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물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와 원자보다 작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물리 현상은 양자역학을 통해서 정밀하게 기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원자, 분자, 소립자 세계의 에너지와 운동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모든 화학의 근본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이렇게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 양자역학은 20세기 초반 이론의 정립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단언컨대 지난 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과학 분야로 자리매김하였다. 양자역학은 이제 기초 학문을 넘어서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 양자정보통신quantum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양자 센싱quantum sensing 등 다양한 양자 기술quantum technology로 진화 중이다.


한편, 생명과학life science 분야는 지난 반세기 동안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냈다. 1953년 미국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영국의 물리학자 프란시스 크릭 Francis Crick은, 우리에게 DNA로 잘 알려져 있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물질인 데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의 구조가 이중나선형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후, 유전자 재조합기술에 기초한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 생명현상을 분자단위에서 이해하는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 조립하듯 생명체를 설계하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생명현상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시스템생물학system biology, 생명공학기술biotechnology과 정보기술의 만남인 정보생물학bioinformatics, 그리고 최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활용한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분야까지 생명과학의 성과는 우리가 생명체를 이해하는 수준을 전례 없이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뿐만 아니라, 생명과학의 다양한 연구 성과들은 생명공학기술과 접목되어 각종 질병의 치료제 개발, 의료 및 보건 분야 등 이미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양자역학과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이론과 모델은 대부분 양자역학이 아닌 고전물리학classical physics을 바탕으로 기술되어 왔다. 생물학 속 양자역학의 가능성은 일반적으로 연구 대상이 아닌 호기심이나 추측의 대상으로 다루어져 왔으며, 종종 공상 과학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단순화의 배경에는, 비록 생명체 또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생명이 유지되는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는 생체분자biomolecule 사이의 무작위 운동으로 인해 양자역학적 효과가quantum mechanical effects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근 들어서 양자역학의 주요 현상들이 생물학적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1-3] 양자역학의 주요 현상으로는 입자가 관측되기 전까지 둘 이상의 양자 상태로 동시에 그리고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자신의 에너지보다 높은 에너지 장벽을 확률적으로 이동하는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ling, 그리고 두 물질이 떨어진 거리와 무관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어 물리적인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등이 있다. 양자생물학quantum biology은 이렇게 생명체에서 구현 가능한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론적/실험적인 방법을 통해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생물학적인 의미에 대해서 탐구하는 분야이다. 양자역학과 생물학의 융합으로 탄생한 양자생물학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의 다제적 접근multidisciplinary approach 방법이 필요한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난해한 연구 분야이다.

양자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영역으로는 광합성 분야를 들 수 있다. 광합성은 식물 또는 생명체가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과정으로, 이산화탄소와 빛 에너지를 활용하여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매우 중요한 생화학 과정이다. 광합성의 초기 단계에서는 생물 시스템의 엽록소chlorophyll에서 포획된 빛 에너지가 광합성 반응중심Photosynthetic reaction center으로 전달되는데, 이때 에너지 전달 과정은 매우 높은 효율(95% 이상)로 구현된다. 엽록소부터 광합성 반응중심까지 에너지가 손실되지 않고 이렇게 높은 효율로 전달되는 에너지 전환 과정은 고전적인 물리학의 틀 안에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이러한 에너지 전달 과정에서 양자역학적인 현상, 다시 말하자면 엽록소에서 포획된 빛의 에너지가 양자 중첩 효과를 활용하여 광합성 반응중심으로 빠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론적/실험적으로 검증되고 있다.[4]

 

광합성 분야 이외에도 효소 촉매작용enzyme catalysis에서의 양자 터널링 효과, 동물의 방향감지 과정에서의 자기감각magnetoreception의 양자 얽힘 효과 등이 양자생물학의 범주 안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생명체의 스핀 의존 반응spin-dependent reaction의 자기장 효과magnetic field effect, DNA 변이 mutation 과정에서의 양자 터널링 효과, 색소 단백질chromoprotein 사이에서의 양자 결맞음 에너지 전달quantum-coherent energy transfer 효과, 그리고 아직은 추측의 단계이지만 양자역학을 활용하여 뇌의 기능과 의식consciousness을 설명하려는 시도까지 양자역학과 생명과학의 경계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3]

보통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실험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절대온도 0도에 가까운 극저온의 매우 안정적으로 제어된 실험 환경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양자 상태는 주변 환경과 빠르게 상호작용하여 소위 양자 결어긋남quantum decoherence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통해서 양자역학적인 특성을 쉽게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 물리학에서는 주변 온도가 상온에 가까워지면 양자 결어긋남 현상은 불과 몇 펨토초(10-15s, 1000조분의 1초) 만에 일어난다고 예측하고 있다.[5]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유지되는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양자 중첩, 양자 터널링, 양자 얽힘과 같은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관측된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1-4]

이제는 실험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이론 물리학에서 생명체를 다룰 때 사용한 근사approximation 예측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초록형광단백질Green Fluoresence Proein에서는 양자 결맞음 시간이 1피코초(10-12s, 1조분의 1초)까지 유지가 된다는 실험 결과가 보고되었다.[6] 1피코초는 여전히 매우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예측하는 양자 결어긋남의 시간보다 실제로는 최소 100배 이상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이렇게 정밀하고 고도화된 실험 장비를 통해서 생명 시스템에서 그리고 생물학적인 환경에서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구현된다는 실험적인 증거는 축적되고 있다.[3] 하지만 아직 생명체에서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구현되는 기본 원리나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은 양자생물학에서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겨져 있다.

양자생물학은 최근에 생긴 최신 융합 분야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자생물학의 역사는 20세기 초반 양자역학이 태동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물리학의 근본 원리이며 모든 화학의 기반을 제공하는 양자역학을 생물학에 적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수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자생물학은 실험적인 접근 방법의 부재로 오래 동안 추측에 근거한 이론물리 연구에 머물러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물리학자들이 양자생물학의 가능성에 대해서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보어의 양자생물학에 대한 비관론은 양자생물학의 이론적인 기초를 세운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마치 양자역학을 부정한 아인슈타인이 당대의 물리학자들과 논쟁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양자역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한 것과 비교할 만하다.

양자생물학은 21세기 들어 혁신적인 측정 기술의 발전과 분자생물학의 진보 덕분에 실험과 이론 모든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양자생물학에 대한 젊은 연구자와 연구비 지원 기관의 관심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로서, 과학계의 다보스포럼이라고 불리는 고든 리서치 컨퍼런스Gordon Research Conference가 양자생물학을 주제로 2023년 3월 19일부터 24일까지 미국 텍사스주의 갤버스턴에서 개최된다. 필자가 위원장을 맡은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생물학에서 양자 효과를 연구하는 최신 기술 Emerging Technologies for Investigating Quantum Effects in Biology’을 주제로 5일 동안 양자생물학 최신 연구 동향 및 관련 논의가 깊이 있게 이루어질 예정이다.

지난 35억 년의 진화를 거쳐서 최적화된 생명체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양자생물학은 21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연구 분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태동과 함께 시작된 양자생물학은 현재 측정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더욱이 생물학에 적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양자기술quantum technology의 개발을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양자생물학 현상에 대해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양자생물학은 아직 기초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향후 진단 및 치료에 적용 가능한 의료 기술로의 발전 가능성과 기술 혁신을 통한 에너지 및 환경 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양자생물학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참고문헌

  1. Ball, Philip. "Physics of life: The dawn of quantum biology." Nature 474.7351 (2011): 272-275.
  2. Jim Al-Khalili and Johnjoe McFadden, Life on the Edge: The Coming of Age of Quantum Biology, Crown Publishing Group (NY), 2016; 변역서 “생명, 경계에 서다: 양자생물학의 시대가 온다” 김정은 역. 글항아리사이언스, 2017.
  3. Kim, Youngchan, et al. "Quantum biology: An update and perspective." Quantum Reports 3.1 (2021): 80-126.
  4. Chenu, Aurélia, and Gregory D. Scholes. "Coherence in energy transfer and photosynthesis." Annu. Rev. Phys. Chem 66.1 (2015): 69-96.
  5. Gilmore, Joel, and Ross H. McKenzie. "Quantum dynamics of electronic excitations in biomolecular chromophores: role of the protein environment and solvent." The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A 112.11 (2008): 2162-2176.
  6. Cinelli, Riccardo AG, et al. "Coherent dynamics of photoexcited green fluorescent proteins." Physical review letters 86.15 (2001): 3439.
  7.  
김영찬
영국 서리 대학교University of Surrey 미생물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