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다 보면 첫 시간에 배우는 것이 바로 구석기와 신석기이다. 석기면 석기지 왜 굳이 오래되었다는 의미의 ‘구’자와 ‘신’자를 붙여서 시대를 구분하였을까? 역사학자들 혹은 고고학자들이 이러한 시대 구분을 한 이유는 ‘농경’으로 인해 세상이 바뀌었음을 표기하기 위함이다. 즉,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후의 시대를 ‘신석기’라고 지칭하였으며, 농경을 시작했던 시기에도 주로 사용했던 도구가 여전히 돌이었기에 ‘석기시대’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농경’을 시작한 것이 어떠한 변화를 주었기에 하나의 시대를 가르게 된 것일까? 이 글에서는 농경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인류 역사가 발전된 과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농경을 시작하기 이전 인류는 주변에 널려 있는 음식을 사냥하고 채집하며 생존해왔다. 이러한 수렵 채집이 시작된 시기는 인류와 침팬지가 서로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고 추정되는 500만~6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이 시작된 시기를 대략 1만 년이라고 한다면 690만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인류는 수렵 채집을 했었고, 비교적 최근에 들어와서 농경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 5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불의 발견과 뇌의 크기 변화 등 분명한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로 ‘농경’ 이후 1만 년 동안 이루어진 변화를 생각한다면, 500만 년이란 긴 시간 동안의 변화는 비교적 작게 느껴진다. 즉, ‘농경’은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늘날 첨단기기를 다루고 전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인류는 1만 년 전만 해도 항상 포식자를 피해 다녀야 했으며, 씨를 뿌린 후 과연 그 씨앗이 자랄 것인가를 궁금해 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농경이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기에 인류의 삶이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을까? 먼저 농경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자연과 인간의 ‘길들여짐’ 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어린왕자와 여우 사이의 길들여짐에 대한 대화가 나온다.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길들여짐의 과정이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농경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의 온도가 점차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면서 매머드 같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동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사슴, 토끼와 같은 덩치가 작은 동물들이 많아졌는데, 작은 동물들은 사냥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더불어 수렵, 채집 기술이 발전되면서 인구가 점점 많아졌다. 증가한 인류를 부양하기 위해 식량을 확보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주변에 자라고 있는 여러 식물에 주목하게 되었고, 우연히 씨앗을 뿌린 곳에 싹이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인류는 여러 가지 작물들을 ‘재배화’하게 된다. 가장 손쉽게 재배화가 이루어진 작물은 바로 ‘밀’이다. 이후 보리, 옥수수, 콩 등이 작물화가 되었고, 가장 늦게 우리의 주식인 쌀이 작물화가 된다. 작물화의 과정은 유전자 조작의 과정과도 유사하다. 처음 인류가 재배했던 곡식들은 지금처럼 낟알이 크지도 않고, 양이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곡물 중 낟알이 많고, 크기도 큰 작물들을 선별해서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속성들이 후대에 전달되면서 곡식의 모양은 점점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동물들에서도 이루어진다. 개,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과 양, 말, 소, 염소, 당나귀 등과 같은 가축들은 인간과 함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공생하게 되었다.
농경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수렵 채집을 하지 않아도 식량 공급이 충분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집단 거주가 시작되었다.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서로 협동하였고, 육체적인 협동과 더불어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명 ‘Collective Learning’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공유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이 배우게 되었고, 일일이 경험을 통해 습득할 필요가 없이 더욱더 빠르게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다. 배움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삶을 더 나아지도록 하는 기술 개발에 힘썼다. 그 결과 가축과 농작물로부터 얻게 되는 생산량이 점차 많아졌으며, 일부 능력 있는 농부들은 이제 먹고 남을 만큼의 재산을 축적하게 되었다. 바로 잉여 재산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 잉여재산을 기준으로 서로를 구분 짓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생산물이 생기면 비교적 공평하게 분배를 하였다. 하지만 더 많이 생산하는 사람과 덜 생산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내 것’과 ‘너의 것’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명확한 소유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서로의 재산을 구분하는 방식은 바로 ‘전쟁’이었다. 힘이 강한 자가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힘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자신의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부족원들은 가장 힘이 강하고 가장 많은 재산을 지닌 사람을 부족장으로 삼았다. 부족장이 된 사람은 이제 단순히 힘자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일을 해결하는 해결사를 자처하게 된다. 하지만 자연재해나 번개, 천둥 등 세상에는 인간이 설명하지 못 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부족장은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신에게 그들의 복을 비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부족장은 제사장의 역할도 같이 담당하게 되었다. 항상 모든 일이 잘 풀리진 않았지만, 자연현상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커다란 자연재해가 아닌 이상 비가 온 뒤에는 보통 날이 맑아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사장과 신의 은총으로 날씨가 좋아지고, 농사를 위한 비가 온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부족장이자 제사장에게 ‘세금’을 바쳤다.
부족장은 세금을 모아 자신의 부족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만들었고, 혹시나 세금을 바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법’을 만들기도 하였다. ‘법’을 만들면서 점차 국가와 비슷한 조직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농경의 시작에서부터 국가의 성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해보았다. 이후의 역사는 국가 조직 차원에서 보존된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농경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정착 생활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인류 역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