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이 동진 말기부터 송나라 초기에 살았던 중국 시인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의 한 구절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를 차용한 영화 제목이다.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빛에 관한 과학적 접근법의 역사를 보면, 도연명의 이 한 마디가 꽤나 적절하게 삽입된다.

유일하게 올바른 물질 이론은 양자 역학이라는 이야기를 “양자 물질의 역사 1: 최초의 물질 이론”에서 꺼냈다. 물질 이론이란 건 결국 원자를 설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렇다면 양자 이론의 발전은 적어도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시작됐을 법한 오래된 질문, 곧 “물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현대 과학자들이 제공한 궁극적인 답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양자 역학의 한가운데에는 플랑크의 상수라고 하는 숫자가 있다. 어떤 물리학 공식이나 풀이에 이 상수가 등장한다면, 그 수식은 결코 뉴턴식 고전역학에서 유도할 수 없는, 온전히 양자 역학적인 틀 안에서라야 풀어낼 수 있는 결과라는 뜻이다. 양자 역학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상수, 따라서 모든 물질 이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상수가 도입된 역사적인 맥락은 흥미롭게도 물질이 아닌 빛의 기묘한 거동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물질의 근원으로 꼽은 네 가지 원소 불, 흙, 공기, 물 중엔 빛이 없다. 어쩌면 빛은 물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한편 구약 성경의 기자는 태초에 천지天地,heavens and earth가 만들어지고, 그다음엔 빛이 생겼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를 너그럽게 해석하자면 물질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성경 역시 물질과 빛을 명백히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빛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은혜롭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대상이지만, “빛은 물질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우리가 딱히 깊은 사고를 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당연하다고 느끼는 물질의 보편적인 속성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물질이 알갱이, 즉 입자들의 집합체라는 점 아닐까.

그렇다면 “빛도 물질인가?”란 질문은 “빛도 입자인가?”란 질문과 대동소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과연 빛은 입자인가? 빛의 속성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따뜻함, 밝음, 일곱 가지 무지개색 등이 대답으로 떠오를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빛의 속성 중엔 입자, 알갱이와 결부될 만한 성질이 없다. 어떤 대상이 입자라면 당연히 그 대상을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음파(소리)는 상자에 가두지 못한다. 호수 표면에 이는 물결파도 상자에 담지 못한다. 빛도 마찬가지다. 빛을 담아 택배로 보낼 수 있는 상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빛에 대한 공학적 접근: 빛을 나누는 장치

아이작 뉴턴은 일생의 연구 업적을 두 권의 기념비적인 책으로 남긴다. 그의 나이 45세가 되던 1687년 출판된 프린키피아Principia는 그가 이미 20대 중반에 완성했던 역학 체계(뉴턴의 1,2,3법칙)와 중력 법칙이 집대성된 책이다. 뉴턴이 알아낸 물질(입자) 세계의 원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704년 출판된 광학Opticks에서는 프린키피아에서 다루지 않았던 또 다른 세계, 즉 빛의 세계에 대한 뉴턴의 탐구와 발견을 서술했다. 뉴턴의 세계관에서도 물질과 빛은 여전히 뭔가 다른 존재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전무후무한 수학자,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손재주가 뛰어난 공학자였던 뉴턴은 빛의 속성을 밝히기 위한 접근법으로 공학적 방법을 택했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은 뉴턴이 고안한 프리즘 실험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림 왼편에 S로 표시한 태양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여러 갈래 색으로 갈라진다. 물론 이 정도 실험은 초등학생 누구나 한번 쯤 해 봤을 것이다. 뉴턴의 집요함과 명석함은 그다음 단계에서 드러난다. 첫 단계에서 갈라진 빛 중 하나만을 구멍으로 통과시킨다. 그림의 구멍 x가 그 역할을 한다. 백색광이었던 태양빛은 이런 여과 과정을 거치면서 특정한 색, 가령 빨간색 혹은 파란색이 지배적인 단색광으로 변한다. 구멍 x를 통과한 빛은 두 번째 구멍 y를 거쳐서 두 번째 프리즘을 통해 한 번 더 여과되면서 좀 더 세밀한 빛깔로 갈라진다. 원칙적으로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될 수 있으며, 빛은 점점 순수한 색깔의 단색광으로 정제된다. 뉴턴의 프리즘은 분광학, 즉 빛을 나누어서 분석하는 기술의 시초였다.

 

 

뉴턴이 개발한 분광학적 방법은 19세기 초반 바바리아에서 태어난 프라운호퍼Joseph Ritter von Fraunhofer, 1787-1826의 손을 거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11살에 부모를 잃고, 유리세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기하학적으로 완벽에 가깝고 결점이 없는 렌즈를 만드는 기술자로 명성을 쌓았다. 프라운호퍼가 잘 만들었던 또 다른 광학적 도구는 회절격자diffraction grating였다. 렌즈와 회절격자를 잘 부착하면, 분광기spectroscope라는 걸 만들 수 있다. 분광기의 작동 원리를 굳이 여기서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뉴턴의 프리즘을 돋보기라고 치면, 프라운호퍼가 고안한 분광기는 현미경에 해당하는 기계였다.

프라운호퍼가 분광기를 이용해 빛의 성질을 정밀하게 탐구했다면, 영국의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평생 전자기 현상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1845년 발표한 전자기 유도 현상은 그의 일생을 대표하는 업적이고, 물리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실험적 발견에 해당한다.1 패러데이는 프라운호퍼와 유사한 인생 역정으로도 흥미를 끈다. 부모를 잃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4살부터 인쇄소에서 책 만드는 일을 거들면서 독학으로 차츰 과학의 세계로 입문해서, 영국을 대표하는 존경 받는 과학자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프라운호퍼와 패러데이 사이의  정말로 중요한 유사성은 그들의 인생 역정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1864년 맥스웰이 발표한 이론에 따르면 프라운호퍼가 그토록 애착을 보였던 빛이라는 것과 패러데이의 평생 사랑이었던 전자기 현상은 둘 다 정확히 똑같은 방정식에 의해 기술되는 자연 현상의 다른 측면이었을 뿐이다.

 

빛은 파동이다: 맥스웰의 대발견

빛의 본질에 대한 최초의 올바른 이해는 전자기 현상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던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이 만든 방정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1864년 12월 4일, 영국 왕립학회에서 구두로 발표된 맥스웰의 논문은 당시 알려져 있던 모든 전기적, 자기적 현상을 몇 개의 미분 방정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같은 논문에서 맥스웰은 해당 미분 방정식들을 잘 조작하면 파동 방정식으로 알려진 독특한 미분 방정식 꼴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보였다. 그가 수행한 이론적 탐구의 정점은 그다음에 등장한다. 모든 파동 방정식에는 파동이 진행하는 속력에 해당하는 숫자가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데, 맥스웰이 얻은 파동 방정식에서는 그 숫자가, 당시 알려진 빛의 움직이는 속도와 매우 비슷했다. 맥스웰은 담담한 어조로 이런 결론을 논문에서 내린다:

The agreement of the results seems to show that light and magnetism are affections of the same substance, and that light is an electromagnetic disturbance propagated through the field according to electromagnetic laws.2

“자성과 빛은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고, 빛은 전자기장이 요동해서 생긴 파동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맥스웰은 “빛은 무엇인가”라는 인류의 아주 오랜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시한다. 정답을 표현하는 데는 단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비록 맥스웰이 논문에서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그 선언의 함의는 분명했다. 빛은 파동이다. 따라서 빛 자체는 물질이 아니다. 이것이 빛에 대해 인류가 얻은 ‘최초의 올바른’ 이해였다.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모든 전자기파의 속력은 정확히 동일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똑같은 속력의 빛이라고 하더라도 파장은 제각각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른 색깔의 빛이 갖는 차이는 이동 속력이 아니라 파장波長,wavelength이다. 한자 뜻 그대로, 파동의 길이를 파장이라고 부른다. 운동장에 여러 명의 달리기 선수가 있다고 해 보자. 한 선수는 키가 2미터, 다른 선수는 1미터, 또 다른 선수는 불과 50센티미터다. 동시에 출발선을 뛰어나간 세 명의 선수는 똑같은 시간에 결승점으로 들어온다.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시간에 달렸으니 속력=(거리)/(시간)은 동일한 셈이다. 2미터의 선수는 한걸음에 2미터씩 내달렸다. 그 대신 2초에 한 걸음씩 달렸다. 1미터의 선수는 1초에 한 번 씩 1미터를 내달렸다. 0.5미터짜리 선수는 발이 빨라 1초에 두 걸음씩, 한 걸음을 뗄 때마다 0.5미터씩 달렸다. 결국 세 선수의 달리기 속력은 똑같다.

빛의 파장이란 건 달리기 선수의 보폭과 같다. 어떤 빛은 보폭이 굉장히 크고, 다른 빛은 보폭이 작다. 전자기파의 세계에서 파동이 가질 수 있는 값은 수 킬로미터에서 수 억분의 일 미터까지 다양하다. 서로 다른 파동은 한 번 떨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제각각이다. 달리기 선수의 발걸음이 얼마나 잰가를 측정하듯, 빛도 진동수(1초당 파동이 진동하는 횟수)를 갖고 있다. 그 진동수는 빛의 파장과 정확히 반비례한다. 그래서 어떤 전자기파든 그 파장 값과 진동수 값을 곱하면 항상 똑같은 값, 빛의 속력 c가 나온다. 다만 아주 특별한 파장 영역에 걸쳐 존재하는 전자기파만 인간의 눈에 직접 감지되어 색깔로 인식된다. 단지 눈에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을 감지하는 세포가 없는 탓에 빛(=가시광선)이 특별하게 느껴질 뿐이지, 본질적으로 수학적인 측면에선 가시광선과 엑스선과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마이크로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자기파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적절한 맥락에서도 여전히 빛이란 단어를 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라는 건 과학자들도 포함한다. 빛이란 단어가 주는 친숙함에는 과학의 힘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면이 좀 있다.

만약 맥스웰의 답이 정답이라면, 그의 답은 최초의 답일 뿐 아니라 최후의 답이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애써 맥스웰의 결론이 ‘최초의 올바른’ 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차차 살펴보기로 하자.

맥스웰 이후 물리학의 발전은 참 기묘했다. 그 기묘함의 주범은 맥스웰 방정식 그 자체이기도 했다. 굳이 물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속도의 상대성이란 걸 이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나란히 가는 두 대의 차는 피차 서로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 속도가 0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편 차선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가는 차는 무척 빨라 보인다. 이 경우 두 차 사이의 상대 속도는 무려 시속 200킬로미터다. 그런데 맥스웰 방정식을 조금만 분석해 보면 빛의 속력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방향과 속력에 상관없이 항상 초속 30만 킬로미터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 체득한 상식에서 매우 어긋난다.

두 명의 미국인 마이켈슨Albert Michelson, 1852-1931(190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과 몰리Edward Morley, 1838-1923는 1887년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빛의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실험을 한다. 왜 하필 석 달 간격을 두고 실험을 했을까? 석 달이면 지구가 태양 주위 궤도를 1/4만큼 돌고 난 시간이다. 궤도가 대략 원 모양이니까, 석 달이면 지구가 움직이는 방향이 90도만큼 꺾여 있는 상태가 된다. 말하자면 동쪽으로 달리는 차와, 북쪽으로 달리는 차 두 대가 각각 빛의 속력을 관측하고 보고한 셈이다. 차 대신 지구의 운동을 이용했을 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관찰자 두 명이 동원됐다는 점에서는 앞서 든 고속도로의 예와 같다. 석 달 간격으로 측정한 빛의 속력은 적어도 마이켈슨과 몰리가 사용한 실험 도구가 허용하는 정확도 안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에 기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빛의 속력이 관측자의 운동 속력에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사실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성질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현명하게도 빛의 속력의 불변성을 자연이 부과한 일종의 공리로 받아들이고, 그 공리로부터 도출되는 함의corollary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결과물이 다름 아닌 특수 상대성 이론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어떤 물체도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 또한 만약 빛만큼 빨리 가고 싶은 물체가 있다면 그 물체의 질량은 0이 되어야만 한다. 물질도 아닌 빛이 (왜냐하면 빛은 물질이 아니라 파동이니까) 물질 세계 운동의 유리 천장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그 질문을 살짝 바꾸어 되풀이해 보자: “(아직도) 빛은 물질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입자 세계에 대한 물리학이 뉴턴 역학의 발견으로 일단락되었다면, 빛에 대한 물리학은 맥스웰 방정식 덕분에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뉴턴이 매듭지었다고 믿었던 역학 체계와 맥스웰이 완성한 것으로 보였던 전자기학 체계의 불완전성은 모두 스위스의 특허국에서 알바를 하면서 물리학 박사 과정을 마치려고 애쓰던 한 청년이 쓴 몇 편의 논문을 통해 차츰차츰 밝혀진다. 그 기념비적 논문을 통해 차츰차츰 빛은 ‘물질’로서 인증을 받아 나간다. 그 과정의 시작과 끝을 떼어놓고 보면 엄청난 혁명처럼 보이지만, 세분해서 보면 차분한 건물 짓기 과정에 가깝게 느껴진다. 맥스웰로부터 시작해서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일단락된 이 건축 과정에는 앞서 말한 인물 외에도 물리학사에서 그다지 기억되지 않는 분광학 기술자들, 당대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 그리고 몇몇 괴짜 대학원생이 참여한다.

 

빛도 입자다! – 난로와 전자레인지의 교훈

요즘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서도 보기 힘들긴 하지만 석탄 난로가 무엇인지 모르는 독자는 아마 없을 것 같다. 한 번 상상해 보자. 따뜻한 난로 곁에 앉아 있으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말 그대로 난로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따뜻함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난로와 접촉하고 있는 공기가 우선 따뜻해지고, 뜨거워진 공기가 차츰 주변으로 확산되어서 우리 몸까지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상황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 만약 난로 주변의 공기를 청소기로 모두 빨아버려 진공 상태가 되었다고 해 보자. 물론 난로 속 석탄이 타는데 필요한 공기와, 인간이 숨 쉬는 데 필요한 공기는 여전히 있다고 가정하고, 단지 난로의 열을 전도해 줄 매개체로서의 공기만 강제로 제거했다고 해보자. 그래도 우리는 난로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까? 태양이 우주라는 거대한 진공을 통해서 지구에 따뜻함을 전달해 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 보면 난로 역시 공기의 도움 없이도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태양이나 난로가 전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열이 아니라 빛이다.3 빛은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고, 그 에너지는 지구의 공기와 만나 열에너지로 바뀐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빛의 따스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빛이 뜨끈하게 달군 공기의 따스함을 피부로 느낀다.

앞서 뉴턴이 사용한 프리즘이 프라운호퍼의 손을 거쳐 정교한 분광학 기계로 발전했다고 언급했었다. 프라운호퍼의 기계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각 색깔별 빛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측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방법은,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간단하다. 위에서 [그림1] 뉴턴의 도식처럼, 구멍을 뚫어 특정한 색깔의 빛만 통과시키는 장치를 분광기에 추가한다. 구멍을 통과한 빛은 예리할 만큼 정확한 색깔을 가진 빛이다. 이번엔 그 빛이 내는 열의 양을 정밀하게 측정할 기계를 부착한다. 가령 구멍 뒤에 물을 조금 담은 물통을 갖다 놓은 뒤, 빛을 쏘인 물의 온도가 얼마만큼 올라가는지 측정하면 된다. 물론 실제 기계는 이것보다 훨씬 세련된 방법을 사용해 에너지를 측정하지만, 그 원리를 따져보면 물의 온도 변화를 측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정교함에 있다. 이런 기계를 고안하고, 세밀한 부품까지 완벽하게 성능을 갖출 때까지 개선을 거듭하려면 누군가의 일평생이 다 소진될 수도 있다. 과학의 역사에서는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기술자들의 헌신이 종종 과학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19세기 말 독일에는 그런 장인 정신이 만들어 낸 분광학 기계가 있었고, 그 기계 덕분에 난로에서 발생하는 빛의 에너지를 색깔별로 측정할 수 있었다. 물론 진짜 석탄 난로를 실험에 쓴 것은 아니다. 어떤 물체를 일정한 온도까지 가열한 다음, 온도를 유지하면서 물체에서 발광된 빛을 분석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발광하는 물체를 물리학자들은 흑체blackbody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자면 19세기가 끝날 무렵 독일의 물리학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이런 ‘난로의 물리학’이었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191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는 당시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열통계 물리학에 정통한 이론가였다. 1900년 무렵 플랑크의 관심을 끌던 실험 결과는 흑체에서 발생한 빛의 에너지를 빛의 파장별로 잘 측정한 그래프였다. 그것은 마침 플랑크가 함께 일하던 베를린에 있는 실험 물리학자들이 얻은 최신 결과였다. 측정 결과는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기존 이론으로는 그 실험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문제는 빛의 파장별로 발생되는 에너지를 그린 그래프의 모양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점이었다. 아주 낮은 파장과 아주 큰 파장에서는 큰 에너지가 관측되지 않았지만 어떤 적당한 파장값에서는 방출되는 에너지의 값이 최대로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최대 에너지를 방출하는 빛의 파장은 난로의 온도와 깊은 연관성이 있었다. 온도에 정확히 반비례해서 최대 에너지를 주는 빛의 파장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기존 이론은 그래프의 일부 구간을 잘 맞추기는 했지만 전체 파장 구간에 대해 좋은 결과를 주지는 못했다.

물리학 연구를 제법 오래 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실험 결과를 들여다보고 있던 플랑크의 묘하게 흥분된 마음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선한 생선을 주방에 올려놓은 초밥 요리사의 느낌, 최고 품질의 대리석을 작업장에 갖다 놓은 조각가의 심정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필자도, 비록 미약한 성과이긴 하지만, 멋진 실험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어떤 이론을 만들어야 실험을 잘 이해할까 수십 년간 궁리해 본 경험이 있어서 이런 말을 자신 있게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실험 결과는 이미 답(이론)을 품고 있다.” 실험 결과 속에 숨어 있는 답은 이론가에게 속삭인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를 찾을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사이렌의 유혹 같은 그 속삭임에 빠진 과학자는 단지 밤낮으로 실험 결과를 설명하려고 몰두할 뿐 아니라, 평소와는 다른, 본인도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사고 방식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논리적 사고 대신 직관적 사고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론가는 실험을 설명하기 위한 답을 풀어내기보다는 그 답을 ‘찍는다’. 플랑크가 성공적으로 흑체 복사 실험 결과를 설명한 방법도 그런 식이었다.

 

1900년에 쓴 첫번째 논문에서 플랑크는 흑체로부터 복사된 빛이 갖는 엔트로피에 대한 방정식을 적고 풀었다.[1] 플랑크는 그 당시 손꼽히는 엔트로피 이론 전문가였다.4 빛의 엔트로피를 알면 빛이 갖는 에너지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 결과와 비교하는 게 가능하다. 그가 연구 결과를 발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실험 동료들부터 자신들의 실험 그래프와 플랑크가 유도한 함수가 모든 측정 구간에서 아주 잘 들어맞는다는 대답이 왔다. 일단 정답을 찍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다만, 플랑크의 유도 과정에는 이전의 엔트로피 이론에는 없던 새로운 상수가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이 상수값을 잘 조절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실험 결과와 놀랍게 잘 일치하는 곡선을 얻을 수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새로 발견된 이 상수값은 빛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막상 플랑크의 논문을 읽어보면, 새로운 상수 도입에 대해 플랑크가 크게 고민한 흔적이 없고, 또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것 같지 않다.

그다음 과정은 조금 더 흥미로웠다. 흑체 복사 실험 결과와 잘 맞는 함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플랑크가 다음으로 한 일은 왜 그 함수가 등장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모델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1900년 12월 완성한 후속 논문에서 플랑크는 바로 그런 모델을 만들어 제시한다.[2] 그리고 그가 첫 논문에서 도입했던 새로운 상수에 h란 이름을 붙인다. 플랑크의 모델은 어떤 진동자resonator를 가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 진동자의 물리적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살짝 회피한 채, 다만  ‘어떤 진동자가 있어, 그 진동자의 에너지가 진동수 f와 상수값 h의 곱인 hf, 혹은 2hf, 3hf, 이렇게 hf라는 기본 단위 에너지 값의 정수배로만 존재한다고 치면, 흑체 복사 실험 결과를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다’는게 논문의 취지였다. 진동자의 에너지가 띄엄띄엄 ‘양자화’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걸 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1900년 플랑크가 쓴 두 편의 논문 어디에도 양자quantum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흔히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905년, 아인슈타인은 6월에는 광전 효과 논문을[3], 7월에는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9월에는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을, 11월에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을 다룬 논문을 차례로 독일의 학술지 Annalen der Physik에 싣는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광전 효과 논문에는 양자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여러 군데 등장한다. 양자量子, quantum는 수량數量, quantity을 뜻하는 라틴어 quantus에서 유래한다. 물건의 개수를 하나, 둘 세듯이 빛이 품고 있는 에너지의 양을 하나, 둘 셀 수 있다는 의미로 도입한 단어일 것이다. 이 단어는 플랑크가 도입했던 상수 h와 함께 양자 역학 발전 과정에서 그대로 채용되면서 양자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흔히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 논문이라고 불리는 그의 1905년 첫 번째 논문을 직접 읽어본 물리학자라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논문을 시작하는 ‘말투’였다. 아인슈타인이 활동하던 그 당시 물리학의 틀에는 두 가지 서로 상이한 자연의 표현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을 구성하는 건 띄엄띄엄한 존재인 원자와 전자(양성자와 중성자는 아직 발견되기 전이었다)라는 점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인슈타인은 우선, 원자의 띄엄띄엄한 측면과는 달리 맥스웰의 이론을 따르는 전자기파에는 그런 띄엄띄엄한 성질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하자면 원자는 ‘디지털’인데 빛은 ‘아날로그’였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표현법이 아인슈타인에게 불편하게 느껴졌을 만하다. 빛은 사실상 원자로부터 발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빛을 내는 태양, 혹은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나 수면은 모두 물질로 만들어져있다. 빛의 근원이 되는 물질은 띄엄띄엄한 불연속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데 막상 그 배출물이라고 할 수 있는 빛은 연속성만 갖고 있다면, 뭔가 불합리해 보이지 않는가.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부조화가 우리의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고 항변한다. “우리가 보는 빛의 현상이란 건 그저 오랜 시간을 두고 관측한 평균적인 현상일 뿐, 원자가 빛을 방출하는 그 ‘순간’을 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취지로 아인슈타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 융합점이 있을 수 있다고 넌지시 제시한다.

 

사실 이런 사고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흔해 빠진 생각에 가깝다.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버린 컴퓨터를 통해 우린 아날로그적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 초당 24개 이상의 화면을 보여 주기만 하면 그걸 연속적인 영상, 즉 영화로 착각하는 게 우리의 시각적 능력인데, 수억 분의 1초, 수조 분의 1초 사이에 벌어지는 원자의 빛 방출 현상에 대해 우리의 경험이 어찌 단호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불완전한 경험에 바탕을 둔 판단력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빛도 디지털적 존재라고 주장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직접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의 불완전한 경험을 근거로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것이 20대 중반의 청년, 아인슈타인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는 플랑크가 말했던 진동자가 곧 빛이라는 해석을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즉, 빛은 (플랑크 상수)*(진동수)= h f = E라는 에너지 덩어리를 갖는 존재다. 아인슈타인의 첫 논문은 (필자가 보기에) 그의 물리학자적 강점이라고 할 만한 사고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왜 빛에너지가 양자화돼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빛을 양자화하기로 선택한 건 자연이고, 우리는 그저 현실적으로 자연이 택한 방식이 주는 함의를 탐구하는 것뿐이다. ‘만약 빛이 광자라면…’이란 취지로 시작되는 그의 논문 8단원(광전 효과 논문은 총 9단원으로 나누어져 있다)에서 아인슈타인은 한 가지 단순한 예측을 한다.

광전 효과라고 불리는 그 당시 주목받던 일련의 실험이 있었다. 금속 표면에 일정한 파장의 빛을 쏘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 목격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전자레인지에 은박지를 넣고 스위치를 켜는 실험을 한 셈이다. 쏘아 주는 빛의 파장을 바꿔 가면서 실험을 해 봤더니, 어떤 파장에서는 전자가 전혀 안 튀어나오다가,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쏘일 때 비로소 전자가 튀어나온다는 것이 실험의 요지였다. 단순하고, 얼핏 보면 시시해 보이는 실험이었다. 빛photo-을 쏘이면 전자electron가 튀어나온다고 해서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라 부르고, 금속 박막에서 튀어나온 전자를 광전자라고 부른다. 만약 빛의 에너지가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대로 (플랑크 상수)*(진동수)로 주어지는 게 맞다면, 광전 효과를 일으킬 때 사용하는 빛의 진동수가 커질수록, 광전자의 에너지도 비례해서 커져야만 한다는 게 그의 단순한 예측이었다. 그리고 약 10년 후, 미국의 뛰어난 실험 물리학자 밀리컨Robert A. Millikan, 1868-1953(192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정확했음을 검증한다.[4] 빛이 양자화된 에너지 덩어리라는 개념은 이런 식으로 차츰차츰 과학적 상식이 되어 갔다.

입자의 대표적인 속성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하나, 둘, 이렇게 셀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아인슈타인의 예견과 그 뒤에 일어난 실험적 검증에 따르면 빛도 이렇게 하나, 둘 셀 수 있는 속성이 있다. 빛도 입자성이 있다. 빛은 빛 알갱이다!

 

파동의 물질성, 물질의 파동성

기적의 해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마지막으로 출판한 논문에는 그 유명한 식 \(E=c\sqrt { { (mc) }^{ 2 }+{ (px) }^{ 2 }+{ (py) }^{ 2 }+{ (pz) }^{ 2 } }\)이 등장한다. 여기서 c는 빛의 빠르기인 3×108 m/s를 나타내고, m은 입자의 질량이다. 나머지 표현은 움직이는 입자의 운동량이라고 부르고, 각 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의 크기를 표시한다. 뉴턴 역학에선 운동량(p)이 움직이는 물체의 질량(m)과 속도(v)의 곱으로 간단하게 주어진다: p = m*v. 문제는 빛이었다. 아인슈타인 자신이 만든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질량은 없어야만 했다. 동어 반복적인 말이겠지만, 빛은 빛만큼 빠르게 움직이니까, 당연히 질량이 없어야 한다.

빛이 질량이 없는 입자라고 가정해보면 아인슈타인의 공식은 간단하게 \(E=c\sqrt { { (px) }^{ 2 }+{ (py) }^{ 2 }+{ (pz) }^{ 2 } } =c\times p\)로 변한다. 운동량의 크기 p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면 각 방향의 운동량 성분을 제곱해서 다 더한 뒤 제급근을 취해서 얻어진다. 뉴턴 역학의 체계에선 질량이 없는 입자라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고, 만약 그런 입자를 억지로 가정한다면 그 입자의 운동량은 항상 0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새로운 역학 체계에선 질량이 더 이상 입자의 절대적인 속성이 아니다. 설령 질량이 없는 입자라고 할지라도 운동량과 에너지라는 속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 알갱이는 c라는 빠르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에너지 덩어리다.

 

한편 플랑크의 공식은 빛 알갱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E= h*f, 즉 플랑크 상수와 진동수의 곱으로 표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동수 f는 빛의 파장과 함께 (진동수)*(파장)=c라는 관계를 항상 만족해야 한다는 조건을 앞서 말한 적 있다. 그렇다면 빛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의 표현 E=p*c, 플랑크의 표현 E=h*c/(파장). 만약 두 식이 빛 알갱이의 속성을 표현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에 불과하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당연히 두 식은 동등해야 한다. 즉 h*c/(파장)=(운동량)*c 라는 관계가 성립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마침 양변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빛의 속력 c를 소거하고 나면 두 공식의 동등성은 빛의 운동량과 파장 사이에서 (운동량)*(파장)=h 라는 관계식으로 바뀐다. 운동량이란 건 뉴턴 역학 이후 입자의 전형적인 속성으로 여겨졌다. 파장은 파동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빛 알갱이에는 이 두 가지 속성이 공존한다. 파동인 줄 알았던 빛에는 입자의 속성, 즉 운동량도 있었다. 두 속성은 플랑크 상수를 통해 서로 연결된, 사실은 동일한 입자의 속성을 표현하는 서로 다른 언어일 뿐이었다.

프랑스의 젊은 물리학자 드브로이Louis de Broglie, 1892-1987(192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는 대학원생 시절 발표한 논문에서, 빛 알갱이에 대한 식 (운동량)*(파장)=(플랑크 상수)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를 한다.[5] 만약 이 식의 양변을 파장 값으로 나누면 앞서 말한 대로 (운동량)=(플랑크 상수)/(파장)이라는 공식을 얻게 되고, 그 해석은 “어떤 파장을 갖는 파동에는 그에 해당하는 운동량이란 속성이 있다, 즉 파동은 동시에 입자성을 띤다”가 된다. 반면 식의 양변을 운동량 값으로 나누면 어떻게 될까? 일단 식이 (파장)=(플랑크 상수)/(운동량)으로 바뀐다. 드브로이는 이 식에 대해 대담하고 새로운 해석을 부여한다. 어떤 입자가 있다면 그 입자의 속성인 운동량이란 게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 입자에는 동시에 파동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파장 값을 줄 수도 있다. 다름 아닌 (파장)=(플랑크 상수)/(운동량)이란 식을 이용해서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운동량)*(파장)=(플랑크 상수)라는 공식을 파동으로부터 입자의 속성을 유추하는 경로로 이해했다면, 드브로이는 거꾸로 입자성 속에 내재한 파동성을 유추하는 방식으로 이해했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논리다. 이런 황당해 보이는 주장으로 어떻게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드브로이의 관점이 옳다면, 그래서 입자의 거동이 파동의 움직임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면, 입자의 운동을 일종의 파동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드브로이의 논문이 발표된 해는 1923년이었다. 불과 그로부터 3년 후인 1926년 1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레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193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는 드브로이의 제안을 한층 발전시킨 새로운 종류의 파동 방정식을 세상에 발표한다. 슈레딩거 방정식의 출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양자 역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역학 체계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이제는 슈레딩거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잘 풀기만 하면 원자를 비롯한 물질의 성질을 기계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정상 과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5 슈레딩거 방정식의 발견은 양자 물질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 시작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양자역학 발전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의 공식 E=p*c와 플랑크의 공식 E=h*f가 갖는 등가성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두 공식의 등가성을 통해 본래 파동인 줄만 알았던 빛은 에너지 알갱이가 되고, 본래 입자인 줄만 알았던 것도 파동이 된다. 그 시작이 되었던 사업, 즉 빛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건 19세기 물리학의 정수였던 맥스웰의 전자기 파동 방정식과 열통계 물리학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난로에서 발광된 빛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 결국 양자 역학을 만드는 데까지 흘러왔고, 그렇게 만들어진 양자 역학은 원자 세계 전체를 설명한다.

빛이 파동임을 증명했던 맥스웰로부터 슈레딩거의 양자역학 방정식 탄생까지, 그 탐구의 시작과 끝만 딱 떼어 놓고 보면 혁명적인 발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단계별로 뜯어보면 한 알의 도토리가 땅에 심어져 싹이 나고 크게 자라 마침내 참나무숲이 되듯 점진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 양자역학의 핵심 상수를 도입한 플랑크의 논문에는 막상 양자란 단어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빛이 알갱이라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논문에서는 양자란 단어는 자유롭게 사용되지만 막상 광자photon란 단어는 없다. 정작 광자란 단어를 1926년에 공식적으로 사용한 건 미국의 물리 화학자 루이스Gilbert Lewis, 1875-1946였다.6 (학문적) 선배에게 조심스러운 개념이 다음 세대에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토대로 다음 단계를 조심스럽게 밟아 나가는 과정은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과학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아인슈타인이 ‘놓친’ 노벨상

1900년 플랑크의 논문과 1905년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안고 있던 공통적인 문제점은 원자와 빛의 상호 작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아주 깔끔하고 직관적인 모델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자와 빛의 상호 작용을 정량적으로 다루는 것은 슈레딩거 방정식이 나온 1926년부터야 비로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이 됐건 원자와 빛이 미시적인 세계에서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우리가 보는 모든 현상은 원자와 빛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니까 말이다. 비록 미시적인 모델은 없다 하더라도, 뛰어난 물리학자라면 일단 그런 과정이 있다고 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물리적 의미만 체계적으로 잘 따져서 실험 결과와 비교해 보거나, 새로운 검증 가능한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이 광자 문제를 다루면서  취한 접근법이기도 했다. 물리학에서는 이런 방법을 ‘현상론적’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반면 가장 근본적인 방정식을 찾아내고, 그 방정식의 풀이를 통해서 자연 현상을 유도하고자 하는 좀 더 근본주의자적 접근법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나 일반 상대성 이론은 후자의 범주를 대표하는 업적이고, 그 덕분에 아인슈타인을 뉴턴과 함께 물리학 최고의 근본주의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아인슈타인에게는 현상론적 이론 만들기에도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었다. 현상론자는 실험 결과가 주는 속삭임에 예민하게 귀 기울이는 반면, 근본주의자는 이론 자체의 엄격함, 완전 무결성에 흥분하길 좋아한다. 1급의 현상론자가 동시에 1급의 근본주의자가 되기 힘든 이유는 각기 요구하는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이진법적 분류를 초월한 20세기 최고의 현상론자이면서 동시에 근본주의자였다.

 

아인슈타인이 평생 탐구했던 주제는 1905년 그가 발표했던 네 편의 논문에서 다룬 주제들의 꾸준한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대략 10년간의 노력을 거쳐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확장되었다. 브라운 운동과 광전 효과에 대한 1905년 논문은 아주 작은 물질세계, 즉 원자 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을 드러낸 업적인데,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 만들기에 집중하던 10년의 세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이 분야의 논문을 써냈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만드느라 한눈을 판 덕분에, 유럽의 젊은 과학자들이 대신 빛과 원자의 상호 작용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볼 기회를 누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이 그 유명한 중력장 방정식을 발표한 1913년 같은 해, 덴마크 출신의 젊은 이론가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19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는 원자-빛 상호작용에 관한 혁신적인 모델을 세상에 발표한다.[6]

우선 보어의 원자 모델이라는 걸 좀 살펴보자. 보어는 수소 원자를 핵(양성자) 주변에 전자 하나가 돌고 있는 일종의 행성계로 취급했고, 전자의 운동은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의 운동과 비슷하게 원운동일 것이라고 가정했다. 원운동이란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진 궤도를 회전하는 운동이다. 여기에는 물리학자들이 각운동량이라고 부르는, 전자의 운동량과 원궤도의 반지름을 곱한 양이 하나 등장한다: (각운동량)=(운동량)*(반지름). 보어는 전자의 각운동량에 대한 대담한 가정을 하나 도입한다. 그 가정이란, 전자의 각운동량이 플랑크 상수에 정비례하는 띄엄띄엄한 값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은 빛, 즉 광자의 에너지가 (플랑크 상수)*(진동수) 값의 정수배로만 존재한다는 주장을 했지만, 그런 양자화 가설을 전자의 운동에 적용할 생각을 하진 못했었다. 보어가 과감하게 도입한 각운동량의 양자화 가설에 따르면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 또한 오직 띄엄띄엄한 값만 허용됐다. 어떤 (리드버그라고 부르는) 에너지 단위가 있어 그 단위의 1배, 1/4배, 1/9배, 이런 식으로 주어진 값만이 전자에게 허용된 에너지였다.

수소 원자로 구성된 기체를 가열하면, 수소 원자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체를 담아 둔 투명한 유리관이 밝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네온사인의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 눈으로 볼 때는 붉은색, 노란색, 이렇게 단색으로만 발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광기를 이용해 들여다보면 사실 한 원자로부터 굉장히 많은 종류(파장)의 빛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수소 원자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빛의 종류, 즉 파장의 종류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단순한 원자인 수소 원자가 빛과 상호 작용하는 원리는 수소 원자로부터 방출된 빛이 갖는 특정한 파장의 원인을 알아내기만 하면 밝힐 수 있었다.

 

보어의 원자 모델은 수소 원자의 빛 방출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했다. 수소 기체를 가열하면 그 열에너지 때문에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던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한다. 그렇지만 높은 곳에 올라간 전자는 언젠가 다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내려와야 하는 법, 결국 다시 아래로 추락한다. 추락하는 과정에서 전자의 에너지 차이값에 해당하는 만큼의 에너지는 어디로 갈까? 다름 아닌 광자의 형태로 ‘방출’된다. 우리가 보는 밝은 빛은 바로 그 방출된 광자다. 전자의 에너지가 띄엄띄엄 존재하니, 에너지의 차이도 띄엄띄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출되는 광자의 에너지도 띄엄띄엄하다. 그런데 플랑크-아인슈타인의 공식에 따르면 광자의 에너지는 곧 전자기파의 진동수에 정비례한다. 따라서 진동수가 양자화되고, 이건 곧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양자화됨을 의미한다.

 

1913년 발표된 이 보어의 원자 모델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인슈타인은 종종 양자 역학을 극렬히 반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그가 보어의 논문을 대한 태도는 (아인슈타인답게) 지극히 실용적이었다. 보어의 원자 모델을 토대로 아인슈타인은 원자-빛 상호 작용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논문 한 편을 1916년 무렵 발표한다. 자신의 광전자 논문이 나온 지 대략 10년 만의 일이다. 보어의 모델은 굉장히 유익한 모델이었고, 수소 원자에 관한 분광학 실험 결과를 기막히게 잘 맞췄다. 실험과 잘 들어맞는 모델이라면 굳이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 모델을 출발점으로 몇 가지 유익한 상상을 덧붙인다.

일단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모델이 단지 수소 원자뿐 아니라 일반적인 원자나 분자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어떤 원자나 분자든지, 그 속에 있는 전자는 몇몇 띄엄띄엄하게 정해진 상태에만 있을 수 있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려면 빛 알갱이를 내놓거나 빨아들여야만 한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논의를 단순화해서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상태가 딱 두 개만 있다고 가정했다. 그 상태를 편의상 (위)와 (아래)라고 부르자. 아인슈타인이 상상한 상황은 이렇게 전자가 (위) 또는 (아래) 상태에 거주하고 있는 원자가 잔뜩 모여 있는 어떤 물질이었다. 수많은 원자로 구성된 물질 속에서 어떤 원자 속의 전자는 (위) 상태에 있고, 다른 원자 속 전자는 (아래) 상태에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순간 (위)에 있던 원자는 다음 순간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빛 알갱이 하나를 방출하면서 말이다. 그 반대 과정도 있을 수 있다. (아래)에 있던 전자가 주변을 돌아다니던 광자 하나를 포획해서 잡아먹으면, 에너지를 얻어 (위) 상태로 전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원자 사이에서 광자를 서로 주고받는 일이 계속 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위) 상태와 (아래) 상태에 있는 원자의 개수가 거의 변하지 않는, 평형 상태에 도달한다.

얼마만큼이나 원자가 광자를 주고받는 활동을 활발히 할까 결정하는 변수는 주변 온도다. 뜨거운 온도 속이라면 전자의 (위)(아래) 이동이 좀 더 활발하다. 활동량을 정확히 결정해 주는 물리학적 도구를 통계역학이라고 부르는데, 아인슈타인은 그 당시 누구 못지않은 통계역학의 달인이었다. 보어의 원자 모델을 바탕 삼아, 원자와 광자의 상호 작용을 통계역학적으로 고려한 아인슈타인은 어떤 원자가 (위)상태에서 (아래)상태로 전이할 확률, 그 반대의 전이를 할 확률, 그리고 광자의 확률 분포까지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광자의 에너지 분포 함수는 플랑크가 본래 유도했던 함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드디어, 원자와 빛의 상호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빛과 원자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한 최초의 정량적 결과라고 할 만하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그의 이론이 맞다면 원자 세계에선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져야 했다. (위) 상태에 있는 원자 주변에 광자가 잔뜩 있다고 해 보자. 포식자인 원자 입장에선 맛있는 먹이인 광자를 하나 더 잡아먹고 싶겠지만, 이미 배가 잔뜩 부른 상태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현실적으론 물론 더 이상 높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광자를 흡수할 가능성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배부른 포식자와는 전혀 다른 원자의 기이한 거동이 그다음 단계에서 벌어진다.

 

이미 가젤 한 마리를 잡아먹고 배가 잔뜩 부른 사자 떼라면 주변에 또 다른 가젤 무리를 봐도 본체만체할 것이다. 주변에 나타난 가젤 떼를 보고 식욕이 돋는다면서 이미 잡아먹은 가젤을 토해낼 사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원자는 사자보다 훨씬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주변에 많이 널려 있는 광자를 보면, 자발적으로 광자 하나를 토해내면서 (위) 상태에서 (아래) 상태로의 전이를 감행한다. 자극 방출stimulated emission이라고 불리는 이런 기이한 현상이 원자 세계에서 벌어져야만 비로소 원자와 빛 사이의 열적 평형 상태를 이루는 게 가능하다는 게 아인슈타인의 깨달음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비록 사자-가젤의 생태계에선 이런 자극 방출이 일어나지 않지만 아기-장난감 생태계에서는 일어날 법도 한 일이다. 두 손에 장난감을 잔뜩 쥔 아이한테서 그 장난감을 뺏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대개 그 답을 안다. 아이 눈앞에 새로운 장난감 하나를 흔들어 준다. 아이는 그 장난감 하나를 얻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 전체를 방출해 버린다!

말하자면 광자 무리는 (위) 상태에 있는 원자를 살살 약 올려서 그 원자로 하여금 광자 하나를 내놓게 만든다. 이젠 광자 개수가 하나 더 많아졌다. 무리가 불어난 광자는 더욱 효과적으로 다른 원자를 공략해서 광자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광자의 개수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기계를 만드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 우선 열을 주거나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원자를 좀 흥분시킨다. (아래) 상태에 있던 원자를 (위) 상태로 옮아가게 한다. 그럼 자극 방출 원리에 따라 흥분된 원자는 자꾸자꾸 광자를 방출한다. 이런 기계가 정말 있다면 빛을 끊임없이 발생시키는 광원으로 쓸 수 있다. 우리가 레이저라고 부르는 기계는 바로 이런 원리로 만들어졌다.

 

아인슈타인은 플랑크 이론의 최대 수호자이면서 동시에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그는 플랑크의 제안이 담고 있는 함의를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광자 가설을 도입하고, 광전 효과를 설명하고, 자극 방출 원리를 발견했다. 광자 가설과 광전 효과는 그가 노벨상을 받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자극 방출 원리는 20세기 후반 레이저의 발달과 레이저를 기반으로 한 무수한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됐다. 그 영향력을 놓고 본다면 자극 방출 원리 발견은 또 다른 노벨상감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놓친 노벨상은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이 놓친 노벨상 목록에 또 하나 후보를 더한다면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들 수 있겠다.

 

인도의 이론 물리학자 보즈Satyendra Bose(1894-1974)는 플랑크가 최초로 유도하고 (1900년), 아인슈타인이 좀 더 멋진 방법으로 유도한(1916년) 흑체 복사 공식을 한층 더 멋지게 유도하는 방법을 우연히 떠올렸다. 오늘날 물리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흑체 복사 공식을 가르칠 때는 오직 보즈의 방법론만을 사용한다. 그의 이론에는 더 이상 플랑크의 어색한 ‘진동자’도, 아인슈타인의 ‘전자 에너지 준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즈는 오직 빛 알갱이, 즉 광자들과, 그 광자가 들어가는 방만이 존재하는 그런 모델을 제시한다.

앞선 글 “양자 물질의 역사 [3]: 파울리 호텔”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전자라는 입자는 파울리 호텔의 방 한 칸씩을 차지하고 있고, 한 방에는 성별로 한 개의 전자만 들어가는 구조라는 설명이었다. 보즈는 파울리 호텔과 비슷하게 생긴, ‘보즈 호텔’의 각 방에 광자라는 투숙객이 들어가 있는 모델을 가정했다. 어떤 방엔 광자가 하나, 또 어떤 방엔 두 개, 또 어떤 방엔 세 개, 이런 식으로 모든 가능한 방배치의 종류를 따져 보면 광자계가 갖는 총 엔트로피를 구할 수 있다. 엔트로피를 일단 구하기만 하면 광자의 에너지 분포 함수를 구하는 건 단순한 수학적 조작으로 가능하다. 그런 조작을 통해 보즈가 얻은 공식은 정확히 20여 년 전 플랑크가 얻은 흑체 복사 함수였다! 1924년 무렵의 일이다.

 

 

파울리 호텔에 거주하는 전자는 한 방에 (성별로) 한 개씩만 들어갈 수 있다. 보즈는 한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광자의 개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왜 보즈는 광자가 파울리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믿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파울리 원리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세상에 발표된 건 1925년, 보즈의 논문이 세상에 나온 건 그보다 한 해 빠른 1924년이었다. 굳이 독거를 고집하는 괴팍한 성격의 입자가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었던 보즈는, ‘자연스럽게’ 한 방에 들어가는 광자의 개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보즈의 이론에는 광자의 본성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가설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가령 5번 방에 광자가 한 개, 7번 방에도 광자가 한 개 들어가 있다고 하자. 이번엔 두 광자의 위치를 바꿔 보자. 5번 방에 한 씨가, 7번 방에 김 씨가 투숙한 경우와, 두 사람이 방을 바꿔 투숙한 경우는 호텔 관리자 입장에선 분명히 다른 ‘상태’에 해당된다. 그러나 만약 투숙객이 광자라면 어떨까? 서로 방을 바꿔 들어가도 관리자가 보기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그건 그저 하나의, 동일한 상태일 뿐이다.

동전 던지기를 예로 들면 이 상황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두 개의 동전이 모두 앞면으로 나올 가능성은? 답은 ¼=25%다. 앞면 하나, 뒷면 하나가 나올 확률은? ½, 즉 50%다. 동전의 면이 (앞,뒤)로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뒤, 앞)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두 동전이 완벽하게 동일한 모양과 크기를 갖고 있다면 이 셈법이 좀 달라져야 한다. 이제 동전 던지기의 결과는 (앞,앞), (앞,뒤), (뒤,뒤), 이렇게 세 가지뿐이다. 두 개의 동전이 모두 앞면을 향할 확률은 25%에서 33%로 높아진다. 마치 동전 사이에 무슨 끈끈한 친화력이라도 생긴 모양새다. 만약 동전 열 개를 던진다면? 그 친화력은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보통 동전이라면 모든 면이 앞으로 나올 확률은 1/2을 열 번 곱한 값, 그러니까 대략 0.1%이다. 구분 불가능한 동전이라면? 앞면이 열 개 나오거나, 아홉 개 나오거나,..이런 식이니까 총 가능성은 열 한 개밖에 없다. 모두 앞면이 나올 가능성은 무려 10% 가까이나 된다. 구분 가능한 동전에 비해 친화력이 무려 100배나 커졌다.

 

보즈는 본래 자신의 유도 결과를 영국의 학술지에 투고했는데, 그만 게재를 거부당한다. 그러자 보즈는 자신의 원고를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로 보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개발한 유도 방법보다 더 간결하게 플랑크의 분포 함수를 유도해 보인 보즈의 논문에 흡족해했고, 영어로 쓰인 보즈의 원고를 직접 독일어로 번역해 독일의 학술지에 게재되도록 도왔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통찰력은 그저 보즈가 제시한 방법의 수월성을 깨닫고 격려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미 빛은 물질이고, 아인슈타인은 보즈가 제시한 계산 방법이 단지 광자에만 적용될 필요가 없다는 걸 즉각 깨달은 듯하다. 입자는 곧 파동이라는 생각에 통달해 있던 그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광자의 집단 대신 원자나 분자의 집단이라면 어떨까? 서로 다른 수소 원자, 서로 다른 헬륨 원자 역시 구분이 불가능하긴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면 원자나 분자의 집단이 됐건, 광자가 됐건, 그들이 따르는 분포 함수는 똑같아야만 한다. 광자가 모인 집단이 빛이라면 원자나 분자가 모인 집단은 기체라고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보즈의 이론이 그대로 기체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지적한 논문을 독자적으로 썼다. 그 논문은 그가 번역한 보즈의 논문과 나란히 독일의 학술지에 게재된다.

20세기 첫해부터 시작된 빛의 물리학 발전에는 주로 아인슈타인이라는 한 개인의 통찰력과 천재성이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느낌도 든다. 그가 대담하게 지적했던 파동과 입자의 등가성은 드브로이를 통해 입자와 파동의 등가성으로 거듭났고, 그 영향력을 통해 슈레딩거의 방정식이 탄생했다. 너무 수학적인 내용이라 여기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흔히 하이젠베르크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일컫는 ‘행렬역학’은 아인슈타인이 1916년 논문에서 다루었던, 원자로부터의 광자 방출 문제를 좀 더 ‘비고전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노력 끝에 그가 창출한 새로운 수학 체계다. 1924년 보즈가 제안하고 아인슈타인이 보증한 광자의 분포 함수 계산법은 20세기 물리학의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아직 실험실에서 존재가 검증된 입자는 전자와 양성자밖에 없던 시절이었지만, 이론 물리학자들은 한발 앞서 입자의 구분법에 대한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연에는 오직 두 종류의 입자만 있다. 한 종류는 페르미온fermion, 다른 종류는 보존boson이라고 부른다. 광자는 가장 대표적인 보존이다.

두 종류의 입자는 각각 파울리 호텔과 보즈 호텔에 거주한다. 파울리 호텔의 거주 규칙은 “양자 물질의 역사 [3]: 호텔 파울리”에서 설명했고, 보즈 호텔의 거주 규칙은 조금 전 설명했었다. 1924년 보즈와 아인슈타인이 보즈-아인슈타인 통계 함수로 알려진 광자의 분포 함수 유도법을 발표했고, 그다음 해에는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나왔다. 그리고 1년 뒤, 1926년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물리학자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가 등장해서, 보즈-아인슈타인의 계산법을 배타원리와 결합해서 얻은 새로운 종류의 분포 함수를 제시한다. 난로에서 발산하는 광자가 보즈-아인슈타인 통계 함수를 따른다면, 고체 속을 움직이는 전자는 페르미 통계 함수를 따른다. 흔히 입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접미사 -on을 그의 이름에 덧붙여 페르미온이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막상 배타 원리를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파울리였는데, 입자를 파울리온 대신 페르미온이라고 부르는 건, 그저 역사의 사소한 프로그램 오류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보존은 물론 보즈의 이름을 입자화시킨 명칭이다. 페르미온 부류에 속하는 입자는 개인주의적인 독거주의자다. 페르미온인 입자도 서로 구분 불가능하긴 하지만, 보존과 같은 친화력은 보이질 않는다. 반면 보존은 뭉치길 좋아한다. 아무리 높은 보즈 호텔을 지어줘도, 보존은 될 수 있으면 1층에 있는 방에만 모여 있으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아직 배타 원리나 페르미 통계 함수가 알려지기 전에, 어쩌면 직감적으로, 기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보존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몇 년 후에야 제대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원자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 즉 양성자, 중성자, 전자 각각은 사실 모두 페르미온이다. 그 당시 발견된 입자 중에서는 오직 빛 알갱이, 즉 광자만이 보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의 추측은 거의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소 원자의 예를 들어보자. 페르미온인 양성자 하나와 또 다른 페르미온인 전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게 수소 원자다. 두 개의 페르미온이 뭉친 합성 입자는 보존일까, 페르미온일까? 재미있게도 그 답은 보존이다. 마치 곱하기 연산을 보는 것 같다. 페르미온은 -1, 보존은 +1이다. (-1)을 두 번 곱하면 (-1)x(-1)=+1이 된다. 페르미온 두 개가 뭉쳐서 보존이 되는 것도 똑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수소 기체는 보존들의 집합체다. 헬륨 원자는 양성자 두 개와 전자 두 개가 뭉쳐서 만들어졌으니 역시 보존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원자는 동일한 숫자의 양성자와 전자로 만들어져있으니 항상 보존이 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제 삼의 배우, 중성자를 빼놓을 수 없다. 중성자 또한 페르미온이기 때문에, 결국 어떤 원자가 보존일까 페르미온일까를 결정하는 건 순전히 원자핵을 차지하는 중성자 개수가 홀수냐(페르미온) 짝수냐(보존)에 달려있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니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원자는 사실상 보존이다. 아인슈타인의 직관은 또 한 번 옳았다!

앞서 말한 ‘서로 구분 불가능한’ 광자끼리의 친화력은 보존으로 분류될 수 있는 원자나 분자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아니나 다를까, 아인슈타인은 보즈-아인슈타인 통계 함수에서 특이한 성질을 하나 발견한다. 그 특이성을 두 호텔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파울리 호텔에 손님이 자꾸 들어오면, 즉 페르미온의 개수가 많아지면, 새로 들어온 손님을 가장 위층의 빈방으로 보내면 된다. 보즈 호텔의 경우는 아무리 아래 층에 손님이 들어와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투숙객을 그곳에 들여보낼 수 있다. 각 층마다 수용할 수 있는 손님의 숫자를 결정하는 게 바로 보즈-아인슈타인 통계 함수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함수에 따르면 수용해야 할 손님의 총 숫자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1층에서 수용하는 손님의 숫자가 무한대로 발산해 버린다! 아무리 손님이 많이 들어와도 이젠 1층에서 무제한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어버린다.

물리학에서 이런 무한대의 숫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다. 한 경우는 계산에 사용했던 모델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경우다. 이럴 때는 모델을 좀 더 현실적이고 정확한 것으로 바꿔 줌으로써 무한대였던 값을 다시 유한한 값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무한대는 그저 모델을 만든 우리 인간의 불완전성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또 다른 종류의 무한대는 좀 더 물리적이고, 자연의 본질적 변화를 반영한다. 고체가 액체로,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상전이’ 현상 중에 종종 물리적인 양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의 무한대는 어떤 물질의 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아인슈타인은 보즈-아인슈타인 분포 함수에 내재된 무한대로 발산하는 속성이 바로 이런 상전이의 신호라고 이해했다.

 

상전이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관찰된다. 수증기의 밀도가 아주 커지면 여기저기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사우나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과포화된 상태의 기체가 액체 상태로 ‘응축되는’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발견한 응축 현상은 그런 일상에서 발견되는 상전이와는 양상이 달랐다.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보존의 친화성으로부터 발현된 이런 새로운 종류의 응축 현상을 보즈-아인슈타인 응축Bose-Einstein condensation이라고 부른다. 발상 자체는 아인슈타인 자신의 것이었지만, 워낙 보즈의 논문에 영감을 얻어 순식간에 발표한 논문인 탓인지 줄곧 보즈와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함께 붙여 사용한다. 이것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물리학 역사의 사소한 프로그램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기체가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새로운 상태는 액체이긴 한데, 물방울과는 사뭇 다른 특이한 종류의 액체, ‘초액체superfluid’ 상태가 된다. 초액체 상태의 구현과, 그 특이한 성질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자.

대부분의 원자가 보존이긴 하지만, 막상 원자 집단이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을 보이는 걸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건 대단히 어려웠다. 기체를 압축해서 밀도를 높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잘 안다. 기체는 그냥 평범한 액체로 변한다. 액체를 더 압축하면 고체로 변한다. 가장 흔한 예는 수증기가 물이 되고,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보통의 기체를 압축하면 이런 다른 물질 상태가 개입되기 때문에 순수한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과정을 볼 수 없다. 실험적 장벽을 제거하는 데는 7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1995년, 미국 콜로라도의 연구소에 있는 에릭 코넬Eric Cornell과 칼 위만Carl Wieman은 루비디움 가스를 절대 영도 근방까지 낮춤으로서 가스가 응축되는 현상을 관측했다. 실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루비디움 기체의 온도를 절대 영도보다 불과 170나노 켈빈, 즉 절대 영도보다 겨우 0.00000017도 높은 온도까지 내려야만 했다. 이런 극한 환경을 구현하려면 아주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다. 그 장비의 이름은? 다름 아닌 레이저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그의 다른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장비가 필요했다. 그의 또 다른 위대한 예언, 즉 중력파를 검증하는 데 필요한 장비는 무엇이었을까? 역시 레이저다. 아인슈타인이 내놓았던 일련의 위대한 예측은 그 이후 한 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에게 해야할 사업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참고문헌

  1. M. Planck, Verh. d. deutsch. phys. Ges. 2, 202 (1900)
  2. M. Planck, Verh. d. deutsch. phys. Ges. 2, 237 (1900)
  3. A. Einstein, Ann. d. Physik 17, 132 (1905)
  4. R. A. Millikan, Phys. Rev. 7, 355 (1916)
  5. L. de Broglie, Comptes Rendus 177, 507, 548, 630 (1923)
  6. N. Bohr, Phil. Mag, 26, 1, 476, 857 (1913); Nature 92, 231 (1913)
한정훈
HORIZON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