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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핵세포의 출현

세포 간에 포식의 실패는 어쩌다 놀라운 혁신으로 이어졌다. 잡아먹힌 세포가 소화되지 않고 자신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잡아먹은 세포 내부에 공생하는 복합 세포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로 고세균에서 기원했으며 막으로 둘러싸서 DNA를 세포질로부터 분리하는 핵이 생긴 복합 세포가 22억 년 전쯤에 나타났다. 20억 년 전쯤에는 산소 호흡 세균에서 기원했으며 역시 막으로 분리된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내에 공생하며 산소 호흡을 통해 ATP 생산을 주도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유전정보의 복제와 에너지 공급이라는 세포의 핵심 기능을 막으로 분리된 세포 소기관인 핵과 미토콘드리아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진핵세포가 출현했다. 15억 년 전쯤에는 핵과 미토콘드리아에 더해서 남세균에서 기원한 엽록체가 세포 내 공생에 참여해서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진핵세포가 출현해서 식물의 조상이 됐고, 태양이 방출한 복사에너지를 붙잡아서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기반이 됐다.

진핵세포의 출현은 우연이 작용하긴 했지만 대산화 사건에 이어진 눈덩이 지구 상태라는 혹독한 환경으로 인해 세포의 몸집을 불리고 기능을 늘리는 방향의 변이가 선호된 결과로 보인다. 세포가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는 진화 과정에서 DNA의 양은 점점 늘었고 이에 따라 변이를 일으키는 다양한 화학적 공격에 취약해졌다. 핵은 방대해진 DNA를 핵막으로 둘러싸 무작위적인 화학적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며 유전정보를 안정적으로 복제함으로써 생존과 번식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유전정보의 안정화는 역으로 유전적 변이의 출현을 줄여 진화의 속도가 늦춰지고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다. 진핵세포는 유성 생식을 발명해서 이 모순적인 상황을 극복했다. 세포의 몸집과 기능이 늘어나면 그 몸집을 유지하고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체 DNA를 보유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에 그 수를 늘림으로써 에너지 공급을 원활하게 했다. 역시 자체 DNA를 보유한 엽록체도 세포 내에 그 수를 늘려서 양분 생산 총량을 크게 늘렸다. 세균과 고세균보다 월등하게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자 진핵세포는 서로 연관된 두 개의 새로운 진화 방향을 개척해서 생명의 복잡도를 높였다. 하나는 유성 생식의 발명이고 다른 하나는 다세포 생물의 출현이다. 이 둘의 결합으로 다양한 유전자 조합의 시도와 원활한 에너지 공급이 이뤄지자 다양한 생존-번식 전략을 구사하는 다세포 생명체들이 진화해서 생명의 다양성을 높였다.

성의 발명

생물의 번식은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과정으로 무성 생식과 유성 생식의 두 유형이 있다. 세포에서 유전정보가 담긴 DNA는 여러 개의 염색체에 분산되어 있다. 무성 생식은 하나의 모세포가 분열해서 두 개의 다음 세대 딸세포가 되는 방식으로, 이 과정에서 각 염색체는 복제되어 똑같은 염색체 두 개가 각각의 세포에 분배되므로 두 딸세포는 똑같은 유전정보를 가진다. 무성 생식에서는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으므로 DNA의 돌연변이나 다른 세포나 바이러스와 DNA의 수평적 교환을 통해 유전자 다양성을 얻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 유성 생식하는 세포에는 유사한 기능을 하는 대립 유전자들이 대응되어 배열된 염색체 두 개가 서로 짝을 이뤄 쌍으로 존재한다. 유성 생식하는 생식세포는 2번의 분열을 하는데, 1차 분열에서 각 염색체를 모두 복제하여 똑같은 세포 2개로 된 후, 2차 분열에서는 각 염색체 쌍에서 하나씩만 나눠 가져서 절반의 염색체만을 담은 4개의 세포가 된다. 이후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절반의 염색체만을 담은 다른 생식세포를 만나 합쳐지는 수정 과정을 통해 부모 세대와 같은 염색체 수를 가진 다음 세대의 세포가 된다. 대부분의 유성 생식에서 생식세포는 암, 수로 구별되는 두 개의 성으로 분화되어 있는데, 암컷은 절반의 염색체와 더불어 세포 소기관과 세포질을 포함한 큰 난자를 제공하고, 수컷은 절반의 염색체만을 담은 작은 정자를 제공한다. 암수 양성의 분화는 같은 자원을 투자해서 생식세포를 만들 때 난자의 수는 줄이되 정자의 수를 크게 늘려서 수정될 확률을 높이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유성 생식하는 다세포 생물은 정자와 난자를 한 개체에서 모두 만드는 자웅동체와 난자를 생산하는 암컷과 정자를 생산하는 수컷이 분리된 개체로 존재하는 자웅이체로 나뉜다. 다세포 생물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웅이체에서는 많은 경우 암컷과 수컷 개체 사이에 형태상 비대칭이 생겼고, 이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통한 자연선택에 더해서 짝짓기를 통한 성 선택이 작용하는 계기가 됐다.

유성 생식의 첫 화석증거는 10억 년 전쯤 것이지만 유성 생식의 발명은 그 이전으로 보인다. 유성 생식은 진핵세포와 함께 등장한 번식 전략의 중요한 변화로 생명의 정보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유성 생식은 부모 염색체의 절반씩만 전달되고, 자웅이체의 경우 부모 세대의 절반인 암컷만 다음 세대를 생산하기 때문에 이중 비용(two-fold cost) 문제가 제기됐고,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왜 진화했는지가 의문이었다. 유성 생식이 진화한 이유는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시도해서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진화의 속도를 높이고, 쌍으로 존재하는 대립 유전자로 인해 해로운 유전적 변이의 축적을 막는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DNA에 담긴 생명 정보가 방대해지고 구조적으로 복잡해진 상황에서 대립 유전자의 백업을 통해 유전자 집합 전체의 기능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DNA의 돌연변이는 억제하고 검증된 유전자의 다양한 조합을 통한 유전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전략이 생식(reproduction)에서 조합(recombination)으로의 전환이었다. 유성 생식은 생물량이 커지면서 생물종 간의 경쟁적인 공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생존 전략으로 채택됐을 것이다. 느리게 재생산하는 복잡한 생물일수록 유성 생식이 이익이고, 집단의 크기도 중요해서 집단이 클수록 유성 생식의 장점이 빠르게 발휘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유성 생식은 짝짓기를 통한 성 선택의 길을 열었다. 짝짓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 선택은 짝짓기 전략의 우월성 경쟁을 통해 무성 생식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력한 진화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다세포 생물의 출현

생물의 크기는 포식-피식 경쟁에서 중요한 요소로 클수록 유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세포의 크기 성장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생존에 필요한 물질의 공급은 세포막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표면적에 비례해서 커짐에 비해 소비는 세포질 전체에서 일어나므로 부피에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에 세포의 크기가 어떤 한계를 넘으면 공급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 없다. 세포의 크기를 더 키울 수 없다면 많은 세포가 모여 군집을 이룸으로써 외형의 크기를 키워서 피식-포식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고, 이는 다세포 생물의 출현하는 진화의 동인으로 작용했다. 진핵세포로 이루어진 복잡한 다세포 생물들은 진화 과정에서 단순히 집단의 크기를 키움에서 더 나아가 세포의 기능분화와 집단협력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하고 생존과 번식에서 새로운 창발적 기능을 발명했다. 이 같은 집단의 규모 증가와 분화 양상은 인간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집단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집단의 규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기능분화와 집단협력을 바탕으로 도시와 국가 같은 창발적 기능을 발휘하는 거대집단이 등장했음은 복잡한 다세포 생물의 진화와 비견된다. 다세포 생물의 진화는 경쟁과 협력이 어떻게 동시에 진화의 동력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줬다.

원핵세포인 일부 남세균 등도 다세포 집단을 이루는데, 세균의 단순한 군집은 35억 년 전에 이미 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물, 육지 식물, 대부분의 균류를 포함하는 복잡한 다세포 생물은 모두 진핵세포로 되어 있다. 진핵생물에서는 적어도 25차례 이상 독립적으로 다세포 생물이 진화했는데, 단순한 군집을 넘어 세포의 기능이 분화된 복잡한 다세포 진핵생물이 등장한 시기는 식물이 9.3억 년 전쯤이고, 가장 단순한 동물인 해면동물이 7.5억 년 전쯤이다. 세포 집단이 다세포 생물로 가는 첫 단계는 서로 들러붙기고, 다음 단계는 세포 간 물질과 정보 소통망을 만들어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그다음 단계는 세포들의 기능을 분화해서 효율적인 조직을 갖추는 것이다. 복잡한 다세포 생물은 세포를 기능별로 분화하여 조직, 기관, 기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몸집을 키우면서 성장과 번식을 효율화했고 포식-피식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복잡한 다세포 생물은 생식기관, 소화기관, 순환기관, 감각기관, 운동기관 등을 발달시키며 다양한 종으로 분기했고, 그 결과 수많은 다세포 생물종들이 포식과 피식 관계로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먹이그물 구조가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다세포 생물이 되는 방법에는 많은 세포가 군집해서 집단을 형성하는 방법과 하나의 세포가 분열을 거듭해서 집단을 형성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복잡한 다세포 생물은 후자의 방법으로 진화했다. 수정된 하나의 세포가 분열과 분화를 거듭해 수많은 세포가 조직을 갖춘 성체가 되는 발생 과정은 경이로운 발명품이다. 발생 과정을 통해 세포는 동물의 경우 100~150종류, 식물의 경우 10~20종류의 세포 유형으로 분화한다. 복잡한 다세포 생물은 거의 모두 유성 생식하며, 체세포와 생식세포의 분화로 생존과 번식 기능이 분리됐다. 세포의 기능분화와 집단 형성 중 어느 쪽이 먼저 진화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집단 형성이 이루어지기 전에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진핵세포가 출현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인간 사회를 비교 대상으로 보면, 인간 개체는 출현했을 당시 이미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조직을 구성하고 직업이 분화하는 현상은 훨씬 늦게 문명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산소 호흡의 발명과 산소농도의 증가가 가져온 에너지 획득량의 증가가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 진화하는데 결정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대기 산소의 농도는 다세포 생물 출현의 제한 인자로 작용하며 다세포 생물의 출현 시기와 대기 산소농도의 증가 시기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간 집단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데, 사회 규모가 커지고 복잡한 사회가 형성되는데 농경의 발명에 따른 에너지 획득량의 증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세포 생물의 진화가 단세포 생물의 중요성이 떨어졌다거나 다세포 생물이 우월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량의 관점에서 보면 단세포 생물은 여전히 지구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다양성도 크다. 또한 많은 다세포 생물은 단세포 생물과의 공생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동물의 출현과 뇌의 발명

단세포와 다세포 생물의 포식 전략에는 규모에 의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복잡한 다세포 생물은 포식을 통한 양분공급을 전담하는 소화기관을 발명했고, 소화기관의 운용에는 신경조직과 운동조직이 필요했다. 경쟁에서 유리한 능동적인 포식을 하려면 이동 기능과 먹이 포획 기능도 갖춰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신체 조직화가 필요했고, 신체 형식(body plan)을 조절하는 혹스 유전자가 등장함으로써 이 방향의 진화가 시작됐다. 동물은 6.5억 년 전쯤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출발했는데, 이 시기는 혹스 유전자가 등장한 때이고, 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현존하는 다양한 동물문이 진화했다. 5억 4천만 년 전쯤부터 단단한 골격과 다양한 신체 구조를 갖춘 동물들이 대거 출현해서 많은 화석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이를 캄브리아기 폭발이라 하며 원생 누대와 현생 누대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잡는다. 신체 형식이 다른 다양한 동물문의 진화 시기가 캄브리아기 폭발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 시기 전후에 동물의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했음은 확실하다. 동물 다양성의 진화 동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해양과 대기 산소농도의 증가로 다세포 생물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커졌다는 점이다. 다른 요인으로 산소농도의 증가로 야기됐던 눈덩이 지구 상태에서 벗어나면서 대륙의 풍화작용이 활발해져 해양에 인과 칼슘 등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동물들이 단단한 외골격이나 뼈를 갖추도록 진화하는데 작용했고, 더 나아가 턱과 이라는 신무기의 발명도 가져왔다. 또 다른 흥미로운 요인으로 눈의 발명이 꼽힌다. 많은 동물이 눈을 장착하게 됨으로써 포식-피식 전략이 다양화됐다. 이 같은 여러 동인이 작용하자 군비 경쟁적인 진화가 이루어졌고 동물의 다양성은 크게 확대됐다.

동물의 진화에서 피식-포식의 군비경쟁이 가져온 결정적인 전환점은 신경계와 뇌의 진화였다. 먹이를 발견하고 포획하기 위해서나 포식자를 감지하고 회피하기 위해서는 감각 조직과 운동 조직 사이에 빠른 정보교환이 필요했고, 이 역할을 담당하는 신경조직이 출현했다. 효율적인 포획 또는 회피를 위해서는 학습을 통한 경험의 축적이 유리했고, 이는 감각된 정보를 저장하고 판단하는 일을 전담하는 기관인 중앙 신경계, 즉 척수와 뇌의 발명을 가져왔다. 한편 중요성이 커진 중앙 신경계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출발한 척추는 뼈의 발명으로 이어졌고, 내부 골격을 통해 커진 몸을 지탱할 뿐 아니라 이를 빠른 몸의 움직임을 만들고 포획 무기로도 활용하는 척추동물이 진화했다. 척추동물의 다양화된 포식-피식 전략은 뇌의 진화에 양의 되먹임으로 작용했다. 신체의 크기와 힘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인지 능력을 키우는 것도 유용한 전략임을 보여줬다. 뇌의 발명은 유전자에 기록되는 생명의 정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환경 정보를 다루는 새로운 정보체계의 구축이었다. 이 획기적인 발명은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나왔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진화의 방향을 개척했다.

생물의 육지 상륙

지구의 생명은 물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기반으로 하기에 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생명은 오랜 기간 물속에만 머물러 있었다. 첫 생명체가 등장하던 시기에 이미 대륙 형성이 시작됐었고 진핵세포와 다세포 생물이 진화했던 오랜 시간 동안 대륙은 계속 확장됐지만, 물이 순환하는 주요 경로인 강과 호수를 제외한 대륙 대부분에서는 수중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물은 없었고, 건조한 환경에 적응한 일부 세균과 균류를 제외하면 대륙은 생명체의 불모지였다. 물 밖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도 있었다. 우주선과 자외선이 생명의 분자를 파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의 자기장은 태양에서 오는 태양풍 대부분을 막아주었고 광합성으로 발생한 대기의 산소는 오존층을 형성하여 자외선을 차단했기에, 물 공급 문제만 해결되면 대륙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물속에서 벗어나 대륙의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기 산소의 농도가 올라가 산소 호흡을 통해 육지에서 생존에 필요한 만큼 큰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고, 물을 끌어오고 체내에 유지하는 기능을 갖춘 다세포 생물이 진화한 이후에야 육지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는 육지에 적응한 인류가 우주 환경에 적응하는 어려움과 비견될 수 있다. 지구를 벗어날 수 있는 큰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발사체와 인간에 적대적인 우주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춰진 후에 인류는 우주에 진출할 수 있었다. 생물의 육지 진출에 사다리 역할을 했던 것은 물과 뭍의 경계인 해안이나 습지였다. 두 다른 환경이 만나는 경계 지역은 다양한 진화 실험을 통해 육지에 적응할 수 있는 생물을 탄생시켰다.

육지에 처음 진출한 생명체는 양분을 스스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하므로 당연히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었다. 육지 식물은 민물에 사는 다세포 녹조류로부터 진화했으며, 육지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군집을 넘어 여러 조직을 갖춘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 됐다. 최초의 육지 식물은 이끼류로 5억 년 전쯤인 캄브리아기 중기에서 오르도비스기 초기 사이에 육지에 진출했다. 이들은 바닥에 물기가 충분한 곳에서만 살 수 있었고 포자를 이용한 번식도 물에 의존했지만, 짧지만 줄기를 형성해서 물 밖에서 광합성을 했다. 4.4억 년에서 3.6억 년 전쯤 실루리아기와 데본기 사이에 양치류를 선두로 관다발 식물이 진화해서 물가를 떠나 건조한 땅으로 진출했다. 관다발 식물은 물을 공급하는 뿌리와 관다발을 갖췄고, 리그닌을 포함한 세포벽을 갖춰 수직 성장을 할 수 있게 단단해졌으며 물의 증발을 막는 표피를 갖췄다. 습한 땅에서 건조한 땅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번식 방법의 변화도 필요했는데, 데본기 후기에 씨앗을 발명해서 물로부터 먼 지역까지 진출한 종자식물이 등장했다. 포자가 물을 통해 이동하는 방식 대신 대기를 통해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 발명됐고, 수정된 배아인 씨앗은 독자 생존이 가능할 정도까지 성장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포함하고 성장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발아할 수 있었다. 식물이 육지에 자리를 잡자 이를 포식 대상 또는 기생 숙주로 하는 동물이 육지로 진출했다. 곤충을 비롯한 절지동물은 식물과 비슷한 시기인 5억 년 전후에 육지에 상륙했다. 3.7억 년 전쯤인 데본기 후기에는 어류에서 진화한 4지 동물이 상륙해서 양서류와 파충류, 포유류의 조상이 됐다. 양서류는 번식이 여전히 물에서 이루어졌기에 물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지만, 파충류와 포유류는 건조한 육지에 적응한 신체 구조와 생활 방식, 번식 방법을 발명함으로써 물에서 멀리 떨어진 영역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식물이 씨앗을 발명했다면, 동물은 물이 없는 곳에서도 수정란이 부화할 수 있도록 물과 양분을 포함하고 이의 유출을 막는 양막과 단단한 껍질을 갖춘 알을 발명했다. 육지에서 움직이려면 더 강한 근육이 필요했다. 어류의 지느러미는 육지 척추동물의 발로 진화했다. 일부 곤충은 날개를 발명해서 땅 위의 공중으로 도약했고, 조류와 일부 포유류도 그 뒤를 따랐다. 이제 지각 주변의 모든 공간에 생명이 가득하게 됐다.

생물이 육지를 정복하면서 생물 진화의 중심지가 해양에서 대륙으로 옮겨갔고, 대륙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번성했다. 대륙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식물이 뿌리를 내리면서 토양은 생명의 공간이 됐고, 대륙은 점차 녹색으로 뒤덮였다. 육지에 자리를 잡은 동물과 식물 사이에는 포식과 기생을 넘어 공생 관계도 생겨났다. 나무의 출현과 번성은 새로운 거주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수많은 곤충과 영장류의 진화로 이어졌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속씨식물의 진화는 동물과 식물 사이의 먹이를 얻는 대가로 번식을 돕는 협력 관계에 기반을 둔 것이다.

번성과 멸절

수중과는 다른 환경인 육지로 생명이 진출함으로써 새로운 생존과 번식 방법 방법이 등장했고 생명의 다양성은 증가했다. 생태학에는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라는 각 생물종 집단마다 생존과 번식의 바탕이 되는 공간 영역과 자원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 있다. 생명의 역사는 생물들이 지구의 해양과 대륙에서 새로운 생태적 지위(niche)를 개척해온 기록이다. 생물들은 광합성을 하는 독립 영양이든 기생이나 포식 같은 종속 영양이든 물질과 에너지를 확보하여 생존과 번식을 이어갔으며, 다른 생물들과의 관계에서는 경쟁(포식과 피식), 협력(공생), 착취(기생) 등의 전략을 개발했고, 공진화를 통해 안정성을 높였다. 그럼으로써 지구에는 식물과 동물이 복잡하게 얽혀 먹이그물을 형성해서 경쟁과 협력이 이루어지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생태계에서는 진화를 통해 새로운 종이 지속해서 등장했고, 일부 종은 성공적인 생존과 번식 전략으로 번성하기도 했고, 때로는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에 실패해 멸종하기도 했다. 현생 누대에는 풍부한 화석 기록을 통해 생물종의 번성과 멸종의 역사를 추적해볼 수 있다. 한 시점에서 생물 종과 속의 수는 지구환경과 생태계의 변화에 따라 증가와 감소의 부침을 거듭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종의 99% 이상이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종의 평균적인 유지 기간은 5백만 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화석 기록을 보면 각 시대에 성공적으로 번성했던 동물들이 존재한다. 캄브리아기 폭발 이후 다양한 해양 동물문이 진화했는데, 그중 성공적으로 번성한 대표적인 동물로는 절지동물인 삼엽충과 척추동물인 어류가 있다. 대륙에서는 중생대를 지배했던 공룡과 신생대에 번성한 포유류가 있다. 이들은 해양과 대륙에서 다양한 생태적 지위를 새로 개척하며 수많은 속과 종으로 분기하며 한 시대를 지배했다.

거대 규모의 지질 활동이나 소행성의 충돌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는 전체 종의 대다수가 멸종하는 대멸종을 일으켰는데, 현생 누대에는 5차례의 주요 대멸종이 있었다. 5차례 주요 대멸종의 첫 번째인 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 (4.45-4.44억 년 전) 대멸종은 해양 생태계의 대멸종으로 당시 종의 85%가 멸종했다. 이어진 데본기는 어류의 시대였다. 두 번째는 데본기-석탄기 (3.72-3.59억 년 전) 대멸종으로 종이 70%가 멸종했다. 세 번째인 페름기-트라이아스기 (2.52억 년 전) 대멸종은 최대의 대멸종으로 해양에서는 캄브리아기에 등장했던 대표적인 절지동물이었던 삼엽충이 완전히 사라졌고, 여기서 살아남은 파충류의 번성을 가져왔다. 네 번째는 트라이아스기-쥐라기 (2억 년 전) 대멸종으로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의 대부분 종이 멸종함으로써 공룡의 시대를 열었다. 다섯 번째인 백악기-팔레오세 대멸종은 소행성의 충돌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기후변화와 해양 산성화로 해양에서는 데본기부터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왔던 암모나이트가 멸종했고, 대륙에서는 공룡의 멸종하면서 포유류의 시대가 열렸다. 현재 인류의 활동에 의한 6번째의 주요 대멸종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생물종의 번성과 멸종은 바로 이어지는 영향도 있지만 먼 시간을 넘어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3.6~3억 년 전 사이는 석탄기라 불린다. 이 시기는 대륙에 나무와 곤충이 번성했던 시기로 내륙에 최초로 숲이 형성됐다. 나무에는 세포벽을 단단하게 하는 리그닌 성분이 있어서 땅 위로 높게 솟아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리그닌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진화하기 전이어서 나무들이 죽은 후에 분해되지 않고 탄소가 나무에 저장된 채 습지에 매장됐다. 그로 인해 대기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줄어들었고 산소의 농도는 한때 33%까지 치솟았다. 높은 산소농도로 에너지 소비율을 높일 수 있게 되자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곤충이 출현했다. 습지에 매장된 나무는 지질 작용을 통해 석탄으로 변모했다. 3억 년을 땅속에 묻혀있던 석탄은 인류에게 발견되어 문명의 도약을 이루는 에너지원이 됐다. 하지만 매장돼 있던 탄소의 급격한 소비는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를 빠르게 증가시켰고, 이로 인한 지구 온도의 상승과 기후변화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게 됐다.

대륙의 이동도 생명의 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3.35억 년 전 석탄기 초기에 지각의 대륙이 모두 합체해서 판게아라 불리는 초대륙이 형성됐고, 1.75억 년 전인 쥐라기 중기까지 유지되다 해체되기 시작했다. 초대륙의 형성으로 많은 생명을 수용해온 해안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많은 종의 멸종을 가져왔다. 반면 거대해진 대륙의 내륙은 건조한 기후가 이어졌고, 이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종자식물과 양막류의 번성을 가져왔다.

파충류와 포유류, 속씨식물과 볏과 식물의 번성

여러 종을 멸종에 이르게 하는 변화는 다른 종들에게는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2.5억 년 전에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은 전체 종의 90% 이상이 멸종한 가장 극심한 대멸종이었다. 발생 원인으로는 시베리아에서 거대 규모의 용암 분출로 인한 기후변화가 유력하다. 이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파충류는 이후 이궁류와 단궁류로 분기했고, 이궁류는 공룡, 조류, 도마뱀 등으로, 단궁류는 포유류로 진화했다. 최초의 포유류는 2.25억 년 전쯤 등장했고, 굴속에서 생활하는 털이 있는 온혈 동물이었다. 2억 년 전 트라이아스기-쥐라기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은 공룡은 초대륙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1.6억 년 전에는 유태반류가 등장해서 태반을 통해 태아의 영양을 공급했다. 건조한 초대륙 판게아에서 시작했던 공룡의 시대는 대륙이 해체되던 시대를 겪다가 6천5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일어난 백악기-팔레오세 대멸종으로 끝이 났다. 백악기-팔레오세 대멸종에서 포유류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더 큰 타격을 받은 파충류가 차지했던 공간을 차츰 포유류가 채워나갔다. 신생대 따뜻한 기후에서 포유류는 폭발적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을 통해 다양한 종으로 분기했고 포유류의 시대를 열었다.

대륙에 꽃을 피운 속씨식물은 1.2억 년 전에 등장했다. 꽃과 과일은 곤충, 새, 포유류 등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대가로 화분을 전달해 수정하고, 수정된 씨앗을 새로운 서식지로 보낼 수 있는 효율적인 번식 수단이었다. 속씨식물이 성공을 거두자 동물 생태계에도 이들과 공생하는 다양한 종이 공진화했다. 속씨식물의 하위 과로 인류의 주요 식량자원이 되는 볏과 식물은 6,600만 년 전쯤인 백악기 말에 출현했다. 풀 또는 초본으로도 불리는 볏과 식물은 초식동물의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생존-번식 전략을 개발했는데 땅속줄기를 통한 확산과 뿌리 근처 밑에서 자라는 잎으로 신속하게 재생했다. 그 결과 700여 속, 12,000종이 있는 고등 식물 중 가장 큰 과가 됐다. 볏과 식물의 번성은 초원의 확장과 몸집이 커진 초식동물의 진화를 가져왔다. 현재 초원지대는 남극과 그린랜드를 제외한 대륙의 40.5%를 차지한다. 200만 년 전쯤에 서식지가 열대 우림에서 사바나 초원으로 바퀴자 인류의 조상도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의 생태계에 합류했다. 인류의 진화의 대부분이 초원에서 이루어졌으며, 볏과 식물의 씨앗인 곡물은 인류의 주요 식량이 됐다. 농경의 기반인 곡물과 가축 모두 볏과 식물의 번성이 가져온 결과로, 인류와 문명의 역사는 이렇게 생명의 역사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이다. 생명의 역사가 보여주는 전체적인 그림은 생명체 각 종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각자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협력으로 서로 얽혀 있는 거대한 복잡계인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도의 문명을 건설했다 해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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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배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