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DNA 안에 있는 질소, 우리 치아의 칼슘, 핏속의 철,
애플파이 안에 있는 탄소는 모두 붕괴하는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만들어졌다.
– 칼 세이건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세상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세상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 인류는 오랫동안 이런 질문들을 품어왔고, 모든 문화권에는 이에 대해 답하는 나름의 기원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가 오감과 직관으로 인식한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로, 세상의 창조와 진화라는 큰 맥락 안에서 우리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 세상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주기도 한다. 때문에 기원이야기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의미를 찾는 동물인 인간에게 창조 신화가 힘을 갖는 이유를 거대사의 창안자인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시간의 지도》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곳에 속하고 싶어하고 어떤 곳에 자리 잡고 싶어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영적, 심리적, 사회적 욕구에 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껏 사람들에게 우주 속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알려주던 이야기들은 이제 힘을 잃었다. 과학적 논리와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자리를 현대과학이 밝혀낸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발견이 대신하고 있다. 이 현대의 기원이야기는 과학이라는 인류 보편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에 문화권과 시대에 제한받지 않는 인류 공통의, 보다 정확하게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 공통의 기원이야기다.
우주의 시작, 빅뱅
1920년대 에드윈 허블은 외부 은하들을 관측하던 중 이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이들 은하가 내일이면 지금 있는 곳보다 더 먼 곳에 있을 것이고, 반대로 어제는 더 가까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시간을 거꾸로 돌리다보면 과거 어느 순간에는 우리가 우주에서 보고 있는 모든 은하들이 한 점에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주가 한 점의 팽창으로 시작되었다는 빅뱅 이론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현재는 우리 우주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주가 138억 살이며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고 팽창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38억 년 동안 우주는 어떤 변화를 겪으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을까? 현대과학이 밝혀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우주 나이 0초
우주가 생겨난 그 순간, 우주에는 에너지밖에 없었다. 우주가 생겨나자마자 1027k에 달하는 엄청난 에너지의 장 안에서 작고 단순한 입자들이 만들어진다. 우주 초기에는 에너지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입자들이 만들어지고 또 에너지로 돌아가기도 하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점점 낮아지자 입자의 움직임도 느려져 다른 입자와 충돌하여 다시 에너지로 돌아갈 수 없어진다. 그렇게 제일 먼저 만들어진 가장 간단한 입자가 쿼크다. 재미있게도 쿼크는 여섯 가지 ‘상태flavour’로 존재하는데, 이 중 두 가지만이 우리가 아는 물질의 구성에 관여한다. 이들이 서로 결합하여 조금 더 복잡하고 새로운 입자인 중성자와 양성자가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나 우주가 팽창하고 식는 과정에서 물리적 환경이 바뀌면서 중성자와 양성자가 결합하여 수소와 헬륨 원자핵을 만들게 된다. 이 모든 사건이 우주가 생겨나자마자 1초도 되기 전에 일어났다.
원자의 탄생과 우주배경복사
그 후 38만 년 동안 우주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가 뒤섞인 상태로 조용히 식어 갔다. 우주의 온도가 3000K가 되자 이제 전자가 원자핵들과 결합한다. 이 때 만들어진 원자의 75%가 수소, 25%가 헬륨, 나머지 아주 소량의 리튬과 베릴륨, 보륨이 생겨났다. 이 원자의 비율은 빅뱅이론이 현재 우주 탄생을 설명하는 가장 뛰어난 이론으로 자리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증거 중 하나다.
전자가 원자핵과 결합해 원자를 만들자 우주는 ‘맑아졌다.’ 그전에는 빛이 전기적인 성질을 띠는 입자들과 부딪혀 이동하는데 제약이 있었다면, 이제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들 덕분에 물질과 분리되어 마음껏 움직이게 된 것이다. 우주배경복사는 이때의 빛의 분포도라고 볼 수도 있고, 원자들이 만들어질 당시의 물질 분포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우주배경복사의 존재는 빅뱅이론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다.
이 우주배경복사는 완전히 균일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천체들과 구조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배경복사에 존재한 10만 분의 1K라는 미세한 온도 차이가 결국은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온도가 낮은 지역에선 물질의 밀도가 주변보다 조금 높아서 주변의 물질들을 조금씩 끌어당긴다. 이 과정이 3~5억 년 정도 지속된 끝에 마침내 별들이 탄생한다.
원소생산공장, 별
이런 별들이 모여 작은 은하를 만들고, 은하들이 서로 충돌하며 뭉쳐져 더 큰 은하들이 만들어진다. 우리은하는 110억 년 전에 태어났다. 이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갓 태어난 우리은하를 바라볼 수 있다 하더라도 태양을 볼 수는 없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의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이었던 시절 등장한 우주 최초의 별들 주위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만들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양을 보려면 60억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별들은 가스성운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낸 뒤 죽음을 맞아 가스성운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별이다. 별은 핵융합반응을 통해 빛을 내면서 동시에 원소들을 만들어낸다. 우리 태양과 같은 작은 별들은 수소를 태워 헬륨을, 헬륨을 태워 탄소, 질소, 산소를 만들어낸 후 종말을 맞는 반면 더 무거운 별들은 더 많은 원소들을 만들어 내고 초신성 폭발로 더욱 격렬하게 죽음을 맞는다.
초신성 폭발은 우주 진화사에서 두 가지 이유로 중요하다. 첫째, ‘원소 생산 공장’인 별들은 핵융합반응을 통해 주기율표 2번 헬륨부터 26번 철에 이르는 원소들을 만들어낸다. 헬륨과 탄소, 질소, 산소 등의 원소들은 우리 태양과 같은 작은 별에서도 만들어지지만, 그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큰 별에서만 만들어진다. 주기율표 27번 코발트부터 92번 우라늄에 이르는 더 무거운 원소들은 초신성으로 폭발할 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 덕분에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초신성 폭발이 없었다면 많은 원소들이 만들어지지 않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원소들이 우주 공간에 흩뿌려지지도 않는다. 둘째, 초신성 폭발은 엄청난 폭발력으로 주변의 물질을 한쪽으로 밀어서 다음 세대의 별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듯 새로운 세대의 별들은 그 이전 세대의 별들이 자기 몸을 불살라 만든 수많은 원소들로 더욱 풍성해진 터전에서 태어난다.
사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초신성에 빚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 수소와 헬륨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초기 우주에서는 별 주위에 행성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별들이 태어나고, 일생에 걸쳐 새로운 원소를 만들고, 초신성 폭발을 통해 성간물질을 점점 더 풍성하게 만들고, 다음 세대의 별이 태어나고…… 이렇게 오랜 세월 별의 탄생과 죽음이 계속된 끝에 46억 년 전 태양이라는 작은 별이 만들어졌을 때는 그 가까이에 암석형 행성이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로 물질들이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우리 태양은 성간 구름, 즉 별과 별 사이의 빈 공간에 있는 가스와 먼지가 모인 구름이 뭉쳐지는 속도가 구름 안의 각 지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회전하게 된다. 회전을 하다 보면 구름이 납작해져서 원반이 만들어진다. 이 원반을 통해 물질들이 중심으로 빨려들고, 수직 방향으로 제트 기류가 발달한다. 이렇게 물질이 모인 중심의 압력과 밀도가 충분히 높아져 1,000만K가 되면 수소 핵융합반응이 시작된다. 스스로 타서 빛을 내는 별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별의 탄생 과정은 탄생하는 별의 질량에 따라 1만 년에서 수만 년 동안 계속된다.
별의 탄생 과정에서 만들어진 원반에는 물질이 안정적으로 모여서 돌아갈 수 있는 궤도가 생겨난다. 처음에는 먼지 크기의 아주 작은 입자였던 것들이 궤도에서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뭉쳐지는 과정을 거쳐 작은 행성, 곧 미행성(微行星)이 만들어진다. 원시 태양계에서는 지금 화성이 있는 궤도까지 지구의 1/10만한 원시 행성 20개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었고, 이들은 충돌과 병합을 거듭하며 더 큰 행성으로 성장했다.
45억 년 전, 원시 행성 하나가 지구를 향한다. 크기가 우리 지구의 약 1/3 크기였던 이 행성은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의 일부가 되었고,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지구 주위를 돌게 되었다. 달이 탄생한 것이다. 충돌의 충격으로 지구가 기울어져 우리는 사계절을 갖게 되었다. 달을 만든 이 충돌이 조금만 비껴갔더라도 지구는 달이라는 위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지금보다 작은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불덩어리 지구가 식어가고 생명체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데는 또 한참의 시간이 (약 10억 년) 걸린다.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깊은 바다 속에서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생명은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며 35억 년 동안 진화를 계속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에필로그
이렇게 우리는 우주에서 진화해 나온 존재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65%는 수소와 산소로 구성된 물이다. 이 중 수소는 138억 년 전 우주가 생겨난 직후에 만들어졌고, 산소는 별 안에서 만들어졌다. 우리의 몸은 지구 자전 주기에 맞는 생체 시계를 갖고 있고, 우리의 눈은 먼 옛날 빛에 반응하여 광합성을 이뤄낸 단세포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우주 안에, 우주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 몸 안에는 138억 년에 걸친 우주 진화의 여정이 담겨있다. 경이롭지 않은가! 2014년 판 <코스모스>의 나레이션을 맡았던 닐 디그라스 타이슨은 이렇게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광대함에 압도되어 자신이 너무 작다고 느끼지만 저는 제가 정말 큰 존재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제 몸의 원자들은 별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결성이 있는 거죠. 그게 바로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 아닌가요? 연결되기를 원하고, 내가 연관성이 있다고 느끼길 원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원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입니다. 그냥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