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연재에서 빅뱅에서 인간까지 이어지는 빅 히스토리의 여정을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 이렇게 다섯 단계의 역사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제 이 거대한 역사를 구성하는 주요 사건들을 에너지, 정보, 진화, 조직화, 이렇게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빅 히스토리에 대한 통합적 통찰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관점은 에너지로 보는 빅 히스토리이다. 에너지는 다음에 이어질 정보·진화·조직화로 보는 빅 히스토리가 펼쳐지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빅 히스토리를 관통하는 변화의 핵심은 정보의 자기복제를 구현한 복잡계가 출현하고, 진화와 조직화 과정을 통해서 계의 복잡도를 점점 높여왔다는 점이다. 정보의 자기복제뿐만 아니라 진화와 조직화의 모든 과정에는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이 필요하다. 생명체로 대표되는 자기복제 복잡계는 본질적으로 비평형 상태의 동역학계로, 비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에너지의 유입이 필요하다.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라 우주 전체는 무질서(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복잡계는 에너지 유입을 통해 국소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거나 더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즉, 에너지의 흐름은 복잡계에서 질서가 유지되고 새로운 질서가 창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래서 안정적인 에너지원의 확보와 효율적인 에너지 흐름의 창출은 진화와 조직화를 가속하는 가장 강력한 추동력이었다. 복잡도의 도약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출현이나 에너지 획득 방식의 발명 같은 에너지 흐름의 획기적인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물론 에너지 유입에는 적절함이 필요하다. 너무 적으면 질서가 유지되지 못하지만, 너무 많아도 오히려 질서가 파괴된다. 또한 복잡도의 증가는 단순히 에너지의 총량이 늘어난 과정이 아니라, 단위 질량당 에너지의 흐름, 즉 일률밀도가 높아지는 과정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의 역사 각 단계에서 어떤 에너지 흐름의 변화가 있었고, 그것이 어떤 사건들을 통해 어떻게 질서의 도약을 이끌었는지 살펴보겠다. 이를 위해 먼저 에너지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된 중요한 물리 법칙에 대해 알아보자.


에너지란 무엇인가?

일상 언어에서 에너지energy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용어로 여겨진다. 에너지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에네르게이아ἐνέργεια로, 인간의 몸과 마음의 상태와 관련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중요 개념의 하나였다. 이것이 물리학에서는 물체의 운동 상태를 활력과 연결 지으려는 정량적인 개념으로 도입됐다. 그래서 에너지의 원형은 물체의 질량에 속도의 제곱을 곱하고 2로 나눈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였다.1 에너지가 물리학을 넘어서 다양한 과학과 공학, 그리고 일상에서까지 중요하게 쓰이게 된 이유는 그것이 상태의 변화를 이해하는 매우 유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태두 아이작 뉴턴은 물체의 가속도(속도 변화율)는 작용한 힘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그의 유명한 운동의 법칙을 통해, 물체의 운동 상태의 변화를 힘force의 작용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힘의 작용을 일work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설명의 틀을 바꿀 수 있다. 힘이 한 일은 힘과 그 힘의 작용으로 이동한 변위를 곱한 양으로 정의된다.2 그러면 속도의 변화는 운동에너지의 변화로, 힘의 작용은 힘이 한 일로 바꾸어서, 물체의 운동 상태 변화는 힘이 한 일 만큼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변한다고 설명된다. 예를 들어보겠다. 자유낙하를 하는 물체는 떨어지면서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것을 힘과 가속도의 관계로 설명하면 중력이 작용해서 물체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고, 일과 운동에너지의 관계로 설명하면 중력이 일을 해서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커지는 것이다. 힘과 가속도로 설명하면 되는 것을 굳이 일과 운동에너지로 바꿔서 설명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힘이 하는 일을 퍼텐셜에너지potential energy라는 에너지 형태의 변화로 보면 유용하기 때문이다. 지면에 멈춰 있는 물체를 어떤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고 해보자. 물체를 들어 올리려면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같은 크기의 힘을 작용해야 한다. 따라서 들어 올리는 힘이 한 일과 중력이 한 일과 크기가 같지만, 부호가 서로 반대인 양수와 음수가 된다. 물체의 입장에서는 두 일이 서로 상쇄되어 받은 일의 총량은 0이다. 그래서 물체의 높이는 높아졌지만, 운동에너지의 변화는 없고 여전히 멈춘 상태이다. 운동 상태의 변화는 없지만, 들어 올리는 힘이 한 일에 의해 높이가 높아지는 위치의 변화가 일어났고, 이 상태는 물체를 낙하시키면 중력의 작용을 통해 운동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된potential 에너지를 갖고 있다. 이렇게 힘이 할 수 있는 일의 형태로 잠재된 에너지를 퍼텐셜에너지라 정의한다. 퍼텐셜에너지의 개념을 도입하면, 물체의 낙하는 중력 퍼텐셜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이 된다. 즉, 물체가 낙하하면서 퍼텐셜에너지가 줄어든 만큼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운동에너지와 퍼텐셜에너지의 합인 역학적 에너지는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이를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 한다. 에너지의 개념을 사용하면 물체의 상태 변화를 에너지가 총합은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다른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에는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이렇게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이 있고, 각 힘에 해당하는 퍼텐셜에너지를 도입해서 그 힘의 작용에 의한 상태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작용하는 힘의 종류가 다르면 퍼텐셜에너지의 형태가 다르다고 보아 각각을 중력 퍼텐셜에너지, 전자기 퍼텐셜에너지 등으로 구별해서 부른다. 때로는 줄여서 중력 에너지, 전자기 에너지로 부르기도 한다. 물질은 쿼크와 렙톤 같은 근본 입자들로 구성되고, 근본 입자들은 네 가지 힘을 주고받으며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전환은 여러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의 결과인데, 주요 근원을 바탕으로 복합적인 퍼텐셜에너지의 유형을 분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이 주요 근원인 원자들 사이의 퍼텐셜에너지는 화학 에너지라 부르고, 강력과 전자기력이 복합된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의 퍼텐셜에너지는 핵에너지라 부른다. 앞에서 이미 강조했지만, 에너지 개념의 유용성은 에너지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물질의 상태 변화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 사이의 변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능한 에너지의 형태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으로 인해 확장되기도 했다. 19세기에 발견된 전자기 법칙에 따르면 빛을 포함하여 전자기파는 자체로서 에너지를 가지며, 이를 복사 에너지라 한다. 20세기에 발견된 특수 상대성에 따르면 물질이 가진 질량 자체가 에너지의 한 형태임이 밝혀졌으며, 이를 질량 에너지라 한다. 이는 에너지가 물질 또는 복사와도 서로 전환될 수 있음을 말하며, 이 사실은 물질의 우주적 기원을 논하는 데 중요한 사실이다.

모든 변화에서 에너지의 총량은 보존된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은 상태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면서 강력한 원리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변화의 방향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앞서 등장한 에너지 형태와는 성격이 다른 열에너지thermal energy라는 형태의 에너지가 존재하고, 열에너지가 포함된 에너지 전환에는 어떤 방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열에너지의 존재는 일상에서 물체의 온도변화에 연결된다. 앞서 예로 들었던 자유낙하 하는 물체를 다시 살펴보자. 자유낙하 과정은 중력 퍼텐셜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물체는 지면에 도달한 후 결국 멈추게 된다. 그렇다면 물체의 운동에너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경우에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물체의 운동에너지는 열에너지로 전환되고, 그 결과 물체와 지면의 온도가 조금 올라간다. 열에너지까지 포함하면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그래서 열에너지까지 포함해서 확장한 에너지의 보존 법칙을 ‘열역학 제1 법칙’이라 한다. 그런데 앞의 과정이 반대의 순서로, 즉 지면에 멈춰 있던 물체가 물체와 지면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면서 나온 열에너지가 물체의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위로 올라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후에 에너지가 보존되긴 하지만, 이런 일은 관찰되지 않는다. 운동에너지가 전부 열에너지로 전환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만, 반대로 열에너지가 전부 운동에너지로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답은 열에너지의 정체 속에 숨어있다. 19세기에 제임스 줄은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전환됨을 정량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열에너지도 에너지의 한 형태임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열에너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에너지일까? 루트비히 볼츠만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열에너지의 본질이 ‘거시적 물체를 구성하는 미시적 입자들의 무질서한 운동’임을 통찰했다. 자유낙하 하는 물체를 미시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물체가 아래로 떨어질 때, 물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원자는 모두 ‘아래쪽’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 이것이 우리가 관찰하는 물체의 거시적 운동에너지다. 하지만 물체가 지면에 충돌하면서 이 질서는 무너진다. 충돌의 충격으로 인해 원자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운동하게 된다. 이렇게 원자들의 운동 방향이 제멋대로인 상태, 즉 ‘무질서해진 운동에너지’가 바로 열에너지의 정체이다. 우리가 물체가 더 뜨거워졌다고 느끼는 것은 그 내부의 원자들이 더 격렬하게 무질서한 운동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제 왜 멈춰 있던 물체가 온도가 내려가면서 나온 에너지로 인해 저절로 다시 튀어 오르지 않는지를 확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려면 제멋대로 운동하던 수많은 원자가 동시에 ‘위쪽’이라는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수조 억 개의 원자가 동시에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확률은 0은 아니겠지만 너무나 작아서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다. 질서 있게 행진하던 대열이 흩어지기는 쉽지만, 흩어진 군중이 우연히 다시 열을 맞춰 행진하기는 어려움과 같은 이치이다.



에너지의 분포와 엔트로피

거시적 상태의 변화에 이렇게 방향성이 있음을 표현한 물리 법칙이 ‘열역학 제2 법칙’이다. 루돌프 클라우지우스는 물체의 온도와 유입된 열의 양을 통해 정의되는 거시적 물리량인 ‘엔트로피entropy’를 도입해서, 외부와 접촉이 없는 고립계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없다는 법칙으로 이 방향성을 정량화했다.거시적 엔트로피에 대한 미시적 해석을 찾아낸 사람은 루트비히 볼츠만이었다. 우리가 관찰하는 거시적 상태에는 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미시적 입자가 만드는, 우리가 관찰을 통해 구별할 수 없는, 엄청난 개수의 미시적 상태가 숨어있다. 볼츠만은 한 거시상태의 엔트로피는 그 상태에 속한 미시상태 개수의 로그값에 비례함을 보였다.거시상태와 미시상태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오는 동전 던지기로 예를 들어보겠다. 100개의 동전을 던졌을 때 나올 수 있는 상태를 말할 때, 동전을 구별하지 않고 앞면이 나온 동전의 개수만 따지는 경우와 동전을 구별하여 어느 동전이 앞면이고 어느 동전이 뒷면인지까지 따지는 경우가 구별된다. 앞의 경우는 거시상태, 뒤의 경우는 미시상태에 해당한다. 거시상태에는 앞면인 동전이 0개, 1개, …, 100개로 구별되고, 총 101개의 서로 다른 상태가 존재한다. 미시상태에는 각 동전이 앞면과 뒷면 2개의 상태가 있고, 각각의 동전 상태가 서로 독립적이므로, 총 2¹⁰⁰≈10³⁰개의 상태가 존재한다. 이제 우리가 미시상태는 알 수가 없고, 거시상태인 앞면의 개수만 알 수 있다고 해보자. 동전 100개를 동시에 던졌을 때, 앞면이 n개인 거시상태가 될 확률은 얼마일까?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공평히 1/2이라면, 앞면이 n개가 되는 미시상태의 개수, 즉 구별하지 않는 100개의 동전에서 n개의 동전을 뽑는 경우의 수(조합 ₁₀₀Cₙ = 100!/n!(100-n)!)를 모든 경우의 수인 2¹⁰⁰으로 나눈 값이 된다. 즉 하나의 거시상태는 많은 미시상태가 들어있는 묶음인 것이다. 그리고 어떤 거시상태가 관찰될 확률은 그 거시상태에 속한 미시상태의 수에 비례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앞면이거나 뒷면인 거시상태가 관찰될 확률은 극도로 낮고, 앞면과 뒷면의 개수가 비슷한 거시상태는 확률이 높다. 이제 계의 변화가 한 미시상태에서 다른 미시상태로 옮겨가는 전이로 일어나고,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이 전이가 무작위처럼 진행되어 각 미시상태가 일어날 확률이 모두 같다고 하면, 거시상태의 변화에서 열역학 제2 법칙이 왜 성립하는지 확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특정 거시상태가 나타날 확률은 그 거시상태에 속한 미시상태의 개수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거시상태에 속한 미시상태의 수를 나타내는 양인 엔트로피로 바꿔서 표현해 보자. 무작위로 일어나는 미시상태의 변화로 인해 거시상태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바뀔 확률은 높지만,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바뀌는 확률은 매우 낮아서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된다. 동전의 개수가 아보가드로의 수~ 10²⁴만큼 커진다면 이 확률적 경향은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된다.이해가 쉽지 않은 열역학 제2 법칙을 이렇게 공들여 설명하는 이유는 이 법칙이 본질적으로 거시적 계가 엄청난 수의 미시적 계(입자 또는 자유도)로 구성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일일이 추적할 수 없는 수많은 미시적 계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무작위처럼 보이는 미시상태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가 거시상태의 변화만을 관찰할 수밖에 없는 한 열역학 제2 법칙이라는 변화의 방향성이 나타남을 피할 수 없다.9


열역학 제1 법칙에 따라 상태 변화는 에너지의 이동과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열역학 제2 법칙이 보여주는 상태 변화의 방향성은 어떻게 에너지의 이동과 전환에 연결될까? 앞에서 언급한 열역학 제2 법칙의 본질적 측면에 실마리가 있다. 답은 에너지가 거시적 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미시적 계(자유도)에 어떻게 분산되는가에 있다. 거시적으로 드러나는 에너지 분포 양상에 따라 미시상태의 수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변화의 방향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거시적으로 측정하는 온도는 사실 미시적 자유도에 에너지가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물리적 지표이다. 에너지가 한쪽에 몰려 큰 온도 차이를 이루거나, 한 방향으로 정돈된 운동에 집중된 상태는 질서가 있는 특별한 거시상태인데, 그런 상태를 만들어 내는 미시상태의 수는 많지 않다. 반면 에너지가 더 많은 자유도에 고르게 퍼져 온도 차이가 줄고, 특정한 방향성이 약해진 무질서해 보이는 거시상태는 미시상태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시적 상호작용이 복잡하게 얽혀 사실상 무작위처럼 진행되는 한, 계가 경우의 수가 적은 에너지 분포를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고 훨씬 더 흔한 경우의 수가 많은 에너지 분포로 갈 확률이 압도적으로 커진다. 이 확률적 경향이 거시적으로는 열이 고온에서 저온으로 흐르고, 거시적 운동에너지가 마찰을 거쳐 열에너지로 전환되며, 온도, 농도, 압력 같은 차이가 점차 사라지는 방향성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열역학 제2 법칙이 에너지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이 방향성은 결국 가능한 미시상태의 수가 더 큰 쪽으로 가려는 경향이며, 그 크기를 재는 거시적 척도가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무질서도의 증가’이다. 우리가 관찰하는 질서, 즉 거시적 규칙성은 대체로 미시상태의 수가 적은 특별한 거시상태에 해당하고, 반대로 무질서, 즉 특별한 규칙성이 없는 듯 보이는 상태는 미시상태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보통의 거시상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엔트로피 = 무질서도’라고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무질서도는 엄밀한 물리량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거시적 특성을 질서라고 느끼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직관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무질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진 거시적 규칙성의 관점’에서 볼 때라는 단서를 달고 이해하는 편이 안전하다.

열역학 제2 법칙은 적용되는 계의 조건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데, 앞에서 설명한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없다’ 형태는 외부와 단절된 고립계isolated system에만 적용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많은 계는 주변 환경environment과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열린계open system이고, 열린계의 엔트로피는 물질과 에너지 교환의 결과에 따라 증가할 수도, 감소할 수도 있다. 생명체와 같은 정교한 질서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열린계와 환경을 합친 전체는 고립계로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성이 유지된다. 고립계의 경우 엔트로피가 증가하거나 유지될 수만 있으므로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주어진 제약(총에너지, 부피, 입자의 수 등) 아래에서 엔트로피가 최대인 거시상태에 도달하는데, 이 상태를 열역학적 평형thermodynamic equilibrium 상태라 한다. 열역학적 평형은 미시상태는 계속 변하지만, 거시적 변화는 사라진 동적 평형으로, 열역학 제2 법칙이 그리는 변화의 종착역이다. 우주에서 가장 확실한 고립계는 우주 그 자체이다. 따라서 정적 우주에서는 언젠가 열역학적 평형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변화, 즉 흥미로운 사건이 있을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시나리오를 우주의 열적 죽음이라 한다. 실제로 볼츠만은 암울한 우주의 종말을 두고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다행히 현재의 관찰로는 우주가 정적이지 않다. 팽창의 결과로 평균 온도가 내려가고 있고, 중력에 의한 구조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에 따른 흥미로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팽창이 계속 이어져서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고, 우주 구조에 의한 에너지 흐름이 모두 소진되면 정적 우주의 종말과 다를 바 없는 운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복잡계의 출현 –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서

우주에서 팽창과 더불어 일어난 중요한, 그리고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가장 핵심인 변화는 초기의 미세한 물질 요동이 중력의 작용으로 커져서 별과 은하 같은 응집된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물질이 응집되자 강한 에너지의 흐름이 생겨났고, 그 에너지 흐름 위에서 지구와 생명체 같은 복잡성을 띤 열린계들이 출현했다. 복잡계가 열린계여야 하는 이유는 열역학 제2 법칙으로 인해 명확하다. 고립계는 궁극적으로 열역학적 평형에 접근하며, 복잡계가 가진 질서와 기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잡계에서 같이 엔트로피의 증가와 무질서해지려는 경향을 거스르며 구조적 질서를 유지하거나 정교한 기능을 수행하는 일은 결코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엔트로피를 유지하거나 낮추기 위해, 즉 질서를 유지하거나 고도화하기 위해, 계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유입해서 일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발생한 열과 노폐물을 외부로 내보내고, 흐트러진 부분을 정돈하고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해야 한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에너지 중에서 열에너지는 전부 활용될 수 없고, 온도 차에 따라서 활용 정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유입된 에너지 중에서 실제로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는 몫을 자유에너지free energy라 한다.10 결국, 복잡계는 외부로부터 자유에너지를 끊임없이 유입하여 자신의 질서와 기능을 유지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열과 증가한 엔트로피는 외부로 방출한다. 그 결과 계의 엔트로피는 줄어들거나 유지되지만, 외부의 엔트로피는 더욱 증가해서, 결국 계와 외부의 합인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주에서 복잡계의 존재는 ‘열역학 제2 법칙을 거스르는 기적’이 아니라, 우주 구조가 만들어 낸 에너지의 흐름을 소모하며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가 촉진되는 경로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복잡계는 우주적(전역적) 무질서(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국소적 질서를 유지해서 에너지 흐름의 소모를 효율화한 계다. 이런 의미에서 일리야 프리고진은 복잡계 같은 비평형 계를 에너지 소산 구조로 보았다.11 지구, 생명과 문명은 모두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유에너지의 공급이 이어지는 동안에만 질서와 기능을 유지하는 복잡계로서 존속할 수 있으며, 이들에 의해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에너지의 유입이 지속되더라도 고도의 복잡계에서는 무작위적인 미시적 변동과 손상이 누적되어, 정돈과 수리만으로 개체의 질서와 기능을 영구히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한계를 넘어 복잡계 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열어준 메커니즘이 자기복제이다. 자신과 유사한 복제품을 만들어 개체의 개수를 늘림과 더불어 구조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다. 우주에 수많은 별은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가진 복잡계인데, 별 스스로가 복제를 수행한다기보다는 우주적 물질·에너지 순환 속에서 비슷한 조건이 반복될 때 비슷한 구조가 거듭 형성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반면 생명체는 자기복제에 필요한 정보의 기록과 처리 기제를 갖춘 진정한 자기복제 복잡계다. 자기복제 복잡계의 출현은 복제에 더해 미시적 변이가 축적되며 에너지 흐름의 소모율을 높이는 진화 과정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그 결과 자기복제 복잡계는 개체수 증가, 지속성 확보, 진화를 통한 최적화로 큰 에너지 소산과 엔트로피 생산을 동반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학계에는 복잡계, 특히 자기복제 복잡계의 출현이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라는 시각과, 특정 조건이 갖춰질 때 강하게 유도될 수 있는 경향이라는 시각이 공존한다. 우연이라는 시각은 자기복제 복잡계의 출현 확률이 매우 낮지만, 긴 시간과 거대한 시도 횟수 속에서 드물게 성립했을 수 있다고 본다.12 다른 한편에서는 비평형 열역학 관점에서, 에너지 흐름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에너지 소산을 강화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으며, 자기복제는 그것이 최적화된 형태일 수 있다는 가설적 해석도 제시된다.13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른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는 ‘단지 무질서로 향하는 과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우주 구조의 형성으로 나타난 에너지 흐름 속에서는 ‘국소적인 복잡한 질서가 형성될 수 있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에너지 흐름이 소모되며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하지만, 에너지 흐름이 지나는 통로에는 여러 물리적 화학적 과정들이 얽히며 에너지 소산을 지속하는 구조를 갖춘 복잡계가 생겨난다. 복잡계는 엔트로피 증가를 거스르는 예외가 아니라 엔트로피 증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에너지 흐름의 구조화된 경로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복잡계가 질서가 너무 잡힌 상태도,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도 아닌 중간 영역(혹은 경계)에 놓인다는 사실이다. 질서가 지나치게 잡힌 상태는 가능한 미시상태가 적어 오래 유지되기 어렵고, 유연성이 부족해 작은 교란에도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는 에너지가 너무 고르게 퍼져 있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작고, 새로운 구조를 떠받칠 여분의 자유에너지가 부족하다. 복잡계는 대체로 충분한 자유에너지의 공급이 존재하되, 그 흐름이 너무 격렬해 모든 구조를 쓸어버리지도 않는 조건에서, 즉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경계에서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 경계 지대에서는 작은 구조가 유지될 만큼의 안정성과 동시에 새로운 구조가 생겨날 만큼의 변동성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조직화와 진화 같은 과정이 작동하기 유리하다. 따라서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 과정은 ‘복잡도가 끝없이 커지는 과정’이라기보다, 에너지 흐름이 잘 유지되는 시기와 장소에서 최적의 복잡도를 갖춘 복잡계가 번성하고, 그것이 소진되면 복잡계도 결국 사라지거나 단순해지는 과정에 가깝다. 별은 핵연료를 소진되면 더 이상 별로서의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행성의 지질 활동과 기후 활동도 열원과 에너지 흐름이 약해지면 잦아든다. 생명과 문명 역시 자유에너지의 지속적 공급과 노폐물(열과 엔트로피)의 방출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유지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복잡도의 증가는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엔트로피 증가가 진행되는 길목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으로 질서와 무질서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경계 영역의 구조화로 이해할 수 있다.


복잡계의 진화

자기복제 복잡계의 출현은 자기복제를 통해 에너지 소산 구조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진화를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최적화하는 적응성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국면전환이다. 진화 과정은 무작위적인 변화와 환경에 의한 선택(더 정확히는 제거)으로 특징되는 변화 과정인데, 이를 통해서 복잡계에 나타난 변화에 어떤 경향이나 방향성을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방향성은 목적을 향한 진보라기보다, 에너지 흐름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더 자주 ‘지속’되는 경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방향성을 보려면 우주에서 문명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출현했던 복잡계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척도가 필요하다. 복잡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나타내는 척도를 ‘복잡도complexity’라 하는데, 복잡도의 개념 자체가 계량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어서, 많은 제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정의가 아직 없다. 그래서 복잡도로는 정량적인 비교가 매우 제한적이다.

에릭 체이슨Eric Chaisson은 복잡계를 비교하는 정량적 척도로 단위 질량당 일률인 ‘에너지율밀도Φm, energy rate density’를 쓰자고 제안했다.14  Φm은 간단히 말해 1킬로그램의 물질이 1초 동안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흘려보내며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는가를 나타낸다 (단위: W/kg). 이는 정의하기 까다로운 복잡도보다 계량이 가능한 에너지 흐름을 사용하고, 규모에 크게 좌우되는 에너지 총량이 아니라 구조가 어느 정도 반영되는 질량당 일률로 복잡계를 비교하려는 시도이다. 사실 에너지율밀도도 구조나 조직화의 정도를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15  다만 우주·지구·생명·문명처럼 성격도 규모도 다른 빅 히스토리의 복잡계들을 단일한 척도로 비교해 보기에는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복잡계의 핵심이 단지 더 많은 에너지가 아니라 단위 질량당 더 많은 에너지 흐름을 다루는 능력에 있으며, 우주·지구·생명·문명의 여러 사례에서 복잡해 보일수록 Φm도 대체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를 통해 복잡계 진화의 방향성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우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에너지를 더 조밀하게 소산시키는 구조를 ‘선택’하며 진화해 온 셈이다.16

실제로 대표적 복잡계들을 Φm의 크기로 나열하면, 우주·행성·생명·문명으로 이어지는 주요 단계들이 몇 자릿수orders of magnitude 단위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예컨대 우리은하의 평균 Φm은 대략 0.5×10⁻⁴ W/kg, 태양은 ~2×10⁻⁴ W/kg 수준으로 매우 낮지만, 지구는 태양 복사·기후·지질 활동이 얽힌 비평형 계로서 ~7.5×10⁻³ W/kg까지 올라간다.17 생명권에 들어서면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9×10⁻² W/kg 정도를 처리하고, 동물은 대사·운동·항상성을 위해 ~2 W/kg(대략 수 W/kg)로 더 높은 수준을 보인다. 인간의 뇌는 ~15 W/kg 정도로, 생물학적 복잡계 중 매우 높은 Φm을 갖는 예로 자주 언급된다. 그리고 문화·문명 단계에서는 사회가 사용하는 외부 에너지(특히 화석연료·전기)가 결합하며 산업화한 사회는 대략 ~50 W/kg 수준까지 도약한다. 도시는 이러한 사회적 대사가 응축된 공간으로, 에너지율밀도 관점에서 문명 복잡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에너지율밀도 관점에서 복잡계가 진화해 온 과정은 우주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에너지를 더욱 조밀하게 집중시키고 소산시키는 구조를 선택해 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진화 과정은 고밀도의 에너지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는 물리적 토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에너지의 흐름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제 복잡계를 낳게 한 원천, 즉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에너지 흐름의 기원을 추적해 볼 차례다.

김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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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