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근대 과학이 형성되기 시작한 16-17세기 과학혁명기에 중요한 기여를 한 4인방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이라는 데 이견은 별로 없을 것이다. 네 과학자가 공통적으로 해결하려 한 시대적 과제는 바로 태양계 내 행성의 운동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태양계란 곧 우주를 의미하였으며, 따라서 태양계 내의 운동이란 우주의 중심을 밝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으며 유럽인들의 생각을 천년 넘게 지배하던 지구중심설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코페르니쿠스마저도 생각하지 못했던 타원 모양임을 밝혀 신이 만든 완벽한 우주의 모양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하였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해 거친 달 표면과 금성의 모양 변화를 관찰하여 완벽한 우주의 이미지를 더욱 심하게 망가뜨렸다. 뉴턴은 케플러가 남겨놓은 문제인 타원 궤도의 근원을 설명하였으며, 동시에 지상과 천상에 동일한 자연의 법칙이 작용함을 밝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지구를 포함한 행성이 원 궤도를 돈다고 제시하는 등 일부 부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다. 반면 케플러가 제시한 행성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은 현대 과학에서도 여전히 인정되는 완전한 물리학 법칙이다. 그러므로 케플러는 근대 과학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케플러가 실제로 남긴 여러 기록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근대 과학자의 이미지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는 흔히 르네상스 시기의 사람들이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비록 후대의 사람들이 이 시기를 ‘르네상스’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르지만, 당시 사람들 개개인의 정신은 여전히 중세에 머무르고 있었다. 케플러도 이런 중세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케플러가 “조화의 법칙”이라 불리는 행성 운동의 제3법칙을 기술한 저서 『세계의 조화Harmonices Mundi』를 중심으로, 케플러가 평생을 바쳐 추구하였던 중세적 환상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케플러의 기하학적 태양계 모델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난 케플러는 수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사제가 되려고 했던 신앙심 깊은 젊은이였으나, 남다른 수학 실력을 인정받아 22세에 개신교 학교의 수학 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는 10대에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최신 우주론을 알게 되었으며, 이후 이를 신이 만든 완벽하고 조화로운 우주에 대한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결합시키는데 평생을 바친다. 케플러는 이러한 원대한 비전을 담아 25세였던 1596년에 『우주의 미스터리Mysterium Cosmographicum』라는 제목의 첫 저서를 출판하였다.

케플러는 기하학을 신이 완벽한 우주를 설계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라 믿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삼차원 공간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들을 태양계 모델에 도입하였다. 당시까지 모든 태양계 모델의 공전 궤도는 완벽한 이차원 형태인 원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관측값과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원의 모양을 바꾸는 대신 큰 원 위에 다시 중심을 두고 회전하는 작은 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었다. 물론 프톨레마이오스나 코페르니쿠스도 실제 우주가 삼차원 공간임을 인지하였으며, 따라서 행성의 원 궤도는 삼차원의 완벽한 형상인 구sphere 위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케플러는 이러한 생각을 한 단계 발전시켜서, 각 행성의 궤도가 놓인 구 사이의 기하학적 관계에 우주를 설계한 신의 완벽한 생각이 숨어있다고 보았다.

각각의 행성 공전 궤도가 존재하는 크기가 다른 여러 구면들이 안정적으로 겹쳐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지탱하여 줄 일종의 지지대가 필요했다. 완벽한 신이 설계한 완벽한 우주라면 이러한 지지대의 모양 또한 완벽해야만 했다. 케플러는 이를 위해 당시 유럽인들에게 가장 완전한 도형으로 알려져 있었던 플라톤의 정다면체Platonic solids를 도입하였다. 플라톤의 정다면체란 모든 선의 길이가 같은 정다각형으로만 이루어진 볼록 다면체를 의미하며, 일찍이 유클리드가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의 다섯 가지만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플라톤은 자신의 4원소설에서 이 정다면체들을 흙(정육면체), 공기(정팔면체), 물(정이십면체), 불(정사면체)에 각각 연결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이자 정오각형으로 만들어진 정십이면체는 별들이 놓여있는 천상을 나타낸다고 해석하였다. 로마 시대 이후 그리스 철학이 기독교 철학의 핵심 사상이었음을 이해한다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케플러가 플라톤의 정다면체를 특별하게 간주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제 다섯 개의 정다면체가 있으면 [그림2]처럼 총 여섯 개의 구면을 지탱할 수 있다. 우선 태양계의 가장 안쪽 행성인 수성의 공전궤도가 놓인 구면을 생각해보자. 케플러는 이 구면이 어떤 정팔면체의 안쪽에 꽉 끼어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꽉 끼어 있다는 말은 정팔면체를 구성하는 모든 정삼각형 면이 안쪽에 놓인 구면과 서로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케플러는 수성의 바로 바깥쪽에서 공전하는 금성의 궤도가 정팔면체의 바깥쪽에 꽉 끼인 구면상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꽉 끼어 있다고 함은 정팔면체의 모든 꼭짓점이 바깥쪽에 놓인 구면에 정확히 닿아 있다는 뜻이다. 정팔면체의 기하학적 모양이 정확히 알려져 있으므로 이제 수성과 금성의 공전 궤도 반지름의 비율은 \(1:\sqrt{3}\)로 정확하게 얻어진다. 물론 정팔면체 자체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어서 케플러는 금성의 궤도가 존재하는 구면이 정이십면체의 안쪽에 꽉 끼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지구의 궤도가 존재하는 구면이 꽉 끼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금성과 지구의 공전 궤도 반지름의 비율은 \(\frac{1+ \sqrt{5} }{2 \sqrt{3} }:\frac{5 – \sqrt{5} }{2}\)로 얻어진다. 이제 지구의 공전 궤도와 화성의 공전 궤도가 존재하는 각각의 구면은 각각 정십이면체의 안쪽과 바깥쪽에 꽉 끼어 있으며, 두 공전 궤도의 반지름 비율은 정이십면체의 경우와 똑같다. 또한 화성의 공전 궤도와 목성의 공전 궤도가 각각 존재하는 구면들은 정사면체의 안쪽과 바깥쪽에 꽉 끼어 있으며, 두 공전 궤도 사이의 반지름 비율은 \(1:3\)으로 가장 크다. 마지막으로 목성의 공전 궤도와 토성의 공전 궤도가 각각 존재하는 구면들은 정육면체의 안쪽과 바깥쪽에 꽉 끼어 있으며, 두 공전 궤도 사이의 반지름 비율은 정팔면체의 경우와 정확히 똑같다.

이렇게 케플러는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완벽한 삼차원 도형들을 이용해 완벽한 태양계의 모델을 완성하였다. 물론 이는 순전히 케플러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상적 또는 망상적 모델이며 태양계의 현실적인 측정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케플러의 모델에서 여섯 행성들의 공전 궤도 반지름을 비교해보면 \(1 : 1.73 : 2.18 : 2.74 : 8.23 : 14.25\)의 비율을 얻는다. 반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행성들의 공전 궤도 반지름을 바탕으로 한 비율은 \(1:1.87:2.58:3.94:13.44:24.75\)이며, 이는 이미 코페르니쿠스 시기에 알려진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따라서 케플러는 자신의 이상적인 모델이 현실의 데이터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향후 수십 년간 자신의 이상적인 모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케플러가 『우주의 미스터리』를 출판한 뒤 4년 후인 1600년에 티코 브라헤를 찾아갔던 이유가 보다 정밀한 관측 데이터를 이용해 자신의 이상적인 모델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서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를 변명할 수 있는 새로운 원리를 만들고자 하였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만일 첫 번째 이유였다면, 티코 브라헤의 데이터를 손에 넣자마자 그의 소망은 산산이 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데이터를 손에 넣은 후 십수 년간 씨름한다. 그리고 1609년 『새 천문학Astronomia Nova』이라는 저서를 통해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며, 공전 중에 태양과 행성 사이의 거리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대신 거리와 이동 속도의 곱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분석을 발표한다. 이 두 주장은 오늘날 우리에게 행성 운동의 제1,2법칙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완벽한 우주의 모습을 꿈꿔왔던 케플러에게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또한 구면을 어떻게 잘라도 타원을 얻을 수 없으니 그가 25세에 완벽한 구면들을 안정되게 지탱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플라톤의 다각형들도 이제 모두 쓸모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케플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향후 10년간 데이터와 씨름하며 1619년에 행성 운동의 제3법칙을 담은 저서 『세계의 조화』를 완성한다. 그런데 약 250 페이지에 달하는 『세계의 조화』에서 행성 운동의 제3법칙은 불과 한두 페이지 정도만 언급된다. 대신 케플러가 평생의 역작인 『세계의 조화』에서 이루고자 하였던 것은 행성의 운동 뒤에 창조자가 숨겨놓은 음악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케플러 이전의 음악과 천문학

중세 유럽인에게는 태양계의 행성과 달이 음악적 원리 또는 규칙을 따라 움직인다는 관념이 널리 공유되었는데, 이를 “우주의 음악musica universalis”라 한다.([그림3-1] 참조) 흔히 피타고라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는 이 철학적인 관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실제의 음악 소리가 아니라 신의 조화로운 천지창조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케플러는 태양계 행성들의 움직임에 실제 멜로디로 변환할 수 있는 수학적인 실체가 있다고 믿었다. 그가 행성운동의 제3법칙을 제시한 『세계의 조화』는 제목에 들어간 harmonices, 즉 harmony라는 단어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실상은 태양계 행성의 움직임으로부터 음악적 관계를 찾아내고 더 나아가서 행성들이 합주하는 멜로디를 알아내고자 한 내용을 기술한 책이었다.

 


행성 운동의 제3법칙은 그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관계식에 불과하였으며, 케플러에게는 신이 우주를 조화롭게 창조했다는 신념을 더욱 굳힐 수 있는 역할을 하였다. 음악에서 여러 음들 사이의 상호 관계는 ‘음계’로 정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케플러가 여러 행성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찾아내고자 한 수학적 상호 관계 또한 음계에 기반한다. 사실 행성들이 음계에 따라 움직일 리가 없으므로 행성의 움직임으로부터 직접 음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케플러는 우선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음계를 유도한 후, 이를 행성의 움직임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아무튼 케플러가 만든 음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케플러 이전에 유럽인들이 사용하던 음계를 알아야 한다. 아래에서 이를 간단히 살펴보자.

유럽의 역사에서 음계를 처음 만든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줄을 튕겼을 때 들리는 소리와 줄의 길이 사이의 관계를 이용해 수학적으로 음계를 유도하는 방식을 고안하였다. 우선 팽팽히 당겨진 줄을 튕겨 소리를 들어본 후,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애초의 절반 길이에 해당하는 줄을 튕기면 원래보다 훨씬 더 높은 소리가 난다. 줄의 탄력이 항상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이와 같이 길이의 비율이 \( 1:\frac{1}{2}\)이면 진동수의 비율은 역수인 \(1:2\)가 된다. 음악에서는 이 두 음 사이의 간격을 한 옥타브octave라 부르며, 이는 음계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느 문화권에서나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도’와 높은 ‘도’, 또는 ‘솔’과 높은 ‘솔’ 사이의 간격이 한 옥타브다. 이제 줄의 상대적인 길이를 \(1\)과 \(\frac{1}{2}\) 사이에서 조절하면 한 옥타브 안쪽에 새로운 음을 추가하여 음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피타고라스가 사용한 방식은 줄의 길이에 \(\frac{2}{3}\)를 반복적으로 곱하거나 나누는 것이었으며, 만일 숫자가 \(1\)과 \(\frac{1}{2}\) 사이에서 벗어나면 \(2\)를 곱하거나 나누어 주었다. 이 방식에 의해 얻어진 12개의 음 간격을 진동수 비율이 증가하는 순서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1: 2^{3} (\frac{2}{3})^5:\frac{1}{2}(\frac{3}{2})^2: 2^{2} (\frac{2}{3})^3: \frac{1}{2^2}(\frac{3}{2})^4: 2 (\frac{2}{3})^1:\frac{1}{2^3}(\frac{3}{2})^6:\frac{3}{2}:2^3(\frac{2}{3})^4:\frac{1}{2}(\frac{3}{2})^3:2^2(\frac{2}{3})^2:\frac{1}{2^2}(\frac{3}{2})^5:2\)

피타고라스의 음계는 가장 작은 두 개의 소수인 \(2\)와 \(3\)만으로 이루어진 유리수 비율을 가지므로 수학적으로 매우 단순하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가지의 7음계(도-레-미-파-솔-라-시)를 만들 수 있으며, 이 중 네 가지가 중세 유럽의 교회 음악에 널리 사용되었다.

피타고라스 음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세 개의 음을 겹쳐 삼화음을 형성할 때 조화로운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개 이상의 음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진동수의 비율이 수학적으로 단순한 정수비를 이루어야 한다. \(1:2\)의 비율을 가진 두 음은 단지 한 옥타브 떨어진 같은 음이므로 애초에 화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다음으로 단순한 정수비는 \(1:\frac{3}{2}=2:3\)이며, 이는 ‘도-솔’ 또는 ‘라-미’의 진동수 비율과 같다. 여기에 하나의 음을 더하여 삼화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1\)과 \(\frac{3}{2}\)사이의 한가운데에 가까운 \(\frac{1}{2^2}(\frac{3}{2})^4\) 또는 \(2^2(\frac{2}{3})^3\)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보다시피 그 상대적인 비율이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이 세 음을 동시에 연주하면 썩 조화로운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유럽의 중세 교회 음악은 한두 개의 멜로디를 사용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피타고라스의 음계를 사용하여도 별 문제가 없었다. 반면, 악기 제작 기술이 정교해지고 작곡 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한 르네상스에 이르러 음악가들은 풍부한 화음을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는 음계가 필요했다. 그 해법은 이미 기원후 1세기에 천동설을 정리한 것으로 잘 알려진 천문학자 클라우디오 프톨레미가 제안한 바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음계에서 \(\frac{1}{2^2}(\frac{3}{2})^4\)는 \(\frac{3}{2}\)만큼을 네 번 올라간 후에 두 옥타브만큼 내려온 것에 해당하며, 만일 ‘도’에서 시작하였다면 ‘미’를 얻게 된다. 프톨레미는 \((\frac{3}{2})^4=\frac{81}{16}\)가 \(5\)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를 \(5\)로 대체하였다. 프톨레미는 이 근사값을 \((\frac{3}{2})^3 \simeq \frac{2}{3} \times 5\), \((\frac{3}{2})^4 \simeq 5\), \((\frac{3}{2})^5 \simeq \frac{3}{2} \times 5\)와 같이 세 군데 사용하는 한편, 일곱 개의 음만을 남겨서 아래와 같은 보다 간결한 음계를 제안하였다.

\(1:X:\frac{3^2}{2^3}:X:\frac{5}{2^2}:\frac{2^2}{3}:X:\frac{3}{2}:X:\frac{5}{2 \times 3}:X:\frac{3 \times 5}{2^3}:2\)

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7음계이며, \(X\)는 프톨레미에 의해 제외된 다섯 개의 음을 나타낸다. 위의 7음계에서 1, 3, 5번째 음들을 비교하면 \(1:\frac{5}{2^2}:\frac{3}{2}=4:5:6\)의 간단한 정수비를 얻을 수 있다. 또한 3, 5, 7번째 음들의 비율도 \(\frac{5}{2^2}:\frac{3}{2}:\frac{3 \times 5}{2^3}=10:12:15\)로 비교적 간단하다. 이 두 정수비는 각각 장3화음과 단3화음의 가장 이상적인 비율에 해당하며, 따라서 함께 연주하였을 때 매우 조화로운 소리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프톨레미의 음계는 르네상스 시기 음악이론가인 죠세포 차를리노Gioseffo Zarlino, 1517-1590로부터 “제대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음계”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동시대의 음악가들에게 널리 사용되었다.

프톨레미가 『조화Harmonices』라는 자신의 책에서 7음계를 제안하였을 때, 자신의 또 다른 저서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정리한 우주 모델의 일곱 간격(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천계)을 염두에 두었을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천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중세 유럽인들은 프톨레미의 우주론과 7음계를 결합하여 태양과 행성들이 음악적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케플러 역시 이러한 미신적 문화에서 자라고 배운 사람이었으며, 바로 이 ‘우주의 음악’이 그의 삶과 일을 지배하는 관념이 되었다.

 

 

케플러의 “세계의 조화”

이제 케플러가 『세계의 조화』에서 제시한 우주론을 들여다보자. 라틴어로 된 총 5권의 저서에서 행성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다룬 부분은 제5권에 불과하다.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은 제5권만을 포함하므로 다른 부분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케플러는 제1권과 제2권에서 그가 25년 전 자신의 우주론을 처음 만드는데 사용한 플라톤의 정다각형들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3권에서는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12음계를 유도하였다. 조화로운 화음을 만드는데 단순한 정수비가 필요함을 잘 알았던 케플러는 우선 한 옥타브의 음 간격인 \(1:2\)를 \(\frac{2}{1}=\frac{3}{1} \div \frac{3}{2}\)과 같이 분리하여 그 안에서 \(\frac{3}{2}\)이라는 단순한 정수비를 찾아냈다. 이때 얻어진 \(\frac{3}{1}\)은 한 옥타브를 벗어나는 비율이라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으나 \(\frac{3}{1}=\frac{4}{1} \div \frac{4}{3}\)의 관계를 통해 또 하나의 단순한 정수비인 \(\frac{4}{3}\)를 제공한다. 이어서 같은 방식으로 \(\frac{4}{1}=\frac{5}{1} \div \frac{5}{4}\) 및 \(\frac{5}{1}=\frac{6}{1} \div \frac{6}{5}\)의 관계를 통해 \(\frac{5}{4}\)과 \(\frac{6}{5}\)이 얻어진다.

이상의 과정에서 케플러는 자신의 음계에 프톨레미가 근사값으로 사용한 소수 \(5\)가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프톨레미는 \(5\)를 분자에만 사용하였으나 케플러의 음계에는 분모에도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앞에서 얻어진 \(\frac{3}{2}\)를 이용하면 \(\frac{3}{2}=\frac{5}{2} \div \frac{5}{3}\)와 같이 \(\frac{5}{3}\)를 얻을 수 있고, 같은 방식으로 \(\frac{5}{3}=\frac{8}{5} \div \frac{8}{3}\)과 같이 분모에 \(5\)가 포함된 \(\frac{8}{5}\)를 얻게 된다. 이상은 [그림3-2]의 도표에 나타나 있으며, 케플러는 이 정수비들을 음과 음 사이의 간격으로 이용해 다음과 같은 12음계를 만들었다.

\(1: \frac{3^5 \times 5}{2^7}:\frac{3^2}{2^3}: \frac{2 \times 3}{5}:\frac{5}{2^2}:\frac{2^2}{3}:\frac{3^2 \times 5}{2^5}:\frac{3}{2}:\frac{2^3}{5}:\frac{5}{3}:\frac{2^4}{3^2}:\frac{3 \times 5}{2^3}:2\)

기하학적인 고려만을 이용해 유도한 이 12음계는 \(1:\frac{5}{2^2}:\frac{3}{2}\)의 세 음만을 떼어놓고 보면 프톨레미의 7음계와 마찬가지로 조화로운 3화음 비율인 \(4:5:6\)을 제공한다. 그런데 2와 3만을 사용하였던 피타고라스의 12음계에서 인접한 두 음 사이의 간격들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값을 가졌던 것에 비해 5를 사용한 케플러의 12음계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값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인접한 두 음 사이 간격의 균질성이 나빠질수록 악기를 조율하고 음악을 연주하는데 불리했기 때문에 케플러가 제시한 12음계는 르네상스 시대에나 그 이후에도 실제 음악에 사용된 예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부터 음악가들은 수학자나 천문학자가 만든 음계를 버리고 보다 실용적인 음계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니, 케플러도 알게 모르게 과학과 음악의 결별에 기여한 셈이다.

이제 케플러는 행성들의 운동 상태에서 자신이 유도한 음계의 주요 간격, 즉 \(\frac{6}{5}\), \(\frac{5}{4}\), \(\frac{4}{3}\), \(\frac{3}{2}\), \(\frac{8}{5}\), \(\frac{5}{3}\) 등의 단순한 정수비를 찾아 나서고, 과정과 결과를 『세계의 조화』의 마지막 제5권에 장황하게 설명한다. 우선 케플러는 행성들의 공전 주기를 비교하여 이러한 정수비를 전혀 찾을 수 없음을 밝힌다. 그리고 각 행성의 근일점과 원일점에서의 거리를 비교하는 한편, 인접한 두 행성의 근일점과 원일점 거리를 각각 비교하여 단지 몇 개의 정수비밖에 찾을 수 없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케플러는 다양한 값들을 비교하였을 것이 분명하며, 이를 통해 행성 공전 주기의 제곱이 궤도 장축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제3법칙을 발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놀라운 발견을 다음과 같이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한 바 있다.

“… that I first believed I was dreaming and was presupposing … But it is absolutely certain and exact that the ratio which exists between the periodic times of any two planets is precisely the ratio of the 3/2th power of the mean distances … (영어 번역: C. G. Wallis, 1939).”

 

그리고 나서 지구와 토성의 경우를 간략히 비교한 후, 나중에 이심률을 다룰 때 이 정리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지나간다. 그러나 케플러가 타원 궤도의 이심률을 중요하게 다룬 이유도 이를 이용해 음계를 구성하는 단순한 정수비를 찾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3법칙은 전혀 상세히 기술되어 있지 않다.

결국 케플러는 행성들의 근일점과 원일점에서의 하루당 이동 각거리를 비교하여 원하던 정수비들을 찾아낸다. ([그림4] 참고) 아니,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우선 토성의 원일점과 근일점에서의 이동 각거리의 비율은 약 \(1.274\)로 계산되는데, 케플러는 이를 \(\frac{5}{4}\)와 같다고 간주하였다. 또한 목성의 원일점과 근일점에서의 이동 각거리 비율은 약 \(1.222\)이므로 이를 \(\frac{6}{5}\)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제 케플러는 두 행성의 궤도를 서로 비교하여 토성의 근일점과 목성의 원일점에서의 이동 각거리의 비율이 정확히 한 옥타브에 해당하는 \(\frac{2}{1}\)임을 찾았다.


이심률이 큰 화성의 경우에는 약 \(1.449\)의 비율이 얻어지는데, 이는 자신의 음계에 포함된 \(\frac{3^2 \times 5}{2^5}\)로 끼워 맞추었다. 그리고 화성의 근일점과 지구의 원일점에서의 이동 각거리 비율에서 \(\frac{3}{2}\)를 찾아내고, 지구의 근일점과 금성의 원일점 사이에서 \(\frac{8}{5}\), 지구의 원일점과 금성의 근일점 사이에서 \(\frac{5}{3}\), 금성의 근일점과 수성의 원일점 사이에서 \(\frac{5}{3}\)를 각각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반면 \(\frac{3}{2}\)에 이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정수비인 \(\frac{4}{3}\)를 찾을 수는 없었는데, 다행히도 그는 이 정수비를 달의 근일점과 원일점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갑자기 달을 포함해야 하느냐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음계를 구성하는 모든 정수비들이 태양계의 설계에 사용되었음을 확인한다.

이상을 바탕으로 케플러는 모든 행성들이 참가한 천상의 합창에 수성은 소프라노, 금성과 지구는 알토, 화성은 테너, 목성과 토성은 베이스를 담당한다고 해석하며, 각각의 행성이 연주하는 멜로디를 [그림5]와 같이 제시하였다. 가장 낮은 음을 연주하는 토성은 ‘솔-라-시’, 목성은 ‘솔-라-시플랫’, 화성은 ‘파-솔-라-시-도’, 지구는 ‘솔-라플랫’, 금성은 ‘미-’, 수성은 ‘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의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멜로디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독자가 있다면 각 행성이 연주하는 음이 앞서 근일점과 원일점을 비교해 얻어진 정수비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예를 들어 토성의 근일점과 목성의 원일점에서 찾은 비율이 \(\frac{2}{1}\)이므로 토성 멜로디의 최고음이 ‘시’이면 목성 멜로디의 최저음은 그보다 한 옥타브 높은 ‘시’이어야 한다. 그러나 케플러는 목성의 멜로디가 ‘솔’에서 시작한다고 결론 내리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설명을 붙였다. 이처럼 케플러는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은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무시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해결하며 무소처럼 나아갔다.

 

 

맺으며

이상과 같이 케플러의 저서 『세상의 조화』는 과학혁명 시기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를 담은 책이지만, 사실 주요 내용은 현실과 동떨어진 케플러의 우주에 대한 환상과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보낸 그의 삶을 풀어놓은 책이다. 따라서 이를 읽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려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더욱이 동료평가나 출판사의 편집이 없던 시절에 만연체로 혼잣말처럼 쓰인 글을 읽어 나가며 그의 의중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려 하는 것도 고역이다.

다만, 케플러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그의 개인적 고집과 망상이 어떤 과정을 통해 과학적으로 위대한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이 책을 읽어볼 만도 하다. 행성의 운동 법칙이라는 위대한 발견이 세상에 나오게 된 원동력이 명백한 데이터와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기하학적으로 이상적인 우주론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창조주의 조화로운 음악적 설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탱하기 위해 프톨레미보다도 훨씬 터무니없는 근사값을 정수비로 받아들인 케플러의 독선적 신앙심에 있었음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가 원궤도의 작은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우주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이 하는 과학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케플러뿐 아니라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등의 다른 위대한 과학자들에게서도 자신의 틀린 생각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고집을 발견한다. 끝까지 빛의 파동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뉴턴은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던 입자의 개념과 중력을 이용해 굴절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아인슈타인도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의 확률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학은 때로는 천재를 필요로 하지만 결국 그들의 업적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가하는 주체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는 과학계다.

정재호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