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물의 삼중점을 이용한 온도 단위 켈빈의 정의 (2019년 5월까지 유효했던 정의) 에 대해서 두가지 근원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참고로 2019년 5월 이후로 켈빈의 정의는 물의 삼중점을 이용한 정의에서 볼츠만 상수를 이용한 정의로 바뀌었는데 아래의 논의는 현재의 정의로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문제이다.) 첫째는 273.16 K이 아닌 온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었는데, 열역학 방정식을 이용해서 부피와 압력 같은 다른 물리량 측정을 통해서 273.16 K이 아닌 온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이렇게 구현한 온도를 “바깥 세상”으로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제 여기에 대해서 답을 할 차례다.

그 방법은 “국제온도눈금”이라는 약속된 체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국제온도눈금에서는 고정점과 내삽 방법을 정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서 순수한 물질인 아연이 1기압에서 어는 온도freezing temperature는 1 기압에서 우리가 잘 측정할 수도 있고, 측정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일정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아연이 1 기압에서 어는 온도에 해당하는 열역학 온도를 열심히 측정한 결과 692.677 K이 나왔고 (사실은 1980년대의 어느 시점 기준으로 이 값이 가장 정확한 값이었다.), 그 표준불확도가 0.015 K이라고 하자. 확장불확도가 0.030 K이므로 아연이 어는 온도를 열역학 방정식을 이용한 온도계로 측정하면 95 \% 정도의 확률로 692.647 K과 692.707 K 사이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 때 과학자들이 모여서 일정한 온도 눈금 체계하서 아연의 어는점이 정확하게 692.677 K이라고 약속해 버린다고 하자. 이런 약속은 상당히 유용한데, 왜냐하면 아연이 어는점의 열역학 온도 측정값의 표준불확도가 15 mK인데 비해서, 서로 다른 두 실험실에서 아연의 어는점을 실현했을 때, 두 온도가 재현되는 차이는 1 mK 안팎이라서 매우 재현성이 좋기 때문이다. 즉, 아연의 어는점의 “진짜” 온도는 잘 모르는데 반해서, 아연의 어는점은 매우 재현성 높게 실현할 수 있어서 한국에서 실현한 온도와 미국에서 실현한 온도가 1 mK 이내에서 일치시키는 것은 상당히 쉽다. (이 부분에서 뭔가 은근슬쩍 뛰어 넘은 개념이 있다. 그것은 조금 뒤에서 논하도록 하겠다.) 아연의 “진짜” 어는점에 대해서 설령 틀리더라도 다 같이 틀리기 때문에 서로 간에 매우 가까운 눈금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약속”이 국제온도눈금International Temperature Scale, ITS이고, 우리는 현재까지도 1990년부터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는 “국제온도눈금-1990ITS-90”를 거의 37년째 쓰고 있다. ITS-90는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까지 일종의 마일스톤milestone을 세워 두었다. 그 마일스톤에 해당하는 것의 일부가 표 1에 표시한 고정점과 그에 대해서 과학자들끼리의 “약속”인 지정된 온도이다. $T_{90}$에서 아래첨자 “90”은 ITS-90에 따른 온도라는 것이며, 이 합의에 의한 온도는 진짜 온도인 열역학 온도 $T$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표 1에 등장하는 $T_{90}$값들은 ITS-90 체계하에서는 불확도가 0인 정확한 값이다. 예를 들어 아연의 어는점은 불확도 없이 692.677 K인데, 이는 아연의 어는점의 열역학 온도에 대해서 그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아연의 어는점의 온도를 ITS-90 체계하에서는 정확히 692.677 K인 것으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일스톤을 세웠으면, 자연스럽게 그 마일스톤 사이의 온도 ($T_{90}$)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즉, 주석의 어는점인 505.078 K과 아연의 어는점인 692.677 K의 중간 즈음인 600 K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할 것인가? 또 다시 열역학 방정식으로 돌아가서 내삽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기 어려워서 타협한 것이 “진짜” 온도가 아닌 온도 눈금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것은 정답이 아닐 것이다. 정답은 이렇게 마일스톤 사이의 온도를 내삽해서 만들어내기 위해서 온도 눈금에서 정한 내삽온도계를 사용한는 것이다. 위의 고정점에 해당하는 넓은 범위 (13.8 K에서 1235 K까지)에서 사용하는 온도계는 표준백금저항온도계Standard Platinum Resistance Thermometer, SPRT라는 일종의 저항 온도계이다. 저항온도계는 (주로) 금속의 저항이 온도에 따라서 변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온도계이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저항온도계는 99 \% 이상 그 금속이 백금인 백금저항온도계다. 이 백금저항온도계 중에서도 매우 고순도의 백금을 사용하고 구조적으로 센서에 응력과 변형률이 최소화되도록 만들어서 재현성을 아주 높인 온도계가 표준백금저항온도계, SPRT이다. 본질적으로는 그냥 가는 백금선을 잘 말아 놓은 것이다. 그림 1이 전형적인 SPRT의 사진인데, 일반적으로 “온도계”라면 떠올릴 수 있는 모습과는 큰 거리가 있고, 긴 막대기 형태의 반대쪽에 저항 측정을 위한 단자 4개가 나와있을 뿐이다.

 


백금의 저항과 온도와의 관계를 열역학 관계식으로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금속의 자유 전자의 흐름이 방해를 받으면서 생기는 저항이 온도와 원리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풀어내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는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이상기체의 방정식을 푸는 것에 비해서 정확도도 상당히 떨어진다. 즉, 원리적으로 백금의 저항과 온도의 관계를 이용해서 내삽하는 것은 정확도 측면에서 너무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각 마일스톤에 해당하는 점에서 백금의 저항 $R$을 측정한 후 그 사이의 온도에서 $R$과 $T_{90}$의 관계를 어떻게 내삽할지를 ITS-90 내에서 약속에 의해서 정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SPRT는 어떤 온도 $T_{90}$에서의 저항 $R(T_{90})$과 그 온도계가 물의 삼중점Triple point of water, TPW, 273.16 K에서 갖는 저항 $R(\mathrm{TPW})$의 비인 $W(T_{90})= R(T_{90})/R(\mathrm{TPW})$를 계산하고, $W$와 $T_{90}$의 관계로 온도를 환산하는 온도계이다. 이것을 백금의 비저항이라 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물리 교과서에 순수한 백금의 특정한 온도 (보통은 $20\,^{\circ} \textrm{C}$ 나 $25\,^{\circ} \textrm{C}$)에서 비저항의 값이 다른 금속의 값들과 함께 있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비저항은 백금이라는 금속의 고유한 특성이다. 또, 아마 물리학, 화학의 관련 데이터를 모아 놓은 더 두꺼운 책을 찾는다면, 백금의 비저항을 온도에 대한 테이블이나 함수로 찾는 것도 가능할 텐데 이것은 $W(T_{90})$가 백금의 고유한 특성으로 정해져 있어서, 모든 이상적인 백금저항온도계가 완전히 동일한 $W(T_{90})$ 곡선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상적이지 않은, 즉, 실재하는 백금저항온도계는 개별 온도계마다 조금씩 다른 $W(T_{90})$ 특성을 갖는다. 그 중에서도 고순도의 백금을 사용하고 구조적으로 응력과 변형률을 최소한 “표준”백금저항온도계, 즉 SPRT라고 하더라도 개별 온도계마다 약간의 순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금속의 결함 개수나 위치, 지지대에 백금선이 걸쳐 있는 구조와 힘 등이 다르며, 이 차이가 $W(T_{90})$의 차이를 만든다. 따라서 개별 개체의 SPRT에 대해서 $W(T_{90})$값을 특정한 고정점에서 먼저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이 ITS-90에 따라서 SPRT를 교정하는 행위이며, 다시 거꾸로 이렇게 교정된 SPRT는 ITS-90에 정한 내삽 방법에 따라서 해당 연속적인 온도 범위에서 온도 눈금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서 그림 2와 같이 주석의 어는점, 아연의 어는점에서 특정한 SPRT의 저항비 값이 $W$(Sn), $W$(Zn)으로 측정되었을 때 (이것은 물의 삼중점, 주석의 어는점, 아연의 어는점에서 각각 측정한 해당 SPRT의 저항 측정값 3개로부터 계산된다.) 이 $W$값들은 $W(T_{90})$ 대 $T_{90}$의 그래프에서 그림 2와 같이 세 개의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 ($W(\mathrm{TPW})$는 정의에 의해서 항상 정확하게 1이다.) 문제는 그 사이를 어떻게 내삽하느냐 하는 것인데, ITS-90에 그림 2의 세 점이 정해졌을 때 그 사이를 어떻게 내삽할지가 정확하게, 유일하게 정해져 있다. 그림 2에서는 마치 2차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훨씬 복잡한 수식에 의해서 정해진다. (다만, 이 식은 물리적 의미가 거의 없고 실용적으로 온도 측정의 오차가 적도록 만든 식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자세히 논의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연속적인 구간에서 온도계의 지시값 $W$와 온도 $T_{90}$의 관계가 정해졌으면, 아까 은근슬쩍 넘어갔던, 한국에서 실현한 아연 어는점의 온도와 미국에서 실현한 아연 어는점의 온도를 어떻게 비교할지를 알 수 있다. 그림 3과 같이 온도 표준에서 사용하는 아연 어는점 셀에는 온도계 우물thermometer well이 있다. 이 온도계 우물에 SPRT를 넣어서 아연 어는점 상태와 온도계가 충분히 좋은 열교환을 하도록 한다. 그러면 아연 어는점의 온도를 온도계로 전달할 수 있다. 다음 단계로는 온도계를 조심스럽게 다른 실험실로 보내서 (예를 들어 한국에서 미국으로) 그 실험실에서의 아연 어는점 실현 상태에서 온도계의 지시값을 읽는다. 두 지시값이 “똑같을” 확률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같은 실험실에서 연달아서 두 번 측정해도 똑같은 값이 두 번 나오지는 않는다.) 그 차이가 한국에서의 아연 어는점 측정과 미국에서의 아연 어는점 측정값의 차이가 된다. 물론 좀 더 엄밀하게 생각하는 독자라면 하나의 셀의 온도가 다른 셀의 온도보다 높을텐데, 내삽이 양쪽으로 다 성립하느냐, 둘 중 하나는 내삽 범위 밖에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dW/dT_{90}$는 느리게 변하는 연속함수이므로 그 정도의 차이가 온도 차이를 측정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만약 두 셀의 온도 차이가 1 mK 정도라면 (실제로 잘 만든 두 셀은 이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 확률이 많다.) $dW/dT_{90}$를 1 \%의 상대불확도로만 결정하더라도 온도 차이를 측정하는데 미치는 영향은 0.01 mK이다. 게다가, 1 mK 정도의 차이에서는 $dW/dT_{90}$가 거의 같은 값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온도계를 다른 실험실로 보내는 대신 제 3의 아연 어는점 셀을 다른 실험실로 보내어 각 실험실에서 보유한 셀과 이 제 3의 셀의 온도 차이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어떤 두 셀도 어는점 온도를 측정하면 조금씩은 다르게 측정된다.) 온도계보다는 셀이 훨씬 더 안정하기 때문에 운송 과정에서 온도계의 특성이 변해서 온도 차이를 잘 못 측정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금속셀을 외국에 있는 기관에 운송하는 것은 온도계를 운송하는 것보다는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ITS-90에 의해 고정점 교정한 SPRT가 다시 ITS-90에서 정한 내삽식에 의해 고정점 사이의 연속적인 범위에서 ITS-90를 정의하는데 사용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위의 그림 2에서 교정된 SPRT는 600 K이 얼마나 뜨거운 온도인지를 정의한다. 그런데, 다른 개체의 SPRT를 같은 방법으로 교정해서 내삽 후 600 K을 정의하도록 하면, 앞의 600 K과 정확이 똑같은 온도일까? 개별 온도계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ITS-90는 고정점 사이의 구간에서는 그 정의에 비유일성non-uniqueness이 생긴다. SPRT가 내삽온도계로 사용되기 때문에,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모델의 SPRT를 사용하더라도 개체마다 600 K을 약간씩 다르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 비유일성의 크기가 얼마인지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다.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좋은” SPRT를 이용하면 비유일성의 크기가 최대 0.5 mK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용적인 온도 측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또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이를 줄이기 위해서 온도 눈금의 구조를 바꾸려는 연구도 같이 진행되고 있다.

다시 SPRT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보통 SPRT는 물의 삼중점에서의 저항이 25.5 $\Omega$ 정도가 되도록 만든다. 왜 25 $\Omega$도 아니고 25.5 $\Omega$인가? 그것은 백금저항의 온도계수가 물의 삼중점에서 0.4 \%/K 보다 조금 작기 때문에, 물의 삼중점에서 25.5 $\Omega$으로 만들었을 때 물의 삼중점에서 $100\,^{\circ} \textrm{C}$의 구간 (혹은 $0\,^{\circ} \textrm{C}$에서 $100\,^{\circ} \textrm{C}$ 구간) 동안 1 K 온도 변화가 대략 0.1 $\Omega$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SPRT 저항값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대략의 온도 변화나 온도차이를 머릿속에서 암산으로 계산할 수 있다.

SPRT의 저항값은 저항비브리지라는 장비를 이용하여 그 값이 이미 알려진 표준저항값 $R_{\mathrm{s}}$와의 비 $X(T) = R(T)/R_{\mathrm{s}}$로 측정한다. 여기서 `비’ratio가 또 등장하는데, 이 ratio는 물의 삼중점에서의 저항값과의 비 $W$가 아니라, 표준저항값 $R_{\mathrm{s}}$와의 저항비 $X$이다. 즉, SPRT의 저항비 $W$는 실제로 저항비의 비 $W(T) = X(T)/X(\textrm{TPW})$로 결정하기 때문에 표준저항 $R_{\mathrm{s}}$의 정확한 값을 아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즉, 측정하는 동안 $R_{\mathrm{s}}$가 변하지 않기만 하면 되지, 그 값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다. 이렇게 저항비의 비를 이용하여 $W$를 읽기 때문에 저항비브리지의 선형성이 좋기만 하면 매우 높은 정확도로 $W$를 측정할 수 있다. 즉, 저항비브리지가 저항비 $X$를 0.1 \% 높게 측정하더라도 $X$에 관계없이 일관성있게 똑같이 0.1 \% 높게 측정하기만 한다면 $W$ 측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최고수준의 장비로 $W$를 측정하는 불확도는 $2 \times 10^{-8}$에 해당하며, 이를 25.5 $\Omega$의 SPRT와 100 $\Omega$의 표준저항을 사용했을 때의 온도로 환산하면 20 μK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SPRT의 표준온도계로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열적인 안정성이다. SPRT의 물의 삼중점에서의 저항을 측정하고 나서 $450\,^{\circ} \textrm{C}$에서 10시간을 두고 다시 물의 삼중점에서 저항을 측정하면, 저항 변화가 (온도로 환산했을 때) 0.1 mK 이내일 것으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SPRT가 아닌 온도계는 이렇게 정확하게 본래 저항 특성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보통은 1 mK 이상, 심하면 10 mK 이상의 차이가 난다. 거꾸로 말하면, 만약 이런 상황에서 1 mK 이상의 차이가 항상 난다면 SPRT를 표준온도계로서 교정해서 사용하기가 힘들다. 온도를 올렸다 내리면 이전의 교정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표준온도계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열처리가 잘 된 SPRT는 물의 삼중점에서의 저항을 측정했다가 $450\,^{\circ} \textrm{C}$에서 10시간 다시 열처리 후 물의 삼중점에서의 저항을 측정하면 정확히 이전 저항값과 비교해서 0.1 mK 이내로 돌아온다. 좋은 SPRT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온도계로 이런 결과를 관찰하는 것이 어렵게 때문에 이런 결과를 지켜본다는 것은 사실 매우 신기한 일이다.

ITS-90에서는 아연의 어는점 온도를 정확하게 692.677 K이라고 약속했고, 이 약속은 1980년 대 말까지의 데이터를 모아서 1990년 1월 1일부터 사용하기로 한 ITS-90 안에서의 약속이라고 언급했다. 그 이후로 37년 동안 아연의 어는점의 온도에 대한 데이터는 더 쌓였고, 지금은 ITS-90를 정할 당시보다 아연의 어는점이 13.8 mK 높다는 것이 합의된 가장 정확한 추정이다. 우리는 연구, 교육, 산업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온도 표준으로 모두 ITS-90 눈금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연 어는점 부근에서 모두 13.8 mK 만큼 “틀리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틀리게 사용하고 있으므로 당장 문제가 될 일은 없지만, “진짜” 온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를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고로 $20\,^{\circ} \textrm{C}$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진짜 온도는 ITS-90 온도보다 3 mK 정도 높다. $20\,^{\circ} \textrm{C}$ 근처에서 ITS-90는 보통 0.2 mK – 0.3 mK 정도의 불확도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3 mK의 차이는 사실 엄청나게 큰 차이이다. 그만큼 “진짜” 온도를 측정하고 구현하는 것이 온도를 재현성 있게 측정하는 것에 비해서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20\,^{\circ} \textrm{C}$에서 자(ruler)를 교정해서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19.997\,^{\circ} \textrm{C}$에서 교정한 자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진짜” $20\,^{\circ} \textrm{C}$에서의 교정을 위해서는 자를 다시 교정하든지 얼마를 보정하라고 쓰면 길이를 측정하는 사람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현재까지 ITS-90가 “진짜” 온도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가 잘 문서화되어서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새롭게 ITS-202X 같은 눈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한 경제적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며, 이미 ITS-90에 맞는 펌웨어를 갖추고 있는 장비의 생산자나 소유자들에게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다. 과학적 정확함과 경제적 비용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옳은지에 대해서 온도 표준을 연구하는 커뮤너티는 지속적으로 토론을 하고 있다.

이 편에서는 마지막으로 온도를 나타내는 단위인 K과 $^{\circ} \textrm{C}$의 관계를 알아보자. 역사적으로 $^{\circ} \textrm{C}$를 K보다 훨씬 먼저 사용했고, 열역학의 발전에 따라서 나중에야 K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현재는 K가 SI 기본단위이고 $^{\circ} \textrm{C}$는 K의 정의에 종속되어 있는 SI 단위로서 지위가 한 단계 낮다고 볼 수 있다. 섭씨온는 단지 K으로 표현한 온도에서 273.15를 뺀 숫자로 나타내고, 그 단위로 $^{\circ} \textrm{C}$ 붙이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 특성 때문에 온도 차이를 나타낼 때는 1 K과 $1\,^{\circ} \textrm{C}$가 같은 양이다. $1\,^{\circ} \textrm{C}$는 274.15 K이기 때문에 `1 = 274.15’와 같은 이상한 수학적 모순을 만들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어떤 값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값이 어떤 물리량을 나타내는지를 항상 주의 깊게 설명함으로써 이런 비생산적인 모순에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단위 $^{\circ} \textrm{C}$는 영어로는 “degree Celsius”라고 읽는데, 우리말로는 “섭씨도”로 번역한다. 즉, $23\,^{\circ} \textrm{C}$를 우리말로 읽으면 “이십삼 섭씨도”라고 읽는 것이 정확한데, 실제 이렇게 읽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 “섭씨 이십삼 도” 혹은 “이십삼 도”로 읽을 것이다. SI 단위를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측면과 일상어로서의 표현이 우리말에서 관습적으로 굳어졌다는 측면이 충돌하는데, 일일이 “섭씨 이십삼 도” 같은 표현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다니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 “이십삼 도” 정도면 “섭씨도”를 “도”로 줄였다고 하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셀시우스가 섭씨 온도 눈금을 정할 때에는 물의 어는점은 $0\,^{\circ} \textrm{C}$, (1기압에서) 물의 끓는점은 $0\,^{\circ} \textrm{C}$로 정의되었지만, 지금은 섭씨 온도 눈금이 켈빈의 정의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물의 끓는점의 온도가 정확히 $100\,^{\circ} \textrm{C}$ 가 될 수 없다. ITS-90에 따른 물의 끓는점 온도는 $99.974\,^{\circ} \textrm{C}$이며, ITS-90가 현재까지 알려진 열역학 온도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따져서 열역학 온도로 환산하면 $99.984\,^{\circ} \textrm{C}$에 가까운 값이 된다. 실제로 물의 끓는점이 1기압에서 정확히 $100\,^{\circ} \textrm{C}$ 라면 이것은 대단한 우연의 결과일 것이다. 이것은 물의 삼중점과 물의 어는점의 차이에 비해서 (지구라는 행성의 표준 대기압에서) 물의 끓는점과 물의 어는점의 차이가 정확하게 만 배 (10 000 배)라는 것인데, 이것은 온도 눈금이나 고정점, 스케일과는 독립적으로 표현되는 값이다. 다행히 이것은 사실이 아니고, 다만 그 비율이 10 000과 아주 가까운 수일 뿐이다. 이 정도 우연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열역학 온도 실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약속인 온도 눈금을 만든 원리와 온도의 단위인 켈빈 (K), 그리고 섭씨도 ($^{\circ} \textrm{C}$)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다음 편에는 좀 더 다양한 온도 범위에서 온도 측정을 위해서 쓰고 있는 다양한 온도 측정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양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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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