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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기 수학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단연 중국이었다. 한나라 이전부터 축적된 중국의 수학은 구장산술九章算術이라는 책으로 집대성되어, 이후 동양 수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 책은 다양한 문제가 수록되어 있는 일종의 문제집으로, 연립일차방정식의 해법을 다루고 있는 여덟 번째 장인 방정方程은 “방정식”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되었다.

중국의 수학은 송나라와 원나라 시대를 거치며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나, 이후 명나라 시대부터는 발전이 정체되어 명말 청초 무렵에는 미적분학을 발명한 유럽의 수학에 추월당하게 된다.

사그라들던 중국의 수학을 보존하고 발전시킨 곳은 조선이었다. 일례로 원나라 때 간행된 주세걸朱世杰, 1249-1314의 산학계몽算學啓蒙은 중국에서 실전되어서, 청나라 때 조선에서 다시 가져가 복간하기도 하였다. 이런 장면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을 이슬람 수학자들이 보존하고 발전시켰던 것을 연상케 한다. 조선 시대 후기에 경선징1616-?, 홍정하1684-1727 같은 뛰어난 수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으면서 학문이 발전하기 어려웠고, 또 그 이후 시대적 상황 때문에 수학의 전통이 이어지기 어려웠다.

한편, 일본의 수학은 임진왜란 이후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세키 다카카즈關孝和, 1642-1708, 음독으로는 세키 코와는 중국의 수학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당대 유럽 수준에 근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일본 전통 수학을 일본인들은 와산和算이라 불렀다. 와산은 무한급수를 다루는 등 일정 부분에서는 중국 수학의 수준을 앞지르기도 하였으나, 근대에 이르러 유럽의 수학이 전해지면서 와산의 전통도 사실상 끊어졌다.

일본의 수학 역사에서 독특한 점 하나로 에도 시대의 산가쿠算額를 들 수 있다. 수학 문제를 푼 액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산가쿠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나서 나무판에 그 내용을 적어서 절이나 신사에 공물로 바친 것을 뜻한다. 다음 그림은 일본 기후현 묘조린지明星輪寺라는 절에 바쳐진 산가쿠로, 바친다는 뜻의 “봉납奉納”이 오른쪽에 보인다. 왼쪽 끝에는 이 산가쿠를 바친 때가 겐지元治 2년 늦은 봄이라고 적혀 있다. 서기로는 1865년이 된다.

 

산가쿠는 전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일본의 학자 계층뿐 아니라 무사, 상인,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까지 그 이름을 남겨 놓아, 그야말로 일본의 모든 계층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크게 유행하였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지적인 취미 활동이 아니었을까? 종교적인 의미를 품은 수학이었으니 성스러운 수학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일본의 수학자 후카가와 히데토시深川英俊가 산가쿠를 소개한 책의 제목이 Sacred Mathematics: Japanese Temple Geometry였다. 세계적으로 유행하였던 스도쿠Sudoku가 일본에서 개발되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싶은 생각이 들고, 이런 전통 덕분에 일본이 수학 최강국 가운데 하나로 필즈 메달 수상자를 세 명이나 배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번 호 퍼즐에서는 산가쿠 문제 하나를 풀어 보자. 위 그림의 왼쪽에서 세 번째 문제이다. 놀랍게도 이 문제를 만든 다나베 시게토시田邊重利는 이때 15살이었다고 한다.

정삼각형에 그림과 같이 여러개의 원을 그려 넣었다. 초록색 원의 반지름을 \(a\), 빨간색 원의 반지름을 \(b\), 하얀색 원의 반지름을 \(c\)라 하고, 실선으로 그린 가장 큰 원의 반지름을 \(R\), 점선으로 그린 내접원의 반지름을 \(r\)라 할 때, \(c\)와 \(r\)의 관계는 어떻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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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성
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