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사에서 약 200만 년 전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된 것은 600만 년 전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새롭게 진화한 인류가 두발 걷기를 시작한 이후에 가장 큰 사건이다. 여기서 본격적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도 가끔 작은 원숭이들을 사냥하기 때문이며, 200만 년 이전의 인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및 아디피테쿠스Ardipithecus도 낮은 빈도로 사냥을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200만 년 전 초기 호모Homo들은 침팬지보다 더 큰 먹이동물을 사냥하였으며, 식이에서 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다. 칼로리 상의 이점으로 인해 호모는 초기 호미닌에 비해 키가 더 커질 수 있었고, 두뇌 또한 더 커질 수 있었다.
하지만 화석이나 유물에 기대어서 초기 호모가 어떤방식으로 사냥을 했는지, 사냥과 채집이 주요 생존방식인 사회의 구성방식은 어떠한지를 알아내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현대 수렵 채집사회를 주목하였다. 물론 현대 수렵 채집 사회가 1만 년 전 농업과 길들이기가 시작되기 전의 방식과 똑같이 살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현대의 수렵 채집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농업과 목축이 불가능한 사막지대, 열대지방, 극지방에만 존재하며, 순전히 수렵 채집 방식으로 살아가기보다 주변의 농업 사회와 상호교류를 하고 있거나 교류의 역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자들에게 현대 수렵 채집사회는 1만 년 전 인류사회를 볼 수 있는 창 중의 하나이다.
현대 수렵 채집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였다. 수렵 채집 사회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자 1966년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일군의 학자들이 남성의 사냥이 인류의 진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남성 사냥꾼 가설을 제시하였다.[1] 이들은 사냥으로 인해 도구 및 언어가 발달했으며, 높은 칼로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 이르자 현장 연구에 뛰어든 여성 인류학자들이 많아졌고, 이들 중 일부가 여성 채집자 가설로 맞섰다.[2] 이들은 여성의 주요 도구인 뒤지개digging stick이나 아이를 안고 다니는 포대는 고고학적 자료로 잘 남지 않으며, 언어 발달에는 사냥을 위한 소통보다 엄마와 아이 간의 소통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성공률이 높지 않아서 수급이 불확실한 고기보다 여성들이 채집으로 습득한 채소와 과일은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당시보다 비교문화적 연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가설을 검증할 수 있을 정도로 양적인 데이터베이스가 갖추어졌다. 아직도 논쟁이 지속되는 부분이 있지만, 중간 결론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두 가설 중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논쟁의 모든 측면을 다루기보다 두 개의 이슈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으로만 분업 하였나?
남성은 대체로 실패할 위험이 큰 상위의 자원에 집중하며, 여성은 하위의 자원이지만 변동성이 낮고 안정적인 자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3] 따라서 대체로는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을 전담하지만, 생태적 환경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자원의 분포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높은 에너지의 자원을 낮은 위험으로 얻을 수 있다면, 남성과 여성의 일이 겹치기도 한다. 여성이 사냥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파라과이의 아체Ache족, 일본의 아이누Ainu족, 필리핀의 아그타Agta족 등이 이러한 예외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그타 족 여성 중에서도 사냥하는 여성의 비율은 낮으며(9천 명 중에서 1백 명 미만), 수유나 임신 중에서는 거의 사냥하지 않고, 캠프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사냥하는 경향이 있다.[4]
한편 남성이 큰 동물big game에만 집중하지 않는 사회도 있다. 예를 들어 사냥에 실패했을 경우 해드자Hadza족 남성은 꿀을, !쿵Kung족 남성은 채집을 한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경향은 위도에 따라 사냥에 의존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적도에 가까울수록 사냥의 중요성이 떨어지며,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사냥의 중요성이 상승한다. 해드자 족과 !쿵 족의 사례가 적도 쪽 사례에 해당하며, 극지방에서 거주하는 이누이트 족은 거의 100%의 식량을 사냥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왜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을 할까?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전문화와 분업의 필요성 때문이다. 사냥은 많은 시간의 학습을 필요로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는 사냥 수확량의 최고 정점이 육체적 능력의 최고 정점보다 늦은 시기에 오는 현상이다. !쿵 족과 해드자 족을 비롯한 주요 수렵 채집사회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사냥 수확량의 최고 정점은 육체적 능력의 최고 정점인 20세에서 25세보다 늦은 30세에서 35세 사이에 온다. ([그림2] 참조)[5] 채집 수확량의 정점은 사냥보다 더 늦은데, 그 이유는 여성이 40대 초반까지 임신 및 육아와 채집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채집 수확량의 정점은 여성 신체적 능력의 정점보다 늦은 시기에 발생한다. 신체적 능력의 정점보다 수확량 정점이 늦게 발생하는 이유는 사냥감 및 식물의 특성에 따라 사냥법 및 채집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며, 그에 따른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사냥이 아이 돌보기와 병행하기가 어려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채집은 도중에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잠시 멈추었다가 재개할 수 있지만, 사냥감 추적은 중간에 멈추기가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대형 동물의 사냥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으며, 캠프를 며칠간 떠나야 할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분업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는 변인은 아이 돌보기가 어떻게 조직되는가이다. 대부분의 영장류에서 암컷 혼자서 양육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수컷의 입장에서는 짝을 찾아 나서는 것이 자신의 적합도에 이득이다. 이에 반해 인간은 신세계원숭이로 분류되는 마모셋marmoset, 타마린tamarin과 더불어 협동 양육자cooperative breeder로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친족 네트워크의 도움이 필요하다.[6] 따라서 아이 돌보기를 엄마가 전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음식 구하기foraging의 평등한 분업이 불가능할 것이다. 반면 아이를 대신 돌보아주는 사람이 많은 상황(예를 들어 모계 거주 사회이어서 아이를 돌보아줄 모계 친척들이 많은 경우나 아버지가 양육 투자에 많이 참여하는 경우)이라면 여성이 음식 구하기에 더 참여할 수 있다.[7] 필리핀의 아그타 족 여성도 양육 도우미의 여부에 따라 사냥 여부가 결정되었다.
남성의 사냥은 가족의 영양 공급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가?
어떤 수렵 채집사회를 가든지 가장 두드러진 두 개의 규범은 ‘누구랑 결혼할 수 있는가’와 ‘습득한 음식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이다. 고기와 야채 중에서 집단 구성원들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음식은 고기이며,1 고기 중에서도 작은 먹이동물보다 큰 먹이 동물일 때 더 많이 공유된다. 비록 인간사회처럼 자발적인 공유는 아니지만 침팬지 사회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관찰된다. 야채보다 고기가 더 많이 공유되는 이유는 습득에 성공했을 때 양이 훨씬 많고, [그림2]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다시피 25세에서 50세까지의 남성은 평균적으로 보더라도 자신이 소비하는 양의 두 배 이상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동물 사냥에 성공한 남성은 집단의 규범에 따라 일부를 떼어서 자신의 가족과 친족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 부분은 공평하게 집단 구성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발생한다. 사냥한 식량을 온전히 자신의 가족과 친족이 차지할 수 없는데 왜 남성들은 위험을 감수해가며 성공률이 낮은데도 큰 동물을 사냥할까? 실제로 일부 사냥꾼들은 작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조개, 야채, 과일 등을 채집하면 더 안정적인 먹이 공급이 가능할 때도 큰 동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냥꾼에게는 큰 동물 사냥의 두 가지 목적, 1) 가족에 대한 먹이 공급과 2) 사회적 지위 및 혼외정사가 있다.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두 목적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둘 중 한쪽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먼저 크리스틴 혹스Kristin Hawkes를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은 사냥의 목적이 사냥꾼의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혼외정사의 기회나 정치적 동맹자를 얻을 기회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8] 이들은 뛰어난 사냥꾼의 능력을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냥꾼이 잠재적인 짝이나 동맹자에게 보내는 신호를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라고 명명한다.
한편 이러한 과시 혹은 비싼 신호 가설에 대해 마이클 거번Michael Gurven과 킴 힐Kim Hill은 남성들이 채집이나 작은 동물에 집중할 때보다 큰 동물 사냥을 할 때 실제로 더 많은 칼로리를 얻으며, 고기에 함유된 지질lipid와 단백질은 식물로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4] 그뿐만 아니라 집단 구성원에게 공유된 고기는 다시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사냥꾼이 직접 사냥감을 도살하거나 나누어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친척과 이웃, 사냥 협력자들은 다른 집단 구성원들보다 더 많은 고기를 받았다.
남성들의 일부 사냥 행위가 가족에 대한 먹이 공급provisioning에 최적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남성들의 사냥을 과시를 위한 것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수렵채집민 여성들은 대개 남편이 사냥에서 성공하길 바라며, “훌륭한 사냥꾼”들 중에서 배우자를 찾는다. 츠마네Tsimane사냥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사냥 능력 및 고기 공유, 사회적 지위는 모두 자신의 아내를 통한 번식 성공도와는 양의 상관관계에 있지만, 혼외관계를 통한 번식성공도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체족 좋은 사냥꾼의 자식은 아버지로 인해 더 많은 고기를 얻지 못하는데도 생존율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체족 중에서 아버지가 죽거나 부모가 이혼할 경우 아이의 사망률은 상승했다.
한편 혼외정사가 도덕적 금기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물론 힘바Himba족 처럼 남녀 모두의 혼외정사에 대해 관대한 사회도 존재한다), 혼외정사가 드러나게 되면 남성은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심할 경우에는 이혼에 이르러 이미 있는 자식도 잃을 수 있다. 이 모두를 고려하면 적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 일찍 혼인하고, 채집 능력이 좋은 아내를 얻어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사냥꾼이 얻는 이득은 과시와 먹이 공급, 사회적 지위 모두이며, 위도 및 생태적 환경, 문화적 규범,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각 이득의 비중이 달라진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남성 사냥꾼 가설과 여성 채집자 가설 논쟁을 살펴보면 초기의 논쟁은 남성과 여성 인류학자들 간의 성 대결로 흘러간 부분이 없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연구하는 부족에 몰입하여 논의를 진행하다 보니 비교문화적인 시각을 갖추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구자들이 간과한 부분은 임신과 양육이 식이 획득, 언어 발달, 도구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련된 문제들이다. 이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획득하는 데 1980년대 이후 직접 현장 연구에 뛰어든 여성 인류학자들이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물론 일부 여성 인류학자들은 그 이전 일부 남성 인류학자들처럼 과장된 논의를 제시하기도 하였지만, 여성 인류학자들은 남성 인류학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였다. 이 논쟁뿐만 아니라 여성 연구자들이 논쟁에 뛰어들어서 논의의 지형을 바꾼 사례들이 뇌과학, 영장류학을 비롯한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존재한다. 이는 건강한 과학을 위해서는 과학 연구자의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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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kes K (1991) Showing off: Tests of an hypothesis about men's foraging goals. Ethology and Sociobiology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