무척 많은 전자가 있다. 그중 어떤 전자는 A라는 파동 함수로, 다른 전자는 B라는 파동 함수로 기술된다.
일반적으로는 A라는 복소수 파동 함수의 값이 1+i라고 할 때 반드시 그와 쌍을 이루는 1-i라는 복소수 파동 함수를 따르는 전자가 또 하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를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1+i라는 파동 함수에 따라 거동하는 전자는 직선 운동 대신 왼쪽으로 휘는 운동을 하는 전자다. 1-i라는 파동 함수는 오른쪽으로 휘는 운동을 하는 전자다. 1+i와 1-i의 파동 함수가 공존한다는 것은 왼쪽으로 휘는 전자와 오른쪽으로 휘는 전자가 동일한 확률로 고체 속에 있다는 뜻이다. 보통의 금속에 전극을 매달았을 때 전류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도선 방향으로만 흐르는 이유를 미시적으로, 양자역학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이렇듯 파동 함수가 복소수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진짜 자기장을 걸어주면 전자의 파동 함수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1+i라는 파동 함수를 따르는 전자의 개수가 1-i 파동 함수를 따르는 전자보다 조금 많아진다. 이제 좌우의 균형은 깨어지고, 한쪽 방향으로 휘는 전자의 개수가 더 많아진다. 홀 효과를 양자역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양자역학이 태동하기 한참 전 에드윈 홀이 발견한 효과를 나중에 양자역학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니 이렇듯 파동 함수의 불균형이 그 원인이었다. 수학자들은 1+i와 1-i라는 두 복소수가 서로 켤레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외부 자기장이 없을 때 고체 속 전자의 파동 함수는 신발 한 켤레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가, 자기장이 걸리면 왼쪽 신발의 크기가 오른쪽 신발보다 살짝 커지는 그런 상황으로 바뀐다. 켤레의 대칭성이 깨질 때 홀 효과가 관측된다. 만약 외부 자기장 대신 다른 원인 때문에 켤레 대칭성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역시 홀 효과가 관측된다. 중요한 것은 켤레 대칭성의 파탄이지, 그 동력이 외부 자기장이건 다른 것이건 그다지 문제 될 필요가 없다. 21세기 초반 몇몇 영리한 이론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고체 물리학의 난제로 남아 있던 비정상 홀 효과anomalous Hall effect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했다.
비정상 홀 효과는 자석 물질이 보이는 홀 효과를 말한다. 외부에서 자기장을 걸지도 않았는데, 측정을 해보면 홀 효과가 관측된다. 이미 1950년대부터 잘 알려진 현상이었는데 깔끔한 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50년 이상 끌어온 난제였다. 21세기 이론 물리학자들의 중요한 깨달음은 꼭 외부 자기장이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정렬한 전자의 초소형 자석인 스핀이 켤레 대칭성 파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쥐만 잘 잡으면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를 가리지 않겠다’는 등소평의 일갈처럼, 전자 역시 매우 실용적인 사고를 하는 입자다. 자신의 운동을 결정하는 파동 함수에 켤레 대칭성 파탄을 줄 수만 있다면, 그 동력이 외부 자기장이건 잘 정렬한 스핀이건 상관하지 않고 홀 효과를 보여준다.
한 번 비밀의 방으로 통하는 열쇠를 찾은 이론 물리학자들은 열쇠를 이용해 열 수 있는 또 다른 비밀의 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두 번째, 세 번째 비밀의 방이 바로 포논의 홀 효과, 마그논의 홀 효과다. 포논과 마그논 역시 비록 진짜 입자는 아니지만 여전히 파동 함수라는 수학적 도구로 기술되는 어떤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파동 함수의 켤레 대칭성을 논할 수 있고, 대칭성이 깨지는 순간 전자의 홀 효과와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 외부 자기장 대신 이런 파동 함수의 켤레 대칭성 파탄을 유도하는 모든 원인을 뭉뚱그려 가짜 자기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진짜 자기장은 일종의 촉매 역할을 할 뿐이다. 잠자는 용을 깨우는 주문이 진짜 자기장이라면 잠에서 깨어난 용은 가짜 자기장이다. 자기장이라는 건드림은 가짜 자기장이라는 중간 매개체를 통해 가짜 입자들의 홀 효과라는 응답을 받아낸다.1
고체 속에만 사는 가짜 입자의 가짜 홀 효과는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포논 홀 효과와 마그논 홀 효과를 보인다고 검증된 물질을 다 꼽다 보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평생 팻 브라운의 가짜 고기만 먹어 온 사람들에게는 그 고기가 가짜라는 설교를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소의 살을 도려내서 으깬 쇠고기가 식물로부터 힘을 추출해서 만든 고기보다 더 고기답다는 증거가 있는가?” 적어도 고체라는 소우주 속에서는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면 쉽사리 전자가 진짜 자기장으로부터 받는 홀 효과가 포논이 가짜 자기장으로부터 느끼는 홀 효과보다 더 “홀 효과답다”는 판결이 나올 것 같지 않다. 가상 현실과 진짜 현실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지는 건 꼭 스필버그의 최근 명작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만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