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이던 바체슬라브 쇼쿠로프Vyacheslav Shokurov 교수님과 연구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데, 교수님이 프린터에서 인쇄한 미완성 논문을 꺼내서 보여준 적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에 있는 어떤 대학원생을 지도하고 있는데 이메일로 보내오는 논문에 코멘트를 달아서 보내주면 하루 또는 이틀 만에 코멘트의 몇 배로 확장을 해서 새로운 결과를 증명해서 보내온다며 감탄을 하셨다. 그 대학원생은 바로 이번 2018년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받은 코처 비르카Caucher Birkar였다. 현재 영국 캠브리지대학 수학과 교수인 코처 비르카는 나와 같은 학교의 대학원생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지도교수로부터 연구 지도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2010년 영국에서 열린 쇼쿠로프 교수의 회갑 기념 학회에서 비르카 교수를 실제로 처음 만났다. 비르카 교수는 KAIST에서 2009년 4월에 열린 대수기하워크샵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처음 왔었고, 작년 12월에는 기초과학연구원 기하학수리물리연구단IBS-CGP에 방문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브라질에서 열린 2018년 세계수학자대회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일등공신 역시 비르카 교수였다. 8월 1일 열린 개회식에서 필즈메달을 수여받고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30분 후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으면서 전 세계에 그 소식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결국 8월 4일 주최 측이 새로 만든 필즈메달을 다시 받으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필즈메달을 두 번 받은 수학자가 되었다.
The Simons Foundation, IMU
국내외 언론에서는 비르카 교수를 “전쟁 피난민 출신 수학자”, “쿠르드계 난민 수학자” 로 묘사해 비르카 교수의 기구한 인생스토리를 부각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느껴온 그에 대한 인상은 험난했을지도 모를 과거사와는 동떨어진, 오로지 수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가득 찬 순수하고 온화한 성격의 수학자라는 이미지밖에 없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더 이상 기술하지는 않겠다. 최근에 고등과학원, 카오스재단, 수학동아가 공동으로 개최한 “2018 필즈상 해설 강연”이 있었는데, 그중 비르카 교수를 소개한 포항공대/IBS-CGP의 박지훈 교수의 강의에서도 흥미로운 내용을 들을 수 있다.
비르카 교수의 연구 분야는 대수기하학이다. 대수기하학은 여러 개의 변수로 이루어진 유한개의 다항식을 모두 0이 되게 하는 변수값들의 집합을 기하학적 대상으로 다루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곡선이나 곡면처럼 차원이 낮은 것들, 즉 저차원 다양체라고 분류되는 것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곡면보다 차원이 더 높은 다양체를 보통 고차원 다양체라고 부른다. 비르카 교수의 주된 연구 분야는 대수기하학 중에서도 주로 고차원 대수다양체의 기하학적 구조를 연구하는 쌍유리 대수기하학birational geometry이라는 분야이다. 이번 필즈상은 비르카 교수가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을 해결한 공로로 수여되었다. 비르카 교수는 2010년에 쌍유리 대수기하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극소모델이론Minimal Model Program의 중요한 문제를 공동 연구진들과 해결하였으며, 2016년에는 Borisov-Alexeev-Borisov 예상이라고 불리는 파노Fano 다양체의 유한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비르카 교수의 연구 업적을 소개하기 위해서 먼저 쌍유리 대수기하학 및 극소모델 프로그램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쌍유리 대수기하학에서는 주로 고차원 대수다양체를 연구하기 때문에 고차원 대수기하학이라고 하면 쌍유리 대수기하학을 칭하는 경우가 있다. 곡선, 곡면과 같은 저차원 다양체의 기하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기하학적 구조가 고차원 다양체에서 발견된다. 쌍유리 대수기하학에서는 이 새로운 기하학적 구조를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고차원 대수다양체를 분류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여기서 다양체를 분류하기 위해서 쓰이는 핵심적인 이론이 아래에서 설명할 극소모델 프로그램이다.
곡선을 분류하는 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2차원 곡면에 대해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탈리아의 대수기하학자들이 활발히 연구하였다. 이 시기의 가장 큰 연구 성과 중 하나는 2차원 극소모델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다. 곡면에서 정의되는 두 개의 곡선 C와 D가 주어지면 그 두 곡선이 교차하는 점의 개수를 이용해서 교차수intersection number C·D를 정의할 수 있다. 약간의 트릭을 쓰면 두 개의 같은 곡선에 대해서도 정의가 가능하다. 어쨌든 교차수는 자연스럽게 양의 정수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자기교차수self intersection number C·C가 –1이 되는 (-1)-곡선이라고 불리는 곡선도 존재할 수 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대수기하학자 귀도 카스텔누우보Guido Castelnuovo는 (-1)-곡선이 곡면에 존재할 경우 이 곡선을 점으로 찌그러뜨리는 축소사상contraction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사상을 유한 번만 적용하면 더 이상 (-1)-곡선을 갖지 않는 곡면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을 2차원 극소모델이라고 부른다. 이 2차원 극소모델은 (-1)-곡선들을 점으로 대체해서 얻은 곡면이기 때문에 원래 주어진 곡면보다 더 간단한 기하학적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기하학적 정보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하기에 용이한 장점이 있다. 쌍유리 대수기하학에서는 원래 주어진 곡면과 이 곡면의 극소모델을 다음과 같은 완화된 동치 조건을 이용하여 동일시한다.
“정의: 주어진 두 다양체가 isomorphic한 Zariski open subset을 가질 때, 두 다양체가 쌍유리적으로 동치birationally equivalent라고 말한다. ”
앞서 언급한 (-1)-곡선의 축소사상은 쌍유리적 동치인 곡면간의 사상이기 때문에 2차원 극소 모델이란 쌍유리적으로 동치인 곡면 중에서 더 이상 (-1)-곡선의 축소사상이 적용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간단한 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차원의 경우에도 곡면의 경우처럼 기하학적 구조를 간단하게 만드는 쌍유리적 사상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런 사상을 유한 번만 적용하면 2차원 극소모델과 같은 간단한 구조를 갖지만 중요한 기하학적 정보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다양체를 얻을 수 있는지 대한 의문이 바로 극소모델 프로그램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2차원 극소모델프로그램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이전인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완성이 되었고 3차원 또는 더 높은 차원으로 확장하려는 것은 당연한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극소모델 프로그램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1차원 끌어올리는데 70~80년이 걸린 사실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고차원 다양체의 기하학은 저차원 다양체와는 완전히 다른 미지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극소모델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추측에 의하면 모든 다양체는 다음 두 가지 부류의 적당한 특이점을 갖는 간단한 형태의 다양체와 쌍유리적으로 동치이다.
- 극소 모델 \(X\): 표준인자canonical divisor \({ K }_{ X }\)가 모든 곡선과의 교차수가 0이거나 양수
- 모리 fibre 공간 \(X\rightarrow Y\) : 표준인자 \({ K }_{ X }\)가 \(Y\)의 점으로 축소되는 곡선에 대해서 교차수가 음수.
극소모델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한 첫 번째 난관은 주어진 다양체를 위의 두 경우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변환해 주는 쌍유리적 사상을 어떻게 찾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 모리 시게후미Shigefumi Mori 교수이다(극소모델 프로그램을 종종 모리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리 교수는 1990년에 필즈메달을 수상했으며 현재 국제수학연맹의 총재이다. 비르카 교수의 첫 번째 필즈메달이 도난당한 후 새로운 메달을 다시 수여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모리 교수가 flip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쌍유리적 변환의 존재성을 밝혀냄으로서 3차원 다양체에 대한 극소모델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Flip이라는 것은 여차원이 2 이상인 부분 다양체에만 수정을 가하는 쌍유리적 사상인데 2차원 곡면에서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다양체 변환이다. 이런 flip이 존재할 경우 주어진 다양체에 flip을 적용해서 새롭게 얻어지는 다양체는 극소모델 프로그램에서 얻고자하는 극소모델 또는 모리 fibre 공간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이 flip의 존재성을 모리 교수가 증명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바체슬라브 쇼쿠로프 교수가 극소모델 프로그램을 4차원까지 확장하였다. 쇼쿠로프 교수는 이것을 일반차원으로 확장하기 위해 풀어야할 난관들을 조금 더 간단한 형태의 문제로 귀착시키는데 성공하고 수많은 중요한 예상을 남겼다. 2010년에 비르카 교수는 Cascini, Hacon, McKernan과 함께 모든 차원의 일반 형태의 다양체, 즉, 코다이라 차원이라는 것이 다양체의 차원과 일치하는 다양체는 극소모델을 갖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극소모델 프로그램이 엄청난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비르카 교수는 2016년에 대수기하학의 또 다른 난제로 남아 있던 Borisov-Alexeev-Borisov 예상을 해결함으로서 다시 한 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극소모델 프로그램을 돌려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극소모델 또는 모리 fibre 공간 두 가지이다. Mori fibre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차원의 파노 다양체를 fibre로 갖는 공간이다. 역으로 같은 차원이면서 적절한 특이점을 갖는 파노 다양체를 모두 모아놨을 때 이 집합에 속하는 모든 다양체가 fibre로 나타나는 하나의 fibre 공간이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Borisov-Alexeev-Borisov 예상으로 이어졌다. 2016년에 비르카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의해서 이 예상이 해결되었는데 이 결과는 고정된 차원의 적당한 특이점을 갖는 파노 다양체를 모은 무한 집합이 유한개의 매개 변수만으로써 매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르카 교수는 Borisov-Alexeev-Borisov 예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쇼쿠로프 교수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complement라고 하는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키고 적용했는데 이 결과와 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 여러 곳에서 워크샵 또는 학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비르카 교수는 위에 소개한 결과뿐만 아니라 Iitaka 추측, 표수가 양인 체에서 전개되는 쌍유리 대수기하학과 관련된 문제 등 대수기하학의 여러 중요한 난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대수기하학 계에서 큰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비르카 교수는 잘 알려져 있듯이 쿠르드족의 난민 출신으로서 영국으로 망명까지 했어야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역경을 극복하고 수학연구에 매진하여 위업을 이룩했다. 쿠르드족뿐만 아니라 한국의 젊은 수학자들에게도 영감을 불어 넣는 희망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