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혹은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느끼는 상태’ 이다. 또한 일부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개인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긍정적 심리상태라 정의하며 주관적 안녕감 Subjective well-being 이 행복의 핵심요소라 제안하기도 한다. 반면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배불리 먹기, 짝짓기, 보금자리 마련하기 등 생존과 종족 번영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경험하게 되면 행복을 느낀다고 제안하고 있으며, 행복을 주관적 안녕감이라기 보다는 특정한 사건들에 대한 경험의 결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행복에 관한 사전적 정의도, 구체성이 있는 듯 모호한 개념이다. 사실 이것이 행복의 본질일 것이다. 계속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말고, 행복과 관련이 깊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인 다니엘 카네만은 ‘행복은 경험보다는 경험에 대한 기억과 관련이 깊다고 제안하였다. 즉, 행복은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는 지가 아니라 우리가 했던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는 지와 관련이 더 깊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행복한 경험과 행복한 기억은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사람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경험은 그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추후에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배탈이 난다던지, 식사를 함께 했던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게 되면 이 행복했던 경험이 더 이상 행복한 기억으로 남지 않고 화나는 경험 혹은 지우고 싶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반면 밤새워 연구를 하고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동안에는 힘들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지만 연구결과가 나오고 이를 논문이 출판되고 난 이후에 돌이켜 보면 그 과정도 매우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행복을 느끼는데 경험보다는 기억이 더 중요하니 우리 모두 정신승리를 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좋은 경험이 좋은 기억을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것을 기억하려면 먼저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향후에 나의 경험이 기억에 의해 변형될 지라도 좋은 경험이 행복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과 종족 번영에 도움이 되면서 우리에게 가장 행복을 많이 경험하게 하는 핵심적인 좋은 경험은 무엇일까?

사회적 동물의 행복

이와 관련된 놀랍고도 유명한 연구 결과가 ‘the good life’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하버드 의대 성인발달 연구팀이 1938년부터 80년 넘게 724명의 참가자들의 삶을 추적하여 연구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너무나 바쁜 우리를 위해 이 프로젝트의 4번째 책임자이자 책의 저자인 Robert Waldinger 교수의 ted 특강이 있으니 이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 중 한 집단은 1938년 연구를 시작할 당시 하버드 재학생들이었으며, 다른 집단은 같은 시기, 비슷한 나이의 보스턴 빈민가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연구진은 매 2년마다 설문, 인터뷰, 건강기록 수집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조사하였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 명예, 노력이 좋은 삶을 가져온다고 믿었으나, 연구결과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하고, 실제로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도 낮고, 인지기능도 더 오래 잘 유지되었다. 즉,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려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실제로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았다.

반면 사회적 배제나 거절을 당한 경험은 우리의 지각, 행동, 감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우리를 우울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처럼 이별을 경험하였을 때에도 신체의 일부를 다쳤을 때 활성화 되는 뇌부위인 배측 대상피질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과 전측 섬엽 anterior insula 이 활성화된다Eisenberger, 2012. 또한, ‘성격검사 결과, 당신은 살아가면서 점점 혼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충동적이고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증가하였으며 wenge, Catanese, & Baumeister, 2002, 사회적 배제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면 방의 온도를 더 춥게 지각하고, 공놀이를 할 때 한 사람한테만 공을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추위를 느끼게 되어 이후에 더 따뜻한 음식이나 음료를 선택하게 된다 Zhong, & Leonardelli, 2008. 즉, 차가운 마음이 실제로 추위를 지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을 자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과 직,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각자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간다. 연구실에서 혼자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같은 연구 분야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연구소 내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다양한 목표를 갖고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이 바로 그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는 행복을 넘어서 개인의 삶 자체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이러한 관계들 중 가장 중요한 관계는 누구와의 관계일까?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다른 이들과의 관계들도 매우 중요하지만 나와의 관계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틀이다. 따라서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 중 가장 중요한 관계는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나와의 좋은 관계가 모든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한 시작점이 되므로 나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호감을 가져야 하며 남들이 나를 이렇게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생각대로 내가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내가 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그 틀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틀이 작동하여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방에게 내가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우리는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싫어한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맺는 첫걸음은 나 자신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은연중에 나를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실제 얼굴 사진과 이를 보정하여 실제에 비해 더 매력적이게 만든 사진들을 제시하고 본인과 친구의 실제 얼굴을 찾아보라고 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의 얼굴은 보정하지 않은 실제의 사진을 정확하게 찾았지만 자신의 얼굴은 더 매력적이게 보정한 얼굴을 실제의 얼굴이라 선택하는 경향이 컸다(Epley, & Whitchurch, 2008). 사진을 찍으면 친구들은 제대로 나오는데 자신만 잘 안나오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굳이 눈을 씻고 적나라한 내 모습을 직시할 필요는 없다. 나의 착각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 모두는 타고난 심리학자인 셈이다.

Example of the averaging procedure, Epley, N. & Whitchurch E. (2008). Mirror, mirror on the wall: Enhancementin self-recognition

행복한 삶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 하였다. 일단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나면 이제는 남과 좋은 관계를 맺을 차례다. 남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 vs 상황

‘자기 권리만 주장한다, 이기적이다, 예의를 모른다, 감각적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책임감이 부족하다.’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90년대 초 X세대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을 때 X세대의 특징을 설명하던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내용이다. 지금은 4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의 나이가 되어버린 X세대가 현재의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 2020년에 실시한 교육관련 모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70년대생 교사들 X세대 이 추구하는 직장생활의 핵심 키워드는 책임감인데 반해 90년대생 교사들 MZ세대 의 키워드는 워라벨이라고 한다. 또한 1970년대생들은 안정적인 수입으로 가족과 화목하게 사는 삶을 가장 바람직한 삶으로 바라보았지만 1990년대생과 2000년대생은 좋아하는 일, 취미를 즐기면서 사는 삶을 가장 선호하였다. 이렇게 X세대와 MZ세대는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심리학에 기본적 귀인 오류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라는 개념이 있다. ‘기본적’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매우 일반적인 현상으로 어떤 것을 판단할 때 기본적으로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타인 행동을 판단할 때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상황적 요인은 과소평가하고 개인의 특성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은 여러 요소들이 다양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한 모든 관계들을 다 파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손쉽게 상황보다는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이는 세대 간의 차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세대 간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수많은 원인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특성이 변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사람들은 잘 안 변한다.

70년대생 교사들X세대 은 학교 내에서 학년주임, 교과부장등 책임 있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에게 책임감이 핵심 키워드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반면, 결혼, 출산등 개인의 인생사의 중요한 일들이 몰려있는 시기인 90년대생 교사들의 경우에는 워라벨이 핵심키워드인 것도 당연한 일이다. 기성세대는 회사랑 같이 성장해가며 같이 부유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따라서 조직이 잘 되야 내가 잘 된다는 생각으로 워라벨 보다는 조직에 헌신하는 경향이 강했다. 경제적으로도 부동산등 자산 가치 상승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MZ세대의 경우 조직이 잘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많은 경우에 그것이 반드시 내가 잘 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또한 지나치게 오른 부동산 가격을 고려한다면 내 집 마련을 위한 저축보다는 취미를 즐기면서 사는 삶을 누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모든 MZ세대가 다 워라벨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판교등지의 벤쳐기업에서 일하거나 동료들과 창업하여 회사를 키워나가는 수많은 MZ세대들은 회사가 잘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워라벨을 무시한 채 일하고 있다. 나와 남이 다른 이유, 세대와 세대 간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사람이 달라서 라기보다는 상황이 달라서이다. 따라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고려는 나와는 다른 남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며 남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이다.

함께 행복하려면?

나의 생각, 관점, 태도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 관점,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마음이론Theory of Mind 라 한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내적 정신상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코렛이 담겨져 있는 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그것을 먹고 싶어할 것이라는 추론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앞에서 가고 있는 자동차가 차선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면 앞 차의 운전자가 차선을 변경하여 추월하고자 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병원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보면 소중한 누군가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전혀 모르는 사람임에도 내 마음도 함께 촉촉해진다. 이러한 마음이론에 기반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친사회적 행동을 하게 하는 원천이다. 즉,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나와 다른 의견을 들으면 먼저 그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 떠올리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대해 판단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한 번씩 고민해보자. 우리가 정말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혹시 남과 내가 다른 경우에 상황보다는 개인의 특성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을까? 심지어는 나와는 다른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또한 공감을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감은 상당한 인지적, 정신적 에너지와 자원이 소모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감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중 마지막 단계만이 진정한 공감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낮은 수준의 공감은 인지적 공감 cognitive empathy 으로 ‘네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겠어’ 와 같이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이 수준의 공감은 모두가 다 할 수 있지만 이해는 출발선을 뿐이다. 그 다음 은 정서적 공감 emotional empathy 이라 하는데 이는 ‘네 마음을 잘 알겠어.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야’ 와 같이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넘어 나도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 공감을 진정한 의미의 공감이라 착각하는데 사실 정서적 공감도 진정한 의미의 공감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공감은 인지적 공감이나 정서적 공감을 넘어서는 공감적 관여 empathic concern 이다. 공감적 관여는‘ 네 마음을 잘 알겠어, 그리고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야. 그러니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와 같이 타인에 대한 단순한 이해나 타인과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을 넘어서 그 상황에 나를 투영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대로 공감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공감을 한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관심을 보이거나 동정심을 갖게 되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으며, 한 사람에게 공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상처 줄 수도 있다. 도움을 주기 위해 조언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때에도 과연 이 사람이 조언이 필요한 상황인가, 이 사람이 조언을 구하고 있는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필요한 상황에 적절한 수준으로 공감하지 않으면 공감은 잔소리나 귀찮은 간섭으로 여겨진다.

이 글에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며 그것이 바로 행복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핵심은 행복과 좋은 관계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행복에 이르는 길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 무엇보다도 나와 좋은 관계를 맺자. 나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 나와 좋은 관계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자.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상황을 살펴보고 이해하자. 그리고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인정하고 적절히 공감하자.

행복에 대한 착각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도파민이 화두가 되고 있다. 도파민은 뇌속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으로 뇌의 복측피개, 측좌핵, 전전두 피질등과 연결된 보상회로에 작동한다. 따라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성취감, 쾌락, 흥분을 느끼게 된다. 행복도 이러한 보상회로와 무관하지 않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옷을 사거나, 가고 싶던 곳에 여행을 갔을 때, 혹은 뛰어난 연구 성과를 이루었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따라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활동들을 하는 것을 행복을 추구하는 활동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사실 소셜 미디어등에서 사용되는 도파민이라는 표현은 자극, 재미, 쾌락을 대신해서 지칭하는 말인 듯 싶다. 사람들은 자극과 재미, 쾌락을 얻으려고 말하는 대신에 도파민을 얻기 위해라 표현하며 게임이나 쇼핑에 열중하기도 하고, 단 음식에 탐닉하고 하고 영상 시청에 몰두한다. 도파민이 화두가 된 것은 아마도 코로나를 거치면서 스마트 폰의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숏 폼 형태의 컨텐츠가 유행하면서부터 인 듯하다. 숏 폼은 짧은 영상 컨텐츠로 긴 영상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짧게 요약하거나 잘라내 더 강한 자극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지속적으로 강한 자극을 주는 영상을 보다보면 사람들은 더 이상 기승전결이 있는 일반적인 컨텐츠는 지루해서 못보게 된다. 강렬한 자극이 반복적으로 들어와서 뇌가 높은 수준의 도파민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강렬한 자극이 일반적인 자극이 된 것이고 훨씬 더 강렬한 자극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도파민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파킨슨 병이 생길 수 있고 다른 많은 질환들도 도파민 분비의 이상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힘껏 노력해서 성취를 이룰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결코 나쁘지 않다. 문제가 되는 것은 숏 폼과 같은 것을 통해 빠르고 쉽게 얻어지는 도파민이다.

그렇다면 숏 폼과 같은 빠르고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데서 벗어나고 일명 도파민 디톡스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려 하거나 스크린 타임을 제한하고 알람 설정을 지우는 등의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실제로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 하고 싶은 것을 참도록 만드는데 욕망을 참는데는 상당한 의지를 필요로 하며 우리는 그렇게 의지가 강하지 못하다. 헬스장에서 연초에 회원 모집을 위해 파격 할인을 하는 것은 우리 가 연초에는 열심히 운동을 하리라 결심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반에만 오다가 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잘 안 변하고,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의지력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려 하기 보다는 집중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는 것이 좋다. 가급적이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에 관심을 갖도록 하자. 운동이나 등산과 같이 힘은 들지만 도파민이 건강한 방식으로 분비되게 하는 활동을 한다면 더욱 좋다. 다만 유의할 것은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운동은 좋지만 지나친 운동은 별로 좋지 않다. 때로는 심심해지는 것도 좋다. 가끔씩 심심한데 별로 우울하거나 조바심 나지 않고, 오히려 편한 느낌을 갖는다면 그것도 좋다. 그리고 잘 자도록 하자. 잠자기에 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삼가도록 하자. 그리고 충분히 자도록 하자. 수면부족에 시달리면서 행복할 수는 없다.

꼭 해야 할 것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건 열심히 하자. 물론 온라인에서도 긴밀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만나서 형성하는 상호관계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고 결과가 즉각적으로 보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두루두루 잘 지내는 좋은 관계보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긴밀한 좋은 관계가 행복에 이르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참고문헌

[1] Eisenberger, N. I. (2012). The neural bases of social pain: evidence for shared representations with physical pain. Psychosomatic medicine. 74(2), 126-35.

[2]  Epley, N. & Whitchurch, E. (2008). Mirror, mirror on the wall: Enhancement in self-recogni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4(9), 1159-70.

[3] Zhong, CB, Leonardelli, G. J. (2008). Cold and lonely: does social exclusion literally feel cold? Psychological science, 19(9), 838-42.

[4] Twenge, J. M., Catanese, K. R., & Baumeister, R. F. (2002). Social exclusion causes self-defeating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3(3), 606–615.

이윤형
영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