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한때 ‘공상과학소설’이라 불리며 천대받기도 했다. 외계인과 UFO를 소재로 삼아 『가리봉의 비밀』이란 장편 SF를 집필한 박석재 전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SFScience Fiction를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과학소설로 불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F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이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SF는 웜홀과 같은 우주 미스터리와 연관돼 일어난 범상치 않은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즐거움이 크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영국의 코넌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등이 집필한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 특히 코넌 도일이 명탐정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에 흠뻑 빠졌다. 끔찍한 살인사건을 조그만 단서 하나로 파헤쳐서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를 쫓다 보면 어느새 셜록 홈스의 조수 왓슨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생생하고 흥미로웠다는 뜻이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TV에서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를 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아이답지 않게 우주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13부작을 빼놓지 않고 ‘본방사수’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우주는 놀라운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천문학자들이 그 비밀을 밝히는 과정은 마치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처럼 흥미진진했다. 칼 세이건이 진행하는 ‘코스모스’가 방영되는 날이면 공책과 연필을 준비하고 TV 앞으로 다가와 신기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필기하면서 시청했다. 그리고 나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책으로 나왔는데, 서울 종로구 청계천 세운상가 헌책방을 돌아다닌 끝에 이 책을 중고로 구입하기도 했다. 무척 두꺼운 책이었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있었지만, 우주에 대한 비밀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코스모스’를 접한 뒤 대학교에 진학할 때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과를 선택했다. 당시 물리를 가르치던 고3 담임선생님은 천문학을 공부하면 ‘밥벌이’하기 힘들다며 반대하셨지만, ‘코스모스’와 사랑에 빠져 눈에 씐 콩깍지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천문학을 전공하며 대학원까지 갔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우주 연구를 했다. 하지만 과학자의 길을 가기보다 우연찮은 기회에 과학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별과 우주’라는 천문학 잡지를 1년간 만들다가 우리나라 대표 과학잡지 ‘과학동아’로 옮겨 천문학 분야를 담당했다. 이때부터 과학기사를 쓸 때 SF 분야의 소설, 영화 등은 좋은 소재가 됐다. 천문학 분야 과학기사는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SF가 천문기사의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칼 세이건의 첫 SF 장편 『콘택트』

과학기자로 일하면서 SF를 여러 편 접할 수 있었다. 먼저 ‘코스모스’의 주인공 칼 세이건을

다시 만났는데, 조디 포스터 주연의 SF영화 ‘콘택트’와 칼 세이건이 집필한 동일 제목의 SF 원작을 활용해 과학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SF 작가이기보다 과학저술가로 더 유명하다. 세이건은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 탐사에 깊이 관여하는 한편 외계생명체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경험과 관심사는 『코스믹 커넥션: 우주에서 본 우리The Cosmic Connection: An Extraterrestrial Perspective, 1973』,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1977』, 『코스모스1980』, 『혜성1985』, 『창백한 푸른 점1994』 등의 대중과학서 집필로 이어졌다. 1985년에 출간된 『콘택트』는 세이건의 첫 SF 장편이다. 소설 『콘택트』에는 타임머신이 등장하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그럴싸하게 묘사하고 싶었던 세이건은 친구인 킵 손 칼텍 물리학과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시간여행은 횡단 가능한 웜홀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보통의 웜홀은 불안정해 금방 붕괴하고 만다. 킵 손 교수는 대학원생 마이클 모리스와 함께 웜홀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음의 에너지를 갖는 ‘별난 물질exotic matter’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반중력 효과를 내는 별난 물질로 웜홀을 안정시킨다면 이 웜홀을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내용을 논문1으로도 발표했다.

인류가 우주탐사를 시작한 이래 외계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갔다. 특히 칼 세이건을 비롯한 행성 과학자들은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2000년을 전후해 지구 밖 생명체를 연구하는 학문인 우주생물학astrobiology이 새롭게 떠올랐다. 이에 2001년 과학동아 5월호에서는 ‘우주생물학이 추적하는 외계인의 흔적’이란 제목의 특집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극한 조건을 알아보고, 태양계 내에서 극한의 생명체를 탐사하며 망망한 우주에서 생명 있는 행성을 수색하는 연구를 풀어냈다. 우주생물학은 ET, 스타트렉,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의 존재를 검증하는 연구인 셈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전설의 밤』, 로버트 포워드의 『용의알』

그즈음부터 과학동아에 ‘코스모스 포토 에세이’란 코너를 매월 연재하면서 멋진 우주 사진과 함께 흥미로운 스토리를 전했는데, 2002년 과학동아 10월호에는 ‘은하수 사라진 구상성단의 밤하늘’이란 제목의 연재 기사를 작성하면서 아시모프의 단편 SF를 소개하기도 했다. 러시아 태생 미국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대 의대 생화학 교수를 지내기도 한 덕분인지 세이건처럼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을 중시하고 과학적 모사의 정밀성에 중점을 두는 ‘하드hard SF’를 집필했다. 아시모프는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계 3대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아시모프의 SF 중에 『전설의 밤Nightfall』이란 단편이 있다.
여섯 개의 태양이 뜨는 외계행성 라가쉬에는 오랫동안 밤이 없이 낮만 계속되어 이곳에 사는 라가쉬인들은 어둠을 경험한 적이 없다. 특이하게도 라가쉬 문명은 주기적으로 흥망을 반복했는데, 2000년마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와 문명을 파괴해 버린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라가쉬 과학자들은 많은 고생 끝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여섯 태양이 2050년을 주기로 모두 가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설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진실을 모르는 라가쉬인들 대부분은 태양이 하나둘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오자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으로 착각해 흥분했고 폭도로 돌변했다. 드디어 여섯 태양이 모두 가려졌는데, 그러자 밤하늘에 수만 개의 별이 나타났고, 수많은 별이 빛을 뿜어내며 칠흑 같은 어둠을 몰아냈다. 사실 행성 라가쉬는 구상성단2에 속해 있었다. 구상성단의 별들은 태양 주변보다 100만 배나 더 밀집돼 있어 행성 라가쉬처럼 성단 속에서는 성단의 별들이 내놓는 빛 아지랑이 때문에 은하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주에서는 1000분의 1초마다 한 번씩 맥박처럼 규칙적인 신호가 지구를 찾아온다. 발견 초기엔 외계문명이 보내는 신호처럼 너무 규칙적이라 ‘작은 초록 외계인Little Green Man’으로 오해받기도 한 펄서다. 무거운 별은 임종을 앞두고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서 중심핵이 중성자별로 바뀌는데, 빠르게 회전하며 규칙적인 신호를 보내는 중성자별이 바로 펄서다.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앤터니 휴이시 교수의 대학원생 조슬린 벨 버넬이 펄서를 최초로 발견했다. 이에 2007년 펄서 발견 40주년을 맞아 과학동아 9월호에 ‘아인슈타인의 중력파 비밀 여는 우주열쇠’란 제목의 특집을 마련했다. 당시 조슬린 벨 버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를 캐나다 맥길대의 학술회의에서 인터뷰하기도 했고, 특집 한 파트에서는 ‘행성에서 생명체까지, 상상플러스 공간’이란 제목으로 펄서와 외계행성,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놀랍게도 외계행성이 처음으로 발견된 곳이 바로 펄서 주변이었다. 그것도 지구처럼 딱딱한 행성이 발견됐다. 펄서 주변은 강력한 중력이 미치고 해로운 고에너지 방사선이 쏟아지는 환경이라 생명체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펄서(중성자별)에 사는 외계인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1980년 미국의 로버트 포워드가 쓴 SF 『용의 알』에 있다.

이 SF에는 중성자별에 사는 외계인 ‘칠라’가 등장한다. 칠라는 용자리 꼬리 근처에서 관측되는 중성자별에 사는데, 강한 중력의 세계에 적응해 납작하고 참깨 씨만 하게 작은 몸체로 기어다녀야 하지만 지적인 생명체다. 중성자별은 중력이 너무 강해 대기의 두께가 수 mm에 불과하고 산의 높이가 1cm 정도일 뿐이다. 건물은 매우 낮고 단단하게 지어야 하며, 강력한 자기장 때문에 물체를 옮길 때 자기력선을 가로지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중성자별에서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돼 있어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전자기력에 따른 화학반응 대신 강한 핵력으로 매개되는 핵반응에 의존한다. 많은 수의 원자핵으로 구성된 칠라는 화학반응보다 빨리 일어나는 핵반응 덕에 인간보다 100만 배나 빠르게 살아간다. 인간의 30초는 칠라에게 1년에 해당한다. 소설 속에서 인간의 우주선이 그들이 사는 중성자별 부근에 도착했을 때 미개했던 칠라는 며칠이 지나자(칠라에게 수천 년이 흐르자) 인간의 기술을 능가할 정도다.

완성도 높은 국산 SF를 위하여

확실히 SF는 우리에게 놀라운 상상력을 제공해준다. 하드 SF의 경우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따져보거나 미지의 행성이나 천체에 사는 외계인을 그려볼 수 있다. 이는 SF가 소설에 그치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는 매력이기도 하다. 또 최근 들어 SF 영화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이 제작되고 있다. ‘열한시AM 11:00’, ‘더 문The Moon’ 같은 국산 SF 영화는 국내 과학자들의 자문을 통해 작품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흥행 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시나리오나 제작 단계에서 부족함이 하나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올여름에 개봉된 SF영화 ‘더 문’은 그래픽은 나름 괜찮았지만, 신파조의 시나리오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SF는 과학소설이지만, 사이언스 판타지Science Fantasy 3 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SF는 가능한 한 과학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하는 반면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현실 세계의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요소도 포함한다.  다시말해 SF는 믿기 힘들지만 가능한 것을 그리는 반면,  사이언스 판타지는 원래부터 불가능한 것을 그린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판타지 요소가 강한 작품은 더 이상 SF라 부르기 힘들 것이다. 최근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돼 인기를 끈 드라마 ‘무빙’에 대해 일부에서 SF 드라마라 칭하지만, 사실 무빙은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웹툰 원작의 판타지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독자나 관객은 어떤 작품이냐보다 그 작품의 완성도를 눈여겨본다. 드라마 ‘무빙’의 흥행 요인 중 하나는 초능력 같은 설정의 유치함보다 이야기의 개연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산 SF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면 ‘콘택트’, ‘인터스텔라’ 같은 해외 SF영화에 못지않게 탄탄한 시나리오가 바탕이 돼야 한다. 원작이 탄탄한 SF가 영화로 재탄생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동아를 만들던 동아사이언스에서 편집장을 마치고는 과학기술계 기관에서 발주하는 외주 사업을 하는 콘텐츠사업팀으로 옮겼다. 이 팀을 모태로 지금의 동아에스앤씨가 탄생했고, 동아에스앤씨는 SF에 대한 애정을 갖고 다양한 사업을 벌여 왔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과학스토리텔러 양성과정’을 운영한 바 있으며, SF, 웹툰, 웹소설 등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체 ‘S&T 포커스’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과학스토리텔러 양성과정은 한국SF협회 및 SF 작가들과 함께 강의와 멘토링을 통해 SF 작법 교육부터 등단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교육생들이 직접 SF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참신한 국산 SF를 기대한다.

 

연재글

SF와 나 (1): 어느 과학자가 SF를 쓰는 이유
SF와 나 (2): 20세기 중반 SF 소설에 그려진 인공지능
SF와 나 (3): 삼체와 나 
SF와 나 (4): 내가 SF를 즐기는 방법 
SF와 나 (5): 나는 어쩌다 SF를 읽게 되었고, 앞으로도 읽게 될 것인가?

이충환
동아에스앤씨 편집위원·과학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