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자의 꿈

기하학자들은 공간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공간들을 완전히 분류하고 그들의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각 다양체의 성질과 대칭군을 잘 알게 된다면,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데는 수학이 물리학보다 더 빠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수학자들은 우리 우주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우주를 생각하기 때문이죠.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부분만 생각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1차원 다양체는 선분 또는 원으로 분류가 됩니다. 다음으로 단순한 2차원 위상다양체는 종수genus와 유향성orientability으로 분류가 가능하죠. 반면 \(n\)(\(\geq 3\))차원 다양체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3차원과 4차원의 경우가 특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어 4차원에는 위상적으로 같지만 미분구조가 다른 공간이 존재합니다(Donaldson의 결과). 4차원 다양체를 연구할 때에는 Donaldson 불변량이나 Seiberg-Witten 불변량과 같은 도구를 이용합니다. 이 두 불변량이 동등하냐는 것이 Witten의 추측인데, 이 추측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까르땅의 기하학에 뿌리를 둔 미분기하학적 불변량이지만 현대에는 대수기하학적인 접근이 가능해졌고 이러한 접근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또한 주어진 4차원 위상다양체를 위상공간으로 갖는 2차원 복소다양체의 모듈라이 공간과 콤팩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곡선의 다양한 정의

이제부터는 특별히 곡선의 경우에 집중해, 분류하고 세는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곡선의 분류에 있어 첫 번째 어려운 점은 곡선이 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곡선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 가지 정의를 함께 쓰는 수밖에 없으며, 상이한 관점에 따라 다른 분류를 얻게 됩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동생, 자녀, 손자에게 원점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1인 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1.5초만에 다음과 같은 답이 들릴 것입니다.
\[x^2+y^2=1\]
이것 뭐죠? 원 위 점들의 좌표들이 만족하는 방정식입니다.

 

이번엔 원점을 지나고 방향벡터가 \((1,2,4)\)인 직선이 무엇인지 물어봅시다.

 

그러면 또 대부분의 경우

 

\(y=2x,\quad z=4x\)

라는 답이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드물게 

 

\(y=2x,\ \ z=2y\)

또는

\(y+z=6x,\ \ 8x+2y=3z\)

 

와 같이 개성있는 답도 들릴 수도 있습니다. 누가 맞았나요? 수학자는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모두 맞습니다.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연립방정식은 모두 같은 아이디얼ideal을 생성하는 다른 생성자들generators을 고른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결국 중학생에게 곡선은 아이디얼입니다.

 

질문에서와 같이 유한 개의 다항식을 만족하는 집합을 대수다양체algebraic variety라고 합니다. \(k\)가 field일 때, 대수다양체는 \(k^n\)에서 \(k[x_1,\ldots,x_n]\)에 속한 유한 개 다항식의 해집합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ideal과 \(k^n\)의 대수적 다양체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존재합니다.

 

 

중학생의 답으로부터 \(k^n\)의 곡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k^n\)의 곡선은 차원이 1인 \(k^n\)의 대수다양체이다.

 

한편 대학교 1학년 미적분학 시간에는 곡선을 다르게 정의한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매개화를 이용한 정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원점이 중심이고 반지름이 1인 원은

 

\(x=\dfrac{2t}{1+t^2},\quad y=\dfrac{1-t^2}{1+t^2}\)

로 매개화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x=\cos\theta,\ \ y=\sin\theta\)   또는   \(x=\cos(\log u),\ \ y=\sin(\log u)
\)

와 같이 다른 매개화가 가능합니다. 여기서의 평화적인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요? 미적분학 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답은 재매개화reparametrization입니다. 매개화된 곡선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k^n\)의 곡선은 함수 \(f:\, k\to k^n\)의 equivalence class들이고
\(f\)의 equivalence class는 \(\mathrm{Aut}(k)\)의 원소를 \(f\)에 합성하여
얻어지는 함수들이다.

 

마지막으로 알아볼 곡선의 정의는 module을 이용하는 정의입니다. 이것은 대학원에서 배울 수도 있는 정의입니다. \(J\)를 앞에서 정의한 것과 같이 곡선에 대응하는 \(k[x_1,\ldots,x_n]\)의 아이디얼이라고 합시다. 그럼 \(M=k[x_1,\ldots,x_n]/J\)은 곡선에 대응하는 \(k[x_1,\ldots,x_n]\)-module이 됩니다.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추가하면 \(M\)을 \(k^n\)의 곡선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k^n\)의 곡선은 적절한 조건을 만족하는 \(k[x_1,\ldots,x_n]\)-module이다.

 

곡선을 분류하는 방법

이제 구체적으로 곡선을 분류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모든 종수 1인 곡선Riemann surface of genus 1을 분류하라.

문제를 풀기 위한 훈수를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문제가 어려워지면 풀기가 쉬워진다”

 

이 문제는 곡선 \(C\)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embedding \(C\hookrightarrow\mathbb{P}^2\)을 함께 생각하여 어렵게 만들면 풀기가 쉬워집니다. 종수 1인 곡선은 \(\mathbb{P}^2\)에서 3차 다항식으로 정의가 되고, 계수를 생각했을 때 3차 이하 다항식들의 집합 \(\mathbb{C}[x,y]_{\leq 3}\)은 10차원 벡터공간을 이룹니다. 이에 \(\mathbb{P}^2\) 위의 3차 곡선은 \(\mathbb{P}^9=\mathbb{C}^{10}\backslash\{0\}/\mathbb{C}^*\)가 분류를 합니다. 여기에 embedding에 의한 의존을 제거하려면 \(\mathrm{Aut}(\mathbb{P}^2)=\mathrm{PGL}_3(\mathbb{C})\)의 작용으로 나누어 주면 됩니다. 즉,

 

\(\mathcal{M}_1=(\mathbb{P}^9)^s/\mathrm{PGL}_3(\mathbb{C})\)


의 각 점은 종수 1인 곡선에 대응되며, 이를 모듈라이 공간이라고 합니다.

종수가 \(g\)인 1차원 대수적 곡선들을 모아두면 \(3g-3\) 차원 복소다양체 \(\mathcal{M}_g\)가 된다는 것은 이미 리만이 발견하였고, 이후 Deligne과 Mumford에 의해 이 공간에 자연스러운 콤팩트화 \(\overline{M_g}\)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Witten은 이 공간의 자연스러운 부분집합들의 교차수를 만들어내는 generating function이 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된다는 추측을 제시했고, 이는 Kontsevich에 의해 풀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 추측은 Mirzakhani에 의해 다시 증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곡선의 세 가지 관점은 종종 다른 결과를 만드는데, 곡선의 극한을 취하는 경우가 한 예입니다. 다음과 같이 3차원 공간에서 정의된 곡선의 모임을 생각하겠습니다.

 

\(X_\varepsilon(t)=(\varepsilon t, t^2, t^3)\in k^3,\quad
t\in k,\quad
\varepsilon\neq 0\)


\(\varepsilon\to 0\)일 때 극한 \(X_0\)는 무엇일까요?

아이디얼의 관점에서 \(X_\varepsilon\)는
\[
x^2=\varepsilon^2y,\ \ xz=\varepsilon y^2,\ \ xy=\varepsilon z,\ \ y^3=z^2
\]
와 같은 방정식들로 정의가 됩니다. 여기에 \(\varepsilon=0\)을 대입하면 아이디얼
\[
(x^2,\ \,xz,\ \,xy,\ \,y^3-z^2)
\]

 
을 얻게 되며, 이에 해당하는 곡선 \(X_0\)는 \(yz\)-평면 위의 cuspidal cubic과 원점에 embedded point가 추가된 모양입니다.
 
Map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varepsilon\to 0\)일 때 \(X_\varepsilon\)의 극한은 \[X_0(t)=(0,t^2,t^3)\]와 같이 매개화된 곡선의 equivalence class가 됩니다. 이전 관점과는 다르게 이 곡선에는 embedded point가 없습니다.
 

이러한 극한은 모듈라이 공간의 경계boundary를 형성하므로, 우리가 어떠한 관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모듈라이 공간이 달라지게 됩니다. 극한이 중요한 이유는 극한에 의해 변하지 않는 불변량을 통해서 극한을 취하기 이전의 성질들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수를 세는 기하학

방정식(아이디얼)의 관점에서 본다면 평면 위의 2차 곡선들을 모두 모은 공간은 Hilbert scheme \(\mathbb{P}^5\)이 됩니다. 반면 매개화된 곡선의 관점에서는 \(\mathbb{P}^5\)에 들어있는 double line들의 모임 \(\mathbb{P}^2\subseteq\mathbb{P}^5\)를 따라 기하학적 수술인 blowup을 거친 공간이 2차 곡선들을 모두 모아놓은 공간이 됩니다. 이 공간은 다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평면 위에 주어진 다섯 개의 2차 곡선과
모두 접하는 2차 곡선은 몇 개일까?

 

한 개의 2차 곡선에 접하는 2차 곡선의 집합은 2차 곡선들을 모두 모은 공간에서 hypersurface가 됩니다. 그럼 다섯 개의 2차 곡선에 접하는 2차 곡선의 집합은 5개의 hypersurface가 교차하는 부분에 대응되는데, Hilbert scheme의 관점에서는 이 hypersurface들이 무한히 많은 점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매개화된 곡선의 모듈라이 공간에서는 이 hypersurface들이 유한 개의 점에서만 만나고, cohomology를 계산함으로써 그 교차수가 정확하게 3264개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개화된 곡선의 관점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다른 관점들이 때로는 혼란을 주지만, 문제에 따라 적절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 다양한 관점들을 갖는 장점이 있습니다.

주어진 대상의 수를 세는 문제는 대수기하학에서 가장 오래된 문제들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분야를 가리켜 enumerative geometry라고 부르는데 힐버트가 20세기 풀어야 할 문제로 제시한 것 중 15번째 문제입니다. Enumerative geometry에서 잘 알려진 문제로는

 

3차 곡면에 들어있는 직선은 몇 개일까?

공간에 들어있는 4개 직선과 모두 만나는 직선은 몇 개일까?

 

등이 있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는 아래와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Fermat quintic \(\sum_{i=1}^5 x_i^5=0\)에 들어있는

종수 \(g\), 차수 \(d\)인 곡선은 몇 개일까?

 

부분적으로 \(g=0\)이고 \(d=1\)일 때 2875개임은 19세기에, \(g=0\)이고 \(d=2\)일 때 609250개임은 불과 30여 년 전에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경우 답을 모릅니다.

현대의 수학자들은 앞서 소개한 곡선의 다양한 관점들을 일반화하여 곡선의 수를 세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다양한 접근방법이 사실은 모두 동등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진정한 수학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김영훈 교수의 2016년 5월 20일 “정오의 수학 산책” 강연을 듣고 KAIST 수리과학과 대학원생인 김정섭 님이 정리한 내용입니다.

 

김영훈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