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요즘,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한 곳은 유럽이다. 항공료가 만만치 않음에도 가족이 다 함께 일주일씩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목적이 크다. 유럽의 좋은 박물관과 유구한 역사가 새겨진 건축물들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지적 자극이 된다. 돌로 지은 건축물들이 많은 유럽은 세워진 지 1000년에 가까운 거대한 건축물들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있다. 특히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 가보면 고색창연한 성당을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시대별로 다양한 건축 양식을 자랑하지만 당연 고딕 성당이 유럽의 오래된 성당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12세기와 13세기에 주로 건설된 고딕 성당은 유럽인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 문화유산이다. 유럽에서 통용되는 화폐인 20유로 지폐에는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도안이 실려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수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대상인데, 과장해서 말한다면 유클리드 기하학의 거대한 연습문제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고딕 성당 안에 들어서면 일단 웅장한 크기에 압도되지만 동시에 지상에 속하지 않은 신비로운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닌데, 고딕 성당의 설계자들이 의도한 바가 순례자들이 성당 안에 들어와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구현한 고딕 성당의 건축 미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에 정통하였던 수도사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고딕 성당이 갖는 미학적 특징 중 하나로 성당 전체의 구성요소들 사이에 성립하는 정수비를 들 수 있다. 가령 성당의 벽면은 보통 2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1층과 2층이 1:1로 분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창이 들어서는 2층 내부도 다시 2:3과 같은 비율로 수직 방향으로 분할된다. 영국의 솔즈베리 대성당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성당의 수직 길이와 수평 길이가 정확히 일치한다. 성당은 위에서 보면 가로막대와 세로막대가 교차하는 십자가 형태인데, 두 막대가 교차할 때 생기는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기본 단위로, 건물의 각 변의 길이가 정사각형의 정수배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고딕 성당의 건축 미학에서 추구하는 정수비에 대한 아이디어는 피타고라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는 수에 대한 신비주의적 관점으로 유명하다. ‘만물은 수이다’라는 모토가 이들의 관점을 요약한다고 볼 수 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생각에 결정적 영향을 준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악기의 소리 높낮이와 현의 길이 사이의 상관관계이다. 주어진 현이 도C음을 낸다면 현의 길이의 2/3에 해당하는 현은 솔G음을 낸다. 그리고 현 길이의 3/4에 해당하는 현은 파F음을 낸다. 여기서 2/3은 1과 1/2의 조화평균이고 3/4의 1과 1/2의 산술평균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여기 등장하는 수들을 약간 신비화하는데, 1, 2, 3, 4라는 네 가지 수가 우주의 모든 차원을 설명하기 때문에 네 가지 수를 다 더한 10은 우주를 상징하는 신성한 수라고 여겼다.
피타고라스의 수 기반 우주론은 이후의 철학자들을 매료시켰다.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플라톤의 철학도 피타고라스의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교회의 유명한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음악론>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음악을 구성하는 수학적 질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앞서 이야기한 현악기의 화음과 정수비에 대한 피타고라스학파의 발견을 강조하면서 정수비야말로 미학의 진정한 기초라는 주장을 하였다.
고딕 성당의 건축적 미학을 설계한 수도사들의 아이디어는 바로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전승된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우주관에서 왔다. 대표적인 사람들로는 12세기의 프랑스 샤르트르 학파의 수도사들이 있다. 이들은 특히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우주관에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의 정다면체라고 불리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를 우주의 구성 요소인 불, 물, 공기, 흙과 대비시키고 다면체의 면의 개수, 꼭지점의 개수, 변의 개수 등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고딕 성당에 나타난 수학 기반의 건축 미학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건축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원근법의 창안자로도 유명한 알베르티는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에서 피타고라스의 관점을 재발견한다. 비트루비우스는 “비례란 건축물의 여러 부분들 사이의 일치된 조화이다. 이는 높이와 폭, 폭과 길이, 이 모두와 전체 사이의 합당하고 규칙적인 일치의 결과”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건축가는 대칭에 유념해야 한다. 대칭은 비례로부터 온다. 비례란 서로 다른 부분들 사이 또한 각 부분과 전체 사이의 크기에서의 일치다. 대칭은 이들 사이의 적절한 일치에서 온다. 이런 대칭과 비례가 결여된 건물은 제대로 설계되었다고 볼 수 없다. 대칭과 비례가 인체에 아름다움을 주듯 건물에도 아름다움을 부여한다”라고 하였다.
알베르티가 비트루비우스를 통해 배운 피타고라스적 수의 미학을 잘 구현한 것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이다. 성당 파사드의 각 요소 사이에는 다양한 정수비가 구현되어 있다. 파사드 전체는 하나의 정사각형에 들어간다. 이 정사각형을 1/2 크기로 축소한 정사각형 두 개로 1층이 분할되며, 이 정사각형 한 개가 2층의 중앙 베이를 포함한다. 정사각형 개수에서 1:2라는 비는 피타고라스의 음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2층 중앙 베이와 베이 양옆의 소용돌이 장식(스크롤)을 포함하는 정사각형의 길이는 6:5의 비를 이룬다. 1층 현관의 높이와 폭은 3:2의 비례를 이루고, 애틱 가운데 띠를 형성하는 정사각형과 애틱의 높이는 1:3의 비를 이룬다. 결과적으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파사드를 보고 있으면 한 편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피타고라스의 영향으로 시작된 조화와 비례를 강조한 건축 미학은 16세기를 지나면서 쇠퇴한다. 1762년 이탈리아 건축가 토마소 테만자는 관찰자 한 사람이 한 건물의 비례를 감상할 때 건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음악적 비례를 동시에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뿐 아니라 비례를 강조한 건축물들은 정면을 마주 보고 서서 보아야 그 비례를 경험할 수 있다. 가령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갖는 비례의 미학을 경험하려면 건물을 정면으로 보아야지 광장 구석에서 비스듬히 보거나 한다면 설계자의 의도된 비례미를 온전히 경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대의 건축은 어떤 미학을 추구할까? 특별히 현대 수학이 추구하는 미학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은 없을까? 필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예로 들고 싶다. 멀리서 보면 DDP는 거대한 밀가루 반죽이나 비정형의 우주선이 버티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루브르 박물관처럼 감상자를 특별한 자리로 오게끔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방향에서 DDP로 접근하든 나름의 건축적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례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DDP에 들어가면 건축 공간의 부분 부분마다 다채로운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다. 고전건축이 추구한 정사각형, 정육면체는 엄정한 비례의 미를 주지만, 어느 공간을 가든 감상자가 마주치는 기하학적 대상은 동일하다. 그러나 DDP는 전체가 곡면이기 때문에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이 적어도 시각적 경험의 측면에서는 같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건축물에 어떤 수학적 질서가 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수학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DDP를 설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자하 하디드는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 건축가이다.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성장한 하디드는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는데,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수학과 물리학, 철학 등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하디드가 건축물을 구상할 때마다 철저하게 수학적인 아이디어를 추구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직선보다는 곡선, 특히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한 건축박람회의 출품작에서 유체의 움직임을 모티브로 한 건축물을 제시했는데 이때 정교한 유체역학의 시뮬레이션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필자는 어린 딸에게 그림책을 골라주다 하디드의 일생과 건축에 대한 그림책을 보게 되었다. 그 책에 보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성장한 하디드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모래언덕, 갈대숲, 고대 바빌론 유적들의 인상을 건축적 모티브로 간직하였고,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들을 아이디어로 잘 사용했다고 한다. 가령 대나무숲, 개울가의 자갈돌 같은 것이 전쟁 기념관이나 오페라하우스로 형상화되었다.
필자가 DDP를 다녀오면서 떠올린 수학은 미분기하학의 유명한 정리인 가우스-보네의 정리이다. 이 정리는 곡면의 미분기하학적 정보와 곡면의 위상수학적 정보를 연결하는 놀라운 정리이다. 가우스-보네 정리는 일면 현대수학의 기호나 취향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데, 두 가지 다른 성격의 정보를 한 식에서 연결함으로써 두 정보에 대한 이해에 동시에 빛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가우스-보네 정리1는 간단하게 말하면 2차원 곡면을 따라 곡률을 전부 더하면(더 정확히는 적분하면) 곡면의 오일러 지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곡률은 곡면이 휘어진 정도를 말해준다. 평면은 곡률이 0이고, 구면은 양의 곡률을 가지며 모든 점의 곡률이 같다. 구면의 반지름이 크면 클수록 곡률값은 작아진다. 곡선의 곡률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운데, 자동차로 원형경기장을 돌 때 경기장의 반지름이 작을수록 돌기가 더 힘든 이유는 곡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즉 계속해서 움직임의 방향을 급격하게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운전자는 휘어짐의 정도가 크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도넛 모양의 곡면은 바깥 쪽은 양의 곡률을 갖지만 안쪽은 음의 곡률을 갖는다.
이번에는 오일러 지표를 설명해보자. 곡면에 임의의 그래프(꼭지점 몇 개와 이 꼭지점들을 곡선으로 연결한 것)를 그렸을 때 [꼭짓점 개수]-[모서리]+[면의 개수]를 오일러 지표라고 한다. 구면이 만약 찰흙으로 만들어졌다면, 흙칼로 구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정사면체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정사면체는 구면 위의 그래프라고 볼 수 있다. 정사면체의 꼭짓점이 4개, 모서리가 6개, 면이 4개이므로 오일러지표는 2가 된다. 위상수학의 잘 알려진 사실을 인용하면 구면에 고리를 하나씩 붙일 때마다 오일러 지표가 2씩 줄어든다. 도넛 모양의 구면은 구면에 고리를 하나 붙여서 얻을 수 있으므로 오일러 지표가 0이 된다. 오일러 지표는 구면의 위상적 성질을 설명하는 값이다. 즉 고리가 몇 개 붙어 있는 구면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제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이 구인지 아니면 고리가 몇 개 붙은 구인지 행성을 떠나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우스-보네의 정리를 이용하면 행성의 각 지점마다 곡률을 측정한 뒤 다 더하여 오일러지표를 구할 수 있고, 이로부터 행성의 위상적 성질을 알 수 있다. DDP로 다시 돌아가 보자. 박물관이나 기념관처럼 특별한 경험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이라면 일단 규모가 클 것이다. 만약 외형에 건축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것을 모두 구현한다면, 건물 대비 크기가 작은 감상자가 실제로 건물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공간적 경험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디드의 DDP는 외형적으로도 물론 흥미롭지만, 감상자가 건물 여기저기 다니면서 각 지점마다 고유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경험은 건축물의 국소적 디자인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 국소적 디자인이 모두 합쳐져 밀가루 반죽 또는 우주선과도 같은 건축물을 이루는 것이다.
국소적 경험과 거시적 정체성을 연결하는 건축 철학이 가우스-보네 정리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현대 건축이 현대 수학을 반영하는 방식은 대상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좀 더 내재적인 규칙이나 질서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자하 하디드가 가우스-보네의 정리를 알고 있었는지 건축에 응용했는지 필자가 확인할 길은 없다.) 하나의 대상을 구성하는 이질적인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더 어려운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현대의 이야기가 고대의 이야기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다른 종류의 이야기, 다른 차원의 이야기에 대한 것 같다. 다르게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