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현상이다. 황사가 몰려와도 태풍이 와도 일상이 멈추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스물네 시간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동차, 직장, 인간이 지구의 상수, 불변 법칙이라고 우리 세포 속에 각인시켜 왔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이하 코로나19)가 중국부터 번지기 시작했을 때, 그저 남의 나라 일이려니 했던 안일함, 교만함 따위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구 전체가 하나의 실험장, 전투장으로 변했다. 환자들과 의료진은 코로나19를 상대로 사투를 벌인다. 나머지 우리는 사회적,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익혀나가는 중이다. 전쟁 통의 학생들은 텐트를 치고 그 밑에서 수업을 했다는데, 요즘은 컴퓨터 화면 앞에서 선생님을 만난다. 누구 한 사람의 입으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변화는 총체적이다. 그래서 HORIZON의 독자층에게 코로나19이후 변화된 자신의 삶을 이백 단어로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당황스럽고 아찔한 감정의 겹을 걷어내고 나면 그 속에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고 분투하는 개개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자연도, 인간도, 새로운 평형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전이가 부드럽길 소망한다.
한지아 세계보건기구 담당관
걱정된다. 아이들 체온이 38도가 넘고 딸은 호흡기 증상까지 있다. 애들 학교 선생님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줬지만, 스위스의 소아과 의사는 여전히 보건당국 지침에 따라 만성질환군과 고령자가 아니니 집에 가란다. 당시 스위스 코로나19 확진자는 351명. 답답하다. 아들의 고열은 지속되고 이제는 나도 체온이 38.5도다. 내가 일하는 WHO의 코로나19 담당 의사는 코로나 검사를 하는 제네바대학 병원을 찾아가라고 권한다. 나는 우선 스위스 보건당국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 핫라인을 전화한다. 앵무새처럼 만성질환 보유자 또는 고령자가 아니면 자가격리를 권할 뿐이다. 확진자는 2313명. 지친다. 몸이 너무 힘들어 재택근무도 어려워진 나는 병가신청 서류를 떼기 위해 동네 병원을 찾아간다. 병원을 들어서자마자 의사는 코로나19 검사는 안 해준다면서 나를 돌려보내려고 한다. 나는 말한다, 진단서만 써달라고. 검사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확진자 4,095명. 열흘 동안 11배가 늘었다. 바쁘다. 인구대비 확진자가 가장 많은 곳이 된 스위스는 오늘도 하루 사이에 1,000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런 곳에 세계보건기구의 본부가 위치해 있다. 드디어 열이 떨어진 나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재개한다. WHO 코로나19 1차 의료지침을 만들면서 하루를 보냈다. 20일이 지난 현재, 스위스 확진자 16,176명. 먹고, 자고, 온라인 수업 듣고, 재택근무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 가족은 의료와 제약 선진국이라는 스위스에서 또 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보낸다.
한애라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3월은 본래 법조계의 성수기다. 겨울이 지나고 2월 하순에 법원, 검찰의 정기 인사이동이 끝나면 수사와 재판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고, 변호사의 사건 수임도 늘어난다. 그런데 이번 봄은 춘래불사춘이다. 로펌이며 개인변호사 사무실이며 하나같이 정말 어렵다는 지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직은 모두가 숨죽이고 있지만, 여기서 더 상황이 악화되면 이제 불가항력으로 인한 계약해제, 보험금 청구, 정리해고, 파산과 회생 등 수많은 법적 문제가 터져 나오고, 법률가들이 패전처리에 투입될 것이다. 변호사들은 흥할 때와 망할 때 두 번 돈을 번다지만, 나라경제 전부가 무너지면 변호사도 대책이 없다. 파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국가가 시의적절하게 과감히 나서는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학생 없는 학교에서 온라인강의를 녹화하며 홀로 걱정할 뿐이다.
최진영 과학과 사람들 대표
인간은 사회성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동물이다. 우리는 집단을 만들고 온갖 네트워크로 엮어 들어서 지금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물리적 자아보다 훨씬 멀고 큰 세상까지 뻗어 나간 우리의 사회적 자아들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문명과 시민사회는 개인의 건강을 지키는 막중한 책임을 개인에게만 넘기지 않았다. 현대 과학은 우리의 피부보다 더 큰, 사회 전체를 감싸는 집단 면역이라는 튼튼한 피부를 만들어왔고, 개인의 고통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여 왔으며, 서로가 이 사회를 지지하는 든든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자산을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면 소유하는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내고, 집과 차와 주방과 탈 것을 공유한다는 근사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고립을 강요받고 있다. 공유 사업의 장밋빛 미래는 가장 비관적인 사람들조차 놀랄 만한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경멸과 증오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람들 앞에 날카로운 이를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 모두가 깨닫게 된 지금,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이러스 판데믹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한 달 전에는 ‘이 일이 모두 끝나면…’ 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다. 사람은 고독과 고립을 사회적 실패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워낙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기반으로 문명을 쌓아왔기 때문에, 우리 신체는 고독을 느끼는 상황을 사회적 처벌의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경미한 스트레스 등의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된다고 한다. 재택근무와 원격회의, 영상통화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접촉과 온기를 갈구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우리가 사람냄새라고 부르던 그 온기들을 대체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최준석 과학작가-주간조선 선임기자
새벽에 일어날 일은 없어졌다. 코로나19로 조찬강연은 취소됐다.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라는 책을 작년 말에 낸 뒤에 강연 요청이 여러 곳에서 들어왔다. 새벽에 과학 이야기라니, 좀 그렇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과학과 담쌓고 지나온 사람에게 ‘핏속의 철은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요’라고 물어본다. 답을 아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포스코 아닌가요?‘라는 사람이 간혹 있었을 뿐이다. 인기 강사로 노후대책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코로나19로 일단 주춤해졌다. 다행인 건 아직 뜨지 않았기에 타격을 덜 받았다는 점이다. 잘나가는 강사들은 요즘 강연 취소로 타격이 크다. 환경에 적응이 잘 되면 될수록 그 환경에 변화가 오면 타격이 크다고 했다. 그 말을 절감하고 있다. 과학자 취재를 3년 전부터 한다. 뒤늦게 과학에 재미를 붙여서 과학자를 만나고 다닌다. 주간조선에 ‘과학연구의 최전선’ 시리즈를 매주 쓴다. 과학자 취재의 폭도 코로나19로 좀 좁아졌다. 열차를 타고 서울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요즘 회사에 매일 가지 않는다. 마감에 맞춰 필요할 때만 간다. 코로나19로 후배 기자들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집에 있으니 갑갑하다. ‘삼식이’ 노릇도 환영받지 못한다. 현재는 이해하지 못하고 내일은 알지 못한다. 오늘도 어리둥절해 하면서 또 하루를 산다.
최재웅 Shell Oil and Gas, Offshore Engineer
평상시 같으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석유시추선에서 한참 일하고 있을 때지만 코로나19 덕분(?)에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일하고 있다. 엔지니어지라고 하지만 계산보다는 주로 말로 먹고사는 직업의 특성상 재택근무는 나에게 많은 제약을 준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대화상대의 폭이 넓다 보니 입에서 나오는 말 말고도 표정, 행동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 나로서는 전화통화로만 일하는 것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번 기회를 영어 실력 상승의 기회로 이용해야지. 가뜩이나 코로나19 때문에 석유 수요는 기록적으로 낮아지고 있는데 이 업계의 실력자들은 미국 셰일가스 산업에 비수를 찌를 절호의 기회가 이때라고 생각이라도 한 듯 물량을 쏟아붓고 있으니, 내 직업이 영락없는 풍전등화의 신세가 아닐까 싶다. 요 며칠 동안 미국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이 천만 명이라는데 이 이야기가 이제 남의 일 같지 않다. 내가 속한 회사도 진행하고 있던 모든 사업을 정지시키더니 ‘줄 세우기’를 시작했다. 급락하는 자사의 주가를 막기 위해 2020년 한 해 총 8-90십억 불의 지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갑자기 본의 아니게 나도 일종의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몇 주가 참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프로젝트의 종결이나 연기는 어떤 이들에게는 곧 직장을 잃는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회사 주식을 조금 사두었던 게 최근 많이 올랐다. 희비쌍곡선을 왔다갔다하는 인간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정우성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예전에는 학술지에 실릴 논문을 평가할 때, 평가위원과 편집자, 학회나 출판사와의 연락 수단은 우편이었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굳이 비싼 국제특송을 이용하지 않아도 논문 심사가 가능해졌다. 요즘은 출판 이전에 인터넷에 논문을 게시하는 형태로 연구성과를 만난다. 태평양을 건너고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야 했던 연구의 결과물이 이제는 빛의 속도로 광섬유를 따라 흐른다. 종이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초고속 시대이다. 과거의 학술대회는 최신 연구성과가 발표되는 자리였다. 노벨물리학상 수상마저 기대되는 엄청난 성과가 미국물리학회에서 처음으로 발표되고 동시에 저널에 게시되곤 했었다. 그 놀라운 성과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곳은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참석하는 학술대회였다. 지금은 어떤가. 책상에서 클릭 몇 번으로 최신 연구결과를 알 수 있는 요즘, 학술대회란 학자들끼리 모여 서로 묻고 답하며 교류하고,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고 공동 연구자를 만나는 장으로 변모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마저도 큰 변화가 생겼다. 강의뿐 아니라 이젠 학술행사도 컨벤션센터가 아니라 모니터의 힘을 빌려서 열리기 시작한다. 논문 심사과정의 변화처럼 학술대회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당장 연간 4-5천 명의 학자들이 참가하는 다양한 학술행사를 운영하던 아태이론물리센터는 어떤 변화를 해야 하는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민기 영국 버밍엄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조교수
늘 시끄럽게 쿵덕거리던 실험 장치를 하나둘 꺼나갔다. 공장 같은 실험실이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연구실에서는 책을 바리바리 챙겨 나왔다. 역시나 재택근무한 지 보름이 지나도록 들춰보지도 않는다. 옆 방 교수에게 인사차 들렀다가 물었다. 우리,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글쎄, 가을 학기에 돌아올 수 있으면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 우린 어차피 수업도 모두 녹화하고 숙제도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채점해 왔으니까, 당장 어려움을 겪을 만한 건 없겠지? 어, 잠깐만, 그럼 교육자로서 우리의 존재 이유는 뭐야? 왜 이 넓은 땅에, 이 많은 건물에, 이 많은 사람이 모여있던 거지? 재택근무가 시작된 이후, 매일 한두 시간씩 Coursera와 edX를 방문해 컴퓨터와 물리학 수업을 듣고 있다. 세계 유수 대학 명강사들의 수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게다가 공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한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 위상물리학 분야의 동료 석좌교수 하나는 어느 수학 교수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며 위상수학을 공부 중이란다. 에효, 내가 저 사람들보다 잘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올까? Coursera는 스탠퍼드, edX는 하버드와 MIT가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MIT는 벌써 2001년에 OpenCourseWare를 통해 수업 자료와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해 왔다.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굳건한 지위를 가진 이들 대학이 이런 온라인 공개 교육을 주도하는 이유와 배짱은 뭘까. 분명, 전보다 확고해질 그들의 가치가 있을 테다. 실험을 할 수 없는 요즘 사오십 년 전 논문들을 주로 읽는다. 세대가 두어 차례 바뀌면서 잊힌 논문들. 그 속에 보석 같은 데이터들이 숨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오늘날 눈으로 보면 새롭게 (더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데이터들이다. 작년 언젠가 복도에서 동료 교수와 스치듯 나눈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시작한 연구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온 요즘엔 우연한 만남이 없다. 별다른 목적 없이 오가던 복도와 하릴없는 잡담이 오가던 소파가 그립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관한 영상 <Safety Match>, Juan Delcan& Valentina Izaguirre
전대원 위례한빛고등학교 일반사회과 교사
개학. 대학은 온라인 개강이라도 하였다지만, 초중고는 여전히 개학이 미뤄진 상태. 정확히 말하면 개학이 미뤄진 것이 아니다. 개학은 하였으나 다시 휴업이 되어 수업을 시작하지 못한 상태. 춘래불사춘. 봄이 왔으되 아직 봄 같지 않은 것은 학교의 수업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 처음에 개학이 미뤄졌을 때는 갑자기 늘어난 휴가 같은 기분도 있었다. 우리가 방학을 즐거워했던 것은 학교로 돌아갈 개학이 예정되어 있어서였다. 개학이 하염없이 미뤄지면서 휴가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매년 3월이면 방송 뉴스에서 개학을 맞이한 학교 풍경을 보도할 때, 학생들이 친구들 만날 것을 기대하며 개학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나오던 스케치 뉴스. 이것은 일종의 하얀 거짓말. 그런데 그 거짓말이 현실이 되었다. 정말로 학생들은 언제 학교에 갈 수 있는 거냐며 학교에 갈 날만을 기다린다. 어느새 학교의 개학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다.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선언을 하는 상징적인 날이 바로 개학날이다. 섣불리 정부가 개학날을 못 박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온라인이 아닌 정식 오프라인 개학날을 기다린다. 학교가 왁자지껄하며 학생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워지는 날이 바로 우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일상을 되찾은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양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생
우리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박사 졸업하는 선배가 나왔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졸업식이 취소되어 연구실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축하해 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구에서 집단확산이 퍼지면서 없는 일이 되었다. 매주 진행하는 랩미팅은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 연구실은 전산물리 연구실이라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큰 지장이 없어서 다행이다. 3월 초에는 독일에서 학회가 있었다. 2월에는 대한민국 상황이 안 좋아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마자 한국 사람이라고 2주간 격리당하면 어쩌냐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독일 학회는 취소되었고, 이제는 한국보다 독일의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평소보다 늦은 개강을 하고 나니 당분간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수업하니 확실히 몸은 편하다. 처음에는 수업이 몰입도가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듣고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만들어서 올린다. 대학원생으로서 이 하나만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느 수업의 조교가 되어 수업을 녹화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학생들이 앉아있었을 자리에, 이제는 조교 혼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다. 워낙 수업을 잘하시는 교수님이라 다시 수강생이 된 기분으로 복습하는 셈 치고 재미있게 수업을 듣고 있다.
윤진혁 숭실대학교 스마트시스템소프트웨어학과 조교수
2019년 8월. 연구소 내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모교가 보였다. 갑자기 캠퍼스가 그리워졌고, 학생들이 만나고 싶어졌다. ‘사람은 때로는 과감해야 한다.’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2019년 12월. 임용 시장은 험난했다. 예상했던 만큼 많은 불합격 연락을 받았고, 소수의 합격 통지를 받았다. 천운이었다. 꽃피는 내 고향 동작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꽃이 핀 캠퍼스와 강의실 모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화창한 봄의 교정에서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겠구나. 2020년 1월. 해외 출장 중. 외신에서 중국의 코로나19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흐른다. 아직 남의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2020년 2월. 상황이 심상치 않다. 확진자가 늘어간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다. 개강을 2주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 몇 달도 기다렸는데 2주 정도 더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다. 아픈 학생이 없길. 다들 건강히 만날 수 있길. 2020년 3월 X일. 개강은 4주 더 연기되었고, 4월 중순까지 인터넷 강의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강의실을 가 본 적도 없는데 인터넷 강의를 하라니. 2020년 3월 Y일. 몇 개의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개강 연기로 밀린 몇 주 분량을 한 번에 올렸다. 새벽에 올린 강의를 그날 저녁에 다 본 학생이 있다. 몇 주가 지나도 영상을 열어보지도 않는 학생도 있다. 모두가 제대로 내 강의를 따라오는지 걱정된다. 내 강의가 어땠는지 묻는 요청에는 답이 없다. 공허한 메아리만 들리는 것 같다. 알고 보니 교수는 한없이 외로운 직업이었다. 독방에 앉아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연구실 불을 끄고 나오며 오늘 하루 몇 마디를 말했는지 되뇌어본다.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강의는 교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이었던가. 일상이 소중한 것은 일상을 잃고서야 알게 되는구나. 만남이 소중한 것은 만남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구다. 빨리 그 소중함을 되찾고 싶다. 그리고 그런 바람 속에 나는 오늘도 녹화 버튼을 누른다.
백형렬 KAIST 수리과학부 조교수
수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많은 사람들은 수학자가 홀로 연구실이나 방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 고뇌하며 문제를 푸는 모습을 떠올릴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수학자들은 큰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조용히 수학 연구를 더 잘하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혹자는 힐버트를 수학의 마지막 왕이라고 한다. 그만큼 힐버트가 다양한 수학 분야를 아우르는 뛰어난 수학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힐버트 이후 세대의 수학은 세부 분야의 다양성과 깊이가 더욱 커져서 이제는 더이상 수학 분야 전체를 조망해서 볼 수 있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대의 수학 연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생각의 교환이다. 서로 다른 수학적 강점과 사고방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생각을 교환하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찾아갈 때, 수학은 비로소 베일에 싸여있던 아름다운 비밀들을 하나씩 내어놓는다. 그 때문에 수학자들은 서로를 자주 방문하고, 모여서 의견 나눌 기회를 만든다. 특히 누군가와 공동연구를 할 때는 며칠, 길게는 몇 주라도 같이 지내면서 함께 생각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국가 간 왕래가 어려워지고 국내에서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행사가 어려워짐에 따라 수학자들이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사라졌다. 다행히도 수학자들은 그냥 주저앉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교류를 이어나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칠판에 생각을 펼쳐 써가며 의견을 교환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그냥 화상 채팅만으로는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요즘은 태블릿에 내용을 쓰고 이를 상대방과 온라인으로 공유하면서 의견 교환을 하는 수학자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학술 대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왕왕 보인다. 정해진 시간에 연사들이 준비된 슬라이드나 타블렛으로 쓰는 내용을 공유하면서 발표를 한다. 어려운 시기에 온라인으로 생각의 교환을 이어나가는 수학자들을 응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직접 만나서 장시간 함께 고민하며 수학의 비밀을 찾아 함께 항해하던 그때보다는 훨씬 못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서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다시 한번 다양한 인적 교류를 꽃 피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근한 미국 유타대학교Univ. of Utah, 기계공학과 부교수
일주일. 코로나19가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약간은 뒤숭숭한 분위기로 시작한 봄방학이 절반쯤 지나갔을 때 학교에서 이메일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3월 8일 유타에서 첫 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3월 9일 유타 대학 교직원의 여행이 모두 취소됐다. 3월 10일, 봄학기의 나머지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3월 16일부터는 재택근무가 시행됐다. 결국 이 글을 쓰는 3월 25일, 학교 내 모든 연구실은 문을 닫았다. 그 사이 유타주는 비상사태를 선언했으며 동시에 모든 스포츠 시설과 초중고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식당과 술집은 테이크아웃만 허용된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삶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하루 종일 온 가족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틈틈이 강의를 녹화하고 학생, 동료들과 온라인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삶은 분명 익숙하지 않다. 열 명 이상의 모임이 허락되지 않기에 그렇게도 친한 지인, 가족들과도 같이 저녁 한 끼 할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보면서, 그리고 마트에 갈 때마다 비어 있는 휴지 판매대와 식품 진열대를 보면서 내 삶을 위협하고 있는 바이러스의 실체를 본다. 하지만 화상 카메라를 통해서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들과 채팅을 통해서 서로 안부를 나누는 모습은 물리적 거리두기가 꼭 사회적 거리두기와 동치는 아님을 확인시킨다. 물론 이 작은 여유조차 누릴 수 없는 수많은 내 이웃들을 생각하며 코로나19가 곧 수그러들고 우리 삶이 평온을 되찾기를 바란다. 모두들 힘내시기를. 그리고 건강하시기를.
김찬주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2016년에 4차산업혁명의 도래를 예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과 디지털, 생물학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이 일어나고 인간의 삶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그 속도와 범위, 각 시스템에 미치는 충격이 전례가 없어 인류가 지금껏 경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일부에서는 4차산업혁명이 실체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2020년 현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 다만 혁명의 주체가 바이러스이고 인간은 혁명의 대상일 뿐. 전 세계 모든 교육자는 바이러스에 떠밀려 온라인 교육 일선으로 내몰리다시피했다. 온라인 교육은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나는 온라인 강의를 남들보다 먼저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MOOC의 열풍이 불던 5년 전, K-MOOC 사이트에 일반인 대상의 물리학 교양과목을 개설했다. 누군가는 조만간 전통적인 의미의 학교는 문을 닫을 것이며, 교육의 미래가 온라인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는 나는 이 주장에 지극히 회의적이다. 적어도 10만 년 전에 형성된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온라인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나서 서로의 몸을 보고 눈길을 주고받고 대화할 때 공감하고 이해하는 존재다. 성숙한 시민으로 키우기 위한 대중 교육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학교에서 담당할 것이다. 물론 온라인 교육이 최적화된 경우가 있다. 스스로 학습하려는 의지가 강한 집단에 전문적인 교육을 하거나 TV 다큐멘터리 수준의 짧은 일반교양 교육을 할 때. 하루빨리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인간의 영토가 회복되어 학교가 학생들로 북적이길 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관한 영상, Toby Morris
김태형 테라젠바이오, 수석연구원/상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SARS-CoV-2 존재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인간 게놈의 10만 분의 1도 채 안 되는 게놈 크기를 가진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 경제를 붕괴시키고 의료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최근 다리를 조금 다쳤지만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소독하고 치료하고 있다. 두 어린 아들은 학교에 8주째 가지 않고 있다. 아마 후세에 우리 자녀들은 “코로나 세대”라 불릴 듯도 하다. 원래 계획이라면 올 초부터는 유전체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도 다듬고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도 추가해 나가면서 예정됐던 임상 시험을 지원해 바이오마커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일을 신속하게,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도 두면서 진행해야 했다. 코로나19 덕분에 기존의 일거리에 더해 모든 연구소 동료들이 한층 더 바빠졌다. 바이러스 게놈을 분석해 감염 경로를 찾는 시스템도 개발해야 하고 단백질 구조 모델링을 통해 기존 신약 및 후보 물질을 찾아보기도 하고 매일 수십 편씩 쏟아지는 논문과 새롭게 등록되는 임상 시험들을 들여다본다고 이젠 밤낮도 없고 주말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모두가 코로나19 가 예고 없이 불러온 변화다.
김재광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통계학과 교수, LAS Dean’s professor
코로나19로 인해 이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지만 나의 일상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예전과 다름없는 시간에 일어나서 예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오히려 불필요한 미팅들이 최소화되어서 생활이 좀 더 규칙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강의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는 바람에 강의 준비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었지만 강의 외의 활동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아무래도 학생들의 반응을 봐 가면서 진도를 나가는데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고 학생들 눈치를 안 봐도 되니 진도가 좀 빠른 느낌이다. 박사과정 학생들 논문 지도는 일대일로 줌미팅을 하는데 아이패드로 연결해서 굳노트에 적어가면서 하고 그걸 녹화할 수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별다른 불편을 못 느끼고 있다. 다른 공동연구자들과의 연구 미팅도 마찬가지이다. 하루에 평균 2개 정도의 미팅을 하는데 회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으로 하루가 충분히 바쁘게 지나간다. 아침 5-6시에 일어나 커피를 내려 이메일을 체크하면서 시작하는 하루 일과는 오후 3시에 끝이 난다. 그 이후에는 공원에 산책을 가거나 아니면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걸로 하루를 마친다. 이제 날씨가 풀려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 괜찮은 시즌이 되었다. 여름에 몇 개 계획해 둔 학회가 모두 취소가 되어서 이번 여름은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 듯하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전공서적 저술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한다. 그것으로 이번 여름은 충분히 바쁘지 않을까 싶다.
김명호 만화가
코로나19가 세상을 멈춰 세운 이전과 이후 프리랜서 그림작가이자 만화가로서의 내 생활은 심드렁할 정도로 무엇하나 바뀐 것이 없다. 그저 일상적으로 불투명했던 미래는 더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되었고, 아무도 없어야 할 아침 거실에 내가 싫어하는 예능을 보며 희히덕거리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며 내뱉는 한숨 정도랄까. 인터넷과 핸드폰은 일찌감치 프리랜서의 사회적 거리를 벌려 놓았다. 이제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뢰와 회의는 이메일과 전화로 이뤄지고, 홀로 원고를 그리며, 완성된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홀로 자축한다. 단기적인 일은 물론이거니와 2~3년간 만화를 연재하는 동안에도 담당자와 마주한 적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될 사회적 거리두기와 IT 기술의 물결에 대한 신표준new normal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이미 본 영화의 반전만큼 지루하고 뻔하다. 코로나19의 물결은 섬처럼 홀로 있는 예술가들을 휩쓸고 있다. 평소에도 노동법과 사회적 안전망 밖에 있었던 그들은 지금도 사실상 피해의 관심권 밖에 놓여 있다. 마치 태풍이 닥쳤을 때 거대 도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외딴섬의 피해는 미처 살피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더 진지하게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앞으로 더욱 벌어질지도 모를 물리적, 사회적 거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이런 고민 없이 그저 벌어지기만 한 사회적 거리는 결국 사회적 격리를 의미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가 인간을 섬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김두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학자인 필자에게 있어서 1930년대 대공황은 경기 침체 문제를 생각할 때 염두에 두는 기준점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도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늘 머릿속에 떠올린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비교를 통해 가장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은 코로나19로부터 시작된 현재의 경제 침체가 대공황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건이라는 허무한 사실이다. 이 사실은 많은 경제학자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는 규모나 원인 등 많은 측면에서 1930년대 대공황과 유사했다. 그래서 대공황 연구자들이 금융위기를 통제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훨씬 더 안 좋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을 그렇지 않게 막아내었다는 의미이다. 불행히도 최근 심화되고 있는 경기 침체는 선례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대공황 이후 지난 수십 년간 발전시켜온 이론과 정책수단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3개월여가 지난 현재, 이미 사태의 방점은 방역에서 경제로 넘어갔고, 점점 더 그러해질 것이다. 교통사고 환자에게 필요한 응급조치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떻게 정상적인 삶을 돌려줄 수 있을지의 길이 잘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많은 혼란과 희생이 있을 것 같다. 사후적으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실수가 일어날 것이고, 인내와 배려보다는 분노와 이기심이 앞섬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20년 후 역사학자들은 2020년에 일어난 인류역사상의 대사건을 코로나19에서 비롯된 대공황이라고 명명하지 않을까 싶다.
구본경 IMBA 그룹리더, 오스트리아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어느덧 유럽 한가운데 있는 오스트리아에도 나타났다. 학회가 취소되고, 스키 리트릿도 취소되고, 급기야 연구소가 문을 닫았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대학원생도 재택근무를 하고, 학교에 가 있어야 할 두 딸도 집에서 자가학습을 한다. 1년 동안 방문 연구차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왔던 연구원들도 한국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재투고를 독려받은 논문 원고를 들여다봐도 연구실이 문을 닫았으니 딱히 할 일이 없다. 연구실도, 집도, 거리도, 벨베데레 궁전도 모두 조용하기만 하다. 지구는 외계인이 와야 멈춰서는 줄 알았는데 바이러스가 그 일을 대신 했다. 답답한 마음에 가족들과 넷플릭스를 본다. 낮에는 연구소 동료들과 스카이프나 줌으로 화상 회의를 한다. 차가운 랜선이 그나마 인간의 온기를 전해주는 유일한 도구이구나 싶다. 바이러스 때문에 소중한 것도 알게 되고, 바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람들의 건강도, 세상을 돌리는 경제도, 실험실 연구도 걱정이지만,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큰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불과 3만 개의 염기로 구성된 코로나바이러스, 자연이 만들어낸 나노봇이 전 지구를 휘감고 있다. 지구를 괴롭히고 있던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을 괴롭히는 바이러스 나노봇에 대해 생각해보니 누가 매트릭스 속의 스미스이고 누가 네오일까, 그런 의문도 든다. 건강만 하다면, 이렇게 가끔 아주 천천히 가보는 것도 해볼 만 하다. 코로나19가 곧 수그러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재현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교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대면 강의의 가능성이 커지던 2월 하순, 허겁지겁 다양한 동영상 녹화 방식을 알아보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하나를 선정해 구입하고 시범 녹화를 진행하며 다각도에서 분석했다. 동시에 학교의 스마트 캠퍼스 플랫폼이 접속자의 폭주로 불안정해질 경우를 대비해 온라인 강의 혹은 실시간 강의 플랫폼을 5~6개 파악해 장단점을 분석하고 시연해 보다가 결국 구글 클래스룸으로 안착했다. 이 생소한 도구의 다양한 메뉴를 익힘과 동시에 학생들이 계정 신청하기 전에라도 동영상 강의 학습을 하도록 유튜브 동영상을 ‘일부공개’와 ‘비공개’의 구분을 냉철히 하면서 업로드해 학생들에게 접속 링크를 제공하는 플랜B를 구축했다. 학생들의 계정 신청을 독려해 열흘 만에 모든 학생들의 구글 입장을 달성하는 ‘위업’을 달성함과 동시에 퀴즈 및 질의응답을 통한 출석 체크 방법을 고안해 내는 등 다양하고 나름 기발한 교습 방안을 창의적으로 모색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가의 마이크를 구입하고 40여 년 만에 글씨 쓰기 연습을 병행해 온라인 강의의 질을 높이고자 분투하던 중, 사회관계망에 올린 경험담이 입소문을 타면서 겨우 왕초보를 갓 벗어난 내가 학내 교수들을 대상으로 구글클래스룸 ‘왕초보 탈출기’를 무려 두 번이나 강연하기도 했다. 오십 평생 가장 많은 정보를 초단기에 스펀지처럼 습득하며 보낸 지난 한 달이었다. 이 사태가 조속히 수습되어 학생들의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강의실에서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