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병렬parallel 연산을 수행한다. 병렬 연산이란 컴퓨터 작업을 여러 계산 자원으로 나누어 동시에 처리함으로써 연산 시간을 단축시키는 기술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러한 병렬 연산을 양자 얽힘entanglement을 활용하여 수행함으로써 디지털 컴퓨터의 계산 성능을 월등히 뛰어넘는 잠재력을 제시하고 있다.
양자역학 원리를 활용한 병렬 연산
양자 병렬 연산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 향상을 이끌고 있는 SoCSystem-on-Chip 기술을 살펴보자. SoC 기술은 CPU, GPU, 메모리 등 다양한 계산 자원을 하나의 칩에 통합하는 기술이다. 병렬 연산을 위해서는 여러 계산 자원 간의 동기화synchronization나 작업 병렬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송수신이 필수인데, SoC 기술은 여러 계산 자원을 하나의 칩에 모아 정보 송수신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림 1 (가)].
양자컴퓨터는 얽혀 있는 여러 양자 하드웨어를 계산 자원으로 활용하여 병렬 연산을 수행한다. 양자 얽힘은 양자 하드웨어에서 관측되는 비국소적non-locality 현상을 설명하는 양자물리적 개념으로, 일상생활에서 관측되지 않기에 직관적인 이해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얽힘 기반의 비국소적 상관관계를 활용하는 양자컴퓨터의 병렬 연산은 얽혀 있는 여러 양자 하드웨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림 1(나)]. 이는 디지털 컴퓨터의 병렬 연산이 하드웨어 간 정보 송수신에 기반을 두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원자 기반 양자프로세서
양자컴퓨터를 구성하는 하드웨어는 기본적으로 디빈센조DiVincenzo기준1을 충족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초전도체 회로, 포획 이온, 고체 소재 기반 양자점과 점결함, 광자, 중성원자 등이 있다. 양자컴퓨터에서 양자 연산이 수행되는 양자프로세서QPU는 이러한 양자 하드웨어 집합체이며, 연산 수행에 있어 QPU 내 양자 얽힘 상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양자 하드웨어의 상태는 큐비트qubit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표현된다. 여러 양자 하드웨어로 구성된 QPU의 상태는 큐비트 상태의 집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양자 알고리즘이란 QPU에 존재하는 얽힘 상태를 제어하는 일련의 인스트럭션instruction이며, 이를 큐비트 기반으로 표현한 것이 양자회로quantum circuit이다. 이 때, 큐비트로 표현된 양자 하드웨어의 물리적 상태를 물리 큐비트physical qubit로 정의한다. QPU는 이러한 물리 큐비트 배열로 구성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중성원자 QPU는 레이저로 냉각된 원자를 양자 하드웨어로 사용한다. 많이 사용되는 원자로는 루비듐Rb, 세슘Cs, 이터븀Yb 이 있으며, 냉각된 개별 원자는 레이저로 형성된 광학 초점 배열optical focus array에 포획되어 원자 배열을 형성한다 [그림 2(가)]. 개별 원자 포획에 사용되는 광학 초점을 광집게optical tweezer라고 부르며, 광집게의 위치는 3차원 공간에 실시간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 광집게의 배열로 결정되는 원자 배열의 기하적 특징은 QPU 내 얽힘을 형성할 수 있는 물리 큐비트의 연결성connectivity을 결정한다. 광집게 위치의 실시간 프로그래밍을 통해 QPU의 연결성은 양자 연산 수행의 수월성을 위해 실시간으로 재구성될 수 있으며, 이는 다른 물리 큐비트 플랫폼이 가지고 있지 못한 중성원자 QPU 만의 장점이다.
광집게에 포획된 원자의 물리적 상태는 슈뢰딩거 방정식의 고유 해로 정의된다. 여러 고유 해 중 외부와 고립도가 높아 결맞음coherence 시간이 길고 고품질로 제어할 수 있는 상태를 물리 큐비트로 활용한다 [그림 2(나)]. 이러한 대표적인 물리 큐비트로 기저 상태ground state 원자의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이 있다. 원자의 각운동량 상태는 양자물리적 특성을 지니며, 원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양자 얽힘을 운용 할 수 있다 [그림 2(다)].
중성원자 QPU의 양자 연산은 배열된 원자에 여러 레이저를 조사irradiation하여 수행된다. 양자 연산의 시작은 QPU를 구성하는 모든 물리 큐비트의 상태를 0 (또는 1) 상태로 준비하는 QPU의 상태 초기화 과정이다. 중성원자 QPU의 초기화는 레이저를 이용한 광학 펌핑optical pumping을 통해 수행된다. 광학 펌핑은 원자가 조사되는 레이저와 상호작용함에 있어, 양자역학적 선택 법칙selection rules을 따른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원자는 선택 법칙을 만족하지 않는 하나의 내부 상태에 이를 때까지 레이저와 상호작용을 하며, 이렇게 광학적으로 펌핑된 내부 상태를 활용하여 QPU물리 큐비트의 상태를 초기화한다.
초기화된 QPU에 양자 회로 입력을 통해 양자 연산이 진행된다. 양자 회로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양자 게이트를 입력하는 과정 역시 정밀하게 제어된 여러 레이저 펄스를 원자 배열에 조사하며 이루어진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레이저의 주파수frequency, 편광polarization, 펄스간격pulse width을 조정하여 원자에 조사하면, 양자 게이트 입력에 필요한 광-원자 상호작용이 개시된다. 양자 얽힘 제어에 있어서는 광-원자 상호작용과 더불어 원자-원자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중성원자 물리 큐비트는 기본적으로 외부와 고립되어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얽힘 제어를 위한 다중multi 큐비트 게이트 입력 시 레이저 조사를 통해 기저 상태의 원자를 리드버그Rydberg 상태로 전이transition 시킨다.
리드버그 상태에 있는 원자들은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을 하며, 인접한 원자가 동시에 리드버그 상태로 전이하지 못하게 하는 리드버그 봉쇄blockade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 때, 상호작용하는 인접한 원자 중에 어느 원자가 리드버그 상태로 전이되었는지 결정할 수 없는 양자물리적 특징을 이용하여 원자 간의 얽힘을 형성할 수 있다. 원자 간 얽힘 형성이 완료되면 원자에 다시 레이저를 조사하여 외부와 고립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고품질로 서로 얽혀 있는 기저 상태 물리 큐비트로 되돌린다. 이처럼 (1) 기본적으로는 외부와 고립되어 있는 동일한 원자이면서, (2) 얽힘 제어를 위해 필요할 때만 원자 간 상호작용을 켜고 끌 수 있다는 점, (3) 광집게의 위치 프로그래밍을 통해 물리 큐비트 간의 연결성을 실시간 재구성 할 수 있다는 점은 대규모의 양자 연산을 위해 필요한 큰 스케일의 QPU 제작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양자 연산 수행에는 QPU의 상태 초기화, 게이트 입력과 더불어 큐비트의 정밀한 비파괴적non-destructive 상태 측정이 필수적이다. 양자 상태 측정은 양자 연산에 요구되는 제어 중에 유일하게 디지털 방식으로 수행되며, 따라서 오류 내성fault-tolerant 양자 컴퓨팅의 핵심적 제어 요소가 된다. 중성원자 물리 큐비트의 상태 측정 역시 앞서 설명한 다른 제어 방식과 같이 레이저 조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구체적으로는 원자-레이저의 공명resonance 전이 기반으로 발생하는 원자의 형광fluorescence 검출을 통해 이루어진다. 원자가 레이저와 공명하면 원자는 레이저의 광자photon를 흡수absorption한다. 이 때, 원자는 레이저 광자를 흡수하는 정도를 자가 방출spontaneous emission되는 정도와 균형을 맞추며 형광을 발생시킨다. 만약, 조사되는 레이저의 주파수를 큐비트 0 상태인 원자와 공명하게 설정하면, 큐비트 0 상태의 원자는 형광을 발생시키지만, 큐비트 1 상태의 원자는 형광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처럼 원자의 형광 방출 여부를 광자 검출기로 측정하여, 중성원자 물리 큐비트 상태를 비파괴적으로 특정할 수 있다.
양자 하드웨어–알고리즘 코디자인
물리 큐비트의 물리적 특성은 QPU의 연산 특징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같은 루비듐 원자로 구성된 중성원자 QPU라도 물리 큐비트로 삼는 원자 상태에 따라 양자 연산의 특징이 달라진다. 앞서 언급한 각운동량 상태를 물리 큐비트로 사용하는 QPU는 복잡한 연결성을 요구하는 양자 회로의 입출력에 유리하다. 반면 원자에 항상 상호작용 하고 있는 리드버그 상태를 물리 큐비트로 사용하는 QPU는 대규모 그래프 최적화 문제나 양자 시뮬레이션 문제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처럼 중성원자의 리드버그 상태를 물리 큐비트로 활용하는 양자 컴퓨터를 ‘리드버그Rydberg 양자컴퓨터’라고도 부른다.)
QPU의 연산 특징이 물리 큐비트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양자 알고리즘 설계에 있어서도 물리 큐비트의 특징을 반영하는 ‘하드웨어-알고리즘 코디자인co-design’이 필수적이다. 이는 양자 얽힘의 활용법에 집중해 알고리즘을 개발하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물리 큐비트의 얽힘 운용 특성을 본질적으로 고려해 알고리즘을 설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코디자인은 이미 작성된 양자 회로를 QPU에 호환되도록 변환하는 컴파일compile 최적화와는 달리, 알고리즘 설계 단계부터 QPU의 물리 큐비트 운용 방식을 적극 반영한다.
하드웨어-알고리즘 코디자인은 양자 오류 정정 코드quantum error-correction code로 정의된 논리 큐비트logical qubit 기반 양자 컴퓨팅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논리 큐비트는 물리 큐비트에 양자 안정화stabilization 회로를 적용해 형성되는 알고리즘적 산물인데, 이때 안정화 회로의 코디자인을 적절히 수행하면 논리 큐비트 형성에 필요한 오버헤드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중성원자 QPU는 이러한 코디자인 기법을 통해 수십 개 이상의 논리 큐비트를 생성하고, 이를 활용한 논리 양자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맺음말
양자컴퓨터는 양자 얽힘을 활용해 병렬 연산을 수행한다. 양자 얽힘은 양자 하드웨어에서만 관측되는 비국소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이는 양자컴퓨터가 제시하고 있는 컴퓨팅 혁신의 본질에 해당한다. 하드웨어 수준에서 복잡한 양자 얽힘을 생성하고 정밀하게 제어하는 연구는 양자역학을 직접hands-on 물리적으로in practice 탐구하는 과정이기에 매우 도전적이다. 동시에, 이러한 도전은 미래 컴퓨팅 패러다임을 정의하고 새롭게 열어 가는 즐겁고 뜻깊은 여정이기도 하다. 양자컴퓨터의 본질인 양자 하드웨어 기술 발전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하드웨어-알고리즘 코디자인은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많은 예비 연구자가 이 여정에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