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인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인 지구는 생명체인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시공간이다. 우리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인 지각이 만든 환경 속에서 지각에 있는 원소로 구성되고 태양으로부터 오는 복사를 에너지원으로 삶을 유지한다. 때로는 격렬한 지질 활동과 극심한 기후변화로 우리를 극한상황으로 내몰기도 했지만, 지구는 46억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우리를 창조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다듬어냈다. 지구의 경계인 지각의 모습은 탄생 이후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그 변화의 양상은 지질, 광물, 생명의 공진화를 담고 있다. 지구의 역사는 별이 합성해놓은 원소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분자를(물질을) 만드는지가 결정되는 과정이다.

 

 

지구의 탄생

우주의 탄생이 있었듯이 지구도 탄생이 있었다. 우주의 탄생이 빅뱅으로 묘사되는 찰나였다면 지구의 탄생은 태양이라는 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크고 작은 암석들이 뭉치면서 행성이 만들어지는 (1억 년 정도의) 긴 과정이었다. 지금부터 46억 년 전 우리은하 나선형 팔의 변두리에 있던 거대한 분자구름의 한 조각이 중력에 의해 뭉치면서 태양계의 형성이 시작됐다. 거대 분자구름에는 앞세대의 무거운 별이 죽음에 이르러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며 자신이 합성해놓은 무거운 원소들을 넓은 지역으로 흩어놓는 사건이 일어났고, 초신성의 잔해들이 유입되며 수 광년 크기의 분자구름 조각을 압축시켜 수축이 시작됐다. 분자구름 조각 속의 기체와 먼지는 뭉치면서 자연스럽게 중심에 대해 회전한다. 전체 질량의 99.8%에 육박하는 대부분의 물질은 중심부에 집중되어 별을 만들지만 각운동량 보존 법칙을 따라 (0.2% 정도의) 일부의 물질은 중심을 지나고 회전축에 수직인 면에 회전하는 원시행성 원반을 형성한다. 원시행성 원반 안에서도 물질의 밀도 요동은 중력에 의해 증폭된다. 회전하면서도 물질은 더 많은 곳으로 모여들기를 지속하여 처음에는 작은 덩어리들이 만들어지고, 작은 덩어리들이 서로 충돌하며 병합되어 크기가 10km에 달하는 큰 덩어리인 미행성이 되고, 미행성들의 충돌과 병합으로 거대한 덩어리 하나가 생기면 자신의 궤도 주변의 크고 작은 덩어리들을 모두 끌어모아 최종적으로 행성과 행성을 공전하는 위성이 만들어진다.

태양계 형성 과정은 형성 이후 변형이 적게 일어나 당시의 환경에 대한 정보를 간직한 소행성, 혜성 등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태양계 형성 모형을 시뮬레이션한 후 현재의 모습과 비교를 통해서 추적해볼 수 있다. 현재 태양계 행성들의 공전 면이 대체로 일치하고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공전과 자전을 한다는 점이 행성들이 원시행성 원반에서 거의 동시에 형성됐다는 증거다. 태양과 행성들에는 무거운 원소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태양이 수소와 헬륨으로만 구성된 첫 세대 별이 아니라 앞선 무거운 별들의 잔해에서 다시 탄생한 후속 세대 별임을 알려준다. 태양계의 원소 구성으로 보아 태양은 초신성의 잔해에서 탄생한 3세대 별로 보인다. 무거운 원소의 존재는 암석 행성의 형성뿐만 아니라 생명의 탄생에도 중요한 요소다.

태양계에는 최종적으로 8개의 행성이 만들어졌다. 안쪽의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주성분이 철과 암석인 암석 행성, 바깥쪽의 목성과 토성은 주성분이 수소와 헬륨인 기체 거대행성, 천왕성과 해왕성은 주성분이 물, 암모니아, 메탄 등인 얼음 거대행성으로 분류된다. 이와 같은 행성들의 성분 차이는 형성된 위치와 연관되는데, 그 기준이 되는 거리가 동결선이다. 원시행성 원반에 있는 물체는 앞서서 만들어진 태양에서 나오는 빛을 흡수해서 데워진다. 데워진 물체는 열복사를 방출하므로, 복사의 흡수와 방출의 에너지 균형이 이뤄지는 점까지 물체의 표면온도가 올라간다. 결국 물체의 최종 온도는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결정한다.1 물체의 온도가 물체의 어는점보다 높으면 물체는 끓어서 기체 상태가 된다.2 물이 얼음(고체) 상태가 되기 시작하는 태양으로부터 거리에 있는 가상의 선을 동결선이라 하는데, 대략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다. 태양에서는 빛뿐만 아니라 큰 속도를 가진 입자(주로 양성자)의 흐름인 태양풍도 나온다. 태양풍은 기체나 작은 입자들과 충돌하여 이들을 바깥쪽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행성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동결선 안쪽에서는 어는점이 낮은 수소, 헬륨, 물, 암모니아, 메탄 등은 기체 상태가 되는데, 이들은 태양풍에 의해 서서히 동결선 밖으로 밀려난다. 결국 동결선 안쪽에는 어는점이 높은 암석과 금속만 남기 때문에 암석 행성이 형성된다. 동결선 밖에서는 밀려난 수소와 헬륨, 물과 암모니아 등이 거대행성을 만들게 된다. 암석과 금속을 이루는 무거운 원소들의 양은 많지 않으므로 동결선 안쪽에 형성되는 암석 행성은 동결선 바깥쪽에 형성되는 거대행성에 비해 크기가 작다.

 

 

 

 

지구 생명의 보금자리

우리에게 지구가 특별한 이유는 태양계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유일하게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흔하지 않음으로 보아 행성(또는 그 위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데는 조건이 까다로운 듯하다. 행성에서 생명의 존재에 필수적인 조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지구의 특별함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자.

생명은 물이라는 용매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기반으로 하기에 액체 상태인 물이 필요하다.3 물은 우주에서 흔한 물질이다. 하지만 물이 액체 상태로 있으려면 삼중점 이상의 적절한 온도와 압력이 필요하다.2 암석 행성의 표면이라면 적절한 표면온도와 더불어 적절한 압력을 유지할 대기가 필요하다. 행성의 표면온도가 결정되는 데는 복사의 흡수와 방출의 에너지 균형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그래서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1 행성이 적절한 표면온도를 가지려면 별(태양)로부터 적정한 거리에 놓여야 하는데, 이를 거주가능 또는 골디락스 구역이라 한다.4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적정한 거리에 있어서 300K 근처의 온도가 유지되고 표면에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해서 생명체가 살 수 있다. 지구와 크기와 구성 물질이 비슷한 암석 행성이지만 태양에 조금 더 가까운 금성은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 됐고 생명체가 살 수 없다.

태양에 가까이 있는 암석 행성에서는 태양풍에 의해 대기가 소실될 수 있다. 또한 인간과 같은 육지생물은 태양에서 오는 태양풍과 자외선이 삶을 파괴할 수 있다. 태양풍에 오래 노출되면 생명체는 방사선 피폭으로 죽게 된다. 다행히 지구는 태양풍을 막아주는 장치를 갖췄다. 지구가 만든 자기장은 전하를 띤 입자인 태양풍의 경로를 바꿔서 태양풍에 대한 방어막이 된다. 지구가 자석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지구의 내부 온도가 충분히 높아서 액체 상태인 철로 된 외핵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밀도에 따라 철과 암석이 분화된 내부 구조를 가졌으며 높은 내부 온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크기가 충분히 크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다. 거기에 더해서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가 진화함으로써 대기에 산소가 축적되고 오존층이 형성돼서 지구는 자외선에 대한 방어막도 가지게 됐다. 이렇게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여러 상황이 맞춰짐으로써 비로소 지구에는 생명의 다양성이 펼쳐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양성에는 지구의 위성인 달의 기여도 있다.

 

1 태양계의 물체들은 흡수하는 태양 복사와 방출하는 열복사의 에너지가 평형을 이루는 온도를 유지한다. 태양 복사의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고, 열복사 에너지는 온도의 네 제곱에 비례하므로, 물체의 온도는 태양으로부터 거리의 제곱근에 반비례해서 낮아진다. 즉, 거리가 4배 멀어지면 온도는 1/2로 낮아진다.

2 압력이 없는 우주에서는 물체는 기체 또는 고체 상태만 가능하다. 아래 물의 상도표에서 압력이 삼중점보다 낮은 경우 고체에서 바로 기체로 상이 변함을 알 수 있다. 물의 삼중점은 273.16K (0.01℃), 0.61166kPa (0.006기압)이다. 물이 액체 상태로 있으려면 삼중점(triple point) 이상의 압력과 온도가 필요하다. 암석 행성의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려면 적절한 온도뿐만 아니라 삼중점 이상의 압력을 유지하는 대기가 필요하다.

 

3 생명체에서 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많은 종류의 화합물을 녹일 수 있는 용매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은 생명 활동에 관련된 많은 화합물이 모여서 반응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때로는 반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물의 독특한 성질은 두 개의 수소 원자가 산소 원자를 중심으로 104.45도의 각을 이루고 있는 분자구조가 만드는 전기적 극성과 그로 인해 생기는 분자들 간의 수소결합으로부터 온다.

4 골디락스는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골디락스는 숲속을 헤매다가 오두막집을 발견했고, 식탁에는 수프가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뜨겁고, 하나는 차갑고, 하나는 적당했다. 그중에서 적당한 것을 먹고 기뻐하는 데서,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 않은 최적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달의 탄생

지구는 자신 크기의 4분의 1이 넘는 커다란 위성인 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큰 위성은 일반적인 행성과 그에 딸린 위성 형성 과정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현재 달의 기원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화성 크기의 원시행성이었던 테이아(Theia)가 원시지구와 빗겨 충돌해서 일부는 지구에 흡수되고 흩어진 파편은 지구 주위를 떠돌다 다시 뭉쳐 달이 됐다는 대충돌 가설이다.5 이 사건은 지구가 탄생한 후 2~3천만 년 정도에 일어났으며, 그 충격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면에 수직인 상태에서 23.5도만큼 기울어져 현재 상태가 됐다고 보고 있다. 달의 탄생에도 우연은 작용했다. 만약 테이아가 지구에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대부분이 흡수되어 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더 비스듬히 충돌했다면 파편이 더 넓게 흩어져서 작은 달이 여러 개 생겼을 것이다.

커다란 달의 존재는 지구와 생명의 진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충돌로 발생한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는 계절 변화를 만들었고, 이는 생명과 그 삶의 유형의 다양성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 달은 지구 자전축을 안정시켜 자전축의 흔들림에 의한 급격한 기후변화를 막았고, 이는 특히 육지생명체가 멸종을 피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달은 또한 지구에 끼치는 기조력으로 밀물과 썰물을 일으켜서 해양과 육지의 중간지대를 만듦으로써 해양생물이 육지생물로 진화하는 다리를 놓았다.

 

5 테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여신인 셀레네의 어머니로, 달을 탄생시킨 원시행성의 이름으로 제격이다.

 

 

지구의 역사를 만드는 동력

지표면의 모습은, 기껏해야 100년을 사는 인간에게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지질학적 시간 척도로는 지구가 탄생한 이래 끊임없이 변해왔다. 탄생 직후 뜨거웠던 표면이 식으면서 액체 상태였던 암석이 굳어 지각이 만들어졌고, 그 위로 해양과 대륙이 생겨났고 광물이 생성됐고 생명이 진화했다. 그리고 그 위를 덮는 대기의 조성도 변모했다. 이런 지구의 역사는 암석과 빙하 등에 기록된 지구의 옛 모습과 관련된 정보를 통해서 추적할 수 있다. 지구 환경 변화의 근본적인 동력은 에너지의 흐름으로, 지구는 내부로부터 오는 지열의 흐름과 태양으로부터 유입되는 복사 에너지가 두 주축이다. 현재 지표면에서 지열 흐름의 크기는 대략 0.05~0.1W/m^2 정도이고 태양 복사 에너지 흐름의 크기는 대략 1,000W/m^2 정도로 크기에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두 에너지 흐름은 뚜렷이 구별되는 각자의 역할을 가졌다.

지구 내부로부터 오는 지열은 지구 형성 과정에서 암석들의 충돌로 축적된 열에너지와 방사성 원소들의 붕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기원이다. 현재 지구 내핵의 표면온도는 태양의 표면온도와 비슷한 5,700K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열의 흐름에 의해 지구 내부는 열을 밖으로 방출하면서 서서히 식어간다. 지열의 흐름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데는 지구의 크기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행성이 충분히 커야 뜨거운 내부는 강한 중력과 맞물려 밀도에 따른 성분 분화와 대류가 일어난다. 지구 내부로부터 오는 지열의 흐름은 맨틀 대류와 이에 따른 지각판의 이동을 통해 지각에 지질학적 시간 척도의 변화를 만들어왔다. 이러한 변화는 지각에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냈고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지리적 환경이 조성되는 기반이 됐다.

태양으로부터 유입되는 복사 에너지는 지구의 운명을 태양의 운명과 연관시킨다. 태양의 수명이 유한하기에 결국 지구의 운명에도 필연적인 종말이 있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 정도고, 앞으로 55억 후에는 적색거성을 거쳐 백색왜성으로 생을 마감할 것으로 예측된다. 핵융합이 진행되면서 태양은 계속 조금씩 밝아지기 때문에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복사의 양도 조금씩 증가해왔다. 결국에는 지구의 기온이 상승해서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될 것이고, 태양이 적색거성의 단계에 이르러 금성 궤도 너머까지 부풀어 오르면 지구는 파국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55억 년은 인간의 기준으로 너무 먼 시간이니 걱정은 하지 말자. 태양의 수명이 100억 년으로 길다는 점은 수십억 년의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다세포 고등생물의 진화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지구의 생명은 그 시작은 지열의 흐름에 기인했지만, 태양의 복사 에너지를 활용하게 됨으로써 활짝 꽃피게 됐다. 태양 복사 에너지는 지표면 에너지 흐름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으며, 위도와 지리적 환경에 따른 공급량의 차이로 생겨난 온도 차와 그에 따른 내부의 에너지 흐름은 지표면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생명의 진화도 지구 환경의 변화에 일조했다. 시아노박테리아에서 시작된 광합성은 해양과 대기에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지구의 광물과 생물의 모습을 바꾸었다. 이어진 식물의 육지정복은 대륙을 푸른색으로 바꿨다. 지구를 정복한 인류의 번성은 또 다른 대멸종을 부르고 있고, 인류에 의한 화석연료 소비는 급격한 이산화탄소 공급으로 기후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에너지의 흐름은 지구에 다양한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에너지 분포의 불균형은 지구 내부에서는 맨틀의 순환을, 지표면에서는 해양과 대기의 순환을 유발했다. 이는 지각판의 이동, 생명의 번성 등과 맞물려 물과 토양과 이산화탄소 등 물질의 순환을 가져왔다. 지구는 암석, 대양, 대기, 생명이 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서로 얽혀있는 복잡계다. 그래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대부분은 한 가지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문명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지구의 역사에서도 우연이 작용하는, 즉 필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이해가 부족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판의 이동과 대륙의 형성, 화산활동, 기후변화 등은 전체적인 틀에서 큰 흐름은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자세한 변화 양상은 예측하기 어렵다.

 

 

지각 경계와 요동

앞선 세대 별에서 합성된 다양한 원소는 다음 세대 별에 딸린 암석 행성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해 암석과 광물이 되고, 해양과 대륙이 되고, 운이 좋으면 생명이 된다. 수소와 헬륨, 그리고 휘발성 원소 대부분은 동결선 밖으로 밀려갔기에 지구를 이루는 주요 원소는 산소, 규소, 알루미늄, 마그네슘, 그리고 철이다. 산소는 규소, 알루미늄, 마그네슘, 칼슘과 결합하여 이들의 금속성을 없애고 암석으로 만든다. 철은 산소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금속성을 유지한다. 탄생 직후 높은 온도의 액체 상태인 지구에서는 중력의 작용으로 밀도에 따른 분화가 일어난다. 서로 섞이지 않는 금속 철과 암석은 분리되어 밀도가 큰 철은 중심으로 가라앉아 핵이 됐고, 암석은 그 바깥쪽에서 맨틀이 됐다. 물과 기타 휘발성 물질들은 밖으로 분출되어 대기가 됐다.

생명체는 지구가 우주의 빈 공간과 만나는 경계에서 살아간다.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경계에서는 멋진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가 요동의 존재다. 지구의 지각은 매끈한 표면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들이 요동치는 곳이다. 지각이 완벽한 구면이었다면 중앙해령과 같은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곳이 없었을 것이고, 지표면은 해양으로 덮여서 육지생물인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지각 높낮이 요동의 크기는 수 km이고 지구 반지름 대비로는 천분의 일 (ΔR/R~10^(-3)) 정도다. 우주에서 크기가 십만분의 일 (Δρ/ρ~10^(-5)) 정도였던 밀도요동이 중력의 작용으로 큰 값으로 성장하고 네 가지 상호작용의 협력으로 별을 만들었음을 상기하자. 요동의 존재는 복잡계 탄생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각 요동의 기원은 무엇일까? 중력은 표면이 완벽한 구면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지구의 표면이 액체였다면 완벽한 구면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표면은 식어서 고체가 됐고, 뜨거운 지구의 내부는 맨틀의 대류를 통해 지각의 이동과 지질 활동을 일으켜 해양지각과 대륙지각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지각의 요동이 생겨났다.

 

 

지각 판의 이동

녹아 있던 지구의 암석 표면은 식으면서 굳어서 검은색의 현무암 지각을 형성했다. 하지만 지각 밑에서 일어나는 맨틀의 대류로 지각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맨틀 위를 떠다니게 된다. 지각의 거시적인 구조는 판들이 생성과 소멸의 순환과 다른 판과의 접촉을 통해서 축적해온 결과물이다. 두 판이 경계에서는 세 가지로 구별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각각을 발산 경계, 수렴 경계, 보존 경계라 한다. 발산 경계에서는 맨틀로부터 새로운 지각이 형성되어 올라와 양쪽으로 갈라져 옆으로 이동해간다. 갈라진 양쪽으로 지각이 솟아올라 열곡대가 형성된다. 대서양 중앙해령과 동아프리카 열곡대가 대표적인 예다. 수렴 경계에서는 한 판이 다른 판 밑으로 들어가는 섭입이 일어난다. 섭입된 판은 맨틀로 돌아가 맨틀의 순환에 합류한다. 지표면은 평면이 아니라 구면이기에 구면에 얹힌 판이 생성되거나 섭입되려면 판과 판이 서로 어긋나면서 옆으로 긁히는 보존 경계가 생긴다. 판 사이의 경계에서는 두 판 사이의 마찰이 일어나거나 마그마가 올라와서 지진과 화산이 활발히 일어난다. 판의 이동과 순환은 다양한 지질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로부터 생명이 탄생하고 번성하는 다양한 지리적 환경이 조성된다.

 

 

 

 



대륙의 기원과 진화

초기의 지구에는 현무암으로 된 지각판과 그 위를 덮은 대양만 있었다. 지각 밑에서 녹은 현무암 마그마에서는 현무암보다 규소가 많이 포함돼 밀도가 낮은 화강암이 형성된다. 화강암 마그마는 화산활동을 통해 현무암 지각 위로 올라와 대륙괴를 만든다. 밀도가 낮은 화강암이 밀도가 큰 현무암 위에 뜨는 과정은 지구 분화의 중요한 한 단계로 대륙의 기원을 설명한다. 화산활동이 활발한 섭입대를 따라 화강암 섬이 띠처럼 형성되고, 판의 이동으로 이 섬들이 모여서 대륙을 형성했다. 판의 이동으로 수렴 경계에서 성장한 대륙끼리 충돌하면서 거대한 산맥이 형성되기도 했고, 모든 대륙이 하나로 모여 초대륙이 형성됐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해양의 기원과 진화

지구는 표면의 71%가 물로 덮여 있다. 이 물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이 물은 어디서 왔을까? 우주에서 수소와 산소는 흔한 원소이고, 그들이 결합한 물도 흔한 분자다. 태양계에서도 얼음이나 암석에 포함되어 흔하게 존재한다. 지구 내부의 핵과 맨틀에는 지표면 해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이 함유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 탄생 직후에 화산활동으로 내부에서 분출된 물이 원시 해양을 형성했다. 하지만 달을 탄생시킨 대충돌 사건으로 원시 해양의 물은 모두 증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대양은 그 이후에 내부로부터 분출과 소행성 충돌로 재형성된 것으로 본다. 한때 해양 물의 기원으로 물이 풍부한 혜성이 지목됐으나 대양의 중수소를 비롯한 동위원소의 비율이 혜성과는 다르고 소행성과 일치해서 소행성 기원설이 지지받고 있다. 동결선 안쪽에 있던 소행성에는 얼음이 없으므로 지구에 물을 공급한 소행성은 동결선 바깥쪽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대기의 기원과 진화

원시 대기는 태양계가 만들어진 성운의 주성분인 수소와 헬륨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수증기, 메탄, 암모니아 등의 약간의 수소 화합물이 있었다. 하지만 원시 대기는 태양풍과 지열 방출로 제거됐고, 이 빈 곳을 대충돌 사건과 이어진 소행성 충돌, 화산활동에서 온 질소와 이산화탄소가 채우면서 2차 대기가 형성됐다. 이후 대기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시아노박테리아 등이 광합성을 발명하면서 촉발한 대산화 사건으로, 이산화탄소가 산소로 대치되면서 대기는 현재와 같이 질소와 산소로 채워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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