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불을 이용하다.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주목할 행동 변화로 사냥과 더불어 불의 이용이 있다. 유인원을 제외한 포유류 대부분은 자연 발화에 의한 반복되는 숲의 화재를 경험하며 획득한 불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유인원은 손을 써서 불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함으로써 다른 동물은 가보지 못한 진화의 방향을 개척했다. 인류가 불을 이용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원더워크 동굴에서 발견된 100만 년 전쯤의 것으로 추정되는 불에 탄 동물의 뼈와 재다. 이는 인류가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100만 년 전보다 앞섬을 말해주며, 일부 연구에 따르면 그 시기가 180만 년 전까지도 올라간다. 불의 이용이 일상화된 시기는 40만 년 전쯤으로 보는데, 이 시기의 지층에서 재, 숯, 탄 뼈가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30만 년 전쯤에는 불을 사용하여 석기를 제작한 증거도 발견되고, 20만 년 전쯤에 이르면 불을 중앙에 배치한 주거지들이 발견된다.
불은 포식자의 접근을 막아주고, 빛을 내서 인류가 밤에도 그리고 동굴 속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고, 열을 공급해서 몸의 털이 사라지는 진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의 고위도 지역까지 진출해서 적응할 수 있게 했다. 한편 불의 이용이 인류의 진화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이유는 화식(요리)을 통해 인류의 식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인류는 고기나 곡류를 익혀 먹음으로써 식단의 범위를 크게 넓혔을 뿐만 아니라 (익히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곡류나 감자 등을 먹을 수 있게 되고, 익힘으로써 세균과 기생충 감염을 피할 수 있었다) 섭취와 소화에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소화기관의 크기는 줄이고 (이와 턱의 크기, 위의 크기와 창자의 길이가 줄어들었다)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인 뇌의 용량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실제로 뇌가 커지는 방향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불의 이용은 사회성의 진화에도 한몫했다. 주거지의 중심에 불이 놓여있었음은 이미 그 전부터 불이 집단의 소통과 유대감 형성의 중심 역할을 했으며 불 주변에 모여 나누는 식사와 대화가 사회성과 언어의 발달을 촉진했음을 시사한다. 불 주변에 모여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인류의 모습은 지금도 낯설지 않다. 불은 더 날카로운 날을 가진 석기를 만들거나 나무를 더 단단하게 해서 강한 창을 만드는 데도 이용되는 등 도구 제작 기술에도 진전을 가져왔다. 문명 시대로 넘어와서도 불의 이용은 토기의 제작, 구리와 철 같은 금속의 제련, 석탄을 통한 산업혁명 등 중요한 물질문명의 전환을 이끌었다. 불의 사용은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다른 진화 경로로 가는데 직립 보행 만큼이나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인류, 털이 사라지다.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 과정에서 신체에는 털이 사라지는 변화가 일어났다. 엄밀하게 말하면 털의 수가 줄어들지는 않았고 단지 털이 가늘어지고 짧아졌다. 항온 동물이 되면서 얻은 포유류의 특징인 털이 인류에게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털의 용도는 보온이므로 털이 사라진 시기는 불의 사용과 연관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털이 사라진 시기는 포유동물의 피부와 털의 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비교 분석하여 추정할 수 있는데, 대략 120만 년 전쯤으로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하지만 중요한 기능이 있던 털이 굳이 사라진 데는 더 직접적인 이유가 있을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장거리 사냥이 일상화되면서 과열 방지를 위해 털이 사라졌다는 사냥 가설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사냥했는데 이때 발생한 열로 몸이 과열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특히 커진 뇌가 과열에 취약했다. 몸의 열을 식히는 방편으로 땀샘이 발달하게 됐는데, 털이 있으면 땀을 배출해서 몸을 냉각하는 데 불리하다. 장거리 사냥을 일상적으로 하면서 큰 뇌를 유지하려면 털이 사라져야 했다는 주장이다. 정작 머리에는 털이 남아 있는데, 이는 직사광선으로부터 뇌를 보호하기 위함으로 본다. 다른 가설로는 동굴에서 집단생활로 발생하기 쉬운 이나 기생충의 감염을 회피하기 위해서 털이 사라졌다는 기생 생물 가설이 있다. 털은 보온을 돕지만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각종 기생 생물의 보금자리도 된다. 불을 사용하여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되자 기생 생물의 온상인 털을 버린 선택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가설로는 암컷의 특정한 취향과 이에 맞추려는 수컷의 외모가 서로 상승작용을 한 성 선택의 결과로 털이 사라졌다는 성 선택 가설이 있고, 인류의 조상은 항상 물 옆에 살았고 물속 생활에 적응하느라 털이 사라졌다는 수생 유인원 가설도 있다.
포유동물에게 털은 보온뿐만 아니라 공포나 위협 등 사회적 신호를 보내는 수단이기도 하며, 영장류에게 털은 서로 털고르기를 주고받음으로써 상호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털이 사라지면서 인류는 유대감을 다지는 새로운 방편이 필요했고 그런 이유로 손짓과 언어가 발달하게 됐다는 견해도 있다.
현생 인류가 출현하다.
플라이스토세에는 빙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됐고, 그 영향을 크게 받는 사바나 지역에 거주하던 인류는 때때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시련의 시기에는 멸종과 진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적응에 실패하면 바로 멸종으로 내몰리고,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작은 형질 차이에도 강한 선택압이 작용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온난기와 한랭기, 습기와 건기가 교대하던 기후변화의 물결을 타고 인류 최초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 여러 곳에 진출했고 각 지역에서 적응하며 진화를 이어갔다. 80~90만 년 전쯤 아프리카에 남았던 호모 에렉투스(호모 에르가스테르)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분기했다. 당시는 아프리카에 남은 인류의 수가 수천으로 줄어들며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던 시련기였는데, 이것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진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주장이 있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뇌 용량의 증가였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평균 뇌 용량은 1,200cc로 현생 인류의 용량에 근접했다. 이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도 신체 적응보다는 행동 적응을 통해서 시련기를 극복했음을 말해준다. 뇌가 커지면서 얼굴과 머리뼈의 모양이 바뀌었고, 화식으로 턱과 이가 작아지는 추세였지만 현생 인류와 비교해서는 여전히 큰 아래턱뼈를 가지고 있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도 호모 에렉투스의 뒤를 이어 아프리카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진출했다. 이들은 높아진 적응력을 발휘해 위도가 더 높은 지역을 포함해 더 넓은 범위에 진출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는 유럽에 거주하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부터 45만 년 전쯤 분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생 인류와 비교해 체격은 더 크고 탄탄하고 사지의 비례는 짧아서 유럽의 추위에 적응한 특징을 가졌다. 평균 뇌 용량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보다 더 늘어서 1,400cc에 이르렀는데, 이는 현생 인류의 뇌 용량보다 조금 더 큰 것으로, 전두엽이 큰 현생 인류와 달리 후두엽이 컸다. 집단으로 거대 동물을 사냥했으며, 육식을 주로 했고, 다치거나 아픈 사람을 돌본 증거가 있는 등 높은 사회성을 발휘했다. 유라시아 대륙 여러 곳에 흩어져 살다가 4만 년 전쯤 최종적으로 멸종했다. 호모 데니소바(데니소바인)는 화석은 뼈 몇 개가 전부이지만 유전자 조사를 통해서 존재가 확인된 종으로, 네안데르탈인이 분기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에 진출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부터 진화했다고 추정된다. 데니소바인은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도네시아 섬들까지,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지역까지 진출했다. 데니소바인도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한 시기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현생 인류가 포함된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 남았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부터 20~30만 년 전 사이에 분기했다. 평균 뇌 용량은 1,350cc에 이르렀으며, 전두엽에 있는 대뇌피질의 용량이 커졌고, 이에 따른 얼굴과 머리뼈 형태의 변화가 따랐다. 전두엽의 증가는 추상적인 사고 능력과 정교한 학습 능력의 향상을 가져왔으며, 그 결과 축적된 문화 중심의 행동 양식이 발달하게 됐다. 10만 년 전을 전후한 혹독한 시련기를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도 전체 인구가 수천 명까지 줄어드는 멸종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인구를 회복했고,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뒤를 이어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고, 더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여 남극대륙 같은 극한 기후를 가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호주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한 세계 전 지역에 진출했다. 6만에서 4만 년 전 사이에는 상징 언어의 출현과 함께 집단학습과 도구 제작, 그리고 예술, 종교 등 문화적 면에서도 큰 진전을 가져온 소위 ‘인지 혁명’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는 명실상부한 지구 생태계 최상위 종으로 등극했고 전 지구를 정복했다. 간빙기의 도래와 인구 증가에 힘입어 1만 년 전쯤에 인류는 농경을 시작했고, 5천 년 전쯤에 도시국가를 틀로 한 한 문명을 건설하면서 인류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를 넘어 문명의 역사로 이어지게 됐다.
인류, 뇌가 커지다.
인류는 문화와 지식의 축적을 통해 복잡하게 조직된 사회와 문명을 건설한 유일한 종이다. 침팬지 계통과 분기한 후 600만 년 동안 인류에게 어떤 진화가 일어났기에 문명을 만들 수 있었을까?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인류의 진화 계통에서 겉으로 드러난 중대한 변화는 뇌 용량의 증가다. 몸집도 커지긴 했지만, 뇌 용량의 증가에 비할 바는 아니다. 평균 뇌 용량이 350cc로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호모 하빌리스에서 출발하여 몸집과 뇌가 함께 커져서 930cc에 이른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몸집은 그대로지만 평균 뇌 용량이 증가하여 1,200cc가 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1,400cc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뇌 용량의 증가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뇌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기관이고 커다란 뇌는 유지비가 비싸다. 우리의 뇌는 몸무게의 4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몸에서 쓰는 전체 에너지의 5분의 1을 사용한다. 뇌의 크기를 키우는 방향의 진화에는 뇌의 성장에 관련된 유전자 변이와 더불어 커진 뇌를 운용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 체계, 즉 대사의 진화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양 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는 뇌 용량을 키우는 방향은 생존과 번식에 절대 유리하지 않으며, 이는 여러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확인된다. 인류는 사체 섭식을 거쳐 사냥으로 전환해 육식의 비중을 높이고 화식을 통해 소화흡수율을 높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먹이의 선택은 유전자의 영향도 있지만 생태와 문화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뇌 용량의 증가는 유전자 변이와 생태적, 문화적 요인이 같이 작용해서 일어났다. 인류는 집단 협력을 통해 큰 사냥감을 사냥하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늘어난 에너지 소비량을 감당할 수 있게 됐고, 화식을 통해 소화흡수율은 높이고 소화기관의 크기는 줄임으로써 소화에 쓰이던 에너지를 큰 뇌의 운용에 돌릴 수 있었다.
둘째, 뇌 용량의 증가는 인류가 플라이스토세에 빈번했던 혹독한 시련기에 신체 적응보다는 행동 적응을 통해 살아남았음을 말해준다. 뇌 용량이 커지는 데 진화 압력으로 작용한 행동 적응은 무엇이었을까? 영장류의 진화에서는 시각과 손의 발달, 고인류의 진화에서는 손의 활용과 도구 사용이 뇌 용량의 증가에 중요하게 작용했고, 이는 이어진 호모 속의 진화 방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플라이스토세에 일어난 호모 속 뇌 용량의 급격한 증가에는 다른 중대한 요인이 있어 보이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그로 인해 형성된 우리와 사회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에 대해 여러 가설이 제시돼 있는데, 생태적 지능 가설, 사회적 지능 가설, 문화적 지능 가설, 이렇게 세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
생태적 지능 가설은 급격한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생태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먹거리 구하기 등의 생존을 위한 유연한 행동의 필요성이 뇌 용량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유력한 증거는 뇌가 커진 시기와 급격한 기후변화의 시기 사이의 상관관계다. 뇌가 빠르게 커진 시기인 80만에서 20만 년 전 사이는 기후변동의 폭이 상대적으로 컸던 시기였다. 특히 125만에서 70만 년 전 사이에는 중기 홍적세 전이라 불리는 빙하 순환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4만 년 주기의 작은 진폭의 변동에서 10만 년 주기의 큰 진폭의 변동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뇌 용량이 많이 증가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출현했다. 구체적인 가설 중에는 환경변화에 따른 사냥감의 변화로 큰 초식 동물이 점차 줄어들어 작은 동물을 사냥해야 했고, 작은 동물의 사냥에는 단순한 추적보다는 덫을 놓는 등 더 영리한 행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뇌가 커졌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생태환경 변화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 지속해서 작용해왔다. 이에 대해 뇌를 키워 행동 적응으로 대처해온 것이 인류의 핵심적인 진화 방향이었고, 플라이스토세의 극심한 환경변화가 뇌 용량의 증가를 통해 행동 적응을 심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지능 가설은 교류 집단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복잡해진 사회생활이 뇌 용량을 키웠다는 것이다. 파충류는 주로 단독생활을 하지만, 포유류는 가족이나 그보다 규모가 큰 유대 집단을 이룬다. 이에 따른 사회생활이 포유류의 대뇌 영역을 키웠는데, 영장류에서 사회생활의 중요성은 더 커졌고 인류에게는 극단적으로 중요해졌기에 뇌가 점점 커졌다고 본다. 사회적 지능 가설의 대표적 근거는 영장류에서 ‘던바의 수’로 표현되는 친밀한 집단의 크기와 뇌의 용량, 특히 신피질의 용량 사이의 상관관계다. 던바의 수는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동료의 수로 침팬지는 55이고 인간은 150인데, 각각의 대뇌 용량에 대략 비례한다. 사회적 지능 가설의 강점은 사회적 지능의 발달이 ‘상호 군비 경쟁적인 특성’이 있어서 뇌 용량의 급격한 증가를 양의 되먹임에 의한 빠른 진화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 기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뇌의 용량을 늘려서 사회성을 키움으로써 얻는 생존과 번식 상의 이득은 무엇이었을까? 집단 협력을 통한 사냥 능력의 향상은 집단의 경쟁력이 되고 개체에도 이익이 된다. 하지만 집단 사냥에는 이삼십 명의 집단이면 충분하지 던바의 수인 150명씩이나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류가 던바의 수 정도의 사람과 유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생긴 데는 집단 내뿐만 아니라 집단 간 협력과 경쟁이 작용했을 수 있다. 집단 협력을 통해 인류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올라서자, 종 내부의 경쟁이 외부의 위협만큼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도구의 사용도 내부경쟁을 통한 사회성의 진화에 영향을 끼쳤다. 돌도끼, 창, 활 등이 발명되면서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 없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이 확보되자 개체 간 경쟁에서 신체적 능력 차이는 중요성이 줄어들고 개개인의 지위는 대등해졌다. 그러자 사회적 평판을 쌓고 지지자를 확보하는 사회적 능력이 집단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번식에 성공하는 데 더 중요해졌다. 협력하는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집단 간 경쟁에서 유리하다. 일단 집단이 커지면 사회생활에 타자의 마음을 읽는 능력, 공감 능력 등이 더욱 필요하고, 그에 비례해서 뇌가 커졌다.
문화적 지능 가설은 문화가 축적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보 저장과 학습 능력을 올릴 필요성이 뇌를 키웠다는 것이다. 문화적 지능 가설은 생태적 지능 가설이나 사회적 지능 가설과 대조되기 보다는 이를 통합한다고 볼 수 있다. 복잡한 도구를 제작하거나 사회생활의 지혜를 얻는 데는 개인적 학습보다 사회적 학습이 더 효율적이고,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학습의 결과가 세대를 넘어 축적될 수 있을 때 극적인 효과가 나온다. 문화가 축적되려면 사회성과 정교한 모방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고도의 사회적 학습 능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타인의 마음 읽기, 언어의 발달 등 전반적인 뇌 인지 능력의 향상이 이뤄져야 했다. 정보 저장과 학습 능력의 향상과 이를 통한 문화의 축적이 생태적 지능과 사회적 지능이 크게 향상되는 기반이라는 것이다.
생태적 지능, 인지적 지능, 사회적 지능 중 어느 요소가 인류의 뇌가 커지는 데 더 중요하게 작용했는지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뇌 용량의 증가는 세 가지 지능의 향상 모두와 관계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사실 각각의 지능이 서로 독립적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역사를 잇는 연결고리에는 사회성을 통한 협력 규모의 확대와 정교한 학습 능력을 통한 문화의 축적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인류의 뇌가 커지는 데는 생태환경의 극심한 변화와 더불어 이에 적응하면서 일어난 인구의 증가도 그만큼 중요하게 작용했음이다.
셋째, 뇌가 커지는 데는 어떤 유전자 변이가 작용했을까?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8.8%가 같고, 서로 다른 1.2%에는 뇌와 관련된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함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전자의 차이뿐만 아니라 유전자가 같더라도 발현되는 정도의 차이도 심각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등, 유전자 발현의 복잡성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알기 어렵다. 인류의 뇌가 유인원의 뇌보다 월등한 이유의 핵심은 대뇌피질의 크기 차이로, 이는 대부분 뉴런 수의 증가에 따른 것이다. 대뇌피질의 신경세포 수를 늘린 구체적인 유전자 변이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 중이며, 뇌의 발달 과정에서 뉴런의 분열 회수에 관여하는 유전자(NOTCH2NL)가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의 변이가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 방식, 정보 저장, 에너지 효율 등 신경세포의 기능 강화에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신경세포 수의 증가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신경세포의 작은 기능 변화가 수많은 신경세포 집단인 뇌의 기능에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크기는 정말 중요한 요소다. 이는 인류의 문명이 발생하는 데 인간 개개인의 인지 능력 향상도 있지만 인구의 증가와 환경적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수렵채집 사회의 인류나 현재의 인류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집단으로서 능력은 현격히 다르다.
커진 뇌는 인간의 성장 방식도 바꾸었다. 이족보행으로 이행하면서 골반 구멍이 더 좁아진 상황에서 뇌가 큰 아기를 출산하는 일은 위험부담이 컸다. 그래서 인류는 미성숙한 뇌를 가진 아기를 출산하고 뇌가 성장하는 아동기가 길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인간의 아이는 보살핌이 필요한 기간이 길어졌고, 이는 부모의 양육 협력을 필수로 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공동체에 의한 집단 양육으로 이어져 인류의 사회성이 커지는 데도 이바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