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C형 간염바이러스HCV, Hepatitis C virus를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세 명의 과학자, 알터Harvey J Alter, 호턴Michael Houghton, 라이스Charles M. Rice에게 돌아갔습니다. 아무도 감지하지 못한 간염의 원인이 A형이나 B형이 아닌 C형 간염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사실을 1972-1978년 알터가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이후 1989년 호턴이 C형 간염바이러스 유전자의 일부를 찾아내면서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아가게 되었고, 1997년 라이스 박사 팀이 C형 간염바이러스 유전체만으로 침팬지에서 간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가설로 존재하던 C형 간염바이러스의 실체를 규명하게 됩니다. 이렇게 20여년에 걸친 연구 끝에 찾아낸 C형 간염바이러스는 다시 10여년의 오랜 연구를 통해 소발디로 알려진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로 이어집니다.
2020년 올해는 사스코로나 바이러스SARS-Coronavirus-2로 모두가 어려웠던 한 해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인류의 의생명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고, 4-50년에 걸친 C형 간염바이러스 연구에 해당하는 성과를 인류는 단 1년 사이에 사스코로나 바이러스 연구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추가된 성과가 많으며, 어쩌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백신 개발이 완료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벨상에 빛나는 역사 속의 C형 간염바이러스 연구와 2020년 사스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를 비교해서 이해해 볼 수 있는 지난 5월의 HORIZON 기사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감염병을 연구할 수 있는 적절한 감염모델(예: 오가노이드)의 유무가 여러 차이 중에 하나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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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밝은 새해를 시작하려는 즈음, 인류는 중국 우한에서 일어난 폐렴 바이러스 사태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잠복기에도 엄청난 감염력을 보이는 바이러스는 단 수개월 만에 전 세계에 팬데믹pandemic의 공포를 초래하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3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재택근무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코로나19covid-19의 치료법과 백신 개발 소식을 기다리고 계실 텐데요. 오늘은 평상시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거나 다른 나라 이야기로 생각했을 감염병과 이러한 감염병을 연구하는 최신 동향의 한 줄기로서 오가노이드 모델에 관해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다양한 감염병과 현재의 팬데믹
인류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인류문명발달의 필수요소로 ‘총, 균, 쇠‘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필수요소로 도구가 아닌 균이 언급된 것은, 그만큼 인류가 거쳐온 굴곡의 역사에서 균이 신의 징벌로 여겨질 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뜻일 겁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감염병으로는 중세와 근세의 흑사병인 페스트, 최근까지 우리를 괴롭힌 천연두, 그리고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이 있습니다. 다행히 20세기에 들어와 페스트처럼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은 다양한 항생제 치료로 해결이 가능해졌고, 최고의 전염률과 치사율로 인류 최악의 감염병이라 불렸던 천연두는 백신 개발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현대 의생명과학은 기본적으로 항생제와 백신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이용하여 인류를 감염병에서 구원했고, 선진사회에서는 감염병으로 인한 죽음보다는 각종 만성질환(암, 당뇨, 심장병, 치매 등) 혹은 노화로 인한 죽음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다른 요인도 있지만, 항생제와 백신은 20세기 과학발전이 일군 인류역사 최대의 쾌거이며, 마침내 인류는 평균 수명을 4-50대에서 8-90대로 늘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 인간과 감염병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현재도 WHO에서는 HIV에 의한 에이즈AIDS를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SARS-Coronavirus-2에 의한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금 우울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에이즈를 야기하는 HIV는 40년 전인 1981년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아직도 효과적인 백신과 궁극적인 치료약은 없는 실정입니다. 환자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HAART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요법이라고 합니다. 40년 동안 많은 과학자와 제약회사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이즈의 백신과 치료약이 없다는 점은, 감염병 연구를 통해 궁극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HIV는 레트로바이러스로 자신의 RNA 게놈을 DNA로 역전사하여 인간 세포핵 속 게놈 DNA에 끼어 들어가 인간 게놈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유전자 가위로 잘라버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제거할 수 없는 바이러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활성을 억제할 수는 있어도 없애는 치료약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에 SARS-Coronavirus-2는 RNA 상태로만 세포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이므로 HIV만큼 치료제 개발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고, 백신 개발의 경우는 운이 좋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SARS-Coronavirus-2의 사촌인 홍콩 SARS-Coronavirus와 MERS-Coronavirus는 각각 2003년, 2012년에 처음 발견되었고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치료약과 백신은 없습니다. 다만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2-3년 내에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치료법과 백신이 모두 시도될 것이며, 운이 좋다면 올해 중에도 좋은 소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향후 20년 간 치료법을 찾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감염 모델의 중요성
바이러스 감염병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숙주 모델의 존재 여부입니다. 박테리아 같은 독립된 미생물의 경우에는, 미생물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감염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조건을 찾아봄으로써 이들을 치료 가능하게 하는 항생제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바이러스는 자체적으로는 생명 기능이 없고, 오직 숙주 세포에 감염한 이후에만 활동성을 띠기 때문에 우선 적절한 숙주 모델을 찾아내는 것이 기본입니다.
생물학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숙주 모델로는 동물 모델과 세포주 모델이 있습니다. 동물 모델로는 쥐, 개, 영장류 등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좀 더 다루기 용이한 쥐와 같은 모델에서는 인간에 감염하는 바이러스가 감염성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인간과 좀 더 비슷한 영장류로 실험할 수도 있는데, 비용도 높고 윤리적인 문제도 있어서 실험이 용이한 편이 아니고, 영장류라고 하더라도 바이러스에 대한 반응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연구하고자 하는 인간 바이러스의 사촌 중에서 쥐에 감염하고 감염병의 진행이 유사한 동물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해당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하지 않는다면, 유사한 바이러스를 자세하게 연구하면서도 연구원들이 감염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바이러스의 유사성이 반드시 인간 바이러스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므로 한계는 존재합니다.
세포주 모델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암세포주를 활용합니다. 사실 동물 모델로 가기 전에 많은 연구들이 세포주에서 이루어져야 적절한 치료법이나 백신 개발을 위한 기초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전임상 단계에서 동물 모델을 이용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간에 감염병을 일으키는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들은 세포주에서 잘 자라는 편입니다. 바이러스가 세포주에서 잘 자란다는 이야기는 사람에서 추출된 바이러스가 세포주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수용체를 타고 들어가 감염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고, 더불어 세포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단백질과 생물질의 조성이 바이러스가 증식하기에 적절한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바이러스들은 반드시 세포내 기생을 통해서만 자가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숙주 인자Host Factor가 제대로 존재해야 감염한 세포 내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숙주 환경이 좋다면 바이러스는 자신의 게놈을 복제하고 다양한 바이러스 단백질과 숙주 인자들을 활용하여 껍데기를 만들어서 자신의 게놈을 담은 새로운 바이러스를 세포 밖으로 방출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좋은 세포주는 감염, 증식, 및 최종적인 바이러스 복제의 3단계가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세포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실의 안전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감염만 일어나거나, 세포 내에서 증식 현상만 보여주는 모델을 만들어서 실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종적인 바이러스 복제가 일어나게 되면 연구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우주복과 같은 보호 장구를 갖추고 연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감염만 일어나는 모델을 가지고도 바이러스의 감염을 억제하는 단백질 신약이나 항체 신약의 효과를 검증할 수 있고, 세포내 증식 현상만 있어도 바이러스의 단백질분해효소Protease 1나 중합효소Polymerase 2의 활성을 억제하는 신약후보물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국 원활한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서는 안정성이 갖추어진 단순 감염 모델이나 복제 모델부터 바이러스의 증식의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세포주와 감염으로 야기되는 다양한 병증을 보여주는 동물 모델이 필요합니다. 최종적으로는 각 연구 단계의 목적에 맞게 다양한 숙주 모델을 활용하는 전략이 효율적입니다.
약 20년 전 필자가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에는 C형 간염을 야기하는 HCVHepatitis C virus(C형 간염바이러스)가 HIV와 함께 많은 관심을 받았던 주제였습니다. 당시 적어도 20개가 안 되는 실험실 중에 3개의 실험실에서 C형 간염을 연구했을 정도였습니다. HCV는 1989년 처음 발견되었지만, 아직도 예방을 위한 좋은 백신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10종에 가까운 다양한 약제조합으로 거의 대부분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DAADirect acting antivirals 치료법이 나와 있습니다. 이중 소발디로 알려진 소포스부비르Sofosbuvir는 길리어드Gilead사를 통해 2013년 FDA허가를 받은 혁신적인 치료제로 HCV 게놈 복제에 중요한 RNA-RNA 중합효소RNA-dependent RNA polymerase인 NS5B를 공략하는 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9년 발견 이후 거의 25년 만에 신약이 나오게 된 이유는 정확한 HCV 게놈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걸렸고, 인간 외에는 침팬지에게만 감염을 하기 때문에 감염성이 있는 HCV게놈을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서는 침팬지를 동원한 실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바이러스를 증식할 수 있는 세포주 모델이 없어서, 우선 바이러스 증식만 관찰할 수 있는 유사바이러스복사체Replicon모델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주로 1999-2005년 사이에 개발된 유사바이러스복사체Replicon모델들이 DAA 후보물질들의 약효를 확인하는데 주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감염-증식-바이러스 복제의 3단계를 모두 보여주는 완전한 바이러스 세포주 개발은 2005-2006년에 이르러서야 완성이 됩니다. 세포주 개발에만 15년이 걸린 셈이었는데, 이러한 기술적인 어려움이 HCV 치료제 개발의 최대 걸림돌이었습니다.
HCV의 예처럼 바이러스 세포주 개발은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연구와 치료제 개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2010년까지는 바이러스 세포주로 대부분 인간의 암세포주를 활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정상세포가 변형된 형태이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바이러스 성장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만, 어떤 바이러스는 암세포주에서 전혀 증식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바이러스 세포주가 만들어져도, 세포주에서 질병과 관련된 병증을 확인하기는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한 세포 하나를 가지고 인간의 장기 전체를 모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치 벽돌 한 장을 가지고 멋진 중세 벽돌 성당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죠. 이러한 단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3차원 입체배양체를 만드는 인간오가노이드 배양체를 바이러스 연구에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바이러스와 오가노이드
오가노이드 배양체는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배양법과 암·낭포성 섬유증의 질병 모델로서의 가치는 이전 글 “성체오가노이드로 살펴본 암, 낭포성 섬유증, 그리고 미래의학”에서 다루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존의 암세포주 배양법과 비교했을 때 오가노이드 배양법이 갖는 장점은 생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세포를 조직과 동일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오가노이드는 인간의 발달과정 중 장기의 발달과정을 모사할 수 있고,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오가노이드는 환자조직을 직접 체취하여 그대로 길러내면서 질병에 의한 병증을 배양접시에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최대한 안전성이 확보된 임상시험을 제외하면 인간에게 실험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인간 오가노이드는 인간의 대리체로서 최적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5년경부터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바이러스 연구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가령 인간의 장 오가노이드를 활용하여 설사를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Rotavirus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심한 설사와 구토증을 일으키며 영아 사망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Norovirus도 인간의 장 오가노이드를 이용하여 연구가 되었습니다. 특히 노로바이러스는 1970년대부터 알려졌지만, 마땅한 바이러스 세포주가 없어서 바이러스 배양을 통한 연구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현재도 설사병증을 완화하는 수준의 치료를 할 뿐 바이러스 자체를 억제하는 치료법이 없습니다. 노로바이러스 배양 세포주를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노로바이러스가 잘 분화된 장세포를 필요로 하는데, 암세포주로는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가노이드 배양법은 다양한 장기에 적용되어, 이제는 폐 오가노이드를 기반으로 인플루엔자 독감 바이러스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폐 오가노이드를 이용해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Respiratory syncytial virus를 배양하는 방법을 개발하였고,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의 NS2라고 하는 바이러스 단백질이 심한 병증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라는 사실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좀 더 극적인 예는 지카바이러스Zika virus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2015년 시작된 지카바이러스 유행은 남미에서 수백만 명을 감염시켰고, 방역에 실패하면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될 수 있었던 유행병입니다. 특히 신생아에서 소두증이라는 불치의 기형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많은 산모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지카바이러스가 실제로 소두증을 일으키는 원인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를 알기 위해서 인간에게 실험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인간의 대뇌발달과정을 모사하는 브레인 오가노이드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 브레인 오가노이드는 성장저해를 보여주었으며, 지카바이러스의 NS2A라는 단백질이 뇌줄기세포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실험들을 인간 오가노이드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를 남긴 것입니다.
코로나19, 오가노이드 그리고 21세기 생명과학
2020년 우리는 SARS-Coronavirus-2가 일으킨 팬데믹 상황을 매일 주시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감염병에 모든 인류가 관심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은 ‘뉴노멀’이라는 개념과 함께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가 중요한 변곡점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세계 각국은 의료자원 부족, 대량실업 위기, 주가와 유가의 폭락, 사회기반 시설의 마비와 같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인 저도 매일 세상을 걱정하면서 지냅니다. 다만 생명과학의 발전상을 생각해보았을 때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감염병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기존의 HCV나 HIV때처럼 충분한 억제력을 가지는 치료약을 만들기까지 십수 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SARS-Coronavirus-2의 게놈은 중국에서 발병하자마자 현대적인 염기서열분석기를 이용하여 완전 해독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개의 게놈이 완성되어서 중국으로부터 타국가로의 코로나19 발병 경로를 모두 추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 장혜식/김빛내리 팀도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견연구원과 공동으로 나노포어라는 최신의 염기서열분석기로 다양한 변이체와 RNA상의 변이를 모두 확인하여 생물분야 권위지인 셀Cell지에 보고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발병 후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바이러스의 스파이크Spike 단백질 구조를 발표했고, 여러 실험실에서 스파이크 단백질과 수용체인 ACE2 단백질의 접합구조 또한 밝혀냈습니다. 20년 전에는 수년에 걸쳐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성과가 단 몇 개월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히 2002-2004년에 발병했던 기존 SARS-Coronavirus 연구에서 얻은 기본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SARS-Coronavirus-2는 세포주 증식도 잘 되는 편입니다. 벌써 몇 가지 암세포주에서 SARS-Corovavirus-2의 감염-증식-복제를 확인했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 억제제를 개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세포주 모델이 이미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한 과학자들은 SARS-Coronavirus-2의 감염증을 생체조직에서 자세하게 모사하고자 오가노이드 모델을 활용했습니다.
제가 있는 IMBA연구소와 캐나다 UBC의 공동소속인 요세프 페닝거Josef Penninger 교수는 인간의 혈관 오가노이드와 신장 오가노이드에서 SARS-Coronavirus-2의 감염 및 증식을 확인했고, 이를 ACE2 재조합단백질로 저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셀Cell지에 보고했습니다. 제가 박사후 연수를 하면서 오가노이드를 처음 접했던 네덜란드 후브레흐트Hubrecht 연구소의 한스 클레버스Hans Clevers 교수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할 때 이용하는 숙주 세포의 안지오텐신 전환효소2ACE2 수용체가 인간 장세포에서도 다량 발현하고, SARS-Coronavirus-2가 인간 장 오가노이드에 감염하여 증식할 수 있다고 사이언스Science지에 보고하였습니다. SARS-Coronavirus-2가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병리학적 보고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혈관, 신장, 소장의 오가노이드를 활용하여 바이러스의 감염력과 생장 능력을 확인한 결과입니다.
앞으로 세포주 모델과 오가노이드 모델들은 SARS-Coronavirus-2에 의한 병리적 메커니즘과 코로나19의 치료를 위한 신약후보물질 스크리닝에 활용될 전망입니다. 특히 요세프 페닝거Josef Penninger교수의 셀Cell 논문에서는 기존 SARS를 위해 개발된 ACE2 재조합단백질이 SARS-Coroanvirus-2에도 쓰일 수 있음을 오가노이드라는 전임상 모델에서 보여주었고, 현재 ACE2 재조합단백질은 안전성검사와 임상1상을 모두 마치고, 유럽과 중국에서 대규모 임상 2상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2020년에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신약이 인류를 구원하는 장면을 역사상 처음으로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인류가 직면한 코로나19라는 도전은, 어쩌면 21세기 생명과학의 역량을 모든 인류가 함께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소망하듯 21세기 의생명과학의 힘으로 코로나19를 하루 빨리 이겨내길 바랍니다.
모두 건강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