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스코틀랜드 철학자 알렉산더 베인에 의해 창간된 유서깊은 철학잡지 <마인드>는 20세기 내내 옥스퍼드 대학교를 근거지로 영미 철학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논문들을 출간해왔다. 이 잡지의 1950년 10월호에는 당시 편집장이던 철학자 길버트 라일의 초청으로 수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인 알란 튜링의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 and Intelligence”이 게재된다. 이 논문에서 튜링은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기계가 인간과 다른 종류의 지능을 보여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그 가능성이 정말로 성취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일종의 지능 확인 검사를 제안한다. 훗날 튜링 검사로 알려지게 된 이 지능 확인 검사와 더불어 튜링은 이 논문에서 인간에게는 매우 ‘낯선’, 기계 지능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기초를 제시한다. 이후에 보겠지만 튜링의 이 논문은 튜링의 캠브리지 대학교 시절 탐구한 수학기초론에 대한 그의 연구 결과와, 2차 세계대전 중 비밀리에 참여한 독일군 암호해독 과정에서 얻은 ‘구성성compositionality’에 대한 통찰, 그리고 1948년부터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수행한 ‘생각하는’ 기계 제작 시도 모두가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이 논문을 통해 튜링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정보처리 기계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지능의 기계화 혹은 낯선정보처리 기계를 설계하다

알란 튜링Alan Turing: 1912~1954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이다. 현재는 이 두 분야가 대부분의 대학에서 서로 다른 단과대학에 속해 있어서 이 두 직업명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튜링의 시대에는 컴퓨터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막 생겨나던 시기였고 그런 신생 학문인 컴퓨터 과학의 탄생 과정에는 다양한 전문 분야가 기여했다. 그중에서도 튜링이나 폰 노이만처럼 수학자들의 기여가, 적어도 학문 성립 초기에는 두드러졌다. 이들 수학자들의 연구가 컴퓨터 과학이 어떤 주제를 탐구하는 분야인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수학적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인류 문명의 전 시기를 거쳐 상당히 최근까지도 인간만이 이런 ‘계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적 존재라는 생각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계식 혹은 전자식 컴퓨터가 널리 사용되기 전까지 ‘컴퓨터’라는 개념은 계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지칭했다. 예를 들어 현재는 프랑스 최고의 과학 인재들이 다니는 에꼴 폴리테크는 18세기에 고급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로 출발했는데, 당시 교육과정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탄도학은 발사된 포탄이 중력과 코리올리 힘, 바람이 주는 마찰력 등을 복합적 영향을 받아 어떤 경로로 날아가 어디에 떨어질 것인지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학문이었다. 결국 에콜 폴리테크의 교육 목적 중 중요한 한 가지는 ‘계산 잘하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고급 인지 능력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계산 능력에 있어서 지금은 아무리 뛰어난 계산 천재도 문구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천원짜리 계산기에도 당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사칙연산과 같은 ‘단순한’ 계산에 대해 하찮게 보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진부한 계산 능력이 상당히 오랜 기간 인간 지성의 위대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튜링을 비롯한 계산 과학의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인간이 아닌, 잘 설계된 기계가 인간보다 계산을 더 빨리,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컴퓨터의 표준 경쟁에서는 튜링의 방식이 폰 노이만의 방식에 밀린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계산 과정에서 보여주는 ‘지능intelligence’을 인간이 아닌 기계 장치도 결과론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엄밀하게 이론화해낸 공로는 여전히 튜링에게 돌아가야 한다. 튜링은 자신의 수학적, 공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가 현재 ‘정보처리’라고 부르는 과정을 원칙적으로 모두 일종의 계산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튜링이 선도적으로 제시한 계산 기계인 튜링 기계는 원칙적으로 정보처리 기계라는 점 또한 밝혔다. 결론적으로 튜링은 인간이 정보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인지적으로 처리하여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을, 인간의 의식적 경험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복잡한 계산의 결합으로 ‘흉내’낼 수 있다는 점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현재 우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깜짝 놀랄만큼 ‘똑똑한’ 일을 해내는 인공지능에 당혹감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튜링은 현재의 인공지능을 비롯한 계산 기계가 인간에게는 매우 ‘낯선’ 지능을 보여주는 정보처리 기계라는 점을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이었다.

기계적 계산가능성을 탐구한 수학자

튜링은 1912년 런던에서 상중류 계층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상중류 계층uppder-middle class이라는 용어를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 계층은 귀족 가문은 아니지만 중산층이라고 보기 어려운 생활 습관과 사회지도층 각계에 퍼져 있는 인맥으로 엮여 있는 계층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들의 자녀를 이튼과 같은 명문 사립학교영국 영어로는 복잡한 역사적 이유로 public school이라고 부른다에 보내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튜링의 성장기도 당연히 상중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패턴을 따랐다. 사실 튜링은 인도에서 태어날 뻔했다. 그의 아버지 줄리어스 튜링은 영국제국의 관리로 인도 남부의 넓은 지역을 관리하며 공무원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고 있었다. 줄리어스는 튜링의 어머니 에셜 사라 스토니와 유럽으로 향하던 배 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상중류 계층에 속한 집안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미국 횡단 여행을 함께 하며 사랑을 나누다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혼하고 인도에 정착했다. 하지만 튜링의 어머니가 튜링을 임신했을 때 인도의 열악한 교육 환경과 전염병을 염려한 튜링의 아버지가 어렵게 휴가를 얻어 온 가족을 런던으로 데려온 바람에 튜링은 런던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튜링의 아버지는 인도의 식민지 관리로서 영국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고, 튜링의 어머니 역시 남편과 함께 있기 위해 튜링이 만 한살이 겨우 넘었을 때 튜링을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인도로 떠나버렸다. 그 후 튜링의 어머니는 가끔씩 영국으로 돌아와 아들을 보긴 했지만 튜링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모르고 자라면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이 역시 당시 영국의 상중류 계층 집안의 일반적인 보육 방식이었다.

튜링은 어린 시절 당시 상중류 계층의 일반적인 관행에 따라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외국어와 고전 교육을 받았고 이후에는 1922년부터 1926년까지는 도셋에 있는 헤즐허스트Hazelhurst 예비학교, 1926년부터 1930년까지는 셔본Sherborne 학교라는 영국의 명문 기숙학교를 다녔다. 튜링은 기숙학교에서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튜링은 훗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로 이 기숙학교 시절을 자주 언급했다. 당시 영국의 상중류 가정에서는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기숙학교에 집어넣고 자주 보러 오지 않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정에 굶주렸던 튜링에게는 엄격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튜링은 영국에서 없어져야 할 나쁜 대표적 관행으로 기숙학교에서의 괴롭힘, 특히 선배가 후배를 노예처럼 부리고 체벌하는 전통을 꼽기도 했다. 튜링 연구자 중에서는 세속적인 가치나 권위에 대해 도전적인 그의 태도가 이 시기에 생겨났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튜링이 학교 생활에서 심적으로 매우 힘든 경험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는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었다. 상급생이 될수록 튜링은 학생 집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졸업 직전에는 자신이 속한 하우스의 우두머리head boy가 되기도 했다. 특히 튜링은 수학과 과학을 매우 잘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 기숙학교는 그리스 로마의 옛글을 읽힘으로써 마음을 수양시키고 격렬한 스포츠를 통해 신체를 단련시키는 일을 강조했다. 과학과 수학에 대한 튜링의 재능은 누구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고전이나 스포츠 분야에서의 능력에 비해 덜 중요하게 평가되았다.

튜링은 셔본 기숙학교에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크리스토퍼 모콤이라는 학생과 만나게 된다. 모콤은 튜링처럼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지만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글씨도 단정하게 쓰는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튜링은 모콤을 숭배했으며 모콤처럼 되기를 원했다. 모콤에 대한 튜링의 ‘첫사랑’은 후일 그의 동성애 성향의 첫 신호였다. 불행하게도 모콤은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결핵으로 사망하고 말았고 튜링은 이 일로 아주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튜링은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1931년 캠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에서 튜링은 기숙학교 환경에서와 달리 자신의 수학적 천재성이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상황변화를 마음껏 만끽했다. 튜링은 ‘중심 극한 정리Central Limit Theorem’라는 통계학의 중요 정리를 독자적으로 재발견해내며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입증하고 이를 계기로 캠브리지 대학교의 특별 연구원이 된다.

1935년 튜링은 수학기초론에 대한 강의를 듣고 당대 최고 권위의 독일 수학자 힐버트의 야심찬 계획이 젊은 신예 수학자 괴델에 의해 무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힐버트는 모든 수학적 명제에 대해 그것이 참으로 증명가능한지의 여부를 분명하게 규정된definite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힐버트는 우리가 참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수학적 명제들이 정말 참인지 여부를 직관에 호소하지 않고 엄밀하게 결정할 수 있는 증명 방법을 찾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기획이 완성된다면 수학은 인식론적으로 매우 탄탄한 기초위에 놓일 수 있게 된다. 힐버트의 이 원대한 프로젝트를 힐버트 프로그램Hilbert Program이라 한다.

오스트리아 수학자 괴델은 이 문제를 수학을 형식화한 논리체계에서의 증명가능성으로 바꾼 다음 힐버트의 계획이 실행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증명했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괴델은 힐버트의 엄격한 증명 요구를 일단 수학을 보다 엄밀한 논리체계로 표현하고이를 ‘형식화’한다고 한다, 그렇게 형식화된 논리 체계에서 힐버트가 요구하는 수준의 증명가능성을 표현한 명제가 증명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보였다. 이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라고 한다. 즉, 괴델은 힐버트가 원한 방식으로 수학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탄탄한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수학 체계가 모순이 없다는 점을 비롯하여 수학적으로 중요한 명제가 힐버트가 요구했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증명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괴델은 이 사실 또한 증명했는데, 요점은 우리가 수용하는 수학이 모순이 없고 참된 지식이라는 사실을 ‘느슨한’ 방식으로는 증명할 수 있지만좀 더 전문적으로는 한 수학 체계에 대한 엄밀한 증명은 그 체계를 포함하는 더 큰 수학 체계에서 가능하다, 힐버트가 원하는 것처럼 수학적으로 참인 명제를 모두 엄밀하게 증명하는 간단한 형식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튜링은 괴델이 다루었던 문제를 보다 직관적으로 정의한 후 내용적으로 괴델 정리와 동등한 내용을 보다 일반적으로 증명했다. 튜링의 접근 방식은 수학기초론에서 힐버트 프로그램에 집중한 후 괴델 숫자화Goedel numbering이라는 특정한 형식화 방식을 사용한 괴델과 달리 특정 수학적 명제가 증명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접근을 취했다. 튜링은 어려운 문제를 풀 때마다 항상 지나칠 정도로 독창적이어서 원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시켜 해결하는 재주가 있었다. 튜링은 ‘분명하게 규정된’이라는 힐버트의 요구사항을 숫자를 쓰고, 지우고, 다음 항목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극단적으로 단순한 기계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힐버트나 괴델에게 있어서는 보다 추상적이고 우리 마음이 이해하는 심상적 의미에서만 포착될 수 있었던 ‘분명하게 규정된definite’의 의미가 물리적 공간 내에서 기계가 수행하는, 직관적으로도 너무나 ‘분명하게 규정되는’ 동작으로 정의될 수 있게 된다. 튜링의 생각은 이러한 작용이나 동작은 누구에게나 명백하게 이해될 수 있으니, 이런 명백하고 간단한 동작의 결합만으로 수학 명제의 참․거짓이 결정될 수 있다면 힐버트 프로그램은 실행가능해 질 것이다.

하지만 1936년 튜링이 도달한 결론은 괴델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이었다. 괴델처럼 논리학의 추론규칙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기계적으로 계산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경우로 수학적 증명을 극단적으로 직관적으로 만들어도 힐버트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흔히 튜링의 ‘멈춤 문제’로 알려진 그의 증명은 특정 수학적 명제의 참과 거짓을 유한한 기계적 단계를 거쳐 계산하고 그 계산 결과로 참/거짓 여부가 확정되면 더 이상의 작동을 멈추는 기계를 상정한 후, 수학적으로 의미있는 문제 중에는 이 기계에 답을 요구했을 때 기계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어떤 수학적 명제는 힐버트가 요구하는 엄밀하고 분명한 방식으로는 참/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멈춤 기계에 의해 유한한 단계를 거쳐 참/거짓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수학의 영역도 많은데 튜링은 이 영역을 ‘계산가능한’ 영역으로 정의했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튜링은 수학적 명제 전체가 계산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을 괴델보다 훨씬 일반적인 방식으로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튜링의 연구가 가지는 진정한 의의는 단순히 괴델의 정리를 일반화시킨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튜링은 우리가 직관적으로는 알지만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계산가능하다’는 속성을 멈춤 기계라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되는 기계 장치를 활용하여 정의했다. 훗날 튜링은 이 생각을 튜링 기계라는 보다 일반화된 형태로 추상화 시킨다. 튜링 기계란 유한한 시간 내에 작동하는 계산 기계로서 그 작동에 필요한 자원예를 들어 기억 장치, 기록 장치 등에는 제한이 가해지지 않는, 즉 필요한 만큼 계속해서 확장시킬 수 있는 기계를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튜링은 직관적으로 계산가능한 모든 문제는 그에 대응되는 ‘종류’의 튜링기계로 계산가능하다는 주장까지 하게 된다. 이에 따르면 계산가능성 개념 자체가 특정 튜링 기계로 계산가능함을 의미하게 된다. 튜링은 이러한 대담한 생각을 자신의 생각과 논리적으로 동등한 주장을 한 프린스턴의 논리학자 알론조 처치의 지도하에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공식적으로 제안하게 되는데 이를 튜링-처치 논제라고 한다.

보편 튜링 기계와 기계 컴퓨터의 탄생

튜링 기계란 기계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기계라기 보다는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기계 ‘종류’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이다. 튜링이 처음 고안한 튜링 기계는 물리적으로 테이프에 숫자를 쓰고 지우고 하는 방식이어서 매우 느렸겠지만 현재는 이와 원리적으로 동등한 과정을 전자적으로 처리하기에 사람이 덧셈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튜링 기계는 인간이 지적인 작업, 예를 들어 덧셈을 하는 방식이 논리적으로 유일한 방식도 가장 효율적인 방식도 아니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실증해 보여 준다.

튜링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모든 종류의 튜링 기계, 즉 모든 종류의 계산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특수한 계산을 하는 모든 튜링 기계를 ‘흉내’ 낼 수 있는 보편 기계를 상상했다. 이런 보편 튜링 기계는 원칙적으로 모든 종류의 계산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계산 가능한 작업은 보편 튜링 기계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튜링은 이런 보편 튜링 기계에 대한 이론을 만들고 실제로 이것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려 노력했다. 이런 의미에서 튜링은 수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우리의 컴퓨터가 튜링이 꿈꾸었던 보편 튜링 기계에 가장 가까운 형태이다.

비록 튜링이 계산가능성을 기계적으로 해명하면서 당시에 널리 쓰이던 전신telegraph이라는 구체적 기계를 염두에 두긴 하였지만, 튜링-처치 논제를 주장할 때까지만 해도 튜링의 생각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튜링은 2차 대전 중에 영국 정보국을 위해 ‘수수께끼Enigma’로 알려진 독일의 암호 생성기를 연구하면서 계산기 제작의 핵심인 ‘조합성compositionality’에 주목하게 된다. 적군의 암호체계를 해독하기 위해 튜링은 수많은 ‘컴퓨터’를 동원했다. 당시에 컴퓨터란 앞서 설명했듯이 계산을 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튜링은 수많은 ‘컴퓨터’를 한 방에 모아놓고 각각은 간단한 계산만 하게 지시한 후 그것들을 엮어서 결국에는 암호의 전체 의미를 알아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튜링은 이 작업을 설계하고 감독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계산 과정이 워낙 복잡하기에 그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있는 튜링을 제외하고 실제 계산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계산이 전체 작업에 비추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전혀 모르고 그전 주어진 계산만 수행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의 계산을 서로 잘 연결해 주면 당시 최고 수준의 독일 암호체계를 해독하는 놀라운 성취를 할 수 있다.

튜링은 이 점에 주목했다. 계산하는 사람 각각의 역할은 간단한 기계 장치의 작동으로 대치할 수 있는, 인지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제대로 작동하는 튜링 기계라면 인간 컴퓨터가 하는 작업은 정확하고 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간단한 기계조작을 모두 결합하여 하나의 복합 기계를 만들면 암호 풀기나 논리적 추론, 수학명제를 증명하기와 같이 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작업도 해낼 수 있었다. 튜링은 이로부터 아무리 복잡하고 고도의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작업도 그것을 잘게 쪼개서 각각은 비교적 간단한 계산 과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튜링 기계로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일을 수행하는 튜링 기계는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 복잡한 일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 전체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은 오직 개별적인 단순한 계산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엮여져서 복잡한 연산 결과를 산출하는지 그 ‘설계’ 내용을 알고 있는 튜링과 같은 계산과학자 뿐이었다. 결국 튜링은 이 전시 경험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컴퓨터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튜링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지능과 동등한 능력을 기계가 가지게 되는 시기가 조만간 도래하리라 예상하고, 특정 기계가 정말로 지능을 가졌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튜링은 인간 지능의 본성에 대해 철학자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답답해했고, 요원해 보이는 지능에 정의에 의거한 검사가 아니라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전제에서 근거한 검사를 제안했다. 누구도 인간이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기계가 인간과 경쟁하여 뒤지지 않는 지적 행태를 보여준다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능을 가진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기계가 지능을 가졌는지를 순전히 기계가 인간과 비교하여 얼마나 인간 지능을 잘 흉내내는지,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기계가 인간적인 대화를 얼마나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잘 흉내내는지 여부로 판단하는 ‘튜링 검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튜링 검사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능에 대한 비교검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통계적 결론을 내린다는 점이다. 검사자는 피검사자인 기계와 인간에게 오직 간접적인 방식, 즉 문자화된 대화의 형태로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다. 인간과 기계는 각자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검사자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질문에 답한다. 검사자는 인간처럼 진정한 지능을 가진 존재만이 대답할 수 있는 여러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종합하여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검사자가 기계를 선택하면 기계는 적어도 인간에게 부여되는 지능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튜링 검사에서 기계의 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얼마나 잘 흉내 내는 지에 따라 주어진다. 이는 튜링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실제로 기계에게 공평하지 않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진 후 잘 대답하지 못하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외계인이 튜링검사를 받는다면, 절대로 지능을 가진다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튜링 검사는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이다. 물론 튜링에게 그런 비판을 하기는 어렵다. 지능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난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인간의 지능에 빗대어 기계 지능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튜링에게 누군가 외계인을 포함해 모든 지적 존재가 만족해야 할 지능의 기준을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했다면 아마도 튜링은 그 기준에 입각해서 튜링 검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튜링 검사의 또 다른 특징은 주어진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대상이 지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답변이 하나 이상이기에 특정 기계가 튜링 검사를 통과했는지의 여부는 여러 번의 검사를 시행하여 ‘평균적으로’ 기계가 인간보다 성적이 좋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별히 ‘기계적인’ 답변을 하는 인간과 짝지어진 기계는 우연히 한 번의 튜링 검사를 통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튜링은 이렇게 평균적인 승률을 따져 시행된 튜링 검사를 통과할 기계가 곧 등장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튜링 이후에 이루어진 인공지능 연구는 이런 튜링의 확신을 실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임을 밝혀냈다. 핵심은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흉내내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지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문제라도 수학적으로 잘 정의될 수 있으면 컴퓨터는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보다는 튜링 검사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언어 구사 능력이 기계로 구현하기에는 여러 난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튜링 검사를 통과했다고 알려진 몇몇 사례는 대상자가 자신을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 청소년이라고 소개해서 약간은 어눌하거나 독특한 대답을 심사자가 너그럽게(?) 이해한 경우에 한정되었다.

물론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으로 적어도 튜링이 원래 고안했던 대화 형식의 튜링 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튜링의 기대보다는 더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인간 지능에 비추어’ 지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기계 지능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튜링 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 기계 지능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해도 그 기계 지능이 우리에게는 매우 다른, ‘낯선’ 종류의 지능이라는 튜링의 지적에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최첨단의 기계 지능은 여전히 인간지능을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흉내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튜링의 비극적 최후

튜링은 전후 자신이 조국을 위해 전쟁 중에 한 일에 대해 기밀유지의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맨체스터에서 컴퓨터를 제작하는 작업도 충분한 지원을 얻지 못해 완성되지 못하게 되자 크나큰 좌절감에 빠졌다. 튜링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여 1948년 올림픽에서 영국 대표로 출전할 뻔 했다. 하지만 튜링은 1952년 자신의 동성애 성적 취향으로 개인적 삶과 학자적 삶에 있어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그는 동네 술집에서 만난 매력적인 청년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함께 밤을 보냈는데 이 청년이 다음 날 집에서 몇 가지 물건을 훔쳐간 것을 발견하고 순진하게(?)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범인을 잡았고 그 과정에서 튜링의 동성애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법률에 따르면 튜링은 감옥에 가거나 잘못된 성적 취향을 교정하기 위해 남성 호르몬을 정기적으로 투여 받아야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가혹할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처벌이지만, 당시에는 동성애란 남성을 남성답게 만들고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성호르몬이 불충분해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동성애 남성에게는 남성성을 증강시켜 줄 수 있는 남성 호르몬을 동성애 여성에게는 여성성을 증강시켜 줄 수 있는 여성 호르몬을 처방해 줌으로써 이 질병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결국 감옥 대신 튜링은 성호르몬 치료를 받았고 수많은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이 모든 고초를 겪으며 튜링은 심리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게 되었고 결국에는 1954년 마치 화학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독극물에 감염된 것처럼 꾸며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 현장에는 반쯤 먹다남은 독사과가 놓여 있었다. 자신이 풀기 위해 몰두하던 독일 암호체계만큼이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살다간 사람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이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앤드류 호지스 2015,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김희주, 한지원 옮김, 동아시아

짐 오타비아니, 릴런드 퍼비스 2016, 『앨런 튜링』, 김아림 옮김, 푸른 지식

잭 코플랜드 2014, 『앨런 튜링』, 이재범 옮김, 지식함지

마틴 데이비스 2005, 『수학자, 컴퓨터를 만들다: 라이프니츠에서 튜링까지』, 박정일 옮김, 지식의 풍경

 

<웹자료>

http://www.turing.org.uk/turing/ : 튜링에 대한 권위있는 전기를 쓴 앤드류 호지스가 운영하는 튜링의 홈페이지.

http://www.alanturing.net/ : 튜링의 필적이 남아 있는 문서, 저작, 인공지능과 관련된 자료 등이 있는 튜링의 아카이브.

이상욱
HORIZON 편집위원,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