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가소성과 읽기의 발명, 그리고 AI
사람은 본질적으로 언어적 존재지만 문자적 존재는 아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이 언어를 말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우리 두뇌에 해당 영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생물학적 기반을 갖지만 문자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우리 두뇌의 여러 영역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언어 능력과 달리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배우고 상당한 기간 연습해야만 능숙해질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언어 능력도 무조건 보장되는 능력은 아니다. 유아의 발달 과정에서 특정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에 함께 생활하는 언어 공동체로부터 적절한 언어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 잠재력이 온전하게 형성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 능력의 선천성 역시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오직 잠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장기에 주변에 특정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만 하다면 거의 모든 유아는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에 비해 현재도 세계 인구 중에서 문자를 읽고 쓸 수 없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문해력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도서관에 있는 책을 어려움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세계 인구 중에서 그런 사람의 비율은 매우 낮을 것이다. 도서관을 흔히 ‘인류 지식의 보고’라고 한다. 그만큼이나 도서관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인류가 여태까지 축적한 지식의 깊이와 폭을 보여주는 책이 가득 차 있다. 그런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공부’를 할 여유나 학습 동기를 가진 사람만이 높은 수준의 문해력을 가질 수 있기에 세계 인구에서 그런 사람의 비율은 높지 않을 것이다.
언어 능력과 독서 능력의 차이는 이 능력이 얼마나 빨리 사라질 수 있는지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던 사람이라도 오랜 기간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던 지역에서 외국어만 사용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러므로 언어 능력 역시 지속해서 활용하지 않으면 감퇴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고 해서 한국어 능력이 저하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1년 동안 해외 연수를 다녀온 사람들도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처음 며칠은 약간 어색하게 느끼겠지만 금방 자신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돌아온’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독서 능력은 잃어버리기는 쉽고 그에 비해 다시 찾기는 처음 체득할 때만큼 어렵다. 여기서 독서 능력이라는 것은 도로 표지판처럼 간단한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이 아니라 인지적으로 더 고도화되고 통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능력, 예를 들어 자신이 잘 모르는 주제에 관한 책을 읽고 관련 주제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거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는 능력을 의미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여 얻은 능력을 ‘유지’하는 일도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책을 읽지 않거나 순식간에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쉬운 내용의 책만 읽다 보면 아주 빠른 기간 내에 어려운 책을 읽고 이해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다. 물론 이런 사실에 깜짝 놀라서 다시 어려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 능력이 되돌아올 수 있지만 금방 되지는 않는다. 역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기 훈련을 해야 이 능력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언어 능력과 독서 능력을 발휘하는 우리 두뇌의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뇌에는 언어 중추라는 것이 있어서 언어를 말하고 듣고 이해하는 능력을 담당한다. 물론 언어 ‘중추’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역이 언어 능력 발휘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지 우리가 언어를 말하거나 이해할 때 이 영역만 사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두뇌의 다른 영역도 여러 복잡한 방식으로 언어 능력 발휘에 참여한다. 하지만 우리 두뇌에 언어를 전담하는 특정 영역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일단 모국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즉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두뇌의 언어 배선이 모국어를 말하도록 완성되고 나면 그 모국어를 상당 기간 사용하지 않아도 해당 모국어 사용 능력이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 두뇌의 신경 가소성neuro plasticity의 특징상 아무리 모국어라 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능력이 서서히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어 중추라는 전담 영역이 존재하기에 조금만 다시 연습하면 그전처럼 능숙하게 모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달리 우리 두뇌에는 읽기 ‘중추’나 문자 해독 ‘중추’ 같은 영역은 없다. (Wolf 2008)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문자나 읽기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최근에 발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언어의 초기 형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으리라 추측되지만, 문자는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한 시기, 예를 들어 3500년 무렵의 메소포타미아 시기 즈음에 발명되었다. 그러므로 언어 능력과 읽기 능력 모두 인류에게 유익한 능력이긴 하지만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처음부터 유익했던 언어 능력에 비해 도시 문명사회에서나 그 유용성이 분명해진 읽기 능력이 우리 두뇌에 진화 메커니즘을 통해 유전적으로 기반을 잡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수렵채집 사외에서도 함께 사냥하던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필요성은 컸지만, 사유재산과 세금과 같은 국가 통치 제도가 자리를 잡기 전에 문자를 쓰고 이해하는 능력의 유용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자를 읽고 이해하고 쓰는 능력, 더 나아가 그런 문자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인류가 공동으로 만들어 낸 지식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정보매체로서의 책을 이해하고 저술하는 능력은, 진화적으로는 이미 거의 완성된 우리 두뇌의 여러 영역을 복합적으로 연결해서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런 ‘읽기의 연결망’을 만드는 과정은 그 연결망의 안정성이 유전적으로 탄탄하게 확보된 것이 아니기에, 읽기 능력은 언어 능력과 달리 ‘강하게 배선 된hardwired’ 능력이 아니다. ‘결정적 시기’에 적절한 언어 자극만 주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울 수 있지만, 읽기와 쓰기 능력은 꾸준한 연습, 어떤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어려운 글을 읽거나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 본 사람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연습과 노력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능력이다. 게다가 이렇게 ‘비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획득한 읽기 능력은 잃어버리기도 매우 쉽다. 두뇌 전체의 설계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두뇌의 여러 영역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협업하도록 억지로 연결해 놓은 상위 체계만 사라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Carr 2010)
최근 인공지능이 어려운 책이나 논문을 너무 친절하고 빠르게 요약해 주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읽기 능력이 감퇴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의 연구 분야의 최신 논문을 스스로 읽고 핵심을 정리할 수 있었던 학자들이 시간적 압박과 효율성 등의 이유로 인공지능에 논문 요약을 맡기면서 스스로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저하된다고 토로한다. 놀라운 점은 이분들이 매우 오랫동안 논문을 읽고 분석하는 훈련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주변에서 수십 년간의 훈련을 통해 습득한 전문적 읽기 능력이 단 몇 개월 만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 놀라시는 교수님들을 종종 목격한다. 성취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능력이 짧은 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이 비대칭성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인류에게 자연스러운 언어 능력과 달리 읽기 능력은 비자연스러운, 그래서 훈련을 통해 어렵게 습득해야 하는 능력이다. 비자연스러운 능력이기에 습득은 어렵고 잃어버리기는 쉽다. 인공지능에게 읽기 능력을 위임하는 것의 위험성은 추상적이지 않다.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인공지능에게 나 대신 읽고 요약하고 결론까지 내라고 요구하다 보면 신경 가소성을 가진 우리 두뇌에서 읽기 능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지게 된다. 이런 탈숙련deskill 현상은 인공지능과 같은 인지 기술이 우리 사회에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될수록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실질적 위험이다.
이미지 우선성과 주목 희소성
책도 시각적으로 의미가 파악되는 문자로 작성된, 시각 자료다. 하지만 보다 직관적으로 호소력이 높은 이미지나 동영상에 비해 문자는 우리의 주의를 끄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흔히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 말은 생생한 상황을 직접 보는 것이 그 상황에 관한 서술을 말로 듣거나 문자로 서술된 보고문을 읽는 것보다 더 참된 느낌을 준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우리 두뇌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청각 정보나 촉각 정보처럼 다른 감각 기관에서 수집된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Kandel et al. 2021) 인간은 근본적으로 ‘보는’ 존재이다.
여기에 더해 생생한 이미지는 우리의 정서적 반응을 관장하는 편도체 등에 문자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준다. 물론 앞서 설명한 높은 수준의 독서 능력을 습득한 사람이라면 선명한 사진이나 고화질 동영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적 경험보다 더 복합적인 감정적 경험을 그 장면을 묘사한 글을 읽고도 그만큼 생생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첫 장면에서 어릴 적 맛보았던 마들렌의 향기와 맛을 통해 생생하고 중층적인 의미로 가득한 과거를 소환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러 종류의 시각 자극 사이에는 인지적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시각적 이미지의 생생함은 특별한 훈련이 없이도 시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치밀하게 잘 분석한 글보다는 인상적인 장면을 잘 포학한 사진 기자의 한 컷에 더 직접적인 울림을 경험한다.
이처럼 같은 시각 자료라도 문자의 추상성과 이미지의 구체성은 그 전달 효과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더욱 강화하는 인간 인지의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 마음이 특정 주제나 대상에 집중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주의 혹은 주목attention의 희소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경험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핵심은 우리는 한 번에 한 주제나 대상에만 주목할 수 있고 주목의 지속 시간이나 범위도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주변에서 ‘멀티 태스킹’을 잘한다는 사람을 알고 있는 분이라면 이런 내용이 틀렸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운전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익숙한 멀티 태스킹은 여러 대상에 동시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목을 시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 뇌가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일과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일 사이의 복잡한 협업에 능하다는 사실이다. 즉, 익숙한 길을 따라 운전할 때는 지속해서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주목이 필요할 때만, 예를 들어 신호등이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보행자에만 주목하고 그 외에는 의식적 주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뇌가 운전에 필요한 일을 무의식적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음악의 한 소절에도 주목하고 어떤 경우에는 오늘 회사에 가서 급하게 처리할 일에도 주목한다. (Reisberg 2025)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한정된 주목 자원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나눠 쓰면서 일상의 여러 복잡한 일을 처리한다. 물론 프로 게이머처럼 시각적 이미지의 여러 특징에 동시에 주목하는 것이 직업상 결정적으로 중요한 경우에는 일반인과 비교하면 복수의 대상에 주목하는 능력이 훨씬 더 탁월하다. 하지만 독서 능력과 마찬가지로 이런 경이로운 주목 능력은 엄청난 훈련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한 인지 능력이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시각적 이미지에 우선적으로 반응하고 주의 역량이 희소하기에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간 인지의 특징은 디지털 기술이 제공한 정보 폭발의 시대에 그전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디지털 정보 기술이 인류 문명의 축적된 지식을 더욱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는 기술이라면, 이 기술을 누구나 손쉽게 사용하게 되면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더욱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20세기 끝 무렵과 21세기 초기 까기만 해도 디지털 기술이 이룩한 정보 혁명이 지식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분쟁과 반목을 없애며 민주주의를 확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널리 퍼져 있었다. 불행히도 이 기술 낙관론적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전자적 형태의 논문이나 책, 인터넷 검색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지식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관용적으로 되고 민주적으로 되는 데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이 특정 집단에 대한 좌표 찍기나 인종 청소에 활용된 사례도 많다. 흔히 ‘메아리 방 효과’라고 지칭되는 현상은 우리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견해와 일관적인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입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 훨씬 더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단순히 ‘다양한’ 시각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집단들은 같은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소비한다는 점이 알려져 있다. 즉,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민주당 측의 주장을 담은 문건은 대안적 견해를 살펴볼 수 있는 검토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지닌 집단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보여주는 ‘조롱’의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공화당 측의 자료를 소비한다. (Carr 2025) 이는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충분히 다양한 시각과 견해가 널리 활용될 수 있다면, 대중들은 합리적 공론장 활동을 통해 공적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초기 디지털 기술 예찬론자의 기대가 지나치게 순진했음을 보여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인간은 자신이 주목하여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정보량이 들어오면 그 정보를 주목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무의식적 필터를 활용한다. 그런 필터는 많은 경우 시각적 이미지가 불러오는 감정적 판단에 좌우되기 쉽다. 그러므로 디지털 혁명이 엄청난 양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준 것은 맞지만, 인간은 인지적 한계 때문에 그 정보를 일일이 주목해서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에 따라 수많은 관련 정보를 빠르게 필터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입증편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치밀하게 읽고 이해해야 하는 글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감정적 호소력이 강한 이미지나 동영상에 우리 뇌는 더 빨리, 더 강하게 반응하게 한다.
이 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SNS 기업이다. (Wu 2017) 이들에게 사용자가 자신의 포털에서 머무는 시간은 광고 수입과 직결된다. 그래서 수많은 기발한 방식으로 사용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기술적 장치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도입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기 유튜브 환경에서는 자신이 보고 싶은 내용을 검색해서 보곤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동영상을 그것도 손으로 가볍게 밀어 가면서 몇 시간씩 보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처음 이런 ‘자동화된 추천’ 방식을 도입한 페이스북은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고 알려져 있다. (Carr 2025) 즉, 정보 접근의 용이함이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역량의 희소성과 결합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보다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주목을 할당하게 되는 것이다. 수렵채집 시절의 인류에게 이런 경향성은 분명 무서운 포식자로부터 벗어나고 영양가 높은 잘 익은 과일을 찾는 데 유리했겠지만, 현재 디지털 기술이 우리가 ‘마찰 없이’ 즉, 별다른 인지적, 의식적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시각 자료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에서는 우리의 현명한 선택과 판단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경향이 우리 두뇌의 인지 구조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특징이기에 사용자들에게 SNS를 멀리하고 독서를 많이 하라고 권유하는 것으로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자신의 가치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평균적으로’ 성인에 비해 떨어지는 아동이나 청소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동이나 청소년의 두뇌는 이런 자율적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이 성인에 비해 덜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Haidt 2024) 이런 사실이 최근 여러 과학연구를 통해 알려지면서 각국 정부는 앞다퉈서 15세 이하 청소년에게 한정하여 휴대전화나 SNS 등과 같은 과몰입되기 쉬운 디지털 기술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독서의 위기가 거론되면서 출판계에서는 책을 좀 더 쉽게 쓰고 더 화려하게 제작하여 독자들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방식의 대응이 기껏해야 단기간의 효과만을 가져올 것이라 예상한다. 아무리 쉬운 언어로 풀어 써도 시각적 이미지에 비해 문자 이미지는 그것을 이해하고 그에 기반하여 생각을 전개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책을 좀 더 이미지에 가깝게 만드는 것은 독서 능력 개발에 이바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렵지만 중요한 내용이 담긴 책을 깊이 읽는 경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 그 결과는 ‘깊이 일기’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부담 없는 독서만이 살아남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필자가 여유 시간에 가볍게 읽는 독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용이 가볍고 책이 예쁜 책은 직접 사서 읽지만, 내용이 만만하지 않고 깊고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는 책은 인공지능에 요약시켜서 핵심만 파악하려고 하는 추세가 더 강화될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게 깊이 이해하고 복잡한 생각을 전개하는 능력은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인류의 장기적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현재처럼 기후 위기를 비롯한 여러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해결을 모색하기보다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여러 영역을 통합해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특정 지적 작업에 국한해서는 손쉽게 결과물을 제공해 주는 현재 시점에서는 더욱 특정 전문성에 매몰되지 않고 복합적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런 학제적, 통합적 사고력을 인류가 발휘하기 위해서는 ‘깊이 읽기’ 능력을 ‘탈 숙련’ 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훈련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현재 인공지능의 한계가 기술 발전을 통해 극복되면 통합적 사고 자체도 인간보다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생각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복합적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 문제 같은 것이어서 우리가 그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직관에 기초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후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수학 문제 답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정치적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확한 사실 판단과 통계적 분석 등에 인공지능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고 이런 기여의 가능성에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 기구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치적 과정과 정당화는 수학 계산이 아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를 사회적 수준에서 도출하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대응 방식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가치 평가와 사실 판단을 결합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게다가 편견과 이해관계에 지배받는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변이 ‘가치 중립적’이어서 보편적인 설득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근거가 없다. 인공지능은 당연히 인간적 편견이나 이해관계를 갖지는 않지만, 사전학습이나 사후 추론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하는지에 따라 수많은 가치와 이해관계가 개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성형 인공지능은 답변을 만들 때 프롬프트를 제시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아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답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아첨sycophancy’ 현상은 인공지능이 기술적으로 반드시 가져야 할 본질적 특징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SNS가 사용자를 자신의 플랫폼에 묶어 두기 위해 다양한 과몰입 기술을 사용하듯이, 인공지능 사용자를 자신의 인공지능 서비스에 묶어 두기 위해 강화학습 방식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특징이다. 그런 이유로 오픈AI의 샘 알트먼 스스로 인정했듯이, ‘아첨’으로 인한 ‘AI 정신병’이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지자, ChatGPT 4.2에서 5.0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아첨’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은 가치 중립적 기술이기에 인류가 직면한 복합적 문제를 인간적 편견 없이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인공지능 산업 생태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을 무시한 비현실적 기대이다. (Becker 2025)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과정을 피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당면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당연히 유용하겠지만 그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어떤 것이 설득력 있는 답변인지를 평가하고 더 좋은 답을 찾아 나서는 판단 능력은 인류가 가져가야 한다. ‘깊이 읽기’에 기반한 이 능력을 인류 대다수가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 인류는 더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무기력하게 삶을 이어갈 수도 있다. 그런 삶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AI 시대, 읽기의 미래는 오지 않는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세모글루가 동료 경제학자 존슨과 함께 저술한 책 『권력과 진보』는 혁신적 기술이 인류 전체의 복지 수준을 높이는지를 묻고 그에 대해 조건부로 그렇다고 답한다. (Acemoglu and Johnson 2023) 조건부로 그렇다는 말은 기술이 혁신적이면, 즉 기술이 재화나 서비스를 만드는 효율성을 높여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농업 혁명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 사회의 권력 집단을 견제할 대항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소수 권력 집단이 혁신적 기술로 인한 생산성 증대의 산물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농업 혁명을 통해 작물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역의 고고학적 증거로 판단할 때 당대의 절대다수 사회 구성원의 삶은 농업의 도입 이전보다 오히려 더 비참해졌다. 고된 노동과 영양 결핍에 시달리면서 일찍 죽은 당시 서민의 고통의 흔적이 그들이 남긴 유골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수도나 전기 기술의 사례처럼 대항 권력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혁신적 기술의 혜택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유된 복지shared welfare를 높일 수 있도록 거버넌스가 제대로 운영되었을 때 인류는 혁신적 기술 덕분에 엄청난 삶의 질 향상을 경험했다.
중요한 점은 인간은 새로운 기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상욱 2021, 2025) 인간은 AI와 같은 혁신적 기술일수록 그 기술의 잠재력을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삶과 사회의 핵심 가치와의 관련성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욕구를 바꾸고 행동 패턴을 바꾸면 사회 제도도 공동체 논의를 통해 바꾸어 나간다. 문자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소크라테스처럼 그 기술이 그전 시대 구전 문화에 대해 제기하는 위험을 경고한 사람들이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운 독견의 남발이 가져올 사회 혼란을 걱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걱정은 정당했지만, 인류는 그런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혁신 기술이 인류의 보편 복지를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왔다.
중요한 점은 이런 거버넌스가 기술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저절로’ 등장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1차 산업혁명 시기 공장법의 도입으로 아동 노동이 금지되고 성인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와 보다 고도화된 자동화되니 기계를 작동하게 되면서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되고 소득 불균형이 줄어든 역사적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 (Frey 2020) 아세모글루가 강조하는 윤리적 거버넌스는 결코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혁신적 기술이 인류의 보편 복지를 높이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핵심적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활용되도록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므로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이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에 제기하는 도전적 상황에 대해 고찰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우리가 인간의 본성(인지적 경향성, 감정적 대응 방식 등)과 핵심 가치를 잘 고려하여 기술을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AI 시대에 읽기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읽기의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다. 앞서 설명한 읽기 능력의 특성과 주목의 희소성 등을 고려하여 우리가 읽기의 미래를 바람직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예전의 읽기 방식만이 ‘유일하게’ 타당한 방식이라고 보수적으로 전제해서도 안 된다. 많은 문예 비평가가 디지털 기술의 등장과 함께 유행된 짧은 문장과 이모티콘의 활용이 인류의 사고 능력에 치명적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재는 하나의 대중적 글쓰기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계속 강조하지만, 인간은 기술에 대해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비록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와 듣기만큼 생물학적으로 인류에게 ‘강하게 배선된’ 것은 아니지만 문자의 발명 이후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읽기와 쓰기의 문화적 변용을 실험해 왔다. 이러한 읽기/쓰기와 관련된 인간-기술 공진화의 다양한 실험은 분명 존중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AI 시대 읽기/쓰기의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많은 사회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그 과정에서 ‘깊이’ 읽고 통합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인류의 핵심 가치를 기술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참고문헌
- 이상욱 2021, 「AI 윤리란 무엇인가?」, 고등과학원 웹진 <HORIZON> (https://horizon.kias.re.kr/17815/)
- 이상욱 2025, 「’낯선 지능‘과 현명하게 함께 살아가기」, 『퓨처 메이커, AI 시대 공공의 가치를 설계하다』 1장, 서울: 한양 SSR Korea 센터.
- Acemoglu, Daron and Johnson, Simon 2023, Power and Progress: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New York: Public Affairs.
- Becker, Adam 2025, More, Everything, Forever: AI Overlords, Space Empires, and Silicon Valley's Crusade to Control the Fate of Humanity, New York: Basic Books.
- Carr, Nicholas 2010, The Shallows: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New York: W.W. Norton & Co.
- Carr, Nicholas 2025, Superbloom: How Technologies of Connection Tear Us Apart, New York: W.W. Norton & Co.
- Frey, Carl Benedikt 2020, The Technology Trap: Capital, Labor, and Power in the Age of Automation,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 Haidt, Jonathan 2024, The Anxious Generation: How the Great Rewiring of Childhood Is Causing An Epidemic of Mental Illness, New York: Penguin.
- Kandel et al. 2021, Principles of Neural Science, 6th edition, New York: McGraw-Hill Education.
- Reisberg, Daniel 2025, Cognition: Exploring the Science of the Mind, 9th edition, New York: W.W. Norton and Co.
- Wolf, Maryanne 2008, Proust and the Squid: The Story and Science of the Reading Brain, New York: Perennial.
- Wu, Tim 2017, Attention Merchants: How Our Time and Attention and Gathered and Sold, New York: Atlantic Books.
- Wu, Tim 2025, The Age of Extraction: How Tech Platforms Conquered the Economy and Threaten Our Future Prosperity, New York: Knopf Publishing Gr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