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 혹은 존재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존재 이유가 반드시 인간적일 수는 없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으로 알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다. 그런데도, 존재와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이어져 왔다. 개념과 방식에 있어서 변화와 개정을 감수하면서. 더욱 더 기존의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고 진리에 근접하기 위해서. 이런 의미에 있어서, 20세기 초에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해서 도달한 양자이론 이야말로, 인간 지성의 놀라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양자이론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물질세계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양자이론이 궁극적인 법칙으로 영원히 남을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난 백여 년 동안 검증된 사실, 즉 현 양자역학적인 법칙이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정확히 기술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모든 존재하는 물질은 양자 현상에 근거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양자 현상이라고 얘기할 때는 이런 원론적이고 보편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고전역학적인 개념과 상치되는 양자 현상이 표면화되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 이중 대표적인 현상들이 중첩(superposition)과 비국소성(nonlocality)일 것이다.
광합성이 없으면 지구의 생태계, 따라서 인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만큼 광합성이야말로 지구에 번성하는 생명 현상의 근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합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기록은 16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기본적인 메커니즘(mechanism), 즉 빛, 이산화탄소, 그리고 물이 만나서 산소와 식물의 연료가 되는 유기물질이 형성된다는 사실이 확립된 건 18세기 말이다.2 그리고 이런 발전에는 연금술의 망령을 벗어나서 진정한 과학으로 도약한 근대 화학의 발전이 필요했다.
광합성은 단순한 의미의 `광 합성'(photo-synthesis)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에너지 문제나 지구 온난화 문제는 벌써 해결되고 남았을 것이다. 광합성에서 화학적 합성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빛에서 흡수된 에너지들이 특정 영역에 모아져야 하는데, 이는 짧은 나노초(nanosecond)의 시간대 안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특별한 과정들이다.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양자역학적인 중첩과 비국소성을 받아들여야만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러한 현상들이 가능하게 되는 적절한 분자들의 특정한 구조, 배열, 에너지들을 박테리아, 해조류, 수많은 식물과 나무들이 수억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서 찾아내었고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림 1 참조). 현대 화학과 물리가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아직 이러한 생명체들의 특별한 능력들을 비슷하게나마 재현하기에는 너무도 초보적인 상태이다.
광합성을 하는 모든 생명체에는 빛을 흡수하고 그 에너지를 보관 전달하는 광 수확 복합체(light harvesting complex)들이 있다. 이글의 독자들을 위해서 이들을 광수체(LHC)라고 부르자. 일반적으로 이러한 광수체 들에는, 특정 빛을 잘 흡수하는 동일한 혹은 비슷한 염색 분자(pigment molecule)들이 복잡한 삼차구조를 가지는 단백질들에 박혀 있다. 몇 가지 중요한 예들이 그림 2에 나와 있다.
다른 여건에서 적응하도록 진화된 각기 다른 광합성 생물체 군들은, 빛을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그에 기인한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당히 판이한 광수체들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광수체들이 흡수하는 빛의 파장들은 상당히 최적화되어있다. 광수체에 있는 대부분의 염색 분자들이 거의 동일한 엽록소(chlorophyll)류의 분자들임을 고려할 때 이는 놀라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냥 독립된 분자들이나 용액상에서 이러한 분자들은 거의 동일한 파장에서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흡수 파장의 조절은 염색 분자들 주변의 단백질 분자들이 전자적 환경을 미묘하게 조절하는 데서 기인힌다.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양자화학 계산으로 이러한 조절 효과를 어느 정도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들은 그 정확도에 있어서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 그리고 현재 알려진 합성과 물질 생성 방법으로는, 광합성 생물체에서 보이는 단백질들의 효과를 실험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분자들에 흡수된 빛은 일반적으로 그 분자에 머물러 있다가 다시 빛으로 발광하거나 열 혹은 다른 비가역적 에너지로 손실된다. 빛에서 흡수된 에너지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손실이 일어나기 전에 안전하게 활용될 수 있는 곳으로의 신속한 전달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 역시 광수체 안의 염색 분자들이다. 클로로좀(chlorosome)이라는 광수체의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광수체에는 10 – 100여 개의 염색 분자들이 적정한 거리와 각도를 잘 유지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염색 분자들의 거리는 1나노미터 정도이며, 기본 광수체의 평균 반경은 5 – 10나노미터 정도이다. 이러한 작은 단위들이 모여서 광수체 집합체 혹은 초 복합체가 형성되어, 효율적 에너지 전달 경로를 이루게 된다.
그러면 과연 에너지 전달의 구체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공명 에너지 전달(resonance energy transfer)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의 분자가 빛을 흡수하고 발광 (fluorescence) 혹은 인광(phosphorescence)으로 빛을 발하는 것 역시 분자 내의 양자 역학적인 전자상태의 변화를 동반한다.3 즉 흡수는 바닥 상태에 있는 전자들이 양자화된 들뜬 상태로 전이 되어서 일어나고, 발광 혹은 인광은 들떠있는 상태에서 바닥 상태로 전자들이 전이 되면서 일어난다. 공명 에너지 전달은 전자적으로 들떠있는 하나의 분자 곁에 바닥 상태에 있는 다른 분자가 있을 때 발생한다. 두 분자의 전자들 사이의 상호 공명 작용에 의하여, 들떠있던 분자가 바닥 상태로 가고 바닥 상태에 있던 분자가 들뜰 수 있게된다. 이러한 에너지 전달 방식은 이미 1948년에 독일 이론가인 Förster에 의해서 정립되고 4 그 이후로 지속 발전해왔다.
광수체에서 에너지 전달이 Förster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이미 1950대부터 제안 되었고, 그 이후로 점차 적으로 밝혀져온 실험적인 증거들은 그러한 추측을 정성적으로나마 입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염색 분자들의 가장 가까운 거리인 1 -2나노미터 정도에서 에너지 전달이 일어나는데 1피코초(picosecond), 즉 10-12초보다도 짧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광수체들의 자세한 구조가 X-ray를 통해서 결정되고 펨토초 (femtosecond), 즉 10-15초의 시간대까지 관측할 수 있는 레이저 분광학의 발달로, 더 자세한 에너지 전달의 실험적 연구와 이론의 검증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비교 결과들로 Förster 이론의 예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에너지가 전달되고 있는 경우가 많음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색 박테리아(purple bacteria)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LH2 (light harvesting 2)라고 불리는 광수체들이다.
약 25억 년 전에 진화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5 아직도 번성하고 있는 고대적 광합성 생명체인 자색 박테리아에는, LH2라는 광수체들이 초기 빛 흡수와 에너지 전달을 담당하고 있다. LH2는 800나노미터 빛의 파장을 흡수하는 B800 부분과, 850나노미터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B850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은 염색 분자들이 원형으로 모여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림 3 참조). 특히 B850에 있는 인접 염색 분자들의 거리는 1나노미터 정도된다. 그리고 이 B850의 전자적 들뜬 상태는 개개 염색 분자들이 들뜬 상태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그들의 양자역학적인 중첩 상태이며 비국소적인 엑씨톤(exciton), 혹은 ‘들뜬자’들로만 정확히 기술될 수 있다.1
들뜬자들의 양자 중첩은 효율적인 에너지 전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림 3 참조). 예를 들어서, 들뜬자의 양자적 효과, 즉 중첩을 통해 이루어진 모든 상태들과 비국소성을 제대로 고려하면, LH2 내부의 B800로부터 B850로 에너지 전달 속도가 Förster 이론보다 약 7배 빠르고,6,7 인접한 LH2 사이에서도8 약 4배 정도 빠름을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 결과들은 실험적 결과들과도 일치한다. 또한 양자 중첩이라는 상태가 쉼 없이 움직이고 비교적 무질서한 생물학적 환경에서 더 유연하고 보장된 에너지 전달을 하는데 도움이 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상황에 맞추어서 중첩을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양자 현상의 결합으로 LH2 복합체들의 모임에 의한 에너지 전달 거리는 거의 100나노미터 정도 혹은 그 이상이 되는 거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는 가장 효율적인 유기 태양광 패널에서의 에너지 전달보다 약 10배 정도 큰 값이다.
광합성에 대한 물리, 화학적 연구는 백여 년 동안 지속해 이루어졌지만, 지난 15년 동안 새로운 분광학, 나노 과학, 계산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큰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많은 광합성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전달의 구체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정량적인 설명들이 가능해졌다. 참고로 이러한 발전에는 소위 말하는 양자 생물학(Quantum Biology)에 대한 관심도 많은 기여를 했음을 언급하고 싶다. 사실 양자 생물학에 대한 최근 관심의 시발점이 광합성의 광수체에 대한 펨토초에서의 비선형 분광학 실험 결과들이었다.9,10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많은 전문가가 현재 동의하는 바는, 이러한 실험 결과들이 나왔던 초기에 가능성으로 제시되었던 양자 현상들의 상당수가, 자연환경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글에 간략하게 기술 되었듯이, 정확한 계산과 실험적 검증으로 확인된 몇 가지 중요한 양자 현상들이 있고 광합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에는 분명하다.
과연 양자 현상이 광합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일인가? 이에 대한 답은 둘 다 가능하다. 즉 한편으로는 놀랍지 않고 당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유는, 생명체 역시 분자 수준에서의 거리와 시간에서는 양자역학의 법칙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양자이론은 존재하는 물체와 현상을 기술하는 완전한 이론이 될 수 없다. 반면에 경이로운 이유는 단순해 보이는 박테리아조차, 아직 인간의 기술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절묘한 양자 현상의 균형 효과를 그 생존의 도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합성의 초기 단계야말로, 오래된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통해서 획득된, 가장 양자역학적인 빛을 어떻게 복잡한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양자역학적인 비법을 제안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비법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연구가 새로운 광 재생 에너지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
1 S. J. Jang and B. Mennucci, Delocalized excitons in natural light harvesting complexes, Rev. Mod. Phys. 90, 035003 (2018).
2 R. E. Blankenship, Molecular Mechanisms of Photosynthesis, 2nd Ed. (Wiley Blackwell, Oxford, 2014).
3 일반적으로 분자 내부에서의 전자 에너지를 변화시키는데에는 근 적외선 혹은 그보다 짧은 파장의 빛이 필요하다.
4 T. Föster, Intermolecular energy migration and fluorescence, Ann. Phys. (Berlin) 437, 55 (1948).
5 아직도 이러한 추정은 완전하지 않고 이견의 여지가 많다.
6 S. Jang, M. D. Newton, and R. J. Silbey, Multichromophoric Förster resonance energy transfer, Phys. Rev. Lett. 92, 218301 (2004).
7 Jang, M. D. Newton, and R. J. Silbey, Multichromophoric Förster resonance energy transfer from B800 to B850 in the light harvesting complex 2: Evidence for subtle energetic optimization by purple bacteria, J. Phys. Chem. B 111, 6807 (2007).
8 S. J. Jang, Robust and fragile quantum effects in the transfer kinetics of delocalized excitons between LH2 complexes, J. Phys. Chem. Lett. 9, 6576 (2018).
9 G. S. Engel, T. R. Calhoun, E. L. Read, T.-K. Ahn, T. Mancal, Y.-C. Cheng, R.~E. Blankenship, and G.~R. Fleming, Evidence for wavelike energy transfer through quantum coherence in photosynthetic systems, Nature 446, 782 (2007).
10 Collini, C. Y. Wong, K. E. Wilk, P. M. G. Curmi, P. Brumer, and G.~D. Scholes, Coherently wired light-harvesting in photosynthetic marine algae at ambient temperature, Nature 463, 644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