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호텔이 있다. 이름은 파울리 호텔이라고 한다. 여느 호텔처럼 이 호텔에도 작은 방과 큰 방, 창문이 있는 방과 없는 방, 해변의 경치가 보이는 방과 야자수가 늘어선 도로만 보이는 방, 이런 식으로 여러 종류의 방이 있다. 이 호텔에는 독특한, 절대 어길 수 없는 규칙이 하나 있다. 어떤 방이든 각 방에는 남자도 한 명, 여자도 한 명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규칙이다. 텅 빈 방, 남자 혼자 투숙한 방, 여자 혼자 투숙한 방, 남녀 한 쌍이 투숙한 방은 있지만 남자 둘, 여자 둘이 같은 방에 들어오는 건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호텔이 무슨 이유로 이런 묘한 규칙을 요구할까.

알고 보니 문제의 원인은 호텔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투숙객들이었다. 이 호텔 손님들은 한결같이 매우 배타적이다. 내가 남성인데 또 다른 남성과 한방을 쓰라니! 이러면서 혼거를 거부한다. 다 큰 성인 남자 둘끼리야 그렇다 쳐도, 아빠랑 아들처럼 서로 가족인 경우도 한 방을 안 쓴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기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파울리 호텔을 찾는 남성은 모두 똑같이 생겼고, 여성도 모두 똑같이 생겼다. 아빠, 아들의 구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똑같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전 글 “양자 물질의 역사[1]: 최초의 물질 이론”에서 우주에 있는 모든 전자는 다 똑같이 생겼다고 강조한 적이 있는데, 파울리 호텔에 투숙하는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완벽하게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똑.같.다. 그리고 모든 손님은 동성의 손님과 혼숙하는 걸 거부한다. 타고난 성격이 그러하니 고칠 도리가 없다.

 

이쯤 되면 독자들도 충분히 눈치를 챘을 만하다. 파울리 호텔의 이용객들은 바로 전자다. 그런데 전자에는 두 개의 성이 있다. 남성과 여성처럼 말이다. 다만, 전자의 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름 대신 스핀이라고 부른다. 스핀은 뱅글뱅글 돈다는 뜻의 영어 단어다. 전자에는 시계 방향으로 뱅뱅 도는 스핀을 갖는 전자와 그 반대 방향으로 도는 스핀을 갖는 전자,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물론 전자가 지구본처럼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시각적인 비유로 스핀을 설명하자면 이렇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스핀이란 말 대신 남성과 여성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하니, 앞으로는 ‘남전자’와 ‘여전자’라는 호칭을 쓰도록 하자.

 

절대 동성과의 동침을 허용하지 않는 남전자와 여전자 투숙객들이 있을 때, 파울리 호텔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 번 따져보자. 먼저 쉬운 경우부터 생각해 보면, 호텔 방이 열 개 있는데 남전자, 여전자 손님이 각각 열 명씩 있는 경우다. 이런 경우라면 각 방에 남녀 한 쌍씩 들어가면 된다. 좀 더 극적인 비유를 들자면, 신혼여행을 온 열 쌍의 부부가 방 열 개짜리 호텔에 투숙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자, 이제 첫날 여행에 지친 남자 한 명이 복도에 있는 정수기의 물을 마시러 나왔다고 해 보자. 갈증을 해결한 남자는 어디로 들어갈까. 빈자리가 있는 방은 그가 본래 묵었던 방 하나밖에 없으니 달리 고민할 것도, 방을 잘못 찾을 일도 없다. 그런데 이번엔 하필 두 명의 남자가 동시에 갈증을 해결하러 복도에 나왔다가 그만 방을 바꿔 들어가고 말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것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그 종류가 공포물이냐 코미디냐에 따라 전개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남전자와 여전자만이 묵을 수 있는 파울리 호텔이라면 결론은 뻔하다. 두 남전자가 방을 바꿔 들어가도, 다음 날 아침 호텔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하다. 모든 남전자는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에, 이 남전자가 바뀐 남전자인지 본래 남전자인지, 여전자 입장에서 분간할 도리가 없다. 도저히 분간할 수 없으니 소동도 없다. 여전자 둘이 방을 바꾸어도 소동이 없긴 마찬가지다.

파울리 호텔은 다름 아닌 물질이다. 모든 물질은 원자를 조합해서 만들어졌고, 각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묶여 있는 원자핵,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전자로 만들어져 있으니, 모든 물질에는 무진장 많은 전자가 있을 것이다. 방금 가정한 것처럼 빈방을 하나도 안 남기고 남녀 한 쌍씩 투숙하는 상황이 어떤 물질에서 벌어질 때, 그 물질을 절연체라고 부른다. 전기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부도체라고도 한다. 전기를 통한다는 말은 일상적으로도 참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전기를 통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물질 속에 있는 전자가 그 물질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물 흐르듯 흐르는 게 바로 “전기를 통한다”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럼 다시 질문을 해보자. 전기를 잘 통하는 물질과 전기를 잘 못 통하는 물질의 차이는 무엇일까? 얼핏 생각하면 전자가 많으면 전기를 잘 통하고 전자가 부족하면 전기를 조금밖에 못 통할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엔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전기를 아예 안 통하는 절연체에는 전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분명 절연체에도 원자가 있고 원자에는 전자가 있으니, 절연체가 금속보다 전자 개수가 부족할 리는 없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 전자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을 것 같다.

실상은 이렇다: 절연체 속의 전자는, 만실이 된 파울리 호텔의 투숙객 마냥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설령 남전자 하나가 옆방의 남전자와 자리를 바꾼다 하더라도 그건 그저 자리바꿈에 불과할 뿐이지, 결과적으론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만약 전자가 좀 덜 배타적이었다면, 그래서 한 방에 남전자 둘, 여전자 하나 쯤 들어오게 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한 방에 한 쌍 씩의 전자가 이미 투숙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전자는 옆 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 가령 남전자가 옆 방으로 이동하면 그가 본래 있던 방엔 여전자 하나, 다른 방엔 남전자 둘과 여전자 하나가 있게 된다. 그런 상황이 허용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한 번 옆방으로 이동한 전자는 또 그 옆방으로 이동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니, 그 이동은 끊임 없이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전자의 배타성 때문에 전자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유동성을 잃어버린 셈이다.

이렇게 까칠한 전자들이 모인 사회에 유동성을 부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투숙객의 숫자를 조금 줄이면 된다. 방은 열 개 있는데 투숙객은 남녀 합해 다섯 쌍이라고 하자. 그럼 다섯 개의 방은 채우고 나머지 다섯 개 방은 비워두면 된다. 물론 남전자, 여전자 모두 각각 독방을 써서 모든 방을 채울 수도 있다. 그런데 전자는 게을러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방마다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파울리 호텔로 돌아가서 그 구조를 살펴보자. 여느 호텔처럼 어떤 방은 1층에, 어떤 방은 2층에 있다. 위층으로 가려면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공짜 엘리베이터나 짐을 날라주는 종업원 같은 건 없는 호텔이기 때문이다. 여행에 지친 신혼 부부는 1층에 있는 방부터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 1층에 있는 방이 모두 차면 2층, 그다음엔 3층, 이런 식으로 채워 나간다. 아래층에 있는 방이 비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층의 방을 채우는 경우는 없다. 힘이 남아돌아 위층으로 날아가듯 올라갈 신랑이나 신부는 인간 세계에는 있을지언정, 전자의 세계에선 없다. 전자는 게으르다. 게으른 인간은 사회에서 도덕적 점수를 깎일지 모르겠지만, 게으른 전자는 그저 자신의 에너지를 물리학 법칙에 따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물리 모범생일 뿐이다. 파울리 호텔의 낮은 층에 머물수록 전자의 에너지는 낮아지니까 당연히 서로 아래층부터 차지하려 든다.

그래서 1층에 있는 세 개의 방에 세 쌍의 남녀전자가 들어가고, 2층엔 두 쌍의 남여전자가 투숙했다고 치자. 하지만 2층엔 아직도 (예를 들어) 방 세 개가 더 남아 있다. 2층 다섯 개의 방 중에서 어떤 방 두 개를 고를까 하는 건 어디까지나 전자의 자유다. 어느 방을 고르건, 두 개의 방은 채워질 것이고 세 개의 방은 비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물 마시러 나왔던 남전자가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빈 방이 많으니까. 그렇다. 이젠 전자가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물질을 우리는 금속, 또는 도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비유에 따르자면, 어떤 물질이 절연체냐 금속이냐를 결정하는 조건은 전자의 개수도, 방의 개수도 아니다. 오히려 그 상대적인 비율이 결정적인 요소다. 예를 들어 1,2,3층에 있는 모든 방을 전자쌍으로 가득 채운 물질은 절연체다. 그러나 3층의 절반만 채운 물질은 금속이다. 전자의 개수는 비록 더 적지만, 빈방 덕분에 유동성이 생겨 금속이 된다.

 

 

이론상으로는 이런 식으로 부도체와 도체를 깔끔하게 분류할 수 있지만, 실상은 물질 속의 전자가 어디까지 차올라와 있는지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도리는 없다. 그 대신, 우리는 물질을 살살 건드려 볼 수 있다. 어떤 물질에 전기를 통하게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가? 건전지를 연결해 본다. 그래서 전기가 잘 통하면 그 물질은 금속, 안 통하면 비금속이다. 파울리 호텔로 비유하자면 건전지는 호텔을 살짝 기울여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2층에 있는 다섯 개 방 중에 두 개의 방에만 손님이 있었는데, 어떤 거대한 힘이 작용해서 호텔 전체를 한쪽으로 살짝 기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같은 층에 있던 방이라도 높이 차이가 난다. 전자는 그 특유의 게으른 속성 때문에 건물이 기울어지는 순간, 주저하지 않고 좀 더 낮은 곳에 있는 빈방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전자가 위치를 바꾸었으니 전류가 흐른 셈이다. 하지만 그 층에 있는 방이 모두 꽉 차 있다면 아무리 건물을 기울여 봐도 손님들이 자리를 이동할 도리가 없다. 절연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배타 원리로 알려진 이런 전자의 특이한 배타성을 볼프강 파울리가 깨닫고 세상에 발표한 건 1925년의 일이다. 마침 같은 해, 뮌헨 대학의 지도 교수 조머펠트 밑에서 동문수학한 그의 1년 후배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기본 관계식을 발표한다.  양자 물질 이론의 두 초석이라고 불러 마땅한 배타 원리와 양자 역학은 이렇게 1925년, 나란히 탄생했다. 비유해 말하자면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은 호텔의 설계도에 해당하고,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호텔을 운영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양자 역학은 1층에 창문 없는 방 몇 개, 해변 전망 좋은 방 몇 개, 2층엔 몇 개, 이런 식의 방 배치와 호텔의 전체 층 수 등을 결정한다. 파울리 호텔의 또다른 특징은 층과 층 사이의 간격도 제각각이라는 점. 양자역학의 설계도는 이런 층간격마저도 결정해 준다. 모든 설계는 양자역학의 지침을 따라 이루어진다.

그런데 원자 속에 어디 전자가 하나뿐인가. 그런 원자는 수소 원자밖에 없다. 헬륨 원자에는 전자가 두 개, 질소 원자에는 전자가 일곱 개, 일반적으로 주기율표에서 N번째 번호표를 받은 원자에는 N개의 전자가 있다.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전자의 세계에서도 이웃이 생기는 순간 자리다툼도 함께 시작된다. 전자들도 인간처럼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인다. 전자가 좋아하는 자리는 에너지가 낮은 자리다. 다시 말하면 호텔의 낮은 층에 있을수록 전자에겐 좋은 방이다. 그러나 그런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자끼리 규약을 맺었다. 그 규약을 파울리의 대헌장, 아니 파울리의 배타 원리라고 부른다. 한 방에는 오직 남녀전자 하나씩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게 대헌장의 내용이다.

 

다시 파울리 호텔로 돌아가 보자. 잘 생각해 보면 방의 절반만 숙박 손님으로 차 있을 때 손님의 이동량도 가장 많을 것이란 짐작이 간다. 절반보다 적으면 이동할 손님의 숫자 자체가 적어 이동량이 줄어든다. 절반보다 많으면 이번엔 이동할 수 있는 빈 공간이 적어져서 결과적으로 이동량이 줄어든다. 따라서 절반을 채운 상태가 이동량을 늘리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지 않겠는가!

전기를 가장 잘 통하는 금,은,동 같은 물질이 꼭 이런 상황이다. 주기율표를 들여다보면 동(구리)이 은 위에 있고, 은은 금 위에 있다. 주기율표에서 아래로 한 칸 내려간다는 건 파울리 호텔을 한 층 올라간다는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구리는 1,2,3층이 손님으로 꽉 차 있고 4층은 절반만 차 있다. 은은 1,2,3,4층이 손님으로 꽉 차 있고 5층엔 손님이 절반밖에 없다. 금은? 1,2,3,4,5층이 손님으로 차 있고 6층은 절반만 차 있다. 주기율표에서 금 밑에 있는 원자는 뢴트게늄인데 원자 번호가 111이나 되고, 실험실에서 억지로 간신히 만들어 내는 원자라서,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라고 보기 어렵다. 금 값이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1층만 가득 차 있고 2층은 절반만 차 있는 물질은 원자번호 3번인 리튬이다. 알칼리 금속이고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에 사용되는 재충전 전지에서 전기 흐름을 담당하는 물질이다. 1,2층은 가득, 3층은 절반만 차 있는 물질은 원자번호 11번 나트륨이다. 역시 금속이다. 리튬, 나트륨, 구리, 은, 금은 모두 전도성이 아주 좋은 금속이다.

 

파울리 호텔에 투숙한 손님들이 방에 가만있지 못하고 들뜨게 만드는 방법에는 호텔 기울이기 말고 또 다른 게 있다. 군불 때기다. 호텔 지하실에서 군불을 때기 시작하면, 아래층에 있는 손님일수록 방이 덥다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다. 다른 방으로 바꿔 달라고 해보지만, 그러려면 짐을 싸서 몇 층 계단을 올라가라고 한다. 전자 손님들에겐 그럴만한 기력이 없기 때문에 더워도 참고 자기 방에서 버틴다. 그러나 높은 층에 투숙한 손님은 어떤가. 조금만 힘을 쓰면 좀 더 높은 층에 있는, 좀 더 시원한 빈방으로 옮길 수 있다.

본래는 7층까지만 손님이 차 있던 파울리 호텔이라면 군불을 때움으로써 8층, 9층에도 손님이 방을 잡기 시작한다. 물리학에선 이런 상황을 들뜬 상태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상온은 절대 온도로 치면 300도쯤 되는 따끈따끈한 상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질 대부분은 이런 들뜬 상태에 있다. 그러나 한 번 위층으로 방을 바꾼 전자 손님들은 그 방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 전자는 그 게으른 속성 때문에 끊임없이 아래로 다시 내려가려고 한다. 위층으로 올라갔던 전자는 틈만 나면 다시 아래로 내려온다. 그러다가 너무 덥다며 또다시 위층으로 올라간다. 층과 층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한다.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에서는 이런 전자의 오락가락 운동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파울리 호텔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높은 층으로 올라갈 때는 계단을 사용해 조용히 올라갈 수 있지만 낮은 층으로 다시 내려올 때는 계단을 쓸 수 없다. 대신 각 층마다 복도 한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아래 층으로 내려가고 싶으면 이 구멍을 통해 쿵 떨어져야 한다. 인간 세계라면 말도 안 되는 규칙이겠지만, 자연이 설계한 것이니 모든 물질은 이 규칙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덕분에 호텔 지배인은 쿵 떨어지는 소리만 잘 들어도 손님이 몇 층에서 몇 층으로 떨어졌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3층에서 1층으로 떨어질 때 나는 소리는,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질 때의 소리와 다르다. 그 뿐 아니라, 3층에서 2층으로 떨어질 때와,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질 때의 소리가 서로 다르다. 똑같이 한 층씩 떨어지긴 했지만, 1-2층 사이의 간격은 2-3층 사이의 간격과 다르기 때문이다. 양자 역학이란 설계사가 파울리 호텔을 그렇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비록 호텔에 투숙한 고객이 아니더라도, 호텔 밖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쿵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기록하다 보면, 저 호텔의 층 구조를 속속들이 알아낼 수 있다. 쿵, 끙, 쾅, 꽈당, 깽, 이런 소리가 나는 파울리 호텔이 있는가 하면 깽, 꾸둥, 파당, 으직, 이런 소리를 내는 파울리 호텔도 있다.

호텔 밖에서 귀 기울이던 행인은 현실 세계에선 실험실의 과학자로 대치된다. 파울리 호텔은 물질이다. 호텔 방의 층을 전자의 에너지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전자는 들떠서 높은 에너지 상태(높은 층)로 올라갔다가 다시 게을러져서 낮은 에너지 상태(낮은 층)로 떨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쿵 소리 대신 빛을 낸다. 물질마다 제각각 다른 색깔의 빛을 낸다. 한 물질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색깔의 빛이 나온다. 이걸 잘 조사하고 분석해 보면 물질 속에 사는 전자의 에너지 구조를 역추적할 수 있다. 물질로부터 발생하는 빛을 분석해 물질의 성질을 역추적하는 과학을 분광학이라고 한다.

 

19세기 유럽의 과학자들은 분광학 기술을 창조하고 개선해 나갔고, 그 덕분에 “물질의 말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소리는 암호 같아서, 그 의미를 파악하려면 해독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했다. 그 해독법은 물론 양자 역학이란 언어로 쓰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플랑크의 양자화 가설, 보어의 수소 원자 가설, 파울리의 배타 원리 모두 그 앞세대에서 차근차근 쌓아 온 분광학적 실험 결과를 해석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제안된 이론들이다. 하이젠베르크가 행렬 역학(그가 1925년 제시한 양자 역학을 행렬 역학이라 부르기도 한다)을 제안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수소 원자에 대한 분광학적 실험 결과였다.

네덜란드의 과학자 제이만은 분광학의 지평을 한 층 넓혔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인물이다(최초의 수상자는 엑스선을 발견한 뢘트겐이다). 그에게 물리를 지도한 스승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당대의 이론가 로렌츠, 다른 한 명은 당대의 실험가 온네스다. 특히 로렌츠는 자기장이 전자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결정하는 (로렌츠 방정식이라고 불리는) 식을 제안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제이만은 기존의 분광학 도구에 커다란 자석을 부착해서, 그 물질에 자기장을 걸었을 때 물질로부터 나오는 빛의 속성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탐구했다. 그리고는 옆의 그림처럼 한 개인 줄 알았던 분광학선이 두 개, 세 개, 혹은 네 개로 갈라지는 신기한 현상을 목격한다. 위의 그림에 한 줄의 선으로 표시된 자국은 소리로 비유하자면 그 소리의 높이를 나타낸다. 높은 소리는 진동수가 높고, 낮은 소리는 진동수가 낮다. 진동수란 건 1초에 몇 번이나 떨리는가 하는 그 회수를 나타낸다. 분광학적 도구를 사용하면 빛이 떨리는 진동수를 위의 그림처럼 한 줄의 막대로 표현할 수 있다. 진동수의 차이를 우리의 눈은 색깔의 차이로 인식한다. 빨간색과 보라색은 그 빛에 해당하는 진동수가 서로 다르다. 제이만의 발견을 과장해 말하자면 초록빛 나는 에머랄드 보석에 자석을 갖다 댔더니 보석 색깔이 빨간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모습으로 바뀌는 격이다.

파울리 호텔로 돌아가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본래는 남전자의 몸무게가 여전자의 몸무게와 같기 때문에 3층에서 1층으로 쿵 떨어질 때 두 성별의 전자는 똑같은 소리를 냈었다. 호텔 밖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방금 떨어진 전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자기장을 걸어주면 신기하게도 남전자의 몸무게는 늘어나고, 여전자의 몸무게는 줄어든다. (물론 비유를 위해 이런 상황을 가정한 것뿐이고 실제 전자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남전자가 떨어질 때 더 큰 쿵 소리가 난다. 이젠 전자가 몇 층에서 몇 층으로 떨어졌는지 뿐만 아니라, 남전자와 여전자 중 무엇이 떨어졌는지도 구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성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제이만이 그의 흥미로운 발견을 네덜란드 물리학회에서 발표한 날은 1896년 10월 31일, 토요일이었다. 불과 이틀 뒤인 다음 주 월요일 그의 스승 로렌츠는 제이만을 자기 연구실로 불렀다고 한다. 로렌츠는 주말 사이에 제이만의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었고, 그 이론을 월요일 날 제자에게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실험과 이론의 조합 덕분으로 두 사람은 1902년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제이만의 나이 37세, 로렌츠의 나이 49세의 일이다. 로렌츠는 당대 최고의 이론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지만, 막상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이렇게 제자 덕도 조금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자, 그럼 이 대목에서 로렌츠가 만들었다는 이론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로렌츠가 제이만에게 알려 주었다는 이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어떤 물리학 교과서에서도 이 이론을 배운 적이 없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제이만과 로렌츠의 발견과 이에 따른 노벨상 수상이 양자역학의 발견 훨씬 이전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양자 역학이 제대로 만들어진 건 1925년 이후의 일이었고, 전자의 성(스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립된 것도 1925년의 일이다. 심지어 전자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영국의 톰슨이 검증한 것도 제이만의 발견보다 한 해 늦은 1897년의 일이다(이전 글 “양자 물질의 역사[2]: 꼬인 원자에서 위상 자석으로”를 참고하기 바란다). 아무리 뛰어난 이론가였다고 해도, 로렌츠가 향후 수십년간 차근차근 이루어질 발견을 단 이틀 만에 예견하고 제이만을 자기 연구실로 불렀을 리는 없다. 필자의 짐작대로라면, 당시 노벨상 위원회가 로렌츠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는 아마도 잘못된 것이었다. 양자 역학의 언어가 아니면 제이만의 실험 결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데, 수상 당시 양자역학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1902년 당시의 물리학자 중 그 누구도 양자역학 같은 거대한 변화가 곧 닥칠 것이란 예상은 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싶다.

필자는 파울리가 완성한 배타 원리를 “전자의 사회학”의 완성이라고 보고 싶다.  전자의 사회학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중 하나는 전자에게 성, 즉 스핀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측면은 전자끼리 자리를 나눠 갖는 방법에 대한 규약이다. 자연은 지극히 단순한 원리를 채용해 자리 배치 문제를 해결한다. 모든 자리(상태)에는 한 성별의 전자 하나만 앉을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이 정하고 파울리가 깨달은 배타 원리다. 여기에다 늘 낮은 자리만 찾아가려는 전자의 겸손함(게으름)까지 가세하면, 전자 집단이 자리 배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은 거의 자명할 만큼 명확해진다. 한 덩이의 물질을 보면 그 속에는 아보가드로의 숫자라고 하는 10의 23승 개, 혹은 그 이상의 전자가 살고 있다. 이 많은 전자들이 낮은 층의 방부터, 남녀 한 쌍 씩 자리를 차곡차곡 차지하고 앉아 있어야 하다 보니, 자연히 파울리 호텔의 층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대부분의 전자들은 상온, 즉 절대 온도 300도의 군불을 때 줘도,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빈 방은 너무나 높은 층에 있기 때문에 도저히 올라 갈 도리가 없다. 조상님께 물려받은 금두꺼비를 금고에 보관해 두고 날마다 쳐다 보아도 그 광택이 하루, 이틀,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파울리가 인지한 배타 원리의 덕분이기도 하다. 금덩이 안에 있는 대부분의 전자들이 할 일이란, 그저 아무 것도 안 하기밖엔 없다. 전자들이 아무 것도 안 하니 금두꺼비 상태가 변할 리 없다.

전자의 사회성(혹은 사회성의 부재)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다 보니 마치 개인주의, 혼밥주의가 팽배한 미래 사회를 그린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전자가 조금 더 사회적이었다면, 그래서 동성 간의 자유로운 혼거를 허용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이 세상에 절연체란 게 존재하지 않게 된다. 철저한 배타주의가 전자의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이었는데, 이 원칙이 사라지게 되면 모든 물질은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바뀐다. 따라서 절연체는 사라지고 모든 물체는 금속으로 바뀐다. 만약 온 세상 물질이 다 금속이었다면? 우리는 건조한 날 금속 손잡이를 만질 때 겪는 따끔한 느낌을 하루 24시간, 앉으나 서나 누우나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번개가 치는 날이면 우리 몸은 모조리 피뢰침으로 변해 번개를 맞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손에 닿는 물질마다 황금으로 변해버리는 마이다스의 저주처럼, 금속만 있는 세상에선 생명체가 존재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자의 배타성은 세상을 금속과 비금속으로 구분해 주었고, 그 덕분에 이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진 것 아닐까.

한정훈
HORIZON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