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어, 내 체중이 왜 이렇게 많이 나가지?’라고 화들짝 놀라 체중계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 본 경험이 있을 거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체중계가 잘못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과 ‘설마 최근에 치킨 좀 많이 먹었다고 그 새 살찐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오가며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렇게 두 번 체중계에 올라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두 번째 체중 측정 결과와 관계없이 체중계에 최소한 한 번은 더 올라가야 한다는 것 역시 본능적으로 안다. 두 번째 체중 측정 결과가 첫 번째와 같을 때는 ‘믿을 수 없다’며 세 번째로 체중계에 올라가게 되고, 두 번째 체중 측정 결과가 첫 번째보다 작게 나왔다면 ‘역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첫 번째 측정 결과가 이상했던 건지 두 번째 측정 결과가 이상했던 건지 확인해 보기 위해 세 번째로 체중계에 올라가게 된다. 이런 단순하고 일상적인 과정에는 ‘측정’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철학적(?) 판단이 들어 있다.

첫 번째는 측정 대상에는 측정을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는 고유한 속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고유한 속성은 측정 대상에게 내재되어 있는 참값true value이 존재하고, 이 참값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앞선 예에서는 사람의 체중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체중이란 장기간에 걸쳐서는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지만, 몇 초나 몇 분 사이에는 달라지지 않는 각 사람에 대한 속성이다. 물론 사람의 체중을 원자 단위 하나까지 측정하려고 한다면 그 값은 숨 한 번 쉬고, 땀 한 방울 흘리는 것만으로도 시시각각으로 변하겠지만, 일상적으로 측정하는 범위, 그러니까 0.1 kg중 단위로 측정했을 때에는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두 번째는 모든 개별 측정이 반드시 참값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앞선 체중 측정의 예로 돌아가 보면 본인의 체중이 60.0 kg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체중계에 61.3 kg중이라는 숫자가 찍히는 걸 보고 항상 ‘아 내 체중이 지난번에 쟀을 때보다 1.3 kg중이 늘었구나’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대신 ‘측정이 잘못된 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고 다시 체중계에 올라간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한 가지 남는다. “측정을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는 참값이 존재하는데, 측정을 항상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참값을 어떻게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을까?”라는 문제이다. 이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는 참값’이란 과연 존재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몇 초 간격으로 체중을 두 번 측정하는 동안 서로 다른 측정값이 나왔을 때, 우리는 왜 “측정은 항상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이며, 참값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믿는 대신에 “좀처럼 변하지 않는 참값이 존재하지만, 이를 측정할 때는 측정값이 조금 틀릴 수 있다”라고 믿는 걸까?

이는 참값을 포함하여 현실이란 무엇이고, 측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철학적이고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질문인 듯하다. 이는 물리학이 원자 또는 그보다 작은 단위의 개별 입자들을 탐구 대상으로 삼으면서 다양한 측정값들 사이의 확률 분포 개념을 도입하여야만 설명이 가능한 양자역학에 대한 많은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측정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연재의 말미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앞서 언급한 체중 측정과 같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비추어 잠시 다음의 내용들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 정량화가 가능한 물리량에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참값이 실재한다.
  • 인간은 측정을 통해서 이 참값에 접근할 수 있다.
  • 그렇지만 모든 개별 측정들이 반드시 참값을 올바르게 대표하지는 않는다.


현실에 대해 이와 같은 가정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본 연재를 통해 “어떻게 하면 참값을 최대한 정확하게 대표하는 측정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런 측정들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참값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는 “인간이 가장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연재를 시작하며 측정과 관련한 기본 개념 몇 가지를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측정하는가?

무언가를 측정한다는 것은 그다지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물론 ‘측정’이라는 용어는 평상시에 사용하기에는 이질감이 있지만, 사실 무언가를 ‘잰다’는 말을 조금 거창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실제로 키, 몸무게, 체온, 기온, 부피나 등을 수시로 재면서 살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자나 줄자, 계량컵, 체중계를 비롯한 저울, 체온계와 온도계 등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들은 꼭 앞서 언급한 키, 몸무게 등이 아니더라도 보다 일반적으로 길이, 부피, 무게, 온도 등을 측정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각각에 대한 측정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측정한다는 행위가 모두 같은 의미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우선 길이를 재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는 길이를 재기 위해서 흔히 자를 이용하는데, 이는 이미 알려진 길이의 측정 단위에 측정 대상체를  비교하는 행위이다. 어떤 사람의 키가 170 cm라고 할 때는 1 cm라는 기준을 170번 반복하여 이어 붙인 정도로 길다는 뜻이다. 가끔 무언가의 길이를 측정해야 하는데,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없다면 손바닥 한 뼘의 길이를 기준 삼아 ‘이 식탁의 길이는 일곱 뼘 반, 폭은 다섯 뼘’이라고 할 때도 있다. 이때 1 cm나 한 뼘 등이 길이의 단위에 해당하고, 길이의 측정은 이런 단위 길이와의 측정 대상의 길이를 직접적으로 대비시키고 이를 시각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직접 비교를 통한 측정이 가능한 유일한 물리량이 길이이다.


이와 유사한 측정 방법으로 계량컵을 이용한 부피 측정을 생각해 보자. 이때 부피의 측정은 계량컵에 표시된 눈금들과 계량컵에 부은 액체의 높이를 비교하여 이루어진다. 이 측정 방법을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부피 측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과정에서 우리가 직접 측정하는 값은 부피가 아니라 액체의 높이라고 하는 ‘길이’이다. 계량컵이란 “부피 = 밑면적 × 높이”라는 수학적 공식을 통해 길이를 부피로 환산하는 과정이 숨어 있는 측정 도구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피의 측정법은 우리가 직접 측정하는 길이로부터 한 단계 떨어져 있는 측정 방법이다. 다만 부피는 기하학적 연원이 있는 물리량이므로 비교적 쉽게 길이로 환산하여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체중의 측정은 어떨까? 전자 체중계가 일상화된 오늘날, 어찌 보면 길이의 측정보다 체중의 측정이 훨씬 쉽다. 체중계에 올라서서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숫자 하나만 읽으면 끝이니, 자나 계량컵의 눈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측정값을 판단하는 과정에 비해 얼마나 간편한가? 그렇지만 체중계가 디스플레이에 어떻게 그 숫자를 표시해 주는지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디지털 체중계는 자나 계량컵에 비해 훨씬 복잡한 측정 도구이고, 그 동작 원리가 “부피 = 밑면적 × 높이” 같은 초등학교 산수 수준의 간단한 공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체온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발발 이후로 가장 자주 측정하는 물리량 중 하나가 체온일 텐데, 이 역시 이마 또는 귀에 체온계를 대면 어떤 마법과 같은 원리로 체온계 디스플레이에 숫자가 표시된다고 알고 있을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36.5 근처에서 매우 높은 확률 분포를 가지면서 35.5와 40.0 사이의 숫자를 뽑아서 표시하는 기계가 있다면, 이걸 어떻게 체온계와 구분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부피를 포함한) 길이의 측정이 갖는 특징이 무얼까 생각해 보자. 측정이란 기본적으로 측정 대상에 대한 특성을 인간이 인지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인간의 감각 기관이 반드시 동원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물의 크기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사물의 따뜻한 정도는 만져보는 걸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감각을 통해 사물의 특성을 파악하는 모든 행위를 측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측정은 그 특성의 정도를 정량화해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가장 쓸모 있는 감각은 시각이다. ‘길이’를 어떤 물체의 한끝에서 다른 끝까지의 공간적 거리라고 정의한다면, 길이를 잰다는 것은 한 쪽 끝의 위치와 반대쪽 끝의 위치를 확인하여 그 두 위치의 차이에 숫자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위치, 즉 어떤 사물이 어디에 있는가는 머리카락 두께 정도인 0.1 mm 수준까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위치나 길이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외의 물리량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다. 볼링공과 농구공을 처음 본 사람도 어느 것이 더 큰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지만, 어느 것이 더 무거운지는 육안으로만 확인하여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되겠다.

 

 

간접 측정과 눈금 매기기

그렇다면 무게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단순히 무겁고 가벼운 정도를 비교하겠다면, 사람이 물건을 직접 들어보면 된다. 물건을 들기가 얼마나 힘든 가로부터 무거운 물체와 그렇지 않은 물체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볼링공과 농구공을 직접 들어보면 볼링공이 더 무겁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경험을 통해 볼링공이 농구공에 비해서 정확히 얼마나 더 무거운지를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사람의 대부분의 감각 기관들은 아주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감도를 갖고 있지 않다. 무게가 비슷한 두 개의 농구공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지를 구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되겠다. 정확한 상대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사람이 물건을 들어보고 무게를 측정할 때에는 철저하게 개인의 감각에 의존할 뿐, 길이의 측정에 사용하는 자와 같은, 개개인에 감각과 무관한 객관적인 측정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서서 측정을 위해 시각을 활용하는 것이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했으므로 무게를 시각화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자. 그러기 위해 ‘무게’가 무엇인지 그 정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게란 질량을 갖는 물질이 지구로부터 받는 중력의 크기, 즉 힘을 말한다. 따라서 힘을 시각화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게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단히 흥미롭게도 힘의 크기를 길이로 변환해 주는 도구가 있다. 바로 용수철이다. 우리가 중학교에서 배운 훅의 법칙\((F=kx\))은 용수철에 작용하는 힘과 용수철이 늘어난 길이의 관계식을 나타낸다. 따라서 용수철을 이용하면 무게를 길이로 환산할 수 있고, 이런 원리를 이용하여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가 바로 용수철저울이다. 1 kg중의 무게를 갖는 물체를 용수철에 달았을 때 용수철이 늘어나는 길이 \(x_0\)를 알고 있다면, 무게를 모르는 물체를 달아서 늘어난 용수철의 길이를 \(x_0\)로 나눔으로써 우리가 측정하고자 하는 무게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무게의 측정 역시 부피의 측정과 마찬가지로 \(F=kx\)라는 훅의 법칙을 통해서 길이의 측정으로부터 한 단계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부피의 측정과 무게의 측정은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이 있다. “부피=밑면적 × 높이”라는 식은 수학적으로 정의된 공식이다. 따라서 별도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서 훅의 법칙은 힘과 길이에 대한 보편적 관계를 정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물체를 용수철이라고 부르려면, 그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과 그 물체가 늘어난 길이 사이에 정비례 관계가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용수철의 정의에 가깝다. 즉, 어떤 물체가 단순히 용수철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수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체에 이런 특성이 있음을 귀납적으로 정립하여야 그 물체를 용수철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겉보기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힘과 길이를 매개하는 용수철 상수 \(k\)는 용수철마다 다 다르다. 따라서 용수철처럼 생긴 물체를 이용하여 물체의 중량을 측정하기를 원한다면, 그 물체가 용수철임을 우선적으로 증명하여야 한다.

이는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간단한 문제다. 용수철에 무게가 1 kg중인 물체를 시작으로 그 2배, 3배, 4배인 무게의 물체를 차례로 달아서 용수철의 길이가 2배, 3배, 4배 늘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이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우리가 물체의 무게를 측정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측정 도구(용수철)의 특성을 파악해야 하고, 그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물체의 무게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식의 순환논리는 길이를 제외한 과학의 모든 측정에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다. 이런 순환논리를 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단위의 정립이다.

단위의 정립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우선 용수철처럼 생긴, 그렇지만 아직은 용수철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은 측정 도구에 무게를 알 수 없는 물체를 매단다. 이때 이 물체가 늘어난 길이, l0를 측정하여 기록한다. 그다음에 이 측정 도구에 다른 물체 또는 여러 물체들을 동시에 주렁주렁 매달아서 측정 도구의 길이가 l0만큼 늘어나도록 맞춘다. 비록 이 도구가 용수철인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같은 길이가 늘어났다면 같은 크기의 힘을 받았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두 번째 물체의 무게 또는 물체들을 합친 무게는 첫 번째 물체의 무게와 같다. 이를 반복하여 같은 무게를 갖는 물체(들)를 여러 개 준비한 후에, 용수철에 이를 차례로 주렁주렁 매단다. 이 도구의 길이가 첫 번째 물체를 매달았을 때에 비해 2배, 3배, 4배씩 차례로 늘어난다면, 우리는 이 도구를 용수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자, 이제 용수철이 준비가 됐으니 우리는 이제 이걸 이용해서 임의의 물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모든 물체의 무게는 첫 번째 물체의 무게에 비해 몇 배 무겁다 또는 몇 분의 1로 가볍다는 비율로 나타나므로, 첫 번째 물체가 무게의 단위 역할을 한다. 즉, 단위를 정의함으로써 주어진 도구가 훅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용수철인지 여부를 식별할 수 있었고, 용수철을 이용하여 다른 물체의 무게를 측정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다. 다만 용수철저울은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과학 실험실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측정이 어려운 물리량(무게)을 측정이 쉬운 물리량(길이)으로 환산하는 방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도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측정 도구이다.

물론 무게와 길이의 전환식은 반드시 훅의 법칙에서 힘과 길이의 관계식처럼 정비례 관계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용수철과는 다르더라도 힘 \(F\)와 늘어난 길이 \(x\) 사이에 일대일 함수 \(F = f(x)\)의 관계식이 존재한다면, 앞서 설명한 절차를 따름으로써 그 역함수 \(x = f^{-1}(F)\)를 알아낼 수 있다. 두 변수 \(F\)와 \(x\)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으므로 이 함수를 이용하여 임의의 무게를 측정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가 최종적으로 측정하고자 하는 물리량과 사람이 직접 관측할 수 있는 물리량 사이의 함수를 알아내는 과정을 측정에 있어서 눈금매기기calibration라고 하는데, 측정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2단계 간접 측정 : 온도 측정

마지막으로 온도에 대해서 살펴보자. 온도는 일기예보에서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 중 하나일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게다가 코로나 시국을 맞아 체온 측정은 일상이 되었고, 집집마다 이마나 손목에 대거나 귀에 꽂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체온을 표시해 주는 체온계 한 개쯤은 비치하고 있을 거다. 이런 체온계는 놀라울 정도로 사용하기 간단한 측정 도구이다. 필자의 다섯 살배기 딸아이도 본인 키를 재는 방법보다 체온 재는 방법을 더 빨리 배웠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체온계가 사용하기 쉽다고 해서, 온도가 쉬운 개념이라거나 온도 측정의 원리가 간단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물론 직관적으로 온도는 어떤 물체나 물질이 따뜻하거나 차가운 정도라고 생각하고, 온도가 높을수록 따뜻하거나 뜨겁다고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온도가 10도라는 것과 20도라는 것이 어떤 차이인지 이해하는 것은 길이가 10 cm인 것과 20 cm인 것의 차이에 비해 훨씬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단적으로 길이가 10 cm인 물체 두 개를 한 방향으로 이어붙이면 길이가 20 cm가 되고, 무게가 10 kg중인 물체가 두 개 있으면 전체 무게가 20 kg중이지만, 온도가 10도인 물체 두 개를 모아 놓는다고 온도가 20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생각해 봐도 온도는 무언가 색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체온이 36.5도라는 것은 36.0도보다 아주 조금 더 따뜻하다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체온계는 36.0도와 36.5도를 어떻게 구분해 내는 걸까? 디지털 체온계가 모종의 원리로 온도를 전기 신호로 전환한다는 것쯤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모종의 원리가 정확히 뭘까? 체중이나 체온이나 둘 다 사람의 몸에 대한 특성을 나타내는 양임에도, 체중에 비해 이 과정이 훨씬 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게=힘의 일종이라는 정의에 비해서 온도의 정의가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였는데, 그것을 측정한다는 개념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온도를 정의하고 측정한 역사는 힘에 비해 길고 복잡한 것이 사실이고, 장하석 교수가 온도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책 한 권을 할애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온도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보다 심도 높은 논의를 원한다면 장하석 교수의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여기서는 온도의 정의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고, 이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여 논의를 풀어나가 보겠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디지털 온도계가 등장하기 전에 어떻게 온도를 측정하였는지 잠시 생각해 보자. 온도계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느다란 튜브의 끝에 구슬 모양의 구멍이 있고, 여기에 빨간색으로 염색한 알콜(또는 은색의 수은)을 채워 넣은 온도계이다. 알콜의 온도가 올라가면 부피 역시 증가하는데, 이렇게 팽창한 알콜은 가느다란 튜브를 따라 밀려 올라간다. 결국 온도의 변화를 부피 변화로, 그 부피 변화를 튜브를 따라 오르내리는 알콜 기둥의 길이로 환산하여 측정하는 기구이다. 여기서도 다시 한번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측정 방법은 길이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걸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약간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알콜 온도계에 따르면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증가하는 알콜의 부피는 같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온도가 섭씨 0도에서 1도로 오를 때나, 섭씨 50도에서 51도로 오를 때나 알콜의 부피 변화는 같다. 그런데 이런 특성은 모든 온도 범위에서 참일까? 그리고 다른 물질들도 모두 이런 특성을 공유하는 걸까, 아니면 이건 알콜만의 특성인 걸까? 이게 알콜만의 특성이라면, 알콜은 무엇이 특별하길래 온도에 관계없이 1도 변화에 대해 같은 정도의 부피 변화를 수반할까? 아니면 정해진 만큼의 알콜 부피 변화량을 유발하는 온도 차이를 1도 차이라고 정의한 걸까? 그렇다면 다른 물질들은 온도가 0도에서 1도 변할 때랑 50도에서 51도로 변할 때 부피 변화량이 얼마나 차이가 날까? 등등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여러 가지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온도계의 주재료로 알콜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사실 모든 물질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온도에 따른 부피 변화를 수반한다. 이 중에서도 온도에 따른 부피 변화가 가장 정직(?)한 물질은 기체이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샤를의 법칙에 따르면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기체의 부피는 온도에 비례한다. 즉, “\(V/T =\) 상수”이다. 따라서 온도 변화는 부피 변화와 정비례하고, 이는 온도 측정을 부피 측정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샤를의 법칙 “\(V/T =\) 상수”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공식이 아니라, 기체의 부피와 온도를 반복적으로 측정하여 그 관계를 정립한 기체의 성질인데, 이 성질을 이용하여 기체의 온도를 측정하겠다고 하면 다시 한번 용수철을 이용하여 무게를 측정할 때와 유사한 순환 논리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통계역학적으로 온도와 압력을 정의하고, 이를 이상기체에 적용해 보면 이 순환논리로부터 탈출구가 생긴다. 그 유도 과정은 여기서 생략하겠지만, 어떤 측정에도 의존하지 않고 통계역학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샤를의 법칙을 포함하고 있는 이상기체 방정식 \(PV = NkT\)을 유도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기체의 분자수 \(N\)은 기체의 무게와 비례하는 양이므로 앞서 설명했다시피 독립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양이다. 부피 \(V\) 역시 측정이 어렵지 않다. 압력 \(P\)는 그 정의가 단위 면적당 힘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역시나 측정이 가능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체의 온도 \(T\)를 측정 가능한 물리량들과 특정 관계, \(T = PV/Nk\)라는 관계를 따르는 물리량으로서 정의하면 된다. P, V, N은 측정 가능하다고 했으므로, 그 외에 유일한 게 확인되자 않은 상수 \(k\)를 정의함으로써, 온도의 단위와 그 단위계에서의 온도값을 얻을 수 있다. 2019년에 국제 도량형 기국에서 채택한 온도의 단위 켈빈의 정의는 정확히 이런 원리를 따르는데, 1켈빈의 크기는 볼츠만 상수라고 하는 상수 \(k\)를 정의함으로써 자동으로 결정된다.

이렇게 기체의 온도를 정의하고 나면 다른 물질을 기체와 열적 평형을 이루도록 만든 후 그 물질의 특성 중 온도 \(T\)에 따라 변화하는 특성 \(p\)를 골라서 측정한다. 그러면 온도 \(T\)와 물성 \(p\) 사이의 함수 \(p = f(T)\)가 얻어진다. 이 함수가 단조증가 내지는 단조감소하는 일대일 함수라면, 이 함수의 역함수 \(T = f^{-1}(p)\)를 이용하여 측정값 \(p\)에서 온도 \(T\)를 계산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즉, \(p=f(T)\)라는 함수를 얻어내는 과정이 곧 온도계의 눈금을 매기는 과정에 해당한다. 알콜온도계의 기본적인 원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알콜 온도계의 알콜 기둥의 길이(높이)가 측정값 \(p\)에 해당하는데, 온도는 부피로, 부피는 최종적으로 길이로 환산되므로, 온도 측정은 길이 측정으로부터 2단계 떨어져 있는 셈이다. 알콜이 아니더라도 온도에 민감하게 단조 변화하는 물성이 있다면 뭐든 온도계로 활용 가능하다. 다만 그 물성이 정확히 온도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따라서 온도와 실질적인 측정 사이의 거리는 2단계 이상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초정밀 측정 :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부피, 무게, 온도의 예시들을 통해 길이의 측정이 어떻게 다른 물리량의 측정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측정하고자 하는 물리량을 반드시 길이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용수철 저울이나 알콜온도계 같은 측정 기구들은 우리 일상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대신 그 자리를 디지털 측정 기구들이 채우고 있다. 전압계로 대표되는 전기적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개발됨에 따라 육안으로 길이를 확인하는 방법보다 훨씬 정확하고 간단한 측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체중계는 스트레인 게이지라고 하는 힘을 전압으로 변환하는 소자를 사용하는데, 제대로 칼리브레이션을 했다는 전제 하에서 이는 용수철저울로 대변되는 기계적 저울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정확하다. 귀에 꽂아서 사용하는 가정용 디지털 체온계 역시 궁극적으로는 전압을 측정한다. 그러면 전압과 온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동작 원리는 검출기에 따라 다르지만 저항 측정(볼로미터), 열전현상(열전쌍), 파이로전기 등의 원리를 이용하여 적외선 복사 전력이 전압 신호로 전환된다. 그리고 적외선 복사 전력은 흑체 복사 이론을 통해 온도와 연결되어 있다 보니 온도를 궁극적으로 전압 신호로 변환할 수 있다. 이렇듯 전압으로 전환하여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은 무게나 온도로 국한되지 아니다. 현대 과학에 있어서 모든 측정은 전압 신호로 전환 가능한가 여부로 귀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여러 단계를 거쳐서라도 궁극적으로 측정하고자 하는 물리량 \(p\)와 전압 \(V\)를 연결하는 함수 \(p=f(V)\)가 존재한다면 그 물리량 \(p\)는 측정 가능한 물리량이다.

글의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어떤 값을 측정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값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측정에 대해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p=f(V)\)라는 함수를 통해서 관심 있는 물리량 \(p\)의 값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전압의 측정값 \(V\)이고, 두 번째는 전압의 측정값 \(V\)와 관심 있는 물리량 \(p\)를 연결하는 함수 \(f(V)\)이다. 부피와 길이의 관계식처럼 수학적으로 정의된 측정함수는 측정의 정확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용수철에 훅의 법칙을 적용할 때는, 측정함수 자체가 측정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소위 과학 법칙에 기반한 측정함수는 대개 이러하므로, 측정의 정확도는 ‘전압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와 ‘측정함수 \(f(V)\)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이 두 가지에 의존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수행하는 측정들은 대개 유효숫자 두세 자리 정도면 충분하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측정 대상이 내재하는 참값 자체가 엄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체중의 예로 돌아오면, 사람의 체중을 원자 한 개 단위까지 측정하겠다면, 이 체중의 참값은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된다. 이는 원자 한 개의 질량을 무한한 정확도로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사람 몸을 이루는 원자의 개수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이런 극도로 높은 정밀도로 체중을 측정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하더라도 그건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목표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정말 극한의 정밀도로 측정하겠다면, 고정불변의 참값의 존재를 믿어야만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이런 고정불변의 참값이 존재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우주에 그런 참값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더 이상 소분이 불가능한 우주의 기본 입자의 근본적인 특성들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전자 한 개의 질량, 전자 한 개의 전하량은 모든 전자에 대해 동일하고, 측정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참값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렇게 이상한 생각은 아닐 거다. 그리고 “이렇게 고정불변의 참값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 참값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 역시 자연스럽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재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이런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정밀한 측정을 위해서는 엄밀한 단위의 정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모든 물리량의 측정값은 정의된 기본 단위에 대한 상대적 크기로 표현되는데, 단위가 고정이 되어 있지 않다면 측정값 역시 번번이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까지 질량의 단위인 1 kg은 물 1 L의 질량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온도나 압력에 따라 물 1 L에 포함된 물분자의 개수가 다르므로 단위 1 kg의 정의 자체가 수시로 변하게 된다. 단위의 정의가 변하면 측정값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에, 질량 1 kg의 정의는 보다 엄밀한 방향으로 수정을 거쳐 왔다. 그런데 이 우주에 고정불변의 참값들이 존재한다면, 그 값들을 기준으로 삼아서 단위를 정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의 질량이 고정불변량이라면 전자 1개 또는 전자 1몰(6.02214076×1023개)처럼 정해진 개수의 전자 질량을 단위 질량 1 kg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인 이유와 실용적인 이유로 인해 질량 1 kg을 이렇게 정의하지 않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다른 고정불변량을 기준으로 1 kg을 정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국제 도량형 기구는 2019년 고정불변의 물리량들을 몇 가지 정의하고, 그 정의를 바탕으로 단위계를 새롭게 정의하여 채택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조금 더 참값에 다가가기 위한 초정밀 측정의 역사는 단위 정의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 자연과학에 필요한 국제 표준 단위는 몰(물질량), 초(시간), 미터(길이), 암페어(전류), 킬로그램(질량), 켈빈(온도), 칸델라(광도)의 7가지가 있는데, 본 연재를 통해서는 앞으로 이 7가지 중 우리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4가지 초, 미터, 킬로그램, 켈빈의 단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이 네 가지 단위들이 앞서서 측정의 예시를 들었던 길이, 부피, 무게, 온도에 시간을 추가한 물리량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단위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 네 가지 단위를 정의하는 데에 필요한 불변의 물리량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이런 물리량들은 참값에 얼마나 근접하게 측정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 수준의 초정밀 측정을 향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성취에 많은 독자들이 감탄하고 감동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최형순
HORIZON 편집위원, KAIST 물리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