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연재 시리즈 중 약간 쉬어가는(!) 느낌으로, 이전 글([2])에서 예고하였던 내용을 다룰 다음 연재글을 대비하는 재료로 구성해 보았다. 특별히, 벡터공간의 표준기저에 대해 탐색하는 전체 연재의 흐름과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행렬


다음 연재글에서 쓰이게 될 기초적인 도구들 중 영문으로는 matrix매트릭스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는 개념, 즉 행렬에 대해서 알아보자. 행렬은 원래 고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의 일부였지만 2009년 이후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가,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부활하였다. 행렬이라는 것이 워낙에 거의 모든 분야의 수학, 많은 이론과학, 공학, 특히 AI 이론에서 기초 중의 기초로 쓰이기 때문에,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약간의 비밀을 말하자면, 행렬이 공식적으로 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에서 빠졌을 때에도,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행렬을 다루는 법 중 일부를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기는 했다(어떤 단원에서일까?). 홍길동마냥, 그 누구도 행렬이라고 말하지는 못 했지만..

행렬은 아래의 예시들과 같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숫자들을 배열한 것을 말한다:

$$(3), \quad \left( \begin{array}{cc} 1 & -2 \\ 4 & 0 \end{array} \right), \quad \left( \begin{array}{ccc} 1 & 0 & 0 \\ 0 & 0 & 1 \end{array} \right), \quad \left( \begin{array}{ccc} \frac{1}{2} & 1 & 0 \\ 0 & \frac{1}{2} & 1 \\ 0 & 0 & \frac{1}{2} \end{array} \right).$$

각각의 가로줄을 행row라 하고, 각각의 세로줄을 열column이라 한다. 행과 열로 이루어져 있어 행렬이라 부르니, 이름은 꽤 잘 지어졌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행렬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즉, 코딩)에서도 많이 등장하는데, 컴퓨터 이론에서는 배열array로 불린다. 행의 개수를 \(m\), 열의 개수를 \(n\)이라 하면, 이 행렬은 크기가 \(m \times n\)인 행렬이라고 부른다(크기는 ‘엠 곱하기 엔’ 혹은 ‘엠 바이 엔’과 같이 읽으면 된다). 이 때 \(m\)과 \(n\)이 같으면 그 행렬을 정사각행렬square matrix라고 부르자. 예컨대, 위의 예시 중 왼쪽에서 두 번째 행렬은 \(2 \times 2\) 행렬, 세 번째 행렬은 \(2\times 3\) 행렬이며, 예시의 네 행렬들 중 왼쪽에서 세 번째 행렬을 제외하면 모두 정사각행렬이다. 각 \(m \times n\) 행렬에서, 행들은 위에서부터 첫 번째 행, 두 번째 행, …, \(m\)번째 행으로 순서를 매기며, 열들은 왼쪽에서부터 첫 번째 열, 두 번째 열, …, \(n\)번째 열로 순서를 매긴다. 행렬에 써 있는 각 숫자를 이 행렬의 성분이라고 부르며, \(i\)번째 행과 \(j\)번째 열에 위치한 성분을 이 행렬의 \((i,j)\)-성분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위의 예시 중 왼쪽에서 두 번째 행렬에서 \((1,2)\)-성분의 값은 \(-2\)이며, \((2,2)\)-성분의 값은 \(0\)이다. 성분이 모두 유리수이면 유리행렬, 모두 복소수이면 복소행렬이라 부르기도 한다.

행렬은 그 자체로 의미와 용도가 있기는 하지만, 행렬의 진가는 행렬들로 행할 수 있는 연산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같은 크기의 행렬들은 자연스럽게 벡터공간을 이룬다. 즉 \(m\times n\)행렬끼리는 다음과 같이 더하거나 뺄 수 있고, 행렬에 상수곱을 할 수도 있다.

$$\left( \begin{array}{ccc} a_1 & a_2 & a_3 \\a_4 & a_5 & a_6 \end{array} \right) + \left( \begin{array}{ccc} b_1 & b_2 & b_3 \\ b_4 & b_5 & b_6 \end{array} \right) = \left( \begin{array}{ccc} a_1 + b_1 & a_2 + b_2 & a_3 + b_3 \\a_4 + b_4 & a_5 + b_5 & a_6 + b_6 \end{array} \right)$$

$$c \cdot \left( \begin{array}{ccc} a_1 & a_2 & a_3 \\ a_4 & a_5 & a_6 \end{array} \right) = \left( \begin{array}{ccc} c a_1 & c a_2 & c a_3 \\c a_4 & c a_5 & c a_6 \end{array} \right)$$

위와 같은 연산을 ‘성분별 연산’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행렬들 간에 ‘덧셈’과 ‘상수곱’이라고 불릴 만한 연산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위의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위의 두 식은 우리가 사용할 특정한 연산의 ‘정의’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에는 독자들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행렬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의 원천은 행렬들의 곱셈이다. 행렬의 곱셈이라고 부를 만한 연산 역시 정의하는 방법이 한 가지는 아니지만, 현대 수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며 행렬을 강력한 수학적 도구로 만들어주는 곱셈은 아래와 같이 다소 복잡해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크기가 \(m \times n\) 인 행렬 \(A\)와 크기가 \(k \times \ell\)인 행렬 \(B\)가 있을 때, 이 두 행렬을 곱하여 새로운 행렬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결과물인 행렬을 \(AB\)라고 표기하겠다. 참고로, 행렬의 곱은 다른 곱셈의 경우와 달리 곱셈 기호에 주의해야 해서, \(A\cdot B\)나 \(A\times B\)와 같이 나타내지 않고 \(AB\)로만 쓰기로 한다. 우리는 이 곱셈을 \(n\)과 \(k\)가 서로 같을 때에만 정의하며, 그렇지 않을 때에는 \(AB\)가 정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크기가 \(m \times n\)인 행렬 \(A\)와 크기가 \(n\times \ell\)인 행렬 \(B\)를 곱한 행렬 \(AB\)는 크기가 \(m \times \ell\)이며, 각 \((i,j)\)-성분이 \(A\)의 \(i\)번째 행과 \(B\)의 \(j\)번째 열을 ‘곱’ 혹은 ‘내적’하여 얻어지는 숫자인 행렬로 정의한다. 다음의 예시를 통하여 살펴보자:

$$\left( \begin{array}{cccc} 1 & -1 & 3 & 2 \\ -3 & 4 & 8 & 5 \end{array} \right) \left( \begin{array}{ccc} 2 & 1 & -1 \\ 0 & 3 & 4 \\ 1 & 1 & -1 \\ 5 & 8 & 3 \end{array} \right) = \left( \begin{array}{ccc} c_1 & c_2 & c_3 \\ c_4 & c_5 & c_6 \end{array} \right)$$

우선 좌변은 크기가 \(2\times 4\)인 행렬과 크기가 \(4\times 3\)인 행렬의 곱이므로 곱이 잘 정의되며 결과물은 우변에서와 같이 크기가 \(2\times 3\)인 행렬이다. 곱셈 행렬의 각 성분은 연습문제로 남기기 위해 미지수를 사용하였다. \((1,3)\)-성분인 \(c_3\)를 계산해보자. 좌변의 첫째 행렬의 \(1\)번째 행은 성분들이 \(1,-1,3,2\)이고 좌변의 둘째 행렬의 \(3\)번째 열의 성분들은 \(-1,4,-1,3\)이므로 이들을 ‘내적’하면 \(1 \cdot (-1) + (-1) \cdot 4 + 3 \cdot (-1) + 2 \cdot 3 = -1 -4-3+6 = -2\)이어서, \(c_3=-2\)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곱셈 행렬의 모든 성분들을 계산할 수 있다.

물론 행렬의 곱셈을 이렇게 다소 어려운 방식으로 정의한 데에는 타당한 이유와 동기가 있다. 행렬의 곱셈을 이렇게 정의해야만 행렬이 현대의 선형대수학에서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먼저, 원소 간 더하기와 원소와 상수의 곱이 정의된 집합을 일컫는 벡터공간이 하나 주어져있을 때, 이 벡터공간의 특수한 부분집합인 기저basis를 고르면, 이 벡터공간의 각 원소를 숫자 여러 개, 즉 좌표들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1] 참조). 나아가서 벡터공간 두 개가 있을 때, 이 두 벡터공간들의 기저들을 고르면, 이 두 벡터공간 사이의 각 선형사상linear map을 행렬로 표현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선형대수학 교재를 참조하기 바란다). 선형사상은 지난 두 번째 연재글([2])에서 잠시 논의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매우 단순화하여 이해할 수 있다: $$\mbox{행렬} \quad \sim \quad \mbox{선형사상}$$

선형사상들은 서로 합성할 수 있을 때가 있는데, 선형사상의 합성을 행렬의 언어로 표현하면 위에서 정의한 행렬의 곱이 된다.


행렬 교환자

행렬들 중에서는 정사각행렬, 즉 행의 개수와 열의 개수가 같은 \(n \times n\) 행렬들이 가장 널리 쓰인다. 기분 좋은 성질 중 하나는, 자연수 \(n\)을 고정하면, \(n \times n\) 행렬들 \(A,B\)는 항상 서로 곱할 수 있으며, 곱한 결과인 \(AB\)도 \(n \times n\) 행렬이라는 점이다. 이 때, 행렬의 중요한 성질이 등장하는데, 곱셈이 항상 교환가능commutative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즉 \(AB\)와 \(BA\) 모두 잘 정의된 행렬이지만, 꼭 같을 필요는 없다. 만약 어떤 행렬들 \(A,B\)가 \(AB = BA\)라는 식을 만족하면 우리는 \(A,B\)가 서로 교환가능하다고 부른다. 주어진 임의의 두 \(n\times n\) 행렬들 \(A,B\)가 교환가능한지 아닌지, 아니라면 얼마나 심하게 아닌지를 측정할 수 있는 양으로 행렬 교환자matrix commutator라는 개념이 있는데, \(AB – BA\)로 정의하며, 이 행렬을 보통 \([A,B]\)로 표기한다.

$$[A,B] = AB – BA.$$

예시를 살펴보자 (계산이 잘 맞는지는 직접 체크해보기 바란다):

$$\left[ \left( \begin{array}{cc} 2 & -1 \\ 0 & 3 \end{array} \right), \,  \left( \begin{array}{cc} 0 & 1 \\ 1 & 2 \end{array} \right) \right] = \left( \begin{array}{cc} 2 & -1 \\ 0 & 3 \end{array} \right) \left( \begin{array}{cc} 0 & 1 \\ 1 & 2 \end{array} \right) – \left( \begin{array}{cc} 0 & 1 \\ 1 & 2 \end{array} \right) \left( \begin{array}{cc} 2 & -1 \\ 0 & 3 \end{array} \right) = \left( \begin{array}{cc} -1 & -3 \\ 1 & 1 \end{array} \right)$$

생각해보면 행렬 교환자라는 개념은, 마치 행렬 곱셈과도 같이, \(n \times n\) 행렬 두 개를 먹고 \(n \times n\) 행렬 하나를 뱉어내는 이항연산binary operation의 일종이다. 사실 이 행렬 교환자 연산은 수학과 물리학에서 행렬 곱셈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처음 등장한 것은 대략 150년 전 소퍼스 리Sophus Lie의 무한소 변환infinitesimal transformation에 관한 연구에서 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핵심적인 현상을 단순화하여 소개해보자면, 어떤 행성 표면의 한 시작점에서 먼저 ‘동쪽’으로 100미터 걸어간 뒤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100미터 걸어가서 도달하는 지점과, 같은 시작점에서 이번에는 먼저 ‘북쪽’으로 100미터 걸어간 뒤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100미터 걸어가서 도달하는 지점이 서로 같은지, 만약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지를 측정하는 상황을 상정해볼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히 서로 같을 것 같지만, 사실 이 문제의 답은 행성 표면이 어떻게 휘어져있는지에 달려있다 (그림 1 참조).


위의 상황에서 물론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행성 표면의 기하학적 정보이기는 하지만, 그 기하학적 정보를 뽑아내기 위하여 우리가 한 행위도 고찰해볼만 하다. 즉 ‘동쪽으로 100미터 걸어가라’와 ‘북쪽으로 100미터 걸어가라’는 두 가지 명령을 순서를 바꾸어 행했을 때, 그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물리학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양자물리학 태동기에 발견되었는데, 전자electron과 같이 아주 작은 스케일에서는 위치를 측정하는 행위와 운동량을 측정하는 행위, 이 두 행위를 순차적으로 수행할 때 무엇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준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후 양자물리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에 있어서 행렬 교환자와 그 일반화된 개념들이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에쓰엘투(\(\mathfrak{sl}_2\))의 표현

이제 다음 연재글에서 핵심적으로 사용할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석대로 쌓아올리는 방식보다는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만을 가지고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정의. 어떤 자연수 \(n\)에 대하여, 세 \(n \times n\) 행렬들의 순서쌍 \((H,E,F)\)가 다음 세 방정식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 이 순서쌍을 에쓰엘투의 (\(n\)차원) 표현이라고 부른다:

$$[H,E] = 2E, \qquad [H,F] = -2F, \qquad [E,F] = H.$$

좀 더 엄밀히 하자면 행렬의 성분들로 어느 종류의 숫자를 사용하도록 허용하는지, 즉 성분들이 어느 체field의 원소인지 말해줘야 하는데, 우리는 성분들이 복소수인 행렬들, 즉 복소행렬을 다루고 있다고 가정하자.

예시 중 가장 쉬운 ‘자명한’ 예시는, 임의의 \(n\)에 대하여, 세 행렬이 모두 \(n \times n\) 영행렬zero matrix, 즉 성분이 모두 0인 행렬일 때이다. 자명하지 않은 예시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n=2\)일 때의 다음 예시이다:

$$H = \left( \begin{array}{cc} 1 & 0 \\ 0 & -1 \end{array} \right), \qquad E = \left( \begin{array}{cc} 0 & 1 \\ 0 & 0 \end{array} \right), \qquad F = \left( \begin{array}{cc} 0 & 0 \\ 1 & 0 \end{array} \right).$$

이 행렬들이 정말 위의 세 방정식을 만족하는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예컨대 \(EF = \left( \begin{smallmatrix} 1 & 0 \\ 0 & 0 \end{smallmatrix} \right)\), \(FE = \left( \begin{smallmatrix} 0 & 0 \\ 0 & 1 \end{smallmatrix} \right)\) 이므로,  \(EF – FE = \left( \begin{smallmatrix} 1 & 0 \\ 0 & -1 \end{smallmatrix} \right)\) 이어서 세 번째 방정식 \([E,F]= H\)가 성립함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서 \(n=3\)일 때는 다음의 예시가 있다:

$$H = \left( \begin{array}{ccc} 2 & 0 & 0 \\ 0 & 0 & 0 \\ 0 & 0 & -2 \end{array} \right), \qquad E = \left( \begin{array}{ccc} 0 & 2 & 0 \\ 0 & 0 & 1 \\ 0 & 0 & 0 \end{array} \right), \qquad F = \left( \begin{array}{ccc} 0 & 0 & 0 \\ 1 & 0 & 0 \\ 0 & 2 & 0 \end{array} \right).$$

독자들께서 자기 손으로 에쓰엘투의 표현들을 더 찾아보려는 시도를 해보기를 권한다. 즉, 2나 3과 같이 작은 크기의 적당한 \(n\)을 정한 뒤, \(n \times n\) 행렬들 세 개 \(H,E,F\)를 찾아서 세 행렬 방정식 \([H,E] = 2E\), \([H,F] = -2F\), \([E,F] = H\) 모두가 만족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소 무모하지만 직접적인 방법으로, 찾고자 하는 세 행렬의 모든 성분들을 다 미지수로 놓으면, 미지수의 총 개수가 \(3n^2\)개이고, 각 행렬 방정식에서 각 성분마다 미지수에 관한 (이차) 방정식 하나가 나오므로, 총 방정식의 개수가 \(3n^2\)개인 연립 방정식을 풀면 된다. 이 방식은 \(n\)이 클 경우 계산 시간이 오래 소요되기도 하거니와, 답을 구하더라도 그 답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금방 얻기가 일반적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자들이 에쓰엘투의 표현과 친해지도록 해줄 것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나왔던 대로, 어떤 수학적 대상과 친해지려면 이렇게 직접 부대껴보는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다음 연재글에서는 간단한 행렬의 조작을 통해 일견 간단해보이는 위의 \(n=2\)에서의 예시만을 가지고 가능한 모든 에쓰엘투의 표현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지름길을 모르는 상태로 손수 고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그 지름길의 가치를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쓰엘투

‘에쓰엘투의 표현’을 소개할 때에, 최대한 기초적인 개념들만을 가지고 정의하기 위하여, ‘에쓰엘투’나 ‘표현’을 정의하지 않고 행렬의 기본 연산들만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행렬만 가지고 설명하다보니, 우리의 정의에서 사용된 행렬 연립방정식 \([H,E] = 2E\), \([H,F] = -2F\), \([E,F] = H\)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명쾌하게 보여줄 수 없었다. 다음 연재글에서도 최대한 행렬만을 가지고 에쓰엘투의 표현들에 대한 ‘초보적인elementary’ 설명을 이어나갈 예정이기는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에쓰엘투와 표현 각각에 대하여 조금 더 깊게 살펴보려고 한다.

표현representation은 군group이나 대수algebra와 같이 특정한 구조를 가진 수학적 대상이 다른 수학적 대상, 대표적으로는 집합이나 벡터공간에 ‘대칭’으로 ‘작용’하며 자신을 드러낼 때 쓰이는 단어이다. 수학적 대상은 표현을 통하여 자신을 남김 없이 드러내보일 때도 있고, 때로는 일부 정보를 숨기고 드러낼 때도 있다. 남김 없이 드러내는 표현을 충실한faithful 표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표현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를 드러내거나 자신보다 ‘더 크게’ 자신을 드러내보일 수는 없다. 비유적으로, 어떤 작가가 무엇인가를 통하여, 대표적으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보인다고 생각해보자. 더 나아가서, 이 작품은 이 작품을 감상하는 관찰자의 내면에 ‘작용’하여 작가 내면에 있던 무언가가 관찰자의 내면에서 드러나게 할 것이다. 이 작품을 ‘표현’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작가는 자기 내면의 구조에 맞게 작품을 구성했어야 하고, 자기 내면에 없는 것을 나타내면 안된다. 이 두 가지 조건도 현실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비유에서 더욱 현실성이 없는 개념은 ‘충실한 표현’이다. 이것은 마치 작가의 소설 하나를 읽으면 그 작가의 내면 세계에 대해 남김 없이 전부 알 수 있는 경우와 같다. 굳이 조금 더 현실적인 비유를 찾아보자면, 이 작가의 DNA를 비롯하여 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하나의 컴퓨터 파일에 담았다면, 이 파일은 이 작가의 충실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쓰엘투(\(\mathfrak{sl}_2\))는 무엇인가? 정의를 제시하기 전에, 우리가 위에서 제시한 \(n=2\)와 \(n=3\)에서의 예시 표현들이 각각 에쓰엘투라는 수학적 대상의 충실한 표현임을 밝혀둔다. 즉 이 두 예시 각각이, 우리가 에쓰엘투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남김없이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n=2\)에서의 예시로 제시된 표현은 에쓰엘투 그 자체이다. 작가 본인은 작가의 충실한 표현인 것과 비슷하게. 이제 조금 더 엄밀하게 들어가보면, 에쓰엘투는 리 대수Lie algebra라고 불리는 수학적 대상의 예시인데, 이것은 벡터공간이면서 ‘리 대수 공리’라는 모종의 공리를 만족하는 이항연산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n=2\)에서 에쓰엘투의 표현으로 행렬 세 개 \(H,E,F\)를 제시하였는데, 에쓰엘투 자체는 벡터공간으로서는 이 세 행렬의 모든 선형결합의 모임, 즉 숫자 \(a,b,c\)를 사용해 \(aH + bE + cF\)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2\times 2\) 행렬들의 모임이다. 즉 \(H,E,F\)는 에쓰엘투라는 벡터공간의 특정한 원소 세 개일 뿐이다. 짐작하는 독자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세 원소들은 에쓰엘투의 기저를 이룬다.

그런데 에쓰엘투는 \(H,E,F\)라는 특정한 세 개의 행렬, 즉 특정한 기저의 도움 없이도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매우 깔끔하게 정의할 수 있다:

$$\mathfrak{sl}_2 = \left\{ \left. \left( \begin{smallmatrix} a & b \\ c & d \end{smallmatrix} \right) \, \right| \, a+d = 0 \, \right\}.$$

즉 \(2 \times 2\) 행렬 중 대각합trace, 즉 \((1,1)\)-성분과 \((2,2)\)-성분의 합이 \(0\)인 모든 행렬들의 모임인 것이다. 위와 같이 대각합을 사용하여 정의된 에쓰엘투(\(\mathfrak{sl}_2\))라는 집합이 벡터공간이며, 우리의 세 행렬 \(H = \left( \begin{smallmatrix} 1 & 0 \\ 0 & -1 \end{smallmatrix} \right)\), \(E = \left( \begin{smallmatrix} 0 & 1 \\ 0 & 0 \end{smallmatrix} \right)\), \(F = \left( \begin{smallmatrix} 0 & 0 \\ 1 & 0 \end{smallmatrix} \right)\)이 이것의 기저가 됨을 증명하는 것은 선형대수학의 간단한 연습문제이다. 에쓰엘투를 리 대수로 만들어 주는 이항연산은 다름아닌 행렬 교환자 \([A,B] = AB – BA\)이다. 실제로, 대각합이 0인 두 행렬의 행렬 교환자도 대각합이 0임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제 ‘에쓰엘투의 \(n\)차원 표현’이라는 개념을 사상

$$\pi : \mathfrak{sl}_2 \to \{\mbox{$n\times n$ 행렬들}\}$$

으로서 리 대수 구조를 보존하는 것, 즉 선형사상이면서 행렬 교환자를 다음의 의미에서 보존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pi([A,B]) = [\pi(A), \pi(B)].$$

이렇게 대각합을 사용한 에쓰엘투의 깔끔한 정의와 행렬 교환자라는 연산만을 이용한 ‘에쓰엘투의 표현’의 정의가 리 대수 표현론의 교과서에 등장할 만한 정석적인 정의이며, 일견 그닥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행렬 연립방정식 \([H,E] = 2E\), \([H,F] = -2F\), \([E,F] = H\) 없이 기술할 수 있는 더욱 개념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 행렬 연립방정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모든 리 대수 이론의 근본을 이루는 중요한 방정식이기는 하다. 리 대수나 표현론의 전문가가 추후 호라이즌에서 관련 내용을 설명해줄 날을 기다려보자.

이로서 에쓰엘투의 표현을 이전 절에서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고 개념적으로 정의하기는 했으나, 리 대수라는 개념 자체, 그리고 행렬 교환자라는 특수해보이는 연산이 얼마나 자연스럽거나 중요한 수학적 대상인지에 대해 의문을 여전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려면 리 군Lie group이라는 개념, 그리고 리 군과 리 대수의 관계를 소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이번 글에서는 이쯤에서 우리의 궁금증을 꾹 참아보기로 한다. 참고로 리 군, 리 대수와 그 표현들, 그 중에서도 특히 리 대수 에쓰엘투(\(\mathfrak{sl}_2\))와 그 표현들은 대수학, 기하학 등 수학의 많은 분야들은 물론이고 양자물리학에서도 근본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평생의 연구를 에쓰엘투에만 바치는 경우가 현대에도 왕왕 있으며, 필자의 연구의 상당 부분도 에쓰엘투와 관련되어 있다. 만약 독자께서 이번 글을 읽으며 여기 저기에서 힐끔 소개된 다양한 내용들에 관심이 생겼다면, 가까운 수학자에게 문의하거나 관련 서적 혹은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기를 바란다 (리 대수와 에쓰엘투, 그리고 그들의 표현에 관해서는 리 대수 표현론의 고전인 [3]을 참조하면 좋다).

 

참고문헌

  1. 김현규, 표준기저를 찾아서 [1], HORIZON 2024 August 14, https://horizon.kias.re.kr/29695/
  2. 김현규, 표준기저를 찾아서 [2], HORIZON 2024 November 20, https://horizon.kias.re.kr/30537/
  3. James E. Humphreys, Introduction to Lie Algebras and Representation Theory, Graduate Texts in Mathematics 9, Springer New York, NY, 1972.

 

김현규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