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영문판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Topological quantum computation – from Wilczek’s dream to reality

MIT 교수 프랭크 윌첵Frank Wilczek, 1951년생은 천재이면서 행운의 물리학자다. 대학원생 시절 22세때 쓴 논문으로 52세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입자물리학자들 사이에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는 보손과 페르미온이라는 두 종류로 나뉜다는 사실이 십계명 같은 진리로 여겨지던 1982년에 그는 홀로 기발한 생각을 했다. 만약 우주 공간 같은 3차원이 아니라 오직 2차원인 평면에서 운동하는 입자가 있다면 그 입자는 꼭 보손이나 페르미온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윌첵은 이 가상의 새로운 입자를 애니온anyon이라고 불렀다. 삼성 휴대폰 애니콜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통화가 가능하다는 특성을 강조한 이름이었던 것처럼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의미의 ‘any’를 넣어 새로운 입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1.

동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용처럼 윌첵의 상상의 산물로 여겨지던 애니온은 실험실에서 분수 양자홀 상태가 발견됨으로써 놀랍게도 현존하는 입자로 확인되었다. 샌드위치 속 잼처럼 두 고체 사이의 경계면에 갇혀 있는 아주 얇은 층의 2차원 전자계에 수직 방향으로 대단히 강한 자기장을 걸어주면 전자의 운동이 직선 운동에서 원운동으로 극단적으로 바뀌면서 양자 홀 상태quantum Hall state라는 걸 만든다. 운동장이 댄스홀로 바뀐 것이다. 전자의 춤에는 막춤 같은 정수integer 양자 홀 상태와 전문댄서를 둘러싼 백댄서들의 춤같은 분수fractional 양자 홀 상태가 있는데 그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분수 양자 홀 상태다. 막춤을 추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백댄서처럼 비슷한 동작을 하게되는 것처럼 여러 입자가 모이면 말 잘 듣는 개미로봇군단처럼 입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하나의 입자처럼 거동하는 준입자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분수 양자 홀 상태의 경우에는 마치 전자 하나를 세 조각으로 쪼개서 전하량을 나눠 가진 것처럼 거동하는 준입자가 있다. 이 모습이 마치 정수 1의 전하량을 갖고 있던 전자가 ⅓, ⅕ 같은 분수값을 가진 전하량으로 쪼개지는 것 같다고 해서 분수 양자 홀 상태라고 부른다.  이렇게 분수화된 전하를 갖는 준입자는 윌첵이 예측한 애니온의 성질을 그대로 갖고 있다. 윌첵이 애니온을 상상한 이론 물리학 논문은 1982년 4월에 나왔고, 분수 양자홀 상태의 존재를 발견한 실험 물리학 논문은 그 해 5월에 출판됐다. 상상이 한 달 후에 현실로 증명되었으니 이 행운은 정말 역사에 기록될만하다. 윌첵의 애니온은 가환 애니온abelian anyon이다. 아벨이라는 수학자가 만든 이론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처럼 서로 다른 점이 하나도 없는 복제 인간같은 존재라서 두 입자의 위치가 바뀌어도 그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다.

새로운 입자에 대한 윌첵의 상상이 현실이 되자 애니온에 대한 연구는 봇물이 터진 듯 활발해졌고, 1991년에는 윌첵의 가환 애니온보다 한층 더 기이한 입자도 2차원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적 제안이 나왔다. 미국 예일 대학교의 그렉 무어Greg Moore와 니콜라스 리드Nicholas Read, 매사추세츠 공대의 샤오강 웬Xiao-Gang Wen 등이 주창한 비가환 애니온non-abelian anyon 입자이다. 이들은 두 개의 비가환 애니온 위치를 바꾸면, 비록 동일해 보이는 애니온을 교환했다 하더라도, 교환 후의 상태가 이전의 상태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입자의 위치만을 안다고 해서 그 입자의 성질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라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통찰의 결과였다. 비가환 애니온 입자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내가 없는 사이 누군가 두 비가환 애니온의 위치를 바꾸어 놓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비가환 애니온의 위치를 교환하면 본래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상태가 만들어진다. 비가환 애니온에는 ‘위치’라는 정보 말고 또다른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두 입자가 자리를 바꾸면 위치 정보는 같지만 그 밖의 정보는 달라지기에 자리를 바꾼 사실이 그만 탄로나는 것이다. N개의 비가환 애니온에 1부터 N까지 숫자를 매긴 뒤, 처음엔 (1,2)번 애니온을 교환하고, 그 다음엔 (2,3)번, 그 다음엔 (4,6)번, 이런 식으로 입자를 서로서로 교환하다 보면 계속 새로운 상태가 나온다. 가능한 교환 과정을 모두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서로 다른 상태의 개수는 애니온의 숫자 N에 지수적으로 비례해 증가한다. 이렇게 지수적으로 많은 비가환 애니온이 존재하는 분수 양자홀 상태도 있다는 점을 리드-무어의 논문에서 예언했다 2.

리드-무어가 예언한 비가환 애니온은 아직도 실험으로 결정적인 존재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하지만 여전히 리드-무어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환상같은 비가환 애니온 예언이 요즘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비가환 입자를 이용한 위상 양자 연산topological quantum computation 덕분이다. 위상 양자 연산은 1990년대 후반 알렉세이 키타예프Alexei Kitaev가 주창했고 3,4, 마이클 프리드먼Michael Freedman 등이 수학적 토대를 다진 분야다 5. 비가환 입자가 양자 컴퓨터의 기본 소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표적인 후보 물질이었던 분수 양자 홀 상태를 이용해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데 투자하기 시작했고,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할 스테이션-Q를 캘리포니아에 있는 산타 바바라 주립대학의 한 건물을 빌려서 만들었다.

양자 홀 물질을 통한 양자 컴퓨터 구현이란 접근법에는 ‘제어’의 문제가 있다. 양자 홀 물질에는 수많은 전자가 있다. 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개미들같은 전자계에서 몇 개의 비가환 애니온을 말 잘 듣는 로봇 개미군단 같은 준입자 상태로 만들어낸 뒤 그걸 개별적으로 제어하고 양자 연산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이크로소프트가 원하는 양자 컴퓨터가 만들어진다. 결국 전자 하나하나를 잘 제어할 수 있어야 양자 컴퓨터에 필요한 연산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전자는 너무 작고, 인간에게 죽음의 숙명이 있듯 전자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쿨롱 법칙 같은 그 나름의 자연 법칙이 있다. 쿨롱이 발견해서 쿨롱 법칙이 라 불리는 전자의 숙명은 서로를 강한 힘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그런 자연 법칙을 다스리면서 개별적으로 전자를 제어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 탓인지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 컴퓨터 연구의 선발 주자임에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비가환 입자와 양자 컴퓨터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일반 컴퓨터에 작동하는 기본 소자인 비트(bit)에 대해 알아야 한다. 컴퓨터는 문자 그대로 계산을 하는 기계다. 간단한 프로그램을 통해 복잡한 수학 계산을 인간의 두뇌보다 훨씬 빨리 할 수 있는 기계다. 인간은 두개골 속 뇌의 뉴런을 이용해 계산을 하지만 컴퓨터는 아주 작은 크기의 물질(이걸 흔히 소자라고 부른다)을 통해 계산을 한다. 일단 모든 수학적 연산을 0과 1이라는 두 가지 숫자(이진수)를 기반으로 한 연산으로 변환한다. 그리고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 아주 작은 소자의 물리적인 상태가 단 두 종류만 있도록 만든다. 이 작은 소자를 비트라고 부른다. 전기를 흘려 비트의 상태를 0에서 1로, 혹은 1에서 0으로 바꿔주는 과정을 대규모로, 빠른 속도로 수행하면서 수학적 연산이 이루어진다.

가령 다섯 개짜리 비트가 있고 그 상태는 |00110>이라고 하자. 첫 번째 비트는 0, 두 번째 비트도 0, 이런 식이다. 이 상태를 다른 상태, 가령 |01010>으로 바꾸는 게 이른바 연산이다. 여기 든 예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비트의 상태가 뒤바뀌었다. 이런 조작을 게이트gate 연산이라고 한다. 몇 가지 단순한 게이트 연산을 끊임없이 적용해 비트의 상태를 계속 바꿔나가는 게 컴퓨터가 하는 ‘계산’이다. 군중을 모아 카드섹션으로 온갖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이 실수하듯 때론 0이어야 할 비트가 실수로 1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땐 오류를 찾아내 보정해주어야 한다. 오류 보정 과정은 컴퓨터 속에서 쉴새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안심하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양자 연산은 비트 대신 큐빗qubit을 이용한다. 큐빗이 표현하는 정보는 0,1의 이진수가 아니라 허수와 실수를 합한 복소수에 가깝다. 이진수는 0과 1 두가지 뿐이지만 허수와 실수는 0, 0.1, 0.01……나열할 수조차 없는 무한대다. 게다가 큐빗의 상태는 중첩될 수 있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큐빗에 존재하면서 큐빗이 2개 있으면 제곱 개의 가능한 상태를, n개 있으면 n제곱 개의 상태를 만들어 낸다.

불교에서는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수인 항하사(恒河沙)를 시작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수로 나타낼 수 없음을 뜻하는 무량대수(無量大數)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단계적인 수에서 벗어나 무량대수보다 더욱 큰 절대적인 시간개념의 수로 겁(劫)도 있다.  겁은 우주가 생겨나 멸망하기까지의 무한함이다. 비유적으로 1겁은 가로, 세로와 높이가 10km인 바위에 선녀가 백년에 한 번씩 지나가면서 옷깃을 스쳐 옷이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 또는 이 바위와 같은 크기의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백년마다 겨자씨를 하나씩 꺼내어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라고 한다. 큐빗으로 행하는 양자 연산은 항하사에서 시작해서 무량대수를 지나 영겁을 떠올리게 한다. 

메이우드


다섯 개짜리 비트가 가질 수 있는 상태는 |00000>부터 |11111>까지 총 32개가 있고, 보통의 컴퓨터라면 서른 두 개의 상태 중 어떤 특정한 상태만 가질 수 있다. 컴퓨터의 연산은 하나의 가능한 비트 상태에서 다른 가능한 비트 상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다섯 큐빗짜리 양자 컴퓨터는 이 서른 두 개의 비트 상태를 중첩한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 쉬레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는 중첩이란 건 양자 컴퓨터가 이런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저런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가능한 5-비트 상태가 중첩된 형태로 공존하는 게 5-큐빗의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5-큐빗의 상태를 지정하려면 각각의 5-비트 상태에 있을 (총 32개의) 확률을 지정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이 확률이란 게 0 또는 1처럼 이진수가 아니라 0과 1사이의 아무 값이나 다 가질 수 있는 실수라는 점이다. 이런 유연성은 양자 컴퓨터가 갖는 강력한 연산 능력의 원천이 되지만 반대로 양자 컴퓨터를 만들고 운영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0.1로 주어야할 확률 값을 0.2로 주었을 때, 이미 그 양자 회로는 오류를 담고 있다. 0이어야 할 비트 값이 1일 때 그걸 보정해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열 개의 큐빗으로 만들어진 양자 컴퓨터는 2^10=1024개의 확률을 표시하는 숫자를 항상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큐빗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제어해야 할 숫자의 개수도 지수적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이 숫자들이 저절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는 점인데 이런 현상을 결깨짐decoherence이라고 부른다. 결깨짐을 방지할 대비책이 없으면 양자 컴퓨터는 아주 잠깐 작동하다 고장나버리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이런 어려움을 단숨에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위상학적 양자연산이다. 개인의 실수를 집단의 실수로 대치해 오류 확률을 줄인다는 생각이다. 가령 열 명이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한다고 상상하자. 왼쪽으로 돌 때를 0, 오른쪽으로 돌 때를 1이라고 부르자. 한 개인 대신 열 명이 비트 상태를 구현하니까 그만큼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적어진다. 게다가 회전 방향이란 건 연속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다. 시계 방향 아니면 반시계 방향, 이렇게 두 가지 뿐이다. 자연스럽게 비트를 구현할 수 있고 오류 발생 가능성도 적어진다. 위상학적 양자연산은 수많은 큐빗을 동원해 한 개의 집단적 큐빗 상태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많은 큐빗을 동원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일단 만들고 나면 각종 오류에 대한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

비트를 기반으로 하는 연산은 수학적으로 말하면 이진수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수학적으로 이보다 더 단순한 구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단순한 구조의 수학적 공간이다. 컴퓨터로 연산을 제대로 하려면 이진수 공간에 있는 모든 가능한 상태를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양자 연산을 수행하는 수학적 공간을 힐버트 공간Hilbert space라고 부른다. 수학자 힐버트가 이런 공간을 처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양자 연산을 제대로 하려면 힐버트 공간에 있는 모든 양자 상태를 큐빗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N개의 비가환 애니온이 있으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힐버트 공간의 크기는 N에 지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했는데, 이런 공간에서 양자 연산이 잘 작동하려면 지수적으로 많은 모든 상태에 다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위상 양자 연산의 출발점은 비가환 애니온이 N개 있을 때 이 애니온의 위치를 이리저리 교환하는 작업만으로도 힐버트 공간의 모든 상태를 다 구현할 수 있다는 수학적 증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 홀 물질에서 비가환 입자를 만든 뒤 그 위치를 바꾸는 조작을 통해 양자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한다.

비가환 입자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입자다. 과거를 기억하는 입자를 양자 연산에 이용하자는 생각이 위상 양자 연산이다. 일반 컴퓨터가 하는 연산은 비트의 상태를 0에서 1로, 1에서 0으로 바꾸는 물리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위상 양자 연산에서는 비가환 애니온의 위치를 맞바꾼다. 궤도는 중요하지 않다.  한바퀴 감았다 또는 안 감았다, 혹은 몇 번 감았다라는 정보만이 중요하다. 설령 연산 과정에서 자질구레한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감았다는 사실 자체를 번복하기는 힘들다. 위상 양자 연산이 양자 연산의 희망으로 자리잡는 이유다.

키타예프를 비롯한 양자 연산 이론가들의 통찰이 위대한 이유는 양자 연산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를 양자 홀 물질같은 자연의 선물에 의존하지 말고 아예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고 시작하자는 데 있다. 가령 초전도체를 기반으로 한 조셉슨 소자라는 걸 이용해서 큐빗을 만든다. 조셉슨 소자는 대량으로 만드는 방법이 이미 공정화되어 있다. 가로, 세로 0.1-0.2마이크론 정도 크기의 조셉슨 소자를 기판 위에 가지런히 만든 뒤 전자기파를 이용해 소자 하나하나의 양자 상태를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 구글이나 IBM에서 추진하는 양자 컴퓨터는 조셉슨 소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현재 가장 고성능 양자 컴퓨터로 인정받는다. 원자를 이용해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원자에서 전자 하나를 없앤 것을 이온ion이라고 부르는 데, 이온은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와는 달리 전하를 띠기 때문에 전기장을 이용해 그 위치를 제어하기 쉬워진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수십 개의 원자를 가지런히 진공 속에 배열한 뒤 레이저 등을 이용해 이온 상태를 제어하거나 게이트 연산, 측정을 한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가 미국 듀크대학교에 재직 중인 김정상 교수가 공동 창업한 것으로 잘 알려진 Ion-Q, 거대기업 허니웰의 자회사로 성장한 퀀티니엄quantinuum은 이온 기반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조셉슨 소자를 이용하든 이온을 이용하든 모두 몇 십 큐빗 정도로 작동하는 양자 컴퓨터를 만들어 활용하는 중이고, 양자 연산을 수행할 능력을 갖춘 조셉슨 소자의 집합, 혹은 이온의 집합을 양자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현재 양자 연산의 구도는 조셉슨 소자 기반, 이온 원자 기반 등 서로 다른 양자 플랫폼이 경쟁하는 모양새다.

그 다음 단계는 양자 플랫폼에서 비가환 애니온을 만드는 작업이다. 키타예프는 토릭 코드라는 상태를 양자 플랫폼에서 만들면 가환 애니온이 준입자 상태로 만들어진다는 것과 양자쌍quantum double상태라는 것을 만들면 비가환 애니온이 준입자 상태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1997년에 이미 증명했다. 이것만해도 대단한 발견이다. 1982년에 가환 애니온이 분수 양자홀 계에서 발견된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기적같은 선물이었다. 하늘의 선물에 인간이 화답하여 큰 성과를 내듯 키타예프의 증명은 가환이든 비가환이든 모든 애니온을 우리가 원하는만큼 공학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2022년에는 양자 플랫폼을 이용해 실험실에서 드디어 가환 애니온을 만들어내는 토릭 코드 상태를 만들어냈다.

아쉽게도 토릭 코드에서 만들어내는 가환 애니온은 위상학적 양자 연산을 수행하기엔 불충분하다. 가환 애니온 두 개의 위치를 맞바꾸어도 여전히 동등한 양자 상태가 얻어진다는 그 ‘가환성’ 때문에 양자 연산이 요구하는 풍부한 힐버트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상 기반 양자 컴퓨터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비가환 애니온을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비가환 양자쌍 상태를 양자 플랫폼에서 구현한다는 건 가환 애니온에 비해 한층 더 요원해서, 지름길을 찾아야만 했다.

상상할 수 있는 지름길 중 하나는 일단 가환 애니온을 만든 뒤 추가적인 조작을 가해 이것을 비가환 애니온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이다. 큐빗을 가로세로 반듯하게 배열하는 대신 일부러 찌그러진 형태로 만들면 가환 애니온이 마치 비가환 애니온처럼 거동한다는 수학적 증명이 있었다. 그 증명을 착실하게 실험적으로 구현한 성과가 2023년에 구글에서 나왔다 6.

또 다른 지름길은 비가환 애니온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가환 애니온을 만들려면 얽힘이 없는 초기 양자 상태를 위상학적인 상태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 변환 과정에 동원되는 양자 게이트의 개수는 큐빗의 개수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큐빗이 많을수록 게이트 연산의 숫자도 늘어나고, 연산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이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는 대신 우회하는 방법이 있다. 중간중간 전략적으로 기획된 측정을 하고, 그 측정 결과를 이용해 그 다음 양자 게이트 연산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혼합적 방법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위상학적 질서를 갖는 상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게이트 연산의 개수가 큐빗의 개수와 무관하게 일정해진다.

구글처럼 가환 애니온을 만든 뒤 비가환 애니온을 만들지 않고, 처음부터 비가환 애니온을 만들고자 할 때도 측정이란 기술이 들어간다. 흔히 양자역학적 상태는 측정을 당하는 순간 붕괴된다고 알려져 있고, 측정은 양자 연산에 해로운 것, 또는 금기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오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측정 기반 양자 연산이란 방법론이 이미 20년 전에 나왔다. 어떤 양자 상태에 잘 준비된 측정을 전략적으로 하면 새로운 양자 상태가 된다. 다음 측정은 또다른 양자 상태를 준다. 이렇게 계속 바뀌어 가는 양자 상태가 결국 우리가 원하는 양자 연산을 다 수행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예전에는 쓸모없다고 버려지거나 제값을 못받았지만 이제는 몸값이 높아진 소곱창이나 양같은 소 부산물처럼 이 제안의 가치높은 부산물 중 하나는 위상학적 상태를 비위상학적인 상태로부터 만들어내는 게 측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냥 가능한 게 아니라 손쉽게 가능하다.

2022년에 하버드 대학의 응집 이론 물리학자 비쉬와나트 교수와 그의 젋은 연구진은 측정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비가환 애니온계를 구현하는 정교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마침 퀀티니엄에는 이 이론을 따라 비가환 애니온을 만들어낼 만큼 크기가 큰 이온 기반 양자 컴퓨터가 막 만들어졌다. 27개의 이온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능력을 갖추자마자 퀀티니엄은 하버드 연구진의 제안을 실험으로 옮겼고, 2023년에 드디어 비가환 애니온 세 개를 만들고 서로 감는데 성공했다 7.

양자역학의 토대인 슈뢰딩거 방정식이 만들어진 1925년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났다. 양자 파동함수는 원자나 그보다 작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런데 양자 연산에서는 양자 파동 함수가 계산하는 도구 역할을 한다. 양자 컴퓨터 소자로 사용되는 초전도체 큐빗, 또는 원자 큐빗이 갖는 양자 파동 함수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인간이 조작하는대로 만들어진다. 양자 컴퓨터에서 파동 함수는 자연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양자 계산을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구가 되었고, 한 세기 전에 시작된 물리법칙인 양자역학은 양자공학의 시대를 여는 도구로써 주목받고 있다. 한 시대에서 발견된 법칙이 다음 시대를 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을 한번 겪어보면 양자 컴퓨터가 일반 컴퓨터, 심지어 양자역학과도 얼마나 다른지 이해할 수 있다. 컴퓨터의 연산이란 0000이란 비트의 물리적 상태를 0010이란 새로운 물리적 상태로 바꾸는 식의 조작을 계속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수학적 연산을 수행한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 파동함수로 기술되는 어떤 양자 상태를 계속 변환시키면서 그 변환 과정 속에 어떤 수학적 연산을 수행하도록 한다.

2023년에 성공한 비가환 애니온의 생성과 교환 실험은 위상 양자 연산이란 거대한 목표에 비하면 아기가 드디어 제발로 서서 한 걸음을 뗀 정도이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으니 지금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40년 뒤엔 어떻게 자라나 있을까 상상해보면 저절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두 입자의 양자 얽힘을 최초로 증명한 실험은 1980년부터 이루어졌고 40여년이 지난 뒤에야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금부터 40년 뒤 양자 컴퓨터가 보편화된 세상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상상초월imaginatio transcendit’일 것이다.

1. Magnetic flux, angular momentum, and statistics, Frank Wilczek, Physical Review Letters 48, 1144 (1982)

2. Nonabelions in the fractional quantum Hall effect, Gregory Moore and Nicholas Read, Nuclear Physics B 360, 362 (1991)

3. Fault-tolerant quantum computation by anyons, Alexei Kitaev, Annals of Physics, 303, 2 (2003)

4. Anyons in an exactly solvable model and beyond, Alexei Kitaev, Annals of Physics, 321, 2 (2006)

5. Non-Abelian anyons and topological quantum computation, Chetan Nayak, Steven Simon, Ady Stern, Michael Freedman, Sankar das Sarma, Reviews of Modern Physics 80, 1083 (2008)

6. Non-Abelian braiding of graph vertices in a superconducting processor Authors: Google Quantum AI and Collaborators, Nature 618, 264 (2023).  

7. Creation of Non-Abelian Topological Order and Anyons on a Trapped-Ion Processor, Mohsin Iqbal et al. arXiv:2305.03766 

한정훈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전)HORIZON 편집위원('19.03.-'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