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뿐만 아니라 동물행동학자들조차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회적 학습으로 인한 전통, 즉 문화1를 향유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기존의 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유전자에 각인된 행동만으로도 생존에 필요한 문제를 별 어려움 없이 해결한다고 보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학습을 하는 동물이 있다고 여겨졌지만 영장류, 고래류 등의 두뇌가 큰 동물만이 예외적으로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편견은 영어 관용구나 단어에도 남아있다. 예를 들어 “monkey see monkey do”는 보는 대로 따라 한다는 뜻이며, 명사로 쓰일 때는 유인원이라는 뜻의 “ape”는 동사로 사용될 때에는 흉내낸다라는 뜻을 갖는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몇 가지 발견에 의해서 이러한 편견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찰스 다윈은 동물의 행동이 완전히 본능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전달되는 지혜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마침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첫째, 침팬지와 고래와 같은 두뇌가 큰 동물뿐만 아니라 시궁쥐, 어류, 심지어는 초파리까지 다양한 동물군에서 사회적 학습이 관찰되었다. 뿐만 아니라 1999년에 앤드류 휘튼과 동료들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동물 사회의 한 집단(이 논문의 경우에는 침팬지)이 보유한 문화 목록이 20개를 상회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1] 침팬지는 아프리카에서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살고 있으며, 이들 집단 간은 지리적 장벽으로 인해 교류가 쉽지 않다. 따라서 환경과 유전자가 비슷한 동떨어진 두 집단 중 한 집단에서만 어떤 문화적 전통이 존재할 경우 사회적 학습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침팬지 사회처럼 집단마다 고유한 문화 목록이 많은 경우 침팬지의 출신 지역을 모르더라도 한 개체가 지니고 있는 행동 목록을 관찰하여 침팬지가 속한 집단을 추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견과류를 깨서 먹을 수 있고, 작은 나뭇가지로 뼈에서 골수를 먹을 수 있으며, 서로 깍지를 끼고 털 고르기를 하면 타이Tai숲 출신의 침팬지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우리도 누군가의 말투와 옷 입는 스타일을 토대로 그 사람의 출신 지역을 짐작한다.

둘째, 사회적 학습으로 전달되는 지식 및 생존 방법의 레퍼토리도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발표된 동물 문화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먹이를 획득하거나 안전하게 먹는 방법에 관련된 것이지만, 그 밖에도 짝짓기 따라하기, 철새의 이주 경로에 대한 지식, 어떤 포식자를 어떻게 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식, 노래 방언, 잠자리를 만드는 방식, 털고르기 자세, 빗속에서 막대를 집고 춤추기, 의사소통 신호 등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진다.[2,3] 이 문화 목록 중에서는 상당히 기이한 행동도 있는데, 코스타리카의 한 꼬리감기 원숭이 집단에서는 서로가 손가락을 상대편의 콧구멍에 동시에 넣고 최면 상태에 있는 것처럼 흔들거린다.[4]

셋째,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지는 기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에게 가장 발달한 감각이 시각이기에 우리는 시연자가 하는 행동을 보고 모방하는 것이 동물계에서도 가장 흔한 기제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인간과 비슷한 시력을 지닌 영장류에는 이러한 추측이 들어맞는다. 하지만 후각을 이용하여 학습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시연자와 모방자가 같은 시간 및 장소에 있지 않은 경우에도 모방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시궁쥐의 경우에는 어미의 자궁에 있는 동안 맡은 냄새를 기억하거나[5], 섭식 장소를 떠날 때 배설물로 냄새의 흔적을 남겨놓음으로써 다음에 같은 장소를 방문한 개체가 냄새의 흔적을 바탕으로[6]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획득한다.

이처럼 동물은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많은 지식을 사회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같은 종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크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30여 년 전의 동물 행동에 대한 이해에 비추어 볼 때는 동물도 대단한 사회적 학습 능력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왜 사회적 학습에 의존해야만 했을까’이다.

집단의 구성원들로부터 사회적으로 학습하는 것만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해서든 직관 및 생각을 통해서든 변화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할 수도 있다. 최근 몇십 년간 동물행동학에서는 사회적 학습 사례뿐만 아니라 개인적 혁신의 사례도 많이 수집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까마귀들은 견과류를 먹기 위해서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는 사거리에 견과류를 떨어뜨렸다가 빨간 신호등이 되었을 때 유유히 집어간다. 침팬지에 관한 혁신 사례도 많은데, 고정된 투명 튜브 속에 침팬지가 좋아하는 땅콩을 제공했을 때, 일부 똑똑한 침팬지들이 입에 물을 물고 와서 튜브에 붓고 떠오르는 땅콩을 집어먹은 사례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신호등과 차량의 움직임, 물의 부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처럼 스스로 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다른 개체를 모방하는 데 비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신호등과 차량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상관관계를 스스로 터득한 까마귀는 다른 까마귀를 모방하는 까마귀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다. 비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스스로 해결방법을 생각해내는 개인적 학습자는 정보 제공자이기에 이타주의자에 가깝고, 사회적 학습자는 무임승차자이다. 따라서 집단의 관점에서 볼 때 환경이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한 변화된 환경에 맞는 행동을 개발하는 개인적 학습자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개인적 학습자는 변화된 환경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사회적 학습자는 그 솔루션을 모방한다면 집단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사회적 학습이 쓸모가 없게 된다.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모방한 행동이 이미 구식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집단 내에 사회적 학습자와 개인적 학습자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7]

사회적 학습의 효용성이 클 정도로 환경의 변화가 적당히 빨랐던 시기가 바로 지난 100만 년 동안인 것 같다. 홍적세Pleistocene 후반에 해당하는 이 시기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가 여러 번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다. 변화가 심할 때는 몇십 년 사이에 연평균기온이 10도까지 변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연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하여 예상치 못한 더위와 추위로 이렇게 아우성인데, 그 당시에는 아우성의 정도가 훨씬 심했을 것이다.

이 시기 동안 인류의 두뇌 크기는 그 어떤 시기보다도 빠르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평균 800cc에서 현재의 평균 1350cc까지) 두뇌 크기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유물의 다양성과 복잡성도 함께 증가했다. 당시의 호모 속들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여러 가지 생존 방법을 강구하느라, 그에 따라 복잡다단한 사회 생활에 적응하느라 전달된 지식에 점진적으로 더 많이 의존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동일한 시기 동안 인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포유류 계통에서 두뇌 크기가 커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계통에서도 문화와 개인적인 혁신에 기대는 정도가 증가했다는 것을 뜻한다. 현생 종에 대한 비교 동물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동물 종에서 전달되는 문화 레퍼토리의 수량과 개인적 혁신 사례의 숫자는 두개골의 크기 및 신피질의 크기와 비례한다. 다시 말해서 두개골의 크기 및 신피질의 크기는 해당 종의 지능을 반영하며, 지능이 높을수록 개인적 학습 및 사회적 학습에 능숙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 계통에서만 두개골 크기의 급격한 증가가 나타났을까? 이에 대한 단 하나의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여러 원인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작용으로 지금의 크기에 이르렀는데, 그중 가장 핵심은 문화의 진화로 인한 되먹임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되먹임 작용은 인류의 두개골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시기인 초기 호모로부터 시작하여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할 때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학습의 정확성이 증가했을 것이고, 다른 개체에 대한 마음 읽기 능력theory of mind이 발달했을 것이다. 또한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지식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서 가르치는 기술이 발달했을 것이고,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규범과 협동성이 발달했을 것이다. 정확성의 증가와 가르침의 진화로 인해 집단 내에서 쓸만한 지식들의 규모는 점점 커졌을 것이며, 집단 지성은 일부 개인들의 혁신으로 인해 조금씩 더 나은 지식으로 개선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동물 계통에서는 이러한 되먹임 작용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으며, 사회적 학습 능력의 증가만 있었던 것 같다.

다윈을 비롯한 이전 세대의 진화생물학자들은 대체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동물의 행동과 마음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려고 했다. 인간과 침팬지가 지닌 각각의 능력은 그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에게 침팬지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를 적절한 환경에서 교육을 시키면 인간의 언어와 규범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침팬지에게 단순한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가능했지만, 침팬지가 학습한 언어의 한계 또한 명백했다. 마찬가지로 동물의 문화에 대한 연구가 40여 년 전 처음 시작되고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동물의 사회적 학습 능력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대단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인간에 비교해보면 한계 또한 명백하다. 최근 몇십 년간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을 제외한 동물 사회에서 인간 사회의 규범, 언어, 누적적 문화와 비근한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왜 이처럼 독특한 종이 되었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를 중심으로 한 되먹임 작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그 연구는 진화생물학, 인류학, 동물행동학의 최전선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1. Whiten, A., J. Goodall, W. C. McGrew, T. Nishida, V. Reynolds, Y. Sugiyama, C.E.G. Tutin, et al. 1999. Cultures in chimpanzees. Nature 399: 682–685.
  2. Laland, K. N. and B. G. Galef. (editors). 2009. The Question of Animal Cultu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3. Laland, K. N. 2017. Darwin’s Unfinished Symphony, Princeton University Press.
  4. Perry, S., M. Baker, L. Fedigan, J. Gros-Louis, K. Jack, K. MacKinnon, J. Manson, et al. 2003. Social conventions in wild white-faced capuchin monkeys: evidence for traditions in a neotropical primate. Current Anthropology 44:241–268.
  5. Hepper, P. 1988. Adaptive fetal learning: prenatal exposure to garlic affects postnatal preferences. Animal Behaviour 36:935–936.
  6. Galef, B. G., Jr., and L. L. Buckley. 1996. Use of foraging trails by Norway rats. Animal Behaviour 51:765–771.
  7. Boyd R. 2018. A Different Kind of Animal: How Culture Transformed Our Speci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김준홍
POSTECH 인문사회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