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포워드 = MBQC

지난 연재를 통해 측정 기반 양자 컴퓨팅MBQC, measurement-based quantum computing의 개념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피드포워드 하드웨어를 개념적 수준에서 살펴보았다. 요약하자면, MBQC 는 양자 정보 관점의 용어, 피드포워드는 하드웨어 제어 관점의 용어라는 점에 차이가 있으나 광기반 양자컴퓨팅이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피드포워드 개념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보다 구체적인 형태의 아래 개념도를 제작하였다. 이 그림은 광기반 양자컴퓨팅의 실제 연산이 이루어지는 기본 단위 모듈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그림을 앞선 연재에서 논의했던 측정 기반 연산의 프로토콜에 기반하여 해석해 보자.


 

먼저 측정기반 양자 정보 처리는 양자 텔레포테이션 프로토콜과 유사하다는 기존 내용을 상기하자. 텔레포테이션 프로토콜 중 초중반부를 제외하고, 측정 시점부터 일어나는 동작만 나열하게 되면 측정 → 결과 해석 → 결과에 따른 조건부 게이트 적용의 3단계로 이루어진다. 피드포워드 그림은 이러한 3단계를 의미하는데, 양자 정보를 가진 빛의 실제 물리적 흐름을 표현하기 위하여 위쪽과 아래쪽 경로를 별도로 표현하였다. 

각각 연산 및 측정 큐비트 에 대응되는 위와 아래 2개의 경로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드포워드 3단계 동작에는 일정 시간이 소모되고, 이 시간 동안 연산 큐비트에 해당하는 양자 정보가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텔레포테이션 프로토콜을 떠올려 보더라도, 측정된 디지털 데이터가 도착하여 대응하는 게이트를 가하기 전까지 나머지 큐비트는 잘 보존되어 이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측정 결과를 기다리는 큐비트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를 양자 메모리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앞서 언급한 3단계 동작은 주로 아래쪽 경로에서 이루어지며, 구체성을 더하기 위해 실제로 활용되는 하드웨어들의 명칭을 표시하였다. 단일 광자 측정은 초전도 검출기, 결과 해석은 반도체, 조건부 게이트는 실리콘 포토닉스 전기광학 스위치를 통해 구동 된다. 

아래쪽 경로의 구성 기술 3개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특정했는데, 이 세 기술이 현재 수준에서 가장 현실적인 추진 방향이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에서 기술 검토를 통해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논리를 상술한다.


‘매우 유용한’ 양자컴퓨터의 규모

구체적인 광기반 양자 컴퓨팅 하드웨어 기술 검토에 앞서,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던 양자컴퓨팅 일반에 대하여 잠깐 다뤄 보려고 한다. 특히, 최근인 2025년 초반 양자컴퓨팅 상용화 시점 논쟁에 불을 붙였던 Nvidia CEO 젠슨황의 말을 분석해 보자. 그는 “매우 유용한very useful” 양자 컴퓨터를 제작하려면 15에서 3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양자컴퓨팅 업계의 반발과 각종 논쟁이 있었는데, 당시 있었던 다양한 논의를 종합해 보면 결국 ‘유용함’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논란의 주요 원인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유용한 양자 컴퓨터는 어떤 응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래 그래프는 인터넷 웹사이트https://metriq.info/progress에서 얻었다. 여러 전문가가 참여하여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가로축은 양자 게이트 수행 회수, 세로축은 큐비트 개수를 의미한다. 

 

이 그래프에서 주목할 만한 두 지점이 있다. 가로축이 로그 스케일인 점, 세로축의 큐비트 개수가 논리 큐비트인 점이다. 즉, 가로축은 한 칸만 이동하더라도 10배만큼 많은 연산을 연속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차트의 왼쪽에 위치한 응용과 오른쪽에 위치한 응용 사이에는 상당한 구현 난이도 차이가 존재한다.

세로축의 논리 큐비트는 일반적으로 매체에서 언급되는 큐비트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신문이나 과학 잡지 등에서 말하는 큐비트는 물리 큐비트로 불리는 개념으로, 하드웨어 형태로 존재하는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큐비트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초전도 큐비트의 경우 물리 큐비트 1개가 있다고 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패턴이 칩 위에 제작되어 있다는 뜻이다. 

복수 물리 큐비트 X개*(이 숫자 X를 오버헤드라 부른다)를 묶어서1개의 큐비트처럼 해석될 수 있을 경우 이를 논리 큐비트라고 한다. 지난번 연재의 측정기반 프로토콜 설명 시 등장한 1개의 큐비트에 해당하는 가로선이 실제 하드웨어서는 복수의 큐비트들이 조합되어 해당 역할을 수행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러한 구성을 갖는 이유는 범용 연산에 필수적인 오류 정정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하드웨어도 완벽한 큐비트를 만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하고, 따라서 이를 수정할 방법이 필요하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중복 및 다수결을 활용한 오류 정정이다. ‘0’이라는 데이터를 표시하고 싶다면, ‘000’이라고 3번 표기하면 좀 더 안전하다. 혹시 셋 중 하나가 오류가 나서 ‘001’ 이 되더라도, 마지막 1에서 오류가 났다고 판단하여 ‘0’으로 해석하면 오류를 없앨 수 있다. 디지털 컴퓨터에서는 이것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원리를 기반으로 오류 정정을 수행한다.

다만 양자 컴퓨터에서는 ‘양자 불복제 정리’라 불리는 원리로 인해, 이러한 단순한 중복 기록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을 써야 하며, 이 때문에 위 문단에 언급된 오버헤드 X 가 매우 크다. 하드웨어 플랫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상용화를 위한 오버헤드는 대략 1,000정도로 보면 된다. 

이제 젠슨황이 언급했던 유용한 양자컴퓨터의 영역을 살펴보자. 차트 위에 다양한 응용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소인수 분해factoring라고 할 수 있다. 소인수분해 알고리듬은 우리 일상의 통신 보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양자 컴퓨터가 매우 어려운 수학 문제 해결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밝혀낸 대표적 응용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래프에 의하면 소인수 분해는 1,000개 이상의 논리 큐비트가 필요하다. 따라서 여기에 오버헤드인 1,000을 곱하게 되면, 소요되는 물리 큐비트 숫자가 1백만개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젠슨황의 발언은 ‘유용함’의 의미를 소인수 분해와 같은 강력한 응용으로 해석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 경우 양자컴퓨터는 1백만개 이상의 큐비트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 백만이라는 큐비트 숫자는 위와 같은 해석을 전제로 양자컴퓨팅 업계에서 비교적 널리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2025년 기준 현재의 기술 수준은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양자컴퓨터로 불리는 구글의 윌로우 칩은 2024년 100개 정도의 물리 큐비트를 이용해 오류 정정 기능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 1위 수준 기술 조차 100만개가 되려면 10,000배 더 규모를 키워야 한다. 이것이 양자 컴퓨팅 업계가 처한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젠슨황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매우 유용한 양자컴퓨터는 100만 큐비트 규모이며, 따라서 현재 기술을 10,000배 이상으로 확장해야 한다.


100만 큐비트 광기반 범용 양자컴퓨터

백만 큐비트라는 숫자를 기억한 채 광기반 양자컴퓨팅 논의로 돌아가자. 100만 큐비트 규모 광기반 양자컴퓨팅 시설은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될까? 현재 기술로는 대략 축구장 만한 크기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25년 기준 세계적으로 1,00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광기반 범용 양자컴퓨팅 기업은 전세계 세 곳 정도가 있다. 미국의 PsiQuantum, 캐나다의 Xanadu, 프랑스의 Quandela 가 이에 해당하며, 각기 자사의 특수 기술로 차별성을 구축하여 경쟁 중에 있다. 

이 중 미국 PsiQuantum 의 투자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기술 개발도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그들의 주장을 참고해보자. 이 회사는 2025년부터 미국의 시카고, 호주의 브리즈번 지역에 2개의 양자컴퓨팅 시설을 동시에 건설할 예정인데, 컴퓨터 설비만 축구장 크기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PsiQuantum 사의 광기반 양자컴퓨터는 실리콘 포토닉스 칩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경쟁 하드웨어 플랫폼과 달리 광기반 양자컴퓨터의 경우 100만 큐비트 머신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광소자가 필요함이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100만개 광큐비트를 생산하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소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현존하는 최고의 광소자 집적 기술인 실리콘 포토닉스를 활용할 수 밖에 없고, 이를 활용할 때 겨우 축구장만한 크기로 설비 규모를 줄일 수 있다.

캐나다의 Xanadu, 프랑스의 Quandela 의 경우 자사의 특수 아키텍처를 활용해 이보다 작은 규모로 건설이 가능하다 주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수많은 소자와 피드포워드 기능을 필수로 갖춰야 하므로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을 활용할 수 밖에 없다. 두 회사의 공개된 로드맵에도 이러한 내용이 확인된다. 따라서 현재 기준으로 전세계 1-3위 규모의 투자를 받은 모든 회사가 실리콘 포토닉스를 핵심 기술로 활용함을 알 수 있다. 

위 논의를 바탕으로 추측컨데, 광기반 양자컴퓨팅 제작을 위해서 실리콘 포토닉스의 활용은 필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를 써서 조금 더 작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유용한 수준의 광기반 양자컴퓨터는 실리콘 포토닉스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래의 상술될 피드포워드 하드웨어 기술 검토는 실리콘 포토닉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실리콘 포토닉스 

실리콘 포토닉스는 광기반 양자컴퓨팅의 핵심이자 주인공이다. 과학기술인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용어일 것이다. 하지만 본 논의의 핵심 내용이므로 이 기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Nvidia 의 젠슨황을 한 번 더 모셔오자. 왜냐하면 이 분은 양자컴퓨팅 뿐만 아니라 실리콘 포토닉스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고 실리콘 포토닉스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Nvidia 는 GTC 라 불리는 연례 행사를 갖는데, 통상적으로 젠슨황은 여기서 자사의 다양한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Nvidia 가 AI 분야의 독보적인 하드웨어 기업이 된 지금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세계적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번 GTC 2025에서 그는 향후 Nvidia 에서는 GPU 등 기존 반도체 기술과 실리콘 포토닉스를 하나의 보드에 통합한 CPOCo-Packaged Optics 라는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 선언하였다.

CPO를 활용하는 이유는 현재 뜨거운 화두인 초대형 AI 데이터 센터 구성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손 안의 비서인 AI 툴들 뒤에는 이런 초대형 AI 데이터 센터가 있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은 이 데이터 센터 접속을 도와주는 중간자 역할을 할 뿐이다. 거대 데이터 센터는 수많은 반도체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대형 전자 기기이며, 실리콘 포토닉스는 복잡한 연결성 개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실리콘 포토닉스가 쓰이는 이유는 이들이 빛을 다루는 반도체 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리콘 포토닉스를 광반도체라는 다른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기존에 해왔던 대로 전기 신호를 다루는 반도체를 쓰면 될텐데 왜 굳이 빛을 활용할까? 전기 신호와 달리 빛 신호는 먼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손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빛의 이러한 장점을 십분 발휘해 AI 데이터 센터의 전체 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광통신 부품기술을 그대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왜 굳이 반도체 칩 형태인 실리콘 포토닉스를 쓸까? 이는 현대 IT 기술의 거대한 정보 처리량에 기인한다. 최근에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는 최신형 반도체는 1개의 칩에 무려 천억개가 넘는 트랜지스터가 쓰이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반도체 수준에 필적할 만한 많은 정보를 광기술로 처리할 수 있어야 두 기술의 결합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대 기술의 정보 처리 스케일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소자의 소형화 및 집적이 필수적이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기존에 1 – 10 cm 정도의 크기를 가졌던 광부품들을 0.1 – 1 mm 수준 크기로 줄일 수 있다. 또한, 크기가 작기 때문에 1 X 1 cm 수준의 매우 작은 면적에도 수 만개 이상의 소자 제작이 가능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도파로라 불리는 대표적인 실리콘 포토닉스 소자 개념을 설명해 보겠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휴대용 손전등을 생각해 보자. 경험적으로 우리는 빛이 직진하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빛이 직진하는 거리가 멀어질 수록 빛의 면적이 좌우로 퍼지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빛이 직진하고 퍼지면 고집적 정보처리에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소자를 도파로라고 한다.

도파로는 빛이 흘러가는 일종의 통로로 볼 수 있다. 수도관에 물이 새지 않고 잘 흘러가는 것처럼, 도파로도 빛에 대한 통로 역할을 한다. 이 도파로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빛의 파장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인터넷의 근간인 광통신 기술에서활용하는 파장은 대략 1 – 1.5 마이크로미터 정도가 된다. 따라서 도파로의 크기는 대략 두께나 지름이 1 마이크로미터 전후가 된다. 

 

1 마이크로미터는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대략 1/100 정도에 해당하므로, 도파로가 얼마나 작은 소자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리콘 포토닉스 칩에는 이렇게 작은 도파로가 상하수도 시설의 파이프처럼 복잡한 형태로 얽혀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작고 복잡한 패턴을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이미 1 마이크로미터 보다 천 배 정도 작은 나노미터 패턴도 제작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적용하면 실리콘 포토닉스 칩 제작이 가능하다.

요약하자면, 실리콘 포토닉스는 매우 많은 광소자를 작은 면적에 집적하여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AI 와 반도체 분야의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광기반 양자컴퓨팅 또한 같은 이유 때문에 대표적인 실리콘 포토닉스 수혜 기술이 되었다. 작은 면적에 수많은 광소자를 공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광소자가 필요한 범용 양자컴퓨팅 설비를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실리콘 포토닉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피드포워드 요소 기술인 양자 메모리, 양자광 검출기, 반도체, 전기광학 효과 스위치를 자세히 알아보자.


양자 메모리

위쪽의 피드포워드 개념도를 살펴보면, 연산 큐비트 경로에는 양자 메모리라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양자 메모리는 실제 어떠한 하드웨어로 구성되는지 살펴보자. 

현대인 모두에게 디지털 컴퓨터에서 활용되는 메모리는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일상에서 컴퓨터를 다루는 모든 이들은 한 번쯤 USB 드라이브를 메모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양자 메모리도 이와 유사하다. 양자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한 타이밍에 정확히 불러낼 수 있으면 된다. 

양자 기술 분야 내에는 매우 많은 종류의 양자 메모리가 존재한다. 이 중 단일 원자와 같은 개별 입자 형태나 이들의 집합체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원자 내부의 전자 혹은 원자핵 스핀을 큐비트로 활용한 양자 메모리가 개발되어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자 메모리를 광기반 양자컴퓨터에 적용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다’ 이다. 양자 메모리와 USB 메모리의 다른 점은 기술 고도화 수준, 그리고 이에 뒤따르는 표준화 진행 정도이다. 양자 메모리는 USB 메모리처럼 표준화가 적용된 다양한 기기에  꽂아서 쉽게 쓸 수 있는게 아니다. 이온 트랩 등 일부 플랫폼에서는 시간 단위로 양자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이 실험적으로 구현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양자 정보를 자유롭게 출력하여 광기반 양자컴퓨터에 연결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기술적 난이도가 너무 높다.

이렇게 현재의 양자 하드웨어 기술은 표준화라 할 것이 거의 없고, 하드웨어 플랫폼별로 파편화 되어 있다. 따라서 양자 메모리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유사한 기능을 가진 양자 소자를 묶어주는 개념 용어에 불과하지, 특정 메모리가 아무 양자 기술에 쉽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광기반 양자컴퓨터에 적용이 가능한, 즉 실리콘 포토닉스와 완벽한 인터페이스가 존재하는 양자 메모리로 기술 검토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

실리콘 포토닉스와의 인터페이스를 필수 조건으로 한정하는 순간, 현존하는 모든 원자 형태 물리 큐비트는 양자 메모리 후보가 되기 어렵다. 물론 이러한 기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닐 뿐 아니라, 만약에 그런 것이 있다면 대단한 혁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는 여전히 실험실 원천 기술에 머물러 있으므로 당장 양자컴퓨터를 제작해야 하는 산업계에서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아주 손실이 작은 도파로가 된다. 윗글에서 도파로는 그저 빛이 흘러가는 통로라고 했는데 왜 이것이 메모리로 기능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 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 정보를 어떻게 빛으로 표현하는 지 살펴봐야 한다.


아래 그림을 보자. 빛이 위쪽 도파로로 흐르는 경우, 아래쪽 도파로로 흐르는 경우를 따로 표기하였다. 이 때 양자 정보처리를 위해서는 여기에 아무 빛을 사용할 수는 없다. 빛 알갱이 1개, 즉 광자 1개에 해당하는 신호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위쪽 도파로에 광자가 있는 것을 큐비트 $|0\rangle$, 아래쪽 도파로에 있는 경우를 큐비트  $|1\rangle$ 로 대응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인코딩 기법은 듀얼 레일 dual-rail 방식이라 불린다.

 

이런 듀얼 레일 방식으로 양자 정보를 저장한다고 생각해보자. 빛은 계속 흐르기 때문에 짧은 도파로라면 짧은 시간 동안, 긴 도파로라면 긴 시간 동안 빛이 머물러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충분한 길이를 가진 듀얼 레일 방식 도파로 쌍은 그 자체로 유한한 시간 동안 정보를 저장하는 양자 메모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러가지 물리적인 원인에 의해 빛이 이 도파로를 지나는 동안 소실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빛 신호가 감쇄되지 않는 저손실 도파로 제작 기술이 있다면, 훌륭한 양자 메모리를 제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을 만족하게 된다. 현대의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은 이미 양자 컴퓨팅에 활용 가능한 수준의 도파로를 제작할 수 있다.

따라서 실리콘 포토닉스 도파로는 길이만 충분하다면 그 자체로 양자 메모리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물론 메모리의 본질적인 기능인 임의의 시간 동안 저장했다 원할 때 출력시키는 일은 고정된 길이를 갖는 도파로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피드포워드 그림에 있는 전기광학 스위치와 결합되어야 한다.

기존 광기술 중에는 실리콘 포토닉스 도파로 말고도 매우 훌륭한 저손실 도파로가 있는데, 이는 바로 유선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광섬유이다. 이 광섬유 또한 실리콘 포토닉스 도파로와 유사하게 메모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광섬유는 인류가 만들어낸 도파로 중 가장 손실이 적은 제품으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기적의 발명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광섬유는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실리콘 포토닉스 도파로보다도 저손실 성능치가 1,000배 이상 뛰어나다. 

하지만 단순히 저손실 성능치가 좋다고 해서 모든 양자 메모리 기능을 광섬유로 구현하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을 수반한다. 광섬유 한 가닥은 머리카락 정도 굵기를 가지므로 별로 크지 않지만, 이를 백 만개 혹은 천 만 개씩 양자 컴퓨팅 설비에 활용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엔지니어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점이 염려되는 경우에는 소수의 광섬유를 실리콘포토닉스 칩 상의 저손실 도파로와 섞어 쓰는 하이브리드 구성을 취하기도 한다. 


감내 가능한 광손실이 양자컴퓨팅 속도를 결정

양자 메모리로 기능하는 도파로의 손실이 적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곧 양자 오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광기반이 아닌 다른 하드웨어 플랫폼에서는 일반적으로 양자 결맞음 시간이라 불리는 성능치가 중요하다. 이는 양자 정보가 주변 환경과 얽히며 양자 정보의 특질을 잃어가는 현상에 기반하며, 결깨짐 시간decoherence time, T2이라 불리는 양으로 그 성능을 표시한다.

하지만 광기반 양자컴퓨팅은 유독 특이하여 이들과 다르다.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 듀얼 레일 인코딩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광기반 시스템의 경우 광손실에 따른 독특한 오류가 존재하며,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된다.

위쪽 듀얼 레일 그림을 다시 살펴보자. 만약 광자가 손실되었을 경우, 큐비트  $|0\rangle$ 과 $|1\rangle$ 중 그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으므로 양자 오류에 해당하며, 이를 삭제 오류erasure error 라 부른다. 광기반 양자컴퓨팅은 이러한 삭제 오류를 일정 부분 감내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삭제 오류는 기타 하드웨어의 결깨짐 오류와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광자가 손실되어 정보가 삭제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삭제 오류는 결깨짐 오류와 달리 0.1 – 0.01% 수준의 매우 낮은 숫자가 아닌, 수 퍼센트 이상의 오류를 허용한다. 뿐만 아니라, 양자 컴퓨터 아키텍처 구성에 따라 감내할 수 있는 오류의 수준을 더 높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컴퓨터가 요구하는 초저손실 소자 제작은 상당히 어렵다. 광자 하나가 감내할 수 있는 삭제 오류가 7 퍼센트 정도라 가정한다면, 로그 스케일로 변환 시 대략 0.3 dB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손실은 광자가 복수의 개별 소자들을 지나가며 누적된 오류일 수 있으므로, 개별 소자의 손실율은 더 낮은 수준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직렬로 연결된 세 개의 소자 A,B,C 가 각각 0.05 dB, 0.15 dB, 0.1 dB 의 손실을 가진다고 하면 종합 시스템의 손실은 그 합인 0.3 dB가 되는 방식이다. 

개별 소자 C 가 위에서 언급한 양자 메모리 기능 담당 도파로이며, 0.1 dB 의 손실을 감내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광섬유 도파로라면 이는 500미터 길이에 해당하며, 빛의 속도를 고려하면 광자가 2.5 마이크로초 정도 머무를 것이다. 광섬유가 아니라 실리콘 포토닉스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저손실 도파로라면 광자가 대략 5나노초 정도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어진 5나노초는 양자 메모리의 유효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를 기타 양자 컴퓨팅 하드웨어와 비교하면 절대 수치 측면에서 상당히 불리하다 여겨질 수 있다. 일부 플랫폼의 경우 수 분, 혹은 수 시간에까지 큐비트 지속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모리의 절대 지속시간으로 단순 비교가 어려운 이유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은 언제나 정보처리 속도와 오류 발생 시간의 상대적인 비율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드포워드 모식도의 양자 메모리 경로에서 5나노초 수준의 손실을 감내할 수 있다면, 절대적인 숫자보다는 아래쪽 경로가 5나노초 대비 얼마나 빨리 동작할 수 있는지 평가해야 정확하다. 또한 이러한 나노 초 수준 동작 속도는 아래쪽 경로를 구성하는 요소 기술들의 선정 기준으로 작용한다.


전기광학 고속 스위치

고속 스위치의 기본 기능은 통과한 광자의 경로가 위쪽이냐 아래쪽이냐 결정해주는 역할이다. 측정 기반 양자컴퓨팅의 마지막 단계인 측정 결과를 조건으로 동작하는 게이트를 적용할 때 이 스위치가 필요하다. 스위치를 보다 복잡한 거미줄 형태로 구성하면 양자 게이트가 된다. 

일반적으로 복잡한 거미줄 스위치는 보다 단순한 단위 모듈들의 합으로 분해할 수 있다. 이렇게 했을 때 나타나는 개념적인 단위 소자를 일반적으로 마흐젠더 간섭계 Mach-Zehnder interferometer, MZI라 부르고, 모양은 아래의 그림과 같다. MZI 구조물은 다시 2개의 빔스플리터 소자(그림의 빗금 표시)와 그 중간에 위치한 위상 변조기(분홍색 표시)로 나뉘어진다. 실리콘 포토닉스 상의 빔스플리터는 한 번 제작하면 바꿀 수 없고, 위상 변조기는 전기 신호를 가하여 그 특성을 바꿀 수 있다. 참고로 공학에서 일반적으로 전자를 수동 소자, 후자를 능동 소자라 부른다.

 

위상을 변조한다는 것은 도파로의 유효 길이를 임의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위상 변조는 도파로 구성 물질의 굴절율을 바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굴절율은 빛이 해당 물질에 대하여 느껴지는 실효적 길이를 의미하는 값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어 물은 공기 대비 굴절율이 약 1.33배 정도 되고, 이 때문에 물컵의 빨대가 꺾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러한 굴절율을 전기 신호를 통해 변경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물리 메커니즘이 존재하며, 실리콘 포토닉스에서 쓰이는 방법을 나열하면 가열, 기계적 변형, 플라즈마 분산 효과, 전기 광학 효과 등이 존재한다. 

나열된 위 메커니즘들은 모두 기술적인 내용이므로 독자들이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실리콘 포토닉스를 활용하는 광기반 양자컴퓨터에게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는 전기광학 효과 원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다. 이 사실이 전반적인 기술 구성에 있어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기광학 효과란 전압을 가했을 때 이에 비례하여 굴절율이 바뀌는 물질의 성질을 일컫는다. 원리적으로 이 경우 0.01 나노초보다도 빠르게 물질이 반응하기 때문에, 초고속을 요하는 피드포워드 시스템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다른 방식들은 이 정도 수준의 초고속 스위치 동작을 지원하지 않거나 광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선택지에서 지워지게 된다. 


초전도 검출기

이제 피드포워드 모식도의 아래 쪽 경로로 이동해보자.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것은 초전도 검출기이다. 현재의 초전도 검출기는 단일 광자의 유무를 정확히 식별해 낼 수 있고, 심지어 광자의 개수도 알아낼 수 있다. 초전도 방식이 아닌 다른 종류의 단일 광자 검출기로도 유사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지만, 그 성능이 초전도 검출기 대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양자 컴퓨팅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초전도 검출기는 광기반 양자컴퓨팅의 필수 선택지가 된다.

 

초전도 검출기도 몇 가지 종류가 있고, 그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초전도 나노선 단일광자 검출기superconducting nanowire single-photon detector, SNSPD라 불리는 기술이다. SNSPD의 경우 미 PsiQuantum 사 논문을 통해 99% 효율을 가진 소자들을 반도체 공정 설비를 통해 대량 생산 가능함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SNSPD는 양자컴퓨팅에 쓰일 수 있는 가장 우수한 기술일 뿐 아니라 사실 거의 유일한 선택지1이기도 하다.

이렇게 초전도 검출기가 유일한 선택지라는 사실은 광기반 양자컴퓨터 전체 부품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검출기 구성 물질이 초전도체 이므로, 이러한 초전도성 유지를 위한 극저온 환경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열처리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집적적으로 영향 받는 요소 기술은 바로 뒤편에 위치한 반도체 칩이다.


ASIC: 저전력, 초고속 반도체

피드포워드에 관련하여 앞서 언급된 내용을 복습해보자. 아래쪽 경로는 위쪽 메모리의 한계 시간 내에서 동작을 마쳐야 하고, 위쪽 메모리는 수 나노초의 제한 시간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전도 검출기, 반도체, 전기광학 스위치 동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동작은 수 나노초 내에 완료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일반적인 반도체는 모두 수 기가 헤르츠 클록 싸이클로 동작한다.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하면, 현대 반도체는 그 내부에서 1초에 무려 수 십억 번의 연산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pple M4칩의 경우 4.4GHz 로 알려져 있고, 이는 곧 1초에 44억번의 동작 또는 0.22나노초에 하나의 동작을 수행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 숫자만 하나만 보면 수 나노초 내의 피드포워드 동작은 쉽게 달성 가능할 것 같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어려움이 있다. 실제 반도체가 수행해야 할 동작이 다소 복잡하여, 단위 동작을 여러 차례 연속적으로 반복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가 양자 오류 정정 기능을 수행할 경우 매우 복잡한 디지털 정보 처리가 요구되므로, 일반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량 생산형 상용 반도체로는 요구되는 초고속 동작을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나노초를 다투는 초고속 기능이 필요하므로 반도체가 초전도 검출기와 물리적으로 매우 가깝게 위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2. 빛이 대략 1나노초에 20cm를 나아가므로, 수 나노초 내에 광자 검출 – 반도체 신호 처리 – 전기광학 스위치에 이르는 일련의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 요소들이 적어도 수 cm 거리 내에 위치해야만 한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검출기의 경우 초전도성 유지를 위해 극저온으로 냉각되어야 하며SNSPD의 경우 그 온도는 대략 2 – 4K 정도가 된다. 이 때, 반도체는 초전도 검출기와 수 cm 이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발열 문제가 대두될 수 밖에 없다. 반도체가 다량의 열을 발생시킬 경우 초전도 검출기의 동작이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위 논의를 요약하면, 광기반 양자컴퓨팅에 활용되는 반도체는 저발열과 초고속의 기능을 동시에 만족시켜야만 하는 극한의 요구 성능이 집약된 제품이다. 따라서 이러한 반도체는 기존의 대량 생산품이 아닌 특수 주문형 반도체 형태로 제작될 수 밖에 없다. 상기의 주문형 반도체는 일반적으로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s 이라 불리며, 수없이 많은 전자 제품에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PC 에 들어가는 CPU 반도체가 기성품 양복이라면, ASIC 은 사용자의 설계 요구사항에 맞춰 성능치를 극대화한 맞춤형 양복에 해당한다.

ASIC 은 매우 널리 쓰이는 기술일 뿐 아니라, IoT 시대가 활짝 열린 지금 이미 다양한 응용에서 열 발생을 최소화하는 저전력 반도체 설계 기법이 널리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기존 ASIC 반도체 설계 기술에서 축적된 수많은 노하우가 광기반 양자컴퓨팅에 적용되어 쓰일 수 있다. 이는 기존 IT 기술이 양자 컴퓨팅에 직접 적용되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ASIC 설계를 양자 기술에 적용하려면 여전히 연구개발을 통한 신제품 개발이 필요하다. 초전도 검출기와 ASIC 간 물리적 근접성 만족시키려면, 두 요소 모두 극저온 환경에 위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쓰이는 극저온용 반도체를 크라이오cryo CMOS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3라 부른다. 과거에는 극저온 반도체의 수요가 없어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지만, 최근에는 양자 기술 붐을 타고 전세계 대부분 기술 선진국에서 수출 통제를 시작한 최첨단 분야가 되었다.


크라이오 CMOS 가 아닌 기존의 상온 CMOS 의 경우 매우 자세하고 또한 완벽에 가까운 설계 가이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복잡한 회로라도 비교적 설계자의 의도에 가까운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을 가능케 하려면 생산 공장과 설계자간 공통의 언어를 통해 소통해야 하는데, 이를 PDKprocess design kit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Nvidia 의 직원이 GPU 를 설계하여 TSMC 공장에 생산을 위탁할 경우, TSMC 는 자사 공정의 디테일한 설계 규칙, 적층 정보, 공정 정밀도 등을 문서와 파일의 형태로 제공하는데 이러한 정보 일체를 PDK라고 일컫는다.

광기반 양자컴퓨터 뿐만 아니라 양자 기술 전반에 널리 활용되는 크라이오 CMOS를 제대로 제작하려면 상온칩 사례와 마찬가지로 매우 고도화된 PDK 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필자의 지식 범위 내에서, 그 어떤 반도체 파운드리에서도 2 – 4K 수준 극저온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오랜 기간 개발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크라이오 CMOS를 위한 PDK 를 제대로 갖춘 곳은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크라이오 CMOS 의 생산 능력과 PDK 를 통한 설계 능력을 재빨리 갖출 수 있다면 양자 기술의 핵심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 CPO 
 
그 간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측정 기반 양자컴퓨팅을 위한 실리콘 포토닉스 피드포워드 시스템을 제작하려면, 기 언급된 모든 구성 요소들을 모두 수 cm 내의 공간 내에 연결하여 배치해야 한다. 반도체, 극저온 검출기 등 오랜 기간 독립적으로 개발되어 온 요소 기술들을 하나로 결합한 형태로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요소들을 통합할 뿐 아니라, 이를 극저온에서 구동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이러한 난제를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으나,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술의 영역이므로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다만 이러한 방향의 연구개발은 최근 뜻하지 않은 순풍을 만나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CPO 기술이 반도체와 AI 분야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게 된 지점이다. CPO 기술은 양자 컴퓨팅 기술과 무관하게, 초거대 AI 데이터 센터를 위한 기술로써 별도로 개발되어 왔었다. 현재 Nvidia – TSMC 의 파트너십이 세계인의 가장 큰 주목을 끌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거대 반도체 기업 중 하나도 경쟁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음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양자와 무관하게 개발되어온 CPO 기술의 약진이 광기반 양자컴퓨팅 기술에 순풍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두 기술의 물리적 유사성 때문이다. 초전도 검출기 및 극저온 동작 환경 등 결정적인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긴 하나, 실리콘 포토닉스와 ASIC 반도체를 근거리에 위치시켜 고속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큰 그림에서 일치하므로 매우 많은 기술적 교집합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먹거리 산업인 CPO를 발전시키는 기술개발과 더불어 이후 다가올 미래인 양자 컴퓨팅용 CPO, 즉 양자 CPO 를 병행하여 개발하는 일은 저비용 고효율 연구개발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까지 양자 CPO 를 제대로 생산해내어 발표한 곳은 없기 때문에, 근 시일내에 이를 개발할 수 있다면 광기반 양자컴퓨팅에 분야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 광기반 양자컴퓨팅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

현재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측정 기반 광자 양자컴퓨팅 제작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생각보다 쉬운 문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 극복하지 못할 엄청난 난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진 설계도의 요구 조건을 충실히 만족할 하드웨어의 생산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광기반 양자컴퓨팅의 핵심 요소인 피드포워드 제작에 필요한 요소를 다시 요약해 보자. 전기광학 스위치를 포함하는 고품질의 실리콘 포토닉스 칩을 제작하고, 이와 더불어 초전도 검출기와 ASIC 반도체를 모두 CPO 형태로 만든다. 이후 이를 활용하여 측정 기반 연산을 수행하면 이것이 곧 범용 양자 연산이 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리콘 포토닉스, 극저온 반도체, 초전도 물질 등 서로 상이한 전문 분야의 역량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통합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전 세계를 찾아봐도 이러한 세 전문성을 모두 갖춘 개인 연구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협업을 통한 개발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광기반 양자컴퓨팅 개발은 그 어떤 연구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양자 기술 분야에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많은 미지의 영역이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반도체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크라이오 CMOS 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세계 그 어떤 파운드리도 고도화된 PDK 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현 상황을 바탕으로 판단해 보면, 광기반 양자컴퓨팅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려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크라이오 CMOS PDK 와 같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누구보다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과 통합하여 양자 CPO 를 가장 앞서 제작하고 고도화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양자 분야는 예전부터 개발을 시작한 선도국과 시간차를 두고 뒤따르는 추격국간의 격차가 상당하며, 이는 계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현재 개발되지 않은 핵심 기술 중 자신만의 강점이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하여 선점하고, 이를 레버리지 삼아 광기반 양자 컴퓨터를 제작을 위한 선도국과의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광통신 등 ICT 기술에 오랫동안 높은 수준의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양자 과학기술 개발에 있어 후발 주자라는 선입견과 달리 세계적인 선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와 반도체의 집합체인 양자 CPO 를 만들고, 이를 고도화하여 광기반 양자컴퓨팅을, 더 나아가 양자 ICT 세상에 이들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청사진을 그려보며 본 연재를 마친다.

손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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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 전기및전자공학부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