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사실에 대해서 언어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손목이 부러졌어요.’를 영어에서는 ‘I’ve broken my wrist.’라고 표현한다. 즉 ‘나는 내 손목을 부러뜨렸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어 화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방식이다. 내가 일부러 부러뜨린 것이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아마 영어 원어민이라면 이렇게 답변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럼 자기가 그랬지 남이 그랬나? 이처럼 언어마다 표현법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 언어에 녹아 있는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 언어마다 고유한 표현 방식이 있고 이는 사고 방식에 원인이 있다.
언어가 사고와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언어학, 심리학, 인류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주제였다. 이 중에서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구조화되고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하는 이론을 ‘언어 상대성linguistic relativism 가설’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지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틀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류학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 1884–1939와 그의 제자 벤자민 워프Benjamin Lee Whorf, 1897–1941에 의해 주창되었기에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라고도 부르는데, 한 마디로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할 수 있는 범위가 절대적으로 한정된다는 주장으로, 궁극적으로는 언어가 없으면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언어가 인간의 인식을 결정한다고 하여 언어 결정론linguistic determinism으로도 불린다.
–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구조화된다. (언어 상대성 가설)
그런데 1950~1960년대에 이르러 행동주의Behaviorism 심리학이 대두하면서 사피어-워프의 이론은 비판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언어 보편주의 이론이 영향력이 커지면서 워프 이론에 대한 비판은 더욱 커졌다. 언어 상대주의는 언어 간의 차이가 중요하고 그 차이 때문에 사고와 세계관이 다르다고 보지만, 언어 보편주의는 언어가 표면적으로 차이가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같기 때문에 사고와 세계관의 차이는 언어가 아니라 단지 문화에서 나온다고 여긴다.
이처럼 언어결정론은 지나치게 강하고 극단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퇴조하고, 언어 상대성 가설은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되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다소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즉 다양한 언어 구조는 인식과 사고 방식에 차이를 만들어 낼 뿐, 언어적 차이가 사고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러나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되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정론이다.
1990년대 이후,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과 심리언어학psycholinguistics이 발전하면서 언어가 사고와 인식에 강력한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식의 약한 상대성 가설에 힘이 더욱 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언어가 사고의 경향성과 인식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관점이 실험적, 학제적 연구를 통해 학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예컨대 언어심리학자 레라 보로디츠키Lera Boroditsky는 언어가 시간, 공간, 수 개념 등 인지 범주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를 해 오고 있으며, 스티븐 레빈슨Stephen C. Levinson은 언어가 공간적 사고와 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다양한 언어적·문화적 맥락에서 공간 표현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다.1 예컨대 언어에 따라서 공간을 기술하는 방식이 다른데, ‘컵이 테이블의 앞쪽에 있다’처럼 대상 간의 관계를 통해 기술할 수도 있고, ‘컵이 내 오른쪽에 있다’처럼 화자의 관점으로 기술할 수도 있지만, ‘컵이 북쪽에 있다’처럼 고정된 외적 기준을 사용하는 언어도 있다. 연구 결과, 물체의 방향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인지활동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가 사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언어가 시간, 공간, 수 같은 인지 범주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특정한 언어가 다양한 기술 방식 가운데 특정한 표현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듯이, 언어마다 고유한 표현 방식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 공동체, 즉 사회의 세계관이 그러한 특정한 표현법을 선호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언어와 사고의 관계는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는 상호 인과관계에 있다. 한 언어의 특정한 언어표현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그러한 공동체의 사고 구조가 그 언어에 영향을 미쳐서 언어구조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언어와 사고의 이 같은 상호구성mutual constitution의 원리에 따라 우리는 두 번에 걸쳐 연재되는 글에서 한국어와 영어에 나타난 욕구와 동기의 표현 방식 차이와 세계관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인간은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특성은 욕구와 동기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욕구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말하고,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만일 한 사회의 사고와 언어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그 언어에 나타난 욕구와 동기 표현을 알아보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말에서 욕구를 나타내는 표현법이 영어에서의 표현법과는 과연 어떠한 차이를 보일까? 이것을 알면 두 언어의 기저에 깔린 세계관과 곧바로 만나게 될 것이다.
욕구의 표현,
욕구와 평가와 기호의 표현
상대방이 맨 넥타이가 좋아 보여서 우리말로 “넥타이 좋은데요.”라고 말하려 할 때 이를 자연스러운 영어로는 어떻게 말할까?
a) 당신의 넥타이는 멋지네요.
b) 당신의 넥타이가 마음에 들어요.
한국인들은 흔히 a)라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영어 원어민은 거의 대부분 b)라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한 미국인이 영어가 그렇게 유창하지 못한 한 한국인에게 다가와서 b)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한국인이 이 말을 직역하여 ‘내 넥타이를 좋아한다고?’라고 생각하며 조금 고민을 하다가 자기 넥타이를 벗어서 그 미국인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 미국인 입장에서는 단지 ‘넥타이가 참 좋군요.’라고 했을 뿐인데, 선물로 주려하니 참 황당했을 것이다.
그 한국인은 왜 넥타이를 벗어서 주려 했을까? 이는 한국어에서 ‘좋아하다’는 ‘가지고 싶다’는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어에서는 기호liking의 표현은 소유 욕구를 함축한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기호의 표현이 ‘소유 욕구desire to possess’까지 함축하지는 않는다.
욕구의 세 단계
욕구는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평가evaluation의 단계이다. 예를 들면 영어의 good, 한국어의 ‘좋다’와 같은 표현이다.
It’s good. 그것이 좋아요.
그다음은 좋아함, 즉 기호liking 혹은 취향taste의 단계인데, 영어에서는 동사 like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이 경우에도 평가의 의미를 나타내는 ‘좋다’를 쓸 수도 있고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나타낼 때는 ‘좋아한다’를 쓰기도 한다.
I like it.
그것이 좋아요. [소극적]
그것을 좋아해요. [적극적]
다음 단계는 원함wanting 혹은 바람desire의 단계이다. 각 언어별로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어 : -고 싶다, 원하다, 바라다, 소망하다
영어 : want, would like, feel like, wish for, desire …
적극형/소극형 및 주체/대상
욕구표현의 소극형/적극형, “Adj vs Adj-어하다”
한국어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Adj와 그 형용사에 ‘-어하다’를 붙인 동사Adj-어하다 형태의 두 가지 표현 방식이 있다. 전자는 감정을 소극적으로 나타내는 반면에 후자는 적극적으로 나타낸다.
Adj vs Adj-어하다
[소극적] [적극적]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형용사와 동사의 쌍을 들 수 있다.
무섭다-무서워하다, 괴롭다-괴로워하다, 힘들다-힘들어하다, 즐겁다-즐거워하다,
기쁘다-기뻐하다, 아깝다-아까워하다, 예쁘다-예뻐하다, 귀엽다-귀여워하다, etc.
‘좋다’도 ‘-어하다’를 부착한 ‘좋아하다’를 가지는데, 전자가 소극적인 기호를 나타내는 반면에 후자가 적극적인 기호를 나타냄은 물론이다.
a) 난 그게 좋아. [소극적]
b) 난 그걸 좋아해. [적극적]
반의어인 ‘싫다’도 마찬가지이다.
a) 난 그 사람이 싫어. [소극적]
b) 난 그 사람을 싫어해. [적극적]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소극형이 자연스러운 반면 영어에서는 적극형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다음 각 한국어 문장에 대응되는 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은 a)가 아니라 b)이다.
음식 좋았어요? [소극적] → 좋아하셨어요? [적극적]
a) Was the food good?
b) Did you (like / enjoy) the food?
– 한국어에는 감정을 소극적으로 나타내는 형용사와 ‘-어하다’를 붙여 감정을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체계적인 구분이 있다. 그런데 그 중 소극적인 표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우리말에서는 소극형이 기본적으로 쓰이는 반면, 적극형은 개인간의 대화에서는 특별히 강조하려는 의미가 아니라면 쓰이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서 적극형은 쇼 프로그램의 MC나 쓸 법한 문장이다.
“여러분, 오늘 콘서트, 즐거우셨나요?” [소극형]
“여러분, 오늘 콘서트, 즐기셨나요?” [적극형] (쇼 프로그램의 MC)
Did you enjoy the concert?
다음에서도 영어의 욕구 표현은 (a)가 아니라 (b)가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함께 즐기며 경쟁하는 게 좋았어요.
(a) The competitive spirit and having a good time together were good.
(b) I enjoyed the competitive spirit and having a good time together.
영어에는 우리말과 같은 ‘적극형’과 ‘소극형’의 체계적인 구분이 없다. 그리고 소극적인 표현에 해당하는, 즉 주어 자리에 기호의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오는 어휘는 별로 없고 대체로 적극적인 표현, 즉 주어 자리에 기호의 주체인 인물명사가 오는 ‘좋아하다’류의 어휘들만이 존재한다.
– 우리말에서는 ‘적극형’과 ‘소극형’의 체계적인 구분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소극형’을 사용하는 반면에, 영어에는 그런 구분 자체가 없으며 기본적으로 ‘적극형’을 쓴다.
욕구 주체형 vs 욕구 대상형
위의 문장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사실이지만, 영어에서는 사람을 주어로 놓는 반면에 한국어에서는 대상을 주어로 놓는 경향이 있다. 즉, 영어 문장은 ‘사람’의 기호liking에 대해 언급하는 구조인 반면에, 한국어 문장은 기호의 ‘대상’에 대해 언급하는 구조인 것이다. 다음 문장에서도 한국어는 ‘학교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반면에 영어는 you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학교 생활이 어때요? → 당신은 학교 생활을 어떻게 좋아해요?
How is your school life?
[더 자주 쓰이는 표현] How do you like your school?
아래 문장들에서도 동일하다.
등장인물들이 마음에 들었죠.→ 저는 등장인물들을 좋아했어요
The characters were good to me.
→ I liked the characters.
스토리가 흥미로웠어요.→ 저는 흥미롭다고 판단했어요
The story was interesting,
→ I found the story interesting.
– 한국어에서는 대상을 주어로 놓는 반면에, 영어에서는 사람을 주어로 놓는 경향이
있다. 영어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이상의 언어학적 분석으로부터 몇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질문 1] 왜 한국어에서는 소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취하는가?
헤이르트 홉스테드Geert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cultural dimensions theory에 따르면, 아시아 사회에서는 집단의 목표와 구성원 상호간의 의존성이 개인의 자율성보다 우선시된다. 그는 이를 대규모 실험을 통해 밝히면서 아시아 국가들을 집단주의 사회로 분류하였다.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중시하여 개인의 목표와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인 개인주의 사회와 달리, 집단주의란 집단의 이익과 충성도를 우선시하여 가족, 조직, 공동체에 대한 헌신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회를 말한다.2
왜 한국어에서는 소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취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를 특징짓고 있는 집단주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 간의 관계 유지에 대한 노력이 중요하게 요구된다. 이것이 개인들의 욕구 간에 갈등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러므로 욕구에 대해서 표현할 때 욕구의 주체가 아니라 욕구의 대상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보다 우회적인 의견 표명 방식이 필요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소극적 표현과 적극적 표현 사이의 구분이 체계적으로 발달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같은 사유는 여러 다른 연구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예컨대 장옌빙Yan Bing Zhang은 아시아적 의사소통 양식Asian Communication Modes의 철학적 토대를 특히 유교와 간접적indirect, 암묵적implicit 의사소통 방식에서 찾는다. 유교는 윤리적인 사회적 행동과 관계를 강조하는 철학이므로 유교에서는 대인 관계의 조화를 통해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존중을 모든 것에 우선시한다.
[질문 2] 왜 영어에서는 소극형/적극형의 구분이 체계적으로 있지 않는가?
에드워드 T. 홀Edward T. Hall의 고전적인 저서인 『문화 너머Beyond Culture, 1976』에서는 의사소통 방식에서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하여 고맥락high-context 문화와 저맥락low-context 문화를 구분한다.
고맥락 문화란, 의사소통에서 비언어적 요소(몸짓, 표정, 침묵, 맥락, 관계)와 암묵적 이해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문화를 말하는데, 이 문화권에서 명시적인 언어 표현은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된다. 일본, 중국,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의 문화에서는 대화의 의미가 말보다 맥락, 상대방과의 관계, 상황에 크게 의존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과 대화할 때 만일 그가 ‘아마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정중한 거절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를 맥락 없이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완전히 오해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성원들 간의 장기적인 관계와 신뢰가 중요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고맥락 의사소통이 요구된다.
반면에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정보는 주로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충분하므로 비언어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예컨대 미국, 독일, 스위스 등과 같은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메시지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것이 소통을 더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해를 줄이기 위해 직설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계약서나 문서화된 합의가 중요하며, 말하지 않은 것은 보통 큰 의미가 없다고 간주된다.
이 같은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장옌빙은 아시아 문화권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주로 고맥락 의사소통high-context Communication이라고 규정한다. 장옌빙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간접적, 암묵적 방식의 의사소통을 선호한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된다.
결국 영어에서 소극형/적극형의 체계적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오해를 줄이기 위해 직설적인 표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어에서 욕구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 기호를 표현하는 것이 상대에게 소유 욕구로 함축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이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한국 사회 같이 집단주의 사회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라면 기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소유 욕구로 인식되고 나아가 상대에 대한 요구로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소극적 표현의 발달이 필요하게 된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 관계가 중요하므로 서로 챙겨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관념 때문이다.
[질문 3] 왜 영어에서는 적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취하는가?
개인 간의 분명한 소통의 필요성은 의견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욕구와 감정을 오해없이 표명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이는 문장을 구성할 때 자신의 욕구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사람을 주어로 삼아 문장을 꾸미는 방식을 발달하게 만들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상대가 내 제안을 거절한 경우에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이럴 경우 서양인들은 대개 아쉬운 마음에 상대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를 주어로 하는 문장인 “Are you sure?”라고 한 번 정도 물어본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어떠한가? 결코 한 번에 만족하지 않고 수차에 걸쳐 되묻거나 심지어 서운하다느니, ‘네가 그럴 줄 몰랐다’느니 하면서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한편 유럽인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과 자연의 대립구도로 파악한다. 이는 그들이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대상으로 보는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cf. Francis Bacon, René Descartes, Isaac Newton, Immanuel Kant)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중요하다. 하나는 인간이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 하는 일이다. 싫든 좋든 인간이 한 행위는 모두 인간을 주어로 놓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자연이 스스로 하는 행위(비가 오고 지진이 나는 등의 자연현상)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주어로 문장을 형성하여, 사람의 행위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다. 3
그래서 안경이 깨졌거나 팔이 부러지는 사건도 영어에서는 사람을 주어로 표현한다.
안경이 깨졌어요.
I’ve broken my glasses.
팔이 부러졌어요.
I’ve broken my arm.
반면에 동양에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특별히 인간에게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삶으로 간주하는 세계관 때문이다. (cf. 공자, 노자, 장자, 주자 등) 이로 인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동양의 언어들에서는 사물을 주어로 놓고 문장을 꾸민다.
– 분명한 소통의 필요성은 자신의 의견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이는 서양인의 인간 중심의 사고와 함께 사람을 주어로 삼아 문장을 꾸미는 방식을
발달하게 만들었다.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어와 영어에 나타난 욕구에 관한 표현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우선 한국어에는 감정을 소극적으로 나타내는 형용사와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동사 사이의 체계적인 구분이 발달해 있는 반면에 영어에는 그러한 구분이 발달해 있지 않음을 보았다. 그리고 한국어는 소극적인 표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반면에 영어는 적극적인 표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았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갈등을 초래할 수 있으로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보다 우회적인 의견 표명 방식(고맥락 의사소통)이 발달하게 된다. 이로 인해 한국어에는 감정의 적극적/소극적 표현의 구분이 형성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소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반면에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목표와 성취가 더욱 중요하게 간주되므로 구성원 상호간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저맥락 의사소통)이 발달하게 된다. 이 같은 분명한 소통의 필요성은 자신의 의견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방식을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또한 서양인의 인간 중심의 사고와 함께 욕구의 주체인 사람을 주어로 삼아 문장을 꾸미는 방식을 발달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는 사고로 인해 욕망의 주체보다 욕망의 대상을 주어로 삼아 표현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언어마다 고유한 표현 방식이 있고 이는 특정한 사고 방식과 세계관에서 기인한다는 언어 상대성 가설에 잘 부합한다고 하겠다.
(이 글은 다음 호의 ‘한국어와 영어의 동기 표현의 방식’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