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따금 어떤 정리를 증명하면서 희열을 느낀다고 합니다. 며칠을 붙들고 고민하던 문제를 풀어냈을 때 찾아오는 그 느낌에 대해 우리는 모종의 공통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잘 짜인 그리스 비극 무대에서 주인공이 겪는 좌절과 고통의 순간을 함께 겪어낸 관객들이 마침내 파국적 종말의 끝에 찾아오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듯이, 잘 짜인 문제도 그와 비슷한 해소감을 줍니다. 그러나 모든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같은 깊이의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비극의 전개가 너무 단순하거나 혹은 반대로 지나치게 복잡하면 관객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수학적 문제와 증명도 너무 자명하거나 난해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사건의 전개에 맞추어 고조된 긴장감을 잘 정화시키는 좋은 플롯과 그렇지 않은 덜 좋은 플롯이 나뉘는 것처럼, 지난 글에서 제가 더 아름다운 증명과 덜 아름다운 증명을 말씀드린 이유도 놀라움을 던지는 것 만큼이나 그것을 잘 해소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놀라움을 잘 해소시킨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놀라움이 해소된 자리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학을 한 제 짧은 경험과 아마 수학을 하시는 많은 분들의 경험에 기대어 볼 때, 우리는 수학문제를 대할 때 적어도 세 가지 단계를 겪게 됩니다. 첫째는 문제가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단계입니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예상 밖의 사실을 대할 때 느끼는 낯섦이기도 하고, 놀라움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증명을 하면서 그 놀라움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낯섦을 내재화시키는 과정을 겪는 것이지요. 마지막은 좋은 증명이 으레 가져다주는 수학적 대상의 본질이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단계입니다. 기존의 앎과 새롭게 받아들인 사실을 연결하면서 오는 일종의 통찰이 이때 찾아옵니다. 그래서 결국 수학의 증명 끝에 남는 것은 수학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좋은 증명은 놀라움을 잘 해소시키고 아름다움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이 요약에 관해 할 수 있는 한 더 자세히 살펴볼 텐데, 구체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수학세계에서 무엇이 증명을 추동하였는지와 그 결과로 무엇을 얻게 되었는가의 문제를 위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의 대조군으로, 고대 그리스가 아닌 곳에서 수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증명은 어떤 것이었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아래는 고대 로마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의 5권에 등장하는 한 단락입니다. 

 

592 마찬가지로 다음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즉 어떻게 해서
593 그렇게 작은 저 태양이 그토록 큰 빛을,
594 바다들과 모든 땅들과 하늘을 적셔 채우고,
595 뜨거운 열기로 모든 것에 쏟아붓는 저 빛을 보낼 수 있는지도.
596 (그것은, 크키가 어떻든 간에 그대로, 높이 뜬 채 여기서 보는 우리에게 보일 것이다.)
597 왜냐하면 이곳으로부터 온 세상의 한 샘이 열려
598 풍성하게 솟고 빛을 뿜어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며,
599 이는 또, 전 세계로부터 열기의 요소들이 그렇게
600 사방에서 모이고, 그것들의 모임이 그렇게
601함께 흐름으로 해서다, 여기 한 샘에서 광휘가 솟아 흐르도록.
602 그대는 또 보지 못하는가, 이따금 작은 샘의 물이
603 얼마나 넓게 벌판을 적시고, 들을 넘치게 하는지?
604 또 이럴 수도 있다. 태양의 크지 않은 불로부터 나온
605 광휘가 뜨거운 열기로써 공기를 에워싸 잡는 것이다.
606 혹시 공기가 적절하게 잘 맞아서
607 작은 빛줄기에 부딪혀도 불이 붙을 수 있을 정도라면.
608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따금 부리 하나에서 비롯한 화재가
609 사방에서 곡식들과 그 줄기에 불이 번지는 것을 본다.
610 아마도 태양 역시 높이서 장밋빛 횃불로 빛나면서
611 자기 둘레에 보이지 않는 열기를 지닌 많은 불을,
612 어떤 광채에 의해서도 표시되지 않은,
613 열기를 나르는 것을 가진 듯하다, 빛살의 타격을 그토록 크게 키우도록 (강대진 역)

루크레티우스는 이 단락 바로 전 5권 564-591행에서 태양의 실제 크기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V. 564-565; 590-591). 물론 우리의 기준으로는 잘못된 사실이지요. 그런 다음에 그는 이 결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592-593)에 대한 답변을 시도합니다. 만일 태양의 크기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면, 태양의 크기는 작은 데 비해 그토록 많은 빛의 양이 나오는 불일치에 대해 의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루크레티우스가 이 문제에 대한 세 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 번째 답은 태양이 이 세상의 빛들의 샘, 즉 근원이라는 설명입니다. 열의 입자들이 사방에서 모여 함께 흐르는 결과로 열이 하나의 원천에서 흐른다고 설명합니다(596-603행). 두 번째 답은 태양에서 나온 열이 공기를 덥히기 때문에 작은 열에 의해서도 공기에 불이 붙는 셈이라고 설명합니다(604-609행). 마지막은 높이 빛나고 있는 태양 주위에 아마도 숨어있는 거대한 양의 열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숨어있는 열은 빛나지는 않지만 태양광선의 강도를 증대시킨다고 보았습니다(610-613행).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592행의 “non est mirandum(기이히 여겨야 할 이유가 없다)“라는 표현입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이 표현은 누군가가 태양의 크기와 열의 양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놀라움을 가질 수 있겠지만, 위의 세 가지 설명을 들으면 놀라움이 해소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증명이 놀라움을 해소시킨다는 관점은 수학의 증명과도 맥이 닿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 가지 설명 중에서 무엇이 더 그럴듯한 설명인지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합니다. 오히려 그는 한 가지의 확실한 설명이 아니라 여러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았습니다(526-530행). 이러한 태도는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증명에 대해 가졌을 법한 생각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제 곧 살펴보겠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하나의 문제를 두고 서로의 해법에 대해 평가하면서 더 나은 증명을 찾으려 애쓴 사례들이 있습니다.

네, 저는 고대 그리스 수학세계에서 “증명은 어떠해야 한다”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었을 것이란 일종의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작업가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실제 그리스 수학의 증명들이 작업가설에 상치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보아야겠지요. 일단 오늘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자신들의 주된 과업인 증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들이 남긴 수학을 근거로 복원해 보는데 주안점을 두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증명과 관련해 제가 먼저 발견하는 특징은 수학자들 사이에서의 경쟁입니다. 그리스 수학자들은 마치 가장 그럴듯하지 않은 주장을 혹은 가장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누가 가장 그럴듯하게 그것을 증명하는지 혹은 누가 그것에 대한 가장 매력적인 해법을 찾는지에 관하여 경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정육면체의 배적문제Doubling of the Cube를 둘러싼 경합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흔히 고대 그리스 수학의 3대 난제 중 하나로 꼽히는데, 유토키우스Eutocius 480AD-540AD가 아르키메데스의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에 대한 주석을 쓰면서 그리스 수학자들의 해법을 함께 정리해 둔 덕분에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토키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열한 명의 수학자들이 저마다의 해법을 내놓았는데, 거의 가장 후대에 속하는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276BC-194BC의 아래 글이 이 문제를 둘러싼 오랜 경쟁적 탐구를 잘 요약해 줍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톨레미 대왕께 문안드립니다. (중략) 그들이 말하길, 얼마 후에 델로스 사람들이 그들의 제단 중 하나를 두 배로 만들라는 신탁을 완수하려 하다가 똑같은 문제에 맞닥뜨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카데미아에서 플라톤과 함께 머물고 있는 기하학자들에게 사자들을 보내 신탁이 요구한 것을 어떻게 이룰지 물어보았습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이 문제에 몰두한 이들 중에는, 즉 주어진 두 선분 사이에 연속하여 같은 비를 갖는 두 선분을 더 찾으려 탐구했던 이들 중에는, 반원기둥을 사용하여 해법을 찾은 타렌툼의 아르퀴타스도 있었고, 곡선을 사용하여 풀이한 에우독소스도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논증적으로 해법을 만들기는 했지만 실제로 맨손으로 이 해법을 실행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할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메나이크무스의 해법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인데 어렵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두 선분 사이에 연속하여 같은 비를 갖는 두 선분을 포착하는 훨씬 더 쉬운 기계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었습니다. 사실 그런 두 선분 뿐 아니라 원하는 만큼 많은 수의 그런 선분들을 찾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은수 역)

에라토스테네스는 자신이 찾은 방법이 이전에 알려진 해법들보다 더 실용적이고 쉽기 때문에 우월한 해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경쟁적 탐구는 어떤 의미에서 아주 그리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상고기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에서 영웅들이 서로 겨루는 장면에서부터 고전기 그리스의 비극들 사이에서, 또 연설들에서도 늘 경연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경쟁의 무대가 펼쳐질 때 이 경연에 뛰어든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자신의 이름을 남겨서 명예를 얻는 것이었겠지요.

배적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르키메데스는 보다 더 도발적으로 수학자로서 자신의 명성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도시테우스Dositheus에게 보내는 <나선에 관하여On Spirals>의 서문에서 자신이 당대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의 수학자들에게 회람했던 문제들에 대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고, 거의 유일하게 수학적으로 교우할 수 있었던 코논Conon이 죽은 이후로는 어떤 흥미로운 문제를 꺼내놓는 사람도 없었다고 아쉬워합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도시테우스에게 문안합니다. (중략) 자네는 아마 내가 왜 그 정리들에 대한 증명을 공개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을 썼는지 궁금해 했을 것이네. 일이 그렇게 된 것은 내가 수학에 매진하고 있는 자들에게 그 정리를 먼저 한 번 공부해 볼 기회를 주기 원했기 때문이라네. 도형에 관한 많은 정리들이 처음에 그것들을 결국 완성시킬 사람에게로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전달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코논은 미처 이 정리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죽었다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진작에 그 정리들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그뿐 아니라 다른 정리들도 많이 발견했을 것이고, 기하학을 상당히 진일보 시켰을걸세. 그의 수학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고 그의 부지런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말일세. 코논이 죽고 난 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를 흥분시킬 어떤 문제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네. (이은수 역)

흥미롭게도 수학사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재연됩니다.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ii 1667-1748가 악타 에루디토룸Acta Eruditorum의 지면을 통해 최단강하곡선 Brichistochrone Curve 문제를 냈을 때의 일이지요.


나 요한 베르누이는 이 세계의 가장 명석한 수학자들에게 고합니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에게는 꼬임이 없고 또 도전할만한 문제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명성을 얻을 것이고 그 해답은 영원한 기념비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스칼과 페르마가 그랬던 선례를 따라, 나도 자연을 탐구하는 우리 공동체의 은덕을 입고자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수학자들 앞에 그들의 탐구방법과 또 지적능력을 시험해 볼 만한 문제 하나를 내놓고자 합니다. 만일 누군가라도 제가 제안한 문제에 대한 답을 회신해 오신다면 저는 그 사람의 이름을 큰 칭송과 함께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696년 6월.  (이은수 역)

 

그리고는 그는 최단시간 강하곡선으로 알려진 유명한 문제를 꺼냅니다. “평면 위에 높이가 다른 두 점이 있다고 할 때, 마찰 없이 중력의 영향만으로 구르는 구슬이 높은 지점에서부터 낮은 지점까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굴러 내려올 수 있는 선의 모양은 무엇인가?”

당대의 수학자들 중 아무도 자신이 낸 문제를 쉽게 풀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 속에 자신이 최고의 수학자라는 은근한 자랑이 곁들여졌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는데, 베르누이의 도전을 받은 당대의 수학자들 중에는 답을 찾은 이가 있었던 반면에 아르키메데스는 어떤 메아리도 얻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 문제를 전해 들은 뉴턴이 하룻밤만에 풀이를 만들어서 익명으로 베르누이에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풀이의 비범함을 보고 이내 그 익명의 수학자가 뉴턴임을 알아차린 베르누이가 “사자의 발톱을 보고 사자를 알아보았다(tanquam ex ungue leonem)“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아르키메데스는 그런 사자의 발톱을 구경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자신이 바로 고대 지중해 수학세계의 사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가 스스로에 견줄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이전 세대의 수학의 거장이었던 에우독소스였던 것 같은데, 이제 그마저도 자신이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남깁니다.

 

자연에서는, 이 성질들 [구와 원기둥 사이의 부피와 겉넓이의 상호관계]이 앞서 언급한 입체들 [구와 원기둥]이라면 언제나 성립하는 것이었는데, 이전에 수학에 매진하였던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이 입체들 사이에 이렇게 간단한 공통의 비가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네. 그래서 나는 이 성질들을 다른 기하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진 성질들과 비교해 볼 요량이네. 실제로 이 입체들에 관한 에우독소스의 탐구들 중 가장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발견, 즉, 각뿔은 같은 밑면과 높이를 갖는 각기둥의 부피의 삼 분의 일이라는 것, 원뿔은 같은 밑면과 높이를 갖는 원기둥의 부피의 삼 분의 일이라는 것과 비교하려는 것일세. 이 성질들도 비록 자연에서 발견되는 입체들 [각뿔, 각기둥, 원뿔, 원기둥] 사이에서 언제나 성립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에우독소스 이전에 언급할만한 많은 기하학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성질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결국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었다네. 그런데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드디어 비로소 이 정리들을 조사해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일세.  (이은수 역)

 

이렇게만 보면 수학의 증명은 쉽사리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을 캐내는 중요한 도구로 여겨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자연에 감춰져 있던 신비로운 사실을 드러내는 힘을 가진 만큼, 증명이란 기발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는 특별한 것일 거라는 기대를 투영한 것이지요. 그 남다른 일을 해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성을 향한 경쟁적 탐구가 바로 증명을 추동하는 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증명이 늘 가장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를 가장 그럴듯하게 만드는 대단한 증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원론에서 우리는 수많은 밋밋한 증명을 왕왕 만나게 됩니다. 원론에 등장하는 증명에 대한 불만과 그것을 더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현대의 독자들만의 시각은 아닙니다. 원론 1권에 대한 주석을 썼던 프로클로스Proclus 412AD-485AD도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그 학문의 모든 탐구들이 도출되고 또 모든 탐구들이 귀속될 수 있는 원리를 적절하게 선택하고 배열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업일 것이다. 기하학에서 그런 일을 시도했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더 많은 수의 정리들을 포함시키려했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그 수를 줄이려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짧은 증명을 선호했던 반면에 어떤 이들은 더 길게 증명을 끌고가려고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모순적 상황에 봉착하는 귀류법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고, 비율에 관한 이론을 쓰지 않으려 했던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몇몇 시초가 되는 원리들에 대한 예상 가능한 비판에 대비해서 반론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렇듯 기본원리가 될 만한 설명들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각각 다양한 방식들이 만들어졌다. (Proclus, 73:15–25).  (이은수 역)


프로클로스가 말하고 있듯이, 수많은 정리들을 엮는 과정에서, 어떤 명제를 선택해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의 문제가 원론의 편집자로서 유클리드가 해결해야 했을 가장 큰 과제였을 것입니다. 저는 유클리드가 원론을 편집했을 때 가졌을법한 고민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가 원론의 편집자로 남긴 어떤 글도 전해져 내려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에 원론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유클리드는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요?

내 앞에 수십 년 전에 발표된 히포크라테스의 원론이 놓여있고, 그 밖에 여러 동료 수학자들이 전해준 수많은 수학적 정리들이 적힌 문서들도 낱장으로 흩어져 놓여 있다. 그중에서 어떤 것들에는 옳든 틀리든 그 정리에 대한 증명도 함께 적혀 있는 반면에, 또 어떤 것들은 증명 없이 그저 정리의 내용만 적혀있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증명을 듣고도 잊어버린 것도 꽤 많은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일일이 증명들이 올바른지, 정리들이 서로 간에 더 긴밀하게 연결되게끔 증명을 수정할 수는 없는지 검토해 볼 셈이다. 그 외에도 내가 관심을 갖고 증명까지 마친 정리들도 있고, 몇몇에 대하여는 아직 증명을 찾지 못해 애쓰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이들을 한데 묶어서, 원론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리들을 체계적인 순서에 따라 잘 배열하면서도 최대한 많은 성과를 포함한 작품을 말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가 고민이다.


우리는 여전히 유클리드가 어떻게 하나하나의 정리들을 넣고 빼며, 정리의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고, 배열 순서를 위해 증명을 고치기도 하고, 어떤 정리를 새로 만들어내기도 했을지 편집의 세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는 이전 세대에 발표되었던, 지금은 전해 내려 오지 않는, 선배들의 원론을 뼈대로 삼아 어떤 정리를 보태기도 하고 빼기도 하며 내용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원론을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기존의 원론에 구애받지 않고 아예 처음부터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수학적 원리들로부터 명제들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만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 둘을 적절히 혼합한 방식을 취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몇백 개가 넘는 명제들을 모은 종합본을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의 사용이 원론에서 상당히 잦다는 점입니다. 직접증명과 대조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귀류법은, 증명해야 할 결론을 부정할 경우 불가능한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이미 증명한 사실과 충돌하게 되거나 현재 가정하고 있는 사실을 위배하여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게 되므로 증명해야 할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원론에서 이런 귀류법이 사용된 사례를 세어 보았는데 무려 150번 정도 등장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귀류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증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치 끝까지 직접 증명을 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마지못해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로클로스의 기록대로 어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귀류법을 쓰지 않고 증명하려 애썼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귀류법은 원론을 편집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유용한 도구였을 것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원론에서 편집자는 처음에 증명 없이 받아들인 정의나 공리와 같은 소수의 수학적 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약 465개에 이르는 정리를 만들어나갑니다. 이 거대한 집합체에서 한 명제가 다른 명제에 어떻게 의존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자세히 분석해보면 꽤 촘촘하게 얽혀있는 연역체계의 그물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번 짜놓은 연역체계에 새로운 정리를 하나 혹은 둘 추가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됩니다. 한두 명제를 추가하기 위해서 순서를 조정해야 할 수도 있고, 이 명제들에 대한 증명을 이미 짜놓은 연역체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재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순으로 이끈다는 이유ad absurdum 하나를 강력한 근거로 삼는 귀류법은 상당히 매력적인 편집 도구입니다. 새로 추가해야 할 명제를 귀류법으로 증명할 수만 있으면 이미 잘 짜인 연역체계를 크게 뒤흔들지 않고도 정리를 주제에 따라 잘 어울릴만한 곳으로 끼워 넣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연역체계를 세운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유클리드의 원론에 등장하는 명제와 증명이 때로 밋밋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수긍하게 됩니다. 설령 어떤 명제에 대한 더 아름다운 증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이 연역체계를 더 잘 뒷받침할 수 있는 덜 아름다운 증명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일을 감수해야 했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 수학에서 놀라움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개별명제들을 바라볼 때와 명제들의 모음을 바라볼 때 그 결이 다르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아르키메데스를 읽을 때와 유클리드를 읽을  때 우리는 다른 차원의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아르키메데스가 예쁜 돌을 찾아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면 유클리드는 평범한 돌들을 쌓아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할까요?  유클리드가 활동했던 헬레니즘 시대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중심으로 그때까지 지중해 세계에 흩어져있던 지식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중요한 지적활동이었습니다. 개별명제로 떼어놓고 보면 명제도 증명도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 있지만 각각의 명제가 서로 엮이고 묶여서 기하학의 기초를 위한 거대한 집을 지은 셈이지요. 아르키메데스가 원론을 다시 만들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원론은 꽤 잘 지은 집으로 평가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은 수학에서 느낄 수 있는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할 수 있는 한 여러 차원에서 이끌어내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수학만이 이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예술이나 철학이나 일련의 학문들 안에도 본연의 즐거움을 향한 추구가 들어있겠지요. 수학자들은 다만 자신들의 언어인 수학으로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나누고 함께 감탄해 왔을 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이러한 증명의 결과로 놀라움을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Archimedes. (2004). The works of Archimedes: translated into English, together with Eutocius' commentaries, with commentary, and critical edition of the diagrams (R. Netz,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 Archimedes. (2017). The Works of Archimedes: Translation and Commentary (R. Netz,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 Proclus. (1970). A commentary on the first book of Euclid's Elements. Princeton (G. R. Morrow, Ed.).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4. 루크레티우스,《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강대진 옮김, 아카넷, 2012.
이은수
스탠포드대학 고전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