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노벨상은 무엇일까요?
노벨상에 수학 부문이 없다는 사실은 대중에게도 제법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학계에서 그 왕관을 차지하고 있는 상은 무엇일까요? 역사와 권위를 놓고 본다면 단연 필즈상Fields Medal이 그 자리에 가장 가까워 보입니다. 아직까지 필즈상의 지위는 철옹성 같지만, 이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습니다. 상금 규모부터 평생의 업적을 기리는 평가 방식, 그리고 매년 시상하는 주기까지 노벨상을 벤치마킹하여 2003년에 탄생한 아벨상Abel Prize입니다.
필즈상에는 유명한 40세 미만이라는 연령 제한이 있는데, 그 유래를 살펴보자면 역설적으로 필즈상을 “수학의 노벨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필즈상을 처음 제안한 캐나다 수학자 필즈Fields의 유언에서, 이 상이 “이미 이룩한 업적에 대한 인정”이자 “앞으로의 성취를 향한 격려”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던 대목이 바로 그 출발점입니다. 이 문구는 초창기에는 “이미 유명하여 격려가 필요 없는” 후보를 배제하는 명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1966년부터는 “앞으로 더 훌륭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만 상을 수여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1
원래 의도가 어떠하였는지는 차치하고, 어쨌건 필즈상은 “수학의 노벨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연령 제한 탓에, 40세 이전에 이룩한 성취만을 기준으로 삼는 필즈상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주는 상이 바로 아벨상입니다. 나이 제한으로 필즈상 수상이 불발되었던 앤드류 와일즈Andrew Wiles, 그리고 젊은 시절의 연구 성과가 수십 년간 파급력을 넓혀가며 현대 수학자들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해 준 존 테이트John Tate3 및 로버트 랭글랜즈Robert Langlands 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2003년 초대 수상자인 장피에르 세르Jean-Pierre Serre5부터 2013년 수상자인 피에르 들리뉴Pierre Deligne6, 그리고 2026년 올해 수상자인 게르트 팔팅스Gerd Faltings7 까지 총 7명의 수학자가 두 상을 모두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필즈상 수상이라는 영예에 안주하지 않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학문의 지평을 넓히며 수학계를 선도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올해 아벨상 수상자이자 1986년 필즈상 수상자인 게르트 팔팅스Gerd Faltings의 연구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정수론Number Theory과 산술기하Arithmetic Geometry
올해 아벨상 수상 발표에서는 팔팅스의 수상 업적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였습니다.
산술 기하학 분야에 강력한 방법론들을 도입하고,
모델Mordell과 랭Lang의 오랜 디오판토스 추측들을 해결한 공로8
사실 정수론을 깊이 접해보지 않으셨다면, 수학자에게조차 이 문장의 의미가 단번에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수상 업적에 등장하는 개념들을 짚어보며, 이를 통해 팔팅스의 업적이 현대 수학에 미친 파급력을 독자 여러분께서 이해하실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 산술기하학arithmetic geometry이란?
산술기하학arithmetic geometry은 정수론의 한 분야로, 이 용어에 포함된 산술arithmetic은 단순한 사칙연산이 아닌 정수론적인 대상을 뜻합니다. Number theory는 우리말로 `정수론整數論‘ 혹은 `수론數論‘으로 번역되는데, 일본에서는 arithmetic geometry의 직역인 “산술기하학” 대신 “수론기하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수론기하학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산술기하학을 대수기하학의 기법을 수론의 문제에 적용하는 학문9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수기하학algebraic geometry이란 대략적으로 다항 방정식이 이루는 해의 공간을 다항식의 대수적 성질을 사용하여 연구하는 분야를 뜻합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예시를 들면
\[x^2-y^2=0\]
의 해가 이루는 공간은 한 점에서 직교하는 두 직선이 되는데, 이는 위 방정식이 \((x+y)(x-y)=0\)의 꼴로 인수분해가 된다는 대수적 성질에 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수기하학 연구는 이 예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대수적 성질을 사용하여 다항식 해의 공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산술기하학이 다루는 “정수론적인 대상”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유리수 계수 다항 방정식의 유리수 해입니다. 2000여년 전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Diophantus는 다항 방정식에서 정수나 유리수 해를 구하는 문제를 체계적으로 탐구하였고, 오늘날 수학계에서는 그의 역할을 기려 이러한 문제들을 디오판토스 방정식diophantine equation이라고 부릅니다. 서두의 아벨상 수상 명문에 등장한 `디오판토스 추측diophantine conjectures‘이라는 용어 역시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대수기하학이 다항식의 복소수 해가 이루는 공간을 다룬다면, 산술기하학은 그 복소해의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유리수 해의 존재와 구조에 주목합니다. 단순히 해의 범위를 좁힌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조건 하나 때문에 두 분야의 성격과 수학적 구조는 극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 디오판토스 방정식의 예시
예시 1. 먼저 매우 단순한 일변수 이차방정식 \(x^2=2\)를 살펴봅시다. 자명하게도 이 방정식은 실수에서 정확히 \(\pm\sqrt{2}\)라는 두 개의 해를 가집니다. 하지만 이 방정식에 유리수 해가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이는 결국 \(\sqrt{2}\)가 유리수인지 묻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이수하신 독자라면 \(\sqrt{2}\)가 유리수가 아님을, 즉 무리수임을 증명했던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그 증명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계산 위주의 증명과는 달리 결론을 부정하여 모순을 이끌어내는 추상적 논증귀류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sqrt{2}\)가 유리수라고 가정하여 기약분수 \(n/m\)으로 표현된다면 \(n^2=2m^2\)라는 식을 얻게 되는데, 이는 산술의 기본정리에 위배됨을 보일 수 있습니다.
요지는, \(x^2=2\)라는 아주 단순한 방정식조차 유리수 해에 관한 문제는 실수나 복소수 해에 관한 문제와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예시 2.

다음으로 아래와 같은 이변수 이차방정식을 고려해 봅시다.
\[x^2+y^2=1\]
이 방정식의 실수 해는 원점을 중심으로 반지름 \(1\)인 원을 이룹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찾는 유리수 해는 유리수 좌표를 갖는 점유리수 점에 해당하며, 이런 유리수 점이 무한히 많다는 사실은 이미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증명하였습니다.
이 증명의 아이디어를 대수기하학적 프레임으로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 위의 유리수 점 \(P\)와 유리수 계수를 갖는 직선 \(L\)을 선택해 봅니다. 예를 들어 \(P=(-1,0)\), \(L\)은 \(x=2\)로 고를 수 있습니다. 이제 \(P\)를 기준점으로 삼아 원 위의 점들을 직선 \(L\)로 평사투영stereographic projection해 보면, 기준점 \(P\)를 제외한 원 위의 모든 유리수 점이 직선 \(L\) 위의 유리수 점들과 완벽하게 일대일 대응을 이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증을 확장하면, 일차방정식으로 인수분해되지 않는 임의의 이변수 이차방정식 \(Q(x,y)=0\) 역시 유리수 해가 단 하나라도 존재하면 무한히 많은 유리수 해를 가진다는 것을 보일 수 있습니다. 앞서 원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하나의 유리수 점을 기준으로 평사투영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 방정식 \(Q(x,y)=0\)에 애초에 유리수 해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하세-민코프스키 정리Hasse–Minkowski theorem를 통해 아주 효율적으로 판별할 수 있습니다.
예시 3. 다음으로 \(3\) 이상의 정수 \(n\)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변수 방정식을 생각해 봅시다.
\[x^n+y^n=1\]
이 방정식의 유리수 해는 \(x=0\) 혹은 \(y=0\)인 경우뿐이라는 것이 바로 와일즈Andrew Wiles가 증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입니다. 특히 \(n=2\)인 경우와 달리 유리수 해의 개수가 유한개라는 점이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조금은 놀랍게도, 1970년대까지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지 않은 \(n\)에 대해서 이 방정식의 유리수 해가 유한하다는 사실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예시 4. 다음으로 어떤 제곱수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양의 정수 \(n\)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이변수 삼차 방정식을 생각해 봅시다.
\[y^2 = x^3-n^2x\]
이 방정식은 자명하게도 \((0,0)\)과 \((\pm n,0)\)을 유리수 해로 가집니다. 나아가 다음 세 명제가 모두 동치임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 위 방정식이 \((0,0)\)과 \((\pm n,0)\) 외에 다른 유리수 해를 갖는다.
- 위 방정식의 유리수 해가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
- 면적이 \(n\)이며 각 변의 길이가 모두 유리수인 직각삼각형이 존재한다. 즉, \(n\)이 합동수congruent number이다.
이 명제들 사이의 동치 관계는 매우 구체적인 대수적 공식으로 주어지며, 고등학교 수준의 기초적인 배경지식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10
고전 정수론의 대표적인 난제 중 하나인 합동수 문제congruent number problem는 임의의 양의 정수가 합동수인지 판별하는 방법을 찾는 문제입니다. 앞서 보았듯, 이 문제는 방정식 \(y^2 = x^3-n^2x\)가 무한히 많은 유리수 해를 갖는 정수 \(n\)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문제와 완전히 동치입니다. 터널Jerrold Tunnell의 1983년 논문 [12] 에서는 이 조건의 정교한 필요조건을 제시하였는데, 타원곡선에 대한 현대 수학의 거대한 난제인 버치-스위너턴다이어 추측Birch and Swinnerton-Dyer conjecture 11을 가정한다면 이 조건이 완벽한 필요충분조건이 됨이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예시를 통한 결론은 아래와 같이 서술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유리수 계수 방정식일지라도, 그 유리수 해의 유한성을 규명하는 문제는 현대 수학의 가장 깊은 이론을 요구하는 고도의 문제가 되곤 합니다.
모델-베유 정리와 모델 추측팔팅스 정리
먼저 팔팅스Gerd Faltings에게 필즈상을 안겨준 모델 추측Mordell conjecture, 즉 팔팅스 정리의 증명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본론에 앞서 타원곡선elliptic curve과 모델-베유 정리Mordell–Weil theorem를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타원곡선과 모델-베유 정리
앞선 예시 4. 에서 등장한 방정식 \(y^2=x^3-n^2x\)를 조금 일반화하여, 아래와 같은 방정식을 생각해 봅시다.
\[y^2 = f(x) = x^3+ax+b\]
여기서 \(a\)와 \(b\)는 유리수 상수이며, 삼차다항식 \(f(x)\)가 서로 다른 복소수 근을 가진다고 가정합시다. 이는 이 방정식의 판별식discriminant인 \(-16(4a^3+27b^2)\)이 \(0\)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변수 삼차방정식 \(y^2=f(x)\)가 나타내는 곡선을 타원곡선elliptic curve, 그리고 이 곡선 위의 유리수 해를 타원곡선의 유리점rational point이라고 부릅니다. 예시 4. 에서 보았듯이, 주어진 타원곡선의 유리점은 무한히 많을 수도 있고, 유한히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타원곡선 위에 두 유리점 \(P\)와 \(Q\)가 주어졌을 때, \(P\)와 \(Q\)를 잇는 직선이 타원곡선과 만나는 또 다른 교점 \(R\)이 존재한다면 유리점임을 보일 수 있습니다. 만약 \(P\)와 \(Q\)가 같은 점인 경우에는 타원곡선의 \(P\)에서의 접선을 생각합니다. 이처럼 주어진 유리점에서 다른 유리점을 찾는 알고리즘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저서 산학Arithmetica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록 타원곡선의 유리점 개수는 무한히 많을 수 있지만, 그 대신 다음과 같은 유한성이 성립합니다.
정리. 모델-베유 정리Mordell–Weil theorem 위에서 서술한 알고리즘을 유한개의 특정한 유리점들에 반복하여 적용함으로써, 주어진 타원곡선의 모든 유리점을 생성해낼 수 있다.
즉, 타원곡선의 유리점은 그 개수가 무한할지라도 결국 유한생성finitely generated된다는 뜻입니다.
위 정리는 모델Louis Mordell의 1922년 논문 [10] 에서 처음 증명되었고, 이후 베유André Weil의 1928년 박사 학위 논문 [14] 을 통해 훨씬 더 일반적인 설정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모델이 이미 증명했던 유리수 계수 타원곡선의 경우에도 베유의 접근법이 훨씬 더 개념적이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오늘날 수학계에서는 이 두 수학자의 공로를 모두 기려 통상적으로 `모델-베유 정리’라고 부릅니다.
모델은 이 정리를 증명한 논문의 말미에, 차수가 더 높은 고차 방정식의 경우에 대한 짤막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이 질문은 훗날 모델 추측Mordell conjecture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팔팅스Gerd Faltings가 1983년에 이를 증명해 낸 업적으로 1986년 필즈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제 현대 산술기하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모델 추측, 즉 팔팅스 정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팔팅스 정리: 특수 경우
먼저 타원곡선의 형태를 일반화하여, 다음과 같은 이변수 방정식을 생각해 봅시다.
\[
y^2 = f(x)
\]
여기서 \(f(x)\)는 서로 다른 복소수 근을 갖는 유리수 계수 다항식입니다. \(f(x)\)의 차수degree가 \(3\)인 경우가 앞서 살펴본 타원곡선에 해당하며, 차수가 \(5\) 이상인 경우에는 이를 초타원곡선hyperelliptic curve이라고 부릅니다.
정리. 초타원곡선 경우의 팔팅스 정리 [4] 차수가 \(5\) 이상이며 서로 다른 복소수 근을 갖는 유리수 계수 다항식 \(f(x)\)에 대해, 방정식 \(y^2 = f(x)\)의 유리수 해의 개수는 항상 유한하다.
만약 \(f(x)\)가 서로 다른 복소수 근을 갖는 \(3\)차 이상의 정수 계수 다항식이라면, 방정식 \(y^2 = f(x)\)의 정수 해의 개수가 항상 유한하다는 사실은 지겔Carl Ludwig Siegel이 1929년에 이미 증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겔의 증명이 유리수 해의 유한성까지 보장하지는 못하며, 실제로 \(f(x)\)가 3차 다항식인 경우 정수 해는 유한이지만 유리수 해는 무한히 많은 방정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팔팅스 정리의 대상은 이보다 훨씬 일반적이지만, 위에서 서술한 제한적인 초타원곡선의 경우조차 팔팅스의 증명이 발표되기 전에는 해결이 요원한 난제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팔팅스 정리: 일반적인 경우
모델 추측, 즉 팔팅스 정리의 일반적인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방정식의 복소수 해가 이루는 공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방정식 \(y^2=f(x)\)를 생각하되, 편의상 \(f(x)\)의 차수가 홀수인 \(2g+1\)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 방정식의 복소수 해가 이루는 공간에 무한대점 한 점을 잘 추가하면, \(g\)개의 구멍을 갖는 닫힌 원환면torus을 얻게 됨이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g=0\)인 경우에는 구멍이 없는 구면sphere이 얻어지고, 타원곡선의 경우에는 구멍이 하나인 원환면이 얻어집니다.)12 이 원환면의 구멍 개수를 위상수학topology에서는 종수genus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유리수 계수 다항방정식으로 정의되는 매끈한 대수 곡선 위에서, 유리점의 존재성과 유한성이 곡선의 종수에 따라 어떻게 결정되는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종수가 \(0\)인 경우: 복소수 해가 구면을 이루는 경우, 유리점이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그 개수는 무한히 많다.
- 종수가 \(1\)인 경우 (모델-베유 정리): 복소수 해가 구멍이 하나인 원환면을 이루면, 이때 유리점의 개수는 유한할 수도 있고 무한할 수도 있지만 항상 유한생성된다.
- 종수가 \(2\) 이상인 경우 (팔팅스 정리 [4]): 복소수 해가 구멍이 둘 이상인 원환면을 이루면, 이때 유리점의 개수는 항상 유한하다.
놀랍게도 방정식이 가진 고유한 “위상수학적 성질”이, 그 방정식이 유리수 세계에서 가질 수 있는 해의 유한성을 결정하는 핵심 열쇠였던 것입니다.
팔팅스 정리 증명에 관하여
팔팅스 정리의 증명은 여러 측면에서 정말 경이롭습니다. 당시 수학계에서는 모델 추측의 완전한 해결을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여겼기에, 아무런 제약 조건 없이 전면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충격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증명은 당시 학계가 `기대’하고 있던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창적인 방법론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델 추측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당시 산술기하학의 근간을 이루던 다른 거대한 난제들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당시 수학자들이 기대했던 전통적인 방법론은 소위 디오판토스 근사Diophantine approximation였습니다. 가장 친숙한 예로, 제곱수가 아닌 양의 정수 \(n\)이 주어졌을 때 \(\sqrt{n}\)의 ‘`연분수continued fraction 근사”를 통하여 펠 방정식Pell’s equation \(x^2-ny^2=1\)의 모든 정수 해를 찾아내는 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수적 수를 유리수로 얼마나 잘 근사할 수 있는지 추적하는 방식은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연구하는 전통적이고 강력한 도구였으며, 모델 추측 역시 이 근사론의 연장선에서 공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당시의 보편적인 기대였습니다.
이러한 디오판토스 근사가 주로 “산술적” 성격이 강했다면, 팔팅스의 접근법은 철저히 “산술기하적”이었습니다. 모델 추측의 증명을 산술기하의 다른 중요한 대상인 아벨 다양체abelian variety와 갈루아 표현Galois representation에 관한 난제로 귀결 13시킨 후, 그 난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팔팅스가 모델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해결한 다른 난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벨 다양체 및 대수 곡선에 대한 샤파레비치 추측Shafarevich conjecture
- 아벨 다양체에서 유래한 갈루아 표현의 반단순성semisimplicity
- 아벨 다양체의 준동형사상homomorphism에 관한 테이트 가설Tate conjecture
이 가설들은 각각의 명제만으로도 모델 추측만큼이나, 혹은 관점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수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난제들이었으며, 오늘날 모델 추측 이상으로 현대 정수론 전반에 걸쳐 막대한 파급효과와 광범위한 응용을 낳고 있습니다. 나아가 팔팅스가 이들을 증명하기 위해 도입한 혁신적인 방법론들 역시 현대 산술기하학의 최전선에서 끊임없는 변주를 유발하며 여전히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팔팅스 정리 이후
팔팅스의 증명이 발표된 후인 1991년, 보이타Paul Vojta [13] 는 수학자들이 당초 기대했던 디오판토스 근사 방법론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증명을 찾아냈습니다. 사실 수학 연구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난제도 한 번 정복되고 나면, 문제를 대하는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전혀 다른 접근법을 가진 독창적인 증명들이 연이어 등장하곤 합니다.14
디오판토스 근사에 기반한 보이타의 증명이 발표된 이후, 팔팅스는 이 방법론을 더욱 발전시켜 모델 추측의 “고차원 일반화”인 모델-랭 추측Mordell–Lang conjecture을 증명해 냅니다 [6]. 이 추측의 근저에 깔린 철학은, 어떤 부분공간이 유리점 같은 특정한 산술적 성질을 가진 점들을 무수히 많이 포함하고 있다면 그 부분공간 자체가 반드시 대수적으로 “특별”해야만 한다는 직관입니다. 소위 “예상치 못한 교집합unlikely intersections”이라 불리는 이 강력한 철학은 팔팅스의 증명을 통해 확고히 뿌리를 내렸으며, 이후 앙드레-오르트 추측André–Oort conjecture 및 질버-핑크 추측Zilber–Pink conjecture 등으로 변주되거나 일반화되며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앙드레-오르트 추측은 최근 필라Jonathan Pila, 샹카Ananth Shankar, 치머만Jacob Tsimerman의 공동연구에 의해 증명되었으며 15이 결과는 과학 전문지인 콴타 매거진Quanta Magazine [11]에도 비중 있게 다뤄진 바 있습니다.
팔팅스 정리 외의 업적
비록 이 글의 많은 지면을 팔팅스의 업적 중 대중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 추측에 할애했으나, 사실 그는 현대 수학의 대단히 다채로운 분야에 걸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거장입니다. 미국수학회AMS의 데이터베이스인 매스사이넷MathSciNet에 등재된 팔팅스의 단독 및 공동 저술물은 총 86편에 달합니다. 이를 피인용 수 기준으로 정렬해 보면, 앞서 살핀 모델 추측 논문 [4] 과 모델-랭 추측 논문 [6]이 각각 1위와 4위를 차지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인용수 기준 2위, 3위, 5위에 위치한 저작들이 각각 서로 다른 연구 분야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모델 추측을 증명한 직후, 팔팅스는 산술기하학의 핵심 영역인 \(p\)진 호지 이론(\(p\)-adic Hodge theory에서 가장 중심적인 추측들을 잇달아 해결하는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복소수 계수 다항식이 정의하는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있어서 코호몰로지cohomology라는 도구가 유용하며, 이에 관한 제반 이론을 호지 이론Hodge theory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유리수 계수 다항식이 정의하는 공간을 산술기하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도구로 그로텐디크Alexander Grothendieck16 가 여러 코호몰로지 이론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중 \(p\)진 코호몰로지\(p\)-adic cohomology들에 대해 고전적인 호지 이론과 평행을 이루는 이론을 만들고자 1960–70년대에 테이트John Tate와 퐁텐Jean-Marc Fontaine이 일련의 추측을 정밀하게 서술하였고, 팔팅스는 이 추측들을 증명함으로써 \(p\)진 호지 이론의 토대를 완성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피인용 수 3위의 학술대회 프로시딩 [5] 역시 당시 진행하던 연구의 산물입니다.
피인용 수 2위 저작은 차이칭리Ching-Li Chai와 공저한 연구 서적 [8] 입니다. 이 책은 아벨 다양체와 시무라 다양체의 산술적 연구에 필수적인 도구들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학술지 논문 한 편으로 모두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가득하여, 300페이지가 넘는 독자적인 단행본 형태로 출판되었습니다.
피인용 수 5위 저작 [7] 은 앞서 언급한 복소 호지 이론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심슨 대응Simpson correspondence을 확장한 결과입니다. 이 연구는 산술기하학보다는 순수 대수기하학의 영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실제로 수리물리학이나 기하학적 랭글랜즈 프로그램geometric Langlands programme 관련 연구에서 인용되어 왔습니다. 이때 축적된 깊은 통찰은 이후 2000년대 초반 산술기하학의 무대에서 심슨 대응과 평행을 이루는 \(p\)진 심슨 대응\(p\)-adic Simpson correspondence을 개척하는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노르웨이 한림원의 팔팅스의 아벨상 수상 공식 발표문에 언급된 모든 업적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였습니다.
팔팅스가 후대에 미친 영향
팔팅스가 다룬 분야의 고도의 추상성과 기술적 복잡성으로 인해, 그의 저작들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특히 그의 초기 \(p\)진 호지 이론 논문들의 경우, 정리는 도처에서 강력하게 사용되면서도 정작 그 증명의 세부 경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이는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이르러 현대 정수론의 신성 숄체Peter Scholze가 등장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숄체는 자신이 창시한 “퍼펙토이드 공간Perfectoid spaces”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팔팅스의 복잡한 \(p\)진 호지 이론의 방법론을 대단히 명쾌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냈으며, 이를 토대로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반적이고 강력한 결과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론으로 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숄체의 2018년 필즈상 공식 업적문에 명시된 “새로운 코호몰로지 이론의 개발”이라는 치사에 깊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팔팅스의 영향력은 비단 초기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가 2000년대에 수행한 일련의 깊이 있는 연구들 역시 숄체와 그의 공저자들에 의해 현대 정수론의 새로운 주춧돌로 재발견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소 시무라 다양체local Shimura varieties 및 주기사상Period map에 관한 팔팅스의 선구적인 통찰이나, 루프 군loop group 및 아핀 슈베르트 다양체affine Schubert variety를 넘나드는 대수기하학적 연구들이 그러합니다. 이 극도로 기술적이고 난해했던 원시 도구들은, 숄체가 이끄는 그룹에 의해 “랭글랜즈 프로그램Langlands programme”을 이해하고 공략하는 강력한 무기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숄체의 언어로 정교해진 \(p\)진 호지 이론의 틀은 다시금 대수다양체의 유리점 연구로 회귀하여 팔팅스 정리의 완전히 새로운 증명을 낳기도 했습니다. 2020년 발표된 로렌스Brian Lawrence와 벤카테시Akshay Venkatesh 17의 공저 논문 [9]이 바로 그 결실입니다. 이들은 숄체식 \(p\)진 기하학의 무기를 활용하여, 팔팅스 본래의 증명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창적인 대안 증명을 얻어냈습니다. 이처럼 팔팅스가 남긴 연구는 현재 세대의 젊은 수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발전되고 있습니다.
맺음말
한국인 수학자 중에는 에든버러 대학교에 재직 중인 김민형 교수가 유리점의 유한성에 관한 팔팅스의 정리를 한 단계 더 “구체화”하는 방법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단순히 해가 유한개 존재한다는 추상적 사실을 넘어, 유리점들이 가진 대수기하학적 구조를 비가환 \(p\)진 코호몰로지를 통해 규명하고자 하는 이 연구는 현재 샤보티–김Chabauty–Kim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디오판토스 방정식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온 KAIST의 임보해 교수 역시 팔팅스의 학술적 후손18이기도 합니다.
필자의 박사 연구 초기, 지도교수였던 브라이언 콘래드Brian Conrad는 학위논문 주제를 설명해 주며 팔팅스의 논문 한 편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팔팅스의 저작 중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던 논문이었는데, 당시 지도교수는 필자에게 “다른 팔팅스 논문만큼 어렵지는 않다”면서도, “이 논문을 읽고 근거 없는 용기를 얻어 다른 팔팅스 논문들까지 만만하게 덤벼들지는 말라”라는 신신당부를 덧붙였습니다. 비록 이후 필자의 학위논문 연구 주제가 조금 비껴가긴 했으나, 그 시절 팔팅스의 논문을 연구하며 구상했던 아이디어들은 최근 필자의 연구에서 다시금 중요한 실마리로 살아나고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결국 지도교수의 신신당부를 어기고(?) \(p\)진 호지 이론에 관한 팔팅스의 논문 중 일부분을 열심히 공부하였고, 이를 통해 초창기 연구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연구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국소 및 대역 시무라 다양체local and global Shimura varieties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는데, 비록 팔팅스의 원전 논문을 직접 들여다보는 빈도는 줄었을지언정, 그의 2000년대 연구에서 유래하여 숄체 등 후대의 관점으로 재해석된 이론들은 현재 필자 연구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 있습니다.
2026년 올해 팔팅스 교수의 아벨상 수상을 계기로 그의 학문적 세계를 돌아보는 글을 쓰게 되어 연구자로서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중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성취는 단연 필즈상 수상의 모태가 된팔팅스 정리(모델 추측)이겠지만, 그 이후에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정수론과 대수기하 전반에 걸쳐 위대한 업적을 남겨오셨다는 점을 이 글에서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 The Norwegian Academy of Science and Letters. Citation from The Abel Prize Committee– Gerd Faltings. uRl: https://abelprize.no/citation/citation-abelprize- committee-gerd-faltings.
- Michael J. Barany. ‘The myth and the medal’ . In: Notices Amer. Math. Soc. 62.1 (2015), pp. 15–20. issn: 0002-9920,1088-9477. uRl: https://www.ams.org/notices/201501/rnoti-p15.pdf.
- Michael J. Barany. ‘The Fields Medal should return to its roots’ . In: Nature 553.7688 (2018), pp. 271–273. uRl: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 018-00513-8.pdf
- G. Faltings. ‘Endlichkeitssätze für abelsche Varietäten über Zahlkörpern’ . In: Invent. Math. 73.3 (1983), pp. 349–366. issn: 0020-9910,1432-1297.
- Gerd Faltings. ‘Crystalline cohomology and 𝑝-adic Galois-representations’ . In: Algebraic analysis, geometry, and number theory (Baltimore, MD, 1988). Johns Hopkins Univ. Press, Baltimore, MD, 1989, pp. 25–80. isbn: 0-8018-3841-X.
- Gerd Faltings. ‘Diophantine approximation on abelian varieties’ . In: Ann. of Math. (2) 133.3 (1991), pp. 549–576. issn: 0003-486X,1939-8980.
- Gerd Faltings. ‘Stable𝐺-bundles and projective connections’ . In: J. Algebraic Geom. 2.3 (1993), pp. 507–568. issn: 1056-3911,1534-7486.
- Gerd Faltings and Ching-Li Chai. Degeneration of abelian varieties. Vol. 22. Ergebnisse der Mathematik und ihrer Grenzgebiete (3) [Results in Mathematics and Related Areas (3)]. With an appendix by David Mumford. Springer-Verlag, Berlin, 1990, pp. xii+316. isbn: 3-540-52015-5.
- Brian Lawrence and Akshay Venkatesh. ‘Diophantine problems and 𝑝-adic period mappings’ . In: Invent. Math. 221.3 (2020), pp. 893–999. issn: 0020-9910,1432-1297.
- Louis J. Mordell. ‘On the rational solutions of the indeterminate equations of the third and fourth degrees’ . In: Proc. Cambridge Philos. Soc. 21 (1922/23), pp. 179–192. issn: 0008-1981.
- Leila Sloman. Mathematicians Prove 30-Year-Old André–Oort Conjecture. Quanta Magazine. 3rd Feb. 2022. uRl: https://www.quantamagazine.org/mathematiciansprove- 30-year-old-andre-oort-conjecture-20220203/.
- Jerrold B. Tunnell. ‘A classical Diophantine problem and modular forms of weight 3/2’ . In: Invent. Math. 72.2 (1983), pp. 323–334. issn: 0020-9910,1432-1297. uRl: https://doi.org/10.1007/BF01389327.
- Paul Vojta. ‘Siegel’s theorem in the compact case’ . In: Ann. of Math. (2) 133.3 (1991), pp. 509–548. issn: 0003-486X,1939-8980. uRl: https://doi.org/10.2307/ 2944318.
- André Weil. ‘L’arithmétique sur les courbes algébriques’ . In: Acta Math. 52.1 (1929), pp. 281–315. issn: 0001-5962,1871-2509. uRl: https://doi.org/10.1007/ BF02547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