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어쩌면 인간에게만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도 궁금해한다.
“나는 어디서 왔지?”
인류의 진화 역사 속에서 기원과 멸종을 거쳐 간 수많은 종 중에서 현생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면서도 논쟁이 치열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속한 종, 호모 사피엔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주제에 고인류학, 고고학, 그리고 유전학까지 얽혀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20세기 격렬한 논쟁의 중심이 되었던 다지역연계론Multiregional Continuity과 완전대체론Complete Replacement 두 학설의 대립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완전대체론은 깔끔 명료하다. 우아하다. 완전대체론은 하나의 기원을 주장한다. 완전대체론은 현생 인류가 (고인류학의 달력으로 봤을 때)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종으로 발생하여 세계로 확산, 이주하면서 각 지역에 살고 있던 기존의 인류 집단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내용이다. 현생 인류는 새로운 종으로 탄생하였기 때문에 기존의 인류 집단과 서로 유전적으로 섞일 수 없다. 완전대체론이 주장하는 현생 인류는 중기 플라이스토세 말에서 후기 플라이스토세 초(약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기존의 인류 집단과 유전적인 교류 없이 그들을 완전히 대체하였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종으로 기원하였기 때문에 다른 집단들과 피를 섞을 수 없는, 유전적으로 다른 종이었다.
반면 다지역연계론은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각 대륙에 이미 원주하고 있던 인류 집단에서부터 다양하게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다지역연계론에서 주장하는 현생 인류의 기원은 하나가 아니며, 현생 인류는 특정 지역, 특정 시점에서 기원한 새로운 종이 아니다.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 유럽의 네안데르탈인 등의 전 현생 인류 집단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현생 인류 형질이 서로 지속적인 유전자 교류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하고, 그 결과 인류는 한 종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다.
자료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다지역연계론을 더 뒷받침했다. 적어도 20세기, 1990년대까지는 그랬다. 고인류 화석이 가장 중요하고 대다수의 자료였던 시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인류 화석 중에는 뚜렷하게 확인할 만한 최초의 현생 인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생 인류가 새로운 종으로 한곳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을 뒤받쳐 줄 수 없었다. 현생 인류와 원주 집단이 서로 다른 종이라면 유전적인 교류가 없었을 것이고, 유전적으로 교류가 없는 시기가 계속된다면 생김새도 서로 달라진다. 그런데 현생 인류라고 모두 인정할 만한 화석이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등장하지도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확산했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현생 인류의 화석이 눈에 띄게 나타났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고인류 화석은 원주 화석인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과 그들을 제치고 자리 잡은 현생 인류 사이에는 비슷한 형질이 관찰되었다.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을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눈에 띄게 다른 경우에는 둘 사이에는 수만 년의 간격이 있었다. 다지역연계론의 입장에서 현생 인류와 원주 인류 집단 사이에서 보이는 형질적인 연속성은 유전적 교류의 증거였고, 그렇다면 둘은 서로 다른 종이 아니었다.
고고학 자료 역시 깔끔하지도 않고 명료하지도 않았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지니고 퍼뜨렸을 후기 구석기 문화가 그 이전의 문화에 비교해 갑자기 나타나지도 않았다. 갑자기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후기 구석기의 출현이 ‘혁명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기 구석기의 혁명성은 학계의 주류 가설이 되지는 않았다. 또한 아시아에서는 그렇게 분명한 전환이 보이지 않았고 유럽의 후기 구석기와는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석기 재료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미세한 입자로 정교하게 날 석기를 만들 수 있는 석기 원재료에 의존하는 석기 공작이 발달했지만, 아시아에서는 목재 등을 이용한 도구가 발달하였을 수 있다. 게다가 아시아에로의 확산 경로가 해안 연안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후기 구석기의 유럽 내륙에서 사용하는 도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후기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에 드러난 땅을 밟고 다닌 현생 인류의 자취는 빙하기 이후 따뜻한 온도와 함께 바닷물 높이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모두 바다 밑에 있기 때문에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완전대체론은 이론으로서는 깔끔했으나, 자료의 측면에서는 불투명했다. 다지역연계론이 대세를 이루던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1990년대에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1990년대 말부터 유전 자료를 중심으로 하는 분자 생물학 연구가 고인류학계의 새로운 자료원으로 급속도로 부상을 했다. 현대인의 유전자에서 화석인류의 진화 역사를 추론해 낼 수 있다는 접근법은 빠르게 고인류학계를 변화시켰다. 1990년대 초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를 통해 아프리카인들이 현생 인류 중 가장 다양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이 가장 오래전에 기원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는 현대인의 유전자 대신 고인류 화석에서 직접 DNA를 추출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현대인의 유전자를 연구하여 시간 여행을 하는 집단 유전학은 고 DNA의 추출 성공이라는 막강한 방법론을 만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고 DNA를 바탕으로 한 연구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존 인류 사이에는 유전자가 교류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는 서로 다른 종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연구가 거듭되면서 DNA 관찰 결과가 반복되고 결론이 굳어졌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연구와 논쟁은 완전대체론이 주류가 되면서 마무리가 지어지는 듯했다.
이제는 고인류 화석에서 직접 유전자뿐 아니라 유전체 (게놈)까지 추출할 수 있는 정도로 방법론이 발전했다. 그리고 한 번 더 판이 바뀌었다. 2010년에 발표된 네안데르탈 게놈 연구는 20여 년 동안 현대인의 DNA뿐 아니라 고인류 화석에서 추출한 고 DNA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에 정면으로 맞서는 결론을 내놓았다. 1만 5천여 개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하고, 1백만 개의 핵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한 연구 결과는 결국 30억 개의 핵 DNA 염기 서열이라는 어마 무시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비교할 수 없었다. 2010년에 발표된 네안데르탈 게놈 연구는 현생 인류의 DNA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이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 사이에는 유전적인 교류가 있었다. 그 후 네안데르탈인뿐 아니라 다양한 원주 집단과 현생 인류 간에 유전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데니소바인도 한 예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10여년간 고인류학, 유전학, 고고학의 여러 방면에서 새로운 자료가 쏟아져 나오면서 제시된 학설 가운데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지역 역사에 대한 관심이다. 20세기에 학계가 관심을 기울였던 세계 단위의 큰 그림은 더 그릴 수 없다. 전 세계 인류 집단이 모두 똑같은 진화 역사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 집단 중에는 소멸한 집단도 있지만, 현생 인류와 유전적 교류를 통해 흡수된 집단도 있다. 아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왕성했던 후기 플라이스토세에 아시아에서는 인류가 거의 살지 않았다는 가설이 20세기에는 주류였다. 그러나 최근의 유전자 자료를 보면 아시아인에게서 유럽인보다 더 높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발견되고 있다.
과거의 인류를 생각할 때에는 현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 고인류가 살아낸 지구는 현재의 산천 수목과 사뭇 다르고, 해안선도 다르다. 지금의 국경선은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야 한다. 인류 진화 역사 대부분 시간에 인류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넓은 땅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유전자의 기록이 다 지워지기도 하고, 다른 지역의 유전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현재 아시아인의 유전자는 그 시료를 채취한 지역에서 수만 년 동안 계속 살아온 아시아인의 대표 유전자가 아니다. 국경의 개념을 버리고 생태학적 지역권의 개념으로 자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집단이 세계 인구의 조상이 되었다는 가설은 깔끔한 매력이 있지만, 자료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 자료는 깔끔한 가설을 거부한다. 단순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화석 한 점, 유전자 하나 혹은 몇 개 만을 가지고 추론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가설의 수준이 자료의 수준에 뒤떨어지고 있다. 범세계적으로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모델을 설정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현재 고인류학은 20세기 후반에 제기된 문제에서 한 단계 벗어나 새로운 관점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역마다 최초의 인류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나타났는지, 그리고 최초의 현생 인류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나타났는지에 대해 역동적인 관점에서 고고학과 분자생물학을 비롯해 다양한 인접 학문과의 교류를 통해 다학문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21세기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현생 인류가 새로운 종인지 여부는 더 이상 생산적인 논의를 만들지 않는다. 비비 원숭이의 섞인 종 연구를 비롯하여 기원한 지 1-2백만년이 안되는 종들끼리는 유전적 교류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해 본다면, 15만 년 전에 기원한 현생 인류가 새로운 종인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전-현생 인류와 유전적 교류가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전적 교류 여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화석 자료를 통해 본 현생 인류는 원주 인류적 형질, 현생 인류적 형질, 그리고 지역적 형질의 세 축을 따라 다양한 조합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화석과 유전자가 보여주는 그림은 동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생 인류가 기존의 원주 인류 집단과 다양한 정도의 혼합을 계속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서남아시아로 확산하였고 이후 아프리카 전역 및 남아시아, 그리고 유라시아로 퍼졌다는 것이다.
기원에 대한 궁금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궁금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원”은 하나가 아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다양한 기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