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루(장지영)

뇌 영상 기술의 등장

1901년 독일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1864년~1916년 박사는 조증과 불면증 증상, 그리고 인지장애를 동반한 특이한 환자를 만납니다. 이 환자는 알츠하이머 박사를 만난 지 5년 뒤인 1906년 사망합니다. 알츠하이머 박사는 이 환자를 부검하여 뇌 조직의 특이적인 병리학적 관찰 결과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1년 뒤, 환자의 대뇌피질에서 현재는 아밀로이드 플라크Amyloid plaque로 알려진 병변을 최초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합니다. 1910년, 알츠하이머 박사의 동료였던 독일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1856년~1926년 박사는 이런 병변과 증상을 보이는 병을 최초 보고자인 알츠하이머 박사의 이름을 따서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이라 명명합니다. 알츠하이머 박사는 5년 동안 이 환자의 증상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치료했지만, 정작 이 환자의 뇌에서 진행되는 병의 상태는 밖으로 드러난 증상으로만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정상인과 달리 뇌가 많이 위축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런 뇌의 위축이 본인을 치료한 5년 동안 생긴 일인지 아니면 이미 그런 상태로 자신을 찾았던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뇌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 박사가 환자 생존 당시 뇌 영상을 볼 수 있었다면 병의 진행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훗날 새로운 영상 기술의 등장으로 의사가 살아있는 환자의 뇌를 살펴보는 상상은 현실이 되고 덕분에 이 안타까움은 어느 정도 해소됩니다.

1895년,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1845년~1923년 박사는 음극선 연구 도중 우연히 새롭게 발견한 ‘X선’으로 현대 의학과 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뢴트겐 박사가 아내 손 피부 속에 감춰져 있는 뼈를 촬영한 이래, X선은 현대까지 뼈의 골절, 종양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X선 영상의 한계는 2차원적 영상정보만 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후 컴퓨터가 발전한 1970년대에 영국 전기공학자 고드프리 하운스필드1919년~2004년 박사와 미국 물리학자 앨런 코맥1924년~1998년 박사는 X선을 이용하여 얻어진 인체의 2차원적 단층 이미지를 컴퓨터로 처리하여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컴퓨터 단층촬영, computed tomography, CT)을 개발했습니다. 즉 CT는 X선을 이용하여 얻어진 인체 내부 단층 이미지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이미지로 보여주어, 의사와 연구자가 대략적인 인체 구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크게 이바지합니다. 이러한 의학계와 과학계에 미친 영향력과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하운스필드 박사와 코맥 박사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됩니다. X선의 발견이 CT 발명을 가져왔다면,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 현상 발견은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 기술 개발을 선물합니다. 1946년, 스위스 물리학자 펠릭스 블로흐1905년~1983년 박사와 미국 물리학자 에드워드 퍼셀1912년~1997년 박사는 각각 독립적으로 NMR 현상을 발견하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두 사람은 195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NMR 현상은 다양한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널리 활용되었는데, 1970년대 CT와 비슷하게 인체 내부를 관찰하는 영상화 기술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해집니다. 1971년 미국 레이먼드 다마디언1936년~2022년 박사는 NMR 기술을 이용하여 생체 조직의 영상을 얻는 연구를 수행하여, 건강한 조직과 암 조직을 구별한 연구 결과를 Science 지에 발표합니다. 이후 미국 폴 로터버1926년~2007년 박사와 영국 피터 맨스필드1933년~2017년 박사는 이 기술을 의학 영상 기술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여,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는 MRI로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합니다. 그리고 이 업적을 바탕으로 200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이때 다마디언 박사가 MRI 개발에 있어 최초의 공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과학계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당시 다마디언 박사의 주장도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지만, Best in Class가 아닌 First in Class에 노벨상을 수여하는 전통을 지켜온 노벨위원회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동을 뒤로 하고 MRI는 의학 발전에 커다란 이바지합니다. 물론 뇌 연구에 끼친 영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단단한 조직에 특화된 X선과 달리, 부드러운 조직 구별 능력이 뛰어나 뼈는 물론 뇌를 포함 척수와 근육 등을 상세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제 뇌 연구자들은 알츠하이머 박사의 소망처럼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뇌 영상 기술의 발전

물리학의 발전으로 등장한 MRI라는 영상 기술은 뇌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뇌과학 대가인 미국 버논 마운트캐슬1918년~2015년 박사의 “구조에 관한 지식은 그 자체만으로는 역할 혹은 기능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금언처럼 구조에 대한 정보로만 뇌의 기능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에 뇌연구자들은 뇌 기능을 이해하는 데 MR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될 때 그 부위로 혈류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발견은 MRI 기술과 연계하여 뇌 기능을 연구하는 기술로 발전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1990년 일본 생물리학자 겸 뇌과학자인 오가와 세이지1934년~현재 박사는 혈류량 의존성 자기공명 신호Blood Oxygen Level Dependent, BOLD 신호를 이용하여 뇌의 시각 피질 활성을 측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뇌의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신경 활동을 혈류량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비침습적 영상 기술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이라 합니다. 그리고 fMRI는 뇌연구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옵니다. fMRI를 이용해 뇌의 다양한 기능을 시각화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뇌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fMR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fMRI를 이용하면 뇌의 전두엽이 학습을 하는 동안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찰할 수 있고,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신경 질환자의 뇌를 관찰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 효과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 그간 주로 이론적으로 접근하던 인지과학 연구는 뇌 활동을 관찰하는 실증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근거를 탄탄히 갖추게 됩니다. 특히 학습, 기억, 언어 등 다양한 인지과학 연구는 날개를 달게 됩니다. 관련하여 정신의학 연구 역시 정신질환의 뇌 기전을 밝히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fMRI를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알츠하이머 박사가 최초로 발견한 아밀로이드 플라크Amyloid plaque 병변을 환자 생전에 관찰하고 다양한 약물이나 치료법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면, 환자의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유하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그 시대 알츠하이머 박사에게 이런 가정은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했겠지만, 현대에서는 적어도 아밀로이드 플라크Amyloid plaque 병변을 상당히 정밀하게 관찰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이란 기술이 사용됩니다. PET는 핵의학 검사 방법의 하나로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한 의약품(방사성 추적자)을 체내에 주입한 후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기PET scanner를 이용하여 이를 추적하여 대사 과정, 혈류, 체내 분포를 포함한 다양한 생리 활동 변화를 측정하는 기능성 영상 기술입니다. PET scanner는 CT와 통합할 수 있으며, 이를 PET-CT scanner라 합니다. 이 기기를 통해 PET 영상과 CT 영상을 함께 재구성하여 구조와 기능을 동시에 관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임상 종양학 분야에서 종양의 영상화 및 전이 탐색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고, 뇌과학 분야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치매 임상 진단에 사용됩니다.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감지하는 방사성 추적자를 사용하면 우리는 알츠하이머병 치매를 다른 형태의 치매와 구별하는 것은 물론,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신경병리학적 활용 외에도 PET은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특이적인 방사성 추적자를 사용하여, 조현병, 약물 남용, 기분 장애 및 기타 정신 질환 연구에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뇌지도 작성

다양한 뇌 영상 기술이 개발되는 시기에 세계는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함께 3차 산업혁명인 정보혁명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컴퓨터의 등장은 뇌를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1961년~현재는 그의 소설 ‘뇌’에서 우리가 뇌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사람들은 뇌를 계산기에 비교하였다. 뇌는 복잡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놀라운 기계였다.” 초기 컴퓨터가 등장했던 1949년, 미국 Scientific American 잡지에서 그 당시 최고 성능을 보유한 컴퓨터였던 BINACBinary Automatic Computer, 이진법 자동 연산기를 소개하는 카피로 “Want to buy a brain?”를 사용한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뇌가 컴퓨터처럼 작동할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인간 뇌 활동은 빠른 연산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뇌의 뉴런이란 단위세포와 컴퓨터의 트랜지스터, 뇌의 회로망과 컴퓨터의 회선이라는 유사점은 뇌를 이해하려는 인간에게 컴퓨터는 좋은 착안점이었을 것입니다. 즉 컴퓨터를 통해 뇌를 이해해 보고자 한 것이죠. 어떤 기계의 설계도를 보고, 파트 구성과 연결을 파악하면 기능을 유추할 수 있듯이, 뇌의 뉴런과 그 연결을 파악하면 뇌의 기능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기계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뇌의 설계도(뇌지도)를 확보하겠다는 시도를 기획하게 됩니다. 20세기 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 인간 유전체를 분석하고 해독하여 인간 발생의 기원과 다양한 유전질환으로부터 과학적인 해결책을 찾았던 것처럼. 뇌의 설계도를 확보하여 지금껏 막연하게 상상만 했던 뇌의 신비를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2010년 10월, MIT의 뇌과학자 세바스찬 승1966년~현재, 승현준 박사는 TED 강연에서 “I am my connectome”이란 제목의 강연을 합니다. 이 강연은 2025년 2월 기준 백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강연에서 승 박사는 ‘나’라는 자아는 각자의 뇌 속에 존재하는 천억 개의 뉴런 간 상호연결성interconnectivity의 상관관계라는 자신의 이론을 발표하면서 커넥톰connectome이란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즉 사람은 각자 자신 뇌 속 뉴런 간의 연결을 보여주는 지도(뇌지도)를 갖고 있고, 그 뇌지도에 따른 자아와 개성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뇌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뉴런 간의 연결을 파악하는 것이고, 기계로 보자면 역공학적 접근으로 회로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상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시도는 영상 기술 발전과 더불어 컴퓨터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론 인간 전체 커넥톰을 모두 파악하는 일은 21세기 내에 완료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아주 힘든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승 박사는 이런 힘든 작업을 집단지성을 활용한 방법으로 가속하는 시도를 합니다. 승 박사는 뉴런 간 연결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아이 와이어Eye Wire’라는 대중에게 친밀한 게임 형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대중이 함께 연구에 참여토록 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뇌지도를 확보하는 연구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뇌의 연결체를 연구하기 위해 사람 간 지성을 연결하는 집단지성 방법론을 도입한다는 승 박사의 창의적인 생각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 뇌지도를 확보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에 대한 개략적인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다만 목표에 이르는 것은 여전히 또 다른 숙제이며 난제입니다. 유전자가 인간 발생의 설계도라 생각했던 시기, 인간 유전체 정보를 모두 확보한다면 인간 탄생의 기원과 모든 생로병사의 원인 규명과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1984년 처음 Human Genome Project를 기획하고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 만인 2003년 Human Genome Project는 종료를 선언합니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혁신적인 genome sequencing 기술 개발로 그 프로젝트 완료 시기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아마 뇌지도 프로젝트란 과업도 현재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필요한 과학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이 따라온다면 이 또한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완료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뇌지도 프로젝트 가속화를 위한 노력은 이미 미국에서 국가 차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era

21세기에 들어서 뇌연구는 정보화시대의 고도화와 더불어 뇌지도 관련 연구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습니다. 2011년 카블리 재단Kavli Foundation 소속의 뇌과학자인 전미영 박사 주도로 조직된 콘퍼런스에서 뇌과학자들은 뇌 활동 지도 프로젝트Brain Activity Map Project 아이디어를 공유합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과학기술정책국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구성원을 포함한 미국 정부 연구소 과학자들과 사설 연구재단인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와 앨런 뇌과학 연구소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의 과학자들이 Google, Microsoft, Qualcomm의 대표자들과 함께 미래 정부 주도의 뇌지도 관련 프로젝트 가능성에 대해 논의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인간 두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신경 과학 분야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 기획으로 이어지고,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 Initiative‘ 프로젝트를 발표합니다. 이듬해인 2014년 본격적으로 가동된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는 첨단 기술 활용을 기반으로 다학제간 협력과 글로벌 협력을 통해 인간 두뇌의 복잡성 이해, 신경 질환 치료, 기술 혁신, 인간 인지 기능 향상에 필요한 지식 확보를 목표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기대 효과를 살펴보면, 우선 뇌는 860억 개의 신경세포와 수조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물인데,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고 두뇌 활동의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신경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Human Genome Project가 genome sequencing과 분석 기술 개발 촉진에 이바지한 것처럼,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는 신경 과학 연구를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은 물론 관련 분야의 발전을 촉진하고,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는 학습, 기억, 의사 결정 등 인간의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연구하여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 뇌공학 관련 기술 혁신이 눈에 띄는데, 한 예로 2013년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광훈 박사와 칼 다이서로스 박사 연구팀은 뇌 조직을 투명하게 만드는 CLARITYClear Lipid-exchanged Acrylamide-hybridized Rigid Imaging/Immunostaining/in situ Tracing라는 기술이 개발하여 Nature 지에 발표합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연구자들은 이전까지는 현존 영상 장비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뇌의 단백질 및 핵산 구조에 대해 매우 자세한 영상 결과물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실제 이 기술은 알츠하이머병 환자 뇌 조직, 마우스 척수 조직, 다발성 경화증 동물 모델 조직에서 질병 상태를 파악하는 데 활용된 바 있습니다. 또한 이 기술은 기존 현미경 기술과 결합하여 공초점 확대 현미경confocal microscope, 단일 평면 조명 현미경Selective Plane Illumination Microscopy, SPIM, 광 시트 현미경Light-Sheet Microscopy, LSM, CLARITY 최적화 광 시트 현미경CLARITY Optimized Light-sheet Microscopy, COLM 등 새로운 현미경 기술 개발을 촉발하기도 하였습니다.

브레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의 일환인 뇌 기능 이해 연구 기술 개발 노력의 하나로 추진되는 뇌 오가노이드brain organoid 기술 도입과 뇌 오가노이드 관련 기술 발전도 주목할 만합니다. 참고로 뇌 오가노이드는 시험관 수준에서 인공적으로 배양된 뇌의 일부와 유사한 조직입니다. 즉 뇌 오가노이드는 뇌의 발달과 기능을 이해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되는 기술입니다. 최근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컴퓨터 혹은 인공지능 대체 기술 개발에 대한 연구가 특히 활발한데, 2022년 호주 베렛 케이건 박사 연구팀은 인공지능 칩 대신 생물학적 뇌DishBrain를 개발하여 학습이 가능한 in vitro 시스템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 결과를 Neuron 지에 발표하였습니다. 2023년 미국 팽 구오 박사 연구팀은 뇌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생체-전자 하이브리드 기기를 개발하여 비선형 방정식 계산과 음성인식 학습을 수행시킨 결과를 Nature Electronics 지에 보고했습니다. 이제 뇌오가노이드를 이용하여 뇌 기능을 모사하는 기술 개발은 물론 뇌와 컴퓨터의 연결에 필요한 기술 개발도 가능해졌습니다. 실제 미국 Neuralink사는 인공지능 발전에 맞춰 인간 지능을 증강하기 위한 기술의 하나로, 뇌에 삽입하여 기능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하여 임상실험을 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24년 네덜란드 딜라일라 헨드릭스와 베네데타 아르테기아니 박사 연구팀은 사람 태아 뇌로부터 뇌 오가노이드 배양에 성공하여 그 결과를 Cell 지에 발표합니다. 이는 유도만능줄기세포 기술과 뇌 오가노이드 기술을 융합하면 이론적으로는 ’개인 맞춤형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개발은 물론 ’개인 맞춤형 퇴행성 뇌신경질환 치료 기술‘ 개발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인류는 뇌를 이용하여 뇌를 연구하는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신경윤리학

급격한 뇌과학 기술 발전 속도와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인공지능 기술 덕분에 인류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많은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선 뇌 연구로부터 파생되는 도덕적, 법적, 사회적 문제를 윤리적 관점에서 다뤄야 할 시급성이 생겼으며, 이를 다루는 학문으로 신경윤리학이 주목받습니다. 신경윤리학은 2002년 스탠퍼드 대학교가 개최한 신경과학회 심포지엄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뇌과학자인 아디나 로스키스 박사에 따르면, 신경윤리학은 문제 분석 및 해결의 목적에 따라 ‘윤리학의 신경과학’과 ‘신경과학의 윤리학’으로 분류되는데, ‘윤리학의 신경과학’은 뇌과학적 현상을 바탕으로 윤리적 행동을 해석하기 위해 뇌의 활성화 또는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 과정을 분석해 도덕 감정이나 판단, 행위를 설명합니다. 한편 ‘신경과학의 윤리학’은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가 인간에게 적용될 때 생기는 쟁점을 밝히고, 그것이 미칠 법적, 사회적, 윤리적 영향력을 파악해 대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급속한 뇌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앞으로 뇌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가져올 윤리적 쟁점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특히 뇌 프라이버시 문제, 뇌 기능 향상에 따른 기회 불균등과 계층 고착화와 같은 사회적 문제 역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뇌과학 발전과 함께 등장할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함의를 모으는 논의와 효과적인 대처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고, 이를 위해 전문가 집단과 대중, 타 분야의 전문가 집단 간의 소통이 증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닫는 글

처음 저는 뇌과학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에 저는 뇌과학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또 뇌과학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글을 요청하는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뇌과학자는 뇌라는 생물학적 물질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병리학적 증상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 생각이 크게 현실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필자가 굳이 뇌과학 역사를 정리한 이유는 누구나 뇌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의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신 분도 많지만, 이 글에 소개된 뇌과학자들을 보면 어떤 분은 물리학을 어떤 분은 화학을 어떤 분은 공학을 전공한 분들입니다. 그러니 뇌가 궁금한 누구나 뇌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근대 철학가인 르네 데카르트(1596년~1650년)는 철학자이며 수학자로 기억되지만, 또한 뇌과학자이기도 합니다. 데카르트는 그의 대표적인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보듯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자기 육체가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의심했고 이러한 집요한 의심의 끝에 다다른 결론은 바로 그러한 의심을 하는 자신의 정신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데카르트는 자기 육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신의 정신을 주관하는 자신의 뇌를 통해 증명된다는 것을 밝힌 뇌과학자이죠. 이러한 깨달음은 현재를 사는 뇌과학자 수전 그린필드 박사가 말한 정의, “이 세상에서 탐구의 대상이면서 주체인 것은 뇌 밖에 없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뇌과학자의 연구 범위는 뇌의 가능성 만큼이나 그 경계가 무한합니다. 또한 새로운 학문 분야 혹은 기술의 등장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분야와 유형의 뇌과학자 탄생을 촉발할 것입니다.

뇌과학은 현존하는 어떠한 과학기술 분야 보다도 가장 융합적인 성격이 강한 분야로 가히 21세기 최고의 융합과학입니다. 따라서 뇌과학 연구 분야의 범위를 설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떤 학문 혹은 기술 분야에 종사하거나 혹은 미래 구상을 하더라도, 어느 날 문득 여러분의 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그날이 여러분의 뇌과학자 여정의 첫날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문제일
DGIST 뇌과학과 교수, DGIST 후각융합연구센터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