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양자 우월성”에서 말했듯이 구글은 작년에 ‘양자 우월성’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구글이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서 수행한 작업은 비록 유용한 일은 아니지만, 이들은 실제로 고전적인 컴퓨터로는 매우 하기 힘든 계산을 양자컴퓨터로 수행해냈고 계산 결과가 맞다는 점도 확인했다. 구글이 한 일의 가장 큰 의의는 양자 컴퓨터 계산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고 그 결과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인 검증을 거쳤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서 유용한 계산을 할 수 있을까? 이는 현재 양자 컴퓨터 학계 내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이다. 분명 현재 존재하는 양자 컴퓨터들은 고전 컴퓨터로는 수행하기 매우 어려운 계산을 해낼 수 있지만, 이전 연재에서 말한 소인수 분해 같은 대규모의 양자 연산을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대규모의 양자 연산을 하기 위해서는 오류가 거의 없는 큐빗이 수천 개 필요하고, 이러한 큐빗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자 오류 보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류 보정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큐빗의 숫자까지 감안하면 결국 수백만 개 정도의 큐빗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에 반해, 현재 나와 있는 양자 컴퓨터들은 약 50여 개 정도의 큐빗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양자 컴퓨터라는 분야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현재 존재하는 양자 컴퓨터들이 수백만 개의 큐빗으로 구성된 대규모 양자 컴퓨터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투자와 기술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과학 기술들이 그렇듯이, 이러한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대규모의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 적게는 10년, 많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발전을 거듭해 나타날 새로운 양자 컴퓨터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자 컴퓨터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양자 컴퓨터로 어떤 쓸모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는 과학적으로도, 그리고 산업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았을 때 인류는 대규모의 양자역학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시스템을 다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지는 양자 컴퓨터의 도래를 통해 우리는 양자역학적인 실험을 점차 대규모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양자 컴퓨터라는 새롭고 강력한 계산 도구가 발명되면 이전에 풀지 못했던 중요한 과학적인 문제를 풀 수도 있다. 한 예로, 고온 초전도체의 작동 원리는 아직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주제 중 하나이다. 어쩌면 비교적 소규모의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물리적 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서,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서 새로운 물리·화학적 현상들을 발견하고 이를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에 이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학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 그와 함께 산업적 어플리케이션이 따라올 가능성이 크다. 산업적으로 보았을 때, 항상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산업적인 혁명이 따라왔었다. 열역학의 발전에 따라 영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전자기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전자·전기공학이라는 학문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처럼 중요한 산업적인 발전의 시발점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양자 컴퓨터라는 학문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실험과 이론, 그리고 순수 과학과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흥미로운 문제들이 많다는 점이다. 게다가 순수 과학적 연구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요새 양자 컴퓨터 연구는 좀 더 실험적으로, 그리고 산업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연재의 마지막편에 해당하는 이번 글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필자의 경험 위주로 적어보려고 한다.

 

 

시작

약 3년 전쯤에 필자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방문했다. 이곳은 필자가 대학원 생활을 했던 곳으로, 그 당시 지도 교수님이셨던 존 프레스킬John Preskill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 방문 중이었다.

프레스킬 교수님은 인간적으로 상당히 따뜻한 분이셨다. 항상 일이 많아 바쁘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도하는 박사과정 학생과 박사후 연구원의 삶과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셨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새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는지, 어떤 연구를 하는지, 그리고 흥미로운 과학 소식은 없는지 등등.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교수님이 문득 화제를 돌려서 요새 발표를 하나 준비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발표 대상이 학생이나 다른 과학자가 아니라 다수의 회사란다.

특이한 일이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양자 컴퓨터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구 분야가 아니었다. 필자가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에 필자와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친구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으니, 90년대 중반부터 연구를 해오신 프레스킬 교수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더더욱 특이한 변화였을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곳에서 요청이 들어왔길래 회사들을 상대로 발표를 하게 된 것이냐고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요새 많은 회사들이 양자 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가져, 양자 컴퓨터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앞으로 어떤 방향이 유망할 것인지에 대한 발표 요청을 받으셨다고 했다. 게다가 발표 대상이 한두 회사가 아니라 수십 개의 회사들이 참여하는 학회라고 하셨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학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곧 본론으로 돌아와, 발표에서 제시할 새로운 단어 하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단어는

Noisy Intermediate-Scale Quantum

줄여서는 NISQ(니스크)[1]라고 불리는 신조어였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양자 컴퓨터는 더 이상 작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여전히 양자 오류 보정을 하지 못해서 오류가 많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프레스킬 교수님은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이라는 개념도 제안1한 분이셔서 역시나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다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필자가 보기에 NISQ는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은 아니었다. 교수님은 마침 옆에 지나가고 있던 대학원 후배에게도 물어보셨는데 그 친구도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우리 둘 다 교수님께 여쭤보았다. “다른 이름은 괜찮은 게 없을까요?” 다 같이 생각을 해봤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교수님은 결국 NISQ라는 단어로 마음을 굳히셨다. 3년이 지난 지금, NISQ라는 말은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가끔씩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교수님이 제자들의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옳은 결정을 하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Quantum to Business

프레스킬 교수님께서 발표를 진행한 학회는 Quantum 2 Business, 줄여서 Q2B라고 불리는 학회였다. 일반적인 물리학회와 다르게 이곳에는 상당히 다양한 회사들이 참여했다. 참여한 회사의 리스트를 보면 사실상 모든 양자 컴퓨터 회사들은 물론이거니와 골드만 삭스 같은 대규모 은행들, 자동차 회사들, 제약 회사들, 그리고 심지어 디즈니까지, 평소라면 같은 학회에서 만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할 회사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필자가 보았을 때에는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양자역학적인 속도 향상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양자 알고리즘을 돌리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양자 컴퓨터가 필요하고, 그런 일은 단기간에 벌어질 수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많은 회사들이 직접 사람들을 파견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Q2B 2020 스케치 영상 자료 / QC Ware Youtube

사람들이 발표하는 내용 또한 보통 학회들과 많이 달랐다. 일반적인 물리학이나 컴퓨터 관련 학회에서는 새로 나온 논문에 대한 발표가 많은데, Q2B에서는 이미 알려진 양자 알고리즘들을 회사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혹은 회사에서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서 빠르게 풀 수 있는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다루는 발표들이 많았다.

여하튼 간에 확실한 것은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다는 점이었다. 참석자는 어림잡아도 천여 명에 달해 보였고 이곳저곳에서 네트워킹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로 미팅룸을 잡아서 토론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북적거리는 학회장은 지금 이곳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양자 회사들

 

이렇게 많은 회사들이 양자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우선 여기저기 생겨난 수많은 양자 컴퓨터 회사들이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양자 컴퓨터에 대규모로 투자를 하는 회사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정도였다.1 소규모의 스타트업들이 있긴 했지만 규모도 작고 그렇게 많은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양자 컴퓨터에 투자하는 회사들의 숫자들도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고 스타트업들의 숫자는 더 이상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미국 내 대기업만 해도 Honeywell과 아마존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Rigetti, IonQ, PsiQuantum 같은 대규모의 스타트업들이 만들어지거나 큰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 값비싼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필요 없는 양자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미 셀 수도 없이 많다.

필자가 잠시 거주했던 미국의 실리콘 밸리 같은 경우만 보아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파티에 가서 이야기를 해도 양자 컴퓨터를 연구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곤 했다. 양자 컴퓨터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5-6년 전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변화이다.

덕분에 벤처 투자를 하는 사람들과 만나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필자는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새로운 기술에 투자를 하는지 궁금했고 반대로 이 사람들은 양자 컴퓨터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에, 가볍게 만나 커피를 한잔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묻곤 했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 중에 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빌은 대학을 졸업하고 80년대 후반 실리콘 밸리에 온 후 쭉 눌러앉았다고 한다. 회사를 세 개 차렸고 그중 하나만 성공했지만, 한 번의 성공을 바탕으로 벤처 투자 회사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빌은 잘 알려진 양자 컴퓨터 스타트업 중 몇 군데에 이미 투자를 했고, 포트폴리오를 좀 더 늘릴까 생각 중이었다.

필자는 가장 궁금한 점부터 물어보았다. “대규모의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각각의 큐빗을 전부 세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한 개의 큐빗을 다루는 데만 해도 엄청나게 세밀한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수백, 수천, 수백만 개로 늘리려면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설령 큐빗을 하나 잘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좋은 큐빗을 대량생산하는 기술이 부족하면 대규모의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데에 너무나도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대량생산을 한다고 해도 큐빗들의 성능은 전부 제각각일 텐데, 이런 기계를 사람들이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너무 불확실한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하셔도 괜찮은가요?”

그러자 빌은 대답했다. “사실 컴퓨터가 발전한 초창기를 보아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걱정을 하긴 했지만 그런 문제들은 결국 전부 해결이 되었고요. 사실 우리가 쓰고 있는 플래쉬 메모리 같은 경우에도 64기가, 혹은 128기가 메모리로 딱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전부 같은 공정 과정에서 나온 물건들입니다. 그중 어떤 메모리들은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크게 나오고, 어떤 메모리들은 작게 나오지요. 용량이 작은 것들이 저용량 메모리로 팔리고 큰 것들이 대용량 메모리로 팔리는 식입니다. 양자 컴퓨터도 비슷한 방식이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요?”

필자는 대답했다. “글쎄요, 만약 공정 효율이 충분히 높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늘날 가장 좋은 오류 보정 방법을 보면, 공정 효율이 99% 미만으로 떨어지기만 해도 오류 보정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는데, 이 문제를 단기간 내로 해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빌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물론, 우리는 항상 회사들이 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둡니다. 사실 우리가 투자하는 회사들 중 90%는 실패한다고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보통 투자를 잘하면 나머지 10% 정도의 성공들이 실패한 투자에서 나온 손해를 메꾸고도 남습니다. 2010년경에 태양전지에 대한 투자가 많이 있었는데, 그때도 대부분의 태양 전지 회사들은 없어졌지만 살아남은 몇몇 회사들은 큰 이익을 남겼지요. 저희 회사는 다행히도 살아남은 회사들 중 하나에 투자를 해서 큰 성공을 거뒀고요. 양자 컴퓨터라는 분야도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결국 살아남는 회사들은 적겠지만, 살아남기만 하면 굉장히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저희는 그렇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회사를 찾고 있는 것이고요.” 빌이 오랫동안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NISQ 시대의 양자 알고리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빌과 같은 전문 지식이 없는 투자자들은 양자 컴퓨터를 수많은 문제를 엄청나게 빠르게 풀 수 있는 만능 컴퓨터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이러한 수준의 기대는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청사진에 비해 많이 앞서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맞물려 현재 양자 컴퓨터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점점 대규모의 양자 컴퓨터가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양자 컴퓨터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아직 유용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양자 컴퓨터의 최근 동향을 이해하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잠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양자 알고리즘들은 Variational Quantum Eigensolver(VQE)라고 불린다.[2] 이 알고리즘이 하고자 하는 것은 양자역학적인 시스템의 기저 상태를 찾는 것이다. 만약 물질의 기저 상태를 찾아낼 수 있으면 이를 이용해서 매우 다양한 물리·화학적인 문제들을 풀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여러 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분자가 주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분자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원자들이 어디에 위치해서 서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계산은 각각의 위치들에 대해서 기저 상태를 찾아낸 다음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위치를 계산해서 수행할 수 있다. 이렇게 원자들의 위치를 계산해 내면 이를 이용해서 분들에서 원자가 떨어져 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지, 혹은 두 원자 사이에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들을 쉽게 풀 수 있다.

VQE는 연구를 하고 싶은 물질을 가상으로 양자 컴퓨터에서 만든 뒤 에너지를 최소화함으로써 기저 상태를 계산해낸다.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일단 양자 컴퓨터에서 임의의 상태를 만든 후 에너지를 측정한다. 그다음 그 상태를 임의로 바꾸어서 에너지가 증가하는지 줄어드는지를 확인한다.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면 새로운 상태로 바꾸고, 더 이상 에너지를 줄일 수 없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미 여러 실험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소규모 분자의 에너지를 계산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3] 이러한 실험의 성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VQE 연구에 뛰어들었다.

또한 VQE의 사촌 격 정도 되는 Quantum Approximate Optimization Algorithm(QAOA)라는 알고리즘이 있다.[4]VQE가 물질의 기저 상태를 연구하는 것이 목표라면 QAOA는 최적화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이 목표이다. VQE에서는 계속해서 낮추고자 하는 양이 에너지라면 QAOA에서는 최소화하고자 하는 함수의 값을 비슷한 방식으로 낮추고자 한다.

이렇게 VQE나 QAOA 같은 알고리즘이 항상 맞는 답을 준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알고리즘들을 비교적 소규모의 양자 컴퓨터에서 직접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이런 알고리즘이 얼마나 빠르게, 또 얼마나 정확하게 작동하는지는 아직 알기 힘들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나타나게 될 새로운 양자 컴퓨터들을 이용해서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매우 간단한 원리로 작동하고, 또 실험적으로 직접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 방향에 맞게 손쉽게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시험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양자 알고리즘들과 달리 이러한 알고리즘들은 잘못된 답을 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물질의 에너지가 어떠한 매개변수 \(x\)에 대해서 [그림1]처럼 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림1]처럼 에너지의 국소적인 최소값이 한 개가 아니면 VQE는 전체 최소값이 아닌 국소적인 최소값을 계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기저상태가 아닐 것이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현재 나와 있는 양자 컴퓨터들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VQE를 통해서 계산해낸 기저 상태의 에너지는 실제 기저 상태에 약간의 오류가 추가된 상태의 에너지이다. 문제는 물리화학적으로 의미 있는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오류가 충분히 작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화학에서는 어떤 물질의 에너지를 계산할 때 1몰에 해당하는 양에 관한 에너지가 1kcal보다 작을 정도로 정확한 계산 결과를 요구하는 게 일반적인 기준이다. 비록 작은 분자들에 대한 계산은 필요 계산량이 워낙 적어서 현재의 양자 컴퓨터로도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지만, 큰 분자들에 대한 계산에서는 필요한 계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양자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오류로 인한 효과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최근에 제안되고 있는 양자 알고리즘은 비교적 소규모의 양자 컴퓨터를 가지고도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로 유용한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물론, 양자 컴퓨터의 성능이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VQE가 기존의 고전적 컴퓨터로는 할 수 없는 정확한 계산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이 실제로 오게 될지, 또 만약 온다면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 정확한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양자 컴퓨터가 좋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앞에서 말한 VQE 알고리즘 자체의 단점들도 보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며

양자 컴퓨터에 관한 연구는 최근 몇 년 사이 순수과학적인 측면에서 좀 더 실용적이고 실험적인 면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필자의 생각에 이러한 변화는 산업적으로 많은 투자와 실험의 발전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좋은 점이지만, 큰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기술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쏟아져 나오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산업적으로도 유용하게 쓰이면 좋겠지만 아직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두고 싶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자세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엄밀한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더욱 발전해서 오류 보정 없이도 유용한 산업적인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연구가 성공할지 혹은 실패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상황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일은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양자 보정을 대규모로 수행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 양자 컴퓨터를 만들 수만 있으면 과학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들을 빨리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양자 컴퓨터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연구와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서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 산업적으로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길 기대하며 연재를 마치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1. Preskill, J., Quantum Computing in the NISQ era and beyond, Quantum 2, 79 (2018).
  2. Peruzzo, A., McClean, J., Shadbolt, P. et al. A variational eigenvalue solver on a photonic quantum processor. Nat Commun 5, 4213 (2014).
  3. Kandala, A., Mezzacapo, A., Temme, K. et al. Hardware-efficient variational quantum eigensolver for small molecules and quantum magnets. Nature 549, 242–246 (2017).
  4. Farhi, E., Goldstone J., Gutmann S., A Quantum Approximate Optimization Algorithm. arXiv:1411.4028 (2014).
김한영
시드니대학교 물리학과 Senior Lectu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