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누구나 한 번쯤 건강한 삶을 위해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제는 이 말을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할 때가 되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매우 작은 생명체들, 세균과 곰팡이 등을 포괄하는 개념인 ‘미생물’이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전 세계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생물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인, “병원균은 우리 몸에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십여 년간 급속히 이루어진 연구들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 몸에 사는 대다수의 미생물들은 건강한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이며, 아마도 이들 미생물이 인체의 생리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의 상상력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1] 인체에 사는 미생물의 대부분은 장 안에 있다. 장내 미생물 군집의 변화는 비만, 당뇨, 암, 알레르기, 각종 신경계 질환처럼 얼핏 미생물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건강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오장육부의 중요성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앞에서 기술한 것이다. 

필자는 원래 물리학 전공자로서 전산 생물학 분야에 뛰어든 연구자이다. 그런 필자가 장내 미생물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의상 이 글에서 앞으로 ‘장’은 곧 ‘대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겠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 사람당 보통 몇백여 종류에 이르는 장내 미생물 종들을 지니고 있고, 그 미생물의 전체 개체 수만 하더라도 한 사람의 전체 세포 수에 맞먹는다고 한다.[2] 미생물과 미생물 사이, 미생물과 인체 사이에는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얽힌 생태계가 존재한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적으로 흥미로운 시도일 뿐 아니라 인체의 건강 개선이라는 응용과도 연결이 되어 매력적이다. 참고로 대변에서 물을 제외한 부분의 약 1/4에서 절반은 장내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다.[3] 그래서 연구자들은 대변에 포함된 미생물 유전자들을 분석하여 각 사람의 장내 미생물 조성을 추정하고는 한다.

 

 

 

미생물 생태계는 어떤 점에서는 인간 사회의 산업체계를 닮았다. 각 미생물은 주변의 영양분을 섭취하고 대사하여 번식하고, 대사 때에 생긴 찌꺼기를 대사산물로 주변 환경에 배설한다. 이 대사산물을 다른 미생물이 섭취하여 번식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활용하고 또 다른 대사산물을 배출한다. 이렇게 대사산물을 매개로 하여 미생물들은 일종의 먹이사슬 관계를 이룬다.[그림1] 이 먹이사슬의 근원을 이루는 생산자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소장에서 소화하고 남은 음식이 대장으로 유입될 때 포함된 식이섬유와 기타 대형 분자들, 그리고 장세포가 장 안으로 배출하는 점액소에 포함된 대형 분자들, 이 대형 분자들을 밖에서 잘게 쪼갠 후 안으로 흡수하여 영양분으로 삼는 미생물들이 대장 안의 미생물 생태계에서 궁극적인 생산자 역할을 한다. 이 미생물들이 밖에서 잘게 쪼갠 분자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면 주변의 다른 미생물들이 먹기도 하고, 이 쪼개진 분자들을 미생물들이 대사하고 배출한 대사산물들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다른 미생물들의 영양분이 된다. 미생물 군집에서 배출하는 대사산물들은 인체의 장세포에 유용한 영양분이 되고, 동시에 인체의 면역 및 기타 생리활동을 조절하는 인자로서 작용한다. 하지만 미생물이 만드는 어떤 물질들은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이 생태계 안에서 미생물 사이의 관계가 꼭 상호호혜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일한 영양분이나 서식처를 두고 다투는 경쟁 관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그대로의 아비규환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어떻게 다스리는지에 따라 우리의 건강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체계화하면 각종 질병 예방 및 치료에도 좋은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장내 미생물 연구는 현대 생물학과 의학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로, 이 연구를 식품 개발이나 의료에 활용하고자 하는 회사들이 활발히 창업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장내 미생물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미 식품과 의약품의 효능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본다.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일과 채소 등의 식물성 식품에 포함된 식이 섬유는 우리 인체가 직접 소화할 수 없고 미생물만이 분해하여 장내 생태계에 활용된다. 구체적으로 인체는 식이 섬유를 분해할 소화 효소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식품 섭취를 통해 식이 섬유가 소화기관으로 들어와도 소장을 그냥 통과해서 대장으로 들어온다. 인체 서식 미생물의 대부분은 대장에 서식하기 때문에, 대장에 들어온 식이 섬유는 대장 안의 미생물들이 분해하여 앞에서 자세히 기술한대로 장내 생태계의 먹이사슬로 활용된다. 이 식이 섬유에서 비롯된 장내 미생물의 대사산물은 우리 인체에 유익한 작용을 하는데, 예컨대 그 자체가 장세포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영양분으로 작용하고, 우리 몸을 면역 관련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항염증 작용을 하며, 인체의 혈당 조절을 통하여 당뇨 발병의 위험을 낮춘다는 작용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식이 섬유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조성 자체에 일단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다른 한편으로, 장내 미생물과 식품의 관계에 대해서 최근에 알려진 흥미로운 예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급격히 늘고 있는 당뇨병의 원인과 관련하여, 가공식품에 포함된 인공감미료를 의심하는 논문이 있다.[4] 인공감미료는 단맛이 나지만 인체가 직접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혈당량에 민감한 당뇨병 환자들에게 보통의 감미료 대신 인공감미료가 권해지기도 한다. 이 논문은 인공감미료 중 하나인 사카린의 효과를 동물과 인체 실험으로 집중 분석하여, 사카린이 장내 미생물과 상호작용하여 인체의 혈당 조절기능을 저해시켜 혈당량을 높이고, 따라서 당뇨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즉 사카린을 비롯한 인공감미료는 보통의 감미료를 대체하여 당뇨병을 막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고, 혈당량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에게 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해당 논문의 암시이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인공감미료와 장내 미생물의 상호작용이 있다.

한편 메트포르민이라는 당뇨병 처방약은, 간에서 포도당을 생성하는 활동을 감소시켜서 당뇨병을 완화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기존에 알려진 기작에 더해, 최근 연구들은 메트포르민이 장내 미생물 조성을 변화시켜서 당뇨병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제안한다.[5] 또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로, 국내 모 병원에서는 최근에 대변 이식술을 시행하고 있다. 대변 이식술이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환자의 장 안에 주입함으로써, 상태가 심각한 장내 병원성 질환을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교체를 통하여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해외에서는 그 성공사례가 이미 꽤 보고되어 있다. 예컨대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은 환자들은 항생제 때문에 장내 미생물의 수가 매우 감소될 수 있는데, 그렇게 장내 미생물의 견제가 약화된 틈을 타고 Clostridioides difficile이라는 병원균이 번창하여 심각한 장질환은 물론 치사까지 유도할 수 있다. 보통은 이 병원균 퇴치를 위해 해당 환자에게 항생제 처방을 다시 하는 것이 기존의 방법인데, 독자들도 짐작하겠지만 이 방법은 Clostridioides difficile의 재창궐이라는 악순환을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런 환자들에 대해 대변 이식술을 시행한 결과,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받은 환자들은 지금까지 놀랍게도 80~90%에 이르는 완치율을 보여주고 있다.[6]

 

이 현상은 대변 이식술을 통하여 환자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로 교체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변 이식술은 Clostridioides difficile으로 인한 병원성 질환 이외에도, 염증성 장질환과 간성뇌증 등의 치료에 이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주제를 바꾸어서. 장내 미생물을 암치료에 이용하고자 하는 다음 연구도 있다. 면역항암요법이란 인체의 면역 활동을 강화시키거나 조절하여 암치료에 이용하고자 하는, 최근에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는 암치료법 중 하나이다. 장내 미생물은 인체의 면역 체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연히 개별 암환자의 장내 미생물 조성이 면역항암요법의 치료효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들이 있었고, 그 이후로 면역항암요법을 장내 미생물과 연동해서 연구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위와 같이 장내 미생물 연구의 발전과 더불어 현대 사회에 만연한 항생제 사용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흔히 쓰이는 항생제는 병원균뿐 아니라 질병과는 무관한 다른 미생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억제하여 멀쩡한 미생물 생태계를 붕괴시켜서 인체에 나쁜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Clostridioides difficile로 인한 병원성 질환의 예가 있다. 특히 항생제로 인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교란과 관련해서는, 장내 미생물로 면역체계가 활발히 발달하는 어린 시기의 항생제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 시기의 항생제 남용은 이후 비만,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의심이 존재한다.

이 복잡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활동을 우리의 직관만으로 다 이해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수학적 모형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생물과 미생물, 미생물과 인체 사이의 상호작용들을 체계적으로 엮어서 그 상호작용으로 인한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수학적 모형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본다.[7] 기존의 거시 생태학 분야에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상호작용을 상미분 방정식으로 기술하여 시간에 따른 포식자와 피식자의 개체수 증감을 기술하는 Lotka–Volterra방정식 류의 수학적 모형들이 존재한다.[8] 또한 개별 미생물 종들에 대해서 주변 환경의 영양 조건에 따라 세포 내 대사 회로의 각 대사 물질의 흐름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해당 미생물 종의 성장 속도를 예측하는 수학적 방법론이 이미 존재한다.[9] 이런 방법론들을 잘 계량하고 결합하면,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대해서도 한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과 인체 조직의 대사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고 그 결과 각 미생물 개체수의 시간에 따른 증감 및 인체 조직의 생리상태를 어느 정도는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수학적 모형의 개발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것을 넘어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활용한 개인맞춤형 식품 및 의료에의 응용에도 적잖은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신기술의 발전은 그 시대에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장내 미생물 연구는 오늘 이 시대에 급속히 떠오르는 분야 중 하나로서, 생물학과 의학을 넘어서서 수학, 물리학, 화학, 계산과학을 아우르는 진정한 학제간 협력을 필요로 한다고 필자는 제안한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오래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10] : “∙∙∙∙∙∙ 한 개인의 정신이 작은 전문 분야 이상의 지식에 정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이 딜레마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참된 목표를 영원히 잃지 않으려면) 누군가 과감하게 오류를 범할 위험을 감수하고 사실들과 이론들을 종합하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문헌

  1. E. Pennisi, “Body's hardworking microbes get some overdue respect”, Science 330, 1619 (2010)
  2. R. Sender, S. Fuchs, R. Milo R, “Revised estimates for the number of human and bacteria cells in the body”, PLOS Biology 14, e1002533 (2016)
  3. A. M. Stephen, J. H. Cummings, “The microbial contribution to human faecal mass”, Journal of Medical Microbiology 13, 45 (1980)
  4. J. Suez, T. Korem, D. Zeevi, G. Zilberman-Schapira, C. A. Thaiss, O. Maza, D. Israeli, N. Zmora, S. Gilad, A. Weinberger, Y. Kuperman, A. Harmelin, I. Kolodkin-Gal, H. Shapiro, Z. Halpern, E. Segal, E. Elinav, “Artificial sweeteners induce glucose intolerance by altering the gut microbiota”, Nature 514, 181 (2014)
  5. H. Wu, E. Esteve, V. Tremaroli, M. T. Khan, R. Caesar, L. Mannerås-Holm, M. Ståhlman, L. M. Olsson, M. Serino, M. Planas-Fèlix, G. Xifra, J. M. Mercader, D. Torrents, R. Burcelin, W. Ricart, R. Perkins, J. M. Fernàndez-Real, F. Bäckhed, ”Metformin alters the gut microbiome of individuals with treatment-naive type 2 diabetes, contributing to the therapeutic effects of the drug”, Nature Medicine 23, 850 (2017)
  6. R. E. Ooijevaar, E. M. Terveer, H. W. Verspaget, E. J. Kuijper, J. J. Keller, “Clinical application and potential of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Annual Review of Medicine 70, 335 (2019)
  7. J. Sung, S. Kim, J. J. T. Cabatbat, S. Jang, Y.-S. Jin, G. Y. Jung, N. Chia, P.-J. Kim, “Global metabolic interaction network of the human gut microbiota for context-specific community-scale analysis”, Nature Communications 8, 15393 (2017)
  8. P.-J. Kim, T.-W. Ko, H. Jeong, K. J. Lee, S. K. Han, "Emergence of chaotic itinerancy in simple ecological systems", Physical Review E 76, 065201(R) (2007) 
  9. E. J. O'Brien, J. M. Monk, B. Ø. Palsson, “Using genome-scale models to predict biological capabilities”, Cell 161, 971 (2015)
  10. Erwin Schrödinger, “What Is Life? The Physical Aspect of the Living Cell”,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44)
김판준
Hong Kong Baptist University 생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