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evidence란 무엇인가? 한 국가 정책의 타당성을 지지하는 객관적 근거는, 과연 얼마만큼의 인적, 물적, 조직적 자원을 투자하였을 때 수집될 수 있는 것인가? 지난 1년간 미국 내 꿀벌 군집의 48%가 집단폐사했다는 보고서가 있다.1 2023년 6월 발표된 미국 메릴랜드 대학과 오번 대학의 공동연구에 따른 결과이다. 양봉업자들은 벌집을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해 많은 비용과 각고의 노력을 들이고 있다. 꿀벌 군집 붕괴 colony collapse disorder라 불리는 이 현상은 2006년 이후 널리 알려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조사 결과 38만 9045개 벌통에서 피해가 발생하여 약77억 8090만 마리 이상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하면 4년 내에 인류가 사라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작물을 수분하는 꿀벌의 집단폐사는 전지구적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원인으로는 살충제, 제초제, 천적, 기후변화 등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된다. 심각한 수준의 꿀벌 폐사가 일어나고 원인도 조사되었지만, 무엇을 조절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미국 환경보호청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은 꿀벌에 위해를 미치는 살충제를 규제하기 위하여, 살충제에 포함된 유효성분 active ingredient을 시험조사한 결과를 모니터한다. 꿀벌의 성체에 경구 투입했을 때 LD50가 2μg이하로 나타난 물질은 고독성 highly toxic으로 분류된다. LD50가 11μg 이상인 성분에는 경고성 문구가 붙지 않는다. 현실적 노출 가능성을 넘기는 정도의 과량을 섭취시켜야 실험대상인 꿀벌 군집 50%의 폐사를 일으키는 유효성분이라면 그것은 사실상 ‘무해’하다고 간주하여 유통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LD50의 측정은 경구투입 후 4시간, 24시간, 48시간, 96시간 이후 이루어진다. 같은 양의 유효성분을 장기간 나누어 섭취한 꿀벌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는 모니터되지 않는다. 이는 합리적인 제한이다. 누구도 LD50를 무한한 기간 동안 측정할 수는 없다. 96시간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은 폐사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유효성분이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 살충제에는 유기실리콘 계면활성제를 비롯한 보조제 adjuvant가 첨가되는데, 이것의 독성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경보호청의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보호청은 어디까지나, 해충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고 밝히는 pesticidal claim 물질이 있다면, 그것이 벌의 폐사와 같은 생태적 위해를 부수적으로 일으키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보조제는 그 자체로서는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조제를 자유로운 유통이 아닌, 규제의 대상에 포함시킬 근거가 없는 것이다.
2017년의 한 연구는 유기실리콘 보조제와 바이러스에 함께 장기간 노출된 꿀벌 유충의 사망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아지는 결과를 보여주었지만, 이것은 한 연구의 결론일 따름이다.2하필 병원성 pathogenic을 갖는 바이러스와 조합하여 노출시켰을 때 꿀벌의 사망률을 높일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이 모두 환경보호청의 규제대상이 되어 안전성 검사와 기록 관리를 위한 비용을 들이기에 충분한 위험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보아야만 할 필연성은 없다. 보조제가 그 자체로서 생물학적 불활성 inert 물질임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를 재고하도록 할 만한 발견이 위에 언급된 한 실험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살충제에는 다양한 보조제가 첨가되며, 일반적으로 보조제로 사용되는 물질의 종류는 광범위하다. 이 물질들이 꿀벌의 사망률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이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작업의 수행에 소요되는 비용 대비 작업 결과가 산출하는 편익이 상당함을 지지하는 근거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이상, 특정한 보조제의 유해성이 표준적 방법에 따르지도 않은 임의의 실험에서 한 번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보조제와 관련한 규제를 새로 만들 근거가 정립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여러 양봉업자들은 그들의 경험적 관찰을 통해, 꿀벌이 장기간에 걸쳐 노출된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서서히 폐사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발언을 제공한다. 이들이 관찰한 바로는, 꿀벌은 어떤 살충제 살포 이후 단기간 내에 폐사에 이르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건강한 벌에게서 보이지 않는 이상 행동을 다양한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근거라 볼 수 있을까? 이들은 애초에 농부들의 살충제 살포가 예고된 시기에 벌통을 어디에 놓았는지 신고하는 간단한 서류작업조차도, 자신들의 사업 규모가 영세하고 사업장 위치가 늘 이동한다는 이유 등으로 누락하곤 하는 사람들이다. 피해를 객관적,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표준화된 작업 수행에 협조하지 않았던 이들이, 몇 가지 일화를 들어 ‘피해’의 양상을 비표준화하고 그 원인을 추측하는데, 이들이 목격했다는 꿀벌 폐사와 관련된 일화의 내용이나 대표성을 신뢰할 어떤 타당하고 필연적인 이유가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들은 벌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을 살충제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농부들과도 갈등을 겪어왔기 때문에, 이미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해 농부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는 살충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그럼으로써 살충제가 꿀벌에게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며 당장 정량화하기는 어려운 피해를 일으킨다고 애매한 정황 묘사를 통해 주장하고 싶을 뿐인지도 모른다.
증거기반정책 evidence-based policy은 공공정책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엄밀하게 검증된 객관적 증거에 기반하여 정책 결정을 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꿀벌에 위해를 미치는 살충제를 규제하고, 그렇지 않은 살충제의 유통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는 정책 결정은 분명 근거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모든 합리적 의심을 불식할 만큼 확실한 근거의 정립이란, 합리적 범위를 초과할 정도의 인적, 물적, 조직적, 시간적 차원의 투입을 요한다는 데 있다. 현실은 불확실성의 공간이며, 우리는 많은 경우 당면한 문제에 관한 결정을 현실적 제약 속에서 내려야 하기에, 관행의 변경을 요구하는 정책의 근거 제시를 통한 자기 정당화 시도는 난관에 부딪친다.
이제 이공계열 젠더 불균형이라는 한 국가적 정책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정책의 근거가 될 만한 사실 관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직종 occupation과 사업장 establishment이 같은, 따라서 동일한 직무 job를 수행하는 남녀 사이에 임금 격차가 있을까? 동일 직무를 수행하는 남녀 간의 임금격차는 2018년 국제노동기구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의 보고서에서도 “설명되지 않는 unexplained” 격차라는 표현으로 언급된다.3 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해당 주제에 대한 연구들과 함께 어떤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한 연구에 따르면 남녀 임금격차는 동일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 간에도 존재한다.4그리고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이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행동 과학 저널 Nature Human Behavioiur 가 지난달 24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일 직종 내 남녀임금 격차는 한국이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컸고(33.5%), 일본 (30.4%)이 그 뒤를 따랐다. 사업장과 직종이 모두 동일한 조건—이것을 동일 “직무”라 한다–에서 남녀임금 격차가 큰 국가의 순위는 일본이 1위(25.7%), 한국이 2위(18.8%)였다.
이것은 한 연구 결과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 남녀의 임금격차가 대부분 사업장과 직종의 차이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동일 사업장-직종 내의 남녀 임금격차는 유의미하지 않다 segregated but equal 고 밝힌 선행연구들도 있었다. 비록 앞서 언급된 최근의 연구는 그러한 선행연구가 제공한 “설명”이 제한된 국가–미국, 스웨덴, 노르웨이–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한정되었음을 지적했지만, 이 관점이 전문가 집단 다수의 지지를 얻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5 동일 직무 수행 시의 남녀 임금격차란 특정한 연구들에 의해 때때로 통계적으로 확인되곤 하지만 여기에는 “설명되지 않은” 것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임금격차에 대한 설명과 납득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여러 전통적 변수들에 대한 기대는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는 물론 경제적 불평등이 사업장도 직종의 차이도 아닌 다름 아닌 성별에서 기인함을 시사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이 2021년 발행한 「2020년도 여성과학기술인력 활용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의 통계자료를 살펴보자. 자연・공학계열 전공자들의 남녀 경제활동참가율을 연령대별로 나누어 보면, 30대 초반 이후 남성은 90%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여성은 자연・공학계열 모두 60%대로 하락해 성별격차가 커진다. 이는 20대 후반까지는 남녀 경제활동참가율의 격차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 현상과 대조된다. 혼인여부별로도 나누어 보면 미혼인 경우 성별과 전공계열에 관계없이 70% 후반에서 80%대 수준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보이나, 기혼 여성의 경우 60%대로 비율이 크게 낮아진다. 반면 기혼 남성은 미혼 남성에 비해 오히려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며 이것이 근속년수의 성차로 이어진다. 공학계열을 전공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다른 전공에 비해서도 혼인여부에 따른 차이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난다. 이 통계가 지칭하는 “30대 초반” 여성이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태어나 2010년대에 대학에 다닌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노동시장 뿐만 아니라 자연・공학계열 전공자의 경제활동에서도 젠더 불균형이 존재하며, 특히 기혼 여성 자연・공학계열 전공자가 경제적 불평등에 처하게 되는 현상이 최근까지도 지속됨을 제시하는 자료가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를 통해서, 공학계열을 전공한 여성이 충분한 경제활동의 의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인을 하기 때문에 경력단절이 된다는, 다시 말해 현대화되고 도시화된 한국에 태어나 취업의지를 키운 공학전공 여성의 경제활동참가를 저해하는 원인이 다름 아닌 혼인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어쩌면 여성들은 같은 공학계열을 전공했더라도, 남성 공학계열전공자들과는 성별 외의 다른 차이를 나타내는 집단일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전공과 유관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하는 의지가 낮아보이는 여성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여성들의 비율이 적지도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년 자연계열 전공 여성 비율은 29.1%, 공학계열은 11.9%이며, 공학계열 박사과정 여성 입학생 비율은 19.7%인데, 졸업생 비율은 12.8%이다. 이러한 일부 소수자들 중의 일부가 보이는 행동이란 눈에 띄어서, 특정 집단의 전체에 귀속할 만한 성격이란 것이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설을 세워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애초에 여성은 공학계열전공자라 하더라도 남성보다도 특별히 지방근무를 싫어하거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필 결혼을 하는 30대가 되면 경력단절 또는 노동시간 감축을 선택하고 그 결과 남녀 경제활동참가율의 격차가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혼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결혼의 부담처럼 보였던 것은 그저 상관관계에 불과할 뿐 실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공학계열에 진학한 여성에게 처음부터 (남성에 비교하여) 부족했던 경제활동 지속 의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공학계열 내 경제활동참가율의 남녀 격차란 도무지 “설명되지 않”아서 오직 남녀에 따라 발생했다고 말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역시 그저 아직 설명되지 않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격차를 “설명이 되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익숙한 어느 변수, 예컨대 역량의 차이라거나 그로 인한 직무의 차이 등과 분명히 연관이 된 그 무언가가 작용하여 드러낸 경제활동참가율 상의 격차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 변수 X만, 존재할 것이라 가정됨에도 아직 체계적인 주목과 정량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 그 변수 X만 통제하여 다시 살펴본다면, 지금까지의 통계 수치가 (잘못) 보이던 남녀의 차이라는 것은 증발하여 사라질런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대가 남아있는 한 우리는 현 상황에서 공학계열을 전공한 여성에게 혼인이 특수한 부담이 된다는 해석을 지지할 만한 근거가 여전히 부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이는 자연・공학계열 전공자의 경제활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격차가 성별에 의한 것임을 제시하는 suggestive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해진다. 어쩌면 “공학계열”이라고 묶인 통계가 나오고 있지만, 여성들은 공학계열 내에서도 유달리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은 소계열만 찾아다닌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공학계열 학사과정 소계열 중 여성 졸업생 규모가 가장 큰 학과는 전산학・컴퓨터공학, 화학공학, 전자공학 순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어쩌면 이것도 중요한 실상을 반영하지 않은 잘못된 범주화의 결과인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의심해볼 수 있다. 같은 전자공학 안에서도 세부전공이란 있지 않은가? 정말로 같은 전공을 했고, 같은 직무를 수행하고, 같은 역량을 발휘하는 시민이 여성이라는 또는 기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는 경제적 피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른바 한국 여성과학기술인력이 입은 피해란 그것이 통계의 오류로 인해 단속적으로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불식할 만큼 명확한 근거를 통해 입증되고 납득할 만한 인과의 구조에 따라 설명되어 공공연한 실제로서 수용되었던 적이 없다. “설명되지 않는” 것을 통한 설명의 생산이나 수용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동일 직무를 수행하는 남녀 간에 발생했다고 하는 불평등의 목격담들은 일화일지언정, 엄밀하게 검증되어 공공정책의 기반을 이루는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오히려 제기될 수 있는 것은, 남녀의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통계가 여전히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만큼 정책의 근거가 되기에는 아무래도 불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의문과 더불어, 따라서 좀 더 세밀하고 정확하고 유의미하고 설득력 있게 범주를 지정하는 작업이 우선 철저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라는 신중한 제언일 것이다.
우리는 근거의 범위를 무한정 확장할 수 없다. 해충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단일한 성분이 96시간 이내에 특정 농도로 경구투입 시험대상 50%의 폐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해당 성분과 보조제가 혼합된 살충제가 유해성 관련 표시 없이 유통되도록 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보조제 하나가 바이러스와 조합되었을 때 꿀벌 유충의 사망률을 높인다는 한 연구결과는 보조제 전반에 대한 안전성 평가 방식을 수정하여 보조제 위험성을 지지하는 새로운 근거의 발견이 가능하게 하는 규제를 설립하고 유관 조직을 운영해야 할 근거로서 작용하기에 불충분하다. 자연・공학계열을 전공한 기혼여성 중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험을 했다는 자기 보고를 한 비율은 각각 19.6%와 21.9%이다. 이는 의약계열(16.6%)이나 인문・사회계열(18.8%)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그래서 어떠하다는 것인가? 그것은 다만 통계 상의 수치로 나타나는 “설명되지 않은” 것일 따름이어서, 우리는 아마도 이 현상과 성별 및 기혼여부의 관계가 허위상관 spurious relationship일지 모른다는,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변수는 성별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저 그 작동을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놓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결혼, 출산, 육아가 경력단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근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경제활동참가율의 연령별 변화를 살펴볼 때에 기혼이라는, 심지어 여성이라는 범주가 유의미하다는 근거조차도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객관적 증거의 엄밀성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이처럼 무한의 시간과 자원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한편 통계청의 2022년 조사 결과, 남녀 한국인의 초혼연령은 모두 조사 이래 역대 최고치를 보였으며 한국 여성 1명이 평생에 걸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0.7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저치이며 한국 인구는 지난해 12만명이 자연 감소했다. 우리는 현장의,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임박한 위기 앞에서 고조되는 다급한 우려의 목소리를 두고서 거듭하여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전공과 유관한 취업을 하고 경력을 살려나가겠다는 의지와 무관하게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고 말하는 이들이 인식하는 위기적 현실이란 편향에 묶인 주관의 산물이고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일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정책의 근거가 되기에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합리적 의심을 불식할 만큼 확실한 근거의 정립이, 역설적으로 합리적 범위를 초과할 정도의 자원 투입을 요구할 때에, 한 국가가 시급히 대처해야 할 문제 해결과 관련된 정책의 기반이 되는 근거의 합리성 수준에 대해서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타협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불확실성의 제거가 어려운 현실의 제약을 새로운 기회를 여는 잠재력으로 전환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있다. 자연・공학계열 전공자의 경제활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격차가 성별로 인하여 나타났다는 인과적 주장은 충분한 근거를 통해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의 부재란, 성차의 부재를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부재’를, 국가적 난제의 하나인 이공계열 젠더불균형 문제에 대한 정책의 기반이 되는 근거의 건전성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합리적인가에 대한 논의의 초석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유리 천장’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의 마련은, 그 시급성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통해 정당화될 필요가 있으며 정당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