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와열

들어가며

    1930년 10월, 영국 전기기술자협회(Institution of Electrical Engineers)의 회장이 된 GEC(General Electric Company)의 패터슨(C. C. Paterson, 1879-1948)은 취임사에서 당시 전기공학 분야의 진보를 상징하는 두 분야로서 전기 가열과 전기 램프 기술을 언급했다. 그는 특히 당시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된 다양한 기체 방전 램프에 대해 상세히 언급했다. 이는 미래 전기 조명의 방향이 기체 방전 램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인류가 발명한 전기 조명 기술 중 가장 오래 사용했던 램프는 백열등이었다. 1880년경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사용했으니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기간이다. 하지만 오늘날 백열등은 낮은 효율로 인해 각국의 조명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현재 일반 조명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램프는 방전 램프의 일종인 형광등(fluorescent lamp)과 반도체 광원인 발광다이오드(Light-emitting Diode, LED)다. LED가 지배적인 광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형광등의 비중도 아직은 상당하다. 1930년대 발명된 형광등은 저압 수은 방전에서 방출되는 자외선이 파장 변환 물질인 형광체(phosphor)를 거치며 백색광으로 변환되는 원리를 활용한다. 형광등은 보통 80 lm/W가 넘는 높은 효율과 다양한 형상으로 인해 일반 조명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고 액정표시장치용 백라이트(backlight)의 초기 광원으로도 활용된 적이 있다. 이번 글은 현대 전기 조명의 쌍두마차 중 하나인 형광등이 탄생하고 발전해 온 역사와 함께 발광 원리를 다룬다.

1. 방전 현상와 방전 램프의 등장

    방전(discharge)이란 공기와 같은 절연성 매질에 충분한 강도의 전기장이 걸리면 이온화 과정이 일어나며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말한다. 전기장으로 가속된 전자나 이온이 원자나 분자와 충돌해 이들을 여기시키면 다양한 파장의 전자기파가 방출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75년 프랑스 천문학자였던 장 피카드(Jean Picard, 1620-168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한밤중 수은이 담긴 유리 기압계를 옮기다가 관의 위쪽에서 흘러내린 수은이 희미한 빛을 발광하는 걸 확인했다. 빛에 대한 감도가 높은 막대 세포가 작동하는 밤중이라 피카드는 이를 놓치지 않고 관찰해 기록으로 남겼다. 이 현상을 더 상세히 조사한 사람은 런던 왕립협회의 실험 큐레이터 프란시스 호크비(Francis Hauksbee, 약 1666-1713)였다. 그는 공기 펌프로 공기를 빼고 수은을 약간 넣은 유리 용기를 회전시켜 정전기를 발생시키는 발전기를 제작, 정전기에 의해 잔류 기체가 방전을 일으키는 현상을 상세히 관찰했다. 영국 왕립협회에서 발간하는 [Philosophical Transactions]에 게재한 그의 논문에 의하면 이 불빛은 매우 밝아서 옆에서 글을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래 [그림 1]은 호크비가 정전기 발생에 사용한 발전기의 기본 구성을 보여준다. 아래 유리구를 회전시키는 장치가 있고 상부 중앙에 방전 현상이 발생한 유리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림 1] 런던 왕립협회의 실험 큐레이터 프란시스 호크비가 방전 현상 연구에 활용한 장치의 개략도 @Public Domain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Francis_Hauksbee#/media/File:Hauksbee_Generator.JPG )

    호크비의 연구는 프랑스의 의사이자 물리학자인 장 앙투안 놀레(Jean-Antoine Nollet, 1700-1770)의 후속 실험으로 이어진다.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한 마이클 패러데이도 전기 방전 분야에서 기여한 바 있다. 그는 3~4 토르 정도로 공기를 빼낸 용기 속 두 전극 사이에 형성되는 다양한 저압 방전 현상과 발광 영역을 세밀하게 관찰했고 이 현상이 내부의 기체 압력과 밀접히 관련됨도 밝혔다. 그의 동료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 1802-1875)은 기체 방전으로 발생한 빛을 프리즘으로 분해, 발광 스펙트럼이 연속적인 분포 대신 몇 가지 뚜렷한 색상을 가진 선 스펙트럼의 형태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휘트스톤은 초기 분광학에 기여한 인물로 기록되었는데, 특히 전기 스파크 내에서 기화되는 금속의 선 스펙트럼을 구성하는 색상의 종류가 금속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적 방전 램프의 효시는 독일의 숙련된 유리 블로어(glass blower)이자 물리학자였던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가이슬러(Johann Heinrich Wilhelm Geißler, 1814-1879)의 발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리로 만든 방전 튜브 내에 전선을 넣으려면 유리와 전선 재질의 열팽창계수의 차이에 따른 크랙의 발생을 피하는 등 기술적으로 세심히 고려할 사항들이 많았다. 가이슬러는 백금과 소다라임(sodalime) 유리의 열팽창 계수가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해 밀봉에 문제가 없는 가이슬러 튜브를 완성했다. 게다가 획기적인 수은 공기 펌프를 발명해 훨씬 나은 진공도도 달성했다. 그는 내부에 두 전극을 삽입하고 수 kV 정도의 높은 전압으로 방전 현상을 유도했다. 그가 달성한 진공도는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 고전압을 걸면 잔류 가스를 저압 방전 상태로 바꿀 수 있었고 이로부터 발광 현상이 발생했다. 게다가 내부에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을 넣으면 다채로운 색상의 발광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의 방전 튜브는 유럽의 여러 연구소에서 보급되면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독일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줄리어스 플뤼커(Julius Plücker, 1801-1868)는 요한 빌헬름 히토르프(Johann Wilhelm Hittorf, 1824-1914)와 공동으로 가이슬러 튜브 내 기체 방전의 분광학적 특성을 상세히 조사했다. 그 결과 기체 방전의 스펙트럼은 기체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점, 따라서 기체의 조성을 조절하면 다양한 색상의 빛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가이슬러 튜브가 보편화되며 이에 기반한 전기 조명의 상용화가 두 갈래로 나뉘어 시도됐다. 첫째는 가이슬러 튜브를 데코레이션 조명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튜브 속에 봉입되는 기체의 종류에 따라 방출되는 빛의 색이 달라지기에, 가이슬러 튜브는 오늘날 흔히 ‘네온사인(neon sign)’이라 불리는 램프의 모태가 된다. 아래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유리관의 형상까지 다양하게 변형하며 다채로운 빛깔을 구현할 수 있었다.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식(Queen Victoria’s diamond jubilee)을 빛낸 조명은 다양한 색상의 빛을 발하던 가이슬러 튜브였다. 하지만 비활성 기체가 발견되기 전에 사용된 기체들은 전극에 흡착되어 빠르게 소모되었고 이로 인해 램프의 수명이 짧은 단점이 있었다. 이 문제는 1893년 대기 중에서 아르곤이 발견된 후 다른 비활성 가스도 연이어 발견되면서 해결되기 시작한다. 20세기 초 프랑스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조르주 클로드(Georges Claude, 1870-1960)는 공기를 냉각하고 액화해서 기체를 성분별로 분리하는 기술을 발명하고 부산물로 얻은 비활성 기체들을 가스 방전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조명 회사를 세운 그는 네온에 주목, 네온 방전에서 방출되는 불그스름한 빛을 활용하는 네온 램프를 1909년 완성했다. 여러 나라에 자회사를 세운 그는 특히 광고 목적의 네온 튜브를 제작해 판매했고 이 기술은 미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큰 유행을 하게 된다. 네온 대신 아르곤이나 수은 등 다른 가스를 넣어 다양한 색상을 내는 튜브들도 생산했지만 이들은 모두 통상적으로 네온사인(혹은 네온 튜브)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특히 일부 네온 램프의 내벽에는 형광물질이 코팅되었고 이는 첫 번째 상업적 성공을 거둔 형광등의 효시가 된다.

[그림 2] 1857년 프랑스 자연철학 서적에 실린 가이슬러 튜브를 묘사한 그림 @Public Domain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Geissler_tube#/media/File:Geissler_tubes.jpg)

 네온 튜브가 광고용 조명 시장을 개척한 반면 방전 램프를 일반 조명으로 응용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미국 GE사에서 일한 적이 있던 발명가 다니엘 맥팔란 무어(Daniel Mcfarlan Moore, 1860-1936)는 공기나 질소, 혹은 이산화탄소를 방전 기체로 이용한 램프를 20세기 초 선보였다. 그가 발명한 램프의 길이는 보통은 수 미터, 최대 60m에 달했고 수 kV 혹은 10 kV 이상의 전압을 걸어야 구동할 수 있었다. 공기의 방전에선 옅은 핑크색 빛이 났지만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면 백색광이 얻어졌다. 구조가 복잡하고 고전압 구동이 필요하며 설치도 번거로웠지만 무어 램프는 백열등보다는 효율이 좋아 [그림 3]에 보이는 것처럼 가게나 사무실 등의 넓은 공간에 다수 설치되었다. 그러나 기체 흡착의 진행에 따라 구동 전압을 높이거나 기체를 보충해 주어야 하는 등 설치와 운용이 쉽지 않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특히 무어 램프의 상업화가 백열등의 기술 진보를 촉진하며 금속 필라멘트형 백열등의 탄생에 기여한 측면도 있었고 이는 역으로 무어 램프의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었다.


    20세기 전후 등장한 다양한 방전 램프들 중 일반 조명에 가장 근접한 수준으로 개발된 것은 저압 수은 방전 램프였다. 수은에서 방출되는 발광 현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인물은 영국의 화학자 존 홀 글래드스톤(John Hall Gladstone, 1827-1902)이었다. 그는 1cm 낙차로 수은 방울을 떨어뜨리며 상하에 배치된 수은 저장소에 배터리로 전압을 가해 전류가 흐르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전류에 노출된 수은으로부터 밝은 빛이 나는 현상을 관측한 후 그 빛으로 사물들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서술했다. 그의 서술을 살펴보자.

 “약 1년 전 이 조명을 조사하던 중 (조명 빛이) 주변 사물의 겉으로 보이는 색을 변화시키는 기묘한 방식, 특히 관객의 얼굴과 손에 소름 끼치는 보라색과 초록색 색조를 부여하는 것에 놀랐습니다.”2

   그는 프리즘을 이용해 조명 빛을 분석했고 녹색과 청색 영역에서 수은에서 방출된 몇 개의 선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빨간색이 없는 수은 방전 특유의 청록색 빛은 수은의 에너지 준위 구조에 기인한다. 아래 [그림 4]는 필자가 과거 연구했던 수은형 형광램프에서 형광체를 코팅하기 전 관찰했던 저압 수은 방전의 발광 색(왼쪽) 및 이를 분광기를 이용해 얻은 스펙트럼(오른쪽)을 보여준다. 적색이 부족한 청록색은 주변 사물들의 색마저 자신의 색감으로 물들인다.

 

 

[그림 4] 필자가 과거 연구했던 저압 수은 방전 램프의 발광색(왼쪽)과 측정된 스펙트럼(오른쪽).
선스펙트럼 사진(오른쪽)의 출처는 https://en.wikipedia.org/wiki/Mercury-vapor_lamp#/media/File:HG-Spektrum_crop.jpg @CC BY-SA 3.0 (Timichio)

    수은 방전등의 상용화를 위한 본격적인 시도는 미국의 피터 쿠퍼 휴잇(Peter Cooper Hewitt, 1861-1921)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수 토르 정도의 압력으로 구동되는, 청록색 빛을 발하는 수은 방전등을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램프의 양극은 철로, 음극은 액체 수은으로 이루어졌다. 액체 수은의 양이 충분해 점등 직후 두 전극 사이가 수은으로 연결되며 전류가 흐를 수 있었다. 이때 램프를 기울여 수은을 한쪽으로 흐르게 하면서 수은의 연결이 끊어질 때 발생하는 아크 방전을 활용해 청록색 발광을 유도했다. 그의 전등은 백열등보다 높은 효율(그의 1903년 브로셔에 의하면 램프의 효율은 약 40 lm/W 정도였다)에도 불구하고 청록색이라는 발광색의 약점으로 인해 산업 현장이나 야외, 혹은 사진필름 관련 작업장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휴잇의 회사는 자신들의 램프가 사물의 색상을 왜곡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조명의 적색 성분이 눈의 피로를 유도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20세기 전후 등장했던 다양한 네온 튜브 및 저압 방전 램프들은 광고용 혹은 특수 응용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당시 연구자들의 주요한 목표는 백색광을 내는 기체 조성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냉음극(cold cathode) 방식의 구동을 위해 고전압 구동기가 별도로 필요했기 때문에, 가정용 전원을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방전 램프의 구동전압도 낮춰야 했다. 하나 20세기 초반의 활발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저전압으로 안정적인 백색광을 내는 방전 기체를 찾으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형광등의 등장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했다. 빛의 파장을 변환하는 형광 물질의 활용이 그것이다.

2. 형광 현상과 형광등

    형광체(phosphor)란 일반적으로 외부 에너지를 받아 이를 가시광선 형태로 변환해 방출하는 물질을 뜻한다. 형광체 발견의 기록은 17세기 초반 이태리 연금술사인 빈센티누스 카샤롤로(Vincentinus Casciarolo, 1571–1624)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화산 근처에서 발견된 결정질 돌을 소성시킨 후 햇빛에 노출시키자 빨간색 빛이 방출되는 걸 확인했다. 비슷한 현상이 유럽의 다른 곳에서도 보고되면서 빛을 내는 이 돌을 형광체라 불렀다. 형광체를 뜻하는 “phosphor”는 그리스 어원으로 “light bearer(빛의 운반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림 6] 자외선을 받아 다채로운 가시광선을 방출하는 형광 미네랄들 @CC BY-SA 2.5 (credit: Hannes Grobe/AWI-Own work)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File:Fluorescent_minerals_hg.jpg )

    형광 물질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영국 캠브리지 루카스 수학 석좌 교수(Lucasian Professor of Mathematics)였던 조지 스토크스(George Stokes, 1819-1903)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851년 자외선이 퀴닌 황산염(quinine sulphate)을 통과할 때 청색광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 이를 이용해 자외선을 관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마이클 패러데이와 협력해서 1853년에 영국 왕립협회에서 이 현상을 직접 시연했다. 그들은 산소 속에서 황을 태울 때 나오는 빛과 자외선을 석영(quartz) 렌즈로 모아 석영 프리즘으로 보내 분산시킨 후 이중 자외선 성분을 황산염에 통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석영 유리가 자외선을 흡수하지 않는다는 성질을 활용한 것이다. 이런 자외선의 시각화를 통해 자외선에 대한 지식을 확장한 스토크스의 논문은 제임스 맥스웰의 극찬을 받았다. 스토크스는 퀴닌 황산염 외에도 다양한 물질이 보이는 형광 현상에 대해 상세히 연구했고 자외선 밑에서만 읽을 수 있는 잉크를 제안하기도 했다. 오늘날 ‘스토크스 이동(Stokes shift)’이란 짧은 파장의 고에너지 광자가 물질에 흡수된 후 장파장의 저에너지 광자로 방출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기체 방전 튜브 내에 형광물질을 처음으로 넣은 사람은 방사능 연구로 유명한 헨리 베크렐(Henri Becquerel, 1852-1908)의 아버지 에드몬드 베크렐(Edmond Becquerel, 1820-1891)이었다. 그는 가이슬러 튜브 내에 형광 물질을 넣어 실용적인 광원을 만들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이후 방전 램프에 형광물질을 적용해 백색광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가령 청록색 빛이나 자외선을 받아 빨간색 빛을 내는 형광물질을 저압 수은 방전등에 적용하면 어느 정도 백색광을 낼 수 있었다. 청록색 수은등을 개발했던 쿠퍼 휴잇만 하더라도 램프 표면에 형광 염료를 적용하거나 형광성 반사판을 활용해 부족한 적색을 보강하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방전 튜브 내 형광물질이 자리잡으면 방전에 의한 형광물질의 기화나 잔류 가스의 분출로 진공도와 방전 특성이 악화되는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형광물질을 자외선을 통과시키는 방전 튜브의 외부에 코팅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1920년경, 수은과 아르곤 혼합 기체의 저압 방전에서는 구동 에너지의 60% 정도가 수은이 내는 자외선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자외선의 파장은 대부분 253.7nm였고 일부 184.9nm의 단파장 자외선이 포함되어 있었다([그림 8] 참조]. 1920년대 후반, 독일 에드먼드 게머(Edmund Germer, 1901-1987)와 그의 동료들은 수은이 내는 자외선 광원에 기반한 형광등의 초기 버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디자인은 수은 저압 방전으로부터 방출되는 자외선에 여기되어 가시광선을 내놓는 형광물질을 유리 튜브 내부에 코팅하는 현대적 버전의 형광등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다. 그들은 특히 산화물이 코팅된 열음극(hot cathode) 아이디어까지 램프 디자인에 포함시켜 특허를 출원했다. 1930년대 중반 이 개념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가 각 램프 회사별로 활발히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에게 콤프턴 효과로 알려진 물리학자 아서 콤프턴(Arthur Compton, 1892-1962, 192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당시 GE(General Electric Co.)의 컨설턴트로 활약했고 1934년 형광등의 실험에 대한 체계적인 보고서를 작성, 제출해 GE의 본격적인 형광등 개발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중반 이루어진 GE의 형광등 개발에 대한 브라이트(Bright)의 다음 서술을 보자.

 

    “램프의 크기와 모양, 음극 구조, 아르곤과 수은 증기의 가스 압력, 형광 분말의 색상, 튜브 내부에 부착하는 방법, 램프와 그 보조 장치의 기타 세부 사항에 대해 많은 실험을 수행하고 나서야 새로운 장치(형광등)를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3

 

  GE는 형광등의 상업화를 위해 다양한 기술 특허를 출원하거나 타 회사의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특히 게머 팀의 열음극 관련 특허를 구매해 확고한 법적 권리를 얻었다. 1938년 미국의 GE가 최초의 상용화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고 다른 램프 회사들도 곧 뒤이어 형광등 생산 대열에 합류했다. GE는 초기 제품으로 “white”와 “daylight” 램프라 불린 따뜻한 혹은 차가운 느낌의 빛을 방출하는 두 종류의 형광등을 포함해 총 일곱 가지 색조를 내는 형광등을 15W, 20W, 30W 등 세 소비전력을 가진 종류로 생산해 안정기와 함께 판매했다. 에디슨의 회사가 단지 백열등의 판매에 그치지 않고 램프를 구동할 수 있는 조명 시스템 전체를 판매해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것처럼, 그의 회사의 후신인 GE 역시 형광등과 더불어 안정기, 시동기(starter) 등을 묶어 일관된 조명 시스템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당시 형광등의 양 끝에 적용된 2-핀 베이스는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백열등에 비해 높은 효율에도 불구하고 형광등은 개발 직후엔 일반 조명으로 즉시 사용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외적 영향도 있었지만 형광등의 색감이 기존 백열등의 따뜻한 색감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갑다는 느낌을 준 요인도 있었다. 게다가 백열등을 설치하던 소켓에 끼워 쓸 수 없어 안정기와 함께 별도의 설치가 필요하고 깜박거림(플리커)이나 점등 시 발광까지 약간 시간이 걸리는 현상도 사람들의 구매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형광등은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의 외부 조명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지만, GE의 마케팅 부서는 형광등의 세일즈 포인트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박람회가 끝난 후 형광등은 공공 영역이나 공장, 창고 등의 공간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기간 후반, 효율적 전기 광원에 대한 수요가 큰 폭으로 늘며 형광등의 보급이 대폭 확대되었다. 1951년을 기점으로 미국 내 인공 광원이 만드는 광량의 측면에서 형광등이 백열등을 앞지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형광등은 백열등이 장악하고 있던 가정, 특히 침실로 파고들지는 못했다. 당시 가정에서 사람들의 선호도가 기존의 백열등이 주는 따뜻한 느낌의 색조에 많이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형광등은 너무 차갑게 느껴졌고 백열등 소켓과의 호환성도 문제였다. 형광등이 침실의 전등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수십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림 7] 형광등 시스템의 개략도(위) 및 형광등 내 음극에서 양극까지 전압분포를 도식화해서 표현한 그래프(아래). @Public Domain (Inkwina-Own work) 형광등 개략도(위)의 그림 출처는https://en.wikipedia.org/wiki/Fluorescent_lamp#/media/File:Fluorescent_Light.svg

    형광등이 오늘날 주된 광원으로 발전하는데 있어 몇 번의 커다란 변신이 있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형광등의 기본적인 발광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림 7]은 형광등 시스템의 개략도를 보여준다. 기존의 기체운동론에 더해 1920년대 등장한 양자역학의 도움으로 과학자들은 기체 방전의 물리적 현상을 미시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형광등 내 아르곤과 같은 비활성 기체가 수은과 함께 봉입되는 이유는 구동 전압을 낮추기 위함이다. 소위 페닝 효과(Penning effect)는 한 원소의 여기 상태 에너지가 다른 원소의 이온화 에너지보다 큰 경우 발생한다. 가령 네온의 준안정(metastable) 상태 에너지가 아르곤의 이온화 에너지보다 조금 더 크기 때문에 네온이 아르곤의 이온화를 촉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네온-아르곤은 좋은 페닝 조합이다. 형광등의 경우 아르곤의 준안정 상태의 여기 에너지(11.56 eV)가 수은의 이온화 에너지(10.44 eV)보다 약간 더 크다. 따라서 준안정 상태로 여기된 아르곤 원자가 수은 원자와 충돌하면 자신의 에너지를 수은에 전달하며 수은 원자를 이온화시킨다. 이런 과정으로 형성되는 방전 플라즈마는 이온화도가 매우 낮은 ‘약한 플라즈마’임과 동시에 전자의 온도가 중성 원자나 이온의 온도보다 훨씬 높은 비평형 플라즈마다. 이 과정에서 전기장에 의해 가속된 전자가 바닥 상태의 중성 수은 원자와 충돌하면 수은이 다양한 에너지 준위로 여기되었다 자외선이나 가시광선을 방출하며 낮은 에너지 준위로 전이한다. [그림 8]에 제시된 수은의 에너지 준위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압 수은 방전의 경우 주로 253.7nm 파장을 가진 자외선이 방출되는데, 이 자외선 광자는 유리 내벽에 코팅된 형광체에 흡수된 후 가시광선으로 변환된다.

[그림 8] 살균용 저압 수은 방전등의 전극 모습과 발광색(왼쪽) 및 수은 원자의 단순화된 에너지 준위(오른쪽). 왼쪽 사진의 출처는 @CC BY-SA 3.0 (Deglr6328-Own work)   https://en.wikipedia.org/wiki/Fluorescent_lamp#/media/File:Germicidal_UV_discharge_tube_glow.jpg

 

    저압 기체 방전 내 플라즈마 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음극으로부터 전자가 적절히 공급되어야 한다. 형광등에 사용되는 음극으로는 냉음극(cold cathode) 타입과 열음극(hot cathode) 타입이 있다. 필라멘트 구조의 전극에 산화 바륨과 같은 전자 방출 물질이 코팅된 열음극의 경우 보통 섭씨 800~1000도로 가열된 산화물로부터 열전자가 효율적으로 방출된다. 냉음극의 경우 몰리브덴이나 니켈 등의 금속을 속이 빈 금속 컵 형태로 가공해 활용한다. [그림 7]의 하단부는 직관형 형광등의 장축을 따라 형성되는 전압 분포를 단순화해서 보여준다. 그림처럼 음극 근처에는 음극 강하(cathode fall)로 불리는 영역이 형성되고 여기 걸려 있는 강한 전압(cathode fall voltage)으로 인해 양이온이 가속되며 음극과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이차 전자가 방출되고 기체 방전을 유지한다. 열음극 형광등의 경우에도 음극 근처에 음극 강하 영역이 형성되지만 여기 걸리는 전압은 냉음극 방식에 비해 현저히 작아서 소비전력이 작고 발광효율이 높다.

단, 열음극 형광등의 경우 음극에 코팅된 산화물이 모두 증발하면 수명을 다하기 때문에 냉음극 형광등에 비해 수명이 짧다. 음극 강하 영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전 구간은 양광주(positive column)라 불리는 곳으로 자외선이 효율적으로 만들어지는 장소다. 따라서 형광등은 음극 강하 영역에서 전기에너지를 써서 양광주의 플라즈마를 유지하며 그곳에서 자외선을 생성하는 원리로 작동된다. 이런 요인으로 양광주 영역이 길어질수록 형광등의 발광 효율이 높아진다. 이를 대략적으로 표현하면 형광등의 발광 효율은 (양광주 소비전력)/(양광주 소비전력+음극강하영역 소비전력)에 비례한다. 따라서 양광주 영역이 늘어날수록 자외선 생성에 쓰이는 소비전력의 비중이 올라가며 형광등의 효율이 향상된다. 1미터를 훨씬 넘는 직관형 형광등이 채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음극 방식의 직관형 형광등은 입력되는 전기에너지의 약 2/3을 자외선으로 변환하고 최종적으로 입력에너지의 1/4 정도를 가시광선 에너지로 변환한다.

 

    형광등의 광특성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자외선을 흡수해 가시광선으로 바꾸는 형광체란 파장 변환 물질이다. 형광체는 자외선을 효율적으로 흡수해야 하며 기체 방전 속 이온의 공격이나 자외선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도 지녀야 한다. 게다가 형광등의 발광 스펙트럼은 조명 아래 물체들의 색깔을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거의 전적으로 코팅된 형광체의 발광 스펙트럼에 의해 좌우됐다 . 초기 형광등에 사용된 형광체는 자연에서 흔히 발견되던 물질에 기반한 아연 베릴륨 규산염(zinc beryllium silicate, BeO4SiZn)에 오렌지색을 내는 망간이 활성제(activator) 로 들어간 물질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 베릴륨의 독성이 알려지면서 대체물질이 필요했다. 형광체의 첫 번째 혁명은 1940년대 발견된 할로인산염(halophosphate) 형광체의 적용이다. Ca5(PO4)3(F, Cl): Sb3+, Mn2+ 로 대표되는 이 형광체는 칼슘 자리를 차지하며 발광 중심 역할을 하는 안티몬(Sb3+)과 망간(Mn2+)이 1, 2차 활성제로서 각각 청색과 오렌지색을 방출한다. 아래 [그림 10]의 발광 스펙트럼은 두 활성제가 내는 보색 관계의 두 피크가 혼합되면 백색광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림 속 스펙트럼은 오렌지 색이 지배하는 따뜻한 느낌의 황색광이다. 활성제의 상대적 비중에 따라 색상이 어느 정도 조절될 수 있었고 불소 자리를 치환하는 염소는 스펙트럼의 장파장 영역을 적색 쪽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수은 플라즈마에서 방출되는 날카로운 선 스펙트럼이 함께 보이는 건 수은을 사용하는 저압 방전 형광등에서는 불가피하다.

 

[그림 10] 할로인산염 계열 형광체가 적용된 구형 형광등의 스펙트럼. @CC BY-SA 3.0
https://en.wikipedia.org/wiki/Fluorescent_lamp#/media/File:Spectrum_of_halophosphate_type_fluorescent_bulb_(f30t12_ww_rs).png


    형광등용 형광체의 두 번째 혁명은 1973년도에 도입된, 희토류를 활성제로 사용하는 무기 형광체다. 기존의 할로인산염 혹은 이것과 다른 형광체의 조합을 적용할 경우 형광등의 연색성이 낮거나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램프 회사들은 할로인산염을 대체할 희토류 기반 무기 형광체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흔히 ‘삼파장 형광체’라 불리던 이 형광체 조합의 적용을 통해 효율은 우수하면서 가시광선 대역에서 비교적 고른 스펙트럼을 갖는, 따라서 연색성이 매우 뛰어난 형광등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림 11]은 삼파장 무기 형광체가 적용된 형광등의 전형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 계열의 형광체는 자외선 복사밀도의 증가에 대해서도 내구성이 강해 형광등의 직경도 줄일 수 있게 된다. 개발 초기 38 mm(T12)였던 형광등의 직경은 순차적으로 26mm(T8), 16mm(T5)로 줄어들었고, 일부 회사는 7mm(T2)까지 직경을 줄인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직경이 줄어들며 높아지는 구동 전압을 줄이기 위해 아르곤 대신 크립톤을 사용한 제품도 개발되었다.

[그림 11] 삼파장 무기 형광체가 적용된 형광등의 전형적인 스펙트럼. @CC BY-SA 3.0 (Deglr6328-Own work) https://en.wikipedia.org/wiki/Fluorescent_lamp#/media/File:Fluorescent_lighting_spectrum_peaks_labeled_with_colored_peaks_added.png

3. 형광등의 현대적 진화

    형광등의 단점 중 하나는 광범위하게 보급된 백열등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백열등의 소켓에 끼울 수 있는 소형 형광등의 개발은 1970년대 활발히 이루어졌다. 형광등의 세관화에 더해 구동 회로 부분을 소형화하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램프의 내부에 구동부가 내장되는 타입의 형광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소형 형광등은 흔히 컴팩트 형광등(compact fluorescent lamp, CFL)이라 불렸다. [그림 12]에 전형적인 CFL 제품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소켓은 백열등의 표준 소켓에 그대로 끼울 수 있다. 1980년 3월, 뉴욕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필립스는 자신들의 CFL이 “기존 백열등의 소켓을 그대로 활용하며 백열등을 대체할 수 있는 혁신적인 유형의 램프” 라 표현했다. 램프 회사들은 CFL을 형광등이라 표현하기보다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 절약형 램프로 홍보하곤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석유 파동에 따른 에너지 위기의 파고 속에서 에너지 절약형 조명에 대한 요구가 커진 부분을 고려한 일종의 세일즈 포인트로 CFL을 홍보한 것이다. CFL은 직관형 형광등만큼 양광주 길이를 늘릴 수 없어서 발광 효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백열등과 비교하면 4배 정도 효율이 좋았다. 백열등 소켓에 간단히 끼울 수 있는 CFL의 등장으로 가정용 조명으로서 형광등의 비중이 더욱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중반까지 독일이나 영국에선 가정용 조명의 절반을 형광등이 차지했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선 CFL이 백열등보다 훨씬 선호되었다. 가령 한국의 경우 다음과 같은 표현을 통해 CFL에 대한 선호도가 서구보다 훨씬 높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백열등 전구를 구경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어요. 모든 조명이 에너지 절약형 CFL이었죠… 한국에서는 CFL이 대세예요. 1천 원 숍 같은 곳에 가니 겨우 구식 백열전구가 있더군요.” 이는 백열등 사용의 역사가 매우 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아시아 지역은 백열등의 색조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는 배경이 작용한 것 같다.

 

[그림 12] 전형적인 컴팩트 형광등 제품 모습. @CC0 (Nroose)
https://en.wikipedia.org/wiki/Fluorescent_lamp#/media/File:Compact_fluorescent_straight_crop.jpg

    형광등의 가장 극적인 변신은 전극을 제거한 무전극 형광등의 등장일 것이다. 전극은 형광등의 수명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다. 열음극 방식에서는 필라멘트에 코팅된 열전자 방출 산화물이 소진되는 때로, 냉음극 방식에서는 음극 강하 영역에서 가속된 양이온의 충돌에 따른 전극 스퍼터링의 진행으로 인해 금속 전극이 소모되는 때로 수명이 결정된다. 따라서 형광등 내부에서 전극을 제거할 수 있다면 램프의 수명이 수만~십만 시간 정도로 크게 늘어날 것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조명 회사들이 무전극 형광등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경우 주로 형광등 유리의 외부에 설치되는 유도 코일 안테나에 의해 발생하는 전자기 유도 현상으로 기체 방전이 발생한다. [그림 13]을 보면 150W의 자기 유도 형광등의 양단에 유도 코일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장의 시간에 따른 변화가 램프 튜브 내부에서 높은 세기의 전기장을 유도하고 이로 인해 기체 방전이 발생한다. 무전극 대신 금속 전극을 유리 튜브의 외부에 코팅해 입히는 외부전극 형광램프(external electrode fluorescent lamp, EEFL)도 선보인 바 있다. 이 경우 유리가 축전기 역할을 하며 정전용량식 결합(capacitive coupling)을 통해 방전이 유도되었다. 방전 공간 내부에 금속 전극이 없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림 13] 150W 소비전력의 무전극 자기 유도 형광등. @CC BY-SA 3.0 (L Michael Roberts – Own work)
https://en.wikipedia.org/wiki/Induction_lamp#/media/File:150W_Magnetic_Induction_Lamp_&_Ballast.png

글을 마치며

    이번 글에서는 가정용 조명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형광등의 역사와 구동 원리, 그리고 기술적 진보에 대해 상세히 다뤘다. 아쉬운 점은 또 다른 대표적 방전 램프인 고압 방전등에 대해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압 수은등, 고압 나트륨등, 고압 메탈-할라이드 램프 등이 포함된다. 고압 방전등의 아크 방전은 고압과 고온의 환경 하에서 형광체의 도움 없이 넓은 가시광 스펙트럼을 구현할 수 있다. 이들은 가로등, 자동차 헤드라이트, 프로젝터용 광원, 투광등, 대형 건물용 조명 등 고출력이 필요한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왔다. 이들 고압 방전등의 개발에는 고압과 고온을 견디는 유리 재질의 개발, 나트륨 등 반응성이 강한 원소와의 반응성 억제 등 다양한 기술적 이슈가 해결되어야 했다. 20세기에 성공적으로 이뤄진 고압 방전등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고 이는 다른 기회에 다뤄 보려 한다.

[그림 14] 필자가 개발에 참여했던 평판형 형광램프의 모식도.

    필자는 21세기 초반 디스플레이용 광원 개발 연구에 종사한 적이 있다. 당시 액정표시장치용 형광 램프를 개발했는데 램프의 구조와 구동원리는 기존의 형광등과 동일했지만 디스플레이 면적과 동일한 면광원 형태의 형광등을 개발하는 게 목표였다. [그림 14]에 당시 개발했던 평판형 형광램프의 모식도가 제시되어 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방전 공간이 사행구조(serpentine structure)로 연결되어 있어 양광주를 늘릴 수 있고 발광면의 밝기를 비교적 고르게 유지할 수 있어서 디스플레이용 광원으로 장점이 많았다. 개발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형광등이 흡사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새로운 형광등 개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 중 하나는 기체 방전 플라즈마 내 전자의 온도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는 전자의 평균 자유 경로(mean free path)를 결정하는 방전 기체의 압력, 튜브 내에서 전자의 벽 손실(wall loss 혹은 ambipolar diffusion loss)를 좌우하는 직경, 구동 전압의 파형이나 주파수 등 다양한 인자에 의존했다. 게다가 자외선 방출에 직접 기여하는 수은의 기체압도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상온에서 액체인 수은의 증기압을 결정하는 것은 형광등의 가장 차가운 곳, 즉 냉점(cold spot)이기에 냉점의 온도를 최적화해야 자외선이 효율적으로 방출될 수 있었다. 게다가 구동 초기 수은의 증기압이 충분하지 않으면 함께 포함된 네온 방전의 붉은색이 곳곳에 보이는 절망도 여러 번 겪었다. 램프용 재료까지 포함해 수십 가지의 개발 요소를 세심히 고려하고 최적화한 결과 필자가 포함된 연구팀은 디스플레이용 면광원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면광원이 포함된 액정 TV는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반도체 광원인 LED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LED는 액정 TV용 광원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후 평판형 TV 시장과 조명 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꿨다. 다음 이야기는 인공 광원의 마지막 주제로 LED의 발명과 개발, 응용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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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한림대학교 반도체 ∙ 디스플레이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