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Trofim Denisovich Lysenko, 1898~1976를 아십니까?” 마치 ‘도를 아십니까’를 연상시키는, 과학보다는 미신이나 사이비와 잘 어울릴 법한 이 질문은 어쩌면 리센코와는 잘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 1822~1884과 토머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 1866~1945으로 대표되는 고전유전학을 부정하던 그가 오늘날 과학사의 가장 대표적인 ‘유사 과학자pseudoscientist’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강철 원수’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한때 소련 과학계를 풍미했던 생명과학자 리센코는 어쩌다가 ‘과학의 적’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그의 삶을 차분히 반추해 보자.
리센코는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가?
리센코는 식물학자였다. 1898년 우크라이나 폴타바Poltava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폴타바 원예연구소와 아제르바이잔의 간자Gandzha 식물육종장에서 식물학과 원예학을 배우고 연구했다. 비교적 초라한 이와 같은 배경과 이력은 그가 훗날 엘리트 과학자들에 대한 원한을 품게 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리센코의 초창기 연구 업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춘화 처리법春化, the vernalization treatment과 식물의 상相 발달 이론the theory of phasic development of plants을 꼽을 수 있다. 춘화 처리법은 밀의 겨울 품종(비교적 따뜻한 초가을에 심어져 이듬해 여름에 수확)을 봄 품종(비교적 쌀쌀한 초봄에 파종하여 가을에 수확)으로 바꾸기 위한 그의 노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리센코는 겨울밀을 봄밀처럼 재배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소련 농민들이 혹독한 겨울과 춘궁기를 보다 안정적으로 살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는 나름의 실험을 설계·수행한 끝에 발아하기 직전과 직후에 겨울밀을 인위적으로 낮은 온도에 노출시키면 그 생장 패턴을 마치 봄밀처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식물의 상 발달 이론은 리센코가 춘화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그는 모든 식물 유기체는 환경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생장하는데, 그 생장 과정 전체는 유기체가 필요로 하는 상이한 환경적 조건을 중심으로 몇 개의 단계相 또는 phase로 구별된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밀의 생장 초기에 온도라는 환경적 요인이 가장 중요한 단계가 위치한다. 그 이후에는 햇빛에의 노출이 핵심인 단계가 이어진다는 식이다. 춘화 처리는 온도가 관건인 식물 생장 단계에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식물의 성질을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하는 데 필요한 대표적인 기술이라는 것이 리센코의 입장이었다. 그의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자연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인간의 편익을 위해 겨울밀을 타고난 속성과 달리 봄밀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리센코는 식물의 생장에 관한 자신의 일련의 연구를 일반화하여 동식물의 유전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고자 분투했다. 달리 말하자면, 리센코는 스스로의 지위를 실용적인 식물학 연구자에서 이론 유전학자로 격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리센코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의 유전은 언제나 유기체와 환경 사이의 물질적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유기체가 여러 환경적 조건을 ‘내재화’함으로써 유전적 특징을 구성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는 획득 형질의 유전설(한 유기체가 일생 동안 획득한 특성이 그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이론)과 맞닿아 있는 생각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리센코의 유전 이론은 오늘날 고전유전학classical genetics이라고 불리는 20세기 초 영미 과학계의 최신 유전 이론과 상충했다.
윌리엄 베이트슨William Bateson, 1861~1926과 모건 등이 멘델의 법칙을 재해석함으로써 개창한 고전유전학은 부모 개체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물질은 환경을 비롯한 후천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따라서 유전이란 유기체의 일생과는 무관하게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과정이라는 설명을 선호했다(이 시기는 ‘유전자’ 개념이나 DNA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지식이 확립되기 이전이었던 만큼 고전유전학의 입지가 오늘날 상상하는 것처럼 탄탄하지는 않았다). 리센코가 보기에 영미 유전학의 이러한 주장은 지나치게 ‘부르주아적’이고 ‘비생산적’이었다. 우월한 부모 개체로부터 우월한 자녀 개체가 태어나게끔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환경과 후천적 조건을 아무리 힘써 개선하고자 하더라도 그러한 노력은 적어도 유전적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반면에 리센코의 주장처럼 유전적 과정이 환경이라는 변수의 영향을 상시적으로 받는 것이라면, 환경을 잘 조작하고 통제함으로써 동식물 유기체를 인간의 필요에 맞게 변화시키는 데 인간이 훨씬 더 큰 가능성을 발휘하리라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위적 가변성variability 또는 가소성plasticity의 전망이 리센코로 하여금 고전유전학을 거부하고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옹호하게 했던 것이다.
리센코는 출세욕에 조급했다. 1930년대 소련의 대기근을 해결할 과학자로 스스로를 우뚝 세우고 싶었다. 상기한 식물 육종학 및 유전 이론에 입각하여 리센코는 자신이 다양한 기후를 포괄하는 드넓은 소련의 국토 어디에서든 계절과 환경에 덜 제약받으며 더 넓은 재배면적에서 더 많은 생산량을 낼 수 있는 동식물종을 유전적으로 유도해낼 수 있다고 소리 높였다. 일거에 이 한미한 우크라이나 농민 출신 과학자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1940년대에 이르러 그의 명성과 함께 비판도 고조되었다. 고전유전학의 발전 추세에 발맞춰 성장하던 소련의 유전학자들이 리센코의 이론을 반박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가운데 다수는 제정 러시아 시대 이래 명문가 출신이었고 유럽 유수 대학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과학자들이었다. 리센코는 이들과 과학의 콜로세움에서 정정당당하게 논쟁을 벌이는 대신 편법을 택했다. 리센코는 소련의 비밀경찰에 자신과 척을 진 과학자들을 ‘반혁명분자’나 서방 세계와 연계된 간첩이라고 고발했다. 이렇게 니콜라이 바빌로프Nikolai Vavilov, 1887~1943, 세르게이 체트베리코프Sergei Chetverikov, 1880~1959,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00~1975, 게오르기 카르페첸코Georgi Karpechenko, 1899~1941, 니콜라이 콜초프Nikolai Kol’tsov, 1872~1940, 니콜라이 두비닌Nikolai Dubinin, 1907~1998 등 걸출한 유전학자들이 처형되거나 박해를 받았다. 리센코는 끝까지 이들의 피해와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직시하기보다 언제나 자신은 소련 과학계의 아웃사이더이자 약자였다는 피해의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리센코의 인정 욕구와 정치 투쟁이 낳은 이 비극(과학사학자들은 이를 ‘리센코 사건the Lysenko Affair’이라 부른다)은 결국 1948년 다름 아닌 스탈린의 공식적인 승인과 지지를 등에 업고 절정으로 치달았다.
리센코에 대한 오해
여기까지 살펴본 리센코의 행적만으로도 그를 ‘유사 과학자’나 ‘과학의 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그리 지나치지 않은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감히 획득 형질의 유전설 같은 구닥다리 이론으로 고전유전학의 아성에 도전하다니 ‘불경’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계시리라.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이다. 다만 리센코에 대해 최종적인 평가를 내리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면 좋을 그에 관한 흔한 오해 두 가지를 살펴보고 싶다. 규범적 단죄보다는 가능한 한 더 정확한 과학사적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학술적으로도 더 유의미할 것이다.
첫 번째 오해는 리센코가 고전유전학을 거부하고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지지했기 때문에 그의 유전 이론이 ‘잘못된’ 과학이라는 인식이다. 이 대목에서 획득 형질의 유전설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은 획득 형질의 유전설이란 곧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의 진화론을 뜻하며 이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에 의해 논파된 ‘틀린’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은 엄밀한 과학사적 사실은 아니다. 획득 형질의 유전설은 유럽 지성사·과학사에서 2,000년 이상 보편적으로 유지되어 온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며, 비단 라마르크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E 384~BCE 322,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1834~1919,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 1849~1936, 그리고 심지어 다윈 본인까지도 포함하여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폭넓게 수용되었던 가설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긴 생명과학의 역사에 비춰볼 때,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명시적으로 부정했던 베이트슨과 모건 같은 1900년대 초 영미 고전유전학의 창시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었다. 리센코가 성장한 20세기 전반 러시아 과학계의 풍토에서 획득 형질의 유전설은 주류적 관점이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따라서 후대의 고전유전학의 성장과 성취를 소급 적용하여 리센코가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지지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적어도 과학사적으로 엄정하고 설득력 있는 판단은 아닐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현대 유전학의 (아직은 논쟁적인) 성과도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근거로 리센코를 비판하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후성유전학은 획득 형질의 유전에 준하는 효과가 분자생물학적으로 발생 가능한 일일 수도 있음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환경 등 후천적 경험이 유기체의 DNA 염기서열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지만, 일정한 메커니즘(대표적으로 DNA 메틸화)을 통해 특정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고 발현시키는 데는 작용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유전이라는 과정에 일정 정도 개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 후성유전학의 함의인 것이다. 오늘날 푸틴 치하의 러시아에서는 후성유전학을 앞세워 리센코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그의 유전 이론이 결코 틀리지 않았으며, 리센코는 미국과 서유럽 과학계의 반反러시아 정서에 의해 억울하게 평가절하된 ‘위대한’ 과학자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반응에 대해 소련 과학사의 거장 로렌 그레이엄Loren Graham, 1933~2024은 리센코의 이론리센코주의과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분리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획득 형질의 유전설은 후성유전학의 발전에 힘입어 ‘옳은’ 과학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리센코의 과학은 ‘틀렸다.’ 획득 형질의 유전설은 앞서 언급했듯 리센코만의 전유물도 아니었고, 리센코주의가 곧 획득 형질의 유전론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리센코가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받아들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토대로 수행했던 실험과 이론적 작업이 표준적인 과학의 방법론(엄정한 기록관리와 통계 작성, 재현 가능성 확보, 연구 절차의 투명성 제고, 유리한 결과와 불리한 결과를 모두 보고하는 것 등)을 밑돌았다는 점이 진정한 문제였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그레이엄은 리센코의 그 유명한 춘화 처리 실험조차 표본으로 겨우 겨울밀 두 포기를 사용했을 뿐이며, 제대로 된 통계 기록이나 대조군 설정도 없이 엉성하게 수행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리센코가 ‘유사 과학자’였다고 할지라도, 그 이유가 순전히 획득 형질의 유전설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리센코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그가 우생학eugenics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가짜’라는 점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리센코는 유전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철저히 동식물에만 적용했으며 결코 인간과 관련짓지 않았다. 1920년대에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인간의 유전적 진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전개한 과학자가 존재하기는 했다. 오스트리아 출생의 파울 캄머러Paul Kammerer, 1880~192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20년대에 캄머러는 소련의 혁명 사회가 교육·위생 등을 극적으로 개선함으로써 그 인민들을 유전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는 우생학적 견해를 펼쳤다. 그러나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의 우생학이 극단화됨에 따라, 소련공산당은 유전에 관한 일체의 생명과학 이론을 인간에 적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소련공산당이 이러한 판단을 내린 데에는 나치 우생학의 폐해에 대한 경각심도 주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과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과학’은 생물학을 포함하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리센코는 소련공산당의 이러한 교리를 충실히 받들었다. 그는 자신의 유전 이론을 인간에 적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적들을 비난하고 공격할 때 그들이 우생학적 연구를 수행한다는 혐의를 제기하고는 했다. 리센코의 흥기는 인간 유전에 대한 후천적 개선·개조 가능성의 전망과는 무관했다.
리센코의 이름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억할 것인가
리센코는 아마도 ‘유사 과학자’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비판받아 마땅한 삶을 살았던 부정한 과학자였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과학사 속의 이 ‘빌런’을 성찰 없이 너무 쉽게 소비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리센코를 ‘유사 과학자’로 낙인찍기 전에 왜 그에게 그러한 역사의 단죄가 내려졌는지 더 정확하고 다채롭게 이해하려는 노력과 기꺼움이 우리를 더 ‘과학적인’ 개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리센코는 단순히 과학을 공산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엮였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불우한 계급 배경에서 비롯된 원한 의식에 잠식된 채 다른 과학자들과의 학문적 논쟁이라는 정공법 대신 다른 부정한 방법으로 상대의 위신, 경력, 목숨에 해를 가했기에 ‘가짜’인 것이다(이런 일은 사회주의·공산주의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과학계에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리센코가 그저 획득 형질의 유전설을 수용했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과 결론이 타당한지 여부에 앞서 그가 연구 과정에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헌신을 보이지 않았기에 ‘가짜’인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을 계기로 리센코의 이름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과학사에 관심이 생긴 독자를 위해 한 가지 유의하면 도움이 될 만한 점을 정리해 보자. 우리는 리센코라는 개인, ‘리센코 사건’, ‘전 지구적 리센코 현상the global Lysenko phenomenon’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리센코 개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평가는 주로 그의 과학적 작업과 생애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바로 이 층위에 초점을 맞췄다. 한편, 리센코 사건에 대한 관심은 1930~1940년대 전후 스탈린 시대 소련 과학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과 정치의 교차를 다각도로 비판하는 작업과 직결된다. 이는 제정 러시아 시대 이래 러시아 과학사, 소련의 전문 과학 기구 및 제도의 역사, 스탈린의 과학철학, 사회주의 과학사·과학철학 전반을 망라하는 훨씬 더 정교하고 폭넓은 공부를 요한다.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 전 지구적 리센코 현상에 대한 연구는 소련의 국경마저 초월한다. 리센코의 이론은 20세기 중엽 북한, 중국, 북베트남, 동독, 쿠바 등 다양한 사회주의권 국가로 수출되어 식물학, 유전학, 농정農政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이 국가들에서의 리센코주의의 정의, 함의, 효과는 때때로 소련에서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았다. 예컨대 필자는 중국과 북베트남에서 ‘리센코주의’라는 개념이 리센코만의 유전 이론을 좁게 뜻하기보다는 바실리 윌리엄스Vasili Williams, 1863~1939라는 소련 과학자의 토양학과 긴밀히 결합된 형태로 뿌리내렸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오늘날 과학사학계가 점점 더 서양중심주의Western-centrism에서 벗어나 지구화globalization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할 때, 향후 우리가 리센코라는 이름과 관련하여 어떤 새로운 사실과 통찰을 접하게 된다면, 그것은 전 지구적 리센코 현상에 관하여 축적된 연구 성과들로부터 비롯될 공산이 크다.
참고문헌
- 로렌 그레이엄 저, 이종식 역, 『리센코의 망령: 소비에트 유전학의 굴곡진 역사』, 동아시아, 2021.
- William deJong-Lambert, Nikolai Krementsov, eds., The Lysenko Controversy as a Global Phenomenon: Genetics and Agriculture in the Soviet Union and Beyond, Vol. 1 and 2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7).
- Richard Levins and Richard Lewontin, The Dialectical Biologist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5).
- Jongsik Christian Yi, “Dialectical Materialism Serves Voluntarist Productivism: The Epistemic Foundation of Lysenkoism in Socialist China and North Vietnam,” Journal of the History of Biology, Vol. 54, No. 3 (September 2021), pp. 513~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