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물리학자의 성장, 1859~1900

비토 볼테라(Vito Volterra, 1859~1940)는 1859년 3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물리학자이자 수리생물학자이다. 그의 부모는 조그마한 옷 가게를 운영하였으나 가난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외동아들이었던 볼테라가 일찍이 과학과 수학에 큰 재능을 보였음에도,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학업을 그만두고 가업을 이어 돈을 벌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그의 가족은 수학 박사이자 토목공학자로 일하고 있던 친척인 에도아르도 알마지아Edoardo Almagià에게 부탁하여 볼테라에게 학업을 그만둘 것을 권하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철도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알마지아는 볼테라의 수학적 재능을 간파하고, 볼테라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는 볼테라에게 플로렌스 대학의 물리학 실험실의 조수 자리를 구해 주었으며, 볼테라가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하여 물리학과 수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볼테라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조셉 베르트랑Joseph Bertrand과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Adrien-Marie Legendre의 저술들을 독파할 정도의 수학적 능력을 보였다. 그는 또한 줄 베른의 공상과학 소설을 탐닉하며, 발사체 문제를 확장시켜 지구와 달의 중력을 포함한 삼체 문제로 접근하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의 수학적 재능을 간파한 사촌 알마지아의 도움으로 볼테라는 18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사 대학에 진학하여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1882년 볼테라는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3살이 되던 그다음 해에 피사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볼테라는 미적분학을 사용해 수리물리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내기 시작했으며, 편미분방적식, 특히 볼테라 적분 방정식Volterra integral equation과 탄성이론elasticity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문적 명성을 쌓았다.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볼테라는 1900년 로마 대학의 수리물리학 교수 좌에 임명되었다. 그는 같은 해 알마지아의 딸인 비르지니아 알마지아와 결혼하였다.

 

 

자연을 모델링modelling하기

볼테라가 로마 대학의 교수 좌 임명과 함께 행한 1900년 강연, “수학을 생물학과 사회과학에 응용하려는 시도에 관하여”라는 수리물리학을 이용하여 역학적 문제들을 해결해온 그가 추구하고 싶은 새로운 연구 방향을 보여준 강의였다. 그는 이 강의에서 수리물리학에서 발전되어온 편미분방적식에 기반하여 생물학과 사회과학에서 나타나는 생물종과 인간집단의 동역학dynamics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고 이를 모델링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당시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들 간의 생태학적 관계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연구는 매우 드물었다. 볼테라 이전에 전염병 전파의 패턴을 역학적이고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전부였다. 1902년 전염병 말라리아malaria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을 수상한 로널드 로스Ronald Ross는 수학적 분석을 역학epidemiolgoy 연구에 도입했던 선구적 연구자였다. 당시 모기가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킨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지만, 그가 주장했던 것처럼 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 모기의 서식지를 감소시키고 나아가 제거하여야 한다는 방역 조치가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한 지역의 모기 개체 수와 인간 집단에서의 말라리아 발병이 큰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로스는 수학적 방법을 통해 모기와 말라리아 전파, 그리고 인간 집단에서의 발병의 연관을 기술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모기 개체 수가 일정 정도 수준으로 증가하지 않으면 말라리아 전파와 발병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임계치에 도달할 정도로 많은 모기 개체가 성장하면, 모기 개체 수가 조금만 증가해도 큰 폭으로 말라리아 발병이 늘어났다. 이를 통해 로스는 말라리아의 전파가 모기를 통해 일어나지만, 왜 특정한 경우 모기 개체 수와 말라리아의 발병이 큰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지를 보일 수 있었다.

로스는 질병의 원인으로부터 그 전파, 그리고 인간으로의 감염 과정을, 즉 전염병의 인과 관계를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방식으로 모델링하고, 이를 역학적 자료로부터 나타난 통계학적 데이터로 보정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모델을 개선해 나갔다. 역학 분야에서 축적된 통계적 자료와 질병의 인과 관계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연에서 나타난 기생충parasite과 숙주host의 관계에 대한 수학적 분석과 모델링 연구를 수행했던 로스의 연구는 생태계 내에서 생물종들 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모델링 하려는 연구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기생충과 그 전파, 인구 집단의 발병 등과 같은 자료가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는 역학 분야와는 다르게, 볼테라가 그의 수리생물학 연구를 구상할 1900년대 초반에는 생태학적 연구에 적용할 만한 생물종에 대한 자료나 그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통계학적 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1910년대 발전된 전염병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이 곧바로 생물학적이고 생태학적 연구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한 인물은 로스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수리생물학자인 미국의 알프리드 로트카Alfred Lotka를 들 수 있다. 1920년대 로트카는 로스가 개발한 모델들을 적용하여 자연계에 있는 생물종들 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로트카는 두 집단의 생물종들이 경쟁을 통해 개체 수 증대와 감소라는 주기적 형태의 균형들을 만들어 나가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미분방정식의 집합들로 모델링할 수 있었다. 이는 화학적 반응에서 나타나는 동역학적 관계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적용시킨 것이었다. 이를 통해 로트카는 숙주-기생충 관계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포식자predator-피식자prey 관계에 대한 모델로 확장시킨 첫 수리생물학자가 되었다. 그는 1925년 물리 생물학의 원리(Elements of Physical Biology, 1956년 수리생물학Elements of Mathematical Biology으로 재발간)를 출간하며 자연의 수학적 모델링에 대한 접근에 대한 길을 열었다.

 

 

볼테라의 생존경쟁의 수학적 이론

1900년대 초반 수학을 생물학과 사회과학에 응용해야 할 것이라 주장한 볼테라는 곧 1차 세계대전에 휩쓸려 정치와 사회운동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1920년대 초반 수학적 방식을 통해 생태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해양생물학자였던 그의 사위가 낚시와 어획 활동이 급격히 감소한 1차 세계대전 중에 왜 아드리안해의 특정 포식자predaceous species 종이 증가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볼테라는 종들 간의 관계와 이들의 경쟁 양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기 시작한다. 당시 미국의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었던 무명의 수학자이자 인구학자였던 로트카의 인구 집단에 대한 수학적 분석을 알지 못했던 볼테라는, 이 포식자-피식자 문제를 시작으로 생태계에 수학적 원리를 도입한 대표적인 학자로 부상한다.

1926년 볼테라는 두 다른 종의 연합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제안하며, 다윈의 생존경쟁이라는 개념을 수학적 방식으로 정량화하는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볼테라는 생물종들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수학적 분석을 통해 보다 일반적이고 수학적인 진화 이론을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는 그 첫 시도로 포식자-피식자 관계에 있는 두 종들의 관계를 분석하여, 포식자의 개체 수가 어떻게 피식자의 개체 수와 수학적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미분방정식을 사용하여 모델링한다.

볼테라는 자연의 모델링에서 물리적 물체의 집합과 유기적 생명체의 집합을 유비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는 생물체의 집합을 폐쇄된 용기 내에서 분자의 가스들에 비유하면서, 생물체들간 상호작용을 수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즉 통계 물리적 방법을 통해 서로 다른 가스들의 밀도를 기반으로 그 관계를 분석했듯이, 생물체들의 관계를 이 종들 간의 ‘만남’이라는 밀도를 통해 계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모델링을 통해 그는 두 종의 집단에서 각 개체의 수가 주기적인 증대와 감소 사이클을 보인다는 점을 밝힐 수 있었다. 이 모델은 또한 다른 모든 환경적 변수들이 동일하다면, 두 종의 개체 수의 평균은 일정할 것이라는 “평균의 보존”의 법칙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모델은 피식자와 포식자의 수를 그 비율에 맞게 동일하게 감소시키면, 포식자의 수는 감소하고 반면 피식자의 수는 증대한다는 법칙을 도출했다. 이는 일례로 어획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어떻게 포식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주며, 1차 대전기 아드리아해의 자료와 관찰을 입증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볼테라의 이러한 수학적 모델 접근법은 로스의 역학적 모델뿐만 아니라 전쟁 중 나타난 전략 분석 모델에서도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저명한 수리물리학자였던 볼테라의 논문은 곧 저널 네이쳐Nature지에 영문으로 축약, 소개되면서 영미권 학계에 큰 관심을 끌게 된다. 특히 볼테라와 유사한 접근법과 결과를 얻었던 로트카는 곧 볼테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제안했던 모델과 볼테라 모델의 유사성을 지적했으며, 이 둘의 연구 결과는 후대 로트카-볼테라 모델Lotka-Volterra model, 혹은 포식자-피식자 모델로 불리게 된다.

1931년 볼테라는 파리의 푸앙카레 연구소에서 열린 강연을 정리한 <생존경쟁의 수학적 이론에 관련된 강연Leçons sur la théorie mathématique de la lutte pour la vie>을 출판한다. 이 저서에서 그는 생물종들 간의 상호작용을 수리물리학의 법칙들과 수학적 접근을 통해 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비록 자신의 작업은 아직도 논리적이며 원칙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보다 많은 생물학적 사실과 정보가 축적되면서 수리생물학의 비약적 성장이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자연을 모델링하고 진화와 생태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수학적 이론화와 모델화를 추구했던 볼테라의 연구는 후대 수리생물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볼테라의 생존경쟁의 수학화는 큰 기념비적 업적으로 남아있다.

 

 

이두갑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