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백령도와 가까운 섬 소청도에는 국가철새연구센터가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한국을 찾는 548종의 조류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철새의 이동, 생태, 현황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센터에서 조류생태학자들은 가락지부착조사, 위치 추적 연구, 유전자 분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그들을 다룬 기사에 실린 한 사진에는 국방색에 가까운 등산복을 입고 쌍안경과 망원경을 사용하는 연구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국가철새연구센터에서 철새를 연구하는 조류생태학자들의 모습은 생물학 하면 흔히 떠오르는 흰 가운을 입고 비커를 든 실험 생물학자와 전혀 다르다. 실험실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을 실험에 매진하는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의 모습은 이들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될 수 없다. 연구가 이루어지는 주된 장소도 실험실보다는 새가 서식하는 산, 들, 숲, 섬, 바다와 같은 필드field1다. 철새 조사와 연구는 대부분이 철새를 실험실로 들여오지 않은 채 이루어진다. 어떤 경우 아예 실험실 없이 데이터를 생산하기도 한다. 가령, 겨울에 도래하는 철새의 개체수를 조사하는 프로그램인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의 전 과정은 철새가 월동하는 서식지와 국립생물자원관의 사무실office이라는 두 종류의 장소에서만 이루어진다. 철새의 과학은 실험 생물학보다는 연구나 조사 대상이 서식하는 실험실 밖의 필드field에서 주로 실행된다는 점에서 야외 생물학field biology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과학의 장소, 필드field
야외 생물학은 실험 생물학과 분명 겹치는 분야이지만, 과학사학자들은 이 분야를 독립적인 역사와 기법을 발전시켜온 생물학 분야로 간주한다. 로버트 콜러Robert Kohler는 과학이 실행되는 ‘장소’를 키워드로 실험 과학과 현장 과학을 구분한 과학사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실험실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의 특징은 장소탈각placeless에 있다 [1]. 대개 과학 지식은 실험실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생산되지만, 그 장소의 구체적인 특성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현대 과학 지식의 보편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애초에 실험실이란 구체적인 특성을 최대한 탈각시켜 어디서나 적용되는 보편적 지식을 생산하기를 지향하며 고안된 특수한 장소다. 다시 말해, 실험 생물학자들에게 실험실이 위치한 그 장소의 지엽적인 특성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모든 기구와 생물들은 다른 장소에서도 그대로 활용될 수 있기 위해 그것이 지닌 장소의 특성을 탈각시켜 표준화를 거쳐야 한다. 이는 실험 생물학이 모델 생물을 활용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실험 생물학은 장소 탈각을 지향하며, 지향하도록 고안된 과학이다.
반면 야외 생물학에서 장소는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다. 콜러는 실험 생물학과 대조적으로 야외 생물학에서 ‘장소배치의 실행practice of emplacement’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2]. 이는 자연 현상이 목격된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연구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핵심적이라는 의미이다. 야외 생물학 연구에서는 어떤 장소를 선택할지, 그 장소의 특성을 어떻게 측정할지, 그 장소에 어떻게 접근할지와 같은 문제가 내내 중요하다. 가령, 조류생태학에서 어떤 종을 연구할 때 그 종이 목격된 장소는 기록에서 누락될 경우 그 기록 자체가 무의미해질 만큼 중요한 정보이다. 때로 특정한 필드가 연구 장소로 선택되는 것은 그 조사지가 가진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갈라파고스와 같은 섬이 진화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육지로부터 격리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 있었다.
야외 생물학자들이 실험실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야외 생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조사지에 장기간 머물러야 할 때 활용하는 연구 장소는 필드 스테이션field station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다. 필드 스테이션은 19세기 중반쯤 야생동물을 그들이 사는 장소에서 연구하기 위해 유럽에서 세워지기 시작한 과학의 새로운 장소이다 [3]. 앞에서 언급한 국가철새연구센터는 필드 스테이션의 사례이다. 국가철새연구센터에는 실험실을 포함해 표지 조사실과 표본실 등이 설치되었다. 필드 스테이션은 연구자가 조사지에서 장기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소이다. 필드 스테이션의 존재는 필드가 단순히 실험실 연구를 위해 사전에 잠깐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4]. 자연을 자연이 있는 그 장소에서 연구하는 야외 생물학의 역사는 실험 생물학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야외 조사
실험실과 필드가 다른 만큼이나 야외 생물학자의 작업은 실험 생물학자의 작업과 다르다. 이 차이는 야외 생물학자들이 연구하려는 자연은 대개 실험실로 불러들여 올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조류생태학자가 철새의 이동과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철새를 거대한 실험실로 데려올 수 없지 않은가. 행여 불러올 수 있다 하더라도 야외 생물학자들은 연구하려는 자연을 자연이 있는 그 장소에서 연구하기로 결정한 이들이다. 중요한 점은 조사지에서 연구자가 원하지 않은 잡음이 포함된 데이터 중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는데 있다. 실험 생물학자가 실험실이라는 고도로 인공적인 장소에서 인공적으로 재현한 통제된 현상을 관찰한다면(이 과정도 상당히 어렵다), 야외 생물학자는 목적하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기에 적합한 필드를 찾아내 연구하거나, 필드에 가득 찬 잡음 중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과학사학자 위리외 헤일라Yrjö Haila는 야외 생물학을 관찰 과학이라 부르면서 야외 생물학에서의 관찰이 천문학이나 지질학과 같은 여타의 전통적인 관찰 과학과 다른 활동임을 강조했다. 천문학의 연구 대상인 행성이나 지질학의 연구 대상인 지층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 규모와 비교하면, 조류생태학과 같은 야외 생물학에서 연구 대상인 야생 조류가 변화하는 현상의 시간 규모는 아주 짧음을 알 수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변화를 기록하고, 이로부터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내기 위해 야외 생물학자들은 연구 대상이 서식하는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장기간 반복적인 관찰을 실시한다. 이 모든 현장 관찰을 야외 조사라고 부를 수 있다. 야외 조사에서는 수명이 짧은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현장에서 바로 목록을 만들거나, 수를 집계하고, 종을 분류하며, 변화를 계산하기 위한 수많은 (숫자) 데이터를 생산하는 기록 작업이 핵심이다.
조류생태학도 스스로 움직이는 야생 조류를 파악하기 위해 제한된 환경에서 정확한 수치를 얻는 야외 조사 기법을 발달시켜왔다. 다양한 조건의 조사지에서 야생조류의 현황을 수치화하기 위한 야외 조사 중 하나인 센서스 기법에 관한 책은 250쪽이 넘는다. 연구자는 걷는 속도를 조정하거나, 조사 지점에 머무는 시간까지 표준화함으로써 정확한 집계를 꾀한다. 이 책에는 조사지에서 발견되는 모든 종을 집계하는지, 단일 종을 집계하는지, 산림에서 조사하는지, 시야가 넓게 트인 바다에서 조사하는지 등에 따라 정확한 수치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이 실려 있다 [5].
현장에 “주파수를 맞춘tuning-in” 몸
두꺼운 책에 실린 야외 조사의 기법을 실제로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간과해서는 안될 지점이 있다. 바로 야외 생물학자의 훈련된 감각이다. 특히 야생 조류와 같이 제 맘대로 나타나는 동물을 그 서식지에서 연구하기 위해 훈련된 감각은 필수적이다. 대개 필드에서 새들은 인간이 원하는 시점에서 원하는 지점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연구자는 장기간 그 현장에서 조사하고자하는 야생 조류를 관찰해 온 현장 경험으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조사 가능한 시점과 지점을 예측한다. 가령, 아무리 산, 바다, 강과 같은 필드에 몇 시간씩 서 있더라도 날아가는 새를 바로 그 현장에서 식별할 수 없다면, 혹은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내는 새가 어떤 새인지 알 수 없다면, 혹은 아예 목적하는 새가 서식할만한 환경을 찾아낼 수 없는 연구자라면 조사를 완수 할 수 없을 것이다. 야외 생물학자의 몸은 마치 복잡한 신호로 가득 찬 야외조사지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포착하는 실험 기구처럼 활약한다.
과학기술학자이자 인문지리학자인 제이미 로리머Jamie Lorimer는 소음으로 가득 찬 야외에서 조사 대상인 새를 파악할 수 있는 조류학자의 몸을 그 새의 소리를 듣기 위해 “주파수를 맞춘tuning-in” 몸이라고 부른다 [6]. 이는 야외 생물학에서의 관찰이 수동적이거나, 단순한 과학 활동이기보다는 주파수를 적극적으로 맞추는 행동으로 비유할 수 있을 만큼 능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표현한다 [7].
콜러는 동물행동학이나 야생동물 생태학과 같은 야외 생물학을 체류 과학resident science이라 부른다 [8]. 현장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파악하기 위해 야외 생물학자들은 아예 연구 대상과 장기간 살면서 현장의 단서를 파악하고 추론하는 법을 훈련하는 방식의 연구 방법을 발전시켜왔다. 관찰하는 연구자와 관찰 대상이 장기간 같은 장소에 머문다는 사실 자체가 야외 생물학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야외 생물학자들은 오랜 기간 체류하면서 연구 대상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관계로부터 현장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영장류학자 중의 한 명인 제인 구달[그림1]은 영장류를 연구하기 위해 그들과 같은 곳에서 체류하기의 방법을 선택한 최초의 영장류학 학자였다. 구달의 침팬지 연구는 객관적인 거리두기의 관찰이기보다 함께 살면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적극적인 관계 맺기로부터 가능해진 다른 종류의 관찰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먹이주기를 통해 침팬지와 연구자 간의 접촉 지점이 지속적으로 생기면서 이전에는 기록되지 않았던 새로운 행동에 대한 관찰 데이터가 쌓일 수 있었다.
행동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에는 습관화habitu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습관화는 우리가 어떻게 학습하는가를 행동의 차원에서 알려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처음에는 모든 자극을 새롭게 느끼던 사람도 반복되는 자극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는데, 이는 그 주변 환경을 친숙하게 인식하는 일종의 학습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사회인류학자 리스 알케나-스티븐스Lys Alcayna-Stevens는 보노보[그림2]를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자들이 습관화를 하나의 연구 기법으로 활용한다고 보았다. 대개 습관화는 실험실에서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관찰해야 하는 연구 주제이다. 그러나 보노보를 서식지에서 직접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자들은 자연스러운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보노보가 인간인 연구자를 친숙한 존재로 여겨 더 이상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연구 가능한 상황을 만든다. 물론 이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보노보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보노보가 사는 그 서식지에 친숙해지는 습관화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각종 새 소리, 곤충 소리, 다른 포유류의 발자국, 분비물까지 보노보 이외의 자극들을 거를 줄 아는 새로운 감각을 익히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야외 생물학의 실행에서 보노보와 연구자가 모두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는 습관화를 거친 후에야 지식 생산은 가능해진다 [9]. 이렇게 야외 생물학은 연구 대상과의 장기적이며 반복적인 직접 접촉을 통해 달성한 연구 대상과의 특별한 관계로부터 가능해진다. 그 관계를 맺는 방식은 야외 생물학자 편에서만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침팬지, 보노보, 철새에 이르기까지 야외 생물학자들은 서로 다른 습관화의 전략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야외 생물학의 과학하기란 실험실에서의 과학하기와 다르며,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대부분의 필드가 현대 사회에서 보호가 논의되는 자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야외 생물학이란 현대 사회가 자연과 관계 맺는 매우 독특한 방식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외 생물학은 실험실을 중심으로 한 과학에 대한 탐구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실험실 너머의 과학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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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hler, R. E. (2002). Place and practice in field biology. History of Science 40(2), 18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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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Bont, R. (2015). Stations in the Field: A History of Place-based Animal research, 1870-193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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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hler, R. E. and Vetter. J. (2016). The field. In Lightman. B. ed.. A Companion to the History of Science (282-95). John Wiley & 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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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by, C. J.. et al.. (2000). Bird census techniques. Else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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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imer, J. (2008). Counting Corncrakes: The Affective Science of the UK Corncrake Census. Social Studies of Science 38(3), 377-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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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ton, L. (2008). On scientific observation. Isis, 99(1), 9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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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hler, R. E. (2019).ᅠInside Science: Stories from the Field in Human and Animal Scienc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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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ayna-Stevens, L. (2016). Habituating field scientists. Social Studies of Science 46(6), 833-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