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호

 

지구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볼까를 고민하다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상들 중에서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기로 하였다. 지구의 나이는 몇 살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이다. 그런데 필자가 1988년 지질학과 1학년 일반지질학 수업 첫 시간에 배운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었다. 그 사이 1억년이 지났을 리는 만무하고 측정방법이 더 정확해지면서 바뀐 숫자이다. 당시 우주의 나이가 120억년으로 알려졌는데 현재는 138억년이니 그 오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암석속에 들어있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하여 측정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은 약 43억년이니 지구의 나이는 지구 암석으로 구한 것이 아니다. 운석을 이용한 것이다. 운석은 태양계 형성과정에서 지구와 같은 시기에 우주 먼지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인데 우주를 떠돌다가 지구 중력에 이끌려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운석들의 나이는 거의 동일하게 46억년을 가리킨다.


지구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 뜨거운 마그마의 바다와 같은 모습이었다. 자체 방사성 물질의 핵분열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운석의 충돌 등으로 지구는 들끓고 있었고, 식을만하면 당시 지구에 바짝 붙어 있던 달의 인력으로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거대한 해일처럼 뒤흔들어 놓기를 반복했다. 그 이후 차츰 식으면서 철과 니켈 같은 무거운 물질은 가라앉아 핵이 되었고 가벼운 암석물질은 떠올라 지각을 형성하는 등 층상구조를 갖게 되었다. 핵은 내핵과 외핵으로 나뉘는데 고체인 내핵과는 달리 외핵은 액체로 되어 있어 외핵의 열에 의한 대류로 자기장을 유도하여 지구를 거대한 자석으로 만들었다. 바로 이 지구의 자기장은 태양에서 지구로 쏟아져오는 강력한 태양풍을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여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고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기여하게 된다. 태양풍과 대기의 충돌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것이 오로라인데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오로라는 단순히 신기한 볼거리가 아니라 태양계의 행성중에 유일하게 지구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별과 마찬가지로 극지방의 오로라는 인간에게는 과학적 이성을 벗어나는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이니 버킷리스트에 담아두었다가 꼭 한번 직접 현장에서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구는 끊임없이 변화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것이다. 이런 지구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지층이다. 시간에 따라 차곡차곡 쌓인 지층이 지구라는 역사책을 구성하는 페이지들이다. 한 장 한 장에 그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변산반도의 채석강에 있는 퇴적층[사진1]을 보면 거대한 역사책이라는 것이 실감날 것이다. 지층이 장편소설이라면 빙하는 단편소설이다. 빙하는 물이 얼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이 쌓여서 만들어진 일종의 퇴적암이다. 빙하를 자세히 관찰하면 그냥 투명한 것이 아니라 사이사이에 공기방울들을 볼 수 있다.[사진2] 그 공기는 수 천년 또는 수 만년 전의 공기이다. 그래서 빙하를 천연 타임캡슐이라고도 부른다. 빙하를 이용한 과거의 기후 연구를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에서 주도하고 있으며, 미국 알래스카주의 페어뱅크스에 북극연구소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구의 기후변화와 생물의 진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앞서 핵, 맨틀과 지각으로 구성된 지구의 내부구조에 대해 설명했는데 지구의 가장 바깥 껍질인 지각의 움직임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지각은 10개의 커다란 지판과 몇 개의 작은 지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딪치고 벌어지면서 지구의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판들이 서로 부딪치면 산맥을 만들거나 화산을 일으키고 판들이 벌어지면서 새로운 지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종종 화산이 폭발하여 피해를 입히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게 되는데 일본이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필리핀판 그리고 북미판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지진도 많이 일어나는데 이것도 판들이 이동하며 충돌한 결과이며 최근에 경주나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각판이 움직인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912년 독일의 기상학자인 알프레드 베게너가 발표한 대륙이동설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대서양 양쪽에 있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선과 남아메리카 동쪽 해안선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과 두 대륙에 동일한 동식물화석이 발견되는데 이 생물들이 바다를 건널 수는 없었을 테니 예전에 두 대륙이 붙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에서 착안한 이 이론은 1960년대에 판구조론으로 발달하게 되었고 현대 지질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이제 눈을 지구의 생명으로 돌려보자. 지구 생명의 기원은 약 40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수치도 25억년에서 38억년을 지나 현재의 수치가 되었으니 조만간 더 오래된 지층에서 생명체가  발견될 수도 있다. 가장 오래된 생명체중의 하나이자 현재도 어항에서 물이끼를 만들고 있는 것이 시아노박테리아이다. 지구상에서 최초로 광합성을 한 생물이기도 한 이 박테리아는 약 35억년 전에 나타났고 그 증거가 서호주 필바라 지역에서 발견된다. 광합성의 부산물로 산소를 뿜어내자 그 당시 원시바다속에 녹아 있던 철성분을 침전시키게 되었다. 산화되어 녹이 슨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산화철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철의 원료이며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철이 모두 호주에서 수입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효능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당시 원시바다속의 다른 생물이 산화되어 죽게 되자 산화를 막기 위해 단단한 껍질이 만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삼엽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한 대기중의 산소가 모여 만든 오존층은 자외선을 차단해주어 그동안은 자외선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바다속에서만 살던 생물들이 육상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도 지구에서 산소를 가장 많이 만드는 생물은 아마존의 식물들이 아니라 바다에 살고 있는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들이다. 이들이 지구생물 진화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의 자연에는 지구의 기원과 그 변화과정의 증거들이 펼쳐져 있다. 주말이나 휴가철에 여행할 때 맛집만을 찾아 다니거나 좋은 풍경만을 감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느낄 수 있고 우리도 지구의 구성원 중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탐험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백두성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전시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