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회성을 진단한다는 것

자폐증은 어떻게 진단되는 것일까? 또는 (비)사회성은 어떻게 평가되고 의료적 문제가 되는 것일까? 자폐증은 발달장애의 한 종류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서의 장애와 더불어 제한된 관심사와 반복적인 행동 양상을 특징적인 증상으로 갖는다. 자폐증의 주요 증상은 연령대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지만,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은 지속된다. 어릴 때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거나 이름을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고, 좀 더 커서는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거나 대화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면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언어나 인지 등의 발달이 지연되거나 왜곡되고, 결국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발달이 저하된다. 이처럼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서의 어려움이 자폐증의 중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자폐증은 흔히 ‘사회성’ 발달의 문제로 일컬어진다. 따라서 자폐증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의 (비)사회성의 정도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사회성은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자폐증의 진단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일반적인 진단의 장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단이란 의사가 환자가 나타내는 이상 상태를 판단하여 질환명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의사는 환자의 증세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환자에게 병의 증상이나 경과, 가족력 등을 묻기도 하고, 환자를 직접 관찰하거나 각종 검사 도구를 활용하기도 한다. 감기와 같은 비교적 가벼운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라면 의사는 환자로부터 증세를 듣고 청진 등의 간단한 검진에 기초하여 병명을 정하고 처방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암과 같은 질환이라면, 문진이나 단순한 관찰뿐 아니라 혈액검사나 유전자검사, 또는 각종 영상 기기를 활용한 검사가 필요해질 것이다. 현대 의학의 진단 과정에서 정상인 몸과 병리적 몸을 구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 즉 생체표지자biomarker는 점점 더 중요하게 참조되는데, 예컨대 특정 암과 연관된 유전자 변이나 암 조직으로 인해 생성되는 특정한 물질이 체내에 있음을 보여주는 종양표지자는 암을 확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자폐증과 같은 발달장애를 진단한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질병의 진단과는 구분되는 특징들이 있다. 첫째로, 자폐증을 ‘생물학적’ 차원에서 식별해주는 지표는 (아직) 없다. 유전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자폐증과 연관된 유전자나 신경화학 물질, 뇌 발달의 패턴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자폐증의 다양한 증상들과 연관된다고 추정되는 수백 개의 유전자가 밝혀졌다. 하지만 ‘자폐증 유전자’나 ‘자폐증을 지닌 사람의 뇌 영상’과 같이, 자폐증을 판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자폐증 진단은 표면적인 증상, 즉 행동 양상에 대한 관찰과 평가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며, 현재 자폐증은 주로 정신의학 전문가의 임상적 평가를 통해서 진단된다. 개인의 지능이나 사회성, 의사소통의 정도를 수치화하여 보여주는 검사 도구들이 개발되어 있지만 진단 과정에서 반드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1 이렇게 자폐증 진단은 경험 많은 전문가에 의한 임상적 평가에 크게 의존하며, 어떤 도구도 주의 깊은 임상적 평가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강조된다.[1]

자폐증 진단의 또 다른 특징은 자폐증이 감기나 암과 같은 질병이 아니라 ‘장애’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자폐증을 비롯한 발달장애나 여타 신체장애와 정신장애의 진단 과정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증상의 유무를 넘어 그로 인해 사회적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초래되고 있는지 여부이다. 진단 전문가는 개인에게서 관찰되는 징후나 증상이 평균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발달의 경로나 상태를 보이는지 확인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일탈로 인해 가정이나 학교, 직장 등의 사회적 상황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지, 즉 장애disability가 있는지를 주의 깊게 평가한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 자폐증 진단은 장애라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관계의 결과물인지를 보여준다. 자폐증 진단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데, 생물학적 지표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찰과 평가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양과 질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자폐증의 존재는 어떤 면에서는 언제나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데, 일상에서 지속되는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자폐증은 다시 감지되고 해석되고 다루어지면서 새로워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글에서는 자폐증 진단을 전후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따라가 보면서, 자폐증이 어떤 몸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존재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렇게 자폐증 진단의 네트워크를 그려보는 작업은 자폐증이 개인의 신체에 내재한 생물학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이고도 물질적인 관계들과 사건들에 의존하는 것임을 드러내 줄 것이다.

 

 

자폐증의 진단 도구와 이를 체화한 전문가

자폐증의 개념과 진단 기준이 없다면 자폐증으로 진단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폐증은 1940년대부터 하나의 독립된 질환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정신의학자였던 레오 캐너Leo Kanner가 1943년 ‘조기 유아 자폐증early infantile autism’이라는 질환의 사례들을 발표한 이래로 정신의학계에서는 그것을 둘러싼 논쟁과 연구가 지속되었다. 당시 주요 쟁점은 캐너의 사례가 다른 정신질환과 구분되는 새로운 질환인지 여부였고, 많은 연구자들이 자폐증의 핵심 증상은 무엇인지, 또 다른 질환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논쟁을 벌였다. 마침내 자폐증이 공식적인 진단명을 갖게 된 시점은 1980년으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의 제3판에 ‘전반적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었다. 이후 여러 판본을 거치며 자폐증을 지칭하는 명칭과 세부 진단 기준은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으며, 그에 맞춰 관련 진단 도구나 전문가 집단도 진화해왔다.[2]

 

 

현재 자폐증의 진단 기준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질병 분류 체계들에 실려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보건기구에서 편찬하는 국제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 ICD나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출판하는 DSM 등이 있다. 가장 최근에 개정된 DSM 제5판에 따르면, 자폐증의 공식적인 명칭은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로 다음과 같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일단 두 가지 증상 영역을 만족해야 하는데, 첫 번째는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으로, ‘사회·정서적 상호교환성의 결핍’, ‘사회적 상호작용에 사용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행동의 결핍’, ‘부모 이외의 사람과 발달 연령에 맞는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지 못함’이라는 세 가지 세부 항목에서 모두 결함이 관찰되어야 한다.

두 번째 증상 영역은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과 흥미’로, ‘상동화되고 반복적인 움직임, 사물의 사용 또는 말’, ‘같은 상태를 고집함,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대한 융통성 없는 집착, 또는 틀에 박힌 언어적·비언어적 행동’, ‘매우 제한적이고 고정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 강도나 집중의 대상이 비정상적’, ‘감각적인 자극에 대한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반응성 또는 환경의 감각적 측면에 대해 유별난 관심’ 등의 네 가지 세부 항목 중 두 가지 이상을 만족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증상은 어린 시절부터 나타나야 한다는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증상들이 사회적, 직업적, 또는 현재의 다른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장해를 발생시킨다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3] 이렇게 수십 개의 어구들로 명시화된 자폐증의 진단 기준은 현재 자폐증이라는 질환을 판별하는 잣대로 기능한다.

자폐증이라는 진단 범주가 실제로 진료실에서 자폐증 진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폐증 개념이나 진단 기준뿐 아니라 그것들을 매개로 자폐증을 감지할 수 있는 몸, 즉 자폐증을 볼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자폐증의 역사를 다루는 연구자들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1990년대를 기점으로 자폐증 진단이 급증하는 현상에 주목하는데, 이 시기를 거치며 자폐증 진단 기준이 개정되고 그에 맞춰 다양한 진단 기법이 생겨나고 관련 제도가 정비되었다는 점을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1980년 자폐증이 공식적인 진단 범주가 된 이래로 자폐증의 진단 기준은 여러 번 수정되었으며, 그와 함께 자폐증이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범주로 추가되는 등 자폐증 진단을 북돋는 교육 정책과 보험 제도가 마련되었다. 또한, 대중적으로 아동의 건강과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폐증은 진료실에서 더 자주 우려되고 적극적으로 진단되는 장애가 되었다.[4]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폐증 진단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의학적 범주나 진단 기준뿐 아니라 자폐증에 반응할 수 있는 민감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20세기 후반을 거치며 자폐증에 관한 각종 이론과 도구들, 제도적 기반하에, 자폐증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전문가들이 생겨난 것이다.2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자폐증 진단이 드물었는데, 이는 그때까지 우리 사회에 자폐증을 볼 수 있는 진단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당시 발표된 역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폐증 유병률은 0.092%로 추정되었다.[5] 당시에는 지금 자폐증으로 진단될 법한 사례들이 지적장애나 ADHD, 반응성 애착장애 등으로 진단되거나 불안이나 정서 관련 문제로 간주되었으며, 그 외에도 비디오증후군, 유사자폐, 경계성 자폐 등 공식적인 진단에는 포함되지 않는 진단명들이 끊이지 않고 회자되었다.[6] 이러한 현상은 당시 우리 사회에 자폐증을 볼 수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었음을 암시한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가 될 때까지 정신의학 연구나 치료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후 정신의학계에서 DSM이 정신질환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합의된 후에도 실제로 이에 맞춰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가는 소수에 불과했다.[7] 당시에도 자폐증의 개념이나 진단 기준, 관련 이론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러한 지식과 이론, 도구를 활용하여 진료실에 마주 앉은 사람의 행동을 자폐증의 증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진단 전문가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자폐증 진단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자폐증에 반응하는 법을 배운 몸, 즉 자폐증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전문가가 늘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자폐증을 볼 수 있는 ‘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현재 자폐증은 정신의학 분야의 전문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진단되는 장애로, 자폐증 진단의 전문성은 해당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훈련과 임상 경험, 연구 경험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또한, 소아과학, 발달심리학, 특수교육학 등 아동의 발달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분야에 걸친 교육과 훈련, 임상과 연구의 경험이 자폐증에 대한 감각을 함양해 줄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자폐증 연구자는 북미 지역의 자폐증 연구자들과의 협동 연구 가운데, 국제적으로 공인된 자폐증 진단 기법을 익히고 활용하게 된다. 또한, 이미 자폐증 진단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의사의 지도하에 임상 경험을 쌓으며 자폐증의 진단 기준과 도구를 활용하는 방식을 배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폐증 진단에 있어서 ‘초보’였던 의료 전문가들은 자폐증의 진단 기준과 각종 도구들, 관련 지식과 이론들, 자폐증을 다루는 학회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그리고 임상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가운데, 자폐증에 민감한 진단 전문가로 거듭난다.

이렇게 보면 진단 전문가가 자폐증을 본다는 것은 전문가 개인의 직관이나 안목이 발휘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이질적 요소들의 연합체가 작동하는 과정이다. 자폐증을 볼 수 있는 ‘눈’은 진단 전문가 개인의 신체 일부라기보다는, 진단 전문가의 몸에 연결된 지식과 도구, 학회와 연구자들, 임상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의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3 이러한 연합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자폐증은 진단될 수 없다.

 

 

진료실에서의 사건들: 의사-아동-보호자의 만남

자폐증을 볼 수 있는 ‘눈’이 작동하는 진료실은 각종 지식과 도구, 그리고 사람들의 말과 몸짓이 교차하며 다채로운 관계들이 맺어지는 현장이다. 진단은 언제나 의사와 환자의 만남을 필요로 하는데, 자폐증 진단에서는 이러한 만남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자폐증 진단을 위해 처음 진료실을 방문하는 시기는 시대마다, 사회마다, 개인마다 달라지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대체로 초기 아동기에 주로 주양육자인 부모와 함께 처음 진단 전문가를 만나게 된다. 진료실에서 진단 전문가, 아동, 그리고 보호자 사이에 다양한 관계들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아동과 보호자는 자폐증을 감지하는 ‘눈’과 (일시적) 연합을 이루고, 그 결과로서 자폐증 진단이 도출된다.

진료실에서는 진단 전문가의 주도하에 아동의 ‘(비)사회성’을 가시화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정신의학에서 자폐증은 뇌의 장애disorder이자 사회적 경험으로서의 장애disability인데, 전자는 뇌 발달 경로가 일반적이지 않고 일탈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그로 인해 실제로 사회 생활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료실에서 진단 전문가는 발달 규범에서의 일탈(로 인해 짐작할 수 있는 뇌의 장애)뿐 아니라 그로 인해 실제로 사회적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폐증 진단 전문가는 크게 두 가지 실행을 주도한다.

첫째는 진단 전문가가 아동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진단 전문가와 아동 사이의 (비)사회적 관계가 일시적으로 맺어지는 사건으로, 일종의 ‘사회성 실험’이 행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단 전문가는 아동에게 사회성 발달에서의 결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아이에게 질문을 하거나 관심을 끌거나 과제를 주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꾸려 아동의 ‘사회적’ 반응을 유도한다. 이때 진단 전문가는 단순히 사회성 실험의 관찰자일 뿐만 아니라 실험의 참여자이기도 하다. 진단 전문가는 아동과 자신 사이의 물리적 거리, 아동에게 주어지는 과제의 수준, 아동의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 낯선 어른으로서 자신이 내보이는 몸짓과 태도 등을 세심하게 조율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실험을 수행한다. 진단 전문가는 이러한 실험적 상황 속에서 자신과 아동 사이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을 평가하고, 이를 일반적으로 발달하는 아동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반응의 정도와 비교한다. 이렇게 진단 전문가와 아동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회적인 (비)사회적 관계의 양태가 아동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데이터로 산출된다.

다음으로, 진단 전문가는 보호자로부터 진료실 현장에서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아동의 과거와 현재 모습에 대해 묻고 듣는다. 진단 전문가가 수집하는 정보에는 아동이 태어나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발달 과정, 발달 초기에 나타난 이상 양상, 질병을 앓거나 특정한 치료나 약물을 처치한 이력, 발달 수준에 대한 이전의 평가 내용, 과거 및 현재의 치료 이력 등이 포함된다. 이 중에서도 아동의 초기 발달 과정에 대한 정보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이는 아동의 발달 양상이 전형적인 발달 규범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추측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된다. 이러한 면담의 과정은 아동에 대한 보호자의 관찰과 보고 방식이 ‘훈련’되는 과정이기도 한데, 진단 전문가는 보호자가 자녀에 대해 ‘적절하게’ 보고할 수 있도록 질문을 고르고 대화의 방향을 유도하고 때로는 자폐증에 대해 교육한다. 즉, 진료실에서의 면담 시간은 보호자가 자폐증을 볼 수 있는 ‘눈’의 기준에 맞춰 자녀의 행동을 관찰하는 연습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진료실에서의 사건들을 통해서 모호하고 일상적인 문제들은 아동 개인에게 내재된 자폐증이라는 의학적 실체로 구성된다. 진료실을 방문하기 전에 아동의 ‘문제’는 다양한 해석과 감정과 연결된 채 존재한다. 부모나 교사는 어린 아동과의 일상 속에서 부적절한 상황들을 경험하는데, 예컨대 눈맞춤이나 호명반응의 결핍, 또래 아동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 의사소통의 미숙, 심한 고집이나 떼 등을 겪으며 아동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은 다른 발달장애에 비해 문제를 처음 인식하는 시점과 전문가를 찾는 시점 사이의 간극이 큰 편인데, 사회적 반응이 부족한 것이 발달 문제라기보다는 아이의 기질이나 내성적 성격 탓으로 여겨지거나 자라면서 자연히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9] 이러한 경향은 한편으로는 자폐증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녀의 발달에 대한 기대와 희망, 장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 등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아동의 문제는 그에 대한 여러 해석과 감정과 얽힌 채 다소 모호한 상태로 존재한다.

진단이라는 실행은 그러한 얽힘을 끊어내는 과정으로, 진료실에서의 사건들을 통해 아동의 ‘(비)사회성’은 가시화되고 자폐증은 자명한 의학적 실체로 구성된다. 진료실에서 진단 전문가와 아동, 보호자는 정신의학과 발달심리학의 이론과 기준을 잣대로 이러저러한 관계들을 맺고, 이러한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현상은 개별 아동의 사회적 능력을 보여주는 데이터로 변환된다. 이러한 데이터를 근거로 진단된 자폐증은 일상적 관계들에 분산된 모호한 문제가 아니라 개별 아동에게 내재하는 의학적 실체이다. 자폐증 진단 전문가에게 자폐증은 특정한 증상들의 묶음일 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유전적 소인과 뇌 발달의 경로를 암시하는 이름이으로, 일단 누군가가 자폐증으로 진단되었다면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설사 아동이 커 가면서 어떤 증상들이 없어진다고 해도, 아동의 생물학적 차이, 즉 유전적 소인이나 그로 인한 뇌 발달상의 일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자폐증은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료실에서 자폐증은 개별 아동의 몸에 위치하는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성 발달의 문제로 구성된다.

 

 

진료실 밖의 자폐증: 새로운 관계들에 의존하는 자폐증‘들’

진료실에서 만들어진 자폐증이라는 진단명과 그것이 지칭하는 의학적 실체가 진료실 밖에서도 반드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진단 이후에도 아동의 ‘사회성’은 계속해서 새로 감지되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폐증이라는 진단 결과는 이후 계속해서 중요한 효력을 지니는 묵직한 사실이지만, 진료실 밖에서 자폐증은 각종 치료와 훈련, 양육의 순간들 가운데 그에 반응하는 다른 몸들과 사건들에 의존한 채 다양한 자폐증‘들’로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이라는 진단 결과는 자주 의심되고 재해석되고 어떤 경우에는 폐기되기도 한다. 진단 결과가 가장 혹독하게 재평가되는 경우는 여러 의사들로부터 받은 진단명이 일치하지 않을 때이다. 최근으로 올수록 우리나라의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폐증을 판별하는 실질적인 기준이 점점 유사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분과에 따라, 전문가 개인에 따라 소견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정신과 의사가 자폐증이라고 진단한 아이에 대해 소아과 의사는 자폐증이 아니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보호자는 어느 전문가를 얼만큼 믿어야 할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되는데, 주로 진단을 내린 전문가가 소아정신의학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갖는지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진단 결과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며, 한 전문가의 진단 결과는 다른 해석들과 비교되고 평가된다.

한편, 진단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 아닌, 진단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의견 차이로 인해 진단 결과가 재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아이와 일상을 함께 하는 보호자는 시시때때로 아동의 ‘사회성’을 다시 감지하게 된다. 아동이 진료실에서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이전보다 타인과 더 잘 상호작용 하는 모습을 보일 때, 보호자는 진료실에서 이루어진 ‘사회성 실험’의 결과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특히, 주로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전문가의 관찰과 면담의 과정은, 자폐증 진단 전문가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진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과정이라고 간주되지만, 어떤 보호자에게는 변화무쌍한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부적절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진단 전문가와 달리, 보호자나 그 외 가족 구성원, 치료사, 주변의 지인 등은 아동을 더 자주 만나며 상황별로 달라지는 아이를 계속해서 관찰하게 된다. 이 때문에 어떤 보호자들은 진단 전문가보다는 아이를 자주 만나는 ‘비전문가’가 아이의 상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여긴다. 물론 이러한 판단에 의존하여 자폐증이라는 진단 결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진단 전문가의 임상적 판단과, 치료사나 부모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내리는 일상적 판단 사이의 저울질이 없어지기란 쉽지 않다.

이에 더해, 진료실 너머에서 자폐증이라는 진단 결과에는 다양한 해석과 감정이 연합된다. 우리 사회에서 보호자들은 자녀가 자폐증 진단을 받긴 했지만 ‘경계에 있다’, ‘애매하다’, ‘전형적이지 않다’ 등의 표현을 덧붙이는 경향이 있다. 보호자들은 자녀에게서 일반적인 자폐증 사례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특성을 포착하는데, 예컨대 자녀가 중증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개선되는 속도가 예외적으로 빠르다거나 사람에게 보이는 관심이 크다는 점 등을 발견한다. 이렇게 자폐증으로 묶이는 집단의 특성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아동의 모습은 진단 결과를 재해석하게 만드는 증거가 된다. 또한, 이러한 재해석의 과정은 고정된 의료적 실체로서의 자폐증에 대한 거부와 불안, 그리고 자녀가 언젠가 자폐증이라는 확고한 진단에서 벗어나거나 현재보다 덜 심각한 상태로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더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보호자와 아동의 일상적 관계 속에서 아동은 자폐증이라는 진단 범주를 벗어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처럼 진료실 밖에서 자폐증이라는 진단 결과가 재구성되는 과정은 표면적으로는 자폐증이라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자폐증에 무언가를 더하고 계속해서 다루면서 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이다. 진단 결과를 의심하고 진단명을 폐기하거나 약화시키는 실천은 아동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동의 문제를 ‘관리 가능한 문제’로 만드는 전략일 수 있다. 또한, 자폐증 진단에 전제되어 있는 선천적이며 완치할 수 없는 장애의 개념으로 인해 발생하는 절망과 불안 등의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처럼 진단 이후에 자폐증은 진료실에서와는 다른 몸들과 사건들에 의존한 채 다시 감지되고 명명되고 돌보아지는 것이다.

 

 

자폐증을 (잘) 돌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자폐증 진단은 진료실 안과 밖에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이루는 연합체에 의존한다. 자폐증 진단이 이루어지려면 (비)사회성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러한 진단 기준에 기초하여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을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진단 전문가가 필요하다. 또한, 실제로 진단이 이루어지려면 진료실을 방문하는 아동과 보호자가 필요하고, 아동의 (비)사회성이 출현하기까지 진료실에서 갖가지 사건들이 일어나야만 한다. 이에 더해서, 자폐증이라는 진단 결과와 그것이 지칭하는 상태는 진료실 밖에서 그것을 새로 감지하고 평가하는 실천들 속에서 재구성되고, 그럼으로써 더 적극적으로 다루어진다. 요컨대, 자폐증은 그것에 반응하는 인공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들의 연합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이 증가하는 현상은 바로 그러한 자폐증 진단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는 자폐증과 같은 장애를 돌본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폐증을 돌본다는 것은 특정한 증상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그와 연루된 모든 지식과 도구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것까지 포함한다.4 자폐증에 대한 좋은 돌봄은 단지 자폐증 진단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나 ‘완벽한’ 진단 전문성을 지닌 의사, 또는 그러한 진단 결과를 ‘제대로’ 수용하는 보호자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장애를 돌본다는 것은 완전히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신체와 정신, 그리고 그와 연관된 지식과 기술,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개선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11]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을 더 잘 돌보는 방식은 그때 그때 달리 나타나는 (비)사회성의 문제와 그에 대한 지식과 해석들, 그리고 그에 연루된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 책임 사이의 모순과 긴장을 계속해서 조율해나가는 가운데 찾아질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장하원(2021), “자폐증 진단의 동역학: ‘사회성’에 반응하는 몸들의 출현”, 과학기술학연구, 제21권 제2호, 203~230을 재구성한 것이다.

참고문헌

  1. 김붕년, 김준원, 권미경, 윤선아, 강태웅, 한일웅, (2017), 『(발달단계별, 특성별로 접근한) 자폐부모 교육』, 학지사.
  2. 자폐증의 진단 기준과 관련 제도가 변화하는 과정은 특히 다음의 책들에 잘 정리되어 있다. Grinker, R.R. (2007), Unstrange minds: remapping the world of autism, Basic Books(노지양 역(2008), 『낯설지 않은 아이들』, 애플트리태일즈); Silberman, S. (2015,. Neurotribes: The legacy of autism and the future of neurodiversity, Penguin(강병철 역(2018), 『뉴로트라이브: 자폐증의 잃어버린 역사와 신경다양성의 미래』, 알마.
  3. APA. (2013). DSM-5 :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홍강의. (2014). 『소아정신의학』. 서울. 학지사.
  4. Eyal, G. (2010), The autism matrix : The social origins of the autism epidemic, Cambridge, UK, Polity; Grinker, R.R. (2007), Unstrange minds: Remapping the world of autism, New York, Basic Books; Nadesan, M. H. (2005), Constructing Autism: Unravelling the 'truth' and understanding the social, Psychology Press; Silverman, C. (2012), Understanding Autism: Parents, Doctors, and the History of a Disord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5. 홍강의, 이상복, 정보인, 김봉성, 안윤옥(1999), 「한 중소도시에서 자폐장애의 유병율 조사」,『자폐성장애연구』, 1, 1-25.
  6. 윤현숙. (2006). 「자폐아 조기판별을 위한 한국부모의 인식시기」.『자폐성장애연구』, 6, 1-15.
  7. Grinker, R.R., Cho, K. (2013), "Border children: Interpreting autism spectrum disorder in South Korea", Ethos, 41(1), 46-74.
  8. Latour, B. (2004). “How to talk about the body? The normative dimension of science studies”, Body & Society, 10(2-3), 205-229.
  9. 이소현, 이수정, 윤선아(2013), 「자폐 범주성 장애의 조기진단 및 교육 연계를 위한 지원 체계 수립 요구: 부모의 경험과 인식을 중심으로」,『자폐성장애연구』, 13, 167-199; 김효진(2010),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부모들이 발견하는 발달학적 이상』,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박해룡(2014), 『특수교육 실태조사』, 국립특수교육원; 차혜경(2008), 『발달장애아동 어머니의 양육경험: 끝없는 긴장의 재구성』,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0. Mol, A. (2002), The body multiple,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Mol, A. (2008), The logic of care: Health and the problem of patient choice,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1. 이러한 논의는 몸의 문제를 돌보는 의료적, 일상적 실천에 대한 다음의 사례 연구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Winance, M. (2010). "Care and disability. Practices of experimenting, tinkering with, and arranging people and technical aids". Care in practice. On tinkering in clinics, homes and farms, 93-117; Leem, S.Y. (2016), "The anxious production of beauty: Unruly bodies, surgical anxiety and invisible care", Social studies of science, 46(1), 34-55.
장하원
서울대학교 BK21 4단계 대학원혁신사업단, BK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