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업적 개관

허준이 교수의 연구분야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합 대수기하학combinatorial algebraic geometry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조합론combinatorics이란 중등수학에서 나오는 경우의 수를 통해 익숙한 분야인데, 예를 들면 “10개의 물건을 일렬로 나열하는 경우의 수를 찾아라” 또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개의 다리를 모두 건너는데 어떤 다리도 두 번 건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처럼,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는 것들의 수를 세는 문제에 대한 탐구를 말한다. 한편 대수기하학algebraic geometry은 1차 다항식으로 직선이나 평면을 표현하고, 2차 다항식으로 타원이나 쌍곡선을 분석하는 것처럼 대수학을 통해 기하를, 또는 역으로 기하를 통해 대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허준이 교수는 대수기하학의 심오한 성과에 기반하여 조합론의 오래된 난제들을 다수 해결하여, 조합 대수기하학의 아이콘이 되었다.


 


수학자들은 난제를 추측의 형태로 제시하곤 하는데 허준이 교수가 현재까지 해결한 추측을 나열한 아래 표를 보면 허준이 교수가 얼마나 중요한 수학자인지 가늠할 수 있다.

허준이 교수가 해결한 문제

문제가 제시된 연도

리드Read 추측

1968

호가Hoggar 추측

1974

메이슨-웰시Mason-Welsh 추측

1971

로타Rota 추측

1971

강한 메이슨strong Mason 추측

1972

다우링-윌슨Dowling-Wilson 추측

1974

브리로스키Brylawski 추측

1982

도슨-콜번Dawson-Colbourn 추측

1984

오쿤코프Okounkov 추측

2003

딤카-파파디마Dimca-Papadima 추측

2003

엘리아스-프라우드풋-웨이크필드Elias-Proudfoot-Wakefield추측

2016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평생 이런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기도 힘든데 40세가 되기 전에 이렇게 많은 난제들을 해결한 걸 보면 누구든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만큼 성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해결한 방법은 먼저 조합론 문제를 대수기하학의 핵심분야인 교차 이론intersection theory에 관한 문제로 번역한 후, 호지-리만 관계Hodge-Riemann relation를 통해 원하는 성질을 얻어내는 것이다. 대수기하학에 대한 강력한 직관에 바탕하여 조합론의 난제들을 공략하는 것이 허준이 교수의 특기인데 두 분야 모두에 정통한 수학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연구라고 할 수 있다.

 

 

2. 그래프, 벡터, 매트로이드의 로그-오목성

허준이 교수가 해결한 주요한 문제들을 살펴보자.

2.1. 4색 문제와 그래프

조합론의 고전적인 문제로 4색 문제가 있다. 이는 모든 평면지도를 4가지 색만 써서 나라를 구분하여 색칠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1852년 구드리Guthrie가 지도를 관찰하다 추측하였고 이를 은사이자 당대 저명한 수학자 드모르간De Morgan에게 물으면서 수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100년 넘게 많은 수학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이어졌고 1976년 아펠Appel과 하켄Haken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증명을 완성하였다.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처럼 이 지도문제도 그래프로 바꿔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 즉 각 나라를 점vertex으로 표현하고 두 나라가 인접하면 변edge으로 연결하여 지도마다 그래프를 하나 얻는다.1

 

 


4색 문제에 자극받아 1932년 버코프Birkhoff와 휘트니Whitney는 채색다항식chromatic polynomial이라는 함수 \(χ_G (q)\) 를 정의하는데, 주어진 그래프 \(G\)에 대해


 \(χ_G (q)\)={\(G\) 의 꼭지점들을 \(q\)개 이하의 색으로 칠하는데 인접한 두 꼭지점은 다른 색으로 칠하는 방법 수}


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위의 사각형 그래프가 \(G\)인 경우, 이를 두 개의 색만 써서 채색하는 방법 수는 한 꼭지점의 색을 정하면 나머지 꼭지점들의 색이 유일하게 결정되므로 \(χ_G (2)=2\)이다. 3개의 색을 쓸 수 있다면 어떨까? 꼭지점 하나의 색을 정하고 나면 인접한 두 꼭지점의 색이 같은 경우 \(3×2×2\) 개의 방법이, 다른 경우 \(3×2\) 개의 방법이 있으므로 \(χ_G (3)=18\)이다. 이와 같이 계속해보면

 

\(χ_G (q)=q^4-4q^3+6q^2-3q\)


임을 확인할 수 있다.2 \(χ_G (3)\)을 구할 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구했는데 이는 제거-압착deletion-contraction 관계3의 간단한 예가 된다. 이를 체계적으로 사용하면 그래프들의 채색다항식을 계산할 수 있고, 모든 그래프 \(G\)에 대해 함수 \(χ_G (q)\)가 그 이름대로 다항식 함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채색다항식을 통해 그래프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4색 정리는 모든 평면 그래프 \(G\) 에 대해

\(χ_G (4)>0\)


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채색다항식을 구체적인 그래프에 대해 많이 계산해보면 흥미로운 패턴을 관찰하게 되는데

\(χ_G (q)=a_0 (G) q^n-a_1 (G) q^{n-1}+a_2 (G) q^{n-2}-…+(-1)^{n-1} a_{n-1} (G)q\)


꼴로 썼을 때 계수들이

\(a_0 (G)≤a_1 (G)≤⋯≤a_{k-1} (G)≤a_k (G)≥a_{k+1} (G)≥⋯≥a_{n-1} (G)\)


와 같이 증가하다 감소하는 단봉單峯, unimodal 패턴을 보인다. 이런 패턴이 모든 그래프에 대해 참이라는 것이 리드Read의 추측이다. 이 추측은 1974년 호가Hoggar의 추측으로 강화되었는데 계수들의 로그 값이 아래로 오목concave이라는 주장이다. 즉, 모든 \(i=1,2,…,n-2\) 에 대해

\(\log a_i(G) \ge \frac12 (\log a_{i-1}(G) +\log a_{i+1}(G))\)


가 성립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부등식

\(a_i (G)^2≥a_{i-1} (G)   a_{i+1} (G)\)


가 모든 \(i\)에 대해 성립하는가 묻는 것인데 이를 로그-오목성log-concavity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양수의 수열에 대해 로그-오목이면 단봉이다.

 

 

 

2.2. 벡터들의 집합

놀랍게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른 조합론 문제에서도 로그-오목성이 나타난다. 유한 차원 벡터 공간에 포함된 영벡터가 아닌 유한 개의 벡터들의 집합 \(E\)가 주어지면

\(f_i (E)\)=(원소가 \(i\)개인 \(E\)의 부분집합들 중 일차독립인 것의 개수)

로 정의되는 수열 \(f_0 (E),f_1 (E),⋯,f_r (E)\) 를 생각할 수 있고4, \(E\)의 특성다항식을

\(χ_E(q)=∑ \limits_{0≤i≤r}(-1)^i f_i (E) q^{r-i}\)


으로 정의한다. 메이슨-웰시의 추측은 수열 \(\big\{f_i (E)\big\} \)가 로그-오목인지, 즉 모든 \(i\)에 대해


\(f_i (E)^2≥f_{i-1} (E) f_{i+1}(E)\)


가 성립하는지 묻는 것이다. 강한 메이슨 추측은 부등식


\(\frac{f_i^2}{{n \choose i}^2}\ge \frac{f_{i-1}}{{n \choose i-1}} \frac{f_{i+1}}{{n \choose i+1}}\)

 

이 성립하는지 묻는다. (\(n\)은 \(E\)의 원소의 수.)

 

2.3. 매트로이드

1935년 휘트니Whitney는 그래프와 벡터들의 집합의 공통의 특성을 추상화하여 매트로이드matroid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유한집합 \(E\)상의 매트로이드 \(M\)은 독립부분집합independent set이라고 불리는 부분집합들의 모임이 주어져서 다음의 세 조건을 만족한다는 말이다.

(ㄱ) 공집합은 독립.

(ㄴ) 독립부분집합의 임의의 부분집합은 독립.

(ㄷ) 만약 \(I_1\)과 \(I_2\)가 독립부분집합이고 \(I_1\)의 원소의 수가 \(I_2\)의 원소의 수보다 많으면 \(I_1-I_2\)의 원소가 존재하여 이를 \(I_2\)에 추가하여도 여전히 독립.

예를 들어, 그래프 \(G\)가 주어지면 변edge들의 집합 \(E\) 에 매트로이드 구조 \(M_G\)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데 어떤 변들의 모임 \(I⊂E\) 가 독립이라 함은 출발한 자리로 돌아오는 경로cycle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벡터 공간 상의 유한 집합 \(E\)가 주어지면 일차독립인 부분집합들을 독립부분집합으로 정의하면 매트로이드 \(M_E\)를 얻는다. 

유한집합 \(E\)상의 매트로이드 \(M\)이 주어지면 제거-압착 관계식

\(χ_M (q)=χ_{M-e} (q)-χ_{M/e} (q)\)


와 초기조건5으로부터 귀납적으로 특성다항식

 

\(χ_M(q)=∑ \limits_{0≤i≤r}(-1)^i f_i (M) q^{r-i}\)

 

을 정의할 수 있는데, 여기서 \(M/e\) 는 \(M\)에서 \(e\)를 포함하는 독립부분집합만 생각하고 이들에서 \(e\)를 지워 얻는 매트로이드이고, \(M-e\)는 \(M\)에서 \(e\)를 포함하지 않는 독립부분집합만 생각하여 얻는 매트로이드를 말한다. ( \(r\) 은 \(χ_M (q)\)의 차수이다.) 벡터들의 집합 \(E\)의 경우 \(χ_{M_E} (q)=χ_E (q)\) 가 성립하고, 그래프 \(G\)의 채색다항식에 대해 \(χ_{M_G} (q)=q^{-c} χ_G (q)\)가 성립한다. 여기서 \(c\) 는 \(G\)의 연결성분의 수를 말한다.

로타Rota의 추측은 리드-호가의 추측과 메이슨-웰시의 추측을 일반화하여 임의의 매트로이드 \(M\) 에 대해 특성다항식의 계수들 \( {f_i (M)} \)이 로그-오목임을, 즉 \(f_i (M)^2≥f_{i-1} (M) f_{i+1} (M)\) 이 성립하는지 묻는다.

 

2.4. h-벡터의 로그-오목성

매트로이드 \(M\)의 특성다항식 \(χ_M (q)\)에 \(q\) 대신 \(q-1\) 을 대입하여 얻는 다항식의 계수들을 \(\big\{h_i (M)\big\}\)라고 하자. 즉

\(χ_M (q-1)=∑ \limits_{0≤i≤r}f_i (M)  (q-1)^i =∑ \limits_{0≤i≤r}h_i (M) q^i\) 

이 성립한다.

도슨-콜번 추측은 위의 2.3절에서 살펴본 벡터들의 집합 \(E\) 에 의해 얻어진 특성다항식 \(χ_{ME}(q)\)에 대해 수열 \(\big\{h_i (M_E)\big\}\)가 로그-오목인지 묻고, 브리로스키 추측은 2.2절에서 살펴본 그래프 \(G\) 에 의해 얻어진 특성다항식 \(χ_{MG} (q)\) 에 대해 수열 \(\big\{h_i (M_G)\big\}\) 가 로그-오목인지 묻는다.

 

 

3. 허준이 교수의 업적

3.1. 철학과 도식

허준이 교수는 매트로이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트로이드 이론은 선형대수학과 그래프 이론, 매칭matching 이론, 확장체field extension 이론, 라우팅routing 이론 등 많은 곳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자연스러운 독립independence의 개념들의 조합적 정수精髓를 포착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매트로이드 \(M\)의 특성을 제시하는 수열 \(\big\{f_i (M)\big\}\)은 대체로 제거-압착 관계식을 만족하고 특성다항식 \(χ_M (q)\) 의 계수로 표현된다. 이러한 수열의 중요성에 대해 허준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그-오목성은 (확률론과 통계 등으로의) 응용 때문에만이 아니라 포앙카레 쌍대성PD, Poincare duality, 어려운 렙셰츠HL, hard Lefschetz와 호지-리만 관계HR, Hodge-Riemann relation를 만족하는 구조의 존재를 암시하므로 중요하다.”

이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에서 얻는 수열들이 로그-오목이라는 추측들이 많은데 왜인가?”

오쿤코프Okounkov는 엔트로피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하려 시도했지만 허준이 교수는 훨씬 설득력 있는 기하학적인 답을 제시한다.

“나는 자연에서 얻는 모든 로그-오목 수열의 뒤에는 반드시 로그-오목성을 설명하는 호지 구조Hodge structure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호지 구조는 대수기하학에서 대수다양체들이 만족하는 가장 근본적인 성질 중의 하나이다. 이 문장이 사실 허준이 교수의 연구성과를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허준이 교수의 업적은 대략적으로 다음[그림4]과 같은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도식을 간단히 설명해 보자.

(1) 구현가능한realizable 매트로이드 \(M\)으로부터 \(r\)차원 대수적 다양체 \(Y_R\) 을 만들고

(2) 특성다항식의 계수가 \(Y_R\)의 차우 환 \(A^* (M)\)의 교차수intersection number와 동일함을 보이면

(3) 교차수의 호지-리만 관계가 바로 로그-오목성을 준다.

(4) 나중에는 \(Y_R\)을 거치지 않고 바로 차우 환 \(A^* (M)\) 에 대해 호지-리만 관계를 증명하여 모든 매트로이드에 대해 로그-오목성을 확립하였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러한 결과들 중 일부는 공저로 쓰인 논문들이긴 하지만, 모든 핵심 아이디어들이 이미 허준이 교수의 2012년 미국수학회지 논문에 나와 있고 이후 논문들은 허준이 교수가 다양한 저자들과 이들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므로, 이 방향의 모든 결과의 가장 큰 기여자는 허준이 교수임이 명백하다.

 

3.2. 리드-로가, 메이슨-웰시, 로타의 추측 증명

이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안타깝게도 정확히 이해하려면 대수기하학을 최소한 1년 이상 제대로 공부한 후에야 가능하므로, 대수기하학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는 이런 것이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던지 다음 절로 그냥 넘어가도 좋겠다.

먼저 순환다양체permutohedral variety를 생각하는데 이는 사영공간 \(\mathbb{P}^n\)상의 일반적인 \(n+1\)개의 점들을 뻥튀기blowup하고, 이들 중 두 점을 잇는 직선들을 따라 뻥튀기하고, 이들 중 세 점이 생성하는 평면을 따라 뻥튀기하고, 이들 중 네 점이 생성하는 3-평면을 따라 뻥튀기하는 식으로 계속하면 최종적으로 얻는 다양체가 순환다양체 \(X_{A_n}\) 이다. 순환다양체는 토릭다양체이면서, 헤센베르크Hessenberg 다양체의 가장 쉬운 경우로 헤센베르크 함수 \(h(i)=min⁡\big\{i+1,n\big\}\)에 의해 주어지는 깃발flag 다양체의 부분다양체이다. 깃발에서 1차원 부분 공간만 남기고 나머지를 잊으면 사영공간 \(\mathbb{P}^n\)으로 가는 대수적 사상을 얻고, 차원이 하나 작은 부분 공간만 남기고 나머지를 잊으면 사영공간 \(\mathbb{P}^n\)으로 가는 또다른 대수적 사상을 얻는다. 이 두 사상으로부터 사상


\(X_{A_n}→\mathbb{P}^n×\mathbb{P}^n\)


을 얻고 각각의 선다발 \(O_{P^n×P^n} (1,0)\)과 \(O_{P^n×P^n} (0,1)\) 의 첫 천류first Chern class를 \(X_{A_n}\) 으로 끌어올려pullback 코호몰로지류 α,β 를 얻는다.

유한집합 \(E\)상의 매트로이드 \(M\)이 주어지면 팬fan을 얻는데 먼저 버그만Bergman 팬 \(Δ_M\)은 플랫flat들의 깃발들이 정의하는 뿔cone들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플랫은 계수rank에 대해 극대maximal인 \(E\)의 부분집합을 말하는데 어떤 부분집합 \(S\)의 계수란 \(S\)에 포함되는 독립부분집합의 원소의 수의 최대값이다.6 토릭기하학에 의해 \(Δ_M\)은 – \(Δ_M\)상의 플랫들의 극대 깃발에 대응되는 뿔에만 1을 주어 –   순환다양체  \(X_{A_n}\)의 코호몰로지류cohomology class를 정의하고 근본류와 캡곱cap product하여 \(X_{A_n}\)의 \(r=rank_M (E)-1\)차원 호몰로지류


\(Δ_M∩[X_{A_n}]\)

 

을 얻는다. 이제 이것과 \(α^{r-j} β^j\)의 캡곱을 취하면 유한 개의 점이 되는데 그 수를 세면 정수


\(deg⁡(α^{r-i} β^i Δ_M∩[X_{A_n}]) ∈ \mathbb{Z}\)

를 얻는다. 허준이 교수는 토릭기하학과 버그만 팬의 정의를 잘 사용하여 \(Δ_M∩[X_{A_n}]\)에 α 또는 β를 캡곱할 때마다 \(Δ_M\)으로부터 절사된truncated 버그만 팬의 호몰로지류가 얻어짐을 보이고, 최종적으로


\(deg⁡(α^{r-i} β^i Δ_M∩[X_{A_n}])=b_i, ∑ \limits_{0≤i≤r}b_i q^i=\frac{χ_M(q)}{q-1}\)

 

임을 보인다. 간단한 연습문제로서 \(\frac{χ_M(q)}{q-1}\)의 계수들이 로그-오목이면 \(χ_M (q)\)의 계수들도 로그-오목임을 확인하자.7 따라서 특성다항식의 계수들이 로그-오목임은 교차수들 \(\big\{{deg⁡(α^{r-i} β^i Δ_M∩[X_{A_n} ])}\big\}\) 이 로그-오목임과 같다.

이제 주어진 매트로이드 \(M\)이 2.2절에서 나온 벡터들의 집합 \(E\)로부터 얻어진 \(M_E\)라고 하자. 이러한 매트로이드를 구현가능realizable이라고 한다. \(E\)의 원소의 수를 \(n+1\),\(E\)가 생성하는 벡터공간을 \(V\) , 스칼라체를 \(\mathbb{K}\)라고 하면, 표준기저벡터들을 \(E\)의 원소들로 보내는 전사선형사상 \(\mathbb{K}^{n+1}→V≅\mathbb{K}^{r+1}\)을 얻는다. 쌍대공간을 취하여 사영화하면 \(\mathbb{P}V^*⊂\mathbb{P}^n\)을 얻고 파이버곱\(Y=\mathbb{P}V^* ×_{P^n} X_{A_n}\)은 의 원소들이 정의하는 \(\mathbb{P}V^*\)상의 초평면들의 여집합의 놀라운 콤팩트화wonderful compactification임을 확인할 수 있다. 허준이 교수는 이 사영다양체 \(Y\)가 위에서 나온 호몰로지류 \(Δ_M∩[X_{A_n}]\)을 표현함을 보였다. 따라서 우리가 찾던 교차수 \(deg⁡(α^{r-i} β^i Δ_M∩[X_{A_n}])\)은 \(Y\)상의 정직한 교차수

 

\(deg⁡(α^{r-i} β^i ∩[Y])\)


임을 알 수 있다. 이 교차수들의 로그-오목성은 고전적인 호지 지표 정리의 자연스러운 일반화로서 잘 알려진 대수기하학의 정리이다. 그래프의 매트로이드는 항상 구현가능이므로, 2.1절과 2.2절에서 살펴본 채색다항식이나 벡터들의 특성다항식의 계수들은 로그-오목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리드-호가 추측과 메이슨-웰시의 추측이 증명되었다.8

로타의 추측은 모든 매트로이드에 대해 특성다항식의 계수들이 로그-오목임을 주장하는데 구현가능이 아니면 사영다양체 \(Y\)를 얻을 수 없어 호지 지표 정리(호지-리만 관계)를 쓸 수 없다. 2018년 수학연보Annals of Mathematics에 출판된 논문에서 허준이 교수팀은 \(Y\)를 거치지 않고 매트로이드 \(M\)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환 \(A^* (M)\) 을 건설하여 – 구현가능인 경우 \(Y\)의 차우 환 \(A^* (Y)\) 와 같다 – 이 환에서 포앙카레 쌍대성PD, Poincare duality, 어려운 렙쉐츠HL, hard Lefschetz와 호지-리만 관계HR, Hodge-Riemann relation를 확립하였다. 이로부터 로타의 추측이 증명되었다.

 

3.3. 2018년 이후 업적

이후 2020년의 논문에서는 \(e∈E\)에 대해 \(A^* (M)\)과 \(A^* (M-e)\)를 비교하여, 2018년 수학연보에 실린 증명을 더 간단히 하였다. 또 다른 2020년의 논문에서는 차우 환 \(A^* (M)\)에 포함되는 교차 코호몰로지intersection cohomology를 정의하고 이들도 PD, HL, HR을 만족함을 보여 다우링-윌슨의 추측을 증명하였다.  2022년 유럽수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는 그래프의 생성 나무에 속할 사건들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문제를 매트로이드의 차우 환을 통해 해결했다.

2020년 수학연보Annals of Mathematics에 출판된 논문에서는 호지 지표 정리처럼 부호를 (1,n-1) 으로 갖는 2차형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얻는 로렌츠 다항식들을 결정하는 정리를 증명하여 강한 메이슨 추측을 증명하고 이산볼록해석학discrete convex analysis의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2020년과 2021년 완성한 논문에서는 버그만 팬 대신 코노말conormal 팬을 사용하여 브리로스키 추측과 도슨의 추측을 증명하였다.

 

3.4. 기타 업적

2009년 서울대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초곡면 특이점을 평면으로 잘라서 얻는 특이점의 밀너Milnor 파이버fiber를 연구하였는데, 이를 이어나가 2014년 논문에서 부분공간으로 잘라 얻는 특이점의 밀너 수들9이 만족하는 부등식을 찾아, 이를 통해 딤카-파파디마Dimca-Papadima의 추측을 증명하였다.  

2013년과 2014년에는 대수적 통계학에 관한 논문을 출판했는데 최대가능성추정maximum likelihood estimate 문제를 대수기하학적으로 접근했다. 일반적인 매개변수를 선택할 때 최대가능성 함수의 극점critical point들의 수가 적절한 초평면배치hyperplane arrangement의 여집합의 오일러 수와 일치함을 보였다.

 

 

4. 업적의 중요성과 함의

허준이 교수의 업적의 중요성은 먼저 조합론 측면에서는 너무도 자명하다. 그래프나 매트로이드가 왜 중요하냐고 묻는 것은 행렬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같은 우문인데 그 응용분야가 정보통신, 반도체 설계, 교통, 물류, 기계학습, 통계물리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 따라서 그래프와 매트로이드에 관한 연구는 큰 파급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1절의 표를 보면 허준이 교수가 매트로이드의 특성다항식에 관한 가장 중요한 추측들을 다수 해결한 것을 알 수 있다. 조합론적으로 정의된 교차 이론에서 PD, HL, HR을 증명하여 매트로이드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역으로 대수기하학의 관점에서도 충격적인데, 사영다양체를 거치지 않고 매트로이드에서 바로 사영다양체의 교차 이론에서 나오는 고유의 성질들이 확립된 것은 현재의 대수기하학의 토대가 더욱 확대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비유하자면 화성(조합론, 매트로이드)에서 얼음(PD, HL, HR)이 발견된 것인데 이는 화성에도 생명체(기하학 구조)가 존재가능임을 암시한다. 대수기하학의 역사를 보면 수차례 토대가 혁명적으로 확장되었는데, 17세기 사영공간의 도입, 19세기 복소수와 복소함수론의 도입, 20세기 스킴의 도입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스킴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20세기 초 정수론까지 품는 대수기하학의 틀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고 많은 시도가 무르익어 1960년대 그로덴딕에 의해 대수기하학의 기반이 정수론의 대부분을 품을 정도로 크게 확대된 바 있다.10 매트로이드에서 발견된 교차 이론과 PD, HL, HR은 현재의 대수기하학의 틀이 다시 한번 크게 확대되어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로그-오목성이 자연의 여기저기서 얻어지는 것을 보면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기하학은 사실 거대한 빙하의 수면 위쪽 부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한 호지 지표 정리와 시공간 이론에서 모두 로렌츠 계량이 나타남은 우연인가?

 

 

5. 인간 허준이

2002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하였으나 본인의 재능을 깨닫고 3학년때부터 수학에만 집중하였다. 2002년 스탠퍼드대에서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필자는 처음 맡은 고급수학 강좌에서 유독 차분하고 강한 집중력이 인상적인 한 학생을 눈여겨 보았는데 그 인연이 이어져 학부 3학년부터 석사학위까지 5년간 지도교수를 맡게 되었다. 2007년 수리과학부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대수기하학 연구를 시작했다. 초곡면을 평면으로 잘라서 얻는 특이점의 밀너 파이버를 연구하였고 2009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허준이 교수가 학부를 마치고 석사과정 입학할 즈음 서울대에서 노벨상급 석학초청사업을 시작했고 당시 이우영 학부장님과 노력하여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헤이스케 히로나카 교수님을 서울대 수리과학부로 모시게 되었다. 당연히 필자의 학생들에게 히로나카 교수님의 강의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는데 초기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몰렸지만 학기가 끝날 때면 손꼽을 정도의 학생만 남곤 했다. 하루는 히로나카 교수님과 환담을 나누면서 눈에 띄는 학생이 있더냐고 여쭈었더니 한 명 있다고, 정말 뛰어나다고 칭찬하셨다. 보는 눈이 다 비슷한 지라, 이 학생이 또 허준이 교수였다.


 

2009년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이미 조합론적 성향이 강하게 보이던 허준이 교수가 기하학적인 성향이 강한 필자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최선이라 보기 어려웠다. 일리노이 대학에서 2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지만 박사후 연구원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미시건 대학의 박사과정으로 전학하였다. 박사과정에 있는 동안 서울대에서 시작한 밀너 수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고 채색다항식에 관한 연구로도 확장하여 2012년 『JAMS』와 2014년 『Duke』에 실린 논문들의 결과를 얻었다. 2014년 미시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전부터 이미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졸업 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6년간 근무했다. 2020년 스탠퍼드대 정년보장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1년만에 프린스턴대 정교수로 이직하여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이다.

허준이 교수는 연구도 뛰어나지만 완벽한 강연과 수려한 글쓰기까지 갖춘 보기 드문 수학자이다. 그의 글과 강의는 쉽고 명확하고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겸손하고 따뜻하여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이끌어낸다. 한편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는 한없이 엄격하여 모든 것이 철저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밤잠을 설치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 수학자들에 대한 애정도 넘친다. 지금까지 너무 잘 해주었지만 이제 여러 갈래의 연구 방향마다 적절한 팀이 갖추어져 더 체계적으로 발전된 성과를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