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겨울에 개최된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도핑 문제는 경기 결과만큼이나 여론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주제였다. 도핑 검사 결과 4명의 참가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밝혀져 징계 조치가 내려졌다. 특히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선수이자 미성년자인 카밀라 발리예바Kamila Valieva가 올림픽 개최 전에 실시한 도핑 검사를 통해 금지 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 결과 일어난 올림픽 출전 논란 때문에 발리예바 사건은 스포츠 중재 재판소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까지 가게 되었다. 긴 논의 끝에 발리예바의 싱글 출전이 허용되었지만, 러시아는 역시 “도핑의 나라”라는 조롱 조의 비난과 함께 동계 올림픽이 끝난 이후로도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가 자국의 반도핑 기구와 공모하여 조직적인 도핑을 수행한 것으로 악명 높기는 하나 도핑을 특정 국가의 문제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한 해 전인 2019년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 WADA에게 인준받은 전 세계 도핑 검사 실험실들에서 278,047건의 샘플을 분석한 결과 4,180건의 도핑 사례가 여러 나라들에서 적발되었다.[1]

왜 사람들은 도핑 행위에 분노하는가? 국제 도핑 규제를 총괄하는 WADA는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바로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반도핑규약World Anti-Doping Code」에 따르면 도핑은 스포츠의 근본적인 가치인 “스포츠정신the spirit of sports”을 위배하므로 금지되어야 한다. 규약은 스포츠정신을 “운동선수 각각의 자연적 재능natural talents을 완전하게 구현하여 인간의 탁월성을 보이려는 윤리적 추구”로 정의한다. 이런 관점에서 WADA와 한국도핑방지위원회와 같은 국가별 반도핑 기구들은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도핑 없이 인간의 탁월성을 추구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모든 선수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도핑 검사와 같은 반도핑 과학을 제공한다.[2]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 같은 주장과 관련해 윤리적 난제를 제기하는 사례를 소개한다. 저압실hypobaric chamber 훈련처럼 값비싼 가격 때문에 주로 북반구global north 국가들의 선수들만 접근 가능한 훈련 방식들로 운동 능력을 얻는 일은 자가수혈이나 적혈구 생성을 유도하는 에리스로포이에틴EPO 주사와 같이 혈액 도핑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만큼이나 불공정하지 않으냐는 것이다.[3] 왜 우리는 도핑이라고 부르는 활동들에 대해서는 불공정하다며 금지하면서, 어떤 종류의 경기력 향상enhancement 활동들에 대해서는 “공정한 경기fair play”의 일부로 이해하는가? 일반적인 훈련을 포함한 정당한 운동능력 향상 방법과 부정한 도핑의 경계는 어떻게 그어질 수 있는가?

논리와 의미를 철저히 따지는 철학자들의 눈에 도핑의 영역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이를 다른 향상 활동과 구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 윤리학자들은 WADA의 도핑과 스포츠정신에 관한 정의를 두고 이십 년이 넘도록 논쟁을 벌여 왔고, 각각의 논쟁마다 새로운 전선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같은 철학적 어려움은 도핑이라는 활동에 자연적 재능에 대비되는 인공적 개입의 딱지를 붙이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근현대 세계에서 스포츠, 과학, 정치가 특수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 역사적,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도 도핑과 공정성 문제가 자연적 재능과 연관해서 논의되고, 그 결과 특정 향상 활동이 자연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반도핑 과학이 공정한 경기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냉전 시기 동안 국제 스포츠 기구들이 “도핑과의 전쟁”을 벌이던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의 우연적인 산물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포츠계에서 도핑이 처음으로 논의되던 20세기 초로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

 

 

20세기 초: 아마추어리즘과 도핑 불공정론의 등장

스포츠사학자 폴 디메오Paul Dimeo는 오늘날 우리가 도핑이라고 부르는 행위들이 운동 경기의 공정성을 해치는 활동으로 인식되고 이를 적극적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고 말한다. 1920년대에만 하더라도 경보 대회나 사이클 경주처럼 여러 날 동안 진행되는 지구력 경기들에서는 코카인, 스트리크닌, 알코올과 같은 다양한 약물들이 탈진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당시 언론의 논조는 대체로 약물의 실제 효과에 대한 관심과 약물 사용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입장 사이를 오갔다.

한편 20세기 초에는 유럽의 중산 계급 아마추어리즘 지지자들이 올림픽 부활 운동을 중심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상금이 걸린 대회에 참가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노동자 계급 선수들과 자신들의 스포츠 활동을 구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이런 구별 짓기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상금을 목적으로 경쟁하거나 경기 능력 향상 약물들을 사용하는 일들은 “진정한” 스포츠인이 아니라는 담론이었다. 열렬한 아마추어리즘 옹호론자였던 국제육상경기연맹International Amateur Athletic Federation, IAAF 회장 시그프리드 에드스트룀Sigfrid Edström은 이런 주장에 동조하며 약물 사용을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그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1928년에 IAAF는 운동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각종 각성제를 사용하면 육상 경기 참여를 중단시킬 것이라는 규칙을 제정했다. 에드스트룀은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의 부위원장이기도 했는데, 또 다른 아마추어리즘 옹호론자이자 IOC 위원이었던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는 에드스트룀과 함께 스포츠 아마추어리즘의 위협에 관한 회의를 1938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했다. IOC는 이들이 이끈 회의 결과에 따라 “종류와 관계없이 약물이나 인공적인 자극제를 사용하는 행동은 가장 강력하게 비난받아야만 하며, 어떤 식으로든 도핑 할 것을 받아들이거나 제공한 사람에게는 아마추어 경기나 올림픽 참여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에드스트룀이 IOC 위원장으로 재임하던 1946년에 선언된 「올림픽 헌장Olympic Rules」에 “아마추어의 지위에 관한 결의안” 장의 6항 “선수의 도핑”이라는 제목으로 포함되었다.

이때만 해도 인공적인 도핑과 자연적 능력 사이에 대한 구별은 분명치 않았는데, 어떤 것이 선수의 자연적인 운동 능력인지를 판별할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도핑 문제는 주로 국제 스포츠에서의 계급투쟁의 일환이었고, 여전히 공정한 경기를 위한 전면적인 전쟁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1960년대 이후: 반도핑 활동을 바꾼 냉전과 과학

이처럼 아마추어리즘 및 계급 정치의 일부였던 도핑 문제가 급격한 변혁을 맞이한 시기가 바로 냉전기였다. 2차 대전 이후 소련이 처음으로 참여한 1952년 헬싱키 하계 올림픽부터 국제 경기는 동서 진영의 체제 경쟁 대리전이 벌어지는, 냉전기의 문화적 격전지가 되었다. 도핑은 이 대리전에서 메달 획득이라는 승리를 쟁취할 수단이었기에 (특히 동구권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장려되었다. 여기에 더해 단백동화 스테로이드의 효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이 물질이 역도 선수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약국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벤젠드린과 같은 암페타민들도 다른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 피로 경감 용도로 공공연하게 널리 복용 되었다.

이 상황에서 에드스트룀으로부터 IOC 위원장직을 물려받은 브런디지는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아마추어리즘의 옹호 논리 하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올림픽이 냉전 정치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스포츠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도핑 규제를 IOC 의제에 포함했다. 1961년에 브런디지는 의사 출신의 아서 포리트Arthur Porritt 분과위원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의학적 전문성은 없는 IOC 위원들로 하여금 도핑분과위원회를 구성하게 했다. 도핑분과위원회는 1966년에 금지 약물 리스트를 제안한 일이 활동의 전부일 정도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다만 1967년 IOC 총회에서 이 조직을 공식적인 의무분과위원회로 재편하고 벨기에의 알렉산드르 드 메로드Alexandre de Mérode 왕자를 분과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변화의 전기를 맞았다. 메로드는 도핑 관련 정책 및 규제 활동을 이끌 수 있는, 과학적인 훈련을 받은 IOC 바깥의 과학 전문가들을 의무 위원으로 삼았다. 그 가운데 약리학 전문가, 생화학자, 그리고 다른 의학 전문가들과 이들의 실험실 활동들이 도핑을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추방하려는 노력의 토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의무분과위원회 소속의 의학 연구자들은 금지 약물 목록을 만들었으며, 도핑 검사에 적합한 실험실 기준 및 과학 장비 목록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도핑 검사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결국 1968년 2월에 열린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에서 도핑 검사가 최초로 실시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반도핑 활동에 과학적 검사를 도입하는 일은 아마추어리즘에 기대어 도핑 행위를 비난하는 캠페인성 구호만 외치던 과거와 달리 금지 약물을 검출하는 검사 활동을 도핑에 관한 증거를 제공하고 이를 비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스포츠사가 이안 리치Ian Ritchie와 캐서린 헤네Kathryn Henne는 이처럼 반도핑 활동이 아마추어리즘에 기초한 비판에서 도핑 검사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도핑 규제의 “과학적 전환”이라고 부르는데, 이 가운데 오늘날과 같이 도핑 검사와 같은 반도핑 과학이 공정한 경기를 보장하는 필수적인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4]

1967년 의무분과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영국의 약리학자 아널드 베켓Arnold Beckett과 서독의 화학자 만프레트 도니케Manfred Donike는 도핑 규제의 과학적 전환과 반도핑 과학의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들이었다. 베켓은 소변에서 약물들을 검출하는 분석 기술을 고안해 유명해진 과학자로, 1968년 동계 및 하계 올림픽을 위한 도핑 검사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이후로도 도핑 검사와 관련 반도핑 정책 수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도니케는 1972년 뮌헨 하계 올림픽에서 도핑 규제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뮌헨 올림픽 동안 자신의 실험실에서 2천여 건이 넘는 대량의 도핑 검사를 실시했다. 이 수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많은 양이었기에 그를 반도핑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게 하는 데 충분했다.

 

 

1970년대에 이들은 IAAF의 의무분과위원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베켓과 도니케는 특히 IOC와 IAAF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실험실들을 모델로 삼아 공식적인 도핑 검사 실험실 승인 제도를 수립하게 만들었고, 1980년에는 IOC 의무분과위원회에 도핑 규제의 모든 측면을 감독할 기구로 스포츠 도핑·생화학 하위위원회를 설치하는 일에 참여했다. 반도핑에 관한 논의들이 모두 하위위원회의 과학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논의되면서, 도핑의 의미, 문제, 대응 방안 등에 관한 논의들이 점차 검사의 기술적, 과학적 문제들로 환원되었다.

도핑이 스포츠정신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는 생각은 냉전기를 거치면서 소수의 아마추어리즘 옹호론자들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확산되었다. 반도핑 과학은 이처럼 도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던 상황에서 도핑과의 전쟁에서 필수적인 무기로 떠오르며 도핑 선수와 보통 선수natural athletes를 구별하는 권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동시에 반도핑 과학이 도핑 문제를 과학적 검사를 통한 인공 물질 사용 적발 문제로 환원시키면서 도핑이 비자연적이고 인공적이며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했다. 도핑에 대한 부정적인 담론과 반도핑 과학이 서로를 떠받쳐주는 가운데, 도핑으로 향상된 운동능력이 자연적 재능 훈련을 통해 향상한 운동능력과 대비되는 “인공적인” 속임수라는 생각이 도핑 규제 당국과 일반 대중 모두에게 점차 분명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스포츠의 공정성 문제와 관련해 자연과 인공의 구별이 중요해지면서 베켓과 도니케 같은 과학자들과 이들의 실험실이 도핑 규제의 핵심적인 행위자로 떠올랐다. 특히 도니케가 고안한 스테로이드 탐지 기법은 반도핑 운동과 규제를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반도핑 과학자들이 이 기술을 사용해 캐나다 육상선수 벤 존슨이 금지 약물 사용을 적발한 이후 도핑 문제가 공산권 국가들에 한정된 부정이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그 결과 더 엄격한 반도핑 프로토콜과 규제들이 국제 스포츠 경기들에 도입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1999년에 WADA가 설립되었다.

 

 

자연적 재능의 경계와 공정한 경기에 관한 논쟁들: 성별 검사와 간성 선수의 사례

이후 반도핑 과학이 주도하는 도핑과의 전쟁과 스포츠의 공정성 논의는 과학주의적인 입장에서 “자연적인 재능”과 “인공적인 향상”의 경계를 그어가면서 전개되었다. 스포츠 윤리학자이자 WADA의 윤리 패널에서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그문트 롤런드Sigmund Loland의 논의가 이와 같은 입장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롤런드는 훈련과 도핑 약물 복용 모두 인공적 활동이지만, 훈련은 인간의 표현형적 가소성phenotypic plasticity을 자극하는 활동으로, 인간의 내재적인 적응성을 계발하는 스포츠 훈련은 자연적 재능을 발전시키는 올바른 것으로 본다. 반면 금지 약물 사용은 생물학적 적응성을 전혀 자극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근성장이나 적혈구 생산 증가 같은 이득을 얻는 것이므로 비자연적이고 비난받을만한 인공적인 향상 시도이다.[5] 동료 생명윤리학자들은 롤런드가 현대 과학을 통해 분명하게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자연적 재능의 경계는 생각보다 불분명하며, 많은 경우 분명한 과학적 기반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기초해 재단된다고 비판한다. 반도핑 과학과 도핑 규제가 이와 같은 사회적 통념으로 재단된 경계가 비과학적이라고 판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성별 검사와 간성inter-sex 선수의 시합 참여 배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논란은 반도핑 과학이 오히려 자의적으로 그어진 경계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며, 그 결과 공정한 경기의 이름으로 특정 선수들에게 불공정한 생물학적, 법적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기도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간성은 생식기, 생식샘, 염색체 패턴 등과 같은 성적 형질들이 남녀라는 이분법적 성 도식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키며, 간성 개인들은 대체로 인구 집단 당 약 0.05-1.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간성 선수들은 반도핑 규제의 과학적 전환이 일어나던 1960년대부터 국제 스포츠 기구들의 부적절한 규제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메달 획득을 위해 조직적으로 도핑할 뿐만 아니라 남성 선수의 성별을 속여 여성부 경기에 참여시킨다는 의심 또한 제기되었다. 1966년에 금지 약물 리스트를 막 작성 중이던 IOC는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 경쟁”할 수 있도록 여성 선수들에게 성별 검사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도핑 검사가 본격화된 1968년부터는 의무분과위원회가 직접 구강점막 도말 검사를 실시해 염색체가 XX이면 여성, XY이면 남성으로 판별하도록 했다.

염색체 성별 검사는 성 발달이 세포유전학적, 내분비학적, 해부학적, 사회심리적 차원에서 각기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세포유전학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증거를 바탕으로 이분법적으로 성별을 판별했다. IOC는 염색체 검사를 활용해 1972부터 1984년까지 최소 13명의 선수를 남성으로 판정하고 올림픽 출전 자격을 박탈했다. 1985년에 안드로겐 불감성 증후군으로 판정된 스페인 육상선수 마리아 파티뇨Maria José Martínez Patiño가 출전 금지 조치의 정당성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핀란드 유전학자 드 라 샤펠Albert de la Chapelle이 염색체 검사만으로 성별을 결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안드로겐 불감성 증후군은 남성 호르몬이 “보통” 여성보다 더 많이 분비되어도 전혀 경기 이득을 볼 수 없다고 증언한 이후에야 염색체 성별 검사를 사용하는 일이 재고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IOC는 전통적인 염색체 검사 대신 Y-염색체에서 남성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인 SRY와 DYZ-1을 확인하는 새로운 분자 유전 진단 기법을 도입했다. 이 새로운 기술 역시 세포학적 차원에서 분자적 차원으로만 초점이 바뀌었을 뿐 염색체 검사와 동일하게 성별을 특정한 생물학적 표지자로 확정할 수 있다는 틀린 가정을 전제로 삼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의학 전문가들은 분자 유전 진단의 효용에 대해 검토하고 토의했으며, 분자 유전 성별 검사는 “어렵고, 값비싼데다, 잠재적으로 부정확하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IOC는 1999년에 성별 유전자 진단 검사를 중단했고, IAAF와 함께 반도핑 관계자나 경쟁 선수들, 혹은 선수 자신이 성별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이 제기된다고 제보하는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성별 검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2009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가 아프리카주니어챔피언십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자 그녀의 남성적인 외모를 둘러싼 성별 논란이 일어났다. IAAF과 남아프리카공화국체육회는 세메냐에게는 검사 목적을 알리지 않고 산부인과의에게 성별 검사를 받게 했다. 세메냐는 언론들이 검사 결과를 두고 난리를 피울 때에야 이를 알게 되고 수치스러워했는데, 검사 결과는 세메냐가 체내에 난소가 아니라 고환을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 결과 세메냐는 남성 호르몬 수치가 “보통”의 여성보다 세 배가량 높은 고안드로겐증hyperandrogenism을 갖고 있었다. 반인권적 행태라는 비판 가운데 IAAF는 2010년 6월에는 세메냐의 국제 경기 출전을 허용했지만, 바로 이듬해에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여 사실상 그녀의 국제 대회 출전을 막았다.

반도핑 과학의 규준과 절차들은 고안드로겐증을 가진 여성 선수들을 배제하기 위한 새로운 규정에 동원되었다. IOC와 IAAF 모두가 수용한 이 새로운 정책에 따르면 여성부 시합에 참여하려는 성 발달에서 차이를 보이는 선수들Athletes with Differences of Sex Development, DAD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남성 선수의 범위” 보다 아래거나 안드로겐 불감성 증후군 등의 이유로 “안드로겐 수용체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시합에서” 불공정한 이득을 얻지 않는 경우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앞서 소개한 롤런드의 정의에 따르면 세메냐의 고안드로겐증은 그녀가 어떠한 인위적인 조작으로도 만들어내지 않은,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성발달의 결과로 얻게 된 생물학적 형질인 “자연적 재능”에 해당하므로 이를 발휘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두 국제 스포츠 기구는 여성과 남성의 성별에 대한 이분법적인 구별 가운데 테스토스테론 억제 주사와 같은 “역-도핑reverse doping”이라고 부를만한 “인공적인” 활동을 통해 여성으로서 “자연스러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보유한 경우에만 “공정한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이처럼 간성에 관한 과학 연구들로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분법적 성별 개념 때문에 반도핑 과학으로 보장된다고 여겨져 왔던 자연과 인공에 대한 구별과 공정성에 대한 논의가 형해화 된다.

이와 같은 규정을 둘러싸고 여러 논쟁이 일어났다. 먼저 해당 규정의 과학적 기반이 희박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고안드로겐증 규정은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로 불공정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있지만, 과연 테스토스테론을 선수의 운동 수행 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결정 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메냐가 활동하는 중장거리 육상 경기를 포함한 여타 스포츠들에서는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갖는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여전히 희박하다.

성별에 대한 개념화 역시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 규정에 따라 IOC와 IAAF는 간성 선수들의 존재를 “성발달 차이 선수들”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통해 제3의 성으로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기준으로 삼아 여성부 경기에 출전이 가능한 “여성 선수”를 규정함으로써 이분법적인 성별 체계를 유지하는 모순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와 관련해 “공정한 경기”를 보장하기 위해서라지만 이 같은 조치가 역설적으로 여성 선수들에게 불공정한 상황을 만든다는 문제 제기도 이루어졌다. 남성 선수들에 비해 여성 선수들의 내분비 상태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여성 선수에게만 더 많은 검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비판 가운데 고안드로겐증 규정은 2015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듯이 보였다. 국제 스포츠 중재재판소가 또 다른 고안드로겐증을 가진 인도의 육상 선수 두티 찬드Dutee Chand의 제소를 심의한 결과 IAAF가 2년 이내에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을 경우 폐지하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에 IAAF과 WADA의 지원을 받은 모나코의 반도핑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가 (비록 연구 설계, 방법론, 해석에서 드러난 수많은 오류 때문에 이후 엄청난 비판을 받았으나) 400미터 및 800미터 달리기, 400미터 허들, 해머던지기와 장대높이뛰기 종목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성 선수가 다른 선수들보다 더 좋은 실적을 냈다고 보고하면서 IAAF가 고안드로겐증 규정을 다시 밀어붙일 기회가 생겼다. 이듬해 봄에 IAAF는 이 연구를 근거로 삼아 고안드로겐증 선수들의 경우 400미터, 800미터, 1500미터, 1마일 달리기 참가를 위해서는 6개월 이상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재도입했다. 세메냐는 해당 연구 결과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시합 성적 간의 상관관계가 보인다고 언급되었던 해머던지기와 장대높이뛰기는 배제하고 연구에서는 유의성이 발견되지 않은 중장거리 달리기를 규제에 포함한 것이 자신의 출전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것이라고 믿었다. 세메냐는 찬드처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이번에 재판소는 다소 차별적인 점을 인정하지만 여성부 시합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규정이라고 결론지으면서 IAAF의 손을 들어주었다.

엄밀히 말해 성별 검사는 도핑 검사와 구별된다. 하지만 반도핑 과학과 관련 전문가들, 그리고 검사 기술들이 세메냐와 같은 간성 선수들을 “일반적인 여성 선수들”로부터 분리해내고 이들을 공정한 경기를 방해하는 존재들로 특정하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공정성의 이름으로 테스토스테론 억제 주사와 같이 인공 물질을 간성 선수들의 체내에 주입하고, 부작용에 따른 건강 피해를 감내할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들의 지적, 기술적 기반들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반도핑 과학이 공정한 경기를 펼치는 데 중요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담고 있는 전제, 반도핑 과학이 자연적 재능과 인공적 향상을 객관적으로 판별하고 후자만을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전제가 무너지게 된다. 간성 선수들의 성별 검사 사례는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한다. 반도핑 과학은 언제나 공정한가?

참고문헌

 

  1. WADA, 2019 Anti-Doping Testing Figures (Montreal: World Anti-Doping Agency, 2021).

  2. WADA, World Anti-Doping Code 2021 (Montreal: World Anti-Doping Agency, 2021), p.13.

  3. 마이클 샌델 저, 이수경 역, 『완벽에 대한 반론』 (서울: 와이즈베리, 2016), 50-52쪽.

  4. Ian Ritchie and Kathryn Henne, “Amateurism, Scientific Control, and Crime: Historical Fluctuations in Anti-Doping Discourses in Sport”, Journal of Criminological Research, Policy and Practice 4 (2018), pp.18-29.

  5. Sigmund Loland, “Performance-Enhancing Drugs, Sport, and the Ideal of Natural Athletic Performance”, The American Journal of Bioethics, 18:6 (2018), pp.8-15.